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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까지 삼십 센티

  • 작성일 2021-01-01
  • 조회수 1,686

[제38회 마로니에전국여성백일장 - 아동문학 부문 장원? 〈동화〉]

 

 

친구까지 삼십 센티

 

 

안보라

 

 





? 수상자의 목소리로 작품을 만나볼 수 있어요.

 

 

    수업을 마친 아이들이 교실 문을 열어젖히자 맞은편 창으로 바람이 가득 들어왔다. 나는 친구들과 교실을 나가다 멈칫했다.
    ‘문어왕!’
    뒤를 돌아보니 창가 책장 위에 놓인 문어왕이 바람을 버티지 못하고 비틀거리고 있었다. 도저히 그대로 두고 볼 수가 없었다. 뛰어가 문어왕을 바람이 덜 닿는 자리로 옮겨 놓았다. 친구들 가운데 선 주리가 핀잔했다.
    “김희진, 뭐 해? 그깟 플라스틱 쪼가리가 뭐 중요하다고. 빨리 가자. 선착순 오십 명이랬잖아.”
    새로 연 분식집 이야기였다. 분식집에서는 오늘 하루만 떡볶이 한 접시 가격에 두 접시를 준다고 했다. 그 소식을 들은 주리는 아침에 자기 생일 파티 때 초대했던 친구들을 불러 함께 떡볶이를 먹으러 가자고 했다. 사실 나는 주리 생일 파티에 끼지 못한 아이였다. 그런데도 주리는 나를 특별히 떡볶이 모임에 데리고 가 주겠다며 인심을 썼다.
    “넌 발이 빠르잖아. 네가 달려가면 일단 떡볶이 두 접시는 우리 거지. 잘 부탁해.”
    그 말을 들었을 때는 얼마나 설레던지. 주리는 우리 5학년 3반 여자아이들 중에 제일 인기가 많다. 뭐든지 잘했고 뛰어난 말솜씨로 아이들을 휘어잡았다. 예전부터 친하게 지내고 싶었는데 이렇게 기회가 찾아올 줄은 몰랐다.
    나는 문어왕이 제대로 서 있는지 거듭 확인하고서 창문을 닫았다.
    “미안해, 주리야. 다 끝났어. 얼른 갈게.”
    서둘러 발을 떼는데 난데없이 비명이 들렸다.
    “아야!”
    화들짝 놀라 두리번거리다 은서를 발견했다. 은서라고? 워낙 작고 조용한 아이라 곁에 있는 줄도 몰랐는데. 은서는 허리를 반쯤 숙이고서 내 가방을 가리켰다.
    “가방, 가방에 머리카락.”
    그러고 보니 은서의 머리카락 몇 가닥이 가방의 지퍼 손잡이에 걸려 있었다. 당황해서 지퍼를 만지작거리자 은서가 다시 비명을 질렀다.
    “아야! 멈춰!”
    나는 어쩌면 좋을지 몰라 은서와 주리를 번갈아 보았다. 상황을 파악한 주리가 이마를 찌푸렸다.
    “재수 없게 하필 쟤 머리카락이. 쟤는 왜 긴 머리를 저렇게 풀고 다닐까? 귀신처럼. 희진아, 시간 들이지 말고 대충 끊어.”
    “그, 그럴까?”
    손을 뒤로 돌려 머리카락을 잡아 뜯으려는데 은서와 눈이 마주쳤다. 나를 올려다보는 은서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손에서 힘이 빠졌다.
    “주리야, 안 되겠다. 먼저 가. 잘 안 되네.”
    “그럼 우리끼리 간다. 쳇, 괜히 기다렸잖아. 희진이만 아니었으면 진작 줄을 섰을 텐데.”
    주리는 신경질을 팍팍 내며 무리를 이끌고 사라졌다.
    ‘주리랑은 망했네. 혹시 이번 일로 화나서 나를 따돌리기라도 하면 어떡하지? 은서처럼 되는 건가.’
    나는 멍하니 은서를 내려다보았다. 은서는 우리 반에서 유령 같은 존재다. 몸이 약해서 학기 초부터 학교를 자주 빠진데다가 적극적인 성격도 아니라서 아이들과 친해지지 못했다. 더군다나 은서와 모둠 과제를 하던 주리가 은서 같이 답답한 애는 혼자 놀게 둬야 한다고 성질을 부린 뒤로 아이들 대부분이 은서를 없는 아이 취급했다. 나? 나는 은서를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았다. 그냥 은서에게 관심이 없었달까.
    머리카락을 빼려고 애쓰던 은서가 입을 달싹였다.
    “미, 미안해.”
    “네 잘못도 아닌데 뭘. 바람이 불어서 걸렸나 봐. 그런데 여기서 뭘 하고 있었어?”
    은서는 대답하지 않았다. 무시당한 듯해 속이 꼬였다. 이래서 다들 은서를 싫어하는 걸까.
    ‘흥, 나도 너랑 말 안 할 거야.’
    나는 가방을 앞으로 돌려 매고 머리카락을 빼는 데 집중했다. 지퍼 손잡이에 단단히 엉킨 머리카락은 좀처럼 빠지지 않았다. 나는 부아가 나서 팔을 휘둘렀다.
    “에이, 안 되잖아. 팔만 아프고. 앗!”
    내 손에 맞은 문어왕이 쓰러지려고 했다. 은서가 재빨리 문어왕을 붙잡더니 내 눈치를 보았다.
    “저기, 희진아. 이게 뭐야? 아까 미술 시간에 엄청 열심히 만들던데.”
    나는 은서랑 말 안 할 거라고 다짐했던 걸 싹 까먹고서 흥분했다.
    “문어왕이야. 오늘 미술 주제가 재활용 만들기였잖아. 난 페트병을 활용했지. 음, 너 <오션 어드벤처>라는 게임 알아? 문어왕은 거기에 나오는 괴물이야. 여덟 개의 다리로 폭탄을 던져. 얼마나 무섭다고.”
    나는 신이 나서 한참을 더 떠들다 간신히 정신을 차렸다.
    “흠흠. 나는 게임을 좋아해. 게임 이야기만 나오면 할 말이 너무 많아서 숨찰 정도라니까. 은서 너는 뭘 좋아해?”
    은서가 눈을 크게 떴다가 쑥스러운 듯 얼굴을 붉히며 대답했다.
    “나는 식물을 좋아해.”
    그러면서 책장 위 한쪽 구석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우유갑을 꾸며 만든 화분이 있었다. 은서는 집에 있는 다육식물의 잎을 떼어서 심을 거라며 눈을 반짝였다.
    “잎꽂이라고 하는 건데…….”
    은서가 조근조근 설명을 이었고 나는 은서의 목소리를 들으며 지퍼 손잡이에 엉킨 머리카락을 조금씩 풀었다.
    잠깐 목을 주무르는데 새삼 은서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은서와 나 사이의 거리는 삼십 센티쯤. 이렇게 가까이에서 은서를 관찰하는 건 처음이었다. 아래로 처진 흐린 눈썹, 쌍까풀 없는 긴 눈, 주근깨가 앉은 콧잔등. 예전에 주리가 은서 얼굴을 두고 한 말이 떠올랐다. 주리는 은서 얼굴이 어딘가 이상하고 기분 나쁘다고 했다.
    ‘내가 보기에는 아닌데. 아주 평범한데.’
    드디어 머리카락이 다 빠졌다. 지퍼와 얽혀있던 머리카락은 이리저리 꺾이고 뭉쳐 다리 많은 곤충처럼 보였다. 한숨이 나왔다.
    “가위로 잘라야겠다. 이럴 줄 알았으면 처음부터 가위로 자를걸. 아팠지?”
    은서가 엉망이 된 머리카락을 바라보다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아니. 희진이 네가 조심조심 풀어 줘서 하나도 안 아팠어. 고마워. 내 머리카락을 소중히 대해 줘서. 또좋아하는 게 뭔지 물어봐 줘서.”
    거기까지 말한 은서가 창에 바짝 붙어 서서 운동장을 내다보았다.
    “아까 뭘 하고 있었냐고 했지? 나, 저 밖을 보고 있었어. 친구들과 함께 집에 가는 아이들이 부럽더라. 그리고 이런 생각을 했어. 혹시 여기서 뛰어내리면 아이들이 나한테 관심을 기울여 줄까? 나를 미워하던 아이들이 후회할까?”
    “뭐? 안 돼!”
    나는 깜짝 놀라 은서의 팔을 잡아당겼다. 은서가 창에서 한 발 떨어지며 나를 돌아보았다.
    “걱정하지 마. 지금은 그런 생각이 다 날아갔으니까. 너랑 같이 이야기하면서 정말 즐거웠거든. 조금만 더 이대로 있을 수 있다면 하고 바랐어. 욕심이겠지만.”
    갑자기 가슴이 따끔따끔 아팠다. 나는 가방을 다시 뒤로 메며 불쑥 엉뚱한 말을 내뱉었다.
    “나랑 같이 떡볶이 먹으러 갈래?”
    은서가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행사는 다 끝났을 텐데…….”
    “괜찮아. 한 접시 사서 나눠 먹자.”
    은서가 보일 듯 말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은서에게 다가가 팔짱을 꼈다. 맞닿은 은서의 팔이 참 따뜻했다.

 

 

 

 

 

 

 

 

 

 

제38회 마로니에 전국여성백일장 수상작

구분 산문 아동문학(동화)
장원 박다은, 「지나가는 것」 오유경, 「미완의 영화」 안보라, 「친구까지 삼십 센티」
최영희, 「백발의 기수」
우수 김현진, 「달리기」 전앤, 「영화」 -

 

   《문장웹진 2021년 0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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