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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대담 5회 - 문단 권력에 대하여

  • 작성일 2019-04-01
  • 조회수 1,742

[익명대담]

 

 

익명대담 5회
- 문단 권력에 대하여

 

 

ㅇ 기획 : 《문장웹진》 청년 작가 간사(김남숙 소설가, 양안다 시인)

 

 

 

 

 

    김남숙과 양안다는 혜화에서 만났다. 익명대담이 진행되면서 계절이 세 번이 바뀌었다. 변한 게 있었을까? 생각한다. 그러나 변한 것은 없고 그저 벌써 5회째 진행 중이다. 등단제도, 편집 시장, 평론가의 역할, 문단 권력까지. 예민한 이야기를 편하게 나눌 수 있는 장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시작했지만 그렇게 하지는 못했다. 우리는 익명임에도 많은 말들을 걷어냈다. 그들이 친절한 편이라고 생각했지만, 누군가는 지나치게 친절하고 누군가는 지나치게 불편하고 불친절하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김남숙과 양안다는 지나친 친절에 대해 잘 알고 있다. 김남숙과 양안다는 어쩌면 친절한 편에 있으니까. 이번 익명대담은 문단 권력에 대한 이야기이다. 많은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은 채, 멈춰 있는 듯하다. 이번 회 차는 대담을 나누기보다 산문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익명 A가 본 '다수 A의 얼굴'에 대한 산문이다. 이번 익명대담에 용기 내어 참여해 주신 분들에게 다시 한 번 감사드린다.

 

    (다음 익명대담 6회도 문단 권력이 주제다. 6회 차는 여러 A들이 모여 'A의 얼굴'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우리는 이 다수를 지칭하는 'A와 A의 얼굴'에 대해 좀 더 이야기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시인 A가 본 얼굴

 

 

 

    등단제도는 사방에서 공격받는다. 나는 어찌 되었든 등단제도의 수혜자고, 만일 등단하지 않았다면 내 작품이 책으로 묶일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도 한다. 그럼에도, 등단이라니? 대체 얼마나 구시대적인 방식이냔 말이야! 나도 어느 자리에서나 이렇게 말하곤 한다. 누구나 알고 있는 폐해를 나 역시 알고 있으니까 욕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대학교수가 자기 제자를 뽑고, 어느 창작교실에서 강의하는 시인이 거기 다니는 사람을 뽑는 걸 종종 봤으니까, 이게 문단이냐? 외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더 나은 방법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등단제도 대신 추천제가 존재하던 때로 돌아갈 순 없고. 그렇다면 예비 작가가 각 출판사에 자유롭게 시집 원고를 보내서 실력과 대중성을 평가받는 방식은 어떨까? 등단제도의 심사위원은 서로서로 해먹는 것 같아서 미덥지 못하니까 말이다. 출판사의 문학 팀 편집자라면 원고의 질과 대중성을 공정하게 판단하여 퍼블리싱을 결정하고……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도 수많은 시집 원고가 그들의 이메일함으로 들어오고, 지금도 그걸 꼼꼼하게 살펴볼 시간이 그들에겐 많지 않다. 게다가 편집자에게도 친분이란 게 있고, 때로는 그 편집자 자신이 시인이거나 평론가이기도 하고, 그래서 종종 그는 신춘문예나 문학잡지에서 등단자를 결정하는 심사위원이기도 한데?

 

    나는 앞으로도 계속 시집을 낼 수 있을 것 같다. 구두계약이긴 하지만 다음 시집을 낼 출판사도 정해졌고. 나는 내가 시를 못 쓴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 사실 어느 시인이 그렇게 생각하겠는가? ― 내가 계속 시집을 낼 수 있는 이유가 온전히 내 실력 때문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내가 등단하던 해, 언제나 그렇듯 많은 시인이 함께 등단했다. 그중에 나와 몇몇은 '살아남아' 지금도 시를 쓰고 있는 반면, 몇몇은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기도 했다. 그렇게 문단에서 잊힌 사람이 전부가 나보다 못한 작품을 쓴 건 아니다. 어쩌면 내가 남자라서, 내가 누구의 제자라서, 내가 누구와 친분이 있어서 여기까지 온 건 아닐까? 등단 10년이 넘었는데, 나는 요즘도 자주, 나만큼 간절하게 시를 쓰고 싶었으나 그럴 수 없었던 얼굴들을 떠올린다. 등단하기 위하여 자신의 젊음과 욕망을 시 10편 만드는 데 기꺼이 갈아 넣었던 얼굴들, 등단을 하고 나서 세상을 다 얻은 듯 기뻐하며 술이 떡이 되도록 마셨던 얼굴들, 그러다 몇 년 지나지 않아 그런 술자리에서 조용히 모습을 감춘 얼굴들. 나는 나의 행운에 대하여 자주 생각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행운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시를 쓴 지 10년이 넘어가니까, 나는 이런저런 작가와 친분이 생겼고, 무슨 출판사의 편집자, 무슨무슨 출판사의 편집자와도 친해졌다. 애초 실력이 있으니까 그들과 친해질 수 있었어! 하고 내가 나에게 좋은 말을 해주기도 하지만 어쨌든 나는 행운을 누리고 있는 것이다.

 

    등단제도는 문단 권력이라는 카르텔의 원흉일까? 그런 것 같다. 동시에,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작가가 되는 다른 방식이 있다면 카르텔이 깨질 수 있을까? 그럴 수 있을 것 같다. 동시에, 또 아닐 것이다. 대중들이 사랑하는 시인이 자연스레 좋은 작가가 되어 가는 그림이 가능하다면 참 좋겠는데. 출판사가 대중의 눈치를 보며 될 만한 시인과 작품을 골라 출판하는 그림. 나는 '소비자는 항상 옳다'는 말을 좋아한다. 이건 IT업계의 어느 프로그램 개발자가 했던 말인데, 듣자마자 내 마음에 쏙 들었다. 그런데 시의 경우엔, 여러 가지 이유로 이게 불가능해 보인다. 우선 독자 수가 너무 적다. 시 읽는 독자의 숫자가 고정되어 있는 건 물론 아니다. 모든 이가 잠재적 소비자이긴 하니까. 다만, 나는 박준 시집의 애독자인 동시에 조연호의 시집도 계속 읽고 싶은 독자인데, 등단제도가 없었다면 과연 내가 조연호를 읽을 수 있는 호사를 누릴 수 있었나 생각해 본다. 시단. 돌아볼수록 여긴 정말 이상한 곳이다. 불합리한 제도가 생명을 연장시키는 호흡기 역할을 하고 있는 곳 같다. 시인들끼리 만나면 우스갯소리로 이런 말도 한다. 그냥 시는 망하는 게 나을 것 같다고. 우리끼리 이게 뭐 하는 짓인지 모르겠다고.

 

    '우리끼리'가 카르텔이다. 저 '우리끼리'라는 말 속에 시인 가운데 거의 대부분이 포함되는 곳이라서, 그만큼 좁고 궁상맞은 곳이라서 여기는 다 한통속이다. 시인들끼리는 서로 다 알아요? 얼마 전에 어느 학생에게 받은 질문이다. 어느 큰 낭독회 뒤풀이 자리에 갔는데, 서로 다 아는 것 같아서 놀랐다고. 다 친한 건 아니어도 서로 이름, 얼굴은 웬만큼 알지 않을까? 이렇게 대답하고 나니 어쩐지 엄청난 집단 같았다. 아니, 뭐 다른 분야도 그렇지 않나? 교수들끼리도 다 알잖아, 서로. 같은 운동하는 프로끼리도 다 알잖아, 서로? 학생의 그 질문 때문에 나는 혼자서 계속 생각해 보았다. 그런데 운동선수는 자기 연봉으로 실력을 말하고, 교수는 논문으로 자기 실력을 말하는데 말이지. 시인은…… 시로 말하나, 판매량으로 말하나? 판매량을 직접 말하기엔 여러 가지로 좀 겸연쩍으니 실력으로, 작품으로 말해야 맞을 텐데. 독자들이 좋다고 말하는 시, 독자들이 실력 있다고 인정하는 시, 독자를 울게 하고 웃게 만드는 시……. 그런데 그 독자라는 것이 대체로는 이미 시인이거나 앞으로 시인이 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라는 게 문제다. 쓰는(쓰려는) 사람이 가장 많이 읽고, 쓰는(쓰려는) 사람이 가장 책을 많이 구매하는 곳이 여기다. 정말 좁고 가난하고, 강력한 한통속인 셈이다.

 

    여성을 추행하고 성폭행한 시인은 누구일까? 바로 '우리'다. 특히 남자인 우리. 어느 작은 잡지사 사장만도 아니고, 어디서 시집을 낸 어느 시인만도 아니고, 바로 우리. 피해자가 보기엔 가해자는 우리였을 것이다. 나를 만진 저 새끼와 '우리'가, 어느 뒤풀이 자리에서 함께 웃고 떠들고 있었기에 ― 속으론 시인들끼리도 서로, 개새끼, 하며 욕했을지도 모르지만 ― 피해자는 고통 받는다는 사실을 말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피해자를 욕하는 논리 중에 제일 답답한 건 이거다; 아니 가해자 걔가 무슨 권력이 있다고 걔한테 꼼짝을 못했대? 실제로 걔한테는 뭐가 쥐뿔도 없는 게 사실이긴 하다. 영화계의 누구처럼 무슨 큰돈을 만지는 것도 아니고, 연극계나 음악계의 누구처럼 캐스팅 권한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무슨 출판권을 가진 것도 아닌 어느 남자 시인에게 꼼짝도 못했다면 그건 여자가 너무 멍청한 거 아니냐고, '우리'는 말했을 수도 있다. '우리'는 등단제도를 욕하지만, 그리고 실제 등단제도가 문제인 것도 맞지만, 정말 문제는 '우리'다. 특히 남자인 우리. 가령, 누가 가짜 칼로 여성을 위협해서 그녀를 강간했다고 치자. 이에 대하여 누가 감히, 가짜 칼이 무슨 위협이라고 가짜 칼에 꼼짝을 못했대? 하고 말할 수 있겠나. 그 가짜 칼을 진짜로 보이게 만든 것이 바로 '우리'다. 특히 남자인 우리.

 

    나는 시를 정말 사랑한다. 열심히 쓰고 열심히 읽는다. 좋다, 익명이니 이런 말도 할 수 있구나. 그럼 조금 더 해보자. 나는 문예지를 볼 때마다 부끄럽다. 이런 걸 시라고 내다니, 정말 대단해 모두들! 생각한다. 10편 가운데 8편은 보통 똥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걸 싸다니, 이 아까운 종이에, 생각한다. 그러다가 좋은 시 2편을 읽고 반성한다. 이런 아름다움 앞에서는 내 시도 똥 비슷한 것이구나, 반성한다. 하지만 문단 내 성폭력에 관한 고발이 이어지던 시기엔, 누가 정말로 내 얼굴에 똥을 뿌리는 기분이었다. 어쩌면 누군가는 보았을 것이다. 여성을 함부로 만지던 그 새끼와 내가 함께 술 마시고 웃고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을. 그러면서도 나는 '우리'와 함께 나도 망하면 어쩌나 전전긍긍했다. 등단이라니? 대체 얼마나 구시대적인 방식이냔 말이야! 하고 목소리를 높이면서도, 내가 누린 등단제도라는 행운, 인맥이라는 행운을 다행으로 여겼다. 등단작가로서 시를 시작했고, 그래서 인맥을 쌓을 수 있었고, 그래서 앞으로 시집을 낼 수 있겠지. 시단. 돌아볼수록 정말 이상한 곳, 불합리한 제도가 생명을 연장시키는 호흡기 역할을 하고 있는 곳.

 

    더는 쓸 말이 없는 것 같다. 어떡하면 여기 사정이 좋아질까? '우리'를 바꾸어야겠지. 우선은 남자에서 여자로. 내 생각엔 지금은 이것부터 하는 게 옳은 것 같다. 누군가는 걱정하더라. 작품 수준은 보지도 않고 여자 작가만 대우해 주는 건 문단 전체를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일이라고 말이다. 응, 아니야. 지금껏 작품 수준은 보지도 않고 남자 작가만 대우해 줬잖아, 지난 100년, 1000년 동안. 이제 여자 작가 작품 좀 읽으려니까 갑자기 작품 수준, 문단 수준을 운운한다. 우선 해보자는 거다. 남자가 망쳐 놓았으니, 여자에게도 최소 100년은 기회를 줘야지. 나는 요즘도 자주, 나만큼 간절하게 시를 쓰고 싶었으나 그럴 수 없었던 여자들의 얼굴을 떠올린다. 등단하기 위하여 자기 젊음과 욕망을 시 10편 만드는 데 기꺼이 갈아 넣었던 여자들의 얼굴, 등단을 하고 나서 세상을 다 얻은 듯 기뻐하며 술을 마시던 여자들의 얼굴, 그러다 몇 년 지나지 않아 그런 술자리에서 조용히 모습을 감춘 그녀들.

 

 

 

 

 

 

 

 

 

 

편집자 A가 본 얼굴

 

 

 

    01
    친하게 지내던 한 학우가 주에 한 번씩 서넛이 모여 창작시를 합평하자는 제안을 해왔다. 이미 참여하는 합평 모임이 있었기에 크게 내키진 않았지만 즐거운 자리가 되길 바라며 함께하기로 했다. 가볍게 식사를 하고 서너 편의 시를 함께 읽는 두어 시간 정도의 모임을 예상했다. 그러나 언제나 모임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길어졌고, 나는 별 소득도 없이 잔뜩 화가 나서 집에 돌아오곤 했다. 내게 모임을 제안한 학우는 그의 시를 평가하는 나의 모든 말에 토를 달았고, 내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으려 엄청나게 긴 변명을 늘어놓았고, 급기야는 유치한 인신공격도 일삼았다. 도대체 이 사람이 어째서 내게 합평을 제안한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몇 회의 모임으로 나는 그에게 완전히 지쳐버렸다. 고민 끝에 이 모임을 계속할 수 없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날 학우는 식사자리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내게 욕을 했다.
    '너는 등단자를 많이 배출한 합평 모임에 속해 있고, 네가 하는 말은 그 합평회를 대표한다.' '네가 나를 나쁘게 평가해서 네가 속한 합평 모임에 내 욕을 하면, 문단에 나에 관한 안 좋은 소문이 날까 두렵다.' '좋은 합평 모임에 나간다는 건 권력을 가진 거다.' '넌 네 말에 어떤 힘이 있는지 모른다.' 화가 나서 내뱉는 그의 말을, 화가 난 나는 한 문장도 이해할 수 없었다. 그가 가진 두려움이 무엇인지 당시로선 상상하고 싶지 않았던 탓이다.

 

    02
    문단 내 성폭력 고발이 이어지던 재작년 연말, 나는 진심으로 문단 권력의 핵심을 짚어 보려 애를 썼었다. 떠올릴 수 있는 원로의 이름을 하나씩 지워 가며 이 사람이라면 문단 권력의 핵심이라 할 수 있을까? 이 사람이라면 기존의 문단 구조가 가진 문제점을 바꾸어 보자고 동료들을 설득할 수 있을까? 이 사람이라면 문단이라는 넓은 판 한가운데 가해자를 거꾸로 매달아 단죄하거나, 피해자가 쉴 수 있는 기구 하나쯤 설계할 수 있지 않을까? 수도 없이 따져 보았다. 문단이 기수로 줄을 세울 수 있는 군대 같은 조직도 아니고, 목표를 위해 팀을 이루는 회사와 같은 조직도 아니니 대표할 만한, 나서기에 마땅한 사람을 꼽는 데에는 실패하였다. 하지만 떠올린 누구 하나 그 이름 안에 권력을 품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03
    나는 A 강사를 개인적으로 안다. 그는 내가 다니던 대학에 출강했었다. 그를 떠올리면 언제나 "너희 학교 여자애들은 재미가 없어, **대 애들에 비하면, 너넨 너무 학생 같아."라고 한 말이 같이 떠올랐다. 밤새 술을 마셔 취기가 가시지 않은 얼굴로 강의실에 들어와, 지난밤 어떤 여자들을 만나 술을 마셨고 가장 예쁜 여자를 어떤 시인이 차지했는가 하는 이야기로 수업의 절반을 대신한 적도 있다. 나는 그가 불편했지만, 어느 문단 자리에서 만났을 때 반가운 척 인사를 했다. 그는 유명 작가고 나는 아무것도 아니니까. 그에겐 수많은 유명 작가, 유명 시인 친구가 있고 나는 등단이 하고 싶었으니까.

 

    04
    나는 대학원에 진학했다. A 교수가 내게 농담을 했다. 등단이 하고 싶으면 세 장만 가져오라고. "농담이야, 알지?"라는 말도 잊지 않고 덧붙였다. '세 장이면 삼백일까? 설마 삼천만 원은 아니겠지?' 생각하고 있는 내 표정이 어땠을지……. A 교수는 어쨌거나 내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나 보다. "넌 나한테 잘 보여야 돼, 다른 애들은 우리 집에 와서 청소도 하고 떡국도 끓여 주고 한다고!" '저건 혹시 진심일까? 그런데 왜 하필 떡국일까.' 그런 생각으로 그의 언행을 시큰둥하게 넘기려 애썼다. A는 교수이고, 문인이고, 괜찮은 잡지의 주간이고……. 내가 정말 등단이 하고 싶었던 걸까? 아무튼 A 교수의 이야기를 듣고 있을 무렵엔 문단엔 좀 싫증이 난 상태였던 것도 같다.
    어느 술자리에서였다. 내가 A 교수 이야기를 꺼내자 처음 보는 사람이 "그 A 교수님을 알아요? 나 그 A 교수님 밑에서 한참 공부했는데, 그럼 따지고 보면 내가 000 씨 선배네?" 하는 것이었다. 처음 보는 사람이 난생처음 듣는 괴상한 논리로 내 위에 서려고 했다. 내가 별 반응이 없자 그는 말을 이어 갔다. "내가 그 A 교수님이랑 얼마나 친한데, 설날에 가서 떡국도 끓여 드리고……." 훗날, 그는 떡국 A 교수가 편집주간으로 있는 잡지로 등단을 했다. 그저 우연인지도 모르겠으나.

 

    05
    권력은 어디에 있을까? 편집 일을 하다 보면 교정지를 받은 신인 작가들이 내게 지나치게 깍듯이 인사를 할 때가 있다. 교정을 봐주어서 감사하다, 다음에도 내 작품을 잘 봐 달라 그런 말을 한다. 나는 내 일을 한 것뿐이니 감사할 것 없다고 대답한다. 그리고 단행본 나오면 꼭 사서 읽겠다고 답한다. '그러나 제가 다음에 작가님의 작품을 유심히 본다고 한들 제겐 원고청탁을 한 번 더 하거나, 그런 힘은 없어요.'라는 말은 속으로 삼킨다. 누가 중요한 사람인지 몰라서 아무에게나 폴더 인사를 하는 신입사원이 문단에도 널렸다. 이름을 널리 알리기 전까진 모두가 신입사원인 곳 같다.

 

    06
    문단을 무엇에 비유하자면, 끝없이 펼쳐지는 그물망 같다. 이렇게 잘라 묶으면 이대로, 저렇게 잘라 묶으면 저대로, 겉으로 보기엔 서로 전혀 관계없는 무리 같기도 하다. 그렇게 별로 상관없는 듯이 따로 있다가도 문득, 이쪽의 누구와 저쪽의 누구끼리, 저쪽의 누구누구와 이쪽의 누구누구끼리 너무나 가까운 편을 이루어 서로의 이름을 높여 준다. 예상치도 못한 사람들이 서로 이어져 있는 것이다. 시인과 친한 소설가, 그 소설가와 친한 편집자와, 그 편집자와 친한 교수, 그런데 그 교수는 유명한 시인이자 어느 잡지 주간이고, 그 주간 아래 일하는 어떤 소설가가 있는데, 그의 가장 친한 친구가 또 어떤 시인이고. 아마도 그런 이유에서 갓 등단한 신인들에게 문단 자리에 자주 나가 얼굴도 비치고, 인맥도 쌓으라는 조언이 쏟아지는 건지 모르겠다. 세상 어떤 일이 친분이라는 혐의 바깥에 있을 수 있겠나 싶지만, 등단 경험이 없는 나조차 "등단을 하면……"으로 운을 떼는, 저 별 볼일 없는 엄청난 조언을 들은 적이 있으니 말이다.

 

    07
    어느 자리에선가 분위기를 너무 편안하게 느낀 나머지 나는 "그 작가 작품은 좀 별로"라는 말을 해버렸다. 그때 누군가 내 말에 대꾸했다. "근데 그 작가 되게 괜찮은 사람이야." 괜찮은 사람은 내가 좀 별로라고 생각했던 작품으로 활동도 잘하고 상을 받기도 한다. '좋은 합평 모임에 나간다는 건 권력을 가진 거'라고 했던 학우의 말이 떠오른다.

 

 

 

 

 

 

 

 

 

 

 

 

 

 

대담 기획, 원고 구성 및 정리 / 김남숙(소설가)

2015년도 문학동네 신인상으로 등단. 현재 《문장 웹진》 청년 작가 간사.

 

대담 기획, 원고 구성 및 정리 / 양안다(시인)

1992년 충남 천안 출생. 2014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창작동인 '뿔'로 활동 중. 시집 『작은 미래의 책』, 『백야의 소문으로 영원히』. 현재 《문장 웹진》 청년 작가 간사.

 

   《문장웹진 2019년 0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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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10-01
다시 서정을 위해

[에세이] 다시 서정을 위해 권상진 스무 살 무렵이었던 것 같다. 서른이 되기 전에 시인이 되겠다고 주변에 떠들고 다녔던 기억이 아슴하다. 「홀로서기」를 외웠고 「지란지교를 꿈꾸며」를 외웠다. 이생진을 읽고 백창우를 읽고 박노해를 읽었다. 잔잔하게 때로는 웅장하게 가슴을 밀고 들어오는 시편들이 심장을 가로세로로 뛰게 만들었다. 백석과 김수영과 기형도의 이름은 몰랐지만 굳이 그들이 아니어도 충만한 시간들이었다. 시집이 이천 원에서 삼천 원 정도 할 때여서 큰 부담 없이 고를 수 있었고 외출할 때 시집 한 권을 들고 밖을 나서도 아무도 이상하게 쳐다보는 이도 없었다. 오히려 뭇 여성들의 시선이 슬쩍슬쩍 내 턱선을 지나 책장에 닿는 기분을 느낄 수 있어 좋았다. 생일이나 기념일에는 으레 서점에 들러 시집을 골랐다. 『넌 가끔가다 내 생각을 하지 난 가끔가다 딴 생각을 해』(원태연),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류시화), 『친구가 화장실에 갔을 때』(신진호) 같은 시집을 골라 슬쩍 건네던 날들이 아련하다. 스물이라는, 가라앉을 것 하나 없는 맑은 감정에서 속살거리는 말들을 시인들은 대신 말해 내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 십 대는 가고 이십 대가 펼쳐지고 있었다. 고등학교 입시에 실패하고 대학을 쫓겨나 군대를 다녀오고 나니 어느새 아무데도 기댈 수 없는 성인이 되어 있었다. 오래된 가난이 불편하지는 않았지만 그때부터 가난은 나를 가만히 두지를 않았다. 공장 일을 시작했는데 처음 해보는 노동이란 게 미치도록 좋았다. 종일 몸을 쓰고 땀을 흘리는 일이 알 수 없는 쾌감을 안겨 주었고 월급이라는 보상까지 덤으로 안겨 주었다. 시를 읽고 쓰는 일만큼 일이 재미있었고 누구의 도움 없이 혼자서도 살아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더없이 좋았다. 지쳐 잠들기 전 문득 돌아본 시의 한때는 짧은 여행지의 추억처럼 아득하기만 했다. 나의 스물은 급류처럼 흘러갔고 시는 둑 너머에 있어 쉽게 손이 닿지 않았다. 하지만 일과 돈, 그리고 자립의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노동은 즐겁고 땀은 향기로웠지만 갑자기 내가 꿈꾸던 삶이 이런 것이었던가 하는 질문이 나를 툭 한 번 치고 갔다. 해지는 풍경만 봐도 맥박이 난동을 부리고 꽃과 낙엽의 표정을 살피면 왠지 모를 눈물이 맺히던 한 시절의 기억이 불현듯 피곤에 지친 등을 흔들어 깨웠다. 시인이 되겠다던 꿈을 무참히 짓밟고 나를 공장 노동자로 내몰았던 대학교 재단 이사장의 말이 떠올랐다. ‘약속은 지키면 좋은 것이고 못 지키면 어쩔 수 없는 일’이라던 그의 말. 그가 지키지 않은 약속 때문에 학교에서 쫓겨난 나는 궤도를 이탈해 버린 행성처럼 어둠 속으로 무작정 떠밀려가고 있었다. 막막한 혼돈 속으로 나를 밀어 넣었던 약속이란 단어가 다시 나를 수습하고 있었다. 시간은 이미 서른을 지나갔고 아무도 내게 왜 약속을 지키지 않느냐고 물어 보는 이는 없었지만 스스로와의 약속은 끝내 지켜주고 싶었다. 그렇게 시가 다시 내게로 왔다. 세월도 변했고 시도 변해

  • 관리자
  • 2024-10-01
과거를 보는 미래 SF

[에세이] 과거를 보는 미래 SF 곽재식 며칠 전 나는 한 행사에서 SF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소개하는 발표를 하나 맡게 되었다. 발표가 다 끝나고 질문 답변 시간이 되었는데 청중 중 한 분이 “SF라면 미래를 생각해 봐야 하는데, 왜 옛날 SF를 소개했느냐?”라고 질문했다. 그날 행사 중에는 답변을 짧게 드렸지만 이 내용은 한번 깊게 따져 볼 만한 재미난 주제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오늘은 그 이야기를 한번 해보려고 한다. 명작 SF로 자주 손꼽히는 1970년대 영화로 <>이라는 할리우드 영화가 있다. 찰턴 헤스턴이 주연을 맡아 대형 영화사에서 배급한 그야말로 정통 할리우드 영화인데 그러면서도 비참한 미래의 모습을 예상해서 보여주는 내용이다. 그 결말도 뻔한 할리우드 영화의 행복한 결말이라고 말하기는 매우 어려운 방향으로 흘러가기에 눈에 뜨이는 영화이기도 하다. 맨 마지막에 주인공이 외치는 대사는 SF 영화사에서 유명한 대사 순위를 꼽으면 상위권에 자주 오를 만큼 잘 알려져 있기도 하다.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미래는 인구가 너무나 빠르게 늘어났기 때문에 멸망해 가고 있는 세상이다. 인구가 너무나 많은 데 비해 식량과 자원은 부족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굶주리고 모든 물자가 부족해 다들 비참하게 살고 있다. 영화 제목인 “소일렌트 그린”이란 식량이 부족한 세상에서 특별히 개발해 보급 중인 신형 인공 식품을 말한다. 그러므로 <>은 19세기 맬서스의 등장 이후 수많은 사람들이 미래 인류의 멸망 시나리오라고 철석같이 밀었던, 맬서스 함정을 정통으로 다룬 영화다.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하는데,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성장한다.”라는 말은 어지간하면 한 번쯤 들어 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지구는 망한다, 그러니 사람이 많은 것은 해악이다, 라는 말을 하는 사람을 본 적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런 생각은 곧 “사람이 곧 모든 파괴의 근원이며, 사람이 없어져야 지구가 살아난다.”는 생각으로도 자주 이어지기도 한다. 재미난 사실은 이 영화에서 다루는 멸망해 가는 미래가 2022년이라는 점이다. <>은 1973년에 개봉된 영화이므로 이 영화에서 말하는 2022년이란 영화가 제작되던 1972년으로부터 50년 후를 말하는 이야기일 것이다. 그런데 이 SF 영화에서 말하는 2022년의 미래라는 시간은, 2024년을 사는 현대의 우리에게는 2년 전의 과거가 되었다. 나는 영화를 보는 과정에서 이렇게 시간의 꼬임을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이 굉장히 신비롭다. 게다가 요즘 이 영화의 내용을 보다 보면 더욱 중요한 사실도 깨달을 수 있다. 실제 2022년이 인구가 너무 많아 식량 부족으로 멸망하는 시간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우리가 겪고 있는 2020년대는 인구가 너무 많은 것이 문제가 아니라 인구 감소와 초고령화가 문제인 시대다. 이러한 현상은 한국만 겪고 있는 문제도 아니다. 한국에서 인구 문제가 워낙 극심하게 나타나

  • 관리자
  • 2024-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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