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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작에서 괴작까지_4] 왕자가 된 소녀들

  • 작성일 2013-08-15
  • 조회수 254



왕자가 된 소녀들


정세랑




이야기하고 싶은 영화의 제목도, 포스터도 너무 멋져서 이 글의 제목은 따로 궁리하지 않고 영화에서 바로 따 왔다. 아무래도 픽션에 지배당하는 동물이라서 다큐 영화에 큰 매혹을 느끼는 편이 아닌데도 이 영화를 보게 된 건, 취향이 아주 좋은 친구의 강력한 추천 때문이었다. 영화 비평을 전공하는 친구는 개봉 전부터 이 영화를 꼭 챙겨 보라고 했다. 절대음감과 절대미각이 있는 것처럼 절대영화취향 같은 게 있을 수 있을까? 만약 있다면 그 친구가 그런 능력자일지도 모른다. 나로서는 행운이다.
영화는 1950년대에 어마어마한 인기를 누렸던 여성 국극의 배우들과, 세기를 넘어 배우들을 사랑해오고 있는 팬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여성 국극은 남녀 역할을 모두 여성 배우가 맡으며 판소리와 고전 무용, 현대적 연출과 화려한 분장이 어우러진 종합예술이다. 한때 진짜 공주보다 더 곱고 진짜 왕자보다 더 카리스마 있게 무대를 호령하던 배우들은 노년에 접어든 지도 좀 되었다. 후계자들은 적고 60대 배우가 가장 왕성한 현역이니까 말이다. 여성 국극의 과거와 현재, 무대 안과 바깥을 모두 다루는 데 70여 분의 러닝타임이니 짧은 영화다. 하지만 정말 아기자기하고 아련하고 의미 있는 영화였다.
“임신 여덟 달째였지만 칼싸움을 나만큼 잘하는 배우는 없었어. 열두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하며……. 내가 베면 진짜로 베는 것 같았어.”
팔순에도 멋진 모습으로 무대에 섰던 조금앵 선생의 중저음은 멋졌다. 인터뷰 중간중간 선생의 젊었을 적 사진을 보고는 감탄했다. 아이돌이었다. 생각해보면 양성성만큼 완벽한 매력도 없는 것 같다. 서로 다른 성의 복장을 하거나 번개 따위에 몸이 바뀌는 체인지물까지, 양성성에 대한 끌림은 동서고금을 불문하고 언제나 존재해왔다. 셰익스피어의 〈십이야〉는 물론, 가까이 따지면 〈커피 프린스〉나 〈미남이십니다〉까지 끝없이 예를 들 수 있다. 사람뿐만이 아니다. 신윤복의 양성성이 두드러지는 그림은 여전히 신윤복의 성별에 대한 픽션들을 생산해낸다. 가장 매력적인 사람이 양성적인 것처럼 가장 완벽한 작품들도 양성적이다.
영화 중간중간 빛을 발하는 기록 사진들에서 살아보지 못한 시절을 그리워하게 된다. 거기 없었는데 그리워할 수 있다는 것은 굉장한 일이다. 막 전쟁이 끝나고 피폐한 시절에 깨금발로 와서 안기는 미인과 기개 넘치는 영웅들의 이야기는 얼마나 큰 위로였을까. 70년대에 고인이 된 임춘앵 선생의 사진들을 보자니 나라도 반했을 것 같다. 어마어마한 인기였다는 게 와 닿는다. 여성 국극의 팬들이 우리나라 열성팬의 원조 격인데, 혈서는 기본이었고 가출도 심심찮았으며 가상의 결혼식까지 올렸다고 한다.
“결혼할 때도 남편에게 내가 이런 걸(국극을) 좋아한다, 이런 언니가(좋아하는 배우가) 있다. 그래도 괜찮겠느냐, 물어보고 했어요.”
국극보존회를 여전히 후원하고 있는 팬들이 말했다. 사모하던 왕자님들이 이제 손주 여럿인 할머니가 되었어도 팬들은 함께하고 있었다.
보존회가 필요할 정도로 여성 국극이 쇠락하게 된 데에는 분명 어떤 ‘혐오’가 있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국가 무형 문화재 지정 및 모든 지원이 여성 국극 단체만을 악의적으로 누락시켰다. 문화계의 전문가들은 여성 국극을 두고 ‘싸구려 삼류’에다 ‘기형적’인 공연으로 몰아갔다. 배우들은 아직까지도 억울함을 풀 길 없었다. 여성 국극의 연주자들도, 연출자들도 모두 당대의 일류들이었다. 지금도 일류로 평가받고 활동하고 있는 이들이 다수다. 그들과 함께 무대를 꾸렸는데, 그렇게 많은 사랑을 받았는데 삼류라니 말이다. 사실 대학교 때 들었던 전통극 관련 수업에서도 여성 국극을 두고는 세 줄짜리 부정적 평가밖에 읽지 못했다. 어떤 시절을 완전히 사로잡았던 장르가 그렇게 저평가되는 것은 가슴 아픈 일이다. 그 독한 평들에서 분명한 어떤 ‘혐오’가 느껴진다. 무대 밖에서도 짧은 머리에 멋진 수트를 입고 다니는, 팬들과 모호한 관계를 유지하는 왕자님들에 대한 오래된 편견과 거부감 말이다. 배우들 중 일부는 스스로가 아닌 어떤 호방한 인물이 되어 세상을 호령해보고 싶었던 이도 있고, 또 일부는 실제로 동성애적 성향이 있기도 했다. 극단에서 연인이 된 몇 쌍이 지금은 하와이에서 친구처럼 부부처럼 살고 있다는 얘기에 지금보다 훨씬 험한 시대를 지나왔을 사랑을 생각했다. 언제쯤이면 우리는 이 혐오의 시대를 벗어나 살 수 있을까.
누구나 한 번쯤은 다른 성으로 살아보고 싶어한다. 그러고 보니 중학교 때, 희곡 〈원술랑〉으로 실기 평가를 할 때 같은 조의 남자아이들이 아무도 대사가 많은 원술랑 역할을 하고 싶지 않아 해서 내가 맡은 적이 있었다. 까만 두건 안으로 머리를 말아 넣고 원술랑이 되었을 때 이상하게 자유로웠던 기분이 기억난다. 지금도 가끔 남자가 되고 싶다기보다는, 남자도 여자도 아닌 제삼의 성이 되고 싶을 때가 많다. 스스로의 성을 아예 잊고 살 수 있는 사회가 아마 가장 행복한 사회이지 않을까 싶다. 지금은 잊으려고 하면 세상이 혹독하게 가르쳐준다. 그건 남성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잊으려야 잊을 수 없는 우리의 성별이 무겁다.
근사한 중저음의 조금앵 선생은 작년에 별세하셨다. 상대 배우를 안을 때는 ‘네롱네롱’ 안지 말고 ‘꽉 안고 부비’라는 화끈한 다른 선생들도 언젠가는 세상을 버릴 것이다. 여성 국극이 기록으로만, 다큐 영화로만 남을 날이 올지도 모른다. 하지만 기록은 공정하고, 공정하지 않은 세상에서 그런 공정함은 다정하게까지 느껴지기 마련이다. 공정하고 다정한 기록이 필요하지 않은 시대란 없다.




《글틴 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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