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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이모작]골방에서 광장까지 울림으로 닿는 시인, 심보선을 만나다

  • 작성일 2013-06-19
  • 조회수 1,142


글틴 문학특!기자단의 문학현장 인터뷰



[Culture이모작] 골방에서 광장까지 울림으로 닿는 시인, 심보선을 만나다


  ● 일시 : 2013. 5. 23(목)
  ● 장소 : 카페 씨클라우드(홍대 부근)
  ● 참석 : 배혜지, 백지연, 최재호(이상 글틴 문학특!기자단)



타인으로 뻗어가는, 부챗살 같은 삶


 심보선 시인의 어느 평일 저녁, 그의 일상은 어떤 모습일까?
 지난 5월 23일 글틴 기자 배혜지, 백지연, 최재호 세 명이 홍대 근처 카페 겸 공연장 ‘씨클라우드’를 방문해, 심보선 시인의 시간에 살짝 끼어들었다. 이 날 심 시인은 그가 직접 동료들과 기획한 문학 행사를 열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 시인보다 약 30분 정도 먼저 도착한 글틴들은 시인에게 건넬 질문들을 점검하며 2층 카페 창가 쪽에 인터뷰 자리를 마련했다. 심보선 시인은 창작 외에도 강의, 연구, 기획 등 여러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기에 글틴들은 이점에 주목해 질문을 뽑았고, 평소에 읽던 심보선 시인 시집들을 들고 나왔다.
 마침 인터뷰 다음 날 심시인의 산문집 ‘그을린 예술’(민음사)이 출간되는 터라 반가운 새 책 소식도 접하며, 느긋하게 시인의 낭독회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심보선-인터뷰-1



공연을 기획하기까지, 최근의 이모저모


●  백지연 (글틴 기자) : 요새 어떻게 지내세요? 세 번째 시집을 기다리고 있어요.
●  심보선 : 요새 시를 못 쓰고 있어요. 학생들 가르치는데, 학교 일이 많거든요. 학교 일이 많은 건 핑계이긴 한데, 스트레스도 많이 받아서 자주 자요. 뭔가 스트레스를 피하는 방법이 잠인 것 같아요. 잠에서 잘 깨고 깊이 숙면을 못 취하고 있어요.
시는 메모를 많이 해요. 그리고 쓰고 싶은 마음도 생겨요. 그런데 약간 두려워요. 썼다가 못 쓰면 어떡하나? 요새는 시 쓰는 것보다 시 쓰는 상상을 하는 게 더 좋을 수도 있겠다 싶어요. 상상하면 되게 행복해요. 상상만 할까요?
●  백지연 (글틴 기자) : 상상을 훔쳐올 수도 없고 어쩌죠?
●  심보선 : 세 번째 시집은 아마 한참 있다 나올 거예요. 그래서 인터뷰한다고 했을 때 쑥스러웠어요. 시를 안 쓰고 있으니까요. 그동안 쓴 산문들 모아서, 책은 나와요. 내일이요.
●  백지연 (글틴 기자) : 어떤 책인가요?
●  심보선 : 예술론이죠. 제가 예술사회학을 전공했어요. 예술 가지고, 문학 가지고, 시를 가지고 살아왔잖아요. 그래서 연구자이자, 시인이자, 또 이렇게 노는 사람으로, 어쨌든 그렇게 사는 사람으로 썼던 글을 정리했죠. 책의 정체성이 애매해요.
●  백지연 (글틴 기자) : 저희가 서점에서 내일부터 볼 수 있나요?
●  심보선 : 다음 주부터 볼 수 있어요.
●  백지연 (글틴 기자) : 그런데 이 공연은 어떻게 기획하신 거예요?
●  심보선 : 이건 그냥 노는 식으로 기획한 거예요. 오늘 오은 시인이 출연하기로 했는데, 어떤 콘셉트로 무대를 세팅할지 그런 커뮤니케이션은 안 돼 있어요. 어쨌든 해요. 많이 안 온 것 같아요. (실제로 관객은 씨클라우드 공간을 가득 채웠다. 남은 자리가 단 한 석도 없었다.)
●  심보선 : 오늘은 입장료도 받아요.
●  백지연 (글틴 기자) : 저희는 미리 냈어요.
●  심보선 : 이런 자리는, 나도 좀 숨통을 터야 하니 친구들하고 하는 거예요. 한 달에 한 번 하는데, 저번 달에 강정 시인이 했는데 재밌더라고요. 초반에는 친구들 중심으로 얘기하다가 콘셉트 잡고 순서도 잡으면서, 어느 날 장기적으로 가려고 하거든요. 그러면 확장이 돼야 해요. 제가 모르는 사람이 올 수도 있거든요. 열려 있으니까요.
●  백지연 (글틴 기자) : 시 쓰는 것도 하고 산문도 쓰시고, 이런 일도 하시는데요. 각각의 활동에 어떤 의미가 있을 것 같아요.
●  심보선 : 저는 문창과를 안 갔잖아요. 그런데 시를 썼는데요. 정말로 ‘시를 쓴다’, ‘등단한다’ 그런 계기가 없었어요. 우연한 계기에 쓰게 된 거예요. 누군가를 만났고, 그가 제게 용기를 줬고, 격려를 해줬고, ‘아! 등단이란 게 있구나’ 그러면서 등단을 준비해서 하게 된 거예요. 그 전까지 시는 제게 비밀이었어요. 비밀이 즐거웠어요. 저를 살아있게 하는 비밀이었거든요. 예를 들어 고등학교 때나 군대 있을 때 시를 쓰면서 굉장히 소심한 저항을 한 거예요. 사소하지만 시가 그런 상황을 버티는 힘이었던 것 같아요. 시가 본인이지만 본인이 아닌 사람을 만들어줬어요. 굉장히 모범생인 고등학생에다가 선생님 말 잘 듣고 시키는 대로 하는 사람이었지만, 또 그런 사람이 아닌 사람으로 만들어준 게 시였어요.


심보선-인터뷰-2



‘조금 삐딱한’ 사회학을 공부하는 시인


●  배혜지 (글틴 기자) : 평소에 사회학자 겸 시인으로 활동하시는데요.
●  심보선 : 시는 저에게 직업이 아니었고, 글 쓰고 책 읽는 걸 좋아하니깐 사회학을 하게 됐어요. 지금도 그렇다고 하는데, 사 회학은 조금 삐딱한 학문이에요. 사회를 비딱하게 비판적으로 보죠. 사회학 하는 사람 중에 시를 좋아하고 문학을 좋아하는 사람이 굉장히 많았어요. 그래서 사회학을 하면서 재미가 든 거죠. 그러면서 난 아무래도 사회 나가면 회사는 못 다닐 것 같았어요. 그렇다면 할 줄 알고 재미있어하는 게, 공부라고 생각한 거죠. 저도 어쨌든 먹고 살아야 하니까요. 이걸 연구하고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제가 좋아하는 걸 하면서도 직업을 가질 수 있으니까요. 그렇게 자연스럽게 시쓰기와 맞물려 지금의 제 삶이 됐어요.
그래서 유학도 가고 돌아왔는데, 시를 쓰고 사회학을 하는 게 저한테는 항상 되돌아가는 중요한 거예요. 뭐라고 할까? 이를테면 준거 같은 거예요. 평소에는 그냥 살다가 어떤 행동을 할 때, ‘나는 시인이고 사회학을 해’라는 두 개의 기준이 된 것 같아요. 항상 기준은 아니에요. 뭔가를 할 때 그렇죠.
그런데 시와 사회학이라는 게 어떻게 보면 지금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시장성이 없는 거예요. 시장성이 높은 학문은 경영학, 심리학, 경제학이죠. 시도 문학 쪽에서는 시장성이 없어요. 그런데도 이런 걸 한다는 건 좋아한다는 거예요. 아까도 말씀드린 것처럼 사회 속에 있지만 뭔가 비켜 있는 그런 길을 무의식적으로 의도적으로 가죠. ‘나는 삐딱이가 될 거야’ 하는 게 어쩌면 잠재돼 있기도 해요. 시를 쓰고 사회학을 하면서 내가 그런 사람이라서 그런 일을 하는 것도 있지만, 내가 그걸 하니깐 그런 사람이 되는 피드백이 생겨요.
그러면서 이제 좋은 것도 있지만 나쁜 것도 있어요. 다 마음에 안 들어요.



시인이 직접 만드는 시낭독회,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자리


●  배혜지 (글틴 기자) : 작가님은 진보적인 글을 쓰고 활동도 하시는데요. 그런 활동들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  심보선 : 지금 우리 삶이 점점 안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 같아요. ‘사람들이 가난해진다’. ‘불평등해진다’ 물론 그런 것도 중요한데, 저한테 중요한 건 ‘영혼을 갉아 먹는다’는 거예요. 젊은 친구들을 예로 들면, 그들은 지금 너무 불안하잖아요? 미래에 대한 전망이 불투명하고. 혼자인 것만 같고 그러면서 자꾸 어느 한쪽에 치중하게 되는 거죠. 미래라는 게 펼쳐지는 게 아니라 화살표로 어떤 한 방향을 가리키게 되고, 많은 사람들이 거기에 맞추게 돼요. 학생이면서 시인일 수도 있고, 군인이면서 시인일 수도 있잖아요? 그런 게 부챗살 같은 정체성이에요. 여러 ‘결’과 ‘심’이 있어요. 그런데 우리 사회는 그게 안 되는 거고, 그게 보이고 느껴지고, 그래서 저도 힘들고, 저보다 더 힘든 사람들이 보여요. 그러면서 느낌이나 생각이 생기죠.
그러다가 어떤 계기로 누군가와 대화를 하는데, 내가 그 자리에 가게 돼요. 가령 우연히 송경동 시인을 만나요. 진은영 시인 전화가 오죠. 어떤 제안을 받아요. ‘이런 게 있는데 같이 하자’고 그래요. 그럼 ‘제가 갈게요’ 그러죠. 구체적으로 ‘이렇게 해야지’가 아니라 그냥 밑바탕에 있는 거죠. 이럴 때 누가 전화 한 통 해서 ‘이런 거 할래?’ 그러면, 마침 기다렸다는 듯이 그 제안에 바로 손을 뻗는 거예요. 나도 손을 덥석 잡는 거죠. 기본적으로는 그런 흐름 속에서 해요.
이걸 하게 된 계기도 마찬가지예요.
시 낭독을 하게 됐어요. 사람들 많은 현장에서 하니 막 떨려요. 그런데 하면 좋아요. 시가 그냥 눈으로 읽는 것보다 소리 내 읽는 게 좋더라고요. 그런 경험을 몇 번 해요. 시 낭독이 재밌어요. 쓰고 읽고만 하는 게 아니라, 뭔가 시를 읽는 순간 사람들하고 연결이 되는 거예요. 묘한 울림이 생기고, 이 울림 속에 사람들이 있을 때 부챗살 같은, 어떤 삶이 만들어지는 것 같아요. 그런 생각을 막연하게 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제 한 친구가 미국에 있는 시인인데요. 한국에 왔어요. 둘이 대화를 하다가 ‘낭독 시리즈 같은 것 있니? 너의 나라에? 출판사에서 하거나 어디서 기획하거나 그런 것 말고, 시인들이 하는 게 있니?’라고 묻는 거예요. 제가 ‘없는 것 같은데’ 그랬더니, 그 친구가 ‘하라’고 권했어요. 저도 ‘알았다’고 했죠. 그래서 하게 된 거예요. ‘그래. 우리가 한 번 해보자. 우리끼리’ 그렇게 된 거예요. 시켜서 하는 자리 말고. 이 자리는 만들어낸 자리예요. 원래 이전에 씨클라우드 대표가 뭔가 하자는 권유도 있었고, 말하자면 그런 흐름들이 있어서 서로 만나기도 했어요. 어떤 의미가 있어서 ‘그런 거 할 거야’가 아니에요. 흐름 속에서 어떤 힘들이 모여든 거죠.
대신 그런 건 있는 것 같아요. 뭘 한다 할 때 아무 생각 없이 있으면 계기들은 그냥 다 흘러가고 말아요. 많은 경우 놓치기도 하죠. 어떤 땐 덥석 거머쥐는 거예요. 놓지 않고 잡는 거죠. 그런 건 필요한 것 같아요.
‘어느 순간에 해야지’ 하는 의지와 작동시키는 에너지가 모이는 거죠. 나 혼자 모이는 게 아니고 사람들이 모여요. 내가 뭘 한다 할 때 ‘이것의 취지가 이런 거야’ 하는 정당화된 의미가 아니라, 삶 속에서 흐르는 힘들이 내 안에서, 그리고 내 바깥에서, 그런 계기들이 자연스럽게 모이는 거예요. 하지만 의지가 없으면 안 돼요.



시적으로 꿈꾸는 자리, 보이지 않는 것이 점점이 찍혀 있는 공간들


●  심보선 : 심보선 : 에밀 뒤르켐이 한 얘기인데요. 사람은 의식이 있어요. 그 의식이 어떤 대상으로 향해 가려고 해요. 그 대상은 객관적 사실이에요. 과학은 그 객관적 사실을 딱 움켜잡아 보여주는 거예요. 물론 뒤르켐은 ‘이 객관적 사실이 반드시 눈에 보일 필요는 없다, 반드시 자연과학일 필요는 없다, 사회도 그렇다’라고 해요. 그런데 ‘객관적 사실을 연구하지 않는 학문은 그래서 과학이 아니다, 차라리 그건 시다’라고 하죠. 시는 내가 어떤 것을 욕망하고 뭔가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고 만들려고 하는데, 그런데 실체가 없다고 그래요. 시는 없는 것에 대한 동경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뒤르켐이 뭐라고 하냐면 ‘반레프레젠테이션’이라고 해요. 객관적인 것을 합리적으로 그럴 듯하게 재현하는 게 과학인데, 시는 과학이 아니라는 거예요. 없는 것을 계속 있다고 하고, 없는 것을 드러내려고 하고, 없는 것을 욕망하고, 움켜쥐려고 하니깐요. ‘해프레프렌젠테이션’이죠.
그건 시를 욕하려고 한 거였거든요. 그런데 저한테는 그게 맞는 말인 거예요. 시란 정치적으로 없는 것을 꿈꾸는 거잖아요. 그게 왜 정치적이냐 하면, 우리는 지금 사회에서 그리고 지금 체제에서 없는 것에 대한 꿈을, 뒤르켐 식으로 하면 ‘해프레프리젠테이션’이란 걸 계속 금지당하고 있어요. 그리고 아까 얘기했듯이 부챗살로 쫙 피면 거기에는 여러 가지 가능성들이 있는데, 이 사회는 화살표 하나만 가리키는 사회예요. 성공이나 돈 그런 게 사실이라고 하죠.
예를 들어 고등학교 10대들이 제일 불안한 게 ‘너 돈 없으면 어떡할래?’ 그거래요. 내가 인간답게 살려면 돈이 있어야 한다는 거죠. 돈이 유일한 사실이 되고 그 사실에 마음이 결부가 돼요. 돈이 아닌 것들에 대한 상상이 점점 힘들어지고 있어요. 그런데 시는 다른 것들을 꿈꾸고 같이 동경하는 거예요. 그게 저한테는 정치적인 것이죠.
시적인 것은 그런 의미에서 정치적인 것이고, 만약 그 꿈을 시인들이, 시를 읽는 사람들이 같이 꾸려고 하고, 이것을 보여주려고 하는 한, 이 세계에서는 그런 자리들과 이런 사람들이 있어요. 이런 사람들은 성공이나 돈으로만 인생을 살지 않는 거예요.
삶을 좀 넓게 보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시적 인간들· 시적 사건들· 시적인 것들이 점점이 찍혀 있는 거예요. 그러면 밖에서 볼 때는 여전히 자본주의지만 안에는 그런 것들이 있고 삶 속에서 움직이고 있어요. 그게 저한테는 희망이거든요. 그래서 저도 이것도 저에게는 정치적인 거예요. 시인들이 ‘행동을 해야 한다, 거리에 나가야 한다, 정치적인 시를 써야 한다’ 그런 건 아니죠.
물론 얘기가 단순하지만은 않아요. 복잡해요. 왜냐하면 자본주의는 ‘이런 공간들도 돈이 되겠다?’ 그런 식으로 볼 수 있으니까요.
●  배혜지 (글틴 기자) : 시에서는 그런 얘기를 구태여 하시지 않고, 속에 있는 얘기를 털어놓던데요?
●  심보선 : 저는 작가들이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을 안 해요. 왜냐하면 글을 쓰는 사람들은 ‘아! 이거 재밌다. 신난다.’ 그걸 할 때 느끼는 해방감이 있어요. 글을 쓸 때 ‘최고의 작가가 될 거야’, ‘성공해서 뭔가를 보여줄 거야’ 그런 사람은 어차피 안 되게 돼 있어요. 그건 어떤 상품을 만들 때 그 상품이 시장에 나와서 팔려야 하니깐 마케팅을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죠. 기업에서 연구하고 기획하고 상품평가를 하고 최종 시안을 내잖아요. 똑같아요. 세상에 뭔가 보여주겠다 그렇다면 다른 걸 해도 돼요. 시나 문학을 하는 건 그것만의 매력이 있어서예요. 내가 쓸 때 무언가를 여러 가지로 표현할 수 있죠. 내가 막 대단한 거 같아요. ‘내가 어떻게 이런 걸 쓰지? 신기하다’ 그건 놀라움이기도 하거든요. ‘이거 어떻게 쓰지? 어떻게 썼지?’ 그 글이 나왔다는 것에 대한 순수한 기쁨 같은 것? 거기서 출발을 하거든요. 그런데 그런 기쁨은 등단한 사람에게 있는 것은 아니에요. 누구에게나 있어요.
마치 작가가 특별한 사람이고 이 사람들이 재능을 가지고 있으니 사회에 기여를 해야 한다? 그건 아니에요.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해요. 그렇게 생각하도록 문학 이론도 미디어도 항상 사로잡혀 있는 것 같아요. ‘작가는 예외적인 사람이야’, ‘특출한 재능을 가진 사람이야’ 그러죠. 나는 그런 이론이나 편견에 대해 반대하는 사람이에요. 그런 작가의 역할이 아니에요.
사회학에서 역할 자체, 즉 롤이라는 건 항상 무엇을 위해서 롤을 하는 거예요. 뭔가 있어서 그것에 기여를 하는 거예요. 주어진 전제가 있어요. 그런데 ‘이 글을 쓰면 난 이 사회의 일원으로서 긍정적인 기여를 할 거야’ 그러면서 글 쓰는 사람이 있을까요? 우리는 그냥 쓸 뿐이에요. 쓰는 순간 그 자체에 몰입을 하고, 그 자체에서 기쁨을 느끼고 불안과 고통을 느껴요.
예술이 어떤 역할을 하는 게 아니에요. 오히려 사회에는 나쁠 수도 있어요. 우연히 오늘 어디서 봤는데, 러시아에서 예술가는 악이랑 연결되어 있대요. ‘예술에 빠지지 말라. 건강에 안 좋다. 사회에 안 좋다. 나쁜 것에 빠지지 말라.’ 예술에 대한 경계를 나타내는 그런 게 많아요.
에밀 뒤르켐도 그런 얘길 했어요. 밭을 가는 사람은 미학적인 쾌락으로부터 거리를 둬야 한다고요. 그 사람에게 안 맞는다는 거죠. 밭을 가는 사람이 만약에 시를 쓰잖아요? 그건 위험한 거예요. 그 사람한테도 위험하고 사회에도 안 좋죠. 그런데 예술하는 사람은 언제나 있었어요. 예술하는 사람, 글을 쓰는 사람은 모든 계층에서 나와요. 그 사람들이 ‘좋은 사회를 만들어야지, 세상을 변혁시킬 거야’ 하는 목적으로 그 행위를 하는 건 아니에요.

심보선-인터뷰-3



●  최재호 (글틴 기자) : 그럼 ‘심보선에게 시인이란?’ 답변 부탁해요.
●  심보선 : ‘쓸 수 없는 것을 쓰는 사람’이라고 그러는데, 우리끼리 하는 말을 하면 재미없으니. 뭐라고 하면 될까요? 시인이란, 누군가인 사람, 후(who)가 아니라 후에버(whoever)인 사람? 내 안의 부챗살들이 있고, 누구나 시인이 될 수 있으니까요.

●  최재호 (글틴 기자) : 시집마다 등장하는 인물 군이 달랐는데요. 세 번째는 어떨까요?
●  심보선 : 첫 시집 『슬픔이 없는 십오 초』에는 등장인물이 많이 없죠. 두 번째 시집 『눈앞에 없는 사람』에는 등장인물이 많죠. 세 번째 시집은 다를 수도 있죠. 저도 등단할 땐 축복 받았는데 그 이후로는 별로래요. 그래서 ‘혼자 쓸래’ 하고 골방에서 썼어요. 실제로 혼자였어요. 미국에서 혼자 창밖을 보면서 쓴 거예요.

●  최재호 (글틴 기자) : 문청들에게 하고 싶으신 말씀이 있으신지요.
●  심보선 : 시를 잘 쓰려고 하는 것도 중요한데, 좋은 것으로써 나를 기쁘게 하세요. 자기한테 좋은 것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고 생활 속에서 시 속에서 그것에 예민해지세요. 그건 결코 나만 좋은 게 아니니까요. 예를 들어 제가 인터뷰하는데도 재미있게 하고 싶고 즐겁게 하고 싶어요. 그러기 위해 나름 노력해요. 그런 순간이나 시를 쓰는 순간에는 ‘내가 지금 재밌다. 끝까지 최선을 다해서 한 번 해보자’ 그래요. 그렇게 하면 나만 좋은 거 같지 않아요. 같이 좋을 수 있고, 같이 놀 수도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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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오지 않는다면 시:리즈


이번 심보선 시인의 인터뷰는 시인들이 직접 기획하는 ‘당신이 오지 않는다면 시:리즈’ 중 오은 시인 편 ‘오월의 분위기는 위기가 되고’가 열리기 전, 한 시간 정도 진행됐다. ‘당신이 오지 않는다면 시:리즈’는 자발적인 시인들의 낭독회이지만 관객들도 자신들이 좋아하는 시집을 들고 와 읽을 수 있다. 나른하고 개성 강한 분위기에서 시인이 직접 시를 읽고 관객에게도 시 읽기를 권한다. 시인들이 직접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악기도 연주한다. 5천 원 입장료에 음료나 과일까지 나눠먹는다.
시적인 온갖 것들의 분위기를 타는 자리로, 오은 시인 편에서는 사회를 맡은 송승언 시인의 악기 연주로 시작됐다. 오은 시인이 시에 관한 질문에 답하며 시를 읽는 자리였고, 선배 시인 강정이 축하무대로 노래 두 곡을 불렀다. 무대로 나오지 않았으나 김소연, 이영주, 서효인, 허연 시인 등이 자리를 지켰고, 객석의 몇몇 관객들은 본인들이 좋아하는 시를 골라 읽었다.
오는 6월에도 어김없이 ‘당신이 오지 않는다면 시:리즈’가 이어진다. 6월 20일 목요일 오후 7시 40분, 합정동 씨클라우드에서 진행되며 입장료는 5천 원이다. 이번 달은 시인 장수진 편으로 ‘팬티를 쓴 복화술사’라는 제목으로 열린다. 여느 때처럼 심보선 시인 외 13명의 시인들이 기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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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심보선 시인, 〈 문학 특! 기자단 〉 전원
정리 : 변인숙



   《글틴 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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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문제 없음 고비읍 오른쪽에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입을 틀어막고 참아 보려는 듯하지만, 결국은 끕끕 새어 나오는 소리. 내 바로 왼편에 앉은 아이는 흘러내리는 눈물을 손등으로 닦아내기 바빴다. 사방에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려온 건 무대 위의 한 남자애가 울기 시작하고서부터였다. “부족한 저에게 이렇게 많은 사랑을 주셔서 정말, 정말 감사드려요. 그 사랑 다 돌려드릴 수 있도록 더 노력할게요. 저를 사랑받는 사람으로 만들어 주셔서 감사…….” 그 애는 울먹이느라 말을 다 끝내지 못했다. 누군가가 크게 그 애의 이름을 연호하자 팬들이 한목소리로 그 애의 이름을 외쳤다. “연홍아, 울지 마!” “연홍아, 사랑해! 더 많이 사랑할게!” “최연홍! 행복하자!” 반짝거리는 옷을 입고 예쁘게 화장을 하고 눈부신 조명을 받는 무대 위의 남자애를, 이미 많이 행복해 보이는 그 애를 팬들은 더 행복하게 만들어 주겠다고 했다. 나는 커다란 공연장 안을 둘러보았다. 2만 명이 앉아 있는 이 공연장 어딘가에 송리윤도 있었다. 다른 팬들처럼 송리윤도 그 애를 보고 울었을까. 더 사랑해 주겠다고 외쳤을까. 따로 연락도 한 적 없고, 밥 한 번 같이 먹은 적 없지만 그 애는 송리윤에게 사랑받았다. 아무 이유 없이. 아무 대가 없이. 세븐플래닛은 마지막 무대라면서 팬들에게 함께 부르자고 했다. 팬들은 노래 가사 전체를 다 알고 있는지 막힘없이 따라 불렀다. 3시간쯤 콘서트가 진행되는 동안 세븐플래닛이 불렀던 노래 대부분은 내가 전혀 알지 못하는 노래들이었다. 애초에 나는 세븐플래닛에 관심이 없었다. 멤버가 몇 명인지, 이름이 무엇인지도. 관심도 없는 세븐플래닛 콘서트 티켓을 산 건 오로지 송리윤 때문이었다. “여러분, 오늘 즐거웠나요?” “네!” “행복했나요?” “네!” “저희도 너무너무 즐겁고 행복했어요.” 멤버들은 돌아가면서 엔딩 멘트를 던졌다. 아까는 우느라 말을 끝까지 하지 못했던 최연홍이 이번에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세븐플래닛과 가디언이 함께한 지 벌써 5년이 됐어요. 이만하면 한 가족이나 다름없어요. 그러니까 우리 평생 서로 사랑하고 아껴 줘요. 알았죠?” 팬들은 큰 소리로 “네!” 하고 대답했다. 어딘가에서 송리윤도 같이 외치고 있을 것만 같았다. “뭐야? 할 말 있어?” 송리윤이 근처에서 쭈뼛대는 내게 물었다. “저기…….” “쉬는 시간 다 끝나 간다. 아까운 시간 잡아먹지 말고 빨리 좀 말해 줄래?” “나도 갔었어, 어제. 세븐플래닛 콘서트 말이야.” 혹시나 반가워해 주지 않을까 기대를 하고 송리윤의 얼굴을 흘끔 쳐다보았다. 하지만 송리윤의 표정은 변함없었다. 여느 때처럼

  • 관리자
  • 2022-10-01
너와 나의 알싸한 세계

너와 나의 알싸한 세계 백온유, 『페퍼민트』(창비, 2022) 김젬마 재난이 남긴 것들 백온유의 『페퍼민트』는 준비 없는 재난 앞에 닥친 기약 없는 기다림과 불투명해진 미래를 견디는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소설은 ‘프록시모 바이러스’ 후유증으로 식물인간이 된 엄마를 돌보는 ‘시안’과, 슈퍼 전파자라는 낙인으로 두려움과 불안함을 안고 사는 ‘해원’의 이야기가 교차된다. 전염병이 발생하기 전까지만 해도 시안과 해원은 가족처럼 가까운 사이였지만, 바이러스가 삶에 침투하자 이들의 평범한 일상과 관계에 균열이 생긴다. 식물인간이 된 엄마의 세계가 멈추고 자신의 미래까지 멈춰버린 시안은 돌봄 노동을 수행하느라 정작 자신의 세계여야 할 학교와는 단절된 삶을 살아간다. 그저 자신의 하루를 견디고 버티며 사는 것 외에는 그 어떤 희망이나 미래를 품을 수 없는 고단한 삶 속에 놓여 있는 시안의 일상은 위태롭고 무력할 뿐이다. 엄마가 깨어날 거라는 희망보다 엄마의 죽음을 기다리는 것에 익숙해진 것에 죄책감을 느끼고, 엄마를 누구보다 꼼꼼하고 세심하게 돌보지만 결국 모든 정성과 노력들이 물거품이 되는 순간들에 지쳐 있다. 한편 슈퍼 전파자라는 무차별 공격으로 인한 불안함에 시달린 나머지 자신의 이름을 ‘지원’으로 개명하고, 이사와 전학을 선택한 해원은 자신의 과거를 감추고 마치 바이러스가 자신의 삶에 없었던 것처럼 평범하게 살아간다. 가족만큼이나 끈끈했던 두 사람은 우연한 계기로 6년 만에 다시 만나게 되지만 이들의 공백은 쉽게 메워지지 않는다. 이 공백은 두 사람의 잃어버린 시간과 멀어진 마음의 거리만큼 복잡하고 난해한 감정들을 담고 있다. 그렇게 다시 만난 시안과 해원은 서로에게 불편함을 느낀다. 시안은 평범한 일상을 영위하는 해원을 보며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고 그동안 자신을 짓눌러 왔던 감정의 화살을 해원에게 돌린다. 해원은 유일하게 자신의 과거를 아는 시안의 등장이 당혹스럽기만 하고 지난 시간을 들추는 것 같아 불편하다. 희망 없는 현실을 견디고 있는 시안과 과거로부터 도망쳐 평범한 삶을 꿈꾸는 해원, 이 두 사람은 다시 연결될 수 있을까? 고여 있는 삶 재난을 준비할 시간도 없이 엄마와 이별을 한 시안은 식물을 돌보듯 엄마를 간병한다. 엄마의 존엄성을 지키는 것은 엄마가 썩지 않도록 기저귀를 자주 갈아 주는 것뿐이지만, 시안은 엄마의 미각을 깨우는 데 도움이 될까 싶어 엄마가 좋아하던 페퍼민트 차를 매일 우려 입에 적셔 준다. 시안은 매일 같이 차를 우리며 어린 시절을 회상할 뿐 아니라, 절망과 무력함으로 점철된 일상에 작은 희망을 품으며 나름의 의식을 행하고 있다. 엄마는 고여 있는 것 같다가도 우리 삶으로 자꾸 흘러넘친다. 우리는 이렇게 축축해지고 한번 젖으면 좀처럼 마르지 않는다. 우리는 햇볕과 바람을 제때 받지 못해서 냄새가 나고 곰팡이가 필 것이다. 우리는 썩을 것이다.(98쪽) 시안이 오랜 간병 경험으로 얻은 것은 자신을 바라보는 연민의 시

  • 관리자
  • 2022-10-01
K-할머니의 이름은

[리뷰 - 청소년소설] 기존 〈글틴스페셜〉이 9월호부터 〈Part.g〉로 변경되었습니다. 〈Part.g〉는 청소년 대상의 성장소설은 물론 창작희곡과 그래픽노블까지 다양한 영역의 '작품'과 '리뷰'를 게재할 예정입니다. K-할머니의 이름은 유은실, 『순례 주택』(비룡소, 2021) 김젬마 불편한 것들에 대하여 동화나 청소년소설에서 노년 여성 캐릭터는 대개 죽음이라는 소재와 연관되거나 주인공에게 정서적인 위안을 주고 성장을 돕는 존재로 그려진다. 그들은 주로 돌봄 노동과 모성의 주체로 호명되다 보니 자신의 이름보다 누군가의 어머니 혹은 할머니로 불려 온 것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자신을 이런 방식으로 규정하는 호칭들에 매우 민감한 이가 있으니, 바로 『순례 주택』의 건물주 순례 씨다. 75세인 순례 씨는 어머니, 할머니, 사부인, 동거녀 등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타인과 가족 단위로 엮이는 호칭들을 불편해한다. 이러한 호칭들은 순례 씨의 다채로운 삶과 이력들을 괄호 칠 뿐 아니라 순례 씨의 바운더리를 침범하는 무례함을 담고 있다. 순례 씨는 사별한 남자친구의 손녀인 수림을 손녀가 아닌 최측근으로 호칭 정리하며 할머니와 손녀라는 전형적인 관계 방식에서 벗어난다. 그는 ‘순하고 예의바르다’의 순례(順禮)에서 남은 인생을 지구별을 여행하는 순례자의 마음으로 살기 위해 순례(巡禮)로 개명할 만큼 자신의 이름에 대한 애착과 소명을 가지고 있다. 누군가의 가족으로 소환될 뿐 정작 자신의 이름으로 불린 경험이 없는 ‘K-할머니’의 이름은 자신을 옭아매는 규범적인 호칭들을 하나씩 덜어내며 재정의 된다. 순례 씨는 호칭뿐만 아니라 물질과 돈을 필요 이상으로 소유하는 것에 대한 불편함 때문에 필요 이상의 것들을 덜어내는 미니멀 라이프를 지향한다. 이산화탄소를 마구 배출하는 인간들과 쓰고 남는 돈, 썩지 않는 쓰레기가 인생 최대의 고민인 그는 푸짐하고 손 큰 할머니의 밥상이 아닌 노동력을 최소한으로 하는 간단하고 소박한 밥상을 차린다. 순례 씨는 정직하게 땀 흘려서 노동하는 삶을 추구하며 세상과 물질에 욕심 없는 다소 초월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 사실 그 누구보다 자기만의 경계가 매우 뚜렷한 인물이다. “월세 밀리는 건 참아도, 분리배출 제대로 안 하는 건 못 참”(80쪽)을 만큼 그는 순례 주택의 생활 수칙에 있어서만큼은 엄격하고 단호하다. 이렇게 순례 주택 입주민들은 공용 생활 수칙과 자신의 바운더리를 지키며 사는 것을 중요시하고, 무엇보다 이들은 “자기 힘으로 살아 보려고 애쓰는 사람들”(53쪽)이라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다. 유은실의 『순례 주택』은 고정된 공간과 다양한 인물들의 대화를 중심으로 서사가 진행되며 기본적으로 순례 주택이라는 공동체의 복작거리는 삶을 그린다. 이는 사건이 인물과 장소의 활용도가 높고 이를 중심으로 사건이 전개되는 시트콤의 형식과 비슷하다. 『순례 주택』은 등장인물의 이름, 나이, 직업, 특징 등을 세세하게 묘사하며 이

  • 관리자
  • 2022-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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