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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性)스러운 그녀

  • 작성일 2011-11-24
  • 조회수 892

 

[청소년 테마소설]

2. 몸과 욕망_ 세 번째

 

 

성(性)스러운 그녀

 

김혜정

 

 

 


 

 

  얼굴이 하얗다 못해 푸른빛이 도는 여자애, 일명 성모마리아가 골목 어귀에 서 있었다. 나는 가슴이 철렁했다. 설마, 나를 보러 온 건 아니겠지. 못 본 척하고 지나치려는데 그 애가 내 앞을 가로막았다.

  “할 말이 있어.”

  그 애가 내 눈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나는 그 애의 목에 십자가 목걸이가 걸려 있는지부터 살폈다. 없었다. 미안하다는 말을 해야 하는데 말이 목에 걸려 나오지 않았다. 번데기에 동정녀라, 환상의 조합인데? 성스럽지. 개성스러워. 며칠 전 상범이 패거리에게 당한 모욕을 생각하면 속이 활활 뒤집힌다. 남자들끼리 치고받고 하는데 계집애가 겁도 없이 끼어들기는. 합리화해 보아도 도리 없이 속이 켕겼다. 이럴 때는 슬쩍 피하는 게 상책이었다.

  “지금은 좀 바쁜데.”

  “잠깐이면 돼.”

  “저기, 빨리 엄마한테…….”

  간신히 그 애를 따돌리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엄마는 아줌마들과 화투판을 벌이고 있었다. 아들의 기말고사가 다가오는데 노름꾼을 끌어들이는 엄마라니. 그래도 어쩌겠는가. 아버지 없이 혼자 나를 키우느라 뼛골이 빠진다는데. 엄마 말마따나 내가 공부를 잘하는 것도 아니고 인물이 잘난 것도 아니어서 엄마의 자랑도 기쁨도 되어주지 못하니 그 정도는 봐줄 수밖에. 도서관에 가는 것도 내키지 않은 차에 마침 창희 누나가 사는 옆방 문이 빠끔 열려 있는 것이 보였다. ‘너의 무단침입을 허하노라.’ 누군가 내 귀에 대고 속삭였다.

  방바닥에는 누나의 몸만 쏙 빠져나간 이불이 반쯤 젖혀져 있었다. 누나의 속옷들이 나를 보더니 일제히 아우성을 쳤다. 나는 잽싸게 먹잇감을 찾는 짐승처럼 킁킁거리며 속옷을 주워들고는 이불을 둘러썼다. 정신이 몽롱해지고 몸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사방에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나는 꽃덤불 속에 누운 채 닿을락 말락하는 누나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브이라인에 애교 점만으로도 근사한데 눈썹은 연예인 저리가라 수준이었다. 오랫동안 야미로 남의 눈썹 문신을 해온 엄마의 솜씨 중 최고였다. 누나가 그윽한 눈길로 나를 내려다보았다. 나는 언제까지나 이렇게 누워 있고 싶었다. 브래지어 밖으로 밀려나온 누나의 젖가슴이 느껴졌다. 너무 황홀해서 눈물이 찔끔 나왔다. 어느새 콧잔등에 따스한 기운이 밀려오고 누나의 입술이 내 입술에 닿았다. 곧이어 말랑말랑하고 축축한 것이 내 입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왔다. 곱슬머리에 주먹코, 팔뚝에 털이 부숭부숭한 내가 매력덩어리 누나와 키스를 하는 순간이었다. 누나의 손이 내 셔츠 속으로 파고들더니 어느새 바지 속으로 질주했다. 삶이란 수수께끼 같은 것이다. 어느새 바지 속이 불룩해졌다.

  고함소리에 눈을 떴을 때는 방 한가운데서 엄마가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이미 젖어버린 바지를 감추기 위해 나는 길게 하품소리를 내며 돌아누웠다.

  “잘 한다 잘 해. 시험이 낼 모렌데 대낮부터 자빠져 잠이나 자고. 도서관 같은 데 가면 죽을병이라도 옮는대든?”

  “언제는 건강하게만 자라달라면서.”

  “뭐야?”

  나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무안함을 감추는 방법으로는 공격이 최상이었다.

  “나도 해줘.”

  “뭘?”

  “그거.”

  “그게 뭐야?”

  “쳇! 다 알면서 그래.”

  “놀고 있네.”

  “다른 애들은 다 했단 말야.”

  “따라 할 게 따로 있지 남 한다고 다 하냐?”

  “오줌이 옆으로 튄다니까.”

  “똑바로 서서 싸면 될 거 아냐?”

  “엄마, 진짜 내 친엄마 맞아?”

  “말하는 싸가지 하고는. 너 같은 놈 키우면서 여태 암 안 걸리고 산 게 신통하지.”

  “그런 말 하는 사람은 절대 암 안 걸린대.”

  “그렇다면야 천만다행이고.”

  엄마야말로 하나밖에 없는 아들에게 이렇듯 무관심해도 되는 것일까. 이 나이 되도록 고래 하나 안 잡아주면서 말로만 우리 아들, 아들. 허구한 날 아줌마들 하고 수다를 떨면서 귀는 장식으로 달고 다니시나.

  중학교 삼학년이 되자 아이들은 급변했다. 담배를 피우는 아이들이 늘어났고 무엇보다 뻔뻔해졌다. 화장실에서 용무를 마치고도 지퍼를 올리지 않고 서로 힐끗거렸다. 나는 되도록이면 화장실에 가지 않았고 급할 때는 휴지를 들고 대변기 칸으로 뛰어 들어가곤 했다. 거기까지는 괜찮았는데, 뒤늦게 수학여행을 다녀온 후 이전까지와는 비교할 수 없는 변화가 찾아왔다.

  수학여행의 하이라이트, 장기자랑이 가져다준 흥분의 여파는 숙소까지 이어졌다. 상범이 패거리가 귀신같이 숨겨놓은 소주를 마시더니 성 경험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우쭐댔다. 경험이 없는 아이들은 호기심어린 눈으로 그 애들을 바라보았다. 최고 연상과의 최다 경험으로 숙맥의 자리에서 단번에 지존으로 등극한 아이를 향한 선망의 눈길은 사뭇 유치했다. 나는 본능적으로 그런 것으로부터 물러나 있었다. 허무하게 지존의 자리를 내준 상범이 패거리가 한참 식식거리다가 샤워실로 들어가더니 차례로 아이들을 불러들였다. 서로 포피를 잡아당기다가 재미가 붙었던 듯했다. 나는 가슴이 철렁하고 뒷골이 당겼다. 아프다는 핑계를 대고 누워 있었다. 아이들은 나를 가만 놔두지 않았다. 야, 저 새끼 저거 고자 아니냐? 여자애들처럼 오줌도 앉아서 싸고. 그러고 보니 이 짓궂은 장난은 처음부터 나를 겨냥한 음모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불을 머리까지 둘러쓰고 시간이 흘러주기를 바랐고 어떻게든 잠을 자려고 애썼다. 잠이 안 올 때 쓰는 방법, 일종의 마법을 걸었다. 스스로 마술사가 되어 내 의식을 지배한 덕분에 잠이 들 수는 있었지만 그것은 돌이킬 수 없는 실수가 되어 돌아왔다. 내가 잠든 사이, 아이들이 내 하의를 상실시킨 것이다. 그럼 그렇지, 번데기였군. 다음 날 아침 소문은 일파만파로 번졌고, 여자 애들까지 덩달아 낄낄대며 나를 덜 떨어진 아이 취급했다.

  그 일만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오그라들고 사지가 떨린다. 그 후 상범이 패거리는 대놓고 나를 놀렸다. 어이, 번데기! 비엔나, 코딱지라 부르며 심지어는 침을 뱉기도 했다. 그뿐인가, 쉬는 시간이 되면 빵과 햄버거, 소시지 따위를 사오라는 심부름을 시켰다. 처음 몇 번은 못들은 척하며 버텼지만 아이들은 집요했다. 어쭈? 이 새끼 이거 번데기 주제에 간댕이까지 배 밖으로 출타하셨다? 들어주지 말아야지 다짐을 했다가도 그 애들과 눈이 마주치면 피할 수가 없었다. 여자애들은 쉽게 그걸 감지했다. 여자어른들이 큰 집과 고급 승용차를 가진 남자들을 좋아하듯이 여자애들은 힘 있는 남자애들을 좋아했다. 아니, 고래를 잡지 않은 애들을 껌 딱지 보듯 했다. 부당한 일이었지만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나는 침묵과 불안한 눈길로 그들을 밀어냈다. 초등학교 동창인 동정녀 마리아, 그 애만이 거기서 비껴 있었는데 나는 그 애가 더 부담스러웠다. 얼굴이 창백하고 말이 없는 애로 항상 십자가 목걸이를 걸고 다녔는데 어딘지 모르게 근접하기 어려운 분위기를 지녔다. 초등학교 때는 발레대회에 나가 상도 몇 번 받더니 중학교에 와서는 발레를 하지 않았다. 집이 망했을 거라는 둥 발레에 소질이 없었을 거라는 둥, 성질이 더러워서 잘렸을 거라는 둥 소문만 무성했지 정작 진실을 아는 아이는 없는 듯했다. 나는 초등학교 때 강당 창문에 매달려 그 애가 춤추는 걸 훔쳐보았다가 선생에게 늘씬하게 얻어맞은 적이 있어서 그 애하고는 별로 엮이고 싶지 않았다. 백조 말야, 우아하게 물에 떠 있는 것 같지만 실은 물에 빠지지 않으려고 버둥거리고 있는 거래. 그 애의 말이 떠오르곤 했지만 그뿐이었다. 투구를 쓴 유리인형 같다고나 할까. 그 애 가까이 가면, 왠지 가슴을 베일 것 같았다. 상범이 패거리가 아무리 집적거려도 그 애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거기에 약이 오른 패거리 중 누군가, 오호 성스러운 몸이시다? 비아냥거린 것이 성모마리아라는 별명으로 굳어버렸다. 그 애가 나 대신 패거리의 심부름을 해준 것이 화근이었다. 번데기와 동정녀라, 환상의 조합인데? 피차 꼴리는 일도 없을 테니 성스럽겠네. 개성스러워. 상범의 입에서 그 말이 나왔을 때 나는 꼭지가 돌았다. 녀석을 향해 주먹을 날린다는 게 그만 옆에 서 있던 그 애의 턱을 쳐서 목걸이를 망가뜨리고 말았다. 표정 하나 흐트러지지 않은 채 돌아서는 그 애에게 끝내 미안하다는 말은 하지 못했다. 다음 날부터 그 애가 학교에 오지 않았다. 벌써 일주일째 되었다. 아이들은 성스러운 그녀에게 린치를 가했으니 그 애가 학교에 오는 날이 곧 내 장례를 치르는 날이 될 거라고 입방아를 찧어댔다. 그 일로 내가 더 비참해진 것은 두말 할 것도 없었다.

  그 모든 치욕과 환란으로부터 나를 구원해주는 사람은 옆방에 사는 창희 누나였다. 우리가 이사 오기 전까지는 회사에 다녔다는데 무슨 이유인지 그만두고 문신 기술을 배운다며 엄마를 따라다녔다. 기술을 배워서 돈을 많이 벌 거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그러나 그것은 내가 여자 친구를 사귀는 것만큼이나 요원한 일이고, 어쩌면 영원히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 일을 몇 년 동안 해온 엄마가 한 달 동안 버는 돈은 우리학교에 첫 발령을 받은 선생님 월급의 반에도 못 미쳤다. 게다가 창희 누나는 시도 때도 없이 값비싼 화장품과 짝퉁가방, 블링블링한 하이힐과 장단지에 꽉 끼는 부츠를 사들이는 터에 카드 값 갚기도 바빴다. 또 걸핏하면, 친구들과 클럽에 다니면서 술을 마셨다. 누나의 몸에서는 담배냄새와 향수냄새가 뒤섞여 야릇한 향기가 났다. 바로 그 냄새가 나의 욕망을 자극했다.

  술에 취해 풀어진 눈으로 누나가 불쑥 방문을 열고 들어와 우리 꼬맹이 아직 안 잤쪄? 하면서 내 볼에 쪽 소리가 나게 뽀뽀를 하면 내 몸은 석고상이 되어버렸다. 누나에 대한 내 감정은 막연한 동경에 가까운 것이었다. 하루는 쌍코피가 터졌고 마침 옆에 있던 누나가 내 머리를 안고 휴지로 코를 막아주었다. 누나의 손이 내 머리에 닿는 순간 몸이 나른해졌다. 나는 코피가 그치지 않기를 바라면서 누나가 어떤 팬티를 입었을까 상상했다. 가까이서 보니까 더 잘생겼네. 그 말은 그때까지 들어온 말 중에 가장 기분 좋은 말이었다. 이성으로부터 처음 들어본 말이기도 했다. 그날 이후 누나는 성장기 영양공급을 핑계로 우유나 과자부스러기를 들고 내 방에 자주 들어왔다. 고마운 코피! 이따금 누나의 친구들이 누나를 찾아오기도 했는데 그녀들은 담배를 피우고 껌을 짝짝 씹었다. 하나같이 가슴골이 드러나는 티셔츠에 눈에는 가짜 속눈썹을 붙이거나 아이라인과 마스카라를 떡칠했다. 엄마는 귀신도 도망칠 날라리들이라며 질색했지만 나는 누나들이 싫지 않았다. 그녀들은 나를 아주 귀여워해주었을 뿐만 아니라 키스할 때 혀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알려주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감히 누나와 키스할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런데 운명처럼 그 일이 찾아왔다. 누나에게 빌린 만화책을 돌려주러 갔다가 누나가 샤워하는 걸 보게 된 것이다. 너, 한 번만 더 그랬다가는 죽을 줄 알아! 누나가 성난 고양이처럼 크릉댔고 나는 만화책을 손에 쥔 채 도망치듯 누나 방을 나왔다. 그 후 누나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나를 대했지만 나는 방금 쪄낸 호빵처럼 봉긋한 누나의 가슴이 떠올라 얼굴이 홧홧 달아올랐다. 매일 밤 누나의 몽실한 가슴에 안겨 잠드는 고양이 인형이 되고 싶었다. 아니다, 아니다 하면서도 밤마다 벌거벗은 누나를 생각을 하면서 번데기를 주물럭거리게 되었다. 그때만큼은 번데기마저도 사랑스러웠다. 그렇다. 욕망이란 한번 시작되면 멈출 수 없는 것이다.

  “꼬맹이 일찍 왔네. 시험기간이랬지?”

  꼬맹이라는 말에 살짝 자존심이 상하기도 했고 누나와 대면하는 것이 머쓱해서 나는 얼른 돌아섰다.

  “시험 끝나는 날 누나가 그거 해줄까? 엄마 관광 가신다던데.”

  뭘 해준다는 거지? 설마, 고래는 아니겠지? 그럼 뭔가?

  “네가 무슨 생각하고 있는지 다 알아. 대신, 엄마한테는 비밀이다. 안 그러면 우리 둘 다 끝장이니까.”

  엄마한테 들키면 끝장날 비밀이라면, 혹시 키스? 누나도 나랑 키스를 하고 싶었다는 것인가. 꿈에라도 생각지 못한 것이지만 꿈에서도 바라던 바였다. 하지만 막상 누나가 이렇게 나오니까 두려움이 앞섰다.

  “왜, 싫어?”

  혹시나 했는데, 이제 모든 것이 확실해졌다. 누나도 역시 그걸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아니, 저…….”

  “오케이. 그럼 그렇게 알고 있을 테니까 혹시라도 생각 바뀌면 얘기해."

  도깨비에게라도 홀린 기분이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상상도 못했던 일이었는데, 내가 더 이상 코흘리개 소년이 아니라는 것을 누나도 인정한 거였다. 나도 이 일을 약진의 발판으로 삼아 내 남성의 미래를 공고히 해야 하리.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겁도 나고 마음의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굴러들어온 복을 걷어차다니, 바보 아냐? 수학여행 때의 굴욕을 벌써 잊었냐고?

  그래,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부딪쳐 보는 거다.

  그나저나 누나는 처음이 아닐 텐데, 이 일을 어쩐다지? 고수들한테 도움을 청할 수도 없는 일이고.

  뜻이 있는 곳에 길은 있는 법이었다. 시험 기간 내내 나는 엄마의 주민등록번호를 도용해서 야동을 보며 기술을 배우고 익혔다. 그야말로 야리야리동동! 덕분에 성적은 바닥을 쳤다. 지금 그깟 성적 따위가 다 무언가. 시험이야 또 볼 것이고 다음에 만회하면 될 거였다. 진짜 문제는 고래였다. 엄마와 사생결단을 내서라도 고래를 잡았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것이 후회되었다.

  고난과 갈등 속에서도 드디어 결전의 날은 오고야 말았다. 사우나에 들러 목욕재계를 하면서도 가슴은 계속 울렁거렸다.

  “누워봐.”

  거사를 도모하기에는 너무 이른 시간이고 밖이 너무 환했다. 커튼이라도 쳐야 하지 않을까. 아니, 기왕 하는 건데 꼭 어두울 필요도 없지. 마치 이 순간을 위해 여태 살아온 것만 같았다. 누나의 숨소리가 제법 크게 들려왔다.

  “처음이라 그런지 은근 긴장되네.”

  거짓말!

  “선이 굵어서 조금만 해도 되겠다. 따가워도 참아.”

  참을 수 있다 뿐인가. 사나이 역사를 새로 쓰는 순간인데.

  “남자는 뭐니 뭐니 해도 눈썹이 생명이야.”

  이건 또 무슨 말인가?

  누나가 뜸을 들이는 것도 그렇고, 왠지 느낌이 이상했다. 눈을 떠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하는데도 눈이 절로 떠졌다. 눈을 뜨는 순간, 기막힌 장면이 펼쳐져 있었다. 엄마가 일 나갈 때 쓰는 가방과 도구들…….

  수학여행 때와는 또 다른 모멸감, 완패당한 기분이었다. 누나가 밉고 얼굴도 보기 싫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방 안에 틀어박혔다. 누나도 무슨 일이 있는지 매일 늦게 들어와서 서로 마주치는 일이 없었다. 그렇게 닷새가 지났다.

  대문을 들어서는데 오늘따라 집안 공기가 이상했다. 아니나 다를까, 누나의 방에서 낯선 남자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아니, 고양이 울음소리의 주인공은 누나였다. 나는 안절부절못하고 누나 방 앞을 서성거렸다.

  갑자기 방문이 열리고 누나의 목소리가 들렸다.

  “꼬맹이, 왔니?”

  나는 대답도 하지 않고 대문을 뛰쳐나왔다. 담벼락을 발로 차보았지만 끓어오른 속은 좀체 가라앉지 않았다. 땅이 점점 꺼지는 느낌, 어둡고 낯선 길을 혼자서 걸어가야 할 것 같은 막막함. 햇볕은 따갑고 뺨은 달아올랐다. 이마에서 땀이 흘러내렸다. 눈에 뭐가 들어간 것처럼 눈을 바로 뜰 수도 없었다. 내 삶이 걷잡을 수 없이 먼 곳으로 흘러가버릴 것 같은 느낌, 무엇보다 그것이 아주 오래 계속될 거라는 두려움과 불안이 나를 휘감아왔다.

  그것은 곧바로 현실로 드러났다. 누나를 찾아왔던 남자가 아예 누나 방에 눌러앉아버린 것이다. 나는 학교에서 돌아오면 매일 가방만 던져놓고 집을 나왔다. 지금이라도 그 남자가 떠나주기만 하면 누나를 용서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니, 할 수만 있다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때로 돌아가고 싶었다.

  토요일, 아침부터 날이 꾸물꾸물했다. 날씨는 우울한 마음을 부추겼다. 무작정 집을 나와 하염없이 걷다가 레코드 가게 앞을 지나쳤다. ‘kiss and say goodbay’ 걸음을 멈추고 음악에 사로잡혀 있는데 누군가 내 팔짱을 끼었다.

  누나? 기적이 일어난 걸까.

  기대는 어이없이 무너졌다. 내 앞에 서 있는 사람은 누나가 아니라 동정녀 마리아였다.

  “나랑 얘기 좀 할래?”

  그 애는 내 눈길을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그 눈빛에 거절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 그러지 뭐.”

  “뭐 안 좋은 일이라도 있어?”

  “아, 아니.”

  “네 얼굴에 쓰여 있는데?”

  “아무것도 아니라니까.”

  “실연당했구나?”

  나는 그 애를 외면하고 걸음에 속도를 냈다. 한참 걷다 돌아보니 그 애가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내가 되돌아가지 않으면 울음을 터뜨릴 것만 같은 표정이었다.

  금방 비가 쏟아질 것처럼 하늘이 컴컴했다. 나는 얼떨결에 그 애가 이끄는 대로 따라갔다.

  얼마나 걸었을까. 비가 쏟아졌다. 순식간에 머리가 젖어 눈을 가렸다. 그 애의 흰색 남방이 몸에 달라붙어 몸의 실루엣이 드러났다. 그 애가 몸을 떨며 웅크렸다.

  “저기.”

  그 애가 낡은 창고 같은 곳을 가리켰다.

  “아지트야. 가끔 애들이랑 춤추고 놀아.” 

  그 애와 나는 살금살금 안으로 들어갔다. 곧 실내가 환해지고 음악이 흘러나왔다. 겉에서 본 것과는 달리 안은 꽤 넓고 정돈되어 있었다. 그 애가 나를 바라보았다. 나도 그 애의 푸른 눈동자를 마주 바라보았다.

  “예전에도 넌 날 그렇게 바라봤지.”

  “내가? 그거야 뭐 네가 예뻤으니까.”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말인데 왠지 좀 멋쩍었다. 그 애는 무슨 말인가 더 하려다 말고 잠깐만, 하더니 한가운데로 뛰어갔다. 한참 고개를 위로 향한 채 몸을 오므리고 있다가 느릿느릿 움직이더니 갑자기 날아오를 듯이 양팔을 벌렸다. 순간, 음악이 휘몰아치고 그 애가 공중으로 둥둥 떠올랐다.

  백조! 나는 완전히 얼이 나가버렸다. 내 눈만이 그 애가 움직이는 방향을 따라 회전을 계속할 뿐이었다. 너울너울 날개를 펴고 그 애가 나에게로 다가왔다. 길게 손을 뻗어 나를 일으켜 세우고는 깃털 속에 품어 안았다. 그 애의 몸은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보드라운 손의 감촉은 이내 통통 튀는 음악의 선율을 타고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등줄기가 짜릿하고 다리가 후들거렸다. 나는 기어이 그 자리에 주저앉아버렸다.

  “너한테 꼭 한번 보여주고 싶었어.”

  가슴속에서 무언가 뜨거운 것이 차올랐다. 무슨 말인가 해야 할 것 같은데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그 애가 내 이마에 흘러내린 머리칼을 뒤로 넘겨주었다. 가느다란 엄지손가락이 내 눈썹을 어루만지고 볼을 지나 입술로 내려왔다. 내 입술은 얼어붙었다. 그 애에게서 아기분 냄새가 났다. 그 애가 내 손을 자기 가슴에 가져다 대었다. 복숭아! 나는 그 애를 힘껏 끌어안았다. 숨이 멎을 것 같은 순간, 그 애와 나의 숨이 하나가 되었다.

  음악은 계속되고, 그 애의 손이 스치는 곳마다 내 몸에서 불꽃이 일어났다. 그 애의 손이 내 배꼽에서 바지 속으로 내려올지도 모른다 생각하니 절로 움찔했다. 번데기, 내가 아직 번데기라는 것을 그 애가 확인하게 할 수는 없었다. 나는 그 애에게서 떨어지려고 했지만 이미 그 애가 나를 장악하고 있었다.

  그 애가 내 이마와 볼에 키스를 했다. 나는 어지러움을 느끼며 그 애의 가슴을 더듬었다. 그 애가 리듬에 맞춰 몸을 움직였다. 느리고 부드러운 춤, 그 움직임이 나를 몽환의 세계로 이끌고 내 몸을 계속 자라게 만들었다. 눈앞은 온통 붉은 빛이었다. 나는 그 빛 속으로 빨려 들어가 영영 나오지 못할 것 같았다. 내 몸속의 불꽃들이 한데 뭉쳐 거대한 기둥을 이루며 타올랐다. 세상은 폭발 직전이었다. 천둥번개가 치고 곧 벼락이 내 머리를 덮칠 거였다. 몸이 덜덜 떨렸다.

  갑자기 밖이 시끌벅적했다. 핫팬츠를 입은 여자애들이 몰려오는 것이 보였다.

  “춤 연습하러 오는 애들이야.”

  여자애들은 순식간에 일렬로 정렬해서 망아지처럼 엉덩이를 쳐들고 뛰기 시작했다.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마룻바닥이 들썩거렸다. 앞으로 뒤로, 위로 아래로…….

  밖으로 나오는 내내 내 몸은 공중을 부유했다. 우리를 따라오던 경쾌한 음악소리가 멎었을 즈음 그 애가 걸음을 멈췄다.

  “그땐 정말 고마웠어. 네가 아니었더라면……”

  그 애가 돌아서며 말했다. 나는 그 말의 의미를 알아채지 못했다. 다만, 내가 붙잡지 않으면 그 애가 멀리 달아나버릴 것 같았다.

  “내일 학교에 올 거니?”

  사귀자, 는 말을 하고 싶었는데 엉뚱한 말이 튀어나왔다. 그 애는 입술을 꼭 다문 채 내 눈을 뚫어지게 바라보고는 돌아섰다. 그 애를 따라가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나는 꼼짝 못하고 그 자리에 붙박여 있었다. 유학 수속 중이야. 그 애의 목소리가 성당의 종소리처럼 울려 퍼졌다. 물에 빠지지 않으려고 버둥거리는 백조 말야, 그게 나였어. 그런데 네가 나를 견디게 해주었어. 네가 나를 바라봐준 그 순간부터 너는 줄곧 내 마음속에 있었으니까. 나는 비로소 그 애가 나에게 고맙다고 한 말의 의미를 깨달았다. 초등학교 시절 나는 그 애의 춤추는 모습을 보려고 틈만 나면 강당 창문에 매달렸다. 한번은 그 애가 체육선생에게 안겨 있었는데 나와 눈이 마주쳤을 때 그 애는 공포에 떨고 있었다. 그 순간 나는 창문을 떠나서는 안 된다는 것을 직감했다.

  예리한 파편이 가슴을 저미는 통증이 왔다. 이전까지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감정. 아니, 그것은 그 애를 처음 바라보았던 순간부터 내 안에 자리 잡은 것이었다. 통증이 온몸으로 퍼져나가는 동안 나는 그 애를 다시 보지 못할 거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내 몸이 전과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새 빗줄기는 가늘어졌다. 톡톡톡 빗방울이 이마에 부딪쳤다 미끄러져 내렸다. 나는 주먹을 불끈 쥐고 앞을 향해 달렸다.

 

 

작가소개


김혜정(소설가)


여수에서 태어나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을 졸업했다. 1996년 문화일보 신춘문예에 단편「비디오가게 남자」가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고, 장편소설 『달의 문(門)』으로 ‘제15회 서라벌문학상 신인상’을 받았다. 소설집 『복어가 배를 부풀리는 까닭은』, 『바람의 집』, 『수상한 이웃』이 있고, 장편소설 『독립명랑소녀』로 ‘2010 간행물윤리위원회 우수 청소년 저작상’을 받았다. 현재 경기국제통상고등학교에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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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광대다

청소년 테마소설 세상 속으로 5회 나는 광대다 장정희 땡~ 산조 가락이 자진모리의 클라이맥스 지점을 향해 막 솟구쳐 오르던 순간이었다. 힘차게 튀어 올랐던 태섭의 손가락이 땡, 소리와 함께 대금 위에서 조용히 잦아들었다. 숨죽일 듯한 적막이 찾아왔다. 적막은 짧았지만 숨결은 뜨거웠다. 태섭은 입술에 대고 있던 대금을 내려놓고 심사관들을 향해 앉은 채로 깊이 허리를 숙였다. 그러고는 방석 옆에 놓여 있던 정악대금을 함께 챙겨든 후 뒷걸음질 치듯 천천히 수험실을 빠져나왔다. 문을 열자 진행요원이 문틈에 귀를 대고 있다가 화들짝 뒤로 물러났다. 다음 순번의 수험생이 잔뜩 긴장한 얼굴로 들어갔다. 태섭은 대기실 의자에 나란히 앉아 순서를 기다리는 창백한 얼굴들을 힐끗거리며 복도로 나왔다. 복도는 바닥에 주저앉아 삑삑삑 불어대고 있는 대기자들의 연주 소리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건물 밖으로 빠져나오자 벌겋게 달아올라 있던 태섭의 얼굴에 찬물을 끼얹듯 바람이 달려들었다. 태섭은 곧바로 담배를 꺼내 물었다. 목 언저리가 뻐근했다. 대금 연주자들에게 목 디스크는 숙명이라지 않는가. 태섭이 고개를 좌우로 젖히자 뼈마디에서 우두둑 소리가 났다. 태섭은 담배를 힘껏 빨아들였다. 비로소 딱딱하게 굳어있던 입술의 감각이 살아남을 느꼈다. 태섭은 습관처럼 입술의 아랫부분을 문질렀다. 취구가 닿는 아랫입술 언저리는 피딱지가 떨어질 날이 없어 거무스름하게 변색되어 버렸다. 누구든 그 부위에 거무죽죽한 흔적을 갖고 있다면 그는 대금 연주자일 것이다. 태섭은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으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드디어 끝났어! 해가 기울면서 날은 더욱 쌀쌀해졌지만 아직 눈이 내릴 기색은 없었다. 이제 겨울은 곧 시작될 것이다. 수시 모집은 대학 입시의 첫머리일 뿐 영광과 회한의 경계를 가를 때까지 입시생들의 겨울은 계속될 것이다. 태섭은 가방에 넣어두었던 휴대폰을 꺼냈다. 전원을 켜자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문자와 콜이 쏟아졌다. ‘물론 시험은 잘 봤겠지? 네가 떨어지면 붙을 놈 누가 있냐?’ ‘빨랑 내려오기나 해. 얼굴 잊어버리겠다.’ ‘오늘 수시 봤던 놈들까지 다 올 거야.’ ‘끝나면 곧장 전화해. 안 하면 죽어!’ 태섭은 휴대폰을 그대로 가방에 던져 넣고는 정문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긴장이 풀린 탓인지 걷기조차 힘이 들었다. 캠퍼스를 가로지르는 동안, 남녀 대학생들이 삼삼오오 이야기를 나누며 태섭의 곁을 스쳐갔다. 이곳은 2년 전 캠퍼스 투어로 와 본 이후 두 번째다. 캠퍼스 투어는 태섭의 열망에 더욱 불을 지펴 놓았다. 와 봐야 새로울 것도 없다는 듯 나른한 표정으로 걷고 있는 대학생들이 부러웠다. 목표물을 손안에 얻은 사람만의 여유랄까. 나도 저들처럼 심상한 표정으로 이 캠퍼스를 활보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지하철을 기다리고 있는데 연이어 두 번이나 전화가 왔다. 엄마다. 일이 손에 잡히지

  • 웹관리자
  • 2012-10-27
고양이의 안부를 묻다

청소년 테마소설 세상 속으로 _ 제4회 고양이의 안부를 묻다 이성아 소녀는 고양이를 안고 있었다. 물방울이 맺힌 소녀의 머리카락에서는 샴푸 냄새가 은은하게 풍겼고, 고양이도 막 목욕을 마친 듯 털이 보송보송했다. 보송보송한 털의 유혹이 너무나 강렬해 나도 모르게 쓰다듬을 뻔했다. 소녀는 나와 또래처럼 보였다. 그러나 우리는 말이 통하지 않는 이국의 사람들처럼 어색했다. 아파트 하수구 관이 막혔는데, 지금은 밤중이라 공사를 할 수 없으니 아침에 공사할 때까지 물을 버리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이 지구 반대편의 언어라도 되는 듯 나를 바라보는 소녀의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이 없었다. 소녀는 나보다는 고양이와 더 잘 통하는 것 같았다. “고양이는 영물이야. 공연히 곁을 주면 나중에 해꼬지나 당한다니까.” 아줌마가 내게 하던 말이다. 고양이는 소녀의 품에서 나를 쏘아보고 있었다. 고양이에게조차 수모를 당한 듯 명치끝이 짜르르 아려왔다. 나에게도 고양이가 있었다. 높은 담을 사뿐히 뛰어올라 얼음사니처럼 우아하게 걸어 다니던 고양이에게 나는 다미란 이름을 붙여주었다. 음식물 찌꺼기를 모아두었다가 다미에게 주면 아줌마는 소리를 꽥 질렀다. “고양이 밥 주지 말란께. 야가 뭔 똥고집이래.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들을까이.” 식당 알바는 힘들었다. 처음엔 청소하고 설거지나 하면 된다고 하더니 술손님들이 많으면 서빙에서부터 고기 잘라 주는 일까지 이것저것 가릴 여유가 없었다. 취한 남자들이 희번덕거리는 눈으로 아래위를 훑어보거나 손이며 엉덩이를 쓰다듬으려고 할 땐 온 몸의 솜털이 다 곤두서고 구역질이 나오려고 했다. 그것보다 더 견디기 힘든 건 기차 화통을 삶아먹은 것 같은 아줌마의 목청이었다. 내 평생 목소리가 그렇게 큰 사람은 처음이었다. 고작 17년밖에 안 산 내가 평생이란 말을 쓰긴 좀 그렇지만, 아마 평생을 곱절로 살아도 그렇게 목청이 큰 사람은 만날 것 같지 않았다. 별 것 아닌 일에도 아줌마는 고함을 질러댔다. 간혹 뭔가 날아가기도 했다. 신기하게도 깨지는 건 하나도 없었다. 양은냄비나 플라스틱 바가지, 물통이나 양푼, 철판 뒤집개나 슬리퍼 같은 것들이었다. 나는 살얼음판 위를 걸어 다니는 것처럼 조심스럽게 일했다. 수돗물을 세게 틀면 안 되고, 설거지할 때 개수대 밖으로 물이 튀면 미끄러지므로 안 되고, 식탁은 젖은 행주로 닦은 다음 반드시 마른 행주로 닦아야 하고, 기름 묻은 그릇은 오래 두면 안 되고, 안 되는 것은 셀 수도 없이 많았다. 걸을 때 엉덩이를 흔들어도, 무표정해도, 큰 소리로 웃어도 아줌마는 고함을 질렀다. 내가 아무리 조심해도 화낼 일은 얼마든지 있었다. 많이 나온 전기세와 갑자기 오른 임대료, 갑자기 쏟아지는 비, 햇빛이 들이치는 창, 똥 마려운 것처럼 끙끙거리는 개새끼, 시끄러운 오토바이소리, 그리고 뭘 해도 마음에 안 드는 생선 구잇집 아줌마. 소정은 아줌마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한 번도 물어보지 않았지만

  • 웹관리자
  • 2012-10-16
단 한 번의 기회

청소년 테마소설 성취와 좌절_제4회 단 한 번의 기회 이명랑 자식을 바꿀 수 있을까? 나라면…… 절대로 바꿀 수 없다. 그러나 아빠, 엄마라면? 나는 빠르게 주위를 훑어본다. 운동장을 둥글게 에워싼 광장식 계단을 꽉 메운 사람들. 대부분 오늘 테스트에 임하는 아이를 자녀로 둔 부모들이다. 열심히 자녀들을 응원하는 어른들 사이에서 나는 아빠, 엄마를 찾아 두리번거린다. 아무리 찾아도 없다고 생각한 순간, 차가운 은빛으로 빛나는 안경이 눈에 들어온다. 아빠다. 아빠 옆으로 엄마와 할아버지, 할머니도 앉아 계신다. 컥, 숨이 막힌다. 우리 가족이 앉아 있는 곳을 확인하자마자 누군가 목을 조르는 것처럼 숨이 막혀온다. 흰 현수막 위에 금빛으로 화려하게 새겨진 글자들이 시야를 가득 메운다. VIP. 금빛으로 빛나는 VIP라는 글자들 옆으로 봉황 두 마리가 이제 곧 하늘을 향해 날아오를 듯이 날개를 펼치고 있다. 그 활짝 편 날개 옆에 우리 가족은 앉아 있다. 비좁은 자리에 앉아 서로 어깨를 부대끼며 자식들을 응원하다 말고 어른들은 가끔씩 VIP석을 곁눈질한다. 대놓고 쳐다보지는 못하지만 이따금 VIP석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훔쳐 보는 사람들의 눈에는 부러움과 질투심이 묘하게 뒤섞여 있다. 저기 앉아 있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지? 얼마나 돈을 많이 벌어야 VIP석에 앉을 수 있는 거야? 아들아! 봤지? 네 눈에도 저기 VIP석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보이지? 너만이라도 제발 저 자리에 앉아다오! 사람들이 던지는 수많은 물음표들과 느낌표들을 아무렇지 않게 상대하며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있는 아빠와 엄마. 그리고 그 옆에서 아빠, 엄마보다 더 태연하게 발밑의 사람들을 내려다보는 할아버지와 할머니. 바로 내 가족이다. 어른이 되면 나도 저 자리에 앉을 수 있을까? 앞으로도 나는 우리 가족의 일원일 수 있을까? “자! 전원 출발선 앞으로!” 사회자가 붉은 깃발을 번쩍 들어올린다. 와─ 하는 함성과 함께 수많은 아이들이 출발선 앞으로 달려간다. 나도 질세라 뛰어간다. 시작이 절반이다, 라고 아빠는 늘 말한다. 맞는 말이다. 시작에서부터 뒤처지면 절대로 따라잡을 수 없다. 나는 내 앞을 가로막고 달리는 아이들 두, 세 명을 어깨로 밀치며 앞으로 뛰어간다. 누군가 내가 했던 방식과 똑같은 방식으로 내 어깨를 밀치고는 빠르게 내 앞을 스치고 달려 나간다. 나보다 머리 하나는 키가 큰 녀석이다. 누가 너 따위에게 질 줄 알고! 나는 어금니를 악문다. 간신히 내 어깨를 치고 달려간 녀석보다 한 발 앞서 출발선 앞에 도착했다. 다행히 정중앙이다. “모두 집중! 첫 번째 미션이다! 참가 인원은 모두 100명, 카트는 50개! 먼저 뛰어가 카트를 잡는 사람만이 장을 볼 수 있다!” 순식간에 사회자의 설명이 끝났다. 사회자는 번쩍 들어 올렸던 붉은 깃발을 밑으로 내리고 출발선 앞에 서 있는 아

  • 웹관리자
  • 2012-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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