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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분야 창작 발표 및 유통 확대를 위한 공공 플랫폼 제2차 좌담

  • 작성일 2020-01-08
  • 조회수 2,861

[기획특집 / 좌담]

 


    본 좌담은 2019년 7월 중 페이스북을 통해 작가들에게 도움이 될 온라인 플랫폼의 가능성에 대한 의견을 개진한 김서령 작가의 글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등단제도, 출판과 결합된 문예지 시스템 등 기존 문학장의 물적 토대를 이루는 체제의 한계적 상황, 매체 환경의 변화에 따른 작가의 존재 양식 변화와 문학 생태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독자들의 등장 등 최근 한층 강화되고 있는 문학계 내의 흐름과 변화에 부응하여 해당 의견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학지원부의 검토를 거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현장소통소위원회에 상정되어 주요 의제로 논의되었다. 이후 지금까지의 정부의 문학 지원 방식에 대한 전반적인 점검과 함께, 작가는 물론 문학 생태계 내의 다양한 주체들이 함께 참여함으로써 모두에게 이득이 되는 새로운 방식의 지원 패러다임의 가능성을 타진해 보기 위해 현장소통소위원회 주관으로 마련된 이번 좌담은 모두 세 차례(11.18, 12.16, 12.27)에 걸쳐 진행되었으며, 그 내용은 1.1, 1.8, 1.15, 모두 3회로 연이어 게재할 예정이다.
    끝으로, 이번 좌담에 귀한 의견으로 참여해 준 모든 분들께 감사드리며, 이 논의가 보다 많은 분들이 참여하여 생산적이고 발전적인 단계로 이어질 수 있기를 바란다.

  ⁃ 좌담 참여자 명단(회차별, 가나다순)
     · (1차 좌담) 김대현, 김서령, 오창은, 이민호, 이설야, 정훈교, 황규관
     · (2차 좌담) 김지윤, 박서련, 박소란, 신지영, 유희경, 허 희
     · (3차 좌담) 김미정, 김태형, 배명훈, 최진석, 최하연, 하명희



 

 

문학 분야 창작 발표 및 유통 확대를 위한
공공 플랫폼 제2차 좌담

플랫폼 기반 사업의 가능성과 올바른 방향설정을 위해·Ⅰ

 

 

사회자 : 허희(문학평론가)
좌담자 : 김지윤(시인, 문학평론가), 박서련(소설가), 박소란(시인),
유희경(시인), 신지영(아동문학가)

 

 

 

 

허 희 : 안녕하십니까, 문학 분야 창작 발표 및 유통 확대를 위한 공공 플랫폼 제2차 좌담회를 시작하겠습니다. 저는 오늘 진행을 맡은 문학평론가 허희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본격적인 이야기를 나누기에 앞서 먼저 참여하신 분들 돌아가면서 각자 간략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박소란 : 시 쓰는 박소란이라고 합니다. 프리랜서로 책 만드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반갑습니다.

 

김지윤 : 반갑습니다. 저는 문학평론도 하고, 시도 쓰고, 강의도 하는 김지윤이라고 합니다.

 

박서련 : 안녕하세요. 소설 쓰는 박서련입니다. 온라인 문학 플랫폼 '던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유희경 : 안녕하세요. 저는 시인 유희경이구요, 작은 서점을 하나 운영하고 있습니다. 반갑습니다.

 

신지영 : 저는 신지영이구요, 청소년 소설과 동화를 쓰고 다원예술단체 대표로 있습니다.

 

허 희 : 다양한 분야에서 일하고 계신 분들이 모여서 문학 플랫폼에 관련된 여러 좋은 말씀을 해주실 거라 생각하는데요, 먼저 김지윤 선생님이 준비하신 기초 통계 자료에 대한 말씀 부탁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김지윤 : 네. 주로 2018년도 통계를 모아서 정리하려고 한 것이고, 일부분 구할 수 있었던 2019년도에 집계된 자료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전국 문학인의 활동여건과 활동실태, 복지 수요 등을 파악하여 새로운 문학 지원 정책 수립을 위한 기초 자료로 활용하고, 연속 좌담회 추진에 앞서서 문학 분야 창작자 및 생태계 전반의 흐름과 경향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또 지원 정책이 앞으로 어떻게 방향성을 정립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시사점을 도출하기 위해서 향후 발전적 논의를 위한 참고 자료로 제공하기 위해 했던 조사입니다. 사실 문학 단체들이 비영리 단체들이 많고 관계자분들도 고용된 직원이 아니다 보니 회원 전체 명부나 통계 자료를 작성할 수 있는 주체가 불분명해서 아주 정확한 전수조사를 하는 것이 힘들었어요. 그 점을 감안하고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향후 문학인의 수를 집계하는 방안에 대해 논의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전국 문학인 수와 발표 지면 등을 대략적으로 파악하여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시사점을 확보하려고 이 조사를 시작하였습니다. 한국 예술인 복지재단 등록 예술인 55,177명 중 문학인의 수는 전체의 8.63%에 불과합니다. 총 7,189명입니다. 문학인의 전체 수는 50년~70년대에 급속히 증가하여 정점을 이루다 1970년대 이후로는 점차 감소를 보입니다. 2016년에는 큰 증가를 보였으나 2017년에는 전년에 비해 370건 증가한 데 그쳐 폭이 작았고, 그 이후로는 문화예술계 증가 추세에서 문학의 증가폭이 다소 둔화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문학인 성비 같은 경우는 1950년대부터 여성 문인의 수가 남성 문인을 넘어서기 시작하는데 90년대부터 다시 비슷해지다 현재는 여성이 다소 더 적은 양상을 보입니다.
    문학 활동 장르별 종사자 비율을 보면 시가 46%로 가장 많고, 소설 20%, 수필 11%, 아동문학 15%, 평론 3%, 희곡 0.7%입니다. 그런데 복수 응답으로 그동안 활동한 문학 장르를 모두 기재하게 했을 때, 시 78.4%, 소설 36.2%로 높아집니다. 타 문학 장르를 병행하거나 장르 전환을 한 문학인들이 많다는 것을 추정할 수 있습니다. 한 분야에만 종사해서는 문학 생태계에서 존립이 어려운 점이 있을 것입니다. 연령별로 살펴보면 시와 수필은 나이가 많을수록 그 비율이 커졌고, 소설은 그와 상반되게 20, 30대의 비중이 높았습니다.
    한국작가회의 기준으로 단체 가입 문학인 수는 2,336명입니다. 주로 50, 60대가 많습니다. 20대 이하의 비율이 미미하고 30대도 낮아 젊은이들의 참여가 저조함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단체 내 문학인 연령의 고령화가 나타나는데 청년층이 기존 단체 가입의 필요성을 적게 느끼며 가입 이후에도 그들이 활동할 폭이 협소함을 알 수 있는 지표가 됩니다. 한국작가회의에 가입한 문학인의 연령, 장르, 성별 비율을 살펴보면 장르 중 시가 63%로 압도적으로 많으며 장르의 편중 현상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성별 분류에서는 여성이 조금 더 적은 편이고, 지역별 분류에서는 경기와 인천을 포함하여 서울 수도권에 거주하는 문인의 수가 비수도권에 거주하는 문인의 수와 거의 대등하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문인이 서울 수도권에 거주하며, 비수도권의 문화적 인프라가 다소 열악하다는 사실을 드러냅니다.
    한국문인협회 가입 문인 수는 2019년 11월 14일 집계로 14,621명입니다. 예술인 복지재단 등록 문학인의 수가 7,189명이라는 사실을 고려할 때 예술인 복지재단 미등록 상태로 활동하는 문인 수가 적지 않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는 많은 문학인들이 복지제도를 잘 모르거나 복지재단 가입, 예술인 증명 과정 등의 복잡함 같은 이유로 인해 가입하지 않았음을 짐작하게 합니다. 이를 뒷받침해 주는 것이 예술인 복지카드 보유율로 등록한 문인들 중 51.7%가 예술인 복지카드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20, 30대 젊은 문인 중심으로 보유율이 높은데 특히 20대는 91.3%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고령층 등 많은 문인들이 정보 및 복지 혜택에서 소외되어 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전국 문학 단체 현황을 살펴보면 특정 지역에 문학 단체가 편중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서울에 12개, 부산에 14개, 대전에 55개가 몰려 있습니다. 서울의 경우 9개가 사단법인이고 3개가 재단법인입니다. 모두 법인화되어 있으나, 부산은 14개 중 비영리 법인 5개, 비영리 민간단체 6개, 미승인 단체 3개로 전부 승인되지 않았거나 비영리 단체입니다. 강원의 경우는 6개 단체가 존재하며 모두 사단법인이나, 이효석, 박인환 문학선양회 등 특정 문인 기념사업 위주입니다. 경기와 같은 경우 8개 단체가 존재하는데 역시 홍사용, 황순원, 이호철, 고은 등 특정 문인 기념사업회나 재단입니다. 전체 문인을 포괄하는 문학인 단체가 경기도의 인구 수 대비 현저히 적습니다. 대전 같은 경우 문학 단체의 수가 55개나 되지만 사단법인은 4개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미승인 단체입니다. 그나마 다른 지역은 문인 단체의 수조차 매우 적어서 대구는 1개 단체만 존재하며 인천 4개, 광주 8개, 울산 7개에 불과합니다. 지역 전체 인구나 문학인 수 대비 단체 수도 적지만, 그나마도 지역별로 편중되어 있는 데다 그 내부에서도 장르별, 연령별로 편중되어 있어 전체 문인들의 실제적인 소통과 연대의 장이 되기 어렵고, 비영리, 미승인 단체가 많아 운영에도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전국 발간, 유통 문예지 수 통계를 보면 한 해 동안 발행된 문학잡지는 총 715종, 1,956권입니다. 문학잡지 권수를 기준으로 보면 계간 발행이 871권으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고, 종당 발행 권수가 가장 많은 월간 잡지가 458권으로 두 번째로 많은 비중을 차지했습니다. 이 중 시를 주로 다룬 잡지가 538종(75.2%)입니다. 이어서 수필/산문을 주로 다룬 잡지가 86종(12%), 평론/인문연구서를 주로 다룬 잡지가 79종(11%)이었습니다. 소설이 대표 장르인 잡지는 11종, 희곡/시나리오는 1종으로 나타났습니다. 장르별 구분을 보면 시와 소설이 70%에 달하지만 성장률로 볼 때 2012년에 비해 2016년에 시 장르의 성장 비율이 현저히 높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증감률이 152.3%인데요, 이는 소설 장르의 증감률인 36.8%의 5배에 가까운 수치입니다. 또한 출판 쪽에서는 베스트셀러 목록에 거의 에세이가 들어가 있는데 수필 및 기타 장르의 약진이 두드러짐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에 비해 희곡과 평론, 인문연구서의 경우 매우 열악한 상황에 놓여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문화체육관광부 정기간행물 등록관리시스템을 기준으로 문예지 종류와 창작자 발표 지면을 보면 격월간, 연2회간, 월간을 합쳐도 189종에 불과해 대부분 계간지 시스템에 의존하고 있음을 알 수 있어요.
    문학잡지에 게재된 작품 수로 보면, 총 154,915편 중 가장 많은 장르는 116,215편이 게재된 시이며, 전체 작품 수의 75%를 차지합니다. 이어서 수필/산문이 16.9%, 평론/인문연구서가 4.9%로 게재되었습니다. 소설은 3,437편이 게재되어 2.2%, 희곡/시나리오는 147편 게재로 0.1%의 비중을 차지했습니다. 총 1,956권의 문학잡지 중 단일 장르는 258권이었고, 혼합 장르가 1,698권으로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합니다. 혼합 장르의 문학잡지에서도 전체 1,698권 중 시가 1,385권으로 81.6%의 압도적인 비중을 보였습니다. 시가 대표 장르인 잡지 1,419권 중에서는 계간지가 652권 45.9%로 가장 많았고, 소설을 주로 다룬 36권의 잡지 중에는 14권이 계간으로 38.9%를 차지하며 가장 많은 비중을 나타냈습니다.
    계간지 시스템의 비중이 매우 크다는 것은, 문학인의 문학 입문 경로에 대한 통계 조사 결과 문예지 추천이 46.4%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사실에서도 드러납니다. 우리 문학계의 계간지 의존도가 높은 이유를 설명해 주는 점이 있습니다. 문예지가 신규 문학인 형성의 산실이 되고 그 이후 해당 잡지 등단 문인들에게 작품 지면을 확보해 주는 과정에서 외부 문인들의 지면이 더 축소되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런데 총 268개 문학 계간지 중 소설 전문 계간지는 3종밖에 되지 않습니다. 월간, 격월간, 연2회간을 모두 합쳐도 4종에 불과하므로 소설 지면이 매우 부족할 것이라 추정됩니다. 그에 비해 시 전문 계간지는 52종, 월간, 격월간, 연2회간을 모두 합치면 82종이나 되죠. 그리고 위에서 보듯 작품 발표 편수도 많기 때문에 소설이나 기타 장르에 비해 발표 지면이 많은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여러 통계조사 결과를 볼 때 시인의 수가 월등히 많다는 것을 알 수 있고, 그러므로 역시 지면이 한정되어 있음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한 명이 대개 한 잡지당 신작시 1, 2편 정도를 발표할 수 있고, 국가문화예술지원시스템에 등록된 시인만 최소 4,000명 이상이라는 사실과 소수의 유명 시인이 다수의 지면에 실린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집계되지 않은 문인 수까지 고려하면 비활동 문인 수는 훨씬 상회할 것이므로 한 명당 발표 가능 지면을 확보할 수 있는 기회는 1회 미만인 경우가 많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제는 문학 분야 지원사업 현황을 보겠습니다. 아르코 문학 분야 사업 중 가장 높은 금액의 사업이며 지원자 비율이 77.2%에 달하는 큰 사업인 아르코문학창작 지원사업은 2019년 현재 1,440건 신청에 80건 선정으로 선정률이 5.6%이고 경쟁률이 18대 1로 2014년 경쟁률(9.6대 1)에 비해 두 배 이상 높아졌는데요, 2022년까지 2년 내 개인 작품집 발간 계획이 있는 작가여야 합니다. 등단한 신인이 5년을 기점으로 작품집을 2년 내 출간하기 위해서는 시의 경우 50~60편, 단편소설의 경우 10편 정도의 작품을 이미 보유하고 있어야 하고 출판사와 출판계약을 하기 위해서는 여러 문예지에서 작품을 연달아 발표할 만큼 인지도를 확보한 상태여야 가능한데 현재는 발표 지면이 한정되어 이것이 쉽지 않습니다.
    예술인 실태조사를 살펴보면 문학인의 수입 중 예술활동 수입은 연평균 214만 원에 불과하여 안정적으로 창작에 전념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문학만으로 생계유지가 어려워 타 직업을 겸하는 겸업작가가 53.1%인데, 고용 형태는 프리랜서가 30.9%로 가장 많고 전체의 66%가 비정규직, 일용직이라서 직업적 불안정성이 큽니다. 30대 문학인의 경우 정규직 비율은 15.8%에 불과합니다. 창작 공간 보유 비율도 59.4%로 40% 이상의 문학인은 창작 공간을 확보하지 못한 불편한 환경에서 창작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예술인의 불안정한 창작 환경과 이에 따른 지원의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는 것은 아르코문학창작기금 지원율이 꾸준히 상승하고 있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문학 창작 활동을 하지 못하는 문인의 경우 예술인 활동 증명을 받지 못해 복지 혜택에서 배제되고 있는데, 창작 중단 원인이 경제적 문제와 발표 지면의 한계라는 점에서 발표 지면의 확대와 경제적 곤란 해결이 필수적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나온 여러 통계조사 결과로도 발표 지면의 부족 문제가 드러나지만 아르코문학창작기금사업운영 개선 설문조사 결과 과반수 이상의 문인이 문예지 등 작품 발표 지면 연계 지원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피력했는데, 설문 조사에서 사이버문학 광장을 개방하여 활용하게 해달라는 요구가 높았다는 점도 주의 깊게 살필 필요가 있습니다. 기존 문예지 시스템의 한계로 줄곧 지적되어 온 발표 지면의 부족이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공간성 확보를 통해 해결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또한 전자책이나 온라인 디지털 매체는 그 접근성에 있어 공공성을 담보하고 있어 새로운 문학 생태계를 형성할 가능성도 내포하고 있다는 점에서 시사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아르코 신청 분야 창작 활동 시작의 예시를 보면 약간의 변화가 있는데 기존의 신춘문예 당선, 문예지 신인문학상 수상 외에도 전자책을 출간한 경우, 온라인 디지털 매체에 작품을 발표하는 경우도 등단으로 인정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는 매체의 다변화, 문화예술 장르에 대한 보다 폭넓은 인식 변화와 관련하여 나타난 현상으로 판단되고, 이러한 경향에 발맞추어 기존의 등단제도나 문예지 신인상, 출판 시스템에서 탈피하여 새로운 플랫폼이 출현해야 할 필요성을 제기합니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은 기존의 문예지 시스템은 독자의 개입이 가능하지 않은 구조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소통의 여지가 적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이와 대조해 볼 수 있는 것이 최근 등장한 웹진들입니다. 기획 단계에서부터 독자와의 소통을 상정하고 있으며 플랫폼 자체가 양방향적 소통이 가능한 시스템을 갖추고 있어 문예지의 일방향성을 보완하는 점이 있습니다. 이에 2019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화예술진흥기금 문예지 발간 지원사업에 웹진이 신규 지원 대상으로 포함되어 지원의 확장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이제는 문학 분야 신간도서 통계 현황을 보겠습니다. 〈2018 출판산업실태보고〉를 보면 신간도서의 수가 많다 해도 일반도서보다 교과서 및 학습서적 출판업이 훨씬 성행하고 있음을 알 수 있고, 일반도서 중에서도 문학의 입지가 그리 높은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 확인됩니다. 수도권에서 출판된 단행본 10,920권 중 5,724권이 소설 장르로 전체의 52.4%를 차지해, 수도권에서 가장 많이 출판된 장르로 나타났습니다. 아까 언급한 것처럼 소설은 문예지 발표 지면이 매우 적은 대신 단행본 출판으로 주로 독자를 만나고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문예지 발표 등으로 인지도를 높여야 출간이 가능하다는 것을 고려할 때 많은 소설가들이 발표 지면 협소로 출간의 어려움도 겪고 있을 것이라 예상 가능합니다. 시는 단행본 출판이 2,695권으로 24.7%를 차지하는데, 발표 지면은 타 장르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더 많은 것처럼 보이지만 그에 비해 시집 출간 수가 적습니다.
    그런데 비수도권에서 출판된 단행본을 보면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 것이 발간 권수가 716권인 시 장르로 58%를 차지해 수도권과 매우 다른 양상을 보입니다. 비수도권 출판사가 시를 더 많이 출판하고 있음을 알 수 있고 독자층이나 지방 문인들이 시를 많이 창작하는 것의 방증일 수 있습니다. 특히 시 장르에 있어서 지방 쏠림 현상이 두드러지고 수도권 메이저 출판사들이 주로 발간하는 것이 소설이라는 것을 볼 때 시 장르의 경우 중앙 문단과 지방 문단이 분리되는 문제가 있음을 알 수 있고, 소설의 경우 비수도권에 거주하는 문인들이 출간할 통로가 사실상 적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소설 전문 문예지 역시 매우 적기 때문에 비수도권 거주 소설가들이 발표할 지면이 협소할 것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신간도서 출판 통계를 계속 보면, 전자출판 산업의 약진이 눈에 띄는데요. 종이책이 약 40%, 전자출판은 약 46%로 성장하고 있음을 알 수 있으며, 전자출판 제작업과 전자출판 서비스업의 경우도 2013년과 비교해 볼 때 꾸준한 증가 추세를 보입니다. 그러나 전자책 같은 경우 장르문학과 만화, 잡지 비율이 높았습니다. 계속 성장하고 있는 온라인 서점의 구매는 이제 모바일로 이동하는 추세인데, 이미 온라인 서점 매출의 50% 정도가 모바일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통계조사 결과들로도 문학 생태계의 변화가 짐작되지만 그밖에도 몇 가지 더 짚어 보겠습니다.
    2018 하반기 출판산업 동향을 보면 문고본의 새로운 변화와 가능성이 돋보이는데, 2010년 이후 민음사 '쏜살문고', 창비 '청소년 문고', 우유출판사 '땅콩문고' 등 판형과 디자인이 다양하고 기존과 다른 방식이며 책 주제나 성격의 범위가 줄어들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작고 가벼운 것을 선호하는 스마트폰 동조화 현상을 드러냅니다.
    최근에 바뀌고 있는 또 하나의 특징이 독립 서점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동네서점 애플리케이션 서비스를 운영하는 퍼니플랜이 발표한 '2017 독립 서점 현황조사'를 보면 조사 기간 내 문을 연 전국의 독립 서점은 총 277곳인데 서울시에 위치한 독립 서점이 그중 128곳으로 전체의 49%로 나타납니다. 다음은 경기도 30곳으로 11.7%, 부산 15곳으로 5.8%, 대구광역시와 제주특별자치도가 10곳으로 3.9%였습니다. 이 숫자는 조사 기간 이후 더 증가했다고 볼 수 있는데 부산의 경우 2018년 6월 기준 26곳에 달했습니다. 독립 서점 창업은 개성 있는 도서 큐레이션, 문화 행사 등을 열어 젊은 세대의 눈길과 발길을 잡아끌 수 있다는 배경도 있습니다. 또, SNS 채널을 통해 역주행하는 책들이 베스트셀러 목록에 등장하며 넷플릭스, 음원 사이트 등에서 시행되는 정액제 구독 모델이 전자책 시장을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SNS가 문학, 독서 활성화 방안으로 활용되고 온라인 서점들도 팟캐스트, 유튜브, 오디오 클립 운영 등을 통한 책 알리기에 주력하며 SNS를 통한 작가 인터뷰, 낭독회 등으로 독자와 거리를 좁히는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이런 조사 결과들은 문학 생태계의 변화를 시사하며 새로운 문학장의 출현 등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지표가 됩니다.

 

허 희 : 김지윤 선생님 고생하셨습니다. 일목요연하게 설명해 주셔서 저희가 논의할 점을 간추려 볼 수 있을 듯합니다. 요약해 보면, 한국의 문학장은 지역․연령․장르․매체가 편중되어 있고 이로 인한 플랫폼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는 것인데요. 지금부터는 저희가 온라인 플랫폼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나눠 보려고 합니다. 선생님들께서 자유롭게 의견을 말씀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박소란 : 이상적인 플랫폼이 생기면 좋겠지만 자료들을 다 읽고도 사실상 구체적인 형태가 그려지지는 않았어요. 아마도 플랫폼이 지면 제공을 비롯해 작가 지원, 작가 에이전시, 작품 아카이브 등 너무 많은 역할에 대한 목표를 설정하고 있기 때문인 것 같은데, 과연 실현 가능한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선 작가 지원사업과 관련해서 이야기를 하자면, 사실상 지원금을 받는 게 당장 작가에게는 가장 든든하거든요. 그런데 이런 지원금들이 작가의 자생력을 기르는 데에는 별반 도움이 되는 것 같지 않아요. 저는 플랫폼이 생기면, 일차적으로 작가의 자생력을 기르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으면 합니다. 예를 들어 단순히 높은 고료를 지급해 작가들의 발표 의욕을 고취시키는 것보다 여러 프로그램을 통해 작가가 문학장을 넘어 일반 대중에 보다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그 활동 폭을 넓히는 곳으로 기능한다면 좋겠습니다.

 

유희경 : "작가가 활동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야 한다"는 박소란 시인의 의견에 적극 동의합니다. '플랫폼'은 근본적인 일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플랫폼을 만드는 것이 아닌, 여러 플랫폼이 생기는 일을 지원함에 보다 집중하는 것이 어떨까 싶습니다. 하나의 플랫폼으로 집중이 된다는 건 위험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지난 10년 동안 여러 서점과 언론기관에서 다양한 매체를 만들었지만, 성공적인 결과를 얻어냈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웹이 현재의 소설 형태를 수용하는 데에 분명한 한계가 있다는 것이 입증되었다고 봐야겠지요. 거의 대부분 한 가지 시도였고 그 시도는 '안정성'을 최우선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양성, 자율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플랫폼이 만들어져야 합니다. 종이든, 웹이든, 영상이든, 소리나 몸짓이든 관계없이 기존 출판 시스템에서 독립된 여러 매체들 말입니다. 뜻있는 사람들이 모여서 플랫폼을 창출하고, 작품을 게재할 수 있고, 더 나아가서 고민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것. 그게 중요해요.

 

 

신지영 : 저는 실제로 몇 년 전부터 출판사 편집자분들에게 작가와 독자가 직접 교감할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들어 보자고 제안을 했었는데 출판사에서는 이 문제에 대해서 아직까지 안일하게 접근하는 거 같아요. 나이 드신 편집자분들은 웹보다는 물성을 가진 종이책에 대한 애정이 훨씬 많더라구요. 그리고 일단 플랫폼을 만들려면 비용이 들고, 아무래도 상업성을 중시하다 보니 이 플랫폼을 사용해서 어떻게 생산적으로 돈을 벌 것인가를 고민하셨어요. 그런데 그중에서 가장 긍정적으로 이야기가 됐던 데는 오히려 문학 분야보다 교양과 교육도서를 많이 내는 출판사였어요. 그런데 그곳에서도 온라인이나 웹진 이런 플랫폼을 만들 때 과연 어떻게 독자들하고 교감할 것인가 이런 것들을 고민하시더라고요. 기존의 문학 쪽 관계자보다는 교양과 교육에 관련된 관계자가 훨씬 이쪽에 관심을 가지셨어요. 아무래도 독자들과 피드백이 더욱 활발한 분야이기 때문인 것 같아요. 사실 읽는 것이 축소되었다고 하는데 옛날보다 지금이 더 많이 읽고 쓰는 것 같아요. 다만 어떻게 읽고 쓰느냐에 대해서는 저희가 좀 더 생각을 해봐야 할 것 같아요.

 

박서련 : 최근에 '92년생 김지영은 더 이상 책을 읽지 않는다'라는 기사를 봤어요. 기존 출판 시장에서 구매력이 있었던 20, 30대 여성들의 도서 구매력이 이전에 비해 감소했다는 점을 다룬 기사였던 걸로 기억해요. 그에 대한 반박으로 어떤 네티즌이 도서 구매가 이제는 책을 더 이상 안 보는 게 아니라 웹 소설을 읽는 거지, 라고 해서 무릎을 탁 쳤던 기억이 있습니다. 텍스트 소비의 방식이 완결, 완간된 종이, 전자책 대신 연재 형태의 웹 소설 구매로 바뀐 거지요. 즉 플랫폼의 이동이 일어난 것이지 기존 독자층이 더 이상 텍스트를 소비하지 않는다는 의미는 아닐 거라고 생각합니다.
    앞서 온라인 문학 플랫폼이 구체적으로 그려지지 않는다는 말씀이 있었는데, 제가 참여하고 있는 '던전'을 예로 들어 쉽게 표현하면, 웹툰 포탈을 떠올리면 될 거 같아요. 요일별로 새로운 작품이 업데이트되는 방식이죠. 시 기준으로는 한 편, 단편소설 같은 경우는 웹 소설의 규격을 참고해 3,000자에서 4,000자를 한 회로 제공하고, 유료 회원의 경우 먼저 접근할 수 있는 권한을 주는 회원제 시스템을 생각하고 있어요.
    모델로 구상하고 있는 웹툰 포탈만 해도, 2000년대 초반에 만화를 매일 공짜로 보여주는 것이 가능한가에 대한 비판이 많았던 걸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에게는 너무 당연한 이야기가 되었고, 02, 03년에 태어난 사람들은 이미 웹툰과 웹툰 플랫폼이 존재하는 세계에서 소비하며 살고 있잖아요. 앞으로 어떤 콘텐츠든 웹 플랫폼을 통해 이용하는 것이 너무 당연한, 그것을 기본으로 생각하는 세대들이 소비를 시작할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조금 뒤늦은 감이 있지만 문학도 그것을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김지윤 : 저도 이러한 플랫폼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방금 전 조사 결과에서도 알 수 있듯이 지금 문단에는 여러 분열과 단절이 존재합니다. 지방 문단과 중앙 문단이 서로 단절되어 있고, 한 시스템 안에 속해 있는 사람끼리도 단절되어 있어요. 장르 간에도 서로 소통되지 못하는 단절이 있어요. 평론 같은 경우도 평론가들이 모여서 비평 그룹으로서 담론을 형성했던, 그런 공간을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예전에는 평론 등단 공모 시 영화 평론, 만화 평론 등 다양한 선택이 가능했고 외국 문학도 가능했다면 지금은 문학, 그중에서도 한국 문학으로 협소해진 점이 있지요. 물론 사회 내 문학이 소외되고 침체된 데 그 원인이 있지만, 문학이라는 큰 장 안에서 서로 소통하고 담론을 형성할 수 있는 채널이 부재해졌기 때문에 만일 새로 등장하는 플랫폼이 출판사와 작가와 독자를 서로 연결하고, 행사와 강연, 신간 출간 등의 정보를 공유하고 홍보하며 담론을 형성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한다면, 문학의 큰 '생성장'으로서 기능할 수 있을 거라고 봅니다.

 

 

허 희 : 저는 지원 방향 2단계와 3단계를 더 중점적으로 논의해 보고 싶습니다. 지원 방향 1단계는 공고를 하고 지원을 받아 심사위원이 심사하여 원고를 제공하는 플랫폼의 형태인데요. 지금 문장에서 이미 하고 있죠. 중요한 건 2단계, 3단계에 있습니다. 비평가․출판사․독자 등 문학장의 개별 주체들을 참여시키고자 할 때, 이를 어떠한 형태로 운영해야 할 것인지 여쭙도록 하겠습니다.

 

신지영 : 쓰기의 다양성에 관하여 플랫폼을 만들 때 반영해야 할 부분도 이전과는 다르게 좀 더 소통을 다각화시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일방적으로 비평가가 골라내서 읽히게 한다든지 그런 식보다는 여러 가지 루트를 두고 평론가가 할 수도 있고, 독자 중심으로 할 수도 있고, 작가 중심으로 할 수도 있고, 이런 식으로 쓰기 형식에 대한 다양한 판단을 열어 보고 봐도 좋다는 생각이 듭니다.

 

유희경 : 그런 점에서 선발이라고 하는 방식은 굉장히 신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선발이라는 것은 결국 '문장' 웹진화예요. 결국 고른다는 거잖아요. 누가 고르겠어요? 예전에 조선일보에서 장르문학상을 만들었을 때, 그때 순문학 하는 분들이 심사위원이었어요. 그래서 아까 제가 말씀드렸듯이 여러 가지 세밀하게 층위를 나눠 놓고, 각자 자기들이 택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거예요. 나는 독자들에게 평가를 받고 싶어, 아니면 나는 비평가들에게 선택을 받아 보겠어, 이렇게 심사 과정을 섬세하게 세분화시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김지윤 : 위계나 권위와는 관계없이 다양한 취향과 선호를 보여줄 수 있는 선발이어야 할 것 같아요.

 

신지영 : 그러기 위해서는 제한된 독자 풀에서 소비되는 것이 아닌 다양한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야 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다음이나 네이버 등의 포탈과 연계시키면 좀 더 많은 사람들이 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박서련 : 지원 방향 3단계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작품 콘텐츠 가공 같은 것이 현재 '브런치'에서 시도하는 것과 비슷해 보입니다. 가장 반응이 뜨거운 콘텐츠 10종 정도를 뽑아 종이책 제작 등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이 있는데, 민음사 등의 대형 출판사도 참여하고 있는 기획이고, 앞으로도 해마다 한다고 하더라구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플랫폼을 열고 지원 방향 3단계까지 차질 없이 진행된다면 마치 '브런치'에서 연간 10종 이상의 책을 내는 것처럼 책을 만들고, 그것을 연계시켜서 드라마화한다든지, 판권 수익을 얻는 방향으로 생각해 볼 수 있을 텐데요. 사업의 틀과 의도는 이해가 되지만, 과연 그것이 실제로 가능할까 하는 의문이 듭니다. '브런치' 같은 경우는 사람들이 보는 곳이고 백만 조회 수를 기록하고 있기 때문에 시도해 볼 수 있지만, 대중 노출과 독자 참여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경우에는 그렇게 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이야기하는 플랫폼은 김지윤 선생님이 말씀해 주신 것처럼 장르 간 통섭 가능한 장, 담론이 활성화되고 SNS를 통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독자들을 포섭할 수 있는 곳이 되어야 하는데, 사실 이 역할은 '문장'에서 했었어야 하는 몫이고, 일찍이 시도했던 곳이 '문장'이었습니다. 제가 우려하는 부분은 이 플랫폼이 '문장' 시즌 2가 되어서, 유희경 선생님 말씀처럼 지난 10여 년간 시도되었던 문학 분야 웹진들이 차례차례 자취를 감춘 그런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을까 하는 것입니다.

 

신지영 : 사실 저는 예전에 출판사들에 제안했던 플랫폼이 성인 문학보다는 어린이 청소년 문학이 더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아동 청소년 문학은 피드백이 빨라요. 왜냐하면 부모들이 같이 보니까. 그리고 슬픈 이야기지만 아동 청소년 책이 많이 팔리는 기준은 아이들이 선택한 책이 아니라 추천도서예요. 아니면 상 받은 책들. 엄마들이 그 권위를 믿는 거예요. 그런데 공적인 플랫폼이 생기게 되면 지금 창비에서 운영하는 '책씨앗'처럼 그 추천의 폭이 조금 더 다양해질 수 있거든요. 그러면 기존의 추천 시스템에서 누락되거나 상을 받지 못한 작품들도 독자들의 선택을 받을 수 있게 되고, 또 그 책이 대체로 흥미롭기 때문에 독자들이 재미있어 할 거라는 믿음이 있어요. 그리고 작가들도 이른바 스타 작가만이 아니라 다른 훌륭한 작가들도 학교 강연의 기회나 작품이 도서관에 더 많이 수서될 수 있어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박소란 : 말씀을 듣다 보니 이 플랫폼이 공공의 영역에서 구축된다는 점을 더욱 섬세하게 짚어야 할 것 같아요. 플랫폼이라는 것이 얼핏 일원화된 창구로 비춰지거나 하나의 대표적인 담론의 장으로 수용되는 것은 위험할 수도 있다는 생각입니다. 우리에게는 작지만 다양한 여러 광장이 필요한데, 공공이 구축한 하나의 광장에서 작가와 독자, 출판사, 학교, 도서관 등이 다 같이 뛰어 놀라는 것은 어쩌면 모순인 것도 같아요. 작고 다양한 광장을 성장하게 하는 방식으로 플랫폼이 기능한다면 어떨지……. 또 심사위원 풀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 덧붙이자면, 세밀한 층위의 세분화된 심사 과정은 물론이고, 여러 장르에서 문학 전문가뿐 아니라 일반 독자의 심사 참여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또 심사위원도 가능하다면 최대한 짧게 임기를 둬서 탈 권위화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김지윤 : 문인들을 전체적으로 다 모아서 볼 수 있는 시스템도 없는 것 같아요. 네이버 등 포탈이나 문지나 창비 등 대형 출판사 홈페이지에 올라 있는 문인 목록에서 소외된 문인들이 많은데, 전체 문인들을 전수 조사할 수 있는 큰 광장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거기서 정보도 얻을 수 있고, 어떤 작가가 있는지 알 수도 있겠지요. 문예지 같은 경우에 이것을 데이터베이스화할 수 있는 문예지가 거의 없고, 단체도 그런 역할을 수행하기 어렵기 때문에 이러한 플랫폼이 그런 역할에 기여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홈페이지조차 운영하기 어려운 중소 문예지들이 많은데 이 플랫폼에 중소 문예지들이 참여해서 발표작들이 검색될 수 있다면 독자들과 만날 수 있는 더 넓은 장이 마련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신지영 : 저는 지금 몇몇 어린이 청소년 문예지에서 편집위원을 하고 있는데 그분들이 고민하는 지점도 일반 독자들과 피드백이 부족하다는 부분이에요. 그러다 보니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정보들이 조금 더 많이 외부에 알려질 수 있다면 흔쾌히 정보를 제공해 주는 경우들이 많아요. 그래서 저는 지금보다 독자들이 작가나 작품에 대한 정보에 쉽게 접근하고 활동할 수 있는 영역을 더욱 확보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유희경 : 독자들이 참여해서 의미 있는 독서 활동, 혹은 참여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설계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것 같아요. 맡아서 할 수 있을 때 참여도가 높아지겠죠. 가장 일반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이 댓글인데, 작품에서 댓글은 더없이 위험하죠. 보여주고-읽어주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발생할 수 있는 어떤 것에 대한 고민이 있어야 할 텐데, 답을 마련하기는 어렵네요.

 

허 희 : 그런 것들이 잘 진행됐나요?

 

유희경 : 설계를 했는데, 까였어요. (웃음) 못 했어요. 예전 문학과지성사 홈페이지에는 창작란이 있었어요. 그래서 '문학과지성' 편집 동인들이 돌아가면서 거기에 뭔가를 달아 줬어요. 그때 엄청 활성화가 되었는데, 문제점도 같이 부각이 됐죠. 필터링이 안 되니까 혐오적인 작품이 올라오는 등의 문제점이 생겼습니다. 이 플랫폼에서 사람들이 어떤 작품을 써서 보여주고, 어떤 식으로든 픽업이 돼서 작가진으로 들어올 수 있는 방법을 만들어 놓으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박소란 : 저는 지금 노원구의 한 복합문화공간에서 상주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데요. 그곳은 서점과 영화관의 비중이 크고, 낭독회나 GV 같은 프로그램을 자주 진행합니다. 프로그램에 참여한 독자(관객)분들이 작가와 감독에게 질문을 하기도 하는데, 가만히 들어 보면 질문의 형태를 띠고는 있지만 질문이라기보다 자기 감상을 이야기하는 편에 가까워요. 어떤 작품에 대한 자신만의 독법을 이야기하고 싶어 하는 경우가 많은 거죠. 그런데 그럴 수 있는 자리가 충분하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장을 마련해 가는 일이 중요하다고 봐요. 몇몇 문예지에서 운영 중인 '현장 중계' 방식의 독자 참여 코너를 온․오프라인에서 확대하는 것도 방법이겠습니다. 아울러 작품에 대한 감상을 댓글 등으로 이야기할 수도 있을 텐데, 이때 휴대폰으로 촬영한 영상이나 사진으로 작품에 대한 피드백을 하게 만드는 것도 접근성을 높일 수 있는 한 방법이지 싶습니다. 독자 리뷰의 형태가 텍스트로만 한정되지는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박서련 : 아카이브로서의 정체성 강화도 좋은 이야기라는 생각이 듭니다. 오는 길에 트위터에서 장은정 평론가님이 어떤 트윗을 인용하신 것을 봤습니다. 박솔뫼 작가가 어디 패션지에 산문을 실었다고 하는데 나는 그게 어디 실렸는지 영원히 알 수 없다, 대략 이러한 내용의 트윗이었습니다. 어떤 작가가 어디에 무엇을 발표했는지를 알 수 있는 작가 아카이브로서의 역할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역할은 국가기관에서만 할 수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가령 저희가 준비하고 있는 '던전'이라는 사이트에서 어떤 작품을 연재하는 작가가 있다고 하면, 플랫폼에서 그 작가의 이름을 검색하면 그 작가가 '던전'에서 언제, 어떤 작품을 연재했는지와 더불어 다른 지면에서의 활동 내역을 일목요연하게 알 수 있게 하는 거죠.

 

유희경 : 기관에서 할 수 있는 것은 한계가 분명하죠. 결국 작가 자신이 정보를 제공해야 할 테니까요.

 

박서련 : 자기가 손수 등록해야 하더라도, 플랫폼에 작가로 등록되어 있다면, 나는 여기에 어떤 작품을 소개했었다, 라는 식으로 할 수 있게 해준다면 좋겠습니다. 작가 입장에서는 웹 포트폴리오를 간편하게 직접 구성할 수 있는 것이고 독자 입장에서는 작가가 참여한 지면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말입니다.

 

유희경 : 또 한편으로 고려해야 할 것은 연령입니다. 웹 사용이 불편한 사람들 혹은 어려운 사람들을 위한 시스템상의 보완이 필요해요.

 

허 희 : 제가 좀 더 논의해 보고 싶은 건 독자가 문학 플랫폼에서 어떠한 역할을 할 것인가 하는 점입니다. 문학 플랫폼 광장에서 독자가 가질 시민권은 무엇이어야 할까요?

 

신지영 : 독자를 단지 읽는 사람으로만 한정하지 말고 쓰기를 포함해서 조금 더 적극적인 권리를 부여해 줘야 할 것 같아요.

 

박서련 : 저는 다른 방식을 생각하고 싶습니다. '브릿지'라는 장르문학 위주의 온라인 문학 플랫폼에서는 리뷰에 우선 권위를 많이 부여해 주는 느낌이 있는데, 그 리뷰가 작품과 같이 놓여 있다는 점에서 의의를 가지지 않나 싶습니다. 그런 식의 역할들을 독자에게 부여할 수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허 희 : 장르 간 독자층을 동일하게 설정하는 것은 아무래도 부작용이 있을 듯한데요.

 

 

유희경 : 시는 어떤 매체에 어떻게 실리느냐에 따라 볼품이 대개 많이 달라지는 장르입니다. 만약에 똑같은 화면 제시라면 시는 대개 불리합니다. 장르마다 특유의 독서 방법이 따로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장르문학의 경우, 페이지를 넘길 때 불편함이 있으면 안 되겠죠.

 

허 희 : 그럼 애초에 플랫폼 만들 때 인터페이스 자체를 장르별로 세분화시켜야 한다는 이야기죠?

 

유희경 : 핵심은 선택권에 있다고 봅니다. 작가에게도 독자에게도 선택권이 있어야겠지요. 동시에, 어울릴 수 있어야 할 것이고요. 작은 모임들이 하나의 광장을 만들 수 있다면 근사하겠다 싶어요. 각자의 선택이 모듈화 되는 거죠. 멀리서 보면 작가와 독자의 어울림처럼 보이는 플랫폼이겠지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장치에 구애 받지 않고 독립적으로 자생하는 거예요. 그렇다면, 처음 제가 지적한 다양성과 자생성이 확보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김지윤 : 저도 허들을 낮추는 댓글 방식이 좋다고 생각해요. 문인의 글에 텍스트로 댓글을 다는 것이 얼마나 부담스럽습니까? '좋아요' 같은 방식으로 쉽게 반응할 수 있거나 좀 더 부담 없이 댓글을 달 수 있도록 하는 방식도 문턱을 낮추는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아니면 댓글에 상금이라는 메리트를 주는 방식으로 독자들의 참여를 유도해도 되구요.
    저는 동시대의 새로운 개념과 기술 인프라를 결합한 혁신적인 플랫폼의 도입이 매우 필요하다고 보는데, 최근 이야기되는 '커먼즈', 공공재로서의 지식, 문화, 예술을 만들어 가기 위한 중요한 기반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플랫폼의 혁신은 커먼즈를 확장하고 결속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구요. 인터넷이 유리한 것이 시공간을 넘어 개별 커먼즈들을 연결할 수 있다는 것인데요. 현재 존재하는 단절과 분열을 해소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여기에 있다고 봅니다. 이러한 인터페이스는 국가기관에서 만드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수익성과 상관없이 공공의 가치를 실현할 수 있기도 하고, 인터페이스를 만드는 데 드는 자본과 인력을 일반 문예지나 비영리 단체에서 감당하기는 어려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물론 국가기관이 만들다 보면 커먼즈가 공공 영역과 동일시될 때 발생하는 문제처럼 참여 구성원의 자연스럽고 자율적인 에너지, 다양한 시너지 효과 등이 위축될 우려가 있기 때문에 많은 논의와 지혜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박서련 : 저는 이런 사이트를 볼 만한 사람들이 잠재적 작가이면서 독자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즉 나중에 플랫폼에 자기 작품을 게재하고 싶다는 희망을 품은 예비 저자들이 독자 역할을 수행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그룹 말고도 그냥 순수하게 글을 읽고 싶은 사람들을 어떻게 유입시켜야 할 것인가도 고민해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박소란 : 문학 독자나 일반 대중이 이러한 사이트를 쉽게 클릭하기 힘든 것은 대체로 이런 사이트들이 외관상으로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고 봅니다. 디자인 등의 면에서 시대적으로 떨어진다고 해야 할까요? 근본 이유는 물론 이에 대한 내부의 인식이 없어서라기보다 돈 때문이죠. 디자인 리뉴얼에 할애할 예산이 없으니 낡고 고리타분한 형태를 벗기가 힘든 거예요. 플랫폼도 그 점을 간과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아울러 플랫폼의 여러 계획 중 동인지를 지원하는 일도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아는데, 새로운 플랫폼 자체에서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는 것은 물론 기존의 주요 매체인 문예지 역시 보다 대중에 가까이 접근할 수 있도록 디자인 등에 지원이 따른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박서련 : 덧붙여 아까 플랫폼 이야기하면서 창작 게시판 이야기도 나왔는데, 습작생들이 점점 창작 게시판에 자기의 글을 공개하기를 꺼리는 가장 큰 이유가 자기 글이 도용당할 수 있다는 위험, 표절 때문이라고 봅니다. 고료 없이 인터넷 게시판에 자기의 작품을 공개할 경우에 보호받을 수 있는 수단이 거의 없다는 걸 알려주는 사례들이 불우하게도 몇몇 발생했습니다. 습작생이 온라인에 게시한 글은 습작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취급을 받아 온 게 문제인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가장 완성도가 높은 글은 등단 가능한 지면에 투고하고 온라인 창작 게시판에는 비교적 아깝지 않은 글을 게시하면서 질적 수준도 보장되지 않게 되었고, 이런 문제 때문에 창작 게시판이 점점 비활성화 된 것으로 봅니다.
    또한 온라인 플랫폼의 경우 출판계약과는 다르게 전송권이라는 것을 설정해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런 실무적인 영역에 대해서도 충분한 준비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허 희 : 지금까지 문학 공공 분야 창작 발표 및 유통 확대를 위한 '공유경제 플랫폼' 제2차 좌담회를 진행해 봤는데요. 여러분의 귀한 말씀 잘 들었습니다. 이번 토론 내용이 제3차 좌담회에서 더 심도 있게 논의되기를 바라면서 제2차 좌담회는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허희

사회자 / 허 희

2012년 《세계의문학》 평론 부문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해 문학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김지윤

참여자 / 김지윤

2016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문학평론 당선. 2006년 《문학사상》 신인상 시 부문 수상, 2012년 '시와 시학상 젊은 시인상' 수상. 시집 『수인반점 왕선생』.

 

박서련

참여자 / 박서련

2015년 《실천문학》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 2018년 한겨레문학상 수상. 장편소설 『채공녀 강주룡』 『마르타의 일』이 있음.

 

박소란

참여자 / 박소란

2009년 《문학수첩》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심장에 가까운 말』, 『한 사람의 닫힌 문』이 있고, 신동엽문학상과 내일의한국작가상을 받았다.

 

유희경

참여자 / 유희경

1980년 서울에서 태어나 2008년 《조선일보》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오늘 아침 단어』 『당신의 자리―나무로 자라는 방법』 『우리에게 잠시 신이었던』이 있다.

 

신지영

참여자 / 신지영

2009년에 푸른문학상 '새로운 작가상'을, 2010년에 푸른문학상 '새로운 평론가상'을 받았고 제16회 창비 '좋은 어린이책'을 수상했다. 저서로 『처음 배우는 어린이를 위한 스토리 코딩』 『퍼펙트 아이돌 클럽』 『이야기 프로듀서 유이 1, 2』 『도전! 생존 퀴즈』 등이 있다.

 

 

   《문장웹진 2020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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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육지에서 쓴 일기 최진영 20240528 4박 5일 동안 육지에서 여러 일정이 있어 오늘 제주에서 서울로 왔다. 앞으로 며칠간 약속과 약속 사이, 출발지와 도착지 사이 시간이 날 때마다 이 창을 열고 단상을 써보려고 한다. Are you checking in? pm04:45. 여긴 충무로의 호텔. 3년 전 제주로 이사 간 뒤 처음으로 서울에 일이 있어 올라왔을 때 숙박한 후 매번 이 호텔만 이용하고 있다. 경기, 인천 지역에서 저녁 행사를 해도 근방 호텔을 잡지 않고 여기로 온다. 새로운 호텔을 검색하고 선택하는 게 번거로워서. 합리적인 위치나 가격을 따지려다가 검색 지옥에 빠져서 몇 시간을 고민한 뒤 결국 이 호텔을 예약했던 경험으로 깨달은 바가 있다. 시간이 돈이다. 더 저렴한 호텔을 찾으려 애쓰지 말고 검색하고 고민하는 시간을 줄이자. 점심시간 무렵 충무로 일대 분위기는 조금 묘하다. 커다란 캐리어를 끌고 거리를 걷는 외국인들과 점심 먹으러 나온 직장인들이 뒤섞이는 거리. 라디오 주파수를 돌리듯 여러 나라의 언어가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서울역, 명동, 한옥마을, 남산, 종로가 가까운 곳이어서 외국인 관광객이 정말 많다. 올 때마다 느끼지만 호텔 투숙객 중 한국인은 나뿐인 것 같다. 한 달에 두어 번은 와서 2박 이상 하니까 나름 단골이랄 수도 있는데 프런트 직원들은 매번 나를 처음 본 손님처럼 대한다(호텔의 특성이겠지?). 체크인할 때도 내게 영어로 말을 건넨다. “give me your passport.” 그럼 나는 “제 이름은 최진영입니다”라고 한국어로 대답한다. 성공한 인생 오늘 아침 9시쯤 택배 문제 때문에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엄마는 전화를 받자마자 놀란 목소리로 “왜 이렇게 일찍 일어났느냐”고 물었다. 내 용건에 개의치 않고 엄마는 거듭 물었다. 전화를 끊고 뿌듯해서 신나게 웃었다. 내 나이 이제 마흔이 넘었는데 아침 9시에 엄마에게 “왜 이렇게 일찍 일어났느냐”는 말을 들을 수 있다니, 이번 생은 성공한 것 같아서. 그건 바로 내 투쟁의 결과다. 거의 20년을 프리랜서로 살면서 남들 다 출근하는 시간에도 ‘성인 평균 적정 수면시간’을 사수하며 꾸준히 늦게 일어나는 생활양식을 차곡차곡 쌓아 온 결과 마침내 엄마도 나의 생활 패턴을 받아들인 것이다. 그래서 아침 9시에 전화하면 깜짝 놀라는 것이다. 나는 이런 게 진정한 성공 같다. 긴장감 저녁에 북토크를 할 예정이다. 사람들 앞에서 말하거나 낭독할 때는 별로 긴장하지 않는 편이다. 내가 긴장하는 순간은 따로 있다. 예를 들면 비행기 탈 때. 기내 짐칸에 캐리어를 올리다가 무거워서 또는 실수로 떨어트려서 누군가를 다치게 할까 봐 매번 긴장한다. 일어날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걸 알지만 식은땀이 난다. 캐리어를 끌고 에스컬레이터 탈 때도 마찬가지다. 에스컬레이터에서 넘어지거나 캐리어를 놓치는 구체적 상상에 시

  • 관리자
  • 2024-07-01
거대한 존재들의 무한한 경탄

[에세이] 거대한 존재들의 무한한 경탄 제이크 레빈 소개 거의 12년 동안 나는 한국 대학교에서 강의를 했다. 지난해부터 강의하는 교사의 내면적 생활과 관련된 일기와 같은 글들을 쓰기 시작했다. 외국인 교수로서 처음 강의를 시작했을 때 모든 것이 낯설고 이방인 같은 느낌이었는데 이제는 한국 문화에 익숙해졌지만 여전히 교수의 삶은 익숙하지 않다고 믿는다. 학생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고 다른 교수의 마음도 이해하기 어렵다. 다른 강의실에 들어갈 때마다 새로운 학생들을 만날 때마다 이전에 만나지 못했던 민족을 만나는 것 같이 나는 죽을 때까지 방랑자처럼 매일 새로운 것을 경험한다. 학교에서는 현실에 경험한 것이 꿈꾸는 것 같고 꿈꾸는 것이 더 현실처럼 느껴지듯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가 가끔은 사라진다. 이 산문은 시나 소설이 아니고 현실의 기록도 아닌 교사로서의 삶의 내면적 반응이다. 교사는 인간이다. 가끔 사회가 인문대 교사의 인간중심주의를 억압한다고 생각한다. 신자유주의의 자본주의는 모든 것을 계산하지만 인문학과 시의 영향력은 계산될 수 없는 가치다. 인간중심주의 가치를 점점 찾기 힘든 사회의 학생들은 학교에서 문화를 배워야 한다. 이 모순적인 긴장의 환경에 존재해야 한다. 학교의 목적은 타인의 인간성을 인정하는 것에 있다. 이 산문은 한 인간의 존재하는 기록이다. 거대한 존재들의 무한한 경탄이라는 제목은 완전한 이해가 불가한 타인의 인간성을 발견하는 것에서 왔다. 이 기록은 내 개인적 경험과 전해 들은 동료 교사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작성하였으며 영어로 작성한 문장을 나의 소중한 학생 김혜인이 나와 함께 번역하였다. 지우개 머리 어떤 날 나는 대답하기 위해 여기 있고, 어떤 날 나는 오직 듣기 위해 여기 있다. “질문 있어?” 많은 학생들이 질문의 형태로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그다지 어려울 것 없는 예술을 배웠다. 그런 질문에 대답하는 유일한 방법은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이 질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질문자가 자신의 질문에 답변하는 동안 사용감 있는 지우개처럼 커피를 홀짝이며 머리에서 머리카락이 떨어지는 것을 느껴 보라. 학생들의 목소리는 배경소리가 되어 가다가, 불현듯 보이스 오버. 지우개는 부러지기 전까지 얼마나 많은 얼룩을 견딜 수 있을까? 숭고한 느낌 지난 몇 주간, 를 듣는 학생들은 책상 아래 숨어 있었다. “교수님, 저희는 불확실성에 머물고 있어요.” 그들은 말한다. 일정 기간 동안 불확실성에 머문 뒤, 한 학생이 책상 아래서 나타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저는 숭고한 느낌을 얻었어요.” 그들이 말한다. “저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아름다움에 압도당해 죽음이 무섭고 두려워요.” “이제 제 핸드폰 돌려주시겠어요?” 정적. 학생이 나를 응시한다. 정적. 나는 천천히 커피 한 모금을 마시고 학생을 응시한다. 흰 두루미 “주말 잘 보냈니?&r

  • 관리자
  • 2024-07-01
아, ‘장르 문학’ 하시는구나

[에세이] 아, ‘장르 문학’ 하시는구나 김용언 미스터리 장르를 좋아하고, 열심히 읽고, 그에 관한 잡지를 만들고, 또 가끔은 관련 공모전 심사를 보면서 언제나 느끼는 바가 있다. 한국에서 미스터리 장르에 대한 이해도는 여전히 심각하게 척박하다는 점이다. 가장 모순되는 감정을 느끼는 순간은 ‘장르 문학’이라는 단어를 들을 때다. ‘(그냥) 문학’1)의 카테고리에 속하지 않는 나머지 소설들은 굳이 ‘장르 문학’이라고 불린다. SF, 판타지, 미스터리/스릴러, 로맨스, 공포, 무협 등의 꼬리표가 붙고 낱낱이 분류되며 ‘문학은 문학이지만 그냥 문학이라고 부르기보단 그 안의 장르로 명명되어야 하는’ 존재가 된다. 의문이 생긴다. 그렇다면 장르 문학에 속하지 않는 작품은 그냥 문학이 아니라 ‘비장르 문학’이 되어야 하지 않는가? 아니면 순문학 역시 일종의 장르임을 인정하면서 모든 작품을 ‘장르 문학’이라고 불러야 하는 건 아닐까? 예전 한국 문단에서는 ‘순(純)’이라는 단어가 참여 문학/민중 문학 등의 대립항처럼 불렸다고 하는데, 지금에 와서는 참여 문학/민중 문학도 ‘그냥’ 문학에 포함된 것 같다. 아무튼 거칠게 말해서 ‘장르’를 사용하지 않고 인간과 현실 자체에 집중하는 소설을 ‘그냥’ 문학으로 호명한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장르’로 호명되는 특정한 이야기들에는 그 장르가 만들어지게 된 역사가 있고 또 그 안에서 통용되는 특정한 규칙이 존재한다. 그런 약속된 구조와 규칙을 이용해서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낸다고 해서, 그 결과물이 ‘그냥’ 문학으로 불릴 수 없고 장르 문학으로만 불려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오해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나는 장르 문학도 문학임을 인정하라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기 위해 이 글을 쓰는 게 아니다(그건 너무 당연한 사실이기 때문에 굳이 받아들여 달라고 애원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그 장르 문학 업계에서 일하는 사람으로서 불편해지는 순간들이 자꾸 찾아온다. 이를테면 한국 작가의 소설이 해외로 번역되었을 때 현지 리뷰들을 찾아보면, 스릴러/미스터리/공포 등의 명칭을 명확하게 부여하면서 소개한다. 한국에서는 기존 등단 작가들의 작품을 소개할 때 ‘추리적 기법을 활용한’ 또는 ‘경계를 넘어선 상상력을 발휘한’ 등의 애매모호한 문구로 시작할 때가 많은데, 해외에서는 자신들에게는 낯선 작가의 번역 작품의 특성을 단번에 설명하기 위해 ‘이것은 스릴러다’ 또는 ‘이것은 공포소설이다’라고 알려준 다음 그 작품의 특성이 어떤 점에서 새롭고 멋진지를 차근차근 설명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여전히 장르 문학과 장르 아닌 ‘그냥&r

  • 관리자
  • 2024-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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