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대한민국 태극기이 누리집은 대한민국 공식 전자정부 누리집입니다.

공식 누리집 주소 확인하기

go.kr 주소를 사용하는 누리집은 대한민국 정부기관이 관리하는 누리집입니다.
이 밖에 or.kr 또는 .kr등 다른 도메인 주소를 사용하고 있다면 아래 URL에서 도메인 주소를 확인해 보세요.
운영중인 공식 누리집보기

[2015년도 창작광장 최우수상 수상작 / 산문] 아이들은 커서 분명 어른이 된다

  • 작성일 2016-04-04
  • 조회수 2,050

[2015년도 창작광장 최우수상 수상작 / 산문]

 

 

아이들은 커서 분명 어른이 된다


 

 


김종권 (필명 : 벨)


 

 

벌써 30년도 훌쩍 넘은 이야기지만, 지금도 그 마음이 변함없는 건 참으로 이상하다. 그전에 내가 결혼하여 아이들을 가지기 전에는 나중에 내 자식이 내 제사를 지내 주었으면 하는 아주 보편적이고 이상적인 생각으로 살았던 것 같으나, 어느 순간부터 현실감 있는 현장 경험을 중시하며 살다 보니, 언젠가부터는 그 생각이 ‘제사’보다는 차라리 ‘현실적인 조촐한 술상’이 훨씬 나은 것으로 변해버렸다.
그리하여 그즈음 나는 맏아들임에도 불구하고 딸만 둘 달랑 낳고, 아버님 어머님의 눈총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몇 년 모른 체 먼 산 바라기나 하고 버티다가, 어느 명절 다 지낸 날, 그 당시 내 산의 호랑이시던 아버님 전에 무릎 꿇고 앉아 오만 욕 다 얻어먹고는, 예, 알았습니다, 뭐 그라지요. 그래 놓고도 그 당시 국가 시책이나 내 형편상 또 뻔뻔하게 안면에 철판 두껍게 깔고 악착같이 버텼는데,
나중에 집사람이 아버님께 전화를 해서 통화하는 내용을 가만 들어 보니, 그때쯤 아버님께서는 참다 참다 못해 드디어 차마 귀에 담지 못할 ‘조상과 국가와 민족의 무궁한 번영을 저해하는 주요한 요소’쯤으로 나를 전락시키셨는데, 그때 내가 입을 닷 자나 내밀고 길에 나앉게 생긴 아주 처량한 목소리로 아버님께 하소연한 말은 이랬다.
아버님요. 제가요. 참말로 이것은 저에게 중대한 일인데요. 제가 건설현장 일선에서 일하는 입장으로 간곡하게 말씀드리는 건데, 애 셋은 저에게 정말 큰 무리입니다. 도저히 애 셋은 키울 능력도 못 되고요. 그럴 모험을 할 자신도 없습니다.
그 순간, 안방에서 결가부좌를 틀고 앉으셔서 마루에서 어설픈 이야기나 하며 계면쩍게 뒤통수 긁고 서 있는 나를 한참이나 가소롭다는 듯이 쳐다보시던 아버님께서 혀를 쯧쯧 차시더니, 그래? 너의 그 말이 지금 정말로 그토록 옳다고 생각하나? 하시더니, 그 자리에서 즉각 간단한 극약 처방 하나를 내게 내리셨다.
니가 암만 다 죽어가는 얼굴로 나한테 저게 이렇다 이게 저렇다 시시콜콜 그래싸도, 자고로 단군 이래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족이라는 것을 만들 때 첫 목표는, 아무런 조건 달지 않고 아들 삼형제라는 말이 있느니라. (헉~) 나는 9남 1녀 중 3남으로 태어나서, 눈 아무리 부릅뜨고 둘러봐도 먹을 양식은 고사하고 피죽 쒀 먹을 천수답마저도 달랑 서 마지기밖에 없었더니라.
그런고로 내가 너한테 이 문제에 대하여 경건하게 묻는 건데, 지금 너 그 잘난 계산으로 그 9남 1녀 중 누구 혹시 굶어서 죽은 사람이나 영양실조 걸린 사람 있더냐? 그런데 거기다가 그 마이나 큰 겁을 내면서 이제 와서 니가 내 제사 지낼 놈 책임 못 지겠다고? ……알았다. 그라면 장남 책임 못 지는 그거는 내가 책임져야지, 뭐. 하기사 그러라고 내가 니 애비 아니것냐? 그래, 내가 내 제사 책임 못 지면 누가 질 끼고, 그자?
그깟 아들 하나 안 놓으려고 더 이상 버티다가는, 까딱하면 딸 둘에다가 얼토당토않은 아들 삼형제라는 무시무시한 인생 벌칙을 고스란히 뒤집어쓰게 생겼으므로, 그전에 아버님 전에 무수하게 주절거렸던 그 모든 헛이야기는 몽땅 다 접고, 얼른 목소리 톤을 낮게 바꾸어 아버님과 재협상을 시도하였다.
아 아닙니다. 마 됐습니다. 그만 한 일에 화를 이렇게나 크게 내시면 저는 어쩝니까? 안 낳는다는 얘기가 아니고, 국가 시책도 그렇고 해서, 안 낳는 게 좋지 않겠나 뭐 그런 얘기였는데요. 아버님께서 그게 그만큼이나 마음 상하시는 일이라면, 마 낳을게요. 낳으면 될 거 아닙니까? 그렇지만 그 그게 절차라는 게 있으니까, 기다리신 김에 마 10달만 조금 더 기다려 주세요, 예?
이래서 낳은 놈이, 저놈도 이런 눈물 나고 콧물 나는 사연 아는지 모르는지 잘 모르겠지만, 지금 군대 갔다 와서 이제 막 대학 졸업한 막내다. 그런데 난 그랬으면 그놈의 징한 아들 얘기는 거기서 다 끝나고, 나한테 세상이 더 이상 쓰다달다 무슨 얘기 더 이상 없으려니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내가 애 셋 낳은 후 무엇이 변했나 가만 살펴보니 내 위상은 그 무엇도 털끝 하나 변한 것이 없었는데, 이번에는 갑자기 마누라가 나를 대하는 자세가 싹 달라졌다.
난 사실 딸 둘 낳았어도 그게 다 우리 둘이 저지른 일이기에 그런 눈치 절대 준 적이 없었는데, 그전에는 국가와 민족에게 무슨 큰 대역무도한 죄를 지은 사람처럼 늘 내 눈치나 슬슬 보며, 나의 말이 설령 땅콩으로 메주를 쑤고 있어도 니에에~ 하며 순종하던 그녀가, 어느 날부터 갑자기 나를 향한 안면을 싹 몰수하더니, 급기야는 어느 날 나더러…… 거시기 아부지요. 나도 저쪽 산천경개 좋은 곳으로 바람 좀 쐬러 갑시다.
다른 사람들은 무시로 다 댕기던데, 시집 와서 10년이 다 되도록 어디 놀러 댕겨 본 적이 없으니, 나는 이 집에서 주워 온 무슨 식모요? 하며 나를 무슨 큰 빚쟁이처럼 몰아붙이기 시작했는데, 나 참 더러워서, 가만 보니 나는 아버님께서 책임지신다던 아들을 낳았음에도 불구하고 애 우유값 벌어 와야 되고, 애 씻어서 아버님 어머님께 보여드려야 되고, 자다 일어나서 애 우유 줘야 하고, 기저귀 갈아 줘야 하고, 마누라 바람 쐬어 주어야 되고, 이게 도무지 무신 짓인지 모를 일이었다.
그러나 아무튼 그동안 마누라의 피치 못했을 마음고생을 내가 미루어 짐작 못할 바는 아니었으므로, 벼르고 별러 어느 날 산천경개가 엄청나게 좋다고 매스컴에 떠들썩한 그곳으로, 마누라는 막내 업고 맏이는 걸리고 짐과 둘째 놈은 내가 떠안고, 열무김치 담고 김밥 싸고 과일, 과자 등등을 보따리에 싸서 들고, 어디 놀러갔다가 오는 길이었다.
그러나 지금과는 전혀 다르게 둘도 많다, 하나만 낳아 잘 기르자던 그 시절에는, 버스도 이리 가고 저리 가고 하는 것이 차장이 오라이~ 하지 않으면 절대 가지 않던 시절이었는데, 황금연휴 낀 주말에 유명 코스로 가는 버스를 타다 보니 점점 사람이 늘어나서, 자리가 콩나물시루처럼 꽉 차서 버스 맨 뒤쪽에 타졌다.
그러고는 나중에 어느 정류장에 내려야 하는데, 애들 다 챙기고 우유병 챙기고 기저귀 챙기고 보따리 챙기고 하다 보니 버스 출발시간이 늦어져서, 그 버스 안을 좌지우지하시는 가장 웃어른이시던 여자 차장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하고 있었는데, 내가 내릴 때 나를 쓱 째려보더니, 그리고 아무 소리 말고 딴 데 쳐다보았으면 그만이었으련만, 혼잣말로 뭐라고 구시렁거린 것이 그만 그 일의 화근이 되었다.
세상에, 요새도 애가 이리 많은 사람이 있나?
내가 눈은 좀 나빠도, 귀는 적어도 5.0 정도는 된다고 자부하던 터에, 그 소리가 그냥 이쪽 귀로 들어와서 저쪽 귀로 나갔을 리가 만무다. 더군다나 성질이라면 대나무로 도끼 뻐개려드는 좋은 성질 가진 나한테, 감히 저 따위 국가와 민족을 아예 찬물에 밥 말아먹을 소리를 듣고 가만있었다면, 참말로 내가 시러배 아들놈이다. 버스에서 내렸다가 대뜸 뒤돌아서서 가타부타 아무 말 없이 여자 차장의 멱살을 딱 잡아, 버스에서 끌어내렸다.
뭐? 당신 방금 뭐라고 했어? 나보고 애 많다 했나?
캑캑, 아, 아닌데요? 내가 언제 그랬어요? 급기야 운전사가 버스를 세우고 부리나케 내려서 버스 출입문 쪽으로 왔다. 이거 놓고 얘기하세요. 이거 놓고……. 뭐? 놓고 얘기하라고? 좋다. 놓기는 놓는데, 당신들 그 잘난 얘기가 무슨 말인지 그거 좀 들어 보자. 놓고 가만 보니, 운전사와 차장 둘 모두 키가 내 어깨도 차지 않는다. 옳거니! 지금부터 당신들이 사람이 짐승으로 변하면 이빨이 얼마나 무서워지는지 본때를 한번 보여주마.
이것 보슈. 기사 양반. 내가 듣기에 이 아가씨가 나보고 시방 애가 많다는구먼.
그런데 가당찮은 그런 말 객관적으로 세상에 대놓고 방송하려면 의무감이 좀 있어야 하는데 말이지, 그런데 이거는 알고들 있소? 당신네들이 말이지. 내가 애 많이 낳는 데 어느 힘 한번 장히 써준 일도 없고, 기저귀 우유값 한 번도 대주지 않았다는 그 사실 말이야. 그리고 그러지 않았으면서 그런 남의 시시콜콜한 가정사를 세상에 대고 떠벌린다면, 그거 얼마나 싸가지 없는 말이란 것도 말이야.
그리고 이 말은 동서고금을 통하여 아주 유명하고 고상한 덕담인데 말이지, 이거 굉장히 중요한 얘기니까 특히 귀 담아 잘 들어 두었다가 당신네들 족보 앞에 적어 두라고. 그 이야기가 뭔고 하니 말이야, 나한테 이런 얘기 하라고 쌀 팔고 소 팔아 당신네들에게 공부라는 것을 가르치신 당신네 부모님들께서는, 장히나 애를 적게 낳으시려고 당신네들 키까지 이렇게 짧게 해서 낳으셨겠나 이 말이야.
그래, 좋아. 그렇지만 나 그거 이해해 줄게. 뭐 그런 일이라는 게 생각보다 까다로워서, 하다 보면 잠깐 착각할 수도 있으니까……. 그러니까 내가 이렇게 좋게 얘기할 때 말이지. 국가 시책하고 당신네들하고 같이 당장 내 눈앞에서 썩 꺼져버려! 가다가 노루고개 넘어 가파른 내리막길 내려갈 때, 내가 브레이크 고장 나서 처박히라는 악담은 안 할게, 죄 없는 손님들이 여기 많이 타고 있으니까 말이야. 그 대신 타이어 펑크 두 번만 나서 땀 삐질삐질 흘리며 그거나 고치고 가길 빌어 줄게!
정말 그 시절엔 애 셋 되는 게 무슨 큰 죄악이라도 되는 것처럼 이 세상 모두가 나를 저렇게 들볶았다. 지금 젊은 사람들은 믿지 못하겠지만, 세금이나 하다못해 의료보험, 은행 대출마저도 국가 시책을 위배하였다고 이런저런 제약을 주었다. 그렇지만, 그럴수록 나는 더 결연해져 갔다. 그렇다. 그 따위 세금, 보험, 대출이 더 나오면 얼마나 더 나왔으랴?
그래서 지금도 그 방면으로 내 생각은 변함이 있을 수가 없다. 내 세상의 이 모든 신화와 전설, 내 세상의 이 모든 상징과 우화, 내 세상의 이 모든 기쁨과 슬픔, 내 세상의 이 모든 흡족함과 시무룩함, 그리고 내 세상의 이 모든 사랑과 정, 보고픔과 그리움을 다 뛰어넘을 만한 그 무엇이 있다면, 그것은 나의 이런 무수한 알력들과의 싸움은 별개로, 어쨌든 아이들은 커서 분명 어른이 되는 것이라고 줄기차게 생각한다. <끝>

 

 



■ 수상소감


먼저 한 동안 안온한 저의 골방이었던 문장의 창작광장 코너가 문을 닫는다는 소문에 길 잃은 고라니마냥 한동안 글을 못 쓰고 황망히 서 있는 제가 떠오릅니다.

다행히 방금 건설현장 하나가 저에게 배정되어 일에 골몰하고는 있습니다만, 일과 글쓰기와 음악듣기로 일관하는 저의 생활패턴 중 하나의 고리가 깨어져 조금의 심적인 불협화음이 있는 가운데, 그러나 그러든 말든 세월은 거침없이 또 봄입니다.

저는 부산과 김해 중간 바다 쪽에 있는 섬인 가덕도라는 섬 출신으로 근 40여간 건설현장에서 일을 하고 있는 일개 필부입니다. 한 곳에 7년 이상 산 적이 없이 지금도 전국 또는 세상 어느 곳이든 떠돌아다니며 살고 있습니다.

사실 그 점이 한 곳에 둥지를 틀고 사는 일반인들과 조금 특이할 겁니다만, 건설 현장이라는 특이한 직업이 제 사는 방식을 그렇게 만든 것이므로, 조금 불편하긴 하지만 이런 생활방식, 또는 거기서 나오는 특이한 경험 같은 것들은 제 삶의 필수적인 방법이므로 그게 딱히 자랑도 불만도 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구태여 글쓰기의 형태랄까 모토랄까 하는 그런 것을 찾자면 ‘경험의 세밀한 기록’입니다. 건설현장이란 곳이 딱히 일반적인 삶의 방식만으로 꾸려가기는 힘든 곳이라서 여러 가지 방법들을 동원하게 되고, 거기에서 발생하게 되는 알력들은 기상천외하고 기발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것들이 저에게 항상 그것의 기록을 부추기고 글을 쓰게 하는 셈이지요. 그런 의미로 저는 문학도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오히려 수학과 물리 화학의 신봉자이며, 그러한 것으로 치열하게 싸우는 현장의 경험을 가장 중시하며, 그 경험에서 우러나올 다음 행위를 골몰하고 나머지에는 더 이상의 관심을 둘 여력이 없어 포기하고 삽니다.

제가 무얼 한 군데만 골똘하게 바라보는 버릇이 있어서 눈치코치가 좀 없습니다만, 제 글이 자주 심사위원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이, 문학성에 별미가 있어서가 아니라는 것쯤은 저도 잘 압니다.

제 글은 저로써는 아주 소중한 경험들입니다만, 사실 저의 반대편 쪽인 인문적인 부분에 선 분들의 입장으로써는 이런 경험들을 하시지 못하셔서 잠깐 바라보는, ‘별 거지 깽깽이 같은’ 경험자의 요란한 사설에 현혹되신 것뿐일 테지요.

궁극의 방법론들은 어쨌든 이 모든 것들을 어떤 수를 써서라도 재미있게 하는 것에 골몰하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싫거나 귀찮으면 솔직히 직언하건대 세상 앞에 나서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고요.

순간적으로 어느 시공에 적용할 진리는 있을 것으로 압니다. 그러나 모든 것에 영원히 적용할 진리는 눈 씻고 봐도 없을 것으로도 압니다. 이 자리를 빌어 우아한 필법과 체계적인 문학적 소양과 표준말을 파괴하는, 지루하고 별 신통찮은 제 글에 관심주신 여러분들께 감사하다는 인사 남깁니다.

아울러 다시 문장이라는 자리에, 조금은 어려우리라 예감은 되지만 어느 정도의 현실적인 경쟁의 구도를 팽팽하게 견지할 수 있는 글방에서 다시 서로 글을 나누는 풍경을 감히 상상합니다. 그리고 그런 상상들이 이 조악한 현실들을 조금이라도 바꾸는 질료였으면 합니다. 그리운 그대들이여, 저는 늘 이런 오지에서 늘 그대들에게 감사하고 항상 고마워하면서 삽니다.



 

김종권photo (필명 : 벨)


2015년도 사이버문학광장 창작광장 산문 부문 연간 최우수상 수상자

 

《문장웹진 2016년 4월호》

추천 콘텐츠

육지에서 쓴 일기

[에세이] 육지에서 쓴 일기 최진영 20240528 4박 5일 동안 육지에서 여러 일정이 있어 오늘 제주에서 서울로 왔다. 앞으로 며칠간 약속과 약속 사이, 출발지와 도착지 사이 시간이 날 때마다 이 창을 열고 단상을 써보려고 한다. Are you checking in? pm04:45. 여긴 충무로의 호텔. 3년 전 제주로 이사 간 뒤 처음으로 서울에 일이 있어 올라왔을 때 숙박한 후 매번 이 호텔만 이용하고 있다. 경기, 인천 지역에서 저녁 행사를 해도 근방 호텔을 잡지 않고 여기로 온다. 새로운 호텔을 검색하고 선택하는 게 번거로워서. 합리적인 위치나 가격을 따지려다가 검색 지옥에 빠져서 몇 시간을 고민한 뒤 결국 이 호텔을 예약했던 경험으로 깨달은 바가 있다. 시간이 돈이다. 더 저렴한 호텔을 찾으려 애쓰지 말고 검색하고 고민하는 시간을 줄이자. 점심시간 무렵 충무로 일대 분위기는 조금 묘하다. 커다란 캐리어를 끌고 거리를 걷는 외국인들과 점심 먹으러 나온 직장인들이 뒤섞이는 거리. 라디오 주파수를 돌리듯 여러 나라의 언어가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서울역, 명동, 한옥마을, 남산, 종로가 가까운 곳이어서 외국인 관광객이 정말 많다. 올 때마다 느끼지만 호텔 투숙객 중 한국인은 나뿐인 것 같다. 한 달에 두어 번은 와서 2박 이상 하니까 나름 단골이랄 수도 있는데 프런트 직원들은 매번 나를 처음 본 손님처럼 대한다(호텔의 특성이겠지?). 체크인할 때도 내게 영어로 말을 건넨다. “give me your passport.” 그럼 나는 “제 이름은 최진영입니다”라고 한국어로 대답한다. 성공한 인생 오늘 아침 9시쯤 택배 문제 때문에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엄마는 전화를 받자마자 놀란 목소리로 “왜 이렇게 일찍 일어났느냐”고 물었다. 내 용건에 개의치 않고 엄마는 거듭 물었다. 전화를 끊고 뿌듯해서 신나게 웃었다. 내 나이 이제 마흔이 넘었는데 아침 9시에 엄마에게 “왜 이렇게 일찍 일어났느냐”는 말을 들을 수 있다니, 이번 생은 성공한 것 같아서. 그건 바로 내 투쟁의 결과다. 거의 20년을 프리랜서로 살면서 남들 다 출근하는 시간에도 ‘성인 평균 적정 수면시간’을 사수하며 꾸준히 늦게 일어나는 생활양식을 차곡차곡 쌓아 온 결과 마침내 엄마도 나의 생활 패턴을 받아들인 것이다. 그래서 아침 9시에 전화하면 깜짝 놀라는 것이다. 나는 이런 게 진정한 성공 같다. 긴장감 저녁에 북토크를 할 예정이다. 사람들 앞에서 말하거나 낭독할 때는 별로 긴장하지 않는 편이다. 내가 긴장하는 순간은 따로 있다. 예를 들면 비행기 탈 때. 기내 짐칸에 캐리어를 올리다가 무거워서 또는 실수로 떨어트려서 누군가를 다치게 할까 봐 매번 긴장한다. 일어날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걸 알지만 식은땀이 난다. 캐리어를 끌고 에스컬레이터 탈 때도 마찬가지다. 에스컬레이터에서 넘어지거나 캐리어를 놓치는 구체적 상상에 시

  • 관리자
  • 2024-07-01
거대한 존재들의 무한한 경탄

[에세이] 거대한 존재들의 무한한 경탄 제이크 레빈 소개 거의 12년 동안 나는 한국 대학교에서 강의를 했다. 지난해부터 강의하는 교사의 내면적 생활과 관련된 일기와 같은 글들을 쓰기 시작했다. 외국인 교수로서 처음 강의를 시작했을 때 모든 것이 낯설고 이방인 같은 느낌이었는데 이제는 한국 문화에 익숙해졌지만 여전히 교수의 삶은 익숙하지 않다고 믿는다. 학생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고 다른 교수의 마음도 이해하기 어렵다. 다른 강의실에 들어갈 때마다 새로운 학생들을 만날 때마다 이전에 만나지 못했던 민족을 만나는 것 같이 나는 죽을 때까지 방랑자처럼 매일 새로운 것을 경험한다. 학교에서는 현실에 경험한 것이 꿈꾸는 것 같고 꿈꾸는 것이 더 현실처럼 느껴지듯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가 가끔은 사라진다. 이 산문은 시나 소설이 아니고 현실의 기록도 아닌 교사로서의 삶의 내면적 반응이다. 교사는 인간이다. 가끔 사회가 인문대 교사의 인간중심주의를 억압한다고 생각한다. 신자유주의의 자본주의는 모든 것을 계산하지만 인문학과 시의 영향력은 계산될 수 없는 가치다. 인간중심주의 가치를 점점 찾기 힘든 사회의 학생들은 학교에서 문화를 배워야 한다. 이 모순적인 긴장의 환경에 존재해야 한다. 학교의 목적은 타인의 인간성을 인정하는 것에 있다. 이 산문은 한 인간의 존재하는 기록이다. 거대한 존재들의 무한한 경탄이라는 제목은 완전한 이해가 불가한 타인의 인간성을 발견하는 것에서 왔다. 이 기록은 내 개인적 경험과 전해 들은 동료 교사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작성하였으며 영어로 작성한 문장을 나의 소중한 학생 김혜인이 나와 함께 번역하였다. 지우개 머리 어떤 날 나는 대답하기 위해 여기 있고, 어떤 날 나는 오직 듣기 위해 여기 있다. “질문 있어?” 많은 학생들이 질문의 형태로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그다지 어려울 것 없는 예술을 배웠다. 그런 질문에 대답하는 유일한 방법은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이 질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질문자가 자신의 질문에 답변하는 동안 사용감 있는 지우개처럼 커피를 홀짝이며 머리에서 머리카락이 떨어지는 것을 느껴 보라. 학생들의 목소리는 배경소리가 되어 가다가, 불현듯 보이스 오버. 지우개는 부러지기 전까지 얼마나 많은 얼룩을 견딜 수 있을까? 숭고한 느낌 지난 몇 주간, 를 듣는 학생들은 책상 아래 숨어 있었다. “교수님, 저희는 불확실성에 머물고 있어요.” 그들은 말한다. 일정 기간 동안 불확실성에 머문 뒤, 한 학생이 책상 아래서 나타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저는 숭고한 느낌을 얻었어요.” 그들이 말한다. “저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아름다움에 압도당해 죽음이 무섭고 두려워요.” “이제 제 핸드폰 돌려주시겠어요?” 정적. 학생이 나를 응시한다. 정적. 나는 천천히 커피 한 모금을 마시고 학생을 응시한다. 흰 두루미 “주말 잘 보냈니?&r

  • 관리자
  • 2024-07-01
아, ‘장르 문학’ 하시는구나

[에세이] 아, ‘장르 문학’ 하시는구나 김용언 미스터리 장르를 좋아하고, 열심히 읽고, 그에 관한 잡지를 만들고, 또 가끔은 관련 공모전 심사를 보면서 언제나 느끼는 바가 있다. 한국에서 미스터리 장르에 대한 이해도는 여전히 심각하게 척박하다는 점이다. 가장 모순되는 감정을 느끼는 순간은 ‘장르 문학’이라는 단어를 들을 때다. ‘(그냥) 문학’1)의 카테고리에 속하지 않는 나머지 소설들은 굳이 ‘장르 문학’이라고 불린다. SF, 판타지, 미스터리/스릴러, 로맨스, 공포, 무협 등의 꼬리표가 붙고 낱낱이 분류되며 ‘문학은 문학이지만 그냥 문학이라고 부르기보단 그 안의 장르로 명명되어야 하는’ 존재가 된다. 의문이 생긴다. 그렇다면 장르 문학에 속하지 않는 작품은 그냥 문학이 아니라 ‘비장르 문학’이 되어야 하지 않는가? 아니면 순문학 역시 일종의 장르임을 인정하면서 모든 작품을 ‘장르 문학’이라고 불러야 하는 건 아닐까? 예전 한국 문단에서는 ‘순(純)’이라는 단어가 참여 문학/민중 문학 등의 대립항처럼 불렸다고 하는데, 지금에 와서는 참여 문학/민중 문학도 ‘그냥’ 문학에 포함된 것 같다. 아무튼 거칠게 말해서 ‘장르’를 사용하지 않고 인간과 현실 자체에 집중하는 소설을 ‘그냥’ 문학으로 호명한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장르’로 호명되는 특정한 이야기들에는 그 장르가 만들어지게 된 역사가 있고 또 그 안에서 통용되는 특정한 규칙이 존재한다. 그런 약속된 구조와 규칙을 이용해서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낸다고 해서, 그 결과물이 ‘그냥’ 문학으로 불릴 수 없고 장르 문학으로만 불려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오해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나는 장르 문학도 문학임을 인정하라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기 위해 이 글을 쓰는 게 아니다(그건 너무 당연한 사실이기 때문에 굳이 받아들여 달라고 애원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그 장르 문학 업계에서 일하는 사람으로서 불편해지는 순간들이 자꾸 찾아온다. 이를테면 한국 작가의 소설이 해외로 번역되었을 때 현지 리뷰들을 찾아보면, 스릴러/미스터리/공포 등의 명칭을 명확하게 부여하면서 소개한다. 한국에서는 기존 등단 작가들의 작품을 소개할 때 ‘추리적 기법을 활용한’ 또는 ‘경계를 넘어선 상상력을 발휘한’ 등의 애매모호한 문구로 시작할 때가 많은데, 해외에서는 자신들에게는 낯선 작가의 번역 작품의 특성을 단번에 설명하기 위해 ‘이것은 스릴러다’ 또는 ‘이것은 공포소설이다’라고 알려준 다음 그 작품의 특성이 어떤 점에서 새롭고 멋진지를 차근차근 설명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여전히 장르 문학과 장르 아닌 ‘그냥&r

  • 관리자
  • 2024-07-01

댓글 남기기

로그인후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을 남겨 주세요!

댓글남기기 작성 가이드

  •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는 욕설, 비방 등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주제와 관련 없거나 부적절한 홍보 내용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기타 운영 정책에 어긋나는 내용이 포함될 경우, 사전 고지 없이 노출 제한될 수 있습니다.
0 / 1500

댓글0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