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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에세이] 괴담 라디오, 볼륨을 높이다

  • 작성일 2016-04-25
  • 조회수 1,184

[기획·특집 에세이]

 

 

괴담 라디오, 볼륨을 높이다

 

 

김휘

 

 

퓨어바디

퓨어바디

 

 

    멋진 신세계

    믿거나 말거나지만 지구가 종말을 맞아도 살아남는 게 있다면 바퀴벌레라고 한다. 번식력과 적응력이 대단하다는 말인데 인간의 욕망도 만만치 않다. ‘끝없는’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욕망. 그 항목을 열거하자면 어떤 것들이 먼저 떠오를까. 기왕이면 바퀴벌레만큼 징그러운 욕망을 꼽아 보라. 욕망이란 게 죄다 징그럽지 않느냐고 반문하려는가. 부인하지 않겠다. 하긴 예뻐지려는 욕망조차 무시무시하니까.

 

    오래 살고 싶은 욕망은 어떤가. SF적으로 표현해 생명연장의 꿈이겠다. 머지않아 그 욕망을 채워 줄 상품이 나타날 수 있다. 이를테면, 냉동인간 서비스. 허무맹랑한 상상일까. 그렇다 해도 여기까지는 누구나 상상했다. 공상과학을 다루는 기존 소설이나 영화 속 냉동인간의 등장은 그런 욕망에 근거한 것이니까. 실제로 미국의 한 의과학 연구 단체가 냉동인간을 연구하고 있다. 이미 신청을 받아 진행한 사례도 여러 건이다. 영하 196도의 온도 속에서 언 채로 긴 잠에 빠진 사람들이 현재 있다는 소리다. 그들이 깨어날 수 있을지 현재로선 불투명하다. 해동 단계의 어려움 때문인데, 그 어려움이 해소된다면 미래에 깨어날 그들은 어떤 상황을 맞게 될까. ‘멋진 신세계’가 기다리고 있을까.

 

    신작 장편소설 『퓨어바디』는 미래에서 눈뜬 냉동인간들의 이야기다. 그들의 이야기는 가즈오 이시구로의 소설 『나를 보내지마(Never Let Me Go)』가 준 깊은 인상에 기인한다. 인간의 장기이식을 목적으로 복제된 클론들의 삶과 죽음 그리고 사랑에 대한 이야기다. 눈에 고요히 스며드는 힘이 있다. 인물들의 감정 선을 따라가는 문장은 예민하고 차분했다. 인간 존엄을 이야기하는 낯선 시선을 읽을 수 있었는데, 이 과정에서 냉동인간을 다룬 기사가 떠올랐다.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냉동인간은 클론과 다르지 않아 보였다. 인간을 위한 소모품으로 활용될 게 분명하다는 점이 그랬다. 소모품에 인간은 눈물을 낭비하지 않는다. 인간은 인간을 소모품으로 쓰고 버림으로써 자신도 버리게 될 것이다. 아니, 이건 이미 진행 중이다. 우리는 버려진 더미를 일상에서 신문에서 목격한다. 우리 자신이 그 더미이거나 그럴 가능성에 노출되어 있지만, 무감해진 눈 귀 코 입은 알아차리지 못하거나 알지 못하는 척한다. 미래의 삶은 지금보다 더 황폐해질 것이다. 인간미라는 게 배터리라면 과연 앞으로 얼마나 남았을까.


 

    사라지는 것들에 대하여  

   많은 것들이 사라졌다. 유명 무명의 것들, 혹은 은밀하고 사적인 것들까지. 그것들은 매장, 묵인, 은폐, 죽음, 파괴와 멸종 그리고 망각의 형태로 지금도 사라지고 있다. 학자들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유적지, 식물종, 동물종, 언어, 삼각주, 섬, 만년설과 함께 많은 것이 사라진 미래를 상상하긴 어렵지 않다. 『퓨어바디』의 ‘나무’는 현장을 찾아다니며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시리즈 책을 쓴다. 그 일을 하는 이유를 그는 사라진 것들은 흔적으로 말을 하므로 그걸 들어주기 위해서라고 설명한다. 그리고 그는 그렇게 하는 것이 존재했던 것들에 대한 예의라 믿는다.


 

    나무는 이 소설에서 어쩌면 가장 ‘인간적인’ 캐릭터다. 그렇지 않다면 그는 냉동인간들이 잃어버린 과거의 삶에 귀 기울이고 도우려 하지 않았을 것이다. 사라진 건 사물, 현상 그리고 환경적인 것만이 아니었다. 나무는 생명윤리, 인간존엄과 같은 가치마저 사라진 세상에서 살고 있었다. 나무가 지키고 싶은 마지막은 무엇이었을까. 그는 그가 서 있는 현재에 무엇이 사라졌고 왜 사라졌는지 알고자 했다. 적어도 그렇게 해야만 그 마지막을 지킬 수 있다고 믿었다. 때문에 그는 자신이 경험하지 못한 세계를 냉동인간들의 기억을 통해 해독한다. 그리고 의심한다. ‘의심하기’는 자신과 현재의 인과관계를 인식하는 가장 기본적인 행위이므로.


 

    장편소설 『해마도시』에서 마윤수가 의심하는 건 자신의 정체다. 그는 그의 현재를 말해 줄 과거가 텅 빈 것을 알게 됐다. 기억의 공백은 그를 이물스러운 타인의 기억에 기생해 왔다는 자각으로 내몬다. 궁극적으로 존재를 균열시키는 건 자신이 누구인지 모른다는 사실이다.


 

    눈 귀 코 입이 사라진다  

    사라진 것들의 흔적을 탐색하고 의심하는 이들이 있다면, 진실 은폐를 막기 위해 의심의 고삐를 늦추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단편소설 「괴담 라디오」(소설집 『눈보라 구슬』에 수록)에는 그런 인물들이 나온다. ‘괴담 라디오’ 진행자 J는 한 익명의 청취자로부터 괴담 메일을 받는다. 눈 귀 코 입이 차례로 사라지는 병이 창궐한다는 내용이었다. J는 그 괴담을 방송에 소개한 얼마 뒤 그 익명의 청취자로부터 두 번째 이메일을 받고는 이상한 기분에 휩싸인다. 이메일에 담긴 절박함 때문이었다. 방송된 그 사연이 괴담이 아닌 사실이므로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달라니. 제보였다. 어이없는 일이었다. 괴담 라디오는 청취자가 보낸 괴담 형태의 이야기를 소개해 주는 일개 라디오 음악 프로그램일 뿐이었다.

 

    진실이 괴담이라는 이름으로 은폐되는 것은 기본이고, 눈 귀 코 입이 차례로 사라져 묵인과 방치와 무사유가 지배하는 세상. 소설 속 이야기일 뿐일까. 그런 세상에서는 누구나 피해자이면서 가해자가 된다. 죄의식을 나누어 가지며 서로에 대해 공범이 된다. 그 죄의식은 단편소설 「아르고스의 눈」(소설집 『눈보라 구슬』에 수록)에서 환상적인 부피를 가지고 나타난다. 눈보라처럼 휘몰아쳐 덮치는 아르고스의 수백 개의 눈. 그것들은 투명하고 섬뜩하게 죄의식을 반사한다.


 

    아르고스의 눈들은 도처에 깔려 있다. 그것들의 또 다른 이름은 타인이다. 나와 너, 그리고 개개인은 서로에게 거울이 되고, 그 거울에 비춰진 자신의 이미지의 희생자가 된다. 두려움과 공포 혹은 부끄러움을 느끼는 것이다. 영화나 소설 속에서 악하고 혐오스런 캐릭터에 감정이입을 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겠다. 자신의 어두운 부분을 마주한 것이다. 개인 안에 희생자 편과 가해자 편이 함께 있다는 생각이 힘을 갖는 건 그런 까닭이다. 인간이 이중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런 이중적인 면들은 다르면서도 유사하다. 모호한 일이다. 이 모호함에서 긴장이 시작되는데, 이 긴장이 분신 이야기가 번식하는 최적의 온도다.


 

    거울, 분신 그리고 이중성의 경계에서 오는 불안  

   그럴 리 없겠지만, 분신을 만난다면 어떤 기분일까. 닮은 정도가 아니라, 당신과 똑같은 모습으로 당신 행세를 하는 분신. 두려울 것이다. 하지만 소설 속에서라면 끌린다. 매혹적이기까지 하다. 수많은 이야기 속에 등장해 온 분신은 억압된 내면이거나 부정하고픈 감정의 투사로 두려움과 매혹을 동시에 지닌 캐릭터였다. 그런 분신들은 니콜라이 고골의 「코」, 로버트 스티븐슨의 「지킬박사와 하이드씨」, 에드거 포의 「윌리엄 윌슨」 등에서 볼 수 있다.

 

    장편소설 『해마도시』와 단편소설 「목격자」(소설집 『눈보라 구슬』에 수록)에 등장하는 분신 역시 다르지 않다. 『해마도시』에서는 기억복제이식으로 같은 기억을 가진 또 다른 ‘나’ 그리고 모습이 같은 ‘나’가 등장해 주인공을 혼란에 빠뜨리는가 하면, 「목격자」의 주인공은 자신의 불안을 투사해 만든 가상의 존재가 자신을 해치려 한다는 피해망상에 시달린다. 이 두 작품에서는 죄의식의 모습 혹은 죄의식을 반사하는 매개로서의 분신을 만나게 된다.

 

    오스카 와일드의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의 분신은 조금 다르다. 분신 자체가 이중성을 지니는데 여기에 더해 분신인 초상화는 나르시시즘과 죄의식을 동시에 보여준다. 나르시시즘과 죄의식. 어떻게 보면 이 역시 다르면서도 유사하다. 피해자와 가해자라는 이중적 의미구조로 들여다볼 때 그렇다. 자기애의 사디스트적인 측면이 나르시시즘이라면 매저키스트적인 측면은 죄의식이라는 식으로 말이다. 비약일까. 아무려나. 흥미로운 건 사실이다.

 

    분신이 보여주는 이중성은 변신의 테마와도 통한다. 분신이면서 변신 이야기이기도 한 「지킬박사와 하이드씨」가 그 예일 것 같다. 변신은 흔히 공포를 주는 괴물의 주제를 갖기도 하는데 카프카의 「변신」에 와서는 괴물이 모습을 바꾼다. 괴물은 무섭다. 하지만 「변신」의 벌레는 괴물을 연상시킴에도 무섭지 않다. 벌레의 모습은 무기력한 개개인의 모습을 대변할 뿐, 정작 공포를 퍼뜨리는 것은 개개인을 벌레로 만든 현대적인 악, 괴물의 편재다. 구조적인 폭력과 억압 속에서 개개인은 서로에게 괴물이 될 수 있다. 가해자 의식과 피해자 의식의 이중화는 현대로 올수록 더 교묘해지면서 외줄타기처럼 전율을 퍼뜨린다.

 

    ‘변신’이라는 괴담, 과연 괴담일까  

   어느 날 아침 눈을 떴을 때 나는 내 몸이 갈색 유리병으로 변해버린 것을 발견했다. 나는 깨진 유리병의 둥근 등을 대고 누워 있었는데, 고개를 약간 들자 조각난 병조각들의 날카롭고도 하얀 날들이 보였고, 그 위에 이불이 미끄러져 내릴 듯 간신히 걸려 있었다. 여기서 나는 그레고르 잠자도 어느 소설 속의 인물도 아닌 바로 나다.

 

    유리병으로 변신한, 그마저도 깨져 조각난 나를 마주한 순간 나는 믿을 수 없었다. 시각적으로만 내 몸이 병조각으로 보였던 게 아니었다. 몸을 움직일 때마다 병조각의 날카로운 날들이 부딪치면서 온몸을 찌르고 베는 듯한 고통이 밀려왔다. 그때의 경악과 육체적 · 정신적 고통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현재의 나란 존재가 뭔가 하는 회의와 공허였나. 일상과 모든 가능성에서 일순 단절되어 버린 무력감이었을까. 가족의 도움으로 병원에 도착해 내과와 정신과를 돌며 진찰을 받고 엑스레이 촬영까지 마친 뒤 듣게 된 의사의 소견은 더 어이가 없었다. 몸은 아무 문제가 없으나 발생한 신경정신적인 문제는 쉬어야 해결되므로 일을 그만두어야 한다고 했다.

 

    그 비현실적인 경험 이후 나는 보편적인 관념이나 지식, 사실에 대한 신뢰에 회의를 품게 됐다. 상상이나 환상 그리고 꿈이란 것이 현실 속에 끼어들 수 있었다. 경계는 마르지 않은 잉크처럼 번져 그 자체로 영역을 만들지도 몰랐다. 현실과 비현실, 나와 타인, 가해자와 피해자, 정상과 비정상, 웃음과 공포, 죽음과 삶처럼 이중적이고 이면적인 것들의 경계에서 오는 모호함을 생각한다. 그리고 매료된다. 그것은 관 속에 누운 드라큘라에게서 죽은 것인지 잠든 것인지 맥박이며 호흡이며 심장 뛰는 기미조차 없는데도 볼에 발그레하게 생기가 도는 존재 혹은 현상을 대면하는 일이다. 모호함을 풍기는 캐릭터나 현상, 순간은 도처에서 발견된다. 당신 주위에 그림자처럼 머물기도 하며 피를 빠는 가해자이면서 가슴에 쇠못이 박히는 피해자 드라큘라의 모습으로 우리 내면에 들어앉아 있다. 그것은 ‘너’이며 ‘나’이며 ‘우리’다.

 

    내면의 가해자 의식과 피해자 의식 사이에서 흔들리는 진동은 늘 온다. 도피할 궁리를 할지 대면하고 버틸지는 개인에게 달렸다. 단, 선택하기 전에 그 진동 속에서 들려오는 괴담 라디오의 볼륨을 높여 보는 건 어떨까. ■

 

 

 

소설가 김휘

작가소개 / 김휘 (소설가)

- 서울에서 태어나 건국대학교 철학과 불어불문학을, 동 대학원에서 불문학을 공부했다. 2007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등단작인 중편소설 「나의 플라모델」을 통해 “젊고 역량 있는 신인, 한국 소설의 신영토를 개척하였다.”는 평을 받았다. 펴낸 책으로 장편소설 『해마도시』, 『퓨어바디』와 소설집 『눈보라 구슬』 등이 있다. <2015 아르코 주목할 만한 작가 창작지원> 대상으로 선정되어 창작지원금을 받았다.

 

《문장웹진 2016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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