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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면 삼키고 쓰면 글이다] 마지막화 : 문학 살롱 초고, 술과 문학 / 서재진 시인, 정성우 소설가

  • 작성일 2023-06-01
  • 조회수 1,282

문학살롱 초고, 술과 문학

서재진, 정성우


- 들어가며

   혼자 마시는 술이 간절한 날이 있다. 조용한 공간에서 괜찮은 술을 한 잔 마시며 하염없이 책에 빠져들거나 공간이 주는 분위기에 젖어들고 싶은 그런 날 말이다. 문학살롱 초고는 좋은 술, 책, 분위기 셋 모두를 갖춘 곳이다. 어쩌면 당신은 평생 그곳에서 살고 싶어질 수도 있다.
   입구에는 섹슈얼 헬스 케어 브랜드인 체레미 마카와 일러스트레이터 규하나가 협업한 “SAFE DISTANCE FOR EVERYONE!”의 포스터가 붙어 있다. 포스터 모서리의 QR 코드를 인식하면 현재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의 사이트가 나온다. 위생적이고 안전한 사랑을 목표로 하는 그 프로젝트의 포스터와 함께, 더 안쪽에는 청소년도 구매할 수 있는 콘돔 자판기가 있었다. 요 2개월 동안의 주제를 안전한 성으로 잡아 『섹스할 권리』 등의 책이 벽에 놓여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 전시물들을 보며 안전함을 느꼈다. 내가 어떤 사람이든, 어떤 것을 지향하든 그것이 옳은 방향이기만 하다면 이 공간 안에서는 안전하게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편안해졌다. 공간 안은 그리 밝지 않았으나 책을 읽기에는 무리 없는 조도를 가졌다. 술의 종류는 칵테일을 중심으로 위스키 샷이나 와인 등 여러 가지가 있는데, 우리는 문학을 주제로 하니만큼 문학 칵테일을 마시기로 했다.


탁자위에 음료2잔,여러 책.과자등 이 놓여있음


탁자위에 음료,책,과자가 높여있음


   캣콜링은 독하면서 달콤했는데, 이소호 시인의 시집과 잘 어울리는 맛이었다. 많은 연구 끝에 만들어냈으리라 짐작되는 맛이었다. 『쇼코의 미소』 역시 장미 향이 감돌았고 장미 꽃잎이 띄워져 있어 선하고 다정한 책과 잘 어울렸다.
   가만히 앉아 대낮부터 대화를 나누며 술을 마시고 있자니 술과 문학의 관계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술을 마시다 문득 떠오른 시상을 휴대전화 메모장에 적어 놓거나 글을 쓰다 막히면 냅다 술을 마시러 나갔던 일들이 있다. 그런가 하면 술을 마시며 책을 읽은 적도 있고 말이다. 그뿐인가, 한시 중에는 술과 음식을 소재로 다룬 것들이 있고 조선 시대 즈음의 선비들이 시를 짓지 못하면 술을 한 잔 마셔야 했다는 포석정은 이미 유명하다. 이처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인 문학과 술에 대해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 서재진

   술을 마실 때는 모든 근심과 걱정을 뒤로 미뤄 두는 기분이다. 완전히 잊는 것은 아니고, 단지 뒤로 미뤄 두기만 할 뿐이다. 요즘에는 만화책을 읽으며 술을 마시는데 어제는 허영만 화백의 『타짜』 4부, 「벨제붑의 노래」를 전부 읽었다. 몇 년 전부터 계속 시도했다가 첫 권에서 나가떨어진 부다. 1, 2, 3부 모두 즐겁게 읽었음에도 4부에서만 계속 실패했다. 그러다 어제 결국 다 읽었다. 이걸 술의 힘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까?
   문학살롱 초고에 앉아 있으면서 언젠가의 기억을 떠올렸다. 집 근처의, 싼 게 장점인 칵테일 바에 앉아 임솔아 작가의 『최선의 삶』을 다시 읽었던 기억이다. 두 번째였는지, 세 번째였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나는 그 책을 워낙 좋아하니까. 싼 가격 탓에 시럽 맛이 잔뜩 나는 피치 크러시에다 감자튀김을 하나 시켜 놓고 디스코 조명과 촛불이 뒤섞인 난잡한 빛 아래에서 그 책을 또 읽었다. 즐거웠다.
   최악이 되지 않기 위해 또 다른 최악을 선택한 강이처럼 나는 자꾸 다른 악을 선택한다. 그것이 최악이든 차악이든 좋다는 마음으로 선택한다. 더 나빠지지 않기 위해 자꾸만 나빠지는 쪽을 선택하는 것은 이토 준지의 만화 중 「사거리의 미소년」 에피소드 중 하나와도 비슷하다. 고민을 만들지 않기 위해서는 더 큰 고민을 만들면 된다는 말처럼 나는 계속해서 나빠지길 선택하고 있다.
   술을 마시는 게 나에겐 그런 일이다. 쓰지 않았다는 말보단 나은, 쓰지 못했다는 핑계를 댈 수 있게 하는 일. 어제는 술에 취해서, 오늘도 아침부터 취해서, 그렇게 말할 수 있도록 하는 일. 최근의 나와 술과 문학을 간신히 연결하자면 그런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그래도 문학살롱 초고에서는 근래 들어 가장 재미있었다. 책의 제목을 따온 칵테일을 마시며 아주 오랜만에 문학에 관한 단상들을 떠올렸으니까.
   일부 사람들에게 술과 문학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라고 가끔 생각한다. 술을 마시며 단상을 떠올리는 사람들도 있고, 단상이 떠오르면 술 마시는 걸 멈추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문학살롱 초고는 쓰기보다는 읽기에 집중한 공간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문학 칵테일을 선택하면 책을 내어주는 것부터 조용한 분위기와 상냥한 접객 태도까지. 칵테일 ‘헤밍웨이’가 없는 건 약간 의외였으나 그런 것쯤 어쨌든 좋다. 취하면 되는 일이다. 술에 취하면 걱정 같은 것은 사라져 버린다. 그것이 최악이든 차악이든 상관없이 일단 지금의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이 어쩌면 술의 역할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 정성우, 술과 문학

   술은 섞어야 제맛이다. 대학교 신입생 시절 동기들과 둘러앉으면 꼭 그렇게 외치곤 했다. A가 막걸리에 검지를 살짝 담근 게 화근이었다. 그가 술을 따라 내게 건네는 모습을 누군가가 지적했다. 이거 안 되겠네, 술은 손맛이라는 거야 뭐야. 물론 장난스러운 핀잔이었으나 A는 상당히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술에 닿은 검지의 면적 또한 의도했다고 보기 어려웠다. 나는 그의 민망함을 덜어 주고자 얼른 술잔을 받아들었다. 하지만 긴 침묵을 깬 그의 반응은 예상과 달랐다. 원래 술은 섞어야 제맛이여. 회심의 반격에 테이블은 웃음바다가 되었다. 손가락 양념의 저의는 이어지는 그의 뻔뻔한 강변에 영영 파묻히고 말았다. 막걸리가 좀 달잖아. 내 손은 꽤 짜거든. 딱 이렇게 먹으면 단짠의 극치지. 이후 술을 따라 건넬 때마다 너도나도 앞다투어 손가락을 담갔다. 술게임으로 넘어가면 과자와 번데기를 빠트리기도 했다. 그런 술잔을 받으면 어김없이 눈살이 찌푸려졌으나 기분이 상하진 않았다. 술이 지저분해지는 만큼 우리는 웃고 깊어졌다.
   나이가 들면서 술에 뭘 타는 게 힘들어졌다. 소맥 한 잔만 마셔도 다음날 뒤통수가 지끈거렸고, 숙취가 심해진 만큼 건강이 염려돼 건더기를 담그는 짓은 상상만 해도 구역질이 솟았다.
   그러던 어느 날 과거의 구호를 5년 만에 들었다. 꽤 과격한 합평 뒤의 술자리였다. 그중 유독 날선 의견을 주고받은 두 사람이 테이블에 마주 앉았다. 당시 나는 모임의 리더여서 어떻게 분위기를 풀어 가야 할지 열심히 머리를 굴렸다. 팔짱을 지르고 안주로 나온 치킨만 노려보는 B와 애써 웃으며 마른침만 쩝쩝 삼키는 C. 소설에 대한 철학도 그들의 자세만큼 달랐다. B는 작가의 개성이 먼저라 여겼고, C는 개성이 중요하다 해도 독자를 무시할 수 없다는 쪽이었다. 그렇게 전혀 타협 없는 냉랭한 테이블 위에 맥주와 소주가 얹혔다. 주변 사람들에게 소주를 마실 건지 맥주를 마실 건지 의사를 묻고 일일이 따르는 중에도 둘은 침묵을 유지했다. 워낙 살얼음판이라 그들에겐 말을 붙이기조차 조심스러웠다. 그러던 중 B가 먼저 팔짱을 풀고 자신의 맥주 컵에 맥주를 따르고 소주 반잔을 섞었다. 물론 술을 누가 따르느냐로 따지는 사람은 없었으나 아무래도 술을 주고받는 분위기였기에 B의 자작은 술자리를 더욱 경직되게 만들었다.
   “저도 소맥 좋아하는데.”
   그런 말을 붙인 인물은 뜻밖에도 C였다. B는 무덤덤한 얼굴로 그래요? 묻곤 C의 잔에 소맥을 말았다. 그들의 공통점을 더 단단히 겯고자 잽싸게 끼어들었다.
   “소맥은 숙취 심하지 않나요?”
   내 물음에 C는 피식 웃었다.
   “몸 걱정할 거면 술을 마시면 안 되죠.”
   B가 고개를 끄덕이며 거들었다.
   “소주는 그냥 먹긴 쓰고. 맥주는 맛은 있는데, 너무 약해요.”
   “그러니까 섞어야 제맛이죠.”
   C가 논리를 완성하고 잔을 내밀었다. 소맥으로 의기투합한 둘은 이후 오랫동안 떠들었다. 비록 둘의 소설 철학이 융화되는 일은 없었지만 취기에서 피어오른 유들유들한 분위기가 서로의 의견에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술을 어떻게 먹어야 맛있는지는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나는 시간이 지날수록 술의 맛보다는 숙취의 유무를 더 따지게 되었다. 그래서 어떤 술이 좋으냐는 질문을 받으면 안 아프게 하는 술이요, 대답하곤 한다. 다만 아무리 무해한 술이라 해도 혼자 마시면 맛이 없다. 소설과 비슷하다. 열심히 썼는데 읽어 줄 독자가 없다면…… 상상만 해도 막막하다. 술은 섞여야 제맛이다.


   - 나가며

   문학살롱 초고는 혼자 가도 민망하지 않은 곳이다. 지하에 있어 외부인과 마주칠 일 없고, 칵테일에 책이 딸려 나와 독서를 목적으로 왔다고 가장할 수 있다. 거기에 취기까지 더하면 혼자만의 작업실만큼이나 편안하다. 그러고 보니 술집에서 책을 읽은 경험이 전무했다. 아무래도 알코올은 집중력에 쥐약이니 책과 술을 섞긴 어려웠을 것이다.
   칵테일을 한 모금 마시고 『쇼코의 미소』를 읽었다. 지치고 힘들 때마다 꺼내 읽던 책이었다. 특유의 다정하고 섬세한 문장을 읽어 내려가다 보면 삶이 그리 헛되지 않았다는 낙관이 가슴에 스며들곤 했다. 단편소설들의 인물을 그리고 또 그리다 보면 작가의 얼굴로 번져 금방이라도 손을 내밀어 줄 것 같았다. 꿈속에서 최은영 작가와 대화를 주고받기도 했다.
   그런 날이 있다. 집으로 돌아가기 싫은 날, 억울하거나 부아가 치미는 일을 누구에게라도 털어놓고 싶은 날, 그러나 쉽사리 연락할 만한 사람이 없는 날. 그런 날에 문학살롱 초고를 방문한다면 허전한 마음이 조금이나마 달래지지 않을까. 술을 마시면서 책을 읽다 보면 어느새 작품 속 인물이 맞은편에 앉아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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