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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 대담 마지막 회 - 에필로그

  • 작성일 2019-08-01
  • 조회수 1,105

[익명대담]

 

 

익명 대담 마지막 회
- 에필로그

 

 

ㅇ 기획 : 《문장 웹진》 청년 작가 간사(김남숙 소설가, 양안다 시인)

 

 

 

    김남숙과 양안다는 마지막으로 만났다. 마지막으로 만난다는 말이 웃기지만, 익명 대담은 이번 회차로 마지막이다. 이번 마지막 회차는 익명 대담을 진행하면서 얘기하지 못했던 후일담에 관한 내용이다. 좀 더 하고 싶은 말이 있었고, 좀 더 잘하지 못한 말도 있었다. 여러 가지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었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도 남았다. 그동안 읽어 주시고 공감해 주시고 응원해 주신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

 

    안다 : 안녕하세요. 마지막 대담을 저희가 하게 되었어요. 잘 지내셨어요?

 

    남숙 : 지금 턱 때문에 얼굴이 얼얼해요. 목각인형 알죠?

 

    안다 : 목각인형?

 

    남숙 : 입만 이렇게 이렇게 움직이는. 여기가 멍들었어요. 빈혈이 너무 심해서 넘어졌거든요.

 

    안다 : 주저앉듯이?

 

    남숙 : 네. 그런데 금방 일어나서 병원이 집 앞이라 바로 갔어요. 그 이후로 무언가 스스로 강해진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웃음) 이번에 〈존윅〉도 개봉했잖아요. 약간 빙의된 것처럼······ '철이 안 들었구나' 싶었어요. 그런데 뭐, 살 정도야 꿰맬 수 있지. 이가 부러지거나 턱이 부러지고 이런 게 아니니까요.

 

    안다 : 혹시라도 뇌진탕이었으면 큰일이에요.

 

    남숙 : 그러면 정말 큰일이었죠. 연락 안 되고. (웃음) 진짜 그럴 수도 있잖아요.

 

    안다 : 그러니까요. 조심해야 해요

 

    남숙 : 예전에 ○○○ 문학관 갔을 때도 빈혈 때문에 너무 힘들었는데. 여름마다 그런 것 같아요. 이번에 스트레스도 심해 가지고. 안다 시인은 어떻게 지냈어요? 근황이 홍길동 같아서 궁금한데.

 

    안다 : 전 대구에서 지내고 있어요. 친구가 그쪽에 자취를 하게 되어서. 일 있을 때만 서울에 잠깐 와요. 오늘도 방금 막 올라왔어요.

 

*

 

    익명 대담을 진행하면서

 

    남숙 : 많이는 아니지만 몇몇 회차를 진행하면서 어땠어요? 우리는 주로 거의 같은 틀 안에서 대담을 진행했잖아요.

 

    안다 : 그렇죠. 그런데 문단 권력에 대해 한번 다루니까 벗어날 수 없었던 것 같아요.

 

    남숙 : 맞아요. 주제를 좀 다양하게 배분하고 조정했으면 좋았을 텐데······ 양방향의 이야기를 들어 보자, 하다 보니까. 이야기가 끝도 없이 나왔던 것 같아요. 그런데 재밌었어.

 

    안다 : 맞아요. 전 다양한 분들 이야기를 들어서 좋았어요. 거의 모르는 분들이었어요.

 

    남숙 : 저도 몰라요.

 

    안다 : 저번에 어느 분에게 들었는데, 문단 권력 작가 편 있잖아요. 그거 나가고 나서······.

 

    남숙 : 혹시 저 아니냐고 물어봤어요?

 

    안다 : 그 참가자들을 추측을 해봤대요. 양안다는 누구일 거고, 김남숙은 누구일 거고.

 

    남숙 : (웃음) 그 대담에?

 

    남숙 : 그런 오해도 있었구나

 

    안다 : 그리고 우리 고민 많이 했잖아요. 참여자의 발언을 어디까지 수정해도 괜찮은지.

 

    남숙 : 아, 맞아요. 어쨌든 참여자가 직접 확인하고 수정한 걸 우리가 받기 때문에 그게 조금······ 보면서 걱정이 됐던 부분이 있었던 것 같아요.

 

    안다 : 이게 아이러니한 것 같아요. 익명이라서 편하게 발언할 수 있는 자리이지만, 사실 너무 자유로우면······.

 

    남숙 : 적정한 선이라고 해야 하나, 적정한 선이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책임감이 없어져 버리니까요.

 

    안다 : 네. 익명으로 대담하는 내용으로 섭외를 한 뒤, 본인들이 지면으로 내보내고 싶은 내용이지만 우리가 그걸 어디까지 수정 요구를 할 수 있는지 어려웠던 것 같아요. 우리도 이런 얘기들이 나올 줄 몰랐잖아요.

 

    남숙 : 처음에는 '더 솔직하게 말했으면 좋겠다' 싶은 생각이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갈수록 '어, 이건 좀······' 하게 되는 경우가······.

 

    안다 : 주제가 점점 진지해졌잖아요. (웃음)

 

    남숙 : 그리고 익명 대담 하면서 문제점으로 제일 많이 얘기되는 게 '~~한 문제점이 있다'라는 얘기가 나왔다고 하면 그게 너무 추상적으로 나오니까. 그게 모두 다 알 만한 얘기가 아니라 공중에 붕 떠 있는, 그러니까 한 번도 들어 본 적 없는 얘기로 들리는 게 문제였던 것 같아요. 그래도 그 사람들은 다 자기가 보고 겪은 걸 말하는 거잖아요. 하지만 읽는 사람들은 익명이기 때문에 출처나 매체를 알 수 없고, 출판사명만 하더라도 익명 처리하니까 애매하게 읽혔던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안다 : 우리가 시작할 때 정한 것 중 하나가 작가, 도서, 출판사 등을 익명 처리하는 대신 참여자 본인이 원하면 실명으로 내보내는 거였는데. 작가 편에서 〈릿터〉가 익명 처리되지 않고 나갔잖아요. 어떤 분이 그걸 언급하면서 "칭찬은 익명 처리 안 했네?"라고 말했는데, 그 뉘앙스가 약간 비꼬는 것처럼 들렸거든요. 제가 익명이 누구고 무엇인지에 대해서 말을 안 하니까요. 우리가 의도적으로 칭찬을 익명 처리 안 한 듯이 들리더라고요. 사실 저희가 참여자들 발언을 최대한 건드리지 않는 편이었잖아요.

 

    남숙 : 맞아요. 심지어 출판사 이름을 가리는 등 이런 게 참여자들이 원고를 확인하고 고친 거잖아요. 그러니까 참여자의 선택적인 익명 처리였던 셈이어서.

 

    안다 : 혹시 하고 싶었던 기획 있었어요? 충분한 시간적 여유가 주어지고 익명 대담을 딱 1회 더 진행한다면요.

 

    남숙 : 나는······ 문단 내 성폭력과 그리고 그 이후에 대해 여전히 많은 분들이 목소리를 내고 있고 여전히 활동하는 모습들을 보면서······. 익명 대담을 통해 한 번 더 다루고 싶긴 했어요. 좀 답답했어요. 악은 절대 죽지 않는다, 이런 생각이 너무 많이 들어서. (웃음) 그런데 이걸 어떻게 풀어야 할지 조심스럽다 보니까 머릿속에만 가지고 있었지만요. 단지 목소리를 내야 할 분들에게 지면을 주고 싶었다는 것? 그런 이들의 목소리를 좀 더 듣고 싶었어요. 주기적으로 연대하고 모이는 분들도 있고. 물론 제가 생각한 건 이게 실행되지는 않았고, 저도 너무 막막하고 꼬리를 무는 걱정이 많아서······.

 

    안다 : 만약 우리가 1회로 시작하는 상황이었다면 문단 권력으로 할 생각이 없었을 것 같아요. 실제로 처음 기획에 없었고요. 참여자들이나 주변 사람들이 문단 권력 주제를 권유하고 그러니까. 그래도 저는 다 좋았어요. 당시에 너무 바빠서 하기 힘들었지만, 하고 나서 괜찮았어요.

 

    남숙 : 기억이 미화된 것일 수도 있어요. 끝날 때 다 되어서. (웃음)

 

    안다 : 그럴 수도 있어요. (웃음) 수련회에서 마지막에 촛불 켜놓는 것처럼.

 

    남숙 : (웃음) "하루 더 있고 싶어요!" 약간 이런 거.

 

    안다 : 사실 문단 권력이라는 주제는 누구를 불러도 편협한 시선에서 말이 나올 수밖에 없는 주제라고 생각했어요. 경험에 한정되거나 듣는 걸로 판단하기도 하니까. 저는 아쉬운 점은 문단 권력에 대해 너무 길게 했다는 거? 여러모로 여유가 있었다면 회차를 좀 합쳐서 하거나 했어도 좋았을 거 같아요. 저는 그걸 하고 싶었어요. 비/미등단자에 대해서.

 

    남숙 : 아, 맞아요.

 

    안다 : 1회에서 하긴 했는데, 그것보다 비/미등단자에 대해 진지하게 얘기할 수도 있었을 것 같아요. 같이 기획을 하기도 했었지만 준비하는 데에 손이 많이 갈 것 같아서······ 월마다 진행되다 보니까 시간도 부족하고 실행에 옮기지 못해서 아쉬웠어요.

 

    남숙 : 우리가 그때 그걸 얘기하면서 여러 기획이 있었잖아요. 비/미등단자에 대해 말하려면 편견으로 보일 수 있는 걸 가감 없이 실어야 하는데 그게 걱정이기도 했고······ 아, 그런데 그냥 할 걸 그랬어요. 원래 직관적인 게 최고인 것 같아요.

 

    안다 : 우린 너무 걱정이 많았어요.

 

    남숙 : 우린 겁쟁이였나 봐.

 

    안다 : 문단 권력을 주제로 몇 번 하니까 문단에 대해 불만이 그렇게 많으냐고 하는 분들도 있었어요. 난 불만 없는데. (웃음)

 

    남숙 : 난 문단이 불만이 아니고 별로인 행동을 하는 사람이 별로인 거예요.

 

    안다 : 사실 문단에 권력이라는 게 그렇게 있는지 잘 모르겠어요. 아는 사람이 없으니까. 그걸 들어 보고 싶기도 했고.

 

    남숙 : 있긴 있죠. 어디든 권력은 있을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난 권력을 느끼는데 그 권력이 작더라도 있는 건 있는 거니까요.

 

    안다 : 저도 주로 주변 작가들에게 듣긴 했어요. "어디어디에 갔는데 누구누구가 그러더라" 하는 얘기들. 그런데 저는 그런 데에 나가질 않으니까 그런가 보다, 했던 편이었던 것 같아요. 돌아다녀야 하나 봐.

 

    남숙 : 근데······ 안 보는 게 낫지 않나요.

 

    안다 : 하긴. 굳이 봐야 하나. 있다는 것만 알면······. 주변 작가들이 "그 사람은 꼰대야"라는 식으로 언급하는 사람들 보면, 그분들도 저희와 같은 생각이거나 같은 나이일 때가 있었을 거잖아요. 그분들은 처음부터 그런 성격이었던 건지 아니면······.

 

    남숙 : 남을 배려하지 않는 게 사실 꼰대를 나누는 기준이라고 생각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런 행동들을 점점 더 서슴없이 하는 인간으로 바뀌게 된 것 같아요. 그리고 원래 그런 기질이 어느 정도 있었겠죠.

 

    안다 : 원래?

 

    남숙 : 원래요. 처음부터 무례한 행동을 경계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었다면 쉽게 행동하진 않았을 것 같아요. 사실 꼰대의 가장 큰 문제점은 무례한 행동이나 실례를 했을 때 더 문제인데. 전 반성하는 자세를 포즈로만 취하는 사람이 싫어요.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많더라고요. 이 정도면 됐잖아, 사과했으면 됐잖아, 이런 사람들.

 

    안다 : 숨어 있을 거 같아요.

 

    남숙 : 곳곳에.

 

    안다 : 주변에서 안 물어봐요? 익명 처리한 거 누구냐, 하는 질문. 저 되게 많았는데.

 

    남숙 : 아, 많았죠. 우리 익명 대담 관련해서 그거 누구냐, 하는 질문 엄청 많이 들어왔잖아요. 나는 심지어 잘 모르는 분이 물어본 적도 있어요.

 

    안다 : 저는 DM으로 몇 번 받기도 했어요. 누구인지 물어보는. 그런데 대답을 할 수도 없지만, 실제로 참여자들이 "땡땡땡"이라고 말하면서 스스로 익명 처리하는 부분도 많잖아요. 그래서 저도 알 수 없는 것에 대해 물어보는 분도 계셨고.

 

    남숙 : "다들 재미있다고 해서 봤는데 뭐가 재미있냐?"라는 말도 들었고. (웃음) 계속 즐겁게 하고 싶었는데 언제부턴가 힘들고 재밌지 않더라고요.

 

    안다 : 힘든 것도 많았고. 막상 하면 매번 즐거운 분위기는 아니었어요. 촬영을 하면 몰라도.

 

    남숙 : 맞아요. 차라리 영상이 나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한 3회까지는 재밌었어요.

 

    안다 : 저도 재밌게 했어요.

 

    남숙 : 언제가 가장 재밌었어요?

 

    안다 : 음······ 저는 2회.

 

    남숙 : 어, 저도.

 

    안다 : 가장 인상 깊었던 건 1회.

 

    남숙 : 맞아요. 나도 그래요.

 

    안다 : 1회 참여자 두 분 다 좋았지만 비누 씨의 말이 너무 인상 깊었어요. 2회는 두 분이 말을 재밌게 해서. 그게 지면에 잘 표현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참여자들도 좋았고. 그리고 4회에 많은 작가 분들이······ 설문이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응해 주어서 고마웠어요. 그것도 읽으면서 재밌었고요.

 

    남숙 : 4회는 작가 분들이 응해 주신 게 고마웠어요. 흔쾌히 응해 주시고. 저는 그때 가장 기억에 남았던 것은 『드래곤 라자』. 실제로 찾아도 봤어요. (웃음) 그리고 1회는 비누 씨가 본인이 평소에 고민했던 생각을 잘 이야기해 주어서 너무 좋았어요. 비누 씨가 지향하는 지향성이나 생각이 멋있었고요.

 

*

 

    앞으로

 

    안다 : 아, 이런 것도 물어봐야지. 앞으로 계획이 어떻게 되십니까? (웃음)

 

    남숙 : 소설을 열심히 쓰고 있······ 있어요. (웃음) 올해 말까지 써야 할 소설도 있어서.

 

    안다 : 올해 말까지?

 

    남숙 : 네.

 

    안다 : 장편이에요?

 

    남숙 : 아니, 단편이요. 안다 시인은 (웃음) 군대는 어떻게 됐어요?

 

    안다 : 저도 잘 모르겠어요. (웃음) 가야죠. 다들 어떻게 안 되냐는 소리 많이 하는데. (웃음) 그래도 논문은 쓰고 가고 싶어요. 올해에 쓰려고 하는데······ 써야죠.

 

    남숙 : 군대 언제 갈지 고르고 있었잖아요.

 

    안다 : 원래 작년에 갈······.

 

    남숙 : 군대와 순대 중에 고른다면?

 

    안다 : (웃음) 그래도 아직은 순대가 좋아요.

 

 

 

 

 

 

 

 

 

 

 

 

 

 

 

김남숙

대담 기획, 원고 구성 / 김남숙

2015년도 문학동네 신인상으로 등단. 현재 《문장 웹진》 청년 작가 간사.

 

양안다

대담 기획, 원고 정리 / 양안다

1992년 충남 천안 출생. 2014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창작동인 '뿔'로 활동 중. 시집 『작은 미래의 책』, 『백야의 소문으로 영원히』. 현재 《문장 웹진》 청년 작가 간사.

 

   《문장웹진 2019년 0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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