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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회 문장청소년문학상_우수상_비평&감상글] 위대한 업적을 세웠다고 위대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 작성일 2013-03-15
  • 조회수 617


위대한 업적을 세웠다고 위대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 프리츠 하버와 라이너스 폴링에 대하여

 

성현아(Camille)

 

 

 

 

 

   위대한 업적이 항상 위대한 사람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위대한 정복자에서 멈추지 않고 폭군이나 학살자라는 오명까지 같이 얻는 경우는 꽤 흔하다. 역사의 일부인 과학사에서도 물론 이런 경우가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프리츠 하버이다.
   다들 프리츠 하버라는 사람은 몰라도 ‘하버-보슈법’은 과학 교과서에서 한번쯤은 들어보았을 것이다. ‘하버-보슈법’의 탄생 계기는 다음과 같다. 하버가 살았던 시대는 아직 ‘맬서스의 인구론’에 묶여 있던 시대로 인류의 식량은 1, 2, 3, 4 식으로 산술급수적으로 증가하지만 인류는 1, 2, 4, 8, 16 등의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므로 이를 그대로 방치하면 커다란 재앙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암초에 걸려 인류가 아직 절대적 빈곤과 기아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시대였다. 이 문제의 결정적인 원인은 바로 토지에 존재하는 질소의 양이었다. 질소는 농작물 생육에는 꼭 필요한 물질이지만 가장 빠르게 고갈되었다. 이 시기에 질소를 땅에 공급하는 방법은 번개가 칠 때 공기 중에 존재하는 질소가 질소 산화물의 형태로 땅 속에 들어가는 것과 콩과 식물같이 뿌리혹박테리아가 있는 작물을 심는 것이었다. 그러나 콩을 심거나 휴경지를 두는 방법으로는 급속도로 증가하는 인구를 먹여 살릴 수 없었다. 신대륙에서 들여온 감자와 구아노 새의 배설물도 일시적인 해결책 이상의 역할을 하지 못했다.
   이 때 독일의 과학자 하버가 이 문제를 해결했다. 바로 인공적으로 암모니아를 합성해서 인공질소비료를 만들어 낸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버-보슈법’이다. 자세히 설명하자면 ‘하버-보슈법’은 촉매(Fe, K2O, Al2, O3)와 고압(130 ~ 400 기압) 장치를 이용하여 고온(400 ~ 500 ℃)에서 질소와 수소를 직접 반응시켜 암모니아를 얻는 방법이다. 합성법 자체는 하버가 찾아내었고 수득률을 높이는 데 도움을 줄 촉매는 보슈가 찾았다.
   ‘하버-보슈법’ 덕에 공기 중에 무한정으로 존재하는 질소로 암모니아를 만들어 식량 문제는 해결되었고 맬서스의 이론은 폐기되었다. 이런 하버의 업적은 그 누구의 것보다도 위대하다고 평가받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위대한 업적에 비해 하버의 인지도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고등학교 교과서 구석에서 잠깐 보고 지나갔을 정도로 낮다. 왜일까? 이 의문점을 해결하기 위해 나는 그에 대해 찾아보았다. 그리고 큰 충격을 받음과 동시에 이에 대해 납득하였다.
   원인은 바로 하버가 독일인이었고 심각한 애국자였다는 점이었다. 제 1차 세계대전에서 조국인 독일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 그는 또 다시 엄청난 것을 발명하게 되는데 그것은 바로 독가스였다. 더 큰 문제는 하버가 이를 앞장서서 개발했을 뿐만 아니라 적극적으로 사용할 것을 주장했던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그의 아내는 남편의 독가스 연구를 결사적으로 반대하였으나 그를 막지 못했고 절망에 빠져 자살하였다. 그럼에도 하버는 개의치 않았다.

 

   이런 비인간적인 행위에도 불구하고 제 1차 세계대전 후, 하버는 질소비료에 대한 공로로 1918년에 노벨 화학상을 수상하였다. 노벨상의 영예도 얻고 그의 애국심에 충실하게 생활하며 나름 괜찮은 삶을 살고 있던 하버였지만 그에게도 큰 위기가 찾아온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찾아온 그 위기는 히틀러의 유태인 학살이 시작되었고 그가 유태인이었다는 사실이었다. 하버 자신은 본인을 독일인이라 생각하고 애국심이 넘쳤지만 나치에게 그는 학살 대상인 유태인일 뿐이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는 그의 업적 덕분에 추방에 그쳤지만 그의 친척들은 독가스로 학살당했다. 아이러니하게도 학살에 쓰인 독가스는 그가 발명한 지클론-B였다. 결국 절망에 빠진 그는 중립국인 스위스 바젤 호텔에서 허무하게 죽었다.

 

   하버는 수많은 사람들을 살렸고 수많은 사람들을 죽였다. 전쟁 당시 연합군도 독가스를 쓰기 시작하여 발사한 포탄의 1/3이 가스탄일 지경이었으니 전쟁 당시만 따진다면 죽인 사람의 수가 더 많았을 것이다. 위대한 업적을 세웠으나 위대한 사람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전범이 된 것이다. 이런 하버의 삶을 보면서 나는 한 개인의 윤리성이 그 천재성을 따라가지 못하면 어떻게 되는지, 정말 천재적인 사람이 광기에 휩싸이면 어떻게 되는지 확실히 깨달았다.
   우리는 위대한 업적을 세운 과학자들 중 최악의 예인 하버를 보았다. 그렇다면 그 반대의, 최선이자 최고의 예도 있을까? 있다면 누구일까? 바로 라이너스 폴링이다.
   라이너스 폴링은 미국의 화학자이자 과학자의 윤리성에 대해 말할 때 하버와 함께 꼭 언급되는 사람이다. 폴링의 대중적 인지도는 하버보다 훨씬 높다. 그도 그럴 것이 평생 한 번 타기도 어려운 노벨상을 두 번, 그것도 전혀 다른 분야인 화학상과 평화상 부문에서 탔으니 말이다.
   먼저 노벨 화학상을 가져다 준 그의 위대한 업적은 분자구조를 이루고 있는 화학 결합에 있어서 원자궤도의 혼성화와 공명 등에 관한 개념을 정립한 것이다. 풀어쓰자면 각 원소의 원자들이 모여 적절한 방법으로 결합하여 분자를 이루고, 이러한 분자들이 모여 이 세상 모든 물질을 이루어가는 과정을 설명할 수 있도록 원자의 가장 기본적인 결합 방법을 설명한 것이다. 이것을 통해 복잡한 유기화합물이나 전이금속화합물의 모양을 설명 가능하게 해주어 물리화학의 기초를 다지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다음으로 평화상을 가져다준 업적은 반핵 운동이다. 이 업적이 정말 대단한 것이 그가 반핵 운동, 평화 운동을 했던 시기가 제2차 세계대전과 냉전 시대였다는 점이다. 그 당시가 맨해튼 프로젝트의 총 책임자인 오펜하이머도 소위 ‘빨갱이’로 몰려 거의 몰락했을 정도로 매카시즘이 심했던 시기인지라 폴링은 FBI의 감시는 기본이었고 여러 수사와 압박을 받았다. 하지만 폴링은 맨해튼 프로젝트 화학부분 책임자 자리를 거절하였고 원자폭탄 투하 후에는 적극적으로 반핵 운동에 나섰다. 또한 갖은 핍박에도 불구하고 폴링은 전 세계 1만 명이 넘는 과학자들로부터 핵실험 반대 서명을 받아내는 등 많은 활동을 하였다. 마침내 1963년, 미국과 소련의 핵협정이 맺어진 후, 라이너스 폴링은 반핵운동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노벨평화상을 수상하였다.
   위에서 말했듯이 라이너스 폴링은 화학결합론의 기초를 구축한 천재 과학자이자 반핵, 평화 운동에 앞장 선 사회운동가였다. 미국 정부의 여권 발행 거부만 아니었다면 여러 학회에 참석하고 제대로 된 DNA 시료로 연구하여 왓슨과 크릭이 아니라 그가 노벨 생리의학상을 탔을지도 모른다.
   프리츠 하버와 라이너스 폴링은 위대한 업적을 이루었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하지만 둘의 인생은 너무나도 다르다. 하버는 자기가 세운 업적과 자신의 인생에 스스로 먹칠을 하였고, 폴링은 위대한 과학자에 멈추지 않고 위대한 사람으로 나아가는 행보를 보였다. 그래서 하버는 업적에 비해 대중적 인지도가 거의 바닥 수준인 반면에 폴링은 위대한 과학자, 위대한 사람이라는 주제에 항상 등장하며 위인전도 여러 권 나오는 등 많은 존경을 받고 있다. 하버와 폴링의 삶이 이토록 다른 것은 무엇 때문일까? 하버와 다르게 폴링은 뛰어난 과학자였던 자신의 능력에 걸맞은 윤리 의식과 신념을 가지고 그것을 끝까지 지켜내서 그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확실한 것은 우리가 지향해야 할 삶은 위대한 업적을 망친 하버가 아니라 위대한 사람이 된 폴링의 삶이라는 것이다.

 

 

   * 참고 및 인용 문헌
   1. 예병일 / 네이버캐스트 [화학산책 -라이너스 폴링]
   2. 엔젤하이로 위키 / 라이너스 폴링
   3. 엔젤하이로 위키 / 프리츠 하버
   4. 김봉래, 한인옥 / 하이탑 화학 I / 125p ~ 127p / 두산동아
2002년

 

 

제8회 문장청소년문학상

비평&감상글 우수상 

 

 

 

   수상소감

 

   ‘글틴’이라는 사이트는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글쓰는 것을 좋아했던 터라 처음 알았을 때부터 ‘글틴’에서 활동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중학교 2학년 말에 사춘기와 함께 슬럼프 비슷한 것이 찾아와 제 자신과 제 글에 대해 자신감이 떨어져서 아예 글쓰는 것이 싫어졌습니다. 다행이 나이를 먹으면서 이런 저런 경험도 하고 좋은 친구들도 만나고 하면서 고등학교 2학년 초에 사춘기와 슬럼프를 극복하였습니다. 그러면서 글쓰기에 다시 흥미가 생기고 좋은 글들을 쓸 수 있었습니다. 그 덕에 작년에 글쓰기 대회에서 상복이 터졌습니다.
   상을 타서 기쁘지만 한편으로는 심사평을 읽고 제 실력이 아직 부족하다는 것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한 때 평론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을 정도로 무언가를 보고 그에 대해 분석하고 제 생각을 말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아직 그런 것들을 글로 표현할 정도의 실력을 갖추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자기 목소리가 나와야 하는데 그 부분에서 약했다는 점이 아쉽습니다.
   그래도 암울했던 몇 년을 극복하고 안좋은 일도 있었지만 좋은 일도 많았던 고등학교 2학년을 문장 청소년 문학상과 함께 끝내서 좋습니다. 아직 부족한 점이 많지만 그런 점들을 채워서 더 좋은 글을 쓸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글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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