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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인터뷰] 플레이볼

  • 작성일 2016-06-01
  • 조회수 1,549

 

 

[기획·특집 인터뷰]

 

 

플레이볼

- 포기하기 싫은 아이와 대신 포기하고 싶은 어른이 함께 읽어야 할 동화 『플레이볼』. 이현 작가를 만나다

 

 

김은식

 

 

플레이볼 표지

 

 

    “열심히 살아왔다.”


    꽤 흔하게 듣는 넋두리다. 검찰청 포토라인 앞에 선 전직 검사장이나 정치인들로부터 동네 백반집 할매까지. 그리고 명절 끝 청주 한 모금에 취기가 오른 늙은 아버지까지.
    그래. 누가 아니라고 하겠는가. 참 열심히들 살아왔다. 건국 이래 열심히 살지 않은 국민이 드문 부지런한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이다. 60년대엔 60년대대로, 90년대에는 90년대대로, 저마다 허리띠를 졸라매지 않으면 안 되고 1초라도 허투루 보내서는 안 될 화급한 시대적 사명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 사명을 외면하는 자가 있다면 철부지, 불한당, 얼빠진 놈이라는 손가락질을 받으며 무시당하고 배제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 땅에서 태어나 나름대로 어른이 되고 나이를 먹어 가는 이라면, 아마도 대개는 열심히 살아올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도대체 어떻게들 살았는가. 우리는 그동안 열심히 무엇을 했는가.
    ‘3당4락’(세 시간 자면 붙고 네 시간 자면 떨어진다)이라는 말이 상식으로 통하던 ‘입시지옥’을 통과해 대학생이 됐지만, 뜻밖에도 ‘고생 끝 행복 시작’은 전혀 아니었다. 여자 친구는 생기지 않았으며, 기타 등등 특별히 낭만적일 만한 일들도 벌어지지 않았고, 무엇보다도 늘 용돈이 궁했으며, 그러다 보니 생각보다 할 일도 별로 없어서 기껏 전자오락실이나 만화방에서 공강 시간을 죽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래도 그 시절이 특별했던 것은 약간의 ‘쓸 데 없는 짓’이 허락되던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예컨대 꽤 잦았던 술과 모임들, 전공과 상관없는 세상 돌아가는 일들에 대한 책과 대화들, 그리고 약간의 저항과 방황들. 그 또한 그리 길지는 못했거니와, 그런 ‘쓸 데 없는 짓’의 경험들이야말로 약간이나마 성찰이라는 걸 해보자고 마음먹을 힘을 길러 주었다고 나는 믿는다.
    ‘잘하는 일과 좋아하는 일’ 혹은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하는 일’ 사이에서 갈등한다는 말을 종종 하고 듣는다. 하지만 정말 그런가? 정말 갈등이라는 걸 하느라 애들을 쓰는가? 어느 길이 됐건 뒤처지지 말아야 한다는 불안감에 이리 뛰고 저리 뛰다 보니 문득 꿈꿔 보지도 작정해 보지도 못했던 멀뚱한 어딘가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한숨짓는 것이 한국인들 아니던가?

 

    “쓸 데 없는 일에 시간과 노력을 낭비하지 마라”

 

    그거야말로 철들기 시작할 무렵부터 내 귓전에서 되풀이해 울려대던 이 시대의 명령이었다. 그 명령은 내가 나도 모르게 ‘쓸 데 없는 일’의 달콤함에 빠져들 때마다 때로는 아버지의, 때로는 선생님의, 때로는 동갑내기 친구들의 입을 통해 들려왔고, 나는 그 앞에서 이렇게 화답하며 다시 한 번 내게 주어진 길로 돌아가곤 했다. ‘그래, 내가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내가 잠깐 정신줄을 놓았었군. 다시 정신 차리자’.
    대략 중학교 들어가고부터는 대학입시와 상관없는 일들이 모두 ‘쓸 데 없는’ 일의 영역으로 편입되었고, 대학 신입생 시절을 지나친 뒤로는 취직과 연결되지 않는 대부분의 일들이 또한 ‘쓸 데 없는’ 일로 접히기 시작했다. 아빠가 되고는 돈벌이에 도움 되지 않는 일들이 대체로 쓸 데 없어졌으며, 아이의 교육에 도움 되지 않는 일들 또한 어느새 쓸 데 없어졌다. 우정이니 의리니, 꿈이니 열망이니 하는 단어들이 소설과 드라마의 세계에서 일상의 세계로 내려서자마자 조롱거리로 전락해 버리는 이유 또한 거기에 있을 것이다.
이현 작가의 동화 『플레이볼』은 막 중학교에 들어갈 무렵인 사내아이의 ‘갈등’에 관해 이야기한다. 이 동화의 주인공은 야구를 사랑하고, 팀의 주전투수 겸 4번 타자로 뛰고 있으며, 롯데 자이언츠의 유니폼을 입는 것이 꿈인 부산의 초등학교 6학년생 동구다. ‘너도 이젠 어린애가 아니니, 야구보다는 공부를 해야 한다’는 아빠의 훈계 앞에서 가슴이 답답해지고 중학교에 진학하자마자 ‘어차피 내 실력으로 프로야구까지 갈 것도 아이고, 그랄 바에야 일찌감치 막살 치우는 기 낫지’라며 유니폼을 벗은 선배의 돌변에 아득해지는 시절을 보내고 있다.
    또한 동구에게 13살은 스스로 체구와 재능이 조금씩 모자라지 않나 싶어 불안해지고, 형에게 엄마의 사랑을 모두 빼앗기고 마음의 병을 앓는 동생의 모습도 눈에 조금씩 밟히는 나이다. 또 야구 과외니 감독 대접이니 집안의 넉넉한 후원을 받는 친구들에 대한 부러움과 시기심도 싹을 내밀고, 넉넉지 못한 데다가 이혼까지 한 부모님에 대한 원망도 숨기기 어려워진다. 『플레이볼』은 야구에 관한 동화이며, 동시에 우리 사회에서 사람이 스스로의 삶의 무게를 느끼기 시작하는 순간에 관한 관찰이다.

 

인터뷰 사진 1

 

    “야구를 처음 본 게 초등학교 저학년 때, 마산구장이었어요. 프로가 생긴 다음이긴 했는데, 그 경기가 프로팀들의 경기였는지, 아니면 실업이나 국가대표팀 경기였는지는 분명하지 않아요. 확실한 건 그날 공을 던지던 투수가 최동원이었는데, 엄청나게 얻어맞고 있었다는 거예요. 사람들은 내내 투수에게 욕을 하고 야유를 했는데, 그걸 다 들으면서도 투수는 꿋꿋이 공을 던지고 있었어요. 그게 뭔가 멋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마산은 야구 좋아하기로 유명한 도시다. 지금은 프로야구의 9번째 창단팀 NC 다이노스의 연고지가 되었지만,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롯데 자이언츠에 미친 사람들의 소굴이었다. 형편없는 경기를 한 날 선수단 버스에 불을 지르거나 만원 경기장의 철문을 산소용접기로 뜯고 들어간 ‘아재들’의 일화는 야구계의 전설이다. 부산에서 태어나 마산에서 자란 작가는 아마도 그렇게 숨 쉬듯 물 마시듯 야구와 동행해 왔을 것이고, 그렇게 롯데 자이언츠와 최동원을 담고 살아왔을 것이다. 그리고 고3 딸의 엄마가 된 지금 그녀는 야구 하는 아이들에 관한 동화를 세상에 내놓았다.

 

    “야구를 소재로 하는 동화 자체가 거의 없더라고요. 그나마 야구를 하면서 노는 아이들에 관한 동화들은 좀 있었는데, 야구를 업으로 삼으려는 아이들 이야기는 없었던 것 같아요.”

 

    작가에게 가장 궁금했던 것이 바로 그거였다. 동화가, 왜 이렇게 골치 아프고 가슴 답답한가.

 

    “초등학교 때 축구선수였다가 중학교 때 그만둔 아이에게 왜 축구를 그만두었냐고 물었더니 ‘축구 잘하는 일반인이 더 행복한 것 같아요’라고 하더라고요. 축구가 좋았고 축구선수가 되면 행복할 것 같다고 생각하며 살다가, 어느 순간 그 생각이 바뀐 거지요.”

 

    ‘축구선수로서의 삶’도 ‘축구와 연을 끊는 삶’도 아닌 ‘축구 잘하는 일반인으로서의 삶’을 바라보게 됐다는 아이. 문득 축구에 싫증을 느껴 그만둔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다만 그 소년은 축구를 업으로 삼는 삶이 얼마나 힘겨울지 알게 됐을 뿐이고, 끝까지 그 길로 계속 갈 수 없다면 한시라도 먼저 발걸음을 돌려야 한다고 생각하게 됐을 것이다. 우리는 흔히 그렇게 철이 들고, 그렇게 한국인이 된다.
    하지만 동화 속 동구는 아직 그렇게 현명하지 못하다. 비록 야구선수로서 대성하기엔 재능도, 집안의 후원도, 상황도 부족하다는 걸 알지만 그래도 야구를 좋아하고 야구선수로 살고 싶은 마음을 포기하지 못한다. 한참 몸살을 앓긴 하지만, 사직구장 앞에 세워진 최동원의 동상 앞에서 마음을 되돌린다. “이기든 지든, 내 발로 운동장에서 뛰고 싶다.”
    아름답다. 하지만 안타깝다. 그건 꿈이지만 미련이다. 열정이지만 욕심이다. 응원할 것인가, 혀를 찰 것인가. 그것은 또한 어른에게 주어진 몫의 갈등이기도 하다.

 

 인터뷰 사진 2

 

    “고3 아이들이 ‘하고 싶은 일이 없다’고 그래요. 꿈이 없대요. 하지만 이제 초등학교 6학년인 동구는 하고 싶은 일이 있잖아요. 그리고 그것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잖아요. 저는 그게 아름답다고 생각해요.”

 

    이현 작가는 ‘고3 엄마’다. 딸이 대학 입시 레이스의 막판 스퍼트를 올리고 있다. 현실을 외면하는 문학소녀가 아니다. 꿈꾸는 이의 아름다움 뒤에 숨은 냉랭한 현실을 모르지 않다.

 

    “어떤 문제를 회피하면 해결되지 않는다. 피하지 말고 마주해라, 라고 말할 입장은 아닌 것 같아요. 저도 회피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니까. 하지만 문학이라는 게 정답을 말하기보다는 질문을 던지는 일이라고 생각하는데, 저는 동구가 느끼는 것처럼 좋아하지만 잘할 수 없다거나, 선의로 하지만 그렇게 전달되지 못한다거나 하는 그런 어려움, 그런 대목들을 하나의 풍경처럼 보여주고,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재작년 겨울, 이현 작가는 작품 구상차 울산에서 열린 작은 규모의 리틀야구대회 경기장을 찾았다. 울산시야구협회장배라는 작은 대회였고, 마운드도 없는 학교 운동장에 일고여덟 팀 정도가 모여서 치르는 초라한 대회였다. 물론 선수 가족들을 제외하면 관중이 있을 리 없었다. 하지만 그곳에서 야구를 업이라고 생각하면서 뛰는 아이들에 관한 동화, 『플레이볼』을 써야겠다는 마음이 굳어졌다.

 

    “야구라는 게 그렇잖아요. 그 전에, 그 뒤에 무엇을 고려하든 간에 그 순간만큼은 투수는 100%의 에너지를 다해서 공을 던지고 타자는 100%의 에너지를 다해서 치잖아요. 그렇게 각자 100%가 마주쳐서 충돌하잖아요. 저는 사실 리틀야구 경기장에 갈 때 반신반의했거든요. 하지만 그곳에서 뛰는 아이들에게 최대한 가까이 가서 봤을 때, 어린 것과는 상관없이 진지한 모습을 봤던 것 같아요. 정말 치열하게 경기하고 달리는 모습에 감동했어요. 나이가 어리다고 해서 적당히 던지고 적당히 치는 게 아니더라고요. 마찬가지로 어리니까 이쯤에서 접고 야구 그만 해도 되는 그런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프로팀에서 쫓겨나거나 입단을 거절당한 막막한 젊은이들을 모아서 운영하면서 30여 명의 선수들이 프로선수로서 재기할 수 있도록 도왔던 독립구단 고양 원더스의 선수들을 만난 적이 있다. 많게는 30대 중반까지 이른 나이에도 여전히 야구를 놓지 못하는 이유를 물었을 때, 대부분의 선수들은 이렇게 답했었다.

 

    “후회할까 봐요. 평생 살면서 그때 한 번 더 도전해 볼 걸 그랬다는 미련이 남을까 봐서요.”

 

    삶이란 성공과 실패만으로 갈리는 단순한 것이 아니다. 야구 역시 같다. 단지 이기고 지는 것만 가르는 것이 목적이라면 그냥 제비를 뽑으면 될 일이다. 혹은 2회나 3회쯤 벌써 따라갈 수 없는 점수를 주게 된다면 수건을 던져 끝내고 몸이나 쉬면 그만이다. 하지만 야구란 시간제한도, 항복도 없는 게임이다. 이기든 지든 잘하든 못하든 야구는 치열하고 가슴 뛰게 하고 또 눈물겹다.

 

    “경기 중에 한 아이가 병살타를 치고 들어오니까 감독이 나가라고 하더라고요. 그러니까 그 아이가 나가서 밖에서 너무 서럽게 우는 거예요. 그런데 얼마 있다가는 눈물을 닦고 다시 들어가서 뛰더라고요. 그날 그 아이가 포수를 보다가 타격하러 들어가서 욕먹고 나갔다가 다시 들어가서 포수 봤는데, 마지막에는 투수를 하더라고요. 그런데 그게 그 팀에는 망한 경기였어요. 지는 게 명백한 경기였지요. 하지만 야구라는 게 그렇잖아요. 이기든 지든 끝까지 해야 하는 게. 결국 푸른이는 야구선수를 그만두었고, 동구는 계속하기로 했지만, 그 아이들이 느낀 열등감과 패배감이 있잖아요. 그런데 야구선수들 100명 놓고 보면 90명은 그렇지 않을까요? 정말 커쇼 같은 투수가 아니라면, 어떤 투수든 다 자기가 좋아하는 만큼 잘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불안하고 슬프지 않을까요?”

 

인터뷰 사진 3

 

    나는‘후회할까 봐 두려워하는 사람들’에게 유독 감정이입을 하곤 한다. 내가 늘 쉽게 포기하며 살다 보니, 스스로 포기할까 두려워 발버둥이라도 치는 사람들에 대해 연민과 응원의 마음을 가지게 되는 모양이다. 이현 작가는 나보다 조금 더 씩씩한 사람이리라. 진다고 해서 야구가 끝나는 것이 아니며, 나이가 어리다고 해서 치열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직접 지어서 내놓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만약 야구에 관한 동화가 있다면, 꼭 선수가 되지 않아도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다는 게 요즘 동화들의 맥락인 것 같아요. 저는 그걸 벗어나고 싶었어요. 글 쓰는 일도, 꼭 업으로 하지 않아도 행복한 사람이 있지만 하지 않으면 행복할 수 없는 사람도 있잖아요. 주변에서 글 쓰는 사람들 중에 돈을 많이 버는 사람은 거의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글 쓰는 일을 그만두고 싶다고 하는 사람은 없어요. 오히려 돈을 못 버니까 이 일을 계속할 수 없을까 봐 두려워하지요. 야구도 그냥 취미로만 즐기고 관중석에서만 보면서도 행복할 수 있는 사람들도 있지만 동구처럼, 또 원더스 선수들처럼 어쨌든 유니폼을 입지 않으면 행복할 수 없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아요.”

 

    ‘답을 내놓기보다 질문을 던지는 일’이 자신의 몫이라고 이현 작가는 말한다. 하지만 그녀가 스스로 던진 질문에 대한 답들 중 어느 쪽에 매달리는 이들을 응원하는지는 알 만하다. 물론 막연한 낭만이 아니라 이런 지론 때문이다.

 

    “업으로 삼지 않으면 알 수 없는 본질적인 요소가 있는 것 같아요. 예컨대 하기 싫을 때도 해야만 하는 것이 프로니까. 매순간 100%를 쏟지 않을 수 없는 것이 프로니까. 100%의 에너지를 쏟아서 최선을 다한다는 것이 저는 아름답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리고 특히 아이들이 성장기에 하고 싶은 일에 에너지의 100%를 쏟는 경험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내 아들은 동구와 같은 초등학교 6학년이다. 아직 천방지축 철이 없는 그 녀석은 미래에 대한 갈등 따위는 아직 안중에 없어 보인다. ‘그래, 가는 데까지 가보자. 섣불리 구슬려서 설익게 만들지 말자’ 싶어서 나 역시 진로는커녕 공부타령도 하지 않는다. 하지만 불쑥불쑥 자라나는 허우대를 느낄 때마다 부모로서 불안한 마음이 솟지 않는 것도 아니다. 이 녀석, 잘 살아낼 수 있을까. 이 냉정한 세상에서. 하지만 이현 작가는 답한다.

 

    “그냥, 믿어 주면 된다고 생각해요.”

 

    삶이 야구와 닮은 것이라면, 아마 그럴 것이다. 감독이 ‘느긋하게 하라’고 주문한다고 해서 느긋해질 수 있는 선수가 있던가. 여섯 살이든 6학년이든 고3이든, 삶이란 누구나에게 매순간 진지하고 치열한 것이고, 곁에서 지켜보는 누구라도 그것을 더 혹은 덜 그렇게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니기에. 야구장에서 승부란 매순간 스스로 그 치열함의 이유를 만들어내듯이 말이다.
    동화를 읽고, 또 작가를 만난 뒤 돌아오는 길에 내가 혼잣말하듯 수첩에 적은 글은 이랬다.

 

    “야구에는 어쨌거나 승자와 패자가 있다. 하지만 삶에서 자신 있게 승리했노라고 말할 수 있는 이는 누구인가? 패자라고 낙인찍어 마땅한 이는 또 누구인가? 그런데 자신의 경기장에서 에너지 100%를 쏟아 승부하는 아이에게 기권과 퇴장을 권유하는 우리 어른들의 흔하디흔한 용기는 과연 어디서 비롯되는가?”

 

 

김은식 작가2

작가소개 / 김은식 (작가)

- <야구의 추억>, <마지막 국가대표>, <장기려, 우리 곁에 살다 간 성자>, <국기로 보는 세계사> 등

 

《문장웹진 2016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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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7-01
아, ‘장르 문학’ 하시는구나

[에세이] 아, ‘장르 문학’ 하시는구나 김용언 미스터리 장르를 좋아하고, 열심히 읽고, 그에 관한 잡지를 만들고, 또 가끔은 관련 공모전 심사를 보면서 언제나 느끼는 바가 있다. 한국에서 미스터리 장르에 대한 이해도는 여전히 심각하게 척박하다는 점이다. 가장 모순되는 감정을 느끼는 순간은 ‘장르 문학’이라는 단어를 들을 때다. ‘(그냥) 문학’1)의 카테고리에 속하지 않는 나머지 소설들은 굳이 ‘장르 문학’이라고 불린다. SF, 판타지, 미스터리/스릴러, 로맨스, 공포, 무협 등의 꼬리표가 붙고 낱낱이 분류되며 ‘문학은 문학이지만 그냥 문학이라고 부르기보단 그 안의 장르로 명명되어야 하는’ 존재가 된다. 의문이 생긴다. 그렇다면 장르 문학에 속하지 않는 작품은 그냥 문학이 아니라 ‘비장르 문학’이 되어야 하지 않는가? 아니면 순문학 역시 일종의 장르임을 인정하면서 모든 작품을 ‘장르 문학’이라고 불러야 하는 건 아닐까? 예전 한국 문단에서는 ‘순(純)’이라는 단어가 참여 문학/민중 문학 등의 대립항처럼 불렸다고 하는데, 지금에 와서는 참여 문학/민중 문학도 ‘그냥’ 문학에 포함된 것 같다. 아무튼 거칠게 말해서 ‘장르’를 사용하지 않고 인간과 현실 자체에 집중하는 소설을 ‘그냥’ 문학으로 호명한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장르’로 호명되는 특정한 이야기들에는 그 장르가 만들어지게 된 역사가 있고 또 그 안에서 통용되는 특정한 규칙이 존재한다. 그런 약속된 구조와 규칙을 이용해서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낸다고 해서, 그 결과물이 ‘그냥’ 문학으로 불릴 수 없고 장르 문학으로만 불려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오해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나는 장르 문학도 문학임을 인정하라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기 위해 이 글을 쓰는 게 아니다(그건 너무 당연한 사실이기 때문에 굳이 받아들여 달라고 애원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그 장르 문학 업계에서 일하는 사람으로서 불편해지는 순간들이 자꾸 찾아온다. 이를테면 한국 작가의 소설이 해외로 번역되었을 때 현지 리뷰들을 찾아보면, 스릴러/미스터리/공포 등의 명칭을 명확하게 부여하면서 소개한다. 한국에서는 기존 등단 작가들의 작품을 소개할 때 ‘추리적 기법을 활용한’ 또는 ‘경계를 넘어선 상상력을 발휘한’ 등의 애매모호한 문구로 시작할 때가 많은데, 해외에서는 자신들에게는 낯선 작가의 번역 작품의 특성을 단번에 설명하기 위해 ‘이것은 스릴러다’ 또는 ‘이것은 공포소설이다’라고 알려준 다음 그 작품의 특성이 어떤 점에서 새롭고 멋진지를 차근차근 설명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여전히 장르 문학과 장르 아닌 ‘그냥&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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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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