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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telling City –영국편①

  • 작성일 2017-11-01
  • 조회수 2,200

[기획]

 

 

Storytelling City - 영국편

 

한영 문화예술 공동기금 프로젝트
웹툰-그래픽노블 특별전 <Storytelling City>

 

 


한국문화예술위원회와 영국예술위원회가 함께 추진하는 「한영 문화예술 공동기금」 선정 프로젝트 중 하나로 <한영 웹툰&그래픽노블 특별전: 스토리텔링 시티>가 와우북페스티벌에서 9월 20일(수)부터 9월 24일(일)까지 홍대 더갤러리 지하 1층에서 전시가 진행되었다. 이 프로젝트는 2017-18 한영 상호교류의 해 사업 중 하나로 주한영국문화원과 공동주최하고 와우책문화예술센터와 브래드포드문학축제가 공동 주관하는 사업이다.


 

 

 

 

 

서울

 

대한민국의 수도이자 인구 천만의 대도시, 600년 고도(古道)의 역사와 최첨단기술이 상징하는 미래가 다이나믹하게 충돌하는 도시.

 


 

브래드포드

 

영국 요크셔 지방, 19세기 방직과 염색 공장들이 모여 “양모의 수도”라 불리웠으나 섬유산업의 쇠퇴와 함께 이제는 영국 “커리의 수도”가 된 인구 52만의 중소도시.


 

 

    한눈에도 공통점이 거의 없어 보이는 두 도시의 과거와 현재를 어떻게 연결할 수 있을까? 도시의 문화예술적 독창성은 도시와 공동체, 예술가의 상호 작용에 의해서 만들어진다는 전제하에 서울의 와우북페스티벌과 영국의 브래드포드 문학축제, 그리고 양국의 예술가들이 만났다.
    서로의 도시에 2주간 머물며 역사와 문화를 리서치한 후 서울에 대해 소설가 Zoe Gilbert가 쓴 이야기를 홍작가가 웹툰으로, 영국 브래드포드에 대해 소설가 정소연이 쓴 이야기를 Gareth Brookes가 그래픽 노블로 옮겼다.
    두 도시가 가진 이야기 자체의 힘과 웹툰과 그래픽 노블이라는 시각적 형식이 서로를 포섭하는 방식, 그리고 네 명의 작가들 사이에 이루어진 예술적 소통과 실험을 엿볼 수 있는 귀한 기회가 되기를 소망한다.
    이번 문장웹진에서는 와우북페스티벌에서 전시되었던 작품을 서울편과 브래드포드편으로 두 번 나누어서 연재한다. 10월호에는 서울편으로 Zoe Gilbert의 <청계천의 귀신들> 에세이와 홍작가의 웹툰을, 11월호에는 브래드포드편으로 정소현의 <발견자들>에세이와 Gareth Brookes의 그래픽노블을 선보인다.

 

 

    브래드포드 BRADFORD

    영국 중부 요크셔 지방, 내셔널 ‘커리의 수도’ 대회 6년 연속 우승의 전적을 자랑하고 국립 과학과 미디어 박물관이 있는, 인구 52만의 평화로운 중소도시. 그러나 역사를 100여년만 거슬러 올라가면 사뭇 다른 얼굴을 한 브래드포드를 만날 수 있다.
    19세기 초만 해도 인구 60,000여명의 시골 마을이었던 브래드포드는 산업혁명을 겪으며 세계적 양모 가공의 중심지로 떠올랐다. 근처에 풍부했던 사암과 탄광 덕에 공장을 지을 재료와 기계를 돌릴 연료가 충분했다. 일자리를 찾아 전국에서 노동자들이 밀려들었다. 애니의 죽임의 배경인 뉴랜드 직물공장 Newlands Mills은 리플리 공장 단지의 일부로 2천여 명 노동자의 일터였다.

 

    「발견자들 The Discovered」

    정소연 작가는 SF소설가로 <옆집의 영희씨>,<이사>,<백만 광년의 고독(공저)>, 역서로 <허공에서 춤추다>,<노래하던 새들도 지금은 사라지고>등을 출간하였다. 브래드포드에서 2주간 도시 리서치를 하면서 브래드포드라는 도시가 처음에는 굉장히 멋지게 다가왔는데, 며칠 지낼수록 번성했던 도시가 점점 죽어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말을 전했다. 이번 소설에 삶과 죽음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시골이라니! 그때의 브래드포드는 도시였다. 연기가 자욱하고 솜 부스러기가 끝없이 날리는”
    “굴뚝이, 그 높고 단단하고 큰 굴뚝이 공장 위로 무너져 내렸지. 비명은 돌이 무너지는 소리에 묻혔어.”

 

    “그건, 한 번도 가벼운 적이 없었어. 그때에도. 흔했을 뿐이야.”

Storytelling City – 영국편 ➁
정소연 작가의 「발견자들 The Discovered」 바로가기

 

 

    가레스 브룩스(Gareth Brookes)는 그래픽 노블 작가로, <The Black Project>(Myriad Edition, 2013)과 <A Thousand Coloured Castles>(Myriad Editions, 2017)을 출간하였다. 자수와 크레용, 압화, 불 등의 매체를 활용한 독특한 작화스타일을 가지고 있다. 정소연 작가의 작품의 삶과 죽음을 자수를 불에 태우는 작업을 통해 삶과 죽음, 존재와 비존재를 나타냈다.

 

    Storytelling City – 영국편 ③
가레스 브룩스의 「발견자들」 작품 바로가기

 

 

 

 

 

 

 

 

 

 

 

※ 정소연 & 가레스 브룩스 Gareth Brookes
사진제공 : 월간 그래픽노블

 

- 정소연
  SF작가 『옆집의 영희씨』 『이사』 『백만 광년의 고독(공저)』
  역서 『허공에서 춤추다』 『노래하던 새들도 지금은 사라지고』 등
 
- 가레스 브룩스 Gareth Brookes
  그래필 노블 『The Black Project』(Myriad Editions, 2013) 『A Thousand Coloured Castles』(Myriad Editions, 2017) 출간.
  ✱ 자수와 크레용, 압화, 불 등 다양한 매체를 활용한 독특한 작화 스타일

 

 

《문장웹진 2017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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