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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혹의 지도를 그리는 방법

  • 작성일 2019-04-01
  • 조회수 804

[기획-다시 이 작가]

 

 

매혹의 지도를 그리는 방법

- 홍일표 시인 인터뷰

 

 

고봉준

 

 

 

    내게 '홍일표'라는 기호는 두 개의 이미지를 연상시킨다. 단정하고 점잖은 태도가 그 하나이고, 최근 몇 년 동안 이전의 시세계와 단절하면서 밀고 나가는 새로운 시적 경향이 다른 하나이다. 앞의 것이 '사람'에 관한 것이라면, 뒤의 것은 '시'에 관한 것이다. 홍일표 시인은 『매혹의 지도』(2012) 이후 새로운 작시법을 선보이면서 전통적인 서정의 세계에서 이탈하려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한 평론가는 이 변화를 "그동안 그가 축적해 왔던 시학적 준거와 기율의 일대 전환을 예고하는 돌올한 실례"(유성호)라고 평가했다. 그런데 비교적 최근에 출간된 그의 시집들을 읽어 보면 일련의 실험적 경향이 분명한 목표 지점을 설정하고 나아가는 여정이라기보다는 그때그때마다 시가 위치하고 있는 토대를 허물어뜨림으로써 다른 세계를 개시하려는 부정의 몸짓처럼 느껴진다.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듯이 이러한 '부정'에 손을 내맡기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그리고 그 여정을 일회적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밀고 나가는 일관성은 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시인의 태도를 가리켜 '단정하고 점잖은 태도'라고 평가했지만, 실상 이 말 속에는 부정의 연속에 좌절하지 않는 내적인 단단함이 자리하고 있다.
    나는 홍일표의 두 권의 시집에 해설을 썼다. 2007년에 출간된 『살바도르 달리풍의 낮달』(천년의 시작, 2007)과 『나는 노래를 가지러 왔다』(문학동네, 2018)가 그것들이다. 첫 번째 해설은 시풍이 변하기 이전에 출간된 것이고, 두 번째 해설은 가장 최근에 출간된 시집이다. 생각해 보니 공교롭게도 시적 경향이 바뀌기 직전의 시집과 가장 최근에 출간된 시집의 해설자가 나인 셈이다. 사실 두 권의 시집이 보여주는 시세계의 거리는 상당히 멀다. 약간이나마 두 세계를 모두 경험한 독자의, 또는 해설자의 한 사람으로서 말하자면, 앞의 시집은 '살바도르 달리풍의 낮달'이라는 다소 이국적인 제목을 달고 있지만 인간과 자연의 투명한 관계에 대한 욕망이나 실존의 근거를 발견하려는 인간적 몸짓 등 서정의 전통적인 어법과 결을 고스란히 반복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전통적이고 익숙한 어법은 『매혹의 지도』(문예중앙, 2012) 이후에는 발견되지 않는다. 이 시적 경향의 단절과 변화는 무척 흥미로운 대목이다. 도대체 시인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인터뷰 대상을 결정하고 제일 먼저 묻고 싶은 질문도 이것이었다.

 

*

 

Q. 선생님의 약력을 살펴보니 1988년에 잡지로 등단한 후 1992년에 신춘문예로 다시 재등단을 하셨더군요. 왜 등단을 두 번씩이나 하셨는지, 등단 전후의 사정을 좀 들려주십시오./span>

 

A. 1988년 《심상》 신인상, 1992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문단에 나왔어요. 등단한 지는 오래됐지만 동년배의 시인들에 비해 작품 활동을 제대로 하지 못했어요. 선배도, 동료도 없는 허허벌판에서 악전고투하며 버텨 왔지만 발표 지면이 많지 않았고, 그러다 보니 시작 활동에 흥이 나지 않더라고요. 좀 억울하기도 했고, 한때 시단을 아예 떠날 생각도 했었어요. 그런 우여곡절을 겪다 보니 자연스레 시작에 소홀하게 됐지요. 본격적으로 활동한 것은 2006년부터입니다. 당시 《문학사상》에 작품 발표할 기회가 있었는데, 다음 달 월평에 유성호 교수가 제 작품을 언급한 적이 있었어요. 그때부터 탄력을 받아 시에 정진했어요. 그 후 매년 평균 30여 편 정도의 시를 발표했습니다. 뒤늦게 불이 붙었으니 더 자유롭고 더 멀리 가기 위해서라도 열심히 작품 활동을 해야 했지요.
    등단 전에는 김수영, 김종삼, 정현종, 황동규, 박용래 등의 시집을 즐겨 읽었어요. 그분들의 시집을 오랫동안 끼고 다녔어요. 아마 그분들이 모두 저에게 조금씩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봅니다. 돌아보면 막막하고 캄캄했던 시절이었습니다.

 

Q. 『매혹의 지도』 이후 시풍이 급변했습니다. 오랫동안 천착해 온 시세계, 특히 스타일 등을 바꾸는 일이 쉽지 않았을 텐데요, 『매혹의 지도』 이전과 이후를 구분해서 어떤 변화의 계기가 있었는지 좀 들려주십시오.

 

A.『매혹의 지도』 이전에 나온 시집이 『살바도르 달리풍의 낮달』인데 두 시집은 많은 차이가 납니다. 두 시집을 비교하여 읽어 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확연한 차이를 느끼실 겁니다. 현실추수적 관점에서 보시는 분들은 수용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겠지만 제가 가고자 하는 길은 최소한 다른 시인들이 걸어가지 않은 길이기 때문입니다. 남들이 걸어간 길을 다시 걷는 것은 재미도 없고 별 의미도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 결과가 『매혹의 지도』로 나타난 겁니다.
    그 무렵 만해마을로, 담양으로, 마라도로, 시가 더 잘 보이는 곳을 찾아 바람처럼 떠돌며 지냈습니다. 그 후 조금씩 시의 스타일이 바뀌었어요. 당시 시를 쓰면서 마음에 새기고 있던 것은 '혼돈'은 시의 성지이며 모태이며 가장 강력한 시의 기운이 작용하는 곳이라는 거였어요. 무질서의 질서가 살아 용틀임하는 곳이며 새로운 우주 창조의 신열이 가득한 곳으로 언어와 관념이 해체되고 가장 원초적인 생명의 숨결이 살아 붐비는 곳이라고 본 거지요. 시는 따뜻한 아랫목에 있지 않고, 광기와 회의와 혼돈 속에서 퍼덕거리고, 획일화되고 보편화된 일상의 질서 안에서 시는 개화하지 못하고 질식합니다. 버리지도 잘라내지도 못하는 어정쩡한 상태에서 시라고 만들어내는 것은 하나의 조립품이거나 올드패션의 한물간 유행가이지요. 수십 년째 같은 노래를 들어야 하는 것은 고문입니다. 안온한 서정을 질료로 쓰는 시는 달고 편안하여 위무의 기능을 하기도 하지만 시의 속성은 본래 '위기'에 있다고 봐요. 극한의 혼란과 위기를 넘어서지 않으면 시의 싹은 발아하지 않고 새로운 세계도 발견되지 않지요.
    저는 늘 시는 최초이면서 최후여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어요. 그것은 감각이나 사유도 마찬가지고요. 남과 비슷한 시를 쓰는 일이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을 해요. 시인은 항상 신생독립국이어야 하고, 일당 독재이며 제국의 군주여야 한다고 믿어요. 그래야 우리 시단도 더욱 풍요로워지지 않겠어요?
    2012년 문예중앙으로부터 시집을 내겠다는 연락을 받고, 6개월여 동안 원고정리에 몰두했어요. 그사이 100여 편의 시를 버렸고, 가리고 추려내어 67편의 시를 묶어 『매혹의 지도』를 펴냈습니다. 저는 『매혹의 지도』에서 기존의 시적 틀과 내용을 버리고, 미지의 시적 공간으로 이동하고 싶었어요. 매우 낯설었지만 거기에는 미처 보지 못했던 세계가 무한대로 펼쳐져 있었어요. 이것이 변화의 계기가 됐다고 봐야지요. 그리고 시문법이 달라지기 시작한 점에 대해 과거의 제 시를 알고 있던 독자들은 약간 당혹해하는 것 같았어요. 그러나 시는 변화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이것은 변화에 따른 자연스런 추이라고 봐요. 올드패션은 익숙하고 편하지만 변화된 새로운 세계를 담보하지 못합니다. 시는 무한 번식하는 생물이지 박물관 한 귀퉁이를 장식하는 청동거울이 아니잖아요. 그러나 제 시집에 대한 불만은 있어요. 100% 흡족하지도 않고요. 하지만 저는 현재진행형의 시인이기 때문에 제가 안고 있는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또 다른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죽을 때까지 하나의 정점을 향해 달려가긴 하겠지만 시는 끝이 없는 것 같아요. 그래서 시가 더욱 매혹적이고요.

 

Q. 『매혹의 지도』(2012) ― 『밀서』(2015), 『나는 노래를 가지러 왔다』(2018), 이렇게 세 권의 시집을 연이어 출간하셨습니다. 누구보다 왕성하게 활동을 하셨고, 세 권의 시집 모두 아주 개성적인 세계를 구축하고 있습니다. 이 시집들을 출간하는 6년 동안 관심의 변화 같은 것이 있었을까요?

 

A. 『매혹의 지도』 이후 3년에 한 권씩 시집을 냈습니다. 2012년 『매혹의 지도』(문예중앙), 2015년 『밀서』(문예중앙), 2018년 『나는 노래를 가지러 왔다』(문학동네)를 펴냈지요. 『매혹의 지도』에서 나름대로 변화를 시도하였고,『밀서』에서 그 작업이 보다 더 본격화되었습니다. 현실 재현에 충실한 시에 일정한 거리감을 갖게 되면서 제가 모색한 것은 이성과 논리가 가닿지 않는 세계였어요. 명명할 수 없는 무정형의 공간에서 뛰노는 혼돈의 공간이었지요. 화요일 다음에 월요일이 오고, 봄 다음에 겨울이 오는 세계였고, 여러 개의 공간과 시간이 엉클어져 있는 곳이었습니다. 매우 낯설고 기이한 세계였지만 저는 그곳에서 약동하는 미지의 숨결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한 번도 만져 보지 못하고 느껴 보지 못한 그곳에 제가 쓰고 싶은 시의 언어가 광맥처럼 숨 쉬고 있었습니다.
    시집 『밀서』를 받아 본 한 시인은 시가 내달리듯이 호흡이 빠르고 재빨리 다른 이미지로 이어 가는 점을 특이하게 본 듯싶어요. 저는 대부분 시를 단숨에 쓰는데 매번 홀림의 순간을 경험해요. 간혹 시를 쓰다가 막히거나 더 이상 확장이 안 되면 던져버리지요. 물건이 되기 틀렸다는 판단이 들 때 주저하지 않고 시를 버립니다. 붙잡고 있어 봤자 대부분 태작이 되고 만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알게 됐기 때문이지요. 홀림의 상태에서 찾아오는 시는 세상에 없는 전혀 다른 언어이고, 한 번도 발화되지 않았던 최초의 언어가 됩니다. 들뢰즈의 말대로 예술은 필연적으로 어떤 예기치 않은 것, 인식되지 못한 것, 인식할 수 없는 것을 생산하기 때문이겠지요. 그러므로 시는 늘 미답의 지점을 지향하고 인식과 언어가 발 딛지 못한 곳에서 새로운 시는 태어납니다. 의도적으로 정산된 의미를 도출하는 시들은 가로세로가 일정한 정형의 언어만 산출합니다. 그러나 의도 밖의 지점에서 나타난 시들은 의사소통의 수단이 아니기 때문에 그 자체로 말하고 그 자체로 존재하지요.
    몇 해 전 어느 문학 강연장에서 저는 '방언의 시학'이라는 용어를 사용했어요. 방언은 성령을 받은 신자가 습득한 일이 없는 언어를 무아의 상태에서 하는 말을 뜻합니다. 저는 방언이 시의 본질을 가장 잘 드러내고 있다고 생각해요. 방언은 일상의 언어 질서를 파괴합니다. 무의식의 심층에 잠복해 있던 언어들이 도발적으로 나타나 소통의 단절을 초래하지요.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 폭포수처럼 쏟아지고, 폭죽처럼 터져 정형의 세계를 흐트러뜨립니다. 그러나 방언은 뜨겁고 치열하고 외롭습니다. 일종의 홀림의 상태에서 폭발하는 낯설고 기이한 언어이지만 그 언어는 현실과 인식의 체계를 관통하여 의식의 지평을 확장합니다. 새롭게 태어난 언어는 낯설고 기이하여 도무지 알아들을 수가 없습니다. 익숙한 문법이 아니고, 듣도 보도 못한 외계의 언어이니 당연하지요. 혹자는 그런 언어를 엽기적인 신기주의(新奇主義)라고 비판하면서 나쁜 시, 고약한 시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런 과정을 통해 나온 시는 '나쁜 시'가 아니라 '다른 시'일 뿐입니다. '다른 시'는 기존의 시와는 여러모로 다르기 때문에 불편하고 거북합니다. 하지만 다르다는 이유 때문에 배척당하거나 비판받을 이유가 없습니다. 다양한 유형의 시들이 다채롭게 피어날 때 우리 시단은 더욱 풍요로워질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지요.
    지난해 발간한 『나는 노래를 가지러 왔다』는 지금까지의 시작 방법을 뒤돌아보고 검토하는 기회가 됐습니다. 고봉준 평론가의 지적대로 '바깥의 언어'를 통해 관습화된 세계를 해체 - 구성하는 작업이었고, 언어가 닿지 못하는 변화와 생성의 지점에서 전환과 비약을 통해 언어의 새로운 지평을 모색한 시집이었습니다. 이전 시집에서 고려하지 않았던 소통의 문제도 고민했고, 좀 더 차분한 시선으로 존재의 내밀한 구석들을 성찰한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Q. 시 전문지 『모:든시』를 발행하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잡지 만드는 일을 시작하신 이후로 거의 뵙지 못한 것 같은데요, 최근에는 어떻게 지내고 계신지요? 향후의 계획이나 최근의 시단 흐름에 대한 견해도 궁금합니다.

 

A. 지난해 시집 『나는 노래를 가지러 왔다』를 내고, 제대로 시를 쓰지 못했습니다. 글 쓰는 일에, 특히 시 쓰는 일에 흥이 생기지 않았습니다. 어떤 무력감 같은 것이 찾아왔어요. 그저 잡지 만드는 일과 남의 시집 만드는 일에만 열중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지요. 제가 만들고 있는 시 전문지 『모:든시』 관련 인터뷰 한 번 하고는 일절 바깥출입을 하지 않고 지냈습니다.
    시집 출간 이후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곰곰 여러 번 생각했지만 가장 확실한 것은 흘러가는 대로 간다는 것입니다. 어차피 시는 생물이고 내 의지 밖의 어떤 의지에 의해 써진다는 생각을 해요. 완전히 내가 비워지고 시도 뭐도 생각하지 않을 때 어느 날 갑자기 한순간에 찾아오는 것이 시라고 믿어 왔고, 앞으로도 그 믿음에는 변화가 없을 거예요. 뚜렷한 목적과 방향을 미리 설정해 놓고 쓰는 시를 저는 별로 신뢰하지 않아요. 목적성을 지닌 시의 한계와 도그마를 너무나 많이 보아 왔고, 정형화된 틀에 갇혀 한 발자국도 운신하지 못하거나 기존의 시 문법만이 옳다고 주장하는 독선과 편견의 논리에도 동의하지 않아요.
    그러나 아직도 급속하게 변화하는 현실의 맥락을 읽지 못하고, 첨단의 시만이 시가 아니라고 주장하면서 단아하고 정형화된 옛 서정시로 회귀하고자 하는 일군의 움직임을 봅니다. 정서의 바탕이 다른 새로운 시들은 읽기 불편하고, 끝없이 낯선 감각과 조우하는 것이 결코 편하지만은 않겠지만 그 속에 간과하기 쉬운 또 다른 세계가 용틀임하고 있어요. 혼종과 이질을 통해서 새로운 미학이 태동하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은 언제나 가슴 설레는 일입니다.
    최근 시단의 동향을 보면서 망나니 같은 시가 그리울 때가 있어요. 이미지, 구조, 운율, 의미 등을 잘 갖추어 모범정답처럼 어디 하나 흠 잡을 곳 없는 시가 아니라 폭발적 상상력으로 질주하는 야생마 같은 시, 원시적 생명력을 내장한 뜨겁고 치열한 시를 만나고 싶어요. 그리고 시단에 갓 나온 시인들의 세계가 지금보다 좀 더 다양해졌으면 좋겠어요. 현재 우리 시단은 크게 보존과 파괴 두 계열로 나뉘어져 있는 느낌입니다. 평론가들이 그어 놓은 선이긴 하지만 시인들이 거기에 연연하지 않고 좀 더 활달한 상상의 공간으로 탈주했으면 좋겠어요. 시의 영역을 확대하는 것은 모든 시인들의 책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젊은 시인들의 임무가 막중하지요. 기대했던 시인들이 너무 쉽게 정형화된 세계에 안착하는 것을 볼 때마다 많은 아쉬움을 느낍니다. 좀 더 폭발적인 시의 향연을 보고 싶습니다. 시는 언제나 도착의 언어가 아니라 출발의 언어니까요.

 

*

 

    인터뷰를 위해 준비해 간 질문 가운데 집요하게 묻지 못하고 슬그머니 집어넣은 질문도 있었다. 홍일표 시인은 1988년에 등단했으니 등단 30년이 넘었으나 그동안 제대로 된 조명을 받지 못했다. 2000년 이전에는 서정적인 시세계를 고집했으나 '서정'의 영역에서도 크게 주목받지 못했고, 2010년 이후에는 모던하고 실험적인 작품 경향을 추구했지만 시적 '전위'에 대해 이야기할 때 좀처럼 그의 이름은 거론되지 않았다. 시인으로서는 꽤 서운함을 느낄 수도 있는데 어떠냐고 잠시 말을 꺼냈다가 얼른 집어넣었다. 또 하나, 널리 알려진 사실은 아니지만 홍일표 시인은 『살바도르 달리풍의 낮달』(2007) 이전에 세 권의 시집을 출간했었다. 『안개, 그 사랑법』(심상, 1991), 『순환선』(한국문연, 1995), 『혼자 가는 길』(모아드림, 2001)이 그것들이다. 그는 이 시집들에 대해서는 한사코 말을 아꼈다. 2010년 이후에 바뀐 그의 시풍에 대해 이야기할 때 사람들은 자주 '단절'이라는 표현을 쓴다. 하지만 그가 출간한 시집들 사이에, 심지어 『매혹의 지도』 이전에 출간한 시집과 그 이후에 출간한 시집들 사이에도 연속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실험'이라는 기호로 그의 시적 경향을 현대적인 감각이 돋보이는 경향의 맥락 속에 위치시키곤 한다. 예컨대 이승훈, 이수명, 함기석 등과의 관계 속에서 그의 시를 읽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언어'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이들의 시세계와 달리 홍일표 시의 초점은 '사물'에 있다. 언어의 실험이 아니라 사물에 대한 지속적인 사유, 일상적 맥락을 뛰어넘어 사물의 '진실'을 발견해 내려는 집착이야말로 홍일표의 시세계로 들어가는 입구라고 말할 수 있다. "사과를 쪼개다가 검은 새 한 마리를 발굴한다"(「새의 기원」)나 "보도블록에 박쥐들이 붙어 있다"(「껌」) 같은 진술들이 대표적이다. "솜사탕을 수국 한 송이로 번안하는 일에 골몰한다"(「수국에 이르다」)라는 표현에서 제시되고 있듯이, 그는 일상적 사물에서 일상적 맥락 이상의 세계를 발견하는 일을 '번안'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나는 '번안'이라는 언어적인 표현보다 시집 『매혹의 지도』를 펼치면 등장하는 다음의 문장이 그의 시를 이해하는 최상의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대상과의 깊은 교유는 곧 귀신을 만나는 일이고, 단 한 번도 감각하지 못한 생의 숨결에 온몸이 젖는 것이다."(<시인의 말> 중에서)

 

 

 

 

 

 

 

 

 

 

 

 

 

 

 

작가소개 / 고봉준

2000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평론집 『반대자의 윤리』, 『다른 목소리들』, 『유령들』, 『비인칭적인 것』이 있음. 현재 월간 《시인동네》, 계간 《문학선》 편집위원.

 

 

   《문장웹진 2019년 0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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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다시 서정을 위해 권상진 스무 살 무렵이었던 것 같다. 서른이 되기 전에 시인이 되겠다고 주변에 떠들고 다녔던 기억이 아슴하다. 「홀로서기」를 외웠고 「지란지교를 꿈꾸며」를 외웠다. 이생진을 읽고 백창우를 읽고 박노해를 읽었다. 잔잔하게 때로는 웅장하게 가슴을 밀고 들어오는 시편들이 심장을 가로세로로 뛰게 만들었다. 백석과 김수영과 기형도의 이름은 몰랐지만 굳이 그들이 아니어도 충만한 시간들이었다. 시집이 이천 원에서 삼천 원 정도 할 때여서 큰 부담 없이 고를 수 있었고 외출할 때 시집 한 권을 들고 밖을 나서도 아무도 이상하게 쳐다보는 이도 없었다. 오히려 뭇 여성들의 시선이 슬쩍슬쩍 내 턱선을 지나 책장에 닿는 기분을 느낄 수 있어 좋았다. 생일이나 기념일에는 으레 서점에 들러 시집을 골랐다. 『넌 가끔가다 내 생각을 하지 난 가끔가다 딴 생각을 해』(원태연),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류시화), 『친구가 화장실에 갔을 때』(신진호) 같은 시집을 골라 슬쩍 건네던 날들이 아련하다. 스물이라는, 가라앉을 것 하나 없는 맑은 감정에서 속살거리는 말들을 시인들은 대신 말해 내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 십 대는 가고 이십 대가 펼쳐지고 있었다. 고등학교 입시에 실패하고 대학을 쫓겨나 군대를 다녀오고 나니 어느새 아무데도 기댈 수 없는 성인이 되어 있었다. 오래된 가난이 불편하지는 않았지만 그때부터 가난은 나를 가만히 두지를 않았다. 공장 일을 시작했는데 처음 해보는 노동이란 게 미치도록 좋았다. 종일 몸을 쓰고 땀을 흘리는 일이 알 수 없는 쾌감을 안겨 주었고 월급이라는 보상까지 덤으로 안겨 주었다. 시를 읽고 쓰는 일만큼 일이 재미있었고 누구의 도움 없이 혼자서도 살아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더없이 좋았다. 지쳐 잠들기 전 문득 돌아본 시의 한때는 짧은 여행지의 추억처럼 아득하기만 했다. 나의 스물은 급류처럼 흘러갔고 시는 둑 너머에 있어 쉽게 손이 닿지 않았다. 하지만 일과 돈, 그리고 자립의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노동은 즐겁고 땀은 향기로웠지만 갑자기 내가 꿈꾸던 삶이 이런 것이었던가 하는 질문이 나를 툭 한 번 치고 갔다. 해지는 풍경만 봐도 맥박이 난동을 부리고 꽃과 낙엽의 표정을 살피면 왠지 모를 눈물이 맺히던 한 시절의 기억이 불현듯 피곤에 지친 등을 흔들어 깨웠다. 시인이 되겠다던 꿈을 무참히 짓밟고 나를 공장 노동자로 내몰았던 대학교 재단 이사장의 말이 떠올랐다. ‘약속은 지키면 좋은 것이고 못 지키면 어쩔 수 없는 일’이라던 그의 말. 그가 지키지 않은 약속 때문에 학교에서 쫓겨난 나는 궤도를 이탈해 버린 행성처럼 어둠 속으로 무작정 떠밀려가고 있었다. 막막한 혼돈 속으로 나를 밀어 넣었던 약속이란 단어가 다시 나를 수습하고 있었다. 시간은 이미 서른을 지나갔고 아무도 내게 왜 약속을 지키지 않느냐고 물어 보는 이는 없었지만 스스로와의 약속은 끝내 지켜주고 싶었다. 그렇게 시가 다시 내게로 왔다. 세월도 변했고 시도 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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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10-01
과거를 보는 미래 SF

[에세이] 과거를 보는 미래 SF 곽재식 며칠 전 나는 한 행사에서 SF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소개하는 발표를 하나 맡게 되었다. 발표가 다 끝나고 질문 답변 시간이 되었는데 청중 중 한 분이 “SF라면 미래를 생각해 봐야 하는데, 왜 옛날 SF를 소개했느냐?”라고 질문했다. 그날 행사 중에는 답변을 짧게 드렸지만 이 내용은 한번 깊게 따져 볼 만한 재미난 주제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오늘은 그 이야기를 한번 해보려고 한다. 명작 SF로 자주 손꼽히는 1970년대 영화로 <>이라는 할리우드 영화가 있다. 찰턴 헤스턴이 주연을 맡아 대형 영화사에서 배급한 그야말로 정통 할리우드 영화인데 그러면서도 비참한 미래의 모습을 예상해서 보여주는 내용이다. 그 결말도 뻔한 할리우드 영화의 행복한 결말이라고 말하기는 매우 어려운 방향으로 흘러가기에 눈에 뜨이는 영화이기도 하다. 맨 마지막에 주인공이 외치는 대사는 SF 영화사에서 유명한 대사 순위를 꼽으면 상위권에 자주 오를 만큼 잘 알려져 있기도 하다.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미래는 인구가 너무나 빠르게 늘어났기 때문에 멸망해 가고 있는 세상이다. 인구가 너무나 많은 데 비해 식량과 자원은 부족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굶주리고 모든 물자가 부족해 다들 비참하게 살고 있다. 영화 제목인 “소일렌트 그린”이란 식량이 부족한 세상에서 특별히 개발해 보급 중인 신형 인공 식품을 말한다. 그러므로 <>은 19세기 맬서스의 등장 이후 수많은 사람들이 미래 인류의 멸망 시나리오라고 철석같이 밀었던, 맬서스 함정을 정통으로 다룬 영화다.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하는데,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성장한다.”라는 말은 어지간하면 한 번쯤 들어 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지구는 망한다, 그러니 사람이 많은 것은 해악이다, 라는 말을 하는 사람을 본 적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런 생각은 곧 “사람이 곧 모든 파괴의 근원이며, 사람이 없어져야 지구가 살아난다.”는 생각으로도 자주 이어지기도 한다. 재미난 사실은 이 영화에서 다루는 멸망해 가는 미래가 2022년이라는 점이다. <>은 1973년에 개봉된 영화이므로 이 영화에서 말하는 2022년이란 영화가 제작되던 1972년으로부터 50년 후를 말하는 이야기일 것이다. 그런데 이 SF 영화에서 말하는 2022년의 미래라는 시간은, 2024년을 사는 현대의 우리에게는 2년 전의 과거가 되었다. 나는 영화를 보는 과정에서 이렇게 시간의 꼬임을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이 굉장히 신비롭다. 게다가 요즘 이 영화의 내용을 보다 보면 더욱 중요한 사실도 깨달을 수 있다. 실제 2022년이 인구가 너무 많아 식량 부족으로 멸망하는 시간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우리가 겪고 있는 2020년대는 인구가 너무 많은 것이 문제가 아니라 인구 감소와 초고령화가 문제인 시대다. 이러한 현상은 한국만 겪고 있는 문제도 아니다. 한국에서 인구 문제가 워낙 극심하게 나타나

  • 관리자
  • 2024-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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