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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지 편(2)

  • 작성일 2020-11-01
  • 조회수 2,035

[느린 기린 큐레이션]

 

 

〈느린 기린 큐레이션〉
문예지 편 2

 

 

조시현, 조온윤

 

 

 

 

 

③ 다양한 예술 장르를 아우르는 올-라운드 문예지 《TOYBOX》

 

    다음으로 만나 볼 독립 문예지는 올-라운드 문예지 《TOYBOX》(이하 TOYBOX)입니다. TOYBOX는 반년간을 주기로 문학스튜디오 ‘무시(muci)’에서 발행되고 있어요. 2018년 여름에 ‘장난-감(感) : 장난하는 마음으로’를 주제로 한 1호가 나왔고, 올해 5월에 SF문학과 다양한 예술 장르의 결합을 시도한 4호 ‘철세계 : SF’가 나왔어요. 그리고 얼마 전엔 12월에 발행될 5호의 원고 투고를 모집했는데요. 그간 정형화된 문학의 틀을 깨는 작품과 구성을 보여주었던 터라, 이번에는 또 어떤 새로운 작품을 만날 수 있을지 벌써 기대가 되는 문예지입니다.

 

 

Q. 문학스튜디오 무시 여러분, 안녕하세요.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TOYBOX》에 대해 간단하게 소개해 주실 수 있을까요?

A. 안녕하세요. 올-라운드 문예지 《TOYBOX》는 ‘문학스튜디오 무시(muci)’에서 반년간으로 발간하는 문예지입니다. 문학을 중심으로 다양한 장르의 재미를 뒤섞고 경계를 넘나드는 즐거움을 추구합니다. 문학이라 일컬어지는 장르와 형식과 모든 관습의 테두리를 의도적으로 탈주하여 문학의 외연과 상상력의 확장을 도모하는 문학 실험실입니다.문예지 이름 앞에 붙은 ‘올-라운드’는 야구 경기에서 전방위 역할을 맡는 선수를 뜻하는 올라운드 플레이어(all-round player)에서 가져왔습니다. 저희 문예지도 문학을 비롯해 여러 예술 장르를 만능으로 종횡무진 한다는 의미를 담고 싶었어요. 또 이름을 들었을 때 바로 ‘문학’을 떠올리지 않았으면 싶은 생각도 반영되었고요.

 

Q. 그렇다면 의도에 잘 맞아떨어진 것 같아요.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에서 TOYBOX를 처음 보았을 때 문예지보다 더 넓은 의미로 예술잡지 같다는 느낌을 받았던 기억이 있거든요. 이런 콘셉트를 기획한 문학스튜디오 무시는 어떤 분들로 구성되어 있는지 궁금해요. 어떤 계기로 함께하게 되었는지도요.

A. 무시에는 문학 전공자와 비전공자가 섞여 있습니다. 현재는 세 명이서 만들고 있는데 각자 기획자, 연구자, 편집자, 강사 등으로 활동하고 있어요. 문학을 좋아하고 문학이라는 경계, 예술 장르 간 경계를 허무는 일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죠. 기존 문학계에 의문을 갖고 있고, 또 진지하게 사수하지 않는 자유로운 사람들이기도 합니다. 저희는 시 수업을 함께 듣다 만나게 되었습니다. 시 수업이 진행되는 동안은 서로 말도 몇 마디 나누지 않다가 뒤풀이 자리에서 독립 출판을 해보자는 이야기가 나와 얼떨결에 팀이 만들어지게 되었습니다. 마침 다들 조금씩 독립 출판에 대한 호기심과 열의가 있기도 했고요. 롤모델이나 경험자가 없어 주먹구구처럼 시작했지만, 열심히 성장하며(?) 지금은 나름의 체계를 만들어 3년째 계속 이어 가고 있네요.

 

Q. 수록된 작품들이 모두 정형화된 틀에서 벗어난 실험적인 작품들로 가득한 것 같아요. 작품을 분류하는 코너명도 남다른 것 같고요. TOYBOX의 전체 구성은 어떻게 이뤄지고 있나요?

A. TOYBOX는 크게 4개의 섹션으로 구성됩니다. 1부는 커버스토리로, 매호의 주제를 심도 있게 다루는 파트예요. 따라서 주제와 기획에 꼭 맞는 글을 써주실 작가분들을 직접 섭외하는 편입니다. 2부 ‘팔짱X팔짱’은 문학을 중심으로 둘 이상의 사람과 사람, 장르와 장르가 각양각색의 방법으로 서로를 침범하고 교차해 탄생한 콜라보레이션 작품들을 담습니다. 3부 ‘문양 : 문학의 모양’은 문학의 형식을 실험하는 형태 실험실입니다. 문학의 외양, 모양을 찢고 비틀어 형식적인 새로움을 만들고 선형적인 읽기를 탈피하는 실험을 담는 공간입니다. 2, 3부의 경우에는 섭외한 작가님들의 작품과 투고해 주신 분들의 작품 중 선정하여 함께 싣습니다. 4부 ‘on-paper(紙-上)’는 문학의 (기존) 영역 경계에서 활동하는 분들의 목소리를 올립니다. 주제와 관련된, 다양한 장르에서 활동하고 계신 분들의 인터뷰 또는 작품을 싣습니다.

 

Q. 책을 처음 접할 때의 첫인상은 아무래도 표지로 정해진다고 생각해요. 그런 점에서 토이박스는, 특히 최근에 나온 4호는 인상적인 디자인인 것 같고요. 토이박스의 책 디자인은 어떻게 정해지는지 궁금해요.

A. 저희 팀의 전반적인 디자인은 ‘물질과비물질’이라는 디자인 스튜디오에서 해주시는데, 지인이기도 한 디자이너님이 문학에도 원래 관심이 많아서 흔쾌히 함께하게 되었어요. 판형은 너무 크지도, 너무 작지도 않되 문학 작품이 잘 담길 수 있는 무난한 사이즈로 정해졌어요. 매호 표지의 경우 팀 내에서 주제와 관련해 어떤 이미지가 좋을지 먼저 기획을 하고, 그 이미지를 구현해 주실 수 있는 작가님을 찾는 편이에요. 내지의 경우는 각 작품을 만드신 작가님과 배치 등의 표현 방법을 의논해서 전달해 드리면 디자이너께서 작업해 주시고요. TOYBOX에 실리는 작품들은 일반적인 운문이나 산문의 형태가 아닌 경우가 많다 보니 그런 경우 작가님과 디자인에 대한 논의를 필수로 진행하게 됩니다. 작가님 본인이 원하시는 방향으로 최대한 구상해서 알려주시길 권장해 드리고요. 전체적으로 저희는 디자인을 굉장히 중요시합니다. 디자인이 잘 되어야 손과 눈이 간다고 생각해요.

 

[caption id="attachment_147029" align="aligncenter" width="640"] 《토이박스》 4호 표지. 1908년 발간된 우리나라 최초 SF소설인 『철세계』의 표지를 리메이크했다.
ⓒ문학스튜디오 무시
[/caption]

 

Q. TOYBOX는 특히 구성이나 디자인 모두 뚜렷한 특징이 있는 것 같아요. 다른 문예지와 다른 TOYBOX만의 장점이라고 생각하는 게 또 있을까요?

A. 어떤 작가가 조금 독특하거나 전형적이지 않은 작품을 만들었을 때 떠올릴 수 있는 잡지라는 점(?)이요. 저희는 문예지를 만드는 데 작가분들이 좀 더 기획자적인 마인드를 가지실 수 있게 도우려고 해요. 작품의 폰트 느낌, 컬러, 구성 등 작가분들이 원하는 내용을 반영해 드리려 하고요. 또 장르명도 작가가 직접 정할 수 있습니다. 시, 소설 같은 일반적인 명칭뿐 아니라 ‘콜라주시’, ‘게임소설’, ‘텍스티미지’ 등 독자적으로 만들어 볼 수 있어요. 이런 시도가 신선하고 신박한 작품, 새로운 기획에 도전해 보는 문턱을 조금이라도 낮추는 역할을 했으리라 생각해 봅니다. 마지막으로, TOYBOX는 참 예쁩니다. 일단 책이 예뻐야 손이 가기 때문에 미적인 완성도를 높이는 데 신경을 많이 쓰고 있어요.

 

Q. 개인적으로 최근 발행되는 문예지 중에서도 가장 실험적인 시도를 하는 문예지가 아닌가 생각해요. 시인, 소설가, 사진작가, 미술가, 디자이너 등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이 참여하고 있기도 하고요. 굉장히 광범위하고 품이 많이 드는 기획이라 생각하는데, 이런 기획은 어떤 과정을 거쳐서 나오나요?

A. 우선 각 호의 주제를 정하면 그 주제와 어울리는 작품의 형태에 대해 편집진끼리 먼저 의논하고 고민합니다. 문학에 어떤 장르를 또 접목할 수 있을지, 이 주제로 이번 호에서는 어떤 문학적 시너지를 낼 수 있을지. 꼭 문학 작가가 아니어도 주제와 밀접한 사람들을 탐색하는 작업에 시간을 많이 들이기도 하고요. 예를 들면 ‘시’는 일반적으로 언어를 기반으로 한 문학(예술) 장르에 속하지만, 그 구분을 조금 비틀어서 음악이나 미술이 어떻게 시가 될지, 또는 시 안으로 녹아들거나 시를 이끌어낼 수 있을지를 생각하면서 실릴 수 있는 작품들을 구상하고 그에 맞게 섭외를 진행합니다. 게임과 섞일 수도 있고, 건축과 결합하거나 무용으로 이어질 수도 있죠. 문예지가 가진 지면과 평면의 한계를 오히려 활용해 더 효과적인 느낌을 주는 방법을 논의하거나 기술적 장치에 대해서 주변에 자문을 구하기도 하고요. 한편 저희는 매호 투고를 받고 있는데, 보내주신 원고 중에는 저희의 예측을 뛰어넘는 멋진 기획과 상상력을 보여주는 작품들이 있습니다. 늘 더 많은 작가분들을 모시지 못해 죄송스런 마음도 가지고 있어요.

 

[caption id="attachment_147030" align="aligncenter" width="640"]《TOYBOX》 4호 발행과 함께 출간 파티가 열렸다.
ⓒ문학스튜디오 무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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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독립 출판과 더불어 독립 문예지 발간이 점점 다양해지고 활발해지면서 문학계에도 어떤 변화를 주고 있다고 느껴요. TOYBOX도 그러한 저변 확대에 기여하고 있다고 생각하고요. 혹시 이러한 변화에 대해서도 어떤 의식을 하고 있을까요?

A. 저희는 독립 문예지로 분류되지만, 요즘은 굳이 독립 문예지로 불려야 하나 생각해요. 저희는 그냥 문예지를 만들고 있을 뿐이니까요. 어쨌든 저희를 비롯한 독립 문예지, 웹진 등 새로운 플랫폼이 많이 생기면서 문학의 가능성이 넓어지는 것 같아요. 작품 활동을 하기 위해 꼭 등단을 해야 하거나 청탁을 기다리는 대신, 직접 나서서 작품을 알리고 활동하는 일들이 많아지니 긍정적이겠지요. 기존 문학계의 여러 폐단을 조금씩 바꿔 나가려는 흐름이 활발한 것 같아요. 최근 활동을 시작하는 분들에 비해 저희는 대단한 문제의식이나 저항정신을 가지고 문예지를 만들기 시작한 것은 아니었지만,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은 공유하고 있었어요. 문학계가 더 나은 쪽으로 가는 방향을 늘 지향하고요. 일례로 저희는 작가 소개에 ‘등단’이라는 말을 쓰는 걸 지양하고 있습니다. ‘~에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 등과 같은 유사한 표현을 쓰기를 권장해 드려요.

 

Q. 기존에 굳어 있던 표현이나 용어를 지양하면서 작은 것부터 바꾸어 가려는 생각이 무척 좋은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덧붙이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자유롭게 전해 주세요.

A. TOYBOX는 늘 리미티드 에디션입니다. 제때제때 쟁여 주세요 :)

 

 

 

    ④ 포근한 밤 머리맡의 문예지, 《베개》

 

    마지막으로 소개해 드릴 문예지는 2017년 5월을 첫 발행으로 시작해 반년간의 주기로 꾸준히 이어져 오고 있는 독립 문예지 《베개》입니다. “평온한 걸 좋아하고 느려도 괜찮다”는 게 베개에 담긴 마음이라고 해요. 《베개》는 20, 30대의 비등단 창작인 다섯 사람과 50대의 조원규 시인이 의기투합하여 시작되었고, 지금은 상근 편집자인 조원규 시인이 이전 호에서 활동했던 ‘베개의 시인들’, 그리고 매호 새로이 소개되는 창작자들과 함께 천천히 상의하여 꾸려 나가고 있다고 합니다. 매번 기획과 편집 과정에 다른 목소리들이 반영된다는 것도 《베개》의 매력인 것 같은데요, 그러면 지금부터 《베개》를 함께 알아보도록 할까요?

 

 

Q. 먼저 《베개》에 대해 간단하게 소개해 주실까요? 그리고 문예지의 이름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도 궁금합니다.

 

A. 반년간지인 《베개》는 2017년 5월에 첫 호를 내고 지금까지 다섯 권을 냈습니다. 최근 발행일은 2020년 올해 3월입니다. 주로 시에 중점을 두고, 그밖에 스케치라 명명한 짧은 산문들, 그림동화, 10분 희곡, 외국문학 관련 에세이, 치유하는 창작을 주제로 한 산문 등을 싣습니다. 책 이름을 정할 때 ‘책인데 베개라고 써 있으면 어떨까?’라고 한 멤버가 물었는데, 따뜻하고 푸근하고 다정한 느낌이 마음에 들어서 모두의 환영을 받았습니다. 평온한 걸 좋아하고 느려도 괜찮다는 기분과 믿음 자체가 《베개》라는 문예지에서 꽤 중요한 부분입니다. 어떤 기분의 뒷받침이 없으면 하지 못하는 일들이 있잖아요. 베개 3호까지는 20, 30대의 비등단 창작인 다섯 사람과 50대 시인인 제가 의기투합하여 함께 만들었는데요, 이후 창간 당시의 모임이 느슨해져서 4호와 5호는 상근 편집자인 제가 호마다 다른 젊은 창작인들의 도움을 받아 내오고 있습니다. 젊고 느슨하고 따뜻하게, 라는 기조가 잡힌 뒤에는 《베개》는 누가 만들든 ‘베개다움’의 길을 갈 거라고 생각합니다. 5호까지 100분의 필자 가운데 80분이 비등단 창작인이었어요. 수록 원고는 공모를 통해 선정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SNS나 주위에서 눈에 띄는 좋은 글을 발견해 원고수록을 의논하는 ‘찾아가는 청탁’을 하기도 합니다. 《베개》를 내고서 재미있었던 일은, 사람들이 《베개》를 쓸 때 상상외로 오타를 많이 낸다는 사실입니다. 배게, 베게, 배개 등, 그럴 때마다 “안 돼! 왜 그걸 틀려?”라며 잠시 안타까워하다가, 뭐 어때, 그래도 상관없지, 라며 웃었습니다. 아무려면 어때, 그래도 괜찮다는 태도 역시 《베개》답다고 생각했습니다.

 

Q. 《베개》는 독립 문예지가 크게 활성화되지 않은 시기부터 쭉 이어져 왔는데요, 어떤 계기로 시작하게 되었는지 궁금해요.

 

A. 창간의 모토가 ‘등단이라는 승인제도를 거치지 않고도 문학하는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지금은 등단, 비등단을 가리지 않는다는 청탁 원칙이 꽤 퍼져 있지만,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새로운 시도로 받아들여졌던 것 같습니다. 이 때문인지 뜻밖에 많은 호응을 받았는데, 문학계의 새로운 흐름과 만난다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등단, 비등단을 가르는 제도적 규정 때문에 열정적인 창작인들이 “나는 아직 아니다”라는 기분에 구속되는 것이 안타까웠습니다. 《베개》 자체가 또다시 위계를 구성하는 좁은 문이 되지 않을 방법을 찾기 위해 애쓰고 있습니다.

 

[caption id="attachment_147032" align="aligncenter" width="387"]베개 로고. 베개가 지향하는 편안함과 따뜻함을 형상화한 듯하다.
©독립문예지 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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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문예지를 만드는 데 어려움은 없었나요?

A. 첫째, 한 호를 새로 낼 때마다 적자가 누적됩니다. 이 사실이 너무 확연해서 평온한 얼굴로 말할 수 있습니다. 어쨌든 독립 문예지 씬의 고정 독자군 말고 새로운 독자와 교감할 방안을 찾기 위해 눈을 굴리고 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5호까지 낸 현시점에서 그간의 활동을 자체 평가하고, 새로움을 도입할 필요를 느끼고 있습니다.둘째, 독립 문예지를 창간한 배경에는, 창작인들이 처한 어떤 다층적인 소외의 조건에 대한 안타까움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어려움이 해소되는 것은 별로 없지 않은가, 라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긴 지면이 필요한 얘기인데, 이 문제에 관해 방향을 탐색하는 일이 모호하고 쉽지 않습니다.창작인에 대한 과거의 관성적인 이해라면 ‘미적 자율성’을 내세우고 ‘사회적 정의’나 ‘아름다움’에 대해 말하는 주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주체성과 어울리지 않는 아이러니한 사회적 소외가 있고 위계적인 문학제도 안에서 타협하는 자기모순이 있습니다.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창작인들이 겉보기에 그럴듯한 주체성을 전시하길 포기한 다음에 가능한 세계에 관한 전망이 필요합니다. 정말 창의적인 무언가가 필요한데, 창의적이란 것은 새로운 생각과 실천하는 힘, 두 가지의 결합입니다. ‘독립’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서 진짜 창의적이지는 못한 것 같다는 느낌이 들 때 어렵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가 창작하는 삶을 산다고 할 때 실제로 하는 일이 무엇인지 성찰하고, ‘한다고 생각하는 일’과 ‘실제 하는 일’을 일치시키는 가운데 가끔씩 행복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소외된 노동으로 이루어진 이 세계에서 의미 있는 한 방향일 수 있을 겁니다. 또 한 가지 덧붙이자면, 문화적인 것과 예술적인 것의 경계에서 후자 쪽으로 한 걸음 내딛은 상황을 상상해 보곤 합니다. 사실 우리는 예술이 죽고 문화만 남은 시대를 살아가는지도 모릅니다. 전자가 고상하고 아름다운 것을 공유하는 체제의 일부로 기능하며 관행적 경로에 의존한다면, 후자는 체제에 대해 바깥을 사유하는 동기, 감정, 자세가 상대적으로 더 강한 편입니다. 독립 문예지가 미소(微小)한 규모에도 불구하고 후자의 면모를 통해 가치를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러자면 낯설고 이해되기 어려우면서도 환영받기를 바란다는 모순이 생겨납니다. 모순은 기만적인 실존으로 이어집니다. 이런 주제에 관해 전망을 갖고 행위하는 독립 문예지는 어떻게 가능할 것인가? 이에 대한 답을 갖고 있지 않다는 점이 가볍고 싶은 독립 문예지 《베개》의 무거움입니다.

 

Q. 어려움도 있겠지만, 여기서 얻는 즐거움도 있을 것 같아요. 《베개》가 오랫동안 이어질 수 있었던 것도 아마 그 때문이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무엇이 이 일을 계속하게끔 하는 힘을 주나요? 이것이 《베개》만의 자랑이다, 하는 것이 있을까요?

A. 밝은 햇빛과 향기로운 풀과 따뜻한 바람 속에서 행복한 것처럼 창작하고 글을 쓰는 사람들의 열의, 무언가에 대한 지향, 성실, 노력 같은 것을 느끼며 행복해집니다. 그 한 매개자의 역할을 한다는 보람 때문에 문예지를 내는 것입니다. 또, 문학/하기에 관한 새로운 기분과 자세를 스스로 구현하여 ‘정말 되는지’를 확인해 보고 싶습니다. 위계 없이 친밀한 자세를 가지려 애쓰고 있고, 용맹 정진하는 비등단 창작가들(약 80퍼센트 비율)의 글로 좋은 책을 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 항상 느리고 아직 죽지 않았다는 것이 자랑입니다. 무리하지 않았기 때문에 계속해 올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우리 모두 편하고 즐겁게 함께해 봐요, 라는 가벼운 기분을 가지려 했고, 발간 주기를 반년간으로 잡아 손해를 적자를 그럭저럭 메우며 버텨 올 수 있었지요. 하지만 정말 롱런하려면 독립 씬의 고정 독자 외에 새로운 독자들을 발견해야만 합니다. 그걸 아직 못 하고 있습니다.

 

Q. 《베개》는 “평화롭고 느슨한 문예공동체를 꿈꾼”다고 소개하는 걸 보았어요. ‘평화롭고 느슨한 문예공동체’는 어떤 모습인지 좀 더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A. 베개와 접촉하는 분들이 평화로움과 느슨함을 느끼고 전달받았으면 좋겠습니다. 《베개》에 글이 실린다고 대단한 이득이나 변화를 얻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우리는 아직 쓰고 있다’라는 동행의, 곁의 존재를 확인하게 된다는 거요, 그런 걸 느슨한 문예공동체라고 표현해 봤어요. 일종의 위계조직 느낌이 아니라 문예지와 필자와 독자가 서로 지지하고 응원하는, 아마추어적이고 종종 퍼스널한 느낌의 관계를 말한 겁니다.

 

[caption id="attachment_147033" align="aligncenter" width="448"] 베개의 책임편집인 조원규 시인. 베개는 책임편집인과 이전호에 참여한 ‘베개의 시인들’, 그리고 매호 바뀌는 창작인들이 함께 상의해 나가며 꾸려지고 있다.
©독립문예지 베개
[/caption]

 

Q. 독립 문예지 활동이 점점 활발해지면서 문학 분야에 새로운 흐름이 조성돼 가고 있다고 느껴요. 독립 문예지가 지닌 가치, 독립 문예지 활동이 갖는 의의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A. 독립 문학계의 개인이나 그룹, 여러 주체들이 저마다의 개성을 지키며 성장해 갔으면 좋겠어요. 그런 주체들이 많아진다는 것은 대안적인 ‘장소’가 생겨난다는 것이지요. 그렇게 장소들이 연결되어 열린 계(界)를 이루면 좋겠습니다.

 

Q. 앞으로의 발간 일정이나 준비 중인 이벤트, 프로젝트 등 활동 계획을 소개해 주세요!

A. 베개》에 실렸던 희곡을 짧은 영화처럼 영상물로 만들어 유튜브 채널에 공개할 계획입니다. <10 minutes>라는 10분 희곡인데 극작, 연기, 촬영에 뜻을 둔 이들에겐 코로나 시국에도 작업을 계속한다는 의미가 있고, 《베개》 입장에서는 영상매체를 통해 독자와 접촉하는 시도를 한다는 뜻이 있습니다.올해 8월에 『지난 여름의 구름』이라는 베개 필자들의 산문집을 냈으니, 이제 ‘베개의 시인들’에게 청탁하여 앤솔로지를 한 권 낼 예정입니다. 다른 한편 《베개》의 필자들만 우대하고 싶지는 않고 독립 문예지 생태계가 활성화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팀의 응집력이 좋아 보이고 작품에도 믿음이 가는 그룹이 있으면 그들의 작품집도 《베개》와 같은 출판사에서 출간하도록 도우려고 합니다. 올해 안에 <팀 유후>의 새 시집 『ㅂㄷㅂㄷㅂㄷ』이 나올 거예요. 연말이나 내년 초에는 《베개》 6호가 나올 건데, 예산이 모자라면 내년 봄에 나올 수도 있겠습니다.

 

Q. 포근하고 풍성한 답변 감사합니다! 덧붙이고 싶은 소개나 말씀이 있다면 자유롭게 전해 주세요!

A. A. 좀 더 두꺼운 베개가 되어 보려 합니다. 《베개》의 투고 이메일(neulbo2017@naver.com)로 좋은 원고를 보내주세요.

 

 

 

    이번 호에서는 이렇게 네 가지 문예지를 함께 살펴보았습니다. 저마다 다양한 지향점과 문제의식을 가지고 문학과 관련된 여러 가지 시도와 실험을 하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었습니다. 문예지마다 뚜렷한 개성은 디자인과 구성에도 드러났는데요, 창작자와 독자의 간극을 좁히려는 노력이나, 문학 내에서의 위계와 경계를 허물고 모두가 ‘즐길 수 있는’ 문학을 꿈꾼다는 점, 창작자가 지치거나 고립되지 않도록 ‘지속 가능한 문학’을 상상한다는 점이 특히 눈에 띄었습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자신에게 맞는 방식으로 문학을 접하고 향유할 수 있도록 〈느린 기린 큐레이션〉도 함께하겠습니다. 자본에 대한 공통적인 고민에도 불구하고 문학에 대한 애정으로 힘쓰는 제작자분들에게 응원의 말씀을 전합니다. 아직 소개해 드리지 못한 문예지들이 남아 있어 〈느린 기린 큐레이션〉은 다음 호에도 문예지 소개로 여러분을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다음 달에 만나요, 안녕~!

 

 

 

 

 

 

 

 

 

 

 

조시현

작가소개 / 조시현

2018년 실천문학 소설부문 신인상
2019년 현대시 상반기 신인상으로 작품활동 시작

 

조온윤

작가소개 / 조온윤

2019년 문화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문장웹진 2020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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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육지에서 쓴 일기 최진영 20240528 4박 5일 동안 육지에서 여러 일정이 있어 오늘 제주에서 서울로 왔다. 앞으로 며칠간 약속과 약속 사이, 출발지와 도착지 사이 시간이 날 때마다 이 창을 열고 단상을 써보려고 한다. Are you checking in? pm04:45. 여긴 충무로의 호텔. 3년 전 제주로 이사 간 뒤 처음으로 서울에 일이 있어 올라왔을 때 숙박한 후 매번 이 호텔만 이용하고 있다. 경기, 인천 지역에서 저녁 행사를 해도 근방 호텔을 잡지 않고 여기로 온다. 새로운 호텔을 검색하고 선택하는 게 번거로워서. 합리적인 위치나 가격을 따지려다가 검색 지옥에 빠져서 몇 시간을 고민한 뒤 결국 이 호텔을 예약했던 경험으로 깨달은 바가 있다. 시간이 돈이다. 더 저렴한 호텔을 찾으려 애쓰지 말고 검색하고 고민하는 시간을 줄이자. 점심시간 무렵 충무로 일대 분위기는 조금 묘하다. 커다란 캐리어를 끌고 거리를 걷는 외국인들과 점심 먹으러 나온 직장인들이 뒤섞이는 거리. 라디오 주파수를 돌리듯 여러 나라의 언어가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서울역, 명동, 한옥마을, 남산, 종로가 가까운 곳이어서 외국인 관광객이 정말 많다. 올 때마다 느끼지만 호텔 투숙객 중 한국인은 나뿐인 것 같다. 한 달에 두어 번은 와서 2박 이상 하니까 나름 단골이랄 수도 있는데 프런트 직원들은 매번 나를 처음 본 손님처럼 대한다(호텔의 특성이겠지?). 체크인할 때도 내게 영어로 말을 건넨다. “give me your passport.” 그럼 나는 “제 이름은 최진영입니다”라고 한국어로 대답한다. 성공한 인생 오늘 아침 9시쯤 택배 문제 때문에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엄마는 전화를 받자마자 놀란 목소리로 “왜 이렇게 일찍 일어났느냐”고 물었다. 내 용건에 개의치 않고 엄마는 거듭 물었다. 전화를 끊고 뿌듯해서 신나게 웃었다. 내 나이 이제 마흔이 넘었는데 아침 9시에 엄마에게 “왜 이렇게 일찍 일어났느냐”는 말을 들을 수 있다니, 이번 생은 성공한 것 같아서. 그건 바로 내 투쟁의 결과다. 거의 20년을 프리랜서로 살면서 남들 다 출근하는 시간에도 ‘성인 평균 적정 수면시간’을 사수하며 꾸준히 늦게 일어나는 생활양식을 차곡차곡 쌓아 온 결과 마침내 엄마도 나의 생활 패턴을 받아들인 것이다. 그래서 아침 9시에 전화하면 깜짝 놀라는 것이다. 나는 이런 게 진정한 성공 같다. 긴장감 저녁에 북토크를 할 예정이다. 사람들 앞에서 말하거나 낭독할 때는 별로 긴장하지 않는 편이다. 내가 긴장하는 순간은 따로 있다. 예를 들면 비행기 탈 때. 기내 짐칸에 캐리어를 올리다가 무거워서 또는 실수로 떨어트려서 누군가를 다치게 할까 봐 매번 긴장한다. 일어날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걸 알지만 식은땀이 난다. 캐리어를 끌고 에스컬레이터 탈 때도 마찬가지다. 에스컬레이터에서 넘어지거나 캐리어를 놓치는 구체적 상상에 시

  • 관리자
  • 2024-07-01
거대한 존재들의 무한한 경탄

[에세이] 거대한 존재들의 무한한 경탄 제이크 레빈 소개 거의 12년 동안 나는 한국 대학교에서 강의를 했다. 지난해부터 강의하는 교사의 내면적 생활과 관련된 일기와 같은 글들을 쓰기 시작했다. 외국인 교수로서 처음 강의를 시작했을 때 모든 것이 낯설고 이방인 같은 느낌이었는데 이제는 한국 문화에 익숙해졌지만 여전히 교수의 삶은 익숙하지 않다고 믿는다. 학생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고 다른 교수의 마음도 이해하기 어렵다. 다른 강의실에 들어갈 때마다 새로운 학생들을 만날 때마다 이전에 만나지 못했던 민족을 만나는 것 같이 나는 죽을 때까지 방랑자처럼 매일 새로운 것을 경험한다. 학교에서는 현실에 경험한 것이 꿈꾸는 것 같고 꿈꾸는 것이 더 현실처럼 느껴지듯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가 가끔은 사라진다. 이 산문은 시나 소설이 아니고 현실의 기록도 아닌 교사로서의 삶의 내면적 반응이다. 교사는 인간이다. 가끔 사회가 인문대 교사의 인간중심주의를 억압한다고 생각한다. 신자유주의의 자본주의는 모든 것을 계산하지만 인문학과 시의 영향력은 계산될 수 없는 가치다. 인간중심주의 가치를 점점 찾기 힘든 사회의 학생들은 학교에서 문화를 배워야 한다. 이 모순적인 긴장의 환경에 존재해야 한다. 학교의 목적은 타인의 인간성을 인정하는 것에 있다. 이 산문은 한 인간의 존재하는 기록이다. 거대한 존재들의 무한한 경탄이라는 제목은 완전한 이해가 불가한 타인의 인간성을 발견하는 것에서 왔다. 이 기록은 내 개인적 경험과 전해 들은 동료 교사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작성하였으며 영어로 작성한 문장을 나의 소중한 학생 김혜인이 나와 함께 번역하였다. 지우개 머리 어떤 날 나는 대답하기 위해 여기 있고, 어떤 날 나는 오직 듣기 위해 여기 있다. “질문 있어?” 많은 학생들이 질문의 형태로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그다지 어려울 것 없는 예술을 배웠다. 그런 질문에 대답하는 유일한 방법은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이 질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질문자가 자신의 질문에 답변하는 동안 사용감 있는 지우개처럼 커피를 홀짝이며 머리에서 머리카락이 떨어지는 것을 느껴 보라. 학생들의 목소리는 배경소리가 되어 가다가, 불현듯 보이스 오버. 지우개는 부러지기 전까지 얼마나 많은 얼룩을 견딜 수 있을까? 숭고한 느낌 지난 몇 주간, 를 듣는 학생들은 책상 아래 숨어 있었다. “교수님, 저희는 불확실성에 머물고 있어요.” 그들은 말한다. 일정 기간 동안 불확실성에 머문 뒤, 한 학생이 책상 아래서 나타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저는 숭고한 느낌을 얻었어요.” 그들이 말한다. “저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아름다움에 압도당해 죽음이 무섭고 두려워요.” “이제 제 핸드폰 돌려주시겠어요?” 정적. 학생이 나를 응시한다. 정적. 나는 천천히 커피 한 모금을 마시고 학생을 응시한다. 흰 두루미 “주말 잘 보냈니?&r

  • 관리자
  • 2024-07-01
아, ‘장르 문학’ 하시는구나

[에세이] 아, ‘장르 문학’ 하시는구나 김용언 미스터리 장르를 좋아하고, 열심히 읽고, 그에 관한 잡지를 만들고, 또 가끔은 관련 공모전 심사를 보면서 언제나 느끼는 바가 있다. 한국에서 미스터리 장르에 대한 이해도는 여전히 심각하게 척박하다는 점이다. 가장 모순되는 감정을 느끼는 순간은 ‘장르 문학’이라는 단어를 들을 때다. ‘(그냥) 문학’1)의 카테고리에 속하지 않는 나머지 소설들은 굳이 ‘장르 문학’이라고 불린다. SF, 판타지, 미스터리/스릴러, 로맨스, 공포, 무협 등의 꼬리표가 붙고 낱낱이 분류되며 ‘문학은 문학이지만 그냥 문학이라고 부르기보단 그 안의 장르로 명명되어야 하는’ 존재가 된다. 의문이 생긴다. 그렇다면 장르 문학에 속하지 않는 작품은 그냥 문학이 아니라 ‘비장르 문학’이 되어야 하지 않는가? 아니면 순문학 역시 일종의 장르임을 인정하면서 모든 작품을 ‘장르 문학’이라고 불러야 하는 건 아닐까? 예전 한국 문단에서는 ‘순(純)’이라는 단어가 참여 문학/민중 문학 등의 대립항처럼 불렸다고 하는데, 지금에 와서는 참여 문학/민중 문학도 ‘그냥’ 문학에 포함된 것 같다. 아무튼 거칠게 말해서 ‘장르’를 사용하지 않고 인간과 현실 자체에 집중하는 소설을 ‘그냥’ 문학으로 호명한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장르’로 호명되는 특정한 이야기들에는 그 장르가 만들어지게 된 역사가 있고 또 그 안에서 통용되는 특정한 규칙이 존재한다. 그런 약속된 구조와 규칙을 이용해서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낸다고 해서, 그 결과물이 ‘그냥’ 문학으로 불릴 수 없고 장르 문학으로만 불려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오해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나는 장르 문학도 문학임을 인정하라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기 위해 이 글을 쓰는 게 아니다(그건 너무 당연한 사실이기 때문에 굳이 받아들여 달라고 애원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그 장르 문학 업계에서 일하는 사람으로서 불편해지는 순간들이 자꾸 찾아온다. 이를테면 한국 작가의 소설이 해외로 번역되었을 때 현지 리뷰들을 찾아보면, 스릴러/미스터리/공포 등의 명칭을 명확하게 부여하면서 소개한다. 한국에서는 기존 등단 작가들의 작품을 소개할 때 ‘추리적 기법을 활용한’ 또는 ‘경계를 넘어선 상상력을 발휘한’ 등의 애매모호한 문구로 시작할 때가 많은데, 해외에서는 자신들에게는 낯선 작가의 번역 작품의 특성을 단번에 설명하기 위해 ‘이것은 스릴러다’ 또는 ‘이것은 공포소설이다’라고 알려준 다음 그 작품의 특성이 어떤 점에서 새롭고 멋진지를 차근차근 설명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여전히 장르 문학과 장르 아닌 ‘그냥&r

  • 관리자
  • 2024-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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