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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면 삼키고 쓰면 글이다] 1화 : 자하문로, 이상과 윤동주.

  • 작성일 2023-02-01
  • 조회수 1,485

 

 

 

자하문로, 이상과 윤동주.

 

 

 


   자하문로 7길


   한파가 들이닥친 12월 말, 우리는 경복궁역 2번 출구에서 만나 서촌 거리를 걸었다. 서촌은 편안한 공간이다. 배고픈 작가들이 한 끼 때울 수 있는 밥집과 그들이 글을 쓸 법한 카페가 도처에 있고, 조금만 빠지면 바로 누군가의 생활공간인 주택과 빌라가 나온다. 거주지에 밀접한 상권이나 규모가 거대하거나 화려하진 않다. 그 소박한 맛에 사람들은 서촌을 찾는 것이리라.
   자하문로 7길. 우리는 고즈넉한 오르막길에서 두 시인의 흔적을 줍고자 했다. 이상과 윤동주. 이상의 집을 둘러보고 윤동주가 하숙하던 집 문을 두드린 뒤 윤동주 문학관에 죽치고 앉아 이야기를 나누기로 일정을 짰다. 아쉽게도 월요일인 당시에 윤동주 문학관은 휴무라 동선을 좁힐 수밖에 없었다.


   이상의 집


   샛길로 빠지지 않고 잘 직진하다 보면 이상의 집이 나온다. 그곳은 우리의 예상보다 작았다. 양편의 연립 절반 높이에 완만하게 얹힌 기와, 내부 조명을 아예 잡아먹어 버린 통유리 벽 선팅. 이상의 집은 폐업한 카페처럼 을씨년스러웠다. 무거운 미닫이 유리문을 열고 들어가면 이상의 흔적이 가득한 공간이 나온다. 이상(李箱), 이상(理想). 조도가 낮은 조명이 따뜻하게 비치는 그 공간은 우리가 익히 들어 온 작가 이상의 이미지와 완전히 같진 않았으나 편안했다.
   천재 작가 이상이 스물여섯에 요절했다는 사실은 많이들 알고 있으리라. 그는 어릴 적부터 그림에 재주가 남달랐다고 하고 고교 시절 졸업사진 속 여장을 한 모습을 보면 위트도 있었던 모양이다. 이상의 글을 읽을 때 드는 이해할 수 없는 느낌, 나아가 거기서 찾아오는 독특한 감상과 이상의 집은 퍽 다른 모습이었다. 의자에 앉아 휴대폰을 만지작대던 관리자가 밍기적밍기적 안내 방송을 틀었다.


   이상이 김연필에게 양자로 오면서 약 20여 년을 살았던 공간으로 생의 대부분을 보냈던 장소이기도 합니다. 이곳 그가 살던 집의 홑창은 이미 오래전에 사라졌고 집터도 여러 필지로 나뉘어 옛 모습은 잃어버렸지만 이상의 숨결이 남아 있는 이 공간은……
   …
   성우의 부드럽고 정중한 설명이 이어지는 동안 우리는 둘로 나뉘어 주변을 둘러봤다. 다섯 평 정도 될 것 같은 안뜰을 디귿 자의 건물이 감싸고 있었다.
   이상의 집은 과연, 이상(李箱)의 집보다는 이상(理想)의 집에 조금 더 가까웠다. 그 따스하고 편안한 분위기에 당황했으나 나름대로 괜찮은 공간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서촌 한복판에 기괴한 건물을 짓기란 힘든 일일 것이다. 그리고 이상이라고 해서 꼭 기묘하고 튀는 느낌이 있어야 한다는 것도 편견일지 모르겠다.
   통유리에 접한 선반에는 이상의 책 표지나 내용 일부를 인쇄한 엽서가 펼쳐져 있었고, 천장을 떠받친 나무 기둥마다 이상의 얼굴이 걸려 있었다. 초상화, 흑백 사진, 그리고 친구인 화가 구본웅이 표현한 이상의 얼굴. 문학사상 창간호 표지였다. 담배를 물고 아래쪽을 비스듬히 흘겨보는 사내. 왠지 여느 사진보다 구본웅의 그림이 더 입체적으로 느껴졌다. 사진에 담긴 이상은 대체로 머리가 풍성하고 눈동자와 흰자의 구별이 어려우며, 턱선이 날렵해 앳되면서도 유약해 보였다. 그러나 구본웅이 표현한 이상은 상대를 깔아 보는 듯한 시선과 초승달처럼 휜 턱, 듬성듬성한 수염 자국, 그리고 연기가 피어오르는 담배가 반항적인 작품 세계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것 같았다. 구본웅의 그림으로 이상의 분위기를 유추하다 보니 생소한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김해경. 이상의 본명이었다. 본명이 따로 있으리라곤 아예 염두에 두지 못했다. 작가로서 한국 문학의 거목의 본명조차 몰랐다는 사실이 부끄러웠다.
   아무튼 구본웅의 그림과 이상의 본명처럼 이상의 이미지를 곱씹게 하는 작품을 최근에 읽었다. 그전까지 접한 『오감도』와 『날개』엔 무기력한 절규가 풀풀 풍겼다. 하지만 문예지 『중앙』에 실린 『내 동생 옥희 보아라』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연인의 손을 잡고 밤도망을 친 막내 여동생 옥희에게 보내는 편지였다.


   팔월 초하룻날 밤차로 너와 네 연인은 떠나는 것처럼 나한테는 그래 놓고 기실은 이튿날 아침차로 가버렸다. 내가 아무리 이 사회에서 또 우리 가정에서 어른 노릇을 못 하는 변변치 못한 인간이라기로서니 그래도 너희들보다야 어른이다.


   이상은 큰오빠인 자신을 속이고 야반도주한 옥희에 대한 서운함으로 운을 뗀다. 이후 험난할 동생의 만주 생활과 슬퍼할 부모님을 걱정한다. 여기까진 이상이 가부장적 장남 역할을 벗어나지 못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분위기는 곧 급변한다.


   부모들도 제 따님들을 옛날 당신네들이 자라나던 시절 따님 대접하듯 했다가는 엉뚱하게 혼이 나실 시대가 왔다. 오빠들이 어림없이 동생을 허명무실하게 취급했다가는 코 떼일 시대다. 나는 그렇게 느꼈다.


   시대의 변화를 느끼고 그에 맞춰 동생을 이해하려 노력한다. 그리고.


   이해 없는 세상에서 나만은 언제라도 니 편인 것을 잊지 마라. 세상은 넓다. 너를 놀라게 할 일도 많겠거니와 또 배울 것도 많으리라. 축하한다.


   이 문구에서 소재를 찾아 작품을 직조하는 작가가 아닌 여동생을 헤아리느라 밤잠을 설치는 오빠의 모습이 그려졌다. 옥희는 26년 후에야 ‘오빠의 그윽한 사랑을 항상 느끼면서도 한 번도 그런 오빠를 이해하는 착한 동생이 못 되었다’라는 답장을 썼다.
   이상의 생전 글을 모두 모으면 이천 편 정도의 어마어마한 양이라는데, 그 글들은 내부의 독특한 책꽂이에 꽂힌 채였고 이상에 대한 영상물이 한쪽 스크린에서 흘러나왔다.
   2층으로 향하는 통로는 계단부터 벽, 천장 모두 새까맸다. 어디선가 주워들은 설명에 따르면 그 어둠은 일제강점의 암울한 현실을 표현한 거였다. 곧 희부윰한 햇살과 시린 바람이 섞여들었다. 난간을 짚고 낙엽이 굴러다니는 자하문로와 비교적 지붕이 낮은 식당과 카페들을 잠시 훑어보고 우리는 이상의 집을 나왔다.


   세종대왕과 한글 간판


   윤동주 하숙집 터로 가는 길에는 여러 가지 공방과 한글 간판이 길을 꾸몄다. 그 소박한 글씨들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무언가가 있다. 정직하게 한글로 표기된 세븐일레븐 편의점을 보며 우리는 소리 내어 웃었고 이런 건 찍어야 한다며 카메라를 들이밀기도 했다.
   월요일이라 그런지 문을 연 가게를 찾기 힘들었다. 우리가 이동한 시간이 식당들의 휴게 시간과 딱 겹쳐 그랬을 수도 있겠다.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붐비는 거리에서 멀어졌고 가게들은 점점 작아졌다. 특이한 것은 삼사 층 정도의 낮은 건물들이 대다수였다. 오래된 피아노 학원이나 철물점, 청결한 향이 나는 세탁소 등 생활감 있는 가게들이 중간중간 튀어나왔다. 환히 보이는 하늘은 깨끗하고 맑았다.
   어째서 서촌 일대는 간판이 전부 한국어인가, 하는 궁금증은 쉽게 풀렸다. 경복궁부터 서촌 일대까지 이어지는 길목은 ‘세종대왕 나신 곳’이라고 한다. 그렇기에 세종대왕의 탄생을 기리며 간판을 한글화하는 움직임이 있었다.
   그러한 한글 간판으로 가득 찬 길은 이상의 집부터 윤동주 하숙집 터까지 이어지는 길들과도 썩 잘 어울렸다. 일제치하에서 글을 쓰며 독립을 간절히 바랐던 이들을 이어 주는 길목에 걸린 한글 간판들은 깔끔하고 직관적이었다. 가게들 역시 소박하고 단정한 맛이 있었다.
   언젠가 꼭, 볼일이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서촌에 오고 싶다고 생각하게 할 만한 길이었다. 관광객으로 붐비고 그저 그런 노점들이 늘어서 있을 거라는 예상과는 판이했다. 어디든 프레임만 있으면 한 폭의 그림처럼 보일 듯한 공간이었다. 오래됐으나 낡지 않은 낮은 건물들과 아름다운 간판들이 그것을 증명하듯 네온사인도 없이 환했다.


   윤동주 하숙집 터


   그렇게 걸어 도착한 윤동주 시인의 하숙집 터는 생각보다 작았으며 빌라가 들어서 있었다. 말 그대로 터였다. 흔적 같은 것이 없이, ‘윤동주 하숙집 터’라는 금속 현판이 벽에 붙어 있었다. 당시 골목이 어떻게 생겼으며 윤동주는 이 집에서 하숙했다, 는 내용이 적힌 판 정도가 하나 있을 따름이었다.
   버스를 타고 십오 분 정도 걸리는 곳에 윤동주 문학관이 있다고 했으나, 우리가 간 날은 휴관일이라 방문이 불가능했다. 하숙집 터를 본 뒤에 문학관까지 관람했다면 아마 느낌이 좀 달랐을 수도 있겠다. 빌라가 들어선 터에서는 윤동주의 정취라거나 그의 시적 세계에 대한 감상 같은 것은 딱히 느껴지지 않았다.
   조금 더 잘 보존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은 한편, 사유지니 개발을 제재하기도 힘들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해방 이전의 국가에서 윤동주가 머물렀던 흔적을 잘 보존했더라면 사람들에게 더 큰 울림을 주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여전히 남아 있다.
   금속제 현판에는 윤동주가 존경하던 소설가 김송 선생의 집이 바로 이곳이었으며, 하숙하는 동안 대표작인 〈별 헤는 밤〉, 〈자화상〉 등이 쓰였다는 내용이 기재되어 있다. 또 옛 하숙집의 모습이 흑백 사진으로 남아 있다. 올라오며 본 한글 간판과 고즈넉한 동네 풍경이 떠올랐다. 윤동주가 서정적인 글을 창작할 당시의 분위기가 지금까지 전해 내려온 듯 보였다. 동네마다 가지는 지문 같은 분위기가 있는 것처럼 그의 하숙집 터 역시 자신만의 손가락을 뚜렷하게 세우고 있었다.


   서촌 가배


   하숙집 터를 관람한 뒤에는 원고를 작성할 만한 분위기의 카페를 찾아 돌아다녔다. 예상했듯 프랜차이즈 카페는 보이지 않았고, 개인 카페가 대다수인 동네의 월요일이라 그런지 문을 연 곳이 쉽게 보이지 않았다. 그 좁은 선택지 속에서 우리는 이름이 마음에 든다는 이유만으로 ‘서촌 가배’에 들어갔다.
   가게 안에는 여러 작가들의 그림이 가득 걸려 있었다. 작은 갤러리에 온 기분이 들었다. 뱅크시와 천경자의 작품(물론 복제품이지만)을 봤다면 믿으시겠는가? 얼마 전 현대 미술관 이건희 컬렉션에서 그녀의 그림을 본 기억이 대번에 떠올랐다. ‘노오란 산책길’이라는 작품이었는데, 며느리를 모델로 그렸다는 스토리가 인상적이어서 오랫동안 고부간의 애정에 대해 골몰하기도 했다.
   뱅크시의 〈쇼핑하는 원시인〉에 대해 사장님은 설명했다.
   “뱅크시가 대영박물관 한켠에 몰래 그린 거예요. 사람들이 한동안 눈치 채지 못해서 어느 날 뱅크시가 박물관에 전화를 걸었대요. 그래서 자신이 그림을 그렸다고 알렸죠. 일반 낙서였다면 곧바로 지웠겠지만, 뱅크시의 그림이니까 벽을 통째로 뜯은 거죠.”
   카페 천장엔 샹들리에가 매달려 있었고 바닥엔 포르투갈풍의 타일이 깔려 있었다. 카페는 작지만 깔끔했고 관리가 잘 되고 있는 티가 났다. 추우면 말씀해 달라는 사장님의 배려가 따뜻했던 것은 당연했고 말이다. 우연인지 맞은편에는 ‘헤르만’이라는 이름의 카페가 있었다. 서촌은 그야말로 예술의 동네였다.


   카페를 나오자 우연찮게도 ‘대오서점’이라는 이름의 이제는 운영하지 않는 낡은 책방을 발견했다.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서점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통유리 너머에는 토지 등의 오래된 판본들이 꽂혀 있었고 ‘방송 촬영 금지’라는 문구가 인상 깊었다. 글로 시작해 그림으로 끝난 하루는 대오서점을 통해 마무리되었다. 경복궁역으로 가는 길목에서 다음에 꼭 다시 와야겠다는 말을 계속해서 반복하며 신나게 웃었을 만큼, 서촌은 소박하나 엄청난 것을 숨긴 곳이었다. 그 시대를 지나온 이상과 윤동주가 있었기에 평화롭고 아름다울 수 있는 공간이었으리라.

 

 

 

서재진
작가소개 / 서재진

2017년도 대산대학문학상 시 부문 당선. 명지대학교 졸업 후 동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재학 중.

정성우
작가소개 / 정성우

2019 《무등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부문 당선. 《문학의 오늘》 2019 가을호 단편소설 「천막」 수록. 글ego 대표 강사.

 

 

 

   《문장웹진 2023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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