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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 웹진》 2022년 기획 연속좌담 ‘읽는 사람’ 3차 : ‘디지털 시대의 독자들’

  • 작성일 2022-11-01
  • 조회수 1,145

[연속좌담]

 

 

《문장 웹진》 2022년 기획 연속좌담 ‘읽는 사람’
3차 ‘디지털 시대의 독자들’

 

 

 

 

 

   ㅇ 회의명 : 《문장웹진》 2022년 기획 연속좌담 ‘읽는 사람’ - 3차
     - 소주제 : 디지털시대의 독자들
   ㅇ 일 시 : 2022년 9월 1일(목) 14:00~16:00
   ㅇ 장 소 : 대학로 공공그라운드 001테라스
   ㅇ 참여자 : 노태훈(문학평론가/사회자), 박선우(소설가/전 문학과지성사 편집자), 변윤제(시인/웹소설 작가), 솔의 서재(북튜버), 보노님(도서 인플루언서 블로그)


   - 독자는 누구일까
   - 독자는 어디에서, 어떻게 읽을까
   - 독자는 어떻게 말할까
   - 독자는, 문학은 달라질까
 

 

 

〈들어가며〉

 

노태훈 :   안녕하세요. 《문장 웹진》 2022년 기획 좌담 ‘읽는 사람’의 세 번째 순서로 ‘디지털 시대의 독자들’ 편을 마련했습니다. 저는 진행을 맡게 된 문학평론가 노태훈이라고 합니다. 각자의 영역에서 활발하게 활동 중인 네 분을 모시게 되었는데요. 한 분씩 자기소개 여쭙고 본격적인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박선우 :   안녕하세요. 저는 소설을 쓰고, 얼마 전까지 한국문학 편집자로 일했던 박선우라고 합니다.

 

변윤제 :   네. 저는 시인이면서 웹소설 작가로 활동 중인 변윤제라고 합니다. 오늘은 두 가지를 동시에 쓰는 창작자로서의 경험을 같이 나눠 보는 자리가 되면 좋겠는데요. 저도 잘 부탁드립니다.

 

홍   솔 :   저는 유튜브에서 ‘솔의 서재’라는 북튜브를 운영 중인 홍솔이라고 합니다.

 

보   노 :   안녕하세요. 저는 ‘북적북적’이라는 온라인 독서 모임을 운영하고 네이버에서 도서 인플루언서로 활동 중인 보노입니다. 반갑습니다.

 

 


〈독자는 누구일까〉

 

노태훈 :   소설가이자 편집자, 시인이자 웹소설 작가, 각종 플랫폼을 통해 활발하게 리뷰 활동을 하시는 북튜버, 블로거 분들을 여기 한 자리에 모시니 다양한 관점에서 독자에 관한 의견을 들어 보자는 기획진의 취지가 엿보이는 듯합니다.
  우선 각자가 생각하는 문학의 독자상에 관해 여쭙고 싶어요. 주변에 책을 좋아하는 분들이 떠오르기도 할 테고, 스스로가 독자이기도 하지만 ‘문학을 읽는 사람’이라고 했을 때 생각하게 되는 이미지랄까요? 연령대, 취향, 직업 등등 뭐든 좋습니다.

 

변윤제 :   저부터 할까요? 저는 아무래도 시를 쓸 때와 웹소설을 쓸 때가 다른데요. 시를 쓸 때는 문예지에 발표하는 경우가 많으니까 시인들, 또는 시를 사랑하는 애독자들이라는 생각을 많이 해요. 웹소설을 쓸 때는 저도 지하철 타면서 웹소설 읽는 분들을 많이 보는데요. 나이대가 거의 30~50대인 독자분들인 것 같아요. 웹소설을 쓸 때는 항상 그 정도 타깃을 생각하며 쓰는 것 같아요. 이분들은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잠깐잠깐 재미있기 위해 글을 읽는 분이라고 생각하고, 웹소설과 시를 쓸 때 서로 다르게 상정하고 쓰는 것 같습니다.

 

노태훈 :   구체적인 독자를 상정하고 각 장르에서 글을 쓰신다고 보면 되겠군요.

 

변윤제 :   네. 그렇죠. 저는 그런 편이에요.

 

박선우 :   저는 보통 쓰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읽는다고 생각해요. 문예창작을 공부하는 사람부터 취미로 시나 소설을 쓰는 사람, 혹은 막연하게 글쓰기 자체에 관심 있는 분들까지 다 문학 독자라고 생각해요. 문학의 경우 원고마다 내용이나 분위기가 달라서 그것에 맞춰 독자를 상정해 볼 수 있을 듯하고요. 어떤 작품이 어떤 독자에게 가닿을 수 있겠다고 막연히 예측하는 정도라 생각합니다. 그 외에 예측할 수 없는 독자들의 출현은 그저 작가분이 유명하고 대외적으로 활발한 활동을 하는 경우, 원고가 지닌 특성이 사회적 이슈와 맞물려 시너지를 일으키는 경우, 혹은 인플루언서나 방송을 통해 책이 노출되는 경우가 있을 듯해요.

 

노태훈 :   아무래도 편집자로 계실 때 특히 이런 걸 예측하고, 어떤 독자들에게 나름대로 어필할 수 있을지 고민을 많이 하셨을 것 같아요. 말씀 들으면서 생각난 게, 주제가 ‘읽는 사람’이긴 하지만 요즘은 그런 이야기도 많이 하잖아요. ‘읽는 사람이 거의 쓰는 사람이다.’ 그걸 넘어서 읽는 사람은 줄어드는데, 쓰는 사람은 오히려 늘어난다는 느낌을 받는다는 얘기를 종종 들어요. 보노 님과 홍솔 님 두 분은 읽는 사람의 역할을 적극적으로 하는 분들이니까 독자와 관련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보   노 :   저는 늦게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책을 읽기 전에는 이런 ‘독자’라는 단어 자체가 저와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책을 안 좋아했거든요. 책을 읽기 시작할 때 독자의 의미는 책을 읽고, 그 책을 리뷰하고, 의사소통하는 사람들, 표현하는 사람들을 독자라고 생각했거든요. 지금은 책을 좀 더 많이 읽고 나니, 독자는 누구나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잠재적 독자, 책을 읽지 않지만 좋아하는 사람도 독자가 될 수 있고, 노래를 못 하지만 노래를 좋아하는 사람들처럼요. 책을 읽지 않지만 책을 좋아하는 사람도 분명 있거든요. 그런 사람들도 잠재적 독자인데, 언제 어디에서 어떤 계기로 책을 읽을지 몰라요. 책을 읽지 않는 사람도 누구나 독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노태훈 :   저는 개인적으로 한국 문학에서 비평 활동을 하는 평론가니까 책을 안 읽다가 갑자기 독자가 되는 그림은 상상하기 힘들거든요. 원래 문학을 좋아하거나, 쓰려고 하거나, 애초에 관계가 있는 일을 하거나 하는 부류가 아닌 경우를 거의 접하지 못해서요. 보노 님께서는 책을 안 좋아하시다가 어떤 계기로 좋아하게 되셨다고 했는데, 어떤 계기인지 궁금합니다.

 

보   노 :   저는 애를 키우면서 주로 애들에게만 책을 읽어 줬습니다. 애들은 책을 가까이하고 많이 읽었으면 하는 바람에서요. 그러면서도 정작 저는 책을 읽지 않았어요. 어느 정도 애들이 크면서 스스로 책을 읽기 시작할 즈음에 남는 시간에 책 읽는 아이들 옆에서 저를 위한 책을 한 권씩 보는 계기로 책을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홍   솔 :   제 구독자님들 중에도 육아하시는 분들이 제일 많아요. 육아에 지쳐 있다가 가끔 아이 데리고 도서관 가는 게 숨 쉴 수 있는 시간이 되면서 책을 시작하신다고 하더라고요.

 

노태훈 :   애들이 크면 조금 여유시간이 생기니까요.

 

보   노 :   맞아요. 애들이 크면서 여유시간이 생기니 재미있는 소설부터 시작해서 점차 문학, 비문학 등 범위를 넓혀 가며 읽게 되더라고요.

 

노태훈 :   아이들 책을 찾고 또 읽어 주면서 나름의 ‘독서력’이 쌓인 상태라 접근하기 쉬운 건 아니었을까요?

 

보   노 :   독서력이라기보다는 책을 가까이한 점? 책을 늘 보니까요.

 

노태훈 :   말씀을 듣고 보니 정말로 누구나 독자가 될 수 있겠다 싶기는 한데요. 솔 님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시는가요?

 

홍   솔 :   앞서 선우 님이 쓰기의 욕구가 읽기로 이어지는 것 같다고 하셨는데 저는 작가의 욕구와 독자의 욕구가 상이하다고 생각해요. 저 같은 경우 읽으면 읽을수록 더 재미있는 책, 좋은 책을 많이 읽고 싶다는 욕구가 강해지는 데 반해 작가님들이 창작의 고통을 표현하신 글을 접하면서 ‘나는 글을 생산하는 사람은 도저히 못 하겠다, 소비만 해야겠다’는 생각이 점점 확고해지더라고요.

 

노태훈 :   그런 고통은 창작자 특유의 ‘허세’ 아닐까요? (웃음)

 

홍   솔 :   그런데 그런 허세도 독자들이 보기에는 너무 멋있고, ‘저런 무게 있는 고뇌를 내가 하는 건 아니다’ 하는 생각을 하는 것 같아요.

 

노태훈 :   읽는 사람과 쓰는 사람의 욕구가 다른 것 같다, 읽는 욕구를 많이 가진 사람이 적극적 독자가 될 가능성이 큰 것 같다는 말씀이시죠?

 

홍   솔 :   네. 제 생각은 그렇습니다.

 

 


〈독자는 어디에서, 어떻게 읽을까〉

 

노태훈 :   다들 비슷한 이야기인 것 같기도 하면서 조금씩 다른 느낌도 있네요. 문학은 누가 읽는지, 내가 생각하는 독자란 어떤 것인지로 물꼬를 텄다면, 본격적으로 이야기해볼 주제는 ‘디지털 시대’라는 키워드입니다. 종이책을 읽는 전통적인 방식의 독서도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반면에 다양한 플랫폼을 통한 책읽기도 꽤 이루어지고 있죠. ‘책’이 아니라 ‘웹’의 텍스트, 또 그런 텍스트를 소비하는 결제/구독 서비스 등 여러 가지 관점에서 이야기가 나올 수 있을 텐데요. 이 부분은 웹소설을 쓰시는 변윤제 님이 여러 흥미로운 이야기를 나눠 주실 수 있을 것 같은데요.

 

변윤제 :   사실 디지털 시대의 읽기라는 주제에 대해 저에게 여쭤 보신 분들이 많아요. 저는 늘 그럴 때마다 생각하는 게, 디지털 시대의 읽기가 PC 통신부터 따지면 30년이 넘은 거예요. 그런데 양상이 달라진 것 같아요. PC 통신상의 소설은 취미 이상의 무언가가 될 수 없었잖아요. 수익 모델이 없었기 때문이죠. 그래서 베스트셀러의 수익은 종이책에서 나왔죠. 그 당시 가장 히트작 중 몇몇은 아직도 연재되고 있어요. 그런데 지금 그 히트작들 중 일부는 수익이 대부분 디지털에서 발생한다고 전해 들었어요. 종이책이 옛날처럼 팔리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장르 소설 자체가 수익이 다 웹으로 건너갔기 때문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작품들은 여전히 종이책을 발간하고 있어요. 수익이 아예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겠죠. 이처럼 디지털 시대의 읽기와 종이책은 공존해서 쭉 가는 것 같아요. 어느 순간 종이책의 전통적인 책 시장에서도 더 수익 모델이 날 것 같다, 웹에서 더 벌 수 있겠다고 판단되는 경우 종이책은 어느 순간 굿즈 개념으로 남게 되고, 디지털에서 소비하는 독자들이 더 많지 않을까 하는 우울한 생각을 가끔 하고 있어요. 저는 종이책을 좋아하니까요. 결국 디지털 시대 얘기라는 건 거스를 수 없지 않나, 수익성을 찾느냐 못 찾느냐 하는 문제가 지금 화두가 아닐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노태훈 :   말씀하셨듯이 예전과는 완전히 반대의 양상, 즉 책이 수익 모델이 되는 게 아니라 굿즈 같은 역할을 한다는 게 큰 변화라고 생각됩니다. 윤제 님께서는 시인이라는 정체성도 가지고 계시니까 시를 웹진 형태로 발간한다든가 하는 일도 있으셨을 것 같아요. 한두 편씩 그렇게 발표할 수도 있겠지만 어떤 형태로 모아서 또 발간할 수 있는 가능성도 있을까요? 이를테면 50편의 시를 웹에 업로드하고, 나름의 방식으로 유통 모델을 만드는 식으로요. 최근에는 시집들이 e-북으로 발간되기도 하지만 어쨌든 종이책의 형태를 변환한 것에 불과하잖아요.

 

변윤제 :   저는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포털 사이트에 제 이름을 치는 걸 좋아하는 편인데, 검색해 보면 제 시는 거의 무료로 공개되어 있거든요. 소설은 길어서 그렇게 하는 경우가 없는데, 시는 블로그 등에 무단으로 퍼가시는 분들이 되게 많아요. 저 같은 신인의 시도 생각보다 많단 말이죠. 그분들은 모두 시를 사랑하는 귀중한 독자들이고, 사실 시를 발췌할 때 돈을 낼 수 있는 플랫폼이나 결제 수단이 있다면 충분히 지불할 의사가 있는 분들이라고 생각해요. 기존 내로라하는 시인분들은 몇 십 페이지 되는 분들도 계시죠. 그게 무단이 아니라 유료로 퍼간 거라면 블로그당 100원만 받아도 얼마를 벌 수 있을까 생각하고요. 그런 것에 대해서는 아직 모색하지 않는 듯합니다. 웹에 대한 가능성은 매우 크다고 생각하는 게, 문예지와 웹진을 비교해 봤을 때 문예지는 사람들이 잘 모르는 경우가 많은데, 웹진에 한 번 정도 실었거든요. 그때 호응이 굉장히 좋았어요. 그건 접근성이 좋기 때문이고, 문예지 같은 경우 도서관에 가거나 구매하지 않으면 보기 힘들잖아요. 웹진에 싣는 경우 검색 한 번 하면 다 나오잖아요. 그런 접근성은 이미 가지고 있으니, 이걸로 어떻게 수익화할 수 있는지 그 방법을 찾으면, 독자분들도 100원 정도면 결제해 주시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긴 들어요.

 

노태훈 :   마치 웹소설 같네요.

 

변윤제 :   그렇죠. 웹소설을 한 회차에 100원씩 파는 것처럼 시를 하나씩 퍼갈 때마다 100원씩 지급하는 그런 시스템이죠.

 

노태훈 :   지금은 문을 닫았지만 ‘던전’ 같은 구독형 문학 사이트도 있었죠. 거기는 조회할 때마다 과금하는 게 아니라, 정기구독 형태로 작품들을 열람할 수 있는 방식이었는데요. 어떤 방향이 더 가능성이 있고 적절해 보이는지 고민도 드네요. 이를테면 ‘밀리의 서재’ 같은 구독 서비스도 있고 ‘윌라’ 등의 오디오북 플랫폼도 있고요. 아마 박선우 님께서는 편집자로 있으면서 그런 다양한 형태의 발간 서비스를 모색해 보셨을 것 같은데요. 플랫폼별로 차이가 있었는지, 결국은 종이책을 옮겨 본 느낌에 불과했을지 궁금합니다.

 

박선우 :   다양한 형태의 독서에 대한 생각은 독자로서의 경험을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제 생각에 독서라는 행위는 그것이 얼마나 누적되었고 숙련되었는지에 따라 다른 경험이 되는 듯해요. 예를 들어 종이책을 읽는 일은 제게 충분히 숙련된 행위이기에 저는 이 과정에서 텍스트를 읽는 데 불편함이나 이질감을 거의 느끼지 못해요. 그렇지만 전자책이나 오디오북의 경우는 그것의 사용 기간이 그리 길지 않기 때문에 텍스트가 조금 덜 와 닿는다거나 덜 흡수된다는 느낌을 받곤 해요. 맥락을 이해하거나 요점을 파악하는 데는 문제가 없지요. 다만 덜 숙련된 행위에서 오는 미묘한 부자연스러움이 있달까요. 특히나 오디오북은 다른 사람이 대신 문장을 읽어 주기에 독서의 속도나 리듬을 그 사람에게 맞추는 과정이 필요해요. 저의 경우는 성우가 대사를 다소 연극적으로 읽으면 집중하기가 어렵더라고요. 내가 생각한 글의 분위기나 온도가 있는데, 그게 전혀 다른 톤으로 읽히면 흥미가 떨어져요. 하지만 전자책이든 오디오북이든 꾸준히 사용하고 익숙해지면 어떤 텍스트든 자연스레 받아들일 수 있게 되리라 생각합니다. 독자들이 종이책 외에도 다른 독서 형식에 숙련되기까지 소요되는 시간이 있을 텐데, 그걸 해당 판매업자들이 고려하여 적응 시간을 줄이는 게 가장 중요한 일 아닐까 싶습니다.

 

노태훈 :   저는 오디오 북 관련해서 말씀하신 성우분의 과도한 톤을 사실 좋아해요. (웃음)

 

보   노 :   저도 텍스트와는 다르게 생생한 느낌이 살아나서 좋아해요.

 

노태훈 :   밋밋하게 읽으면 오히려 집중이 안 되고, 낭독하듯 읽어 주시는 게 좋더라고요. 보노 님은 책 리뷰하실 때 아예 종이책을 안 보시거나 다른 형태로 보신 적 있으세요?

 

보   노 :   저는 종이책을 주로 보고, 지금 전자책과 오디오북을 경험하고 있는 시점이에요.

 

노태훈 :   어떻게 다른가요?

 

보   노 :   제가 느끼는 점은, 종이책은 ‘내가 이 책을 읽고 싶다’ 했을 때 책을 구매하는 과정, 배송되기까지의 기대감이 있잖아요. 또, 서점에 방문해서 직접 구매하는 과정도 책을 읽기 전부터 기분이 좋고요. 종이책은 이런 과정들의 기대치도 반영이 되서 읽을 때 더 좋더라고요. 전자책은 기간을 단축해 주는 게 좋고요. 빨리 읽고 싶은데 배송을 못 기다릴 때 있잖아요.

 

노태훈 :   급하게 필요할 때 유용하기도 하죠.

 

보   노 :   맞아요. 빨리 읽고 싶거나 궁금하면 그 자리에서 구매할 수 있죠. 그런 건 좋아요. 그렇지만 종이책이 옛날보다 배송이 빨라지기도 했잖아요. 책을 좋아하는 독자에게 너무나 좋은 일입니다.

 

홍   솔 :   저도 종이책을 더 좋아하긴 하는데요. 전자책 같은 경우 물리적으로 더 가깝다는 느낌이 있어요. 휴대폰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든 즉각 독서를 시작할 수 있으니까요. 독서하는 분들은 집에 안 읽은 종이책이 쌓여 있더라도 바로 지금 당장 미지의 책을 읽고 싶은 욕구가 늘 있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전자책의 즉시성은 매우 큰 장점이라고 생각해요.

 

보   노 :   신간을 빨리 보고 싶을 때도 있고요.

 

홍   솔 :   맞아요. 구독 서비스에 내가 읽고 싶었던, 관심 있던 신간이 떴을 때의 그 기쁨. 더군다나 저희 동네에는 서점이 없거든요. 오프라인에서 책을 살 수 있는 창구가 없어서 주로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는데, 이런 상황에서 전자책은 제게 너무나도 중요한 서비스예요. 아주 긍정적으로 생각합니다. 바로 읽을 수 있으니까 좋아요. 그런데 전자책을 가장 저렴하고 다양하게 즐길 수 있는 전자책 구독 서비스가 상당히 폐쇄적이어서, 비독자들에게는 불친절하게 느껴질 것 같아요. ‘밀리의 서재’ 같은 경우 회원 가입을 안 하면 그 안에 어떤 책들이 있는지 제대로 파악할 수가 없어요. 전자책 구매 방식도 그래요. 진짜 마음에 드는 책 한 권을 찾기 위해서는 열 번, 스무 번 실패를 거듭해야 하는데, 전자책도 책 한 권에 만 원이 넘잖아요. 책을 좋아하는 분들은 그 비용이 절대 과하지 않다고 생각하실 수 있지만 비독자들은 그 실패 확률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에 기회비용이 부담스러울 정도로 큰 거죠. 그렇다고 전자책 구독 서비스를 이용하려면 매달 만 원을 지불해야 하는데 책을 많이 읽지 않는 분들께는 이 금액도 큰 허들이고요. 그에 반해 웹소설은 분량이 짧고, 편당 값이 저렴하고, 중도이탈을 하더라도 내가 읽은 만큼만 금액을 지불하기 때문에 그 비용이 매우 합리적이라고 느껴지는 것 같아요. 이런 구매 방식을 차용하거나 다른 방식으로라도 책에 대한 비독자들의 심리적 부담을 낮출 수 있는 서비스가 지속적으로 고안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노태훈 :   생각해 보면 도서관을 가는 등의 루트도 있기야 하지만 어쨌든 책은 구매한 순간 비용 지불이 끝나고, 이후는 본인이 해결해야 하잖아요. 다양한 방식의 향유 수단이 생겨나면 또 흥미로운 그림이 될 것 같기도 하네요. 단편소설 일곱 편이 들어 있는 소설집을 전자책으로 냈다면, 결제할 때 한 편당 얼마씩 매겨서 서비스한다던가요.

 

보   노 :   네이버에 건당 글을 볼 수 있는 콘텐츠가 있어요. 작가분이 아니어도 누구든 글을 발행할 수 있고, 나에게 필요한 글을 유료로 구매를 할 수가 있습니다. 아까 말씀하셨던 시는 스토리가 있잖아요. 건당 서비스를 하면 수요가 있을 것 같아요. 단편도 마찬가지고.

 

노태훈 :   브런치 같은 사이트도 있으니까요.

 

보   노 :   브런치는 작가 위주의 플랫폼이잖아요. 네이버 프리미엄 콘텐츠는 누구나 내 글을 팔 수 있어요. 자기가 금액을 정하는 거예요. 저도 신청은 해두었는데, 아직 발행한 글이 없지만요.

 

노태훈 :   영화 티켓 값이 상승하면서 관객들이 다소 신중하게 영화 관람을 고민하기 시작했다고 하는데요. 예전부터 독서 시장은 그래 왔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드네요. 지금 저희가 이야기 나눈 것 외에 특별한 문학적 매체, 플랫폼의 경험이 또 있을까요?

 

홍   솔 :   대표적으로 이슬아 작가님이 하시는 메일링 서비스가 있을 것 같아요. 이런 식으로도 사람들에게 글을 제공할 수 있구나, 그 형식도 신선했지만, 많은 분량은 아니더라도 검증된 작가의 글을 매일 조금씩 읽을 수 있다는 점에서 바쁜 현대인들의 니즈와 잘 부합되는 서비스였던 것 같아요. 그리고 제가 하는 북튜브도 어떻게 보면 새로운 독서 매체에 해당되지 않을까요? 직접 읽기에는 시간이 너무 많이 드니까 누군가 나 대신 책을 읽고, ‘이건 이런 내용인데, 재미있다, 없다’ 정도만이라도 얘기해 주면 ‘그 책을 읽은 것 같은 기분’을 얻어 가는 거죠. 요즘에는 영화도 두 시간 보는 게 아니라 20분짜리 유튜브 리뷰로 보잖아요.

 

노태훈 :   저도 몇 개 본 게 있는데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퀄리티가 높고 만족감이 있었습니다. 그게 실제로 영화를 감상하는 것에 비할 바는 못 되고 저작권 문제도 좀 걸리기는 하지만 몇 시간을 들여야 파악할 수 있는 내용들을 매우 빠르게 접하게 되니 ‘이 정도면 됐다’는 느낌도 받게 되고요. 그런데 문학에서는 어렵다는 생각이 들기는 해요.

 

보   노 :   ‘밀리의 서재’에 요약본 서비스가 있어요. 처음엔 이걸 왜 읽을까 하는 생각을 했거든요. 제가 비문학 부문을 어려워하는데 직접 읽기 어려운 걸 요약본을 읽고 그 책에 대한 대략적인 내용을 알고 나면 온전한 한 권으로 완독하는 경험을 종종 합니다.

 

노태훈 :   영화나 드라마는 그런 경우가 별로 없는 것 같은데, 독서 시장은 누가 대신 읽어 주거나 설명해 주는 것을 듣고 나서 결국 그 책을 사게 되는 경향도 있는 것 같아요. 저도 그런 콘텐츠를 진행하고 있는 게 있지만 이를테면 고전 작품들을 잘 요약, 정리해서 소개해 주면 ‘아, 됐다’가 아니라 ‘그럼 한번 읽어 볼까’로 이어지는 게 좀 특이하고 재미있는 지점이라고 생각됩니다.
  새로운 플랫폼들의 한계에 대해 말씀을 나눠 볼까요? 여기 계신 분들도 종이책에 대한 애정을 많이 가지고 계신 듯하고, 주변에도 전자책 등의 형태로 완전히 바꾸신 분들은 별로 없어요. 웹이나 기기를 통한 방식은 휴대성이나 편리함 등을 장점으로 내세울 수 있는데 반드시 그렇지도 않은 것 같아요. 종이책은 어디든 넣어 가서 펼치기만 하면 되는데, 기기를 켜고, 인터넷을 찾고, 배터리 없으면 보기 힘들고, 또 충전을 해야 하고요. 관련해서 어떤 생각들을 하는지 궁금해요.

 

보   노 :   저희 독서 모임이 1월에 시작해서 오프모임 없이 온라인상에서만 독서가 진행돼요. 인증 방식이 오늘 읽은 책에서 좋았던 문구나 페이지에 대해 사진을 찍어 올리는 거거든요. 초창기에는 인증 사진이 대부분 종이책이었어요. 요즘은 역전돼 전자책으로 인증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어요. 열 명 중 아홉은 종이책에서 전자책으로 인증해요. 처음에는 전자책이 불편하다고 하셨던 분들인데, 지금은 많은 분들이 전자책을 봅니다.

 

노태훈 :   왜 그런 걸까요? 모임을 준비하는 데 종이책 배송을 기다리기 어려워서일까요?

 

보   노 :   그건 아닌 것 같아요. 모임을 위한 종이책은 온라인 구매나 도서관에서 제 시간에 준비할 수 있습니다. 종이책 이용하던 독자들이 전자책에 대한 새로운 호기심도 있고 그런데 막상 전자책 읽으면 속도감이 다른 것 같아요. 디지털 텍스트에 적응됐잖아요.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읽는 속도가 종이책보다 훨씬 빨라요. 책마다 다르지만 전반적으로 완독하는 시간도 훨씬 단축되고, 그래서 독서량이 많아지는 느낌이 있어요. 그렇지만, 깊이감은 약하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저 같은 경우는 제가 좋아하는 장르는 종이책으로 읽고, 읽어 보면 좋을 책들은 전자책을 이용하기도 합니다.

 

박선우 :   앞에서 하신 말씀을 이어서 하자면, 제 생각에 종이로 글을 읽느냐, 화면으로 읽느냐, 귀로 듣느냐 하는 형식의 차이보다는 그것에 접근할 때 어떤 태도를 갖느냐에 달린 것 같아요. 저의 경우 종이책을 읽는다는 건 한자리에서 조용히 오래 있을 때 하는 행위예요. 말 그대로 여유시간이 보장될 때 종이책을 읽는 거죠. 전자책처럼 화면으로 글을 읽는 건 당장에 프린터를 이용할 수 없거나, 이동 중이거나, 다소 일정에 쫓길 때가 많았던 것 같아요. 연휴 기간이나 현재 거주지에 따라 종이책을 당장 구하기 어려울 때가 있잖아요. 오디오북은 산책이나 설거지 등 단순한 행위를 하는 와중에 듣게 되는 듯해요.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고 이동할 때 들을 수도 있겠고요. 어쨌든 각 형식에 따른 독서의 환경이나 독자의 태도가 달라지기에 최종적인 경험이나 인상도 달라진다고 생각해요. 문학은 한자리에 앉아서 오래, 집중해서 읽는 것이 도움이 되기에 상대적으로 종이책 경험이 선호되는 것 같고요. 물론 전자책이든 오디오북이든 진중하게 접근한다면 종이책과 큰 차이가 없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쨌든 각 도구를 이용할 때 우리가 놓인 상황이나 자기도 모르게 취하는 태도에 의해 독서 경험이 달라지는 듯해요.

 

 


〈독자는 어떻게 말할까〉

 

노태훈 :   이제 독자들이 문학에 관해 어떤 방식으로 이야기를 하는지 살펴보면 좋겠는데요. 북튜버, 리뷰어이신 보노 님, 솔 님께서 아무래도 가장 활발하게 책을 읽고, 공유하는 현장에 계시리라 생각됩니다. 예전의 전통적인 독자들은 책을 읽고 대체로 혼자 감상하고, 조금 더 적극성을 띤다면 독후감이나 일기 등에 기록을 했던 것 같아요. 흔하지는 않지만 모여서 함께 책을 읽는 경우도 있긴 했고요. 그런데 지금은 매우 다양한 방식의 소통이 이루어지고 있는 듯합니다.

 

보   노 :   저는 책 리뷰를 할 때 댓글을 다시는 분이 두 부류 같아요. 책을 좋아하는 분, 아예 책에 접근하지 않는 분. 책을 읽으시는 분은 언제든 읽으세요. 안 읽으시는 분은 처음부터 끝까지 안 읽으세요.

 

노태훈 :   그러면 댓글을 왜 다는 거죠? (웃음)

 

보   노 :   읽고 싶은 마음은 있다는 댓글이지만 막상 책에는 손이 잘 안 가죠. 저는 안 읽는 분들을 읽게끔 해주고 싶은 마음이 있었어요. 제가 안 읽다가 읽게 되었으니, 그분들도 책을 읽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독서 모임 취지도 읽는 사람보다는 안 읽는 사람을 모은 거예요. 안 읽는 사람을 모아 꾸준하게 책과 가까워지게 하고, 끝까지 완독하도록 이끌어 주겠다는 취지로 만든 거죠. 의외로 반응이 좋았어요. 기존 독서 모임이나 토론회는 이미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쉽게 찾아 들어가는 거거든요. 반면 그런 모임은 책을 안 좋아하는 사람들, 초보들은 부담스럽거든요.

 

노태훈 :   진입장벽이 높군요.

 

보   노 :   네. 오프라인 모임은 모두 토론하는 모임이어서 접근하기 힘들어요. 온라인에서는 정말 다양한 모임을 만날 수 있으니까 저는 책을 그냥 안 읽는 사람, 한 권만 읽을 사람을 모은 거예요. 가입 시 독서량을 분석해 보니 한 달에 한 권이 목표인 사람이 많았어요. 끝까지 한 권을 읽고 싶다는 거죠. 그런 사람들을 모아서 하고 있는데, 처음 했던 사람들이 지금까지 꾸준하게 완독의 기쁨을 느끼고 있어요. 토론보다 ‘내가 책을 읽었다’라는 완독의 기쁨을 느껴요.

 

노태훈 :   그런 과정에서 온라인이라는 환경이 중요하다고 느끼시는군요.

 

보   노 :   책 안 읽는 사람들이 온라인에서 모이는 경우 부담감이 적은 것 같아요.

 

노태훈 :   코로나19와 겹치면서 온라인이 활성화된 것도 그 이유 중 하나겠네요.

 

보   노 :   네. 그리고 토론을 원체 부담스러워 해요. 이야기를 나누거나 하는 것도요. 저조차도 아직 그래요.

 

노태훈 :   그러면 책을 읽고 어떤 이야기를 나누는 건가요?

 

보   노 :   책을 읽고 한 달에 몇 번 인증하면서 때론 순수하게 사진인증만 할 때도 있고, 한줄 소감을 남기면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해요. 오프라인 모임은 한날 모여서 이야기보따리를 푼다면 온라인 모임에서는 실시간으로 그때그때 느꼈던 느낌을 나눌 수 있는 장점이 있어요.

 

노태훈 :   자기 감상을 그냥 올리는 건가요?

 

보   노 :   네. 책에 관련된 뭐든 올려도 되고, 그냥 자유예요. 중요한 건 내가 한 달 동안 완독했다고 인증하는 거죠. 도서관 갔다는 인증, 책 산 인증 같은 거요. 인증 자체가 하나의 독서 활동이라고 해야 할까요?

 

노태훈 :   사람들이 책을 많이 안 읽는 게 읽어도 티를 낼 데가 없어서 그런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영화를 봤다면 주변에 말할 기회도 많고, 인터넷에 관람평이라도 남길 수 있는데, 책은 그런 게 쉽지가 않죠. 책을 한 권 다 읽었음에도 그 생각들을 공유할 적절한 방식을 찾지 못하고 그냥 혼자 끝나는 경우가 많아 사람들이 책읽기를 적극적으로 안 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해요. 지금 말씀하신 것들이 그런 맥락 같고요.

 

보   노 :   완독의 기쁨을 느끼다가 점차 감상평, 독서 토론으로 옮겨가면 되는 거예요. 저는 완독의 기쁨을 느끼는 것까지만 이끌어 주는 역할을 하고 싶어요.

 

노태훈 :   북튜버로서의 경험은 또 조금 다를 것 같기도 한데, 솔 님은 어떠세요?

 

홍   솔 :   책도 일종의 상품이라고 생각해 보면요. 물건을 살 때 가장 중요한 기준 중의 하나가 그 물건을 미리 체험해 본 사람의 ‘솔직 후기’잖아요. 실패하기 싫으니까요. 북튜버는 책에 대한 솔직 후기를 공유하는 사람인 거죠. 제가 먼저 읽은 책에 대해 솔직하고 허심탄회하게 접근하면 시청자분들도 댓글에 ‘저번에 추천해 주신 그 책 읽었어요’, ‘그건 별로였어요’ 하고 남겨 주세요. 추천한 책이 별로라고 하시는 분들께는 이전에 남겨 주신 댓글들을 참고해서 제 짧은 식견으로나마 큐레이션도 해드려요. 저 또한 구독자분들로부터 추천을 받기도 하고요. 제 채널 안에서는 모두가 친구같이 편안하게 같이 독서 경험을 공유해요. 북튜버가 얼핏 보면 다수에게 일방적인 소통을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어떻게 운영하느냐에 따라 내밀한 양방향 소통도 충분히 가능해요. 오프라인에서는 책 읽는 친구 자체를 찾기 어려우니까, 블로그 이웃 맺기나 북튜브 구독을 통해 온라인에서라도 나의 독서 경험을 공유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두면 좋은 것 같아요. 실제로 댓글로나마 책 이야기를 할 수 있어서 좋다는 분들도 많이 계시고요.

 

노태훈 :   두 분 다 온라인에서 다른 독자분들과 활발하게 소통하시는데 별도의 오프라인 행사나 만남도 병행하시는지요?

 

홍   솔 :   지금도 많이 떨고 있는데 제가 낯을 많이 가려서요. 이렇게 새로운 분들 만난 것도 몇 년 만이에요.

 

노태훈 :   창작자분들께서는 어떤 느낌이신지 궁금합니다. 윤제 님 같은 경우 굉장히 다른 환경에서 독자들을 만나고 있잖아요. 시의 경우 정말 적막하기 그지없고 (웃음) 웹소설은 뭐 제가 짐작하기로 댓글이 수십, 수백 개가 기본적으로 달리면서 왁자지껄할 것 같은데요. 둘 사이의 온도 차가 어떤지 궁금합니다.

 

변윤제 :   온도 차가 심해요. 웹소설 같은 경우 댓글이 적극적인 분들도 있고, 너무 적극적이어서 자신의 경험을 ‘이 정도로 공유해 주신다고? 넣어 두셨으면 좋겠다’ 싶을 정도로 공유해 주시는 분들도 있어요. 제 시는 정말 소수의 독자, 아주 소중한 독자분들이 계신데, 그중에서도 댓글을 다시는 분들은 더 적은 것 같아요. 사실 거의 없죠. 그런데 의견을 남기는 독자분이라는 건 적극적으로 자신의 경험과 의견을 다른 독자와 나누시는 분인데, 그건 어느 것이든 소수인 것 같아요. 웹소설에서는 선발대라고 하는데, ‘내가 이거 읽어 봤는데 재미없으니까 읽지 마라’라는 내용의 댓글을 다는 분들이 있어요. 그런 분들이 전문 선발대처럼 모든 웹소설을 탐독하면서 ‘50화쯤 되면 재미없어지니까 하차해라’ 같은 댓글을 다시는데, 그런 진취적인 독자분들에 한정한다면, 시든 웹소설이든 전체 독자의 1%도 안 되는 것 같아요. 조용하지만 진지한 태도로 제 작품을 읽어 주시는 분들이 훨씬 많은 것 같아요. 웹소설이든 시든 독자들의 성격은 본질적으로 비슷하지 않나 하는 생각도 결국 하긴 합니다.

 

노태훈 :   요즘 문학 같은 경우 신작이 나오면 기본적으로 작가님들이 온라인에서 독자분들과의 만남을 가지잖아요. 그런 방식의 소통을 선우 님께서는 작가로서 해보시기도 하고, 편집자로서 주최도 해보셨을 것 같은데요. 어떠셨나요? 그러한 만남의 효과를 느끼시는지도 궁금하고, 이런 게 꼭 필요한가 하는 생각도 혹시 하셨을까 싶기도 하고요.

 

박선우 :   요즘은 책을 읽고 나서 블로그, 댓글, 개인 SNS 등에 짧게나마 본인의 감상을 올리는 경우가 많은 듯해요. 사실 많다고 하기엔 좀 이상한데, 어쨌든 책을 읽은 100명 중에 한 명 정도는 하는 것 같아요. 그 정도의 느낌이고, 그래서 지극히 사적인 감상들이 공개적으로 열람이 가능한 시대 같아요. 창작자든, 독자든, 출판사 직원이든 검색 몇 번만 하면 해당 도서에 관한 독자들의 속내를 알 수 있으니까요. 그것이 긍정적일 때는 모두가 기분 좋은 일이지만, 아닌 경우에는 말 못 하게 속상한 경우가 더러 생기는 것 같아요. 아직 책이 서점에 풀리지도 않았는데 댓글로 별 하나와 비난을 남기는 경우도 가끔 있고요. 그러면 다들 참 속상하죠. 어쨌든 책을 출간한다는 건 이제 익명으로 진행되는 대규모 합평회에 참여하는 일과 같은 듯해요. 작가가 독자들의 호응이나 윤리의식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 실은 책을 낸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깨닫게 해주는 효과도 있는 것 같고요. 독자들이 나서서 평론가 역할을 수행하기에 어떤 면에서는 좋은 점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행사 관련해서는 편집자로 일한 최근 몇 년간 코로나로 온라인으로만 행사를 진행해야 했는데요. 오프라인 행사와 다른 점이 있다면, 말 그대로 ‘관객 없는 연극’ 같다는 인상이 있어요. 아무리 댓글이 꾸준히 올라오고, 시청자가 100명이 넘어도 현장은 고요하고 공허한 느낌이 있지요. 행사 내용이 영상물로 남고, 온라인에 떠돌고, 캡처 당할 수 있다는 것에 거부감을 느끼는 작가들도 있어요. 때문에 온라인 행사를 아예 기피하는 분들도 있고요. 책 관련 행사라는 게 실은 도서 판매에 기여한다기보다 작가가 자신의 책을 읽은 독자를 직접 만나 소통하는 자리라고 생각해요. 독자들이 어떤 눈빛으로 작가를 보고, 어떤 표정을 짓고, 어떤 질문을 던지는지가 행사에서 가장 유의미한 일이 아닐까 싶은데요. 온라인으로 진행되면 독자들은 작가를 일부나마 구경할 수 있지만, 작가는 독자들을 일절 볼 수가 없어서 실제로 작가가 행사를 통해 뭘 얻어간다는 느낌이 덜해지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독자분이 직접 와서 서명을 받고 ‘잘 읽었어요’라고 한마디만 해도 작가는 힘을 얻거든요. 온라인에서 아무리 격려 댓글을 많이 받아도 바로 곁에서 육성으로 듣는 것과는 느낌이 다르잖아요. 그런 경험이 다음 작품을 쓸 의욕으로 이어지기도 하니까, 행사가 온라인화된 것이 작가들에게는 조금 아쉬움일 듯해요.

 

보   노 :   반대로 독자들 입장에서는 작가님과 온라인에서 만나는 것도 굉장히 반가운 일이거든요.

 

노태훈 :   부담이 덜하다는 것도 있죠.

 

보   노 :   장소 구애받지 않고 대부분 수도권에서 이루어지잖아요. 저도 수원에 살지만, 서울이 가깝다고 해도 잘 움직여지지 않아요. 온라인으로 행사를 해주면 정말 좋아요. 작가분들은 연예인보다 더 베일에 싸인 느낌이 있어요. 드러나지 않으니까요. 책 말고는 작가님에 대해 알 수가 없잖아요. 요새는 작가님들이 여러 가지 활동을 해주시니 더 친근감이 있더라고요. 활동해 주시는 작가님들, 소통해 주시는 작가님들 정말 좋아합니다.

 

노태훈 :   저도 어렸을 때 작가를 처음 만난 때가 있어요. 책으로만 보던 사람을 처음으로 보는데, 제가 주인공도 아닌데 너무 긴장했어요. 옷을 뭘 입어야 하나부터 어떤 태도여야 하나까지 부담스러워서 몇 번을 주저하다가 겨우 가보았던 일이 있는데요. 그런 의미에서 온라인으로 이루어지는 행사들이 독자분들의 장벽을 낮출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는 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의 온기는 정말 소중한 것이기도 하고요.

 

 


〈독자는, 문학은 달라질까〉

 

노태훈 :   이제 마무리 삼아 조금 좁혀서, 문학에 한정하여 ‘앞으로 과연 달라질 것인가’에 대해 의견들 나눠 주시면 좋겠습니다. 문학도 이제 웹으로 많이 옮겨 갔잖아요. 비단 웹소설 이야기를 하지 않더라도 유수의 전통 문예지에 작품을 싣는 일보다 쉽게 공유와 열람이 가능한 웹 지면이 각광을 더 받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요.

 

홍   솔 :   저는 웹소설을 보면서 가끔 ‘이 독자들이 어디에 다 숨어 있었지?’ 하며 경악할 때가 있어요. 1억 뷰 이상을 달성한 작품도 많더라고요. ‘사람들이 책 안 읽는다고 했는데, 판을 깔아 주니 몰려와서 읽는구나. 읽는 욕구는 존재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최근에는 작가님들도 시대상을 인지하고 작품의 형태를 바꿔 가며 도전하시는 것 같아요. 매우 짧은 단편을 여러 개 묶어서 내시기도 하고요. 이제는 독자들도 달라지고 있고, 작가들도 달라지고 있으니 독자와 작가를 연결해 주는 공급자들도 전통적인 방식에 안주하지 않고 좀 더 적극적으로 ‘새로운 판’에 대해 고민해야 할 때인 것 같아요. 그러면 지금의 웹소설 독자들처럼 더 많은 순문학 독자들이 빠르게 생기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노태훈 :   지금 저희가 좌담을 나누고 있는 《문장 웹진》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운영하고 있지만, 최근 출판사들이 웹에서 작품을 공개하고 서비스하는 방식을 늘리는 것을 보면 말씀하신 변화들이 가시화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도 굉장히 전통적인 문학 독자인데, 개인적으로도 그런 관념들이 많이 바뀌었거든요.

 

보   노 :   책을 읽는 사람들은 어떻게든 책을 읽는 것 같아요. 플랫폼이나 서비스에 상관없이. 책을 읽는 사람들을 위한 서비스도 늘면 좋지만, 읽지 않는 사람을 포섭할 수 있는 플랫폼이나 서비스가 다양하게 생기면 좋겠어요. ‘책을 안 읽는 사람을 위해 서비스가 있었으면 좋겠다’ 하고 안 읽는 사람이 생각하지는 않거든요. 우연히 그런 플랫폼에 접해서 책을 가까이하게 되면 좋겠어요.

 

노태훈 :   책을 안 읽는 사람, 책에 관심 없는 사람을 어떻게 독자로 만들 수 있을까요?

 

보   노 :   저희 모임 중에 작가님이 계신데, 청소 관련 작가님이에요. 집 청소를 깨끗이 하는 방법이요. 그분이 책을 내시고, 사람들이 그 책을 읽었지만, 실제로 청소하지는 못하는 거예요. 그래서 작가님이 ‘나와 같이 책을 읽고, 청소합시다’ 하는 취지로 온라인 모임을 만들어 청소도 하고, 한 달 내내 청소 활동 하면서 다른 회원들과 본인 책 외에 다른 책도 곁들여 읽으면서 책도 읽고 청소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주시는 분도 계세요.

 

노태훈 :   굉장히 적극적으로 활동하시는군요.

 

보   노 :   또 다른 작가님은 아이들 영어 교육과 관련해 책을 내셨는데, 그분도 아이들과 다 함께 책을 읽으며 영어 교육하는 활동을 하세요. 그렇게 해주면 실질적으로 책을 읽으면서 나에게 정말 도움이 되는 활동들을 하는 거잖아요. 시를 내는 작가님 경우에는 예를 들어 필사하는 프로그램을 하셔도 되고요. 점점 세분화하면서 다양한 모임들, 단순한 독서 토론 말고도 활동할 수 있는 게 많잖아요. 좋아하는 문장만 뽑아 시화집을 만들어도 좋고요. 활동이 필요한 독서 모임도 좋고요.

 

노태훈 :   감상 이외에 적극적으로 책을 읽을 방법을 모색하시는군요.

 

보   노 :   책을 읽기 힘든 분들은 독서 모임과 함께 활동이 연계되면 좋을 것 같아요. 학생들 같은 경우 책을 안 읽는다고 하잖아요. 저희 애들도 시험을 위해 책을 읽는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책을 읽기 싫은 이유가 ‘책을 읽고 시험을 봐야 하기 때문’에 싫은 거죠. 활동 자체가 시험이니까. 시험용이 아니라 독서만큼은 즐거운 책읽기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스마트폰 중독을 염려하지만, 전자책을 학생들이 활용하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요. 예를 들면 학교 도서관에서 종이책뿐만 아니라 전자책 리더기도 대여를 해주고요, 전자책 플랫폼에서 오디오북, 챗북 등을 활용한 교육도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어요.

 

노태훈 :   여러 어려움이 있겠지만 도서관이나 학교 같은 교육 공공기관은 좀 더 적극적인 독서 방식을 고민하면 좋을 것 같아요. 교내에서 열람되는 전자책 시스템이라든가 도서관의 전자책 대출 활성화, 논의가 조금씩 이루어지고 있는 ‘공공대출보상제도’ 등 활발한 이야기가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도서관처럼 학교 공식 계정을 하나 만들어 학생들과 동화될 수 있게끔 하면 좋겠습니다.
  그런가 하면 최근 어느 시인께서 NFT 형태로 시집을 발행하신 경우가 있었잖아요. 그런 건 어떻게 생각하세요? 책으로 만드는데, 전자책이 아닌 새롭고 특이한 형태로 만드는 시도 같은 건 어떨까요?

 

변윤제 :   의미 있는 시도라고 생각해요. 그런 시도를 계속하는 것은 특히 시인들에게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제가 유독 그렇게 생각하는지 모르지만, 시는 퍼가는 게 굉장히 쉽잖아요. 시 한 편을 옮겨 적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그리고 생각보다 많이 퍼가신단 말이죠. 저작권이 있는 저작물이고, 돈을 받아 판매하는 상품인데, 어떤 분들은 시집 한 권 분량을 블로그에 게재하기도 하세요. 그런 걸 보면 NFT라도 해야 하나,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해요.

 

노태훈 :   소설도 꽤 많은 분량을 사진으로 찍어 올리는 분이 계셔서 작가분들이 당황하시는 걸 본 적이 있어요. NFT도 결국 상품으로서의 문학을 의미 있게 만들기 위해, 소위 말해 ‘한정판’이라고 할까요, 저자 서명본 느낌으로 접근하는 게 아닐까 싶긴 한데요. 요즘은 동네 서점용 판본, 각종 리커버 같은 것도 많으니 아예 의미가 없는 것 같진 않아요. 책을 읽는 사람들에게는 소장 욕구를 불러일으키고, 책을 읽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관심을 끌 수 있는 포인트이기도 하고요. 또 앞으로 문학의 변화와 관련해 어떤 이야기를 더 나눌 수 있을까요?

 

변윤제 :   책의 변화는 사실 항상 있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종이책만 하더라도 백석, 정지용 시절의 종이책과 현재의 종이책이 같지 않잖아요. 현재도 디지털이라고 하지만, 웹과 모바일에서의 읽기가 다르고요. 지금 고민해야 할 것은 막연히 ‘종이책을 지켜야 한다’는 식의 사명감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어쨌든 플랫폼과 매체의 변화에 따라 문학의 형태를 고민하며 능동적으로 바꾸고자 하는 노력이 중요하지 않을까요. 사실 제가 생각할 때 종이책에서 전자책으로 갈 때 가장 큰 난제는 이건데요. 종이책을 전자책으로 포맷만 바꾼다고 해서 갑자기 가독성이 좋아지거나 접근성이 올라가진 않아요. 저는 쓸 때부터 애초에 모바일용 소설과 웹용 소설, 종이책용 소설이 달라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건 시도 마찬가지고요. 지금은 중심이 종이이기 때문에 창작자들이 종이에 맞추어 창작하고 있지만, 변화에 맞추어 애초에 타깃층을 적절하게 설정한다면 어떨까요. 처음 창작할 때부터 포맷과 매체를 의식한 창작을 시도한다면 독자분들도 읽으실 때 ‘전자책이지만 읽기 좋다’, 이 작품은 ‘전자책으로 봤을 때 이 작품만의 가치가 생긴다’는 느낌을 받으실 것 같아요. 또한 출판 단계에서도 정통 문학을 디지털에서 유통한다면 어떤 방식이 접근성을 향상시킬 수 있는지 고민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박선우 :   저는 매체라는 것이 문학을 창작하는 입장에서 크게 중요하지 않은 것 같아요. 분량에 대한 극단적 제한이 아니라면 작품이 온라인에 올라간다, 종이책으로 발간된다에 뭔가 대단한 차이를 둘 필요가 있을까 싶고요. 하지만 이런 건 있겠죠. 작품을 싣기로 한 특정 문예지나 온라인 플랫폼의 성향을 이해하는 상황에서 청탁을 받고, 그 후에 작업을 하면 그런 게 좀 반영될 수는 있겠죠. 그렇다고 해서 발표 지면을 의식하여 형식이나 내용을 획기적으로 바꾸는 분은 거의 없을 것 같아요. 그 결과물이 좋을지도 잘 모르겠고요. 그리고 온라인상에서 짧게 읽는 글을 많은 분이 선호하는 것 같기는 하지만, 문학을 짧고 재미있게 읽으려는 욕구는 좀 이상한 것 같아요. 문학마저 어떤 트렌드에 끼워 넣으려는 시도 같고,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어달라는 요구 같기도 하고요. 이건 제 생각인데, 문학을 하는 사람들이 대단한 명예나 경제적인 보상을 얻는 경우는 거의 없어요. 문학을 하는 한, 그게 불가능하다는 걸 깨달을 수밖에 없는 구조니까요. 그럼에도 문학을 하는 이유는 상업적인 용도를 초과한 무엇을 하고 싶어서라고 저는 생각해요. 고귀한 것처럼 포장하려는 게 아니라, 애초에 ‘문학을 한다는 마인드’와 그걸 상품화해서 하나라도 더 많이 팔고 싶어 하는 ‘플랫폼의 욕망’ 사이에는 근본적으로 대립하는 지점이 있는 것 같아요. 융합이나 융화될 여지가 앞으로도 없을 것 같고요. 제 생각은 그렇습니다.

 

노태훈 :   저도 늘 고민되는 부분이긴 한데요. 문학이라는 장르 자체가 플랫폼이 요구하거나, 독자분들이 요구하는 콘텐츠와 본질적으로 다른 부분이 있어서 결합하기 어렵다는 의견도 있고, 플랫폼이나 매체가 다를 때 그것을 기반으로 창작자가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시도가 성과가 될 수 있다는 의견도 있죠. 솔 님은 어떠신가요?

 

홍   솔 :   저는 개인적으로 웹툰 시장을 많이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웹툰이 나오기 전에는 아무도 자기 전에 웹툰을 보는 습관이 없었잖아요. 그런데 이제는 웹툰이 문화가 되었고, 습관이 되었어요. 심지어 우리나라 웹툰이 외국에 서비스되면서 다른 나라에서도 우리나라 웹툰을 보고 있단 말이죠. 그것도 꽤 여러 나라에서 서비스하고 있어요. 사실 그건 없던 시장이 아니잖아요. 기존에도 만화를 읽는 독자들이 있었고, 창작하는 작가들이 있었는데, 시대에 맞는 플랫폼이 그에 맞는 콘텐츠를 제작함으로써 많은 독자를 낳을 수 있게 된 거죠. 결과적으로 작가들은 더 높은 수입을 얻을 수 있게 됐고 시장이 품을 수 있는 작가가 많아지면서 독자들은 선택권이 늘어나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졌어요. 문학 시장도 충분히 성장 가능성이 있다고 봐요. 이미 습관적으로 문학을 찾는 독자들과 열정적인 작가들이 있잖아요. 글을 쓰는 작가님들이 경제적 보상에 큰 흥미가 없다고 하더라도 자본주의 사회에서 글쓰기가 생업으로 이어질 수 없다면 경제적 자유의 특권을 가진 사람들만 작가가 되겠죠. 완벽한 독자의 입장으로서 특정 작가들만 글을 쓸 수 있게 된다면 저는 슬플 거예요. 제가 즐길 수 있는 작품의 가짓수가 줄어들게 되니까요. 독자 입장에서는 문학 시장도 파이가 커지길 바랍니다. 어떤 형태로든요. 그 좋은 예시가 웹툰 시장이라고 생각해요.

 

노태훈 :   이를테면 영화나 음악은 아주 마이너한 콘텐츠를 향유하는 기본적인 양 자체가 확보되어 있는데, 문학은 그게 너무 적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순문학이라는 시장이 작으니까 뭘 하려고 해도 어렵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솔 님이 말씀하셨듯이 파이를 늘리는 것, 일단은 독자를 끌어들이고 뭔가 해봐야 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요.

 

보   노 :   전자책이든 종이책이든 읽는 사람 입장에서는 다양한 플랫폼이 있으면 좋은 거니까. 요약본이든 뭐든 많으면 좋죠.

 

홍   솔 :   어떤 방식으로든 독자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방식이 많이 생겨야 할 것 같아요.

 

보   노 :   저는 이제 시작인 것 같아요. 책 한 권을 출판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책에 관한 정보를 조금씩 보여주기 시작하는 단계라고 할까요? 출판사도 책에 대한 홍보 외에도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예전과는 다르게 독자에게 친근하게 접근하고 있고요. 이렇게 책의 출간 전후 스토리를 볼 수 있으니까 막상 그 책이 시장에 나오면 반갑게 한 번 더 펼쳐 보고요.

 

노태훈 :   그렇게 본다면 지금 과도기적 성격이 있는 것 같아요. 이전까지는 작가가 방에 숨어 글만 쓰고, 책이라는 건 왠지 상업적이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있었는데요. 지금은 이른바 마케팅도 적극적으로 하고, 홍보 수단도 여러모로 찾아보는 단계인 것 같아요. 이 단계가 지나다 보면 어떤 의미의 적정기를 찾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나가며〉

 

노태훈 :   오늘 ‘디지털 시대의 독자’라는 주제로 여러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는데요. 못다 한 말씀을 포함해 참여하신 소감을 듣고 마무리해 보겠습니다.

 

홍   솔 :   제가 북튜버로서 문학의 본질, 업종 가운데 있는 사람이 아니라 외곽에서 파이를 주워 먹는 입장이다 보니 시장의 생태계에 과하게 집착한 부분이 없지 않아 있는 것 같은데요. 제 경험상 무언가를 읽었을 때 느끼는 감정이 영화나 유튜브처럼 단순히 보기만 하는 것과는 다른 디지털 매체와 너무 다르거든요. 전혀 다른 자극이기 때문에 분명 이 느낌을 좋아하는 사람도 적지 않을 텐데 그들이 책의 세계로 오는 길을 헤매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늘 아쉽고 안타까운 마음이 있어요. 예전에는 신문만 들춰도 문학을 접할 수 있었는데 이제는 애써 찾아보지 않으면 노출조차 되지 않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더 이상 독자들을 기다리고만 있어서는 안 될 것 같아요.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잠재적 독자의 유입을 늘릴 방안을 골몰해야 할 때라고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시의적절하게 이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생겨 좋았습니다.

 

보   노 :   책을 좋아한다는 건 개인 취향이잖아요. 언젠가 관심사가 책으로 돌아갈 기회가 있잖아요. 그런데 그 선을 넘는 게 정말 힘든 것 같아요. 다른 대중문화에 비하면 책이라는 것 자체가요. 그런데 그 한 발만 넘으면 정말 재미있고 넓은 세계잖아요. 저는 책 때문에 인생의 사이클이 바뀌었어요. 책 중심으로 돌아가는 게 느껴지거든요. 저희 ‘북적북적’ 모임 분들께도 그런 경험을 나누고 싶은데, 온라인의 한계도 있고요. 그 한계를 보충할 수 있는 무언가도 찾고 있는 단계입니다. 지금은 디지털 시대에 맞는 다양한 플랫폼, 서비스 등 책을 가까이할 수 있는 환경이 다양해서 정말 행복하고요. 책읽기는 결국 개인의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의 풍성한 환경이 책을 읽지 않는 분들에게 많은 동기부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변윤제 :   오늘 이렇게 귀한 시간, 좋은 의견 나누어서 기쁘게 생각해요. 여기에 모인 분들은 다들 책을 좋아하는 분들이잖아요. 저희 좌담을 읽으실 분들도 책과 문학을 사랑하는 분들일 텐데요. 내가 문학을 좋아하기 때문에 남들도 좋아해 줬으면 좋겠다는 소박한 마음으로 이런 것들에 관심을 가진다고 생각해요. 저도 본질적으로 문학은 즐거움만을 추구할 수 없고, 재밌다는 기준도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해요. 문학은 평양냉면처럼 ‘재미없음의 재미’ 같은 게 있다고 생각하는데, 다만 작가들이 작가 자신의 세계를 탐구하는 와중에 다양한 독자들을 만나면서 자신의 문학을 어느 정도 소통할 기회가 많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디지털, 종이책과 전자책 이야기도 많이 나누었는데, 저는 종이책이 없어질 것 같다거나 전자책이 없어질 것 같다는 극단적인 생각은 안 듭니다. 쭉 평행해서 가지 않을까 싶어요. 저만 해도 어떨 때는 종이책이 무거워 전자책만 읽고 싶다가, 어떤 시기엔 눈이 아파 종이책만 읽을 때가 있거든요. 다른 독자분들도 결국 문학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면, 매체나 플랫폼, 시대의 변화에 관계없이 계속 읽어 주시지 않을까 하는 작지만 귀중한 기대를 해보는 시간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박선우 :   저는 앞에서 보노 님이 해주신 말씀이 인상 깊었어요. 책을 안 읽다가 어떠한 계기로 책이 갑자기 내 삶에 들어왔다, 이렇게 된 거잖아요. 저 역시 과거를 돌이켜보면 스무 살까지는 책을 거의 안 읽었어요. 공교육 과정에서 책을 꼭 읽어야 할 일이 거의 없으니까요. 스무 살 넘어서야 책을 읽게 된 건, 긴 통학 시간에 할일이 없어서 지하철에서 소설을 읽기 시작한 거예요. 그러다가 군대에 들어갔는데 또 할일이 없어서 소설을 읽었고요. 제대하고 나서 문학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어요. 책을 읽는다는 게 나의 삶에 자연스레 들어오면서부터 문학이라는 세계도 열린 것 같아요. 이렇게 좋은 작품들이 많았구나, 만화책이나 텔레비전에서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이야기들이 여기 있었구나 싶었죠. 제가 알기로는 태어나서 스무 살까지 최신의 한국 문학을 접할 수 있는 커리큘럼 자체가 예술학교 말고는 없는 듯해요. 어릴 때부터 자연스레 문학을 접하고, 그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관련 에세이를 써보는 건 외국 영화에서나 본 듯하고요. 우리나라는 일상 속에서 문학을 접하는 일이 거의 없다 보니 사람들이 막연히 장벽 같은 걸 느끼는 듯해요. 하지만 실제로 장벽은 없어요. 도서관이나 서점도 찾아보면 은근히 많고, 작가와 출판사도 책을 알리려고 부단히 노력을 기울이고 있거든요. 그런데도 수요가 많지 않은 건, 그게 줄어들기만 하고 늘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건, 기본적으로 한국인의 삶 자체에 문학이 들어설 여지가 별로 없다, 그 외에 즐길거리는 많다, 그런 것 같아요. 사실 책을 읽는다는 건 시간을 할애해야 하고 노력이 필요하거든요. 솔직히 여가 생활이라 보기는 어려워요. 어느 정도의 집중과 공력이 꼭 필요한데, 그럼에도 이것의 즐거움을 학습하거나 체득할 수 있는 계기가 없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보기에 출판사나 작가는 문학을 알리기 위해 나름대로 할 만큼 하는 것 같아요. 그렇지만 이미 깨진 독에 물 붓는 느낌인 거죠.

 

보   노 :   있는 것 가지고 활용하면 충분히 넘치고 남거든요.

 

노태훈 :   제가 지난번 독립 잡지 관련 좌담을 할 때 한의연 작가님께서 그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어요. 문학을 예체능 교과로 바꾸면 어떨까 하고요. 국영수에 들어가는 문학이 아니라 예체능으로서의 문학이 되면 서점에서 책 찾아오기, 자기의 삶을 토대로 소설 써보기 같은 ‘수행평가’를 초중고 시절에 할 수 있는 거죠. 한국인 대부분에게 책이라는 건 공부해야 하는 무엇이라 각인되는데요. 그게 아니라는 건 말씀하신 대로 깨달은 사람만이 알 수 있는데, 교육이 미리 길을 열어 주면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보   노 :   저희 큰애가 고1이거든요. 학교에서 독서 시간이 있다고 해서 물어 봤어요. 독서 과목은 한 학기에 일곱 시간인가? 정해져 있대요. 그런데 수행평가에 들어가는 활동이라서 책을 한 권 골라 읽고, 요약정리와 간단한 소감을 적고, 마지막 시간에는 수행평가에 반영하는 게 끝이고요. 2학기에는 진로에 관한 책을 읽고, 선택의 여지가 없대요. 진로가 없는 애들은 본인 진로 관련된 책을 선택하라는 것 자체가 난제인 거예요.

 

홍   솔 :   어떤 책이 있는지도 모르는 학생들은요?

 

보   노 :   저희 애도 아직 진로가 정해지지 않았는데, 무슨 책을 골랐느냐고 물어 보니 『진로와 적성』을 골랐다는 거예요.

 

홍   솔 :   제가 외국에서 학교를 다녔거든요. 영어 시간에 버나드 샤의 『피그말리온』을 한 학기 동안 읽었어요. 되게 얇은데, 그걸 읽고 토론하고, 영화도 봐요. 문학을 교과서로 배우는 게 아니라 책 자체가 교과서예요. 작가에 대해서도 배우고, 오랜 시간을 들여 문학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 같은 태도를 공교육으로 가르쳐요. 외국 사람들이 좀 더 편하게 책을 접할 수 있는 건 그런 데서 나오는 게 아닌가 싶어요. 저희 구독자님 중에도 외국에서 대학교를 나오신 분이 있는데, 수업 과제가 ‘한 학기 동안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다 읽어오기’였다고 하더라고요. 요새는 학생들도 너무 자극이 많고 바쁘다 보니 교과 과정에서 작품을 느낄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제공한다면 좋을 것 같아요.

 

노태훈 :   한국인 대부분은 ‘문학’이라면 교과서에서 봤던 걸 떠올릴 테고, 그게 한국 문학이라고 생각할 거거든요. 한국 사회의 현실을 반영하고, 역사와 대결하는 장르라는 인식이 뿌리 깊을 거예요. 그게 굉장한 편견이라는 사실을 모른 채로 문학의 경험은 멈추게 될 가능성이 크고요. 오늘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결국 책을 읽고, 문학을 향유하는 게 단순히 독서나 취향의 문제라기보다 근본적이고 본질적인 삶의 형식과 관련된 일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오늘 네 분을 만나 뵙고 여러 가지 말씀을 들을 수 있어서 재미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여러모로 공부가 되기도 했습니다. 이것으로 좌담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문장웹진 2022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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