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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작가의 樂취미들] 말 타기, 나의 좌절된 취미에 대하여

  • 작성일 2015-12-01
  • 조회수 1,362

 

[젊은작가의 樂취미들]

 

 


말 타기, 나의 좌절된 취미에 대하여

 

 

 

김멜라

 

 

 

 

    어릴 적 내 꿈은 말을 타고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절벽을 달리는 것이었다. 요즘도 나는 영화나 드라마를 볼 때 비슷한 장면이 나오면 가슴이 뛴다. 그저 조금 설레는 정도가 아니다. 심장 박동이 빨라지고 얼굴이 달아오르면서 눈물이 쏟아질 것처럼 감정이 격해진다. 무엇보다 말이 달릴 때 내는 소리가 나를 매료시킨다. 땅을 구르는 말발굽 소리는 나에게 최고의 사운드다. 그에 비길 만한 소리는 지상에 떨어지는 빗소리뿐이다. 그런데 빗소리는 일 년에 수십 번 들을 수 있지만 말발굽 소리는 듣기가 어렵다. 말이 푸르르 푸르르 콧김을 내쉬는 소리와 말이 끄는 마차 바퀴가 덜거덕거리는 소리도 나를 들뜨게 한다. 말이 뛰는 리듬에 따라 허벅지 사이부터 온몸이 진동하는 느낌, 그 소리, 그것은 내가 생각하는 ‘자유’의 느낌이다.
    내가 말을 좋아하기 시작한 건 아홉 살 때부터였다. 아홉 살이라고 정확하게 그 시기를 기억하는 건 아니다. 나는 내 유년 시절을 말할 때 나 자신을 ‘아홉 살, 초등학교 이 학년’쯤으로 상정한다. 그즈음이 내가 나를 기억하는 최초의 시기이기 때문이다. 내게는 여덟 살부터 그 이전의 기억이 없다. 애인은 내가 술을 많이 마셔서 기억력을 관장하는 뇌의 해마가 아세트알데히드로 인해 파괴되었을 거라 추측한다. 뇌의 해마는 서술 기억을 담당하는 곳으로 사람은 누구나 뇌 속에 말 한 마리가 있다. 그런데 내 머릿속 말은 무슨 이유에선지 아홉 살 이전의 기억을 서술하는 걸 내켜 하지 않는 것 같다.
    다시 말 이야기로 돌아가면 나는 아홉 살 무렵 세계명작동화 전집을 즐겨 읽었다. 실제로 읽은 책은 몇 권 없고, 그저 책꽂이에 꽂혀 있는 동화들의 제목을 훑어보며 이런저런 생각을 이어 갔다. 내가 좋아하는 책은 두 권이었다. 그중 한 권은 톨스토이의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이었는데 나는 책 내용에는 흥미가 없었다. 단지 책등에 써진 제목을 보며 그 문장을 곱씹었다.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 나는 그 말이 주는 느낌이 좋았다. 무언가 나락으로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그러면서도 안심이 되었다. 하지만 내가 그런 느낌을 좋아한다는 것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두 번째로 좋아했던 책이 나를 말에게 빠지게 한 책이다. 톨스토이의 책과 다르게 그 책의 제목은 기억나지 않는다. 지금이라도 인터넷을 뒤지면 알 수 있겠지만 그러고 싶지 않다. 내가 그 책에서 좋아했던 부분은 제목이나 내용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 책 속에 나오는 말의 생김새에 빠져들었다. 어떻게 보면 싱거울 정도로 평범한 말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말의 색과 무늬에 강한 인상을 받았다.
    “온몸이 까맣고 검은데, 콧등하고 오른쪽 앞다리에 흰색 다이아몬드 점이 있는 말”
    나는 말을 그렇게 설명했다. 누군가 나에게 어떤 동물을 좋아하느냐고 물으면 어김없이 나의 말을 이야기했다. 그냥 ‘말’이라거나 ‘검은 말’이라고 줄여 말하지 않았다. 설명하는 걸 어려워하는 내 성격도 말 앞에서는 태도가 달라졌다. 콧등과 오른쪽 앞다리에 흰색 다이아몬드 점이 있는 검은 말은 내가 아는 가장 아름다운 존재였다.
    실제로 내가 말을 본 것은 열한 살 때였다. 말을 타고 찍은 사진에 날짜가 있기 때문에 이 시기는 정확하다. 그때 내 생활은 어머니, 아버지의 사업 실패와 뒤이은 야반도주로 얼룩져 있었다. 독신인 이모가 어머니에게 돈을 빌려주었고, 우리 가족은 그 고마움의 표시로 이모와 함께 여행을 떠났다. 누구도 마음껏 즐거워할 수 없는 여행이었다. 내 마음을 무겁게 하는 이유가 또 하나 있었다. 나는 여행 내내 살구색 티셔츠에 청색 셔츠를 허리에 묶은 차림이었는데 나는 그 옷이 초라해 보인다고 생각했다.
    동해의 한 바닷가에서 나는 처음으로 말을 보았다. 내 이상형의 말과 다르게 갈색 빛이 도는 말이었다. 돈을 낸 사람을 태우고 해변을 걷는 말이었다. 내가 말을 좋아하는 것을 아는 어른들이 나를 말에게로 데려갔다. 억지로 내 손에 당근 토막을 쥐어 주고는 말에게 주라고 했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말의 입에 손바닥을 가져갔다. 그런데 말이 두툼한 입술을 벌리는 순간, 나는 놀라서 당근을 모래에 던져버렸다. 참을 수 없이 불쾌하고, 또 무서웠다. 그다음 나는 말을 타고 해변을 걸었다. 말 등에 올라타 있는 내내 어서 말에서 내리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말에 탄 채 사진도 찍었다. 옷이 마음에 들지 않아 내키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때 찍은 사진이 아직도 내 책상 위에 액자로 놓여 있다. 그 사진을 볼 때마다 내가 입었던 살구색 티셔츠와 그때의 당혹감이 되살아난다. 그럼에도 나는 그 사진을 내버려둔다. 나의 그 심리가 무엇인지는 굳이 분석하고 싶지 않다.
    이후로 나는 경마장에서 말을 보았다. 일부러 트랙 가까이 갔지만 내가 기대하는 말발굽 소리는 들을 수 없었다. 몇 년 뒤에는 제주도에서 꽤 신나게 말을 타기도 했다. 그런데 말에서 내린 다음은 기분이 찜찜했다. 현실에서 보는 말은 어딘가 실망스러웠다. 말이 아니라 말의 누더기 같았다. 그와 반대로 내 관념 속의 말은 더욱더 빛이 났다. 대학 시절에 들은 니체의 에피소드가 그 정점이었다. 니체는 뇌 발작을 일으키기 직전, 시내에서 채찍에 맞는 말의 목을 부여잡고 쓰러진다. 망치를 들고 초인을 부르짖던 철학자가 말의 고통에 절규하며 졸도한 것이다, 그 후로 니체는 십 년 동안 정신병을 앓다 죽는다. 이 일화는 나에게 말의 이미지를 한층 더 어둡게 만들었다.
    요사이 나는 불법(佛法)에 대한 동영상 강의를 들으며 말을 타는 것이 이기적이라는 생각을 한다. 사람은 먹지 않을 순 없지만 타지 않을 순 있다. 말을 탄다는 것은 내가 편하기 위해 또 다른 생명에게 등짐을 지우는 것이다. 더구나 재미 삼아 말을 타는 것, 누군가 재미 삼아 내 등에 올라탄다면 내 기분은 어떨까. 아무래도 나는 승마를 즐기기에 적합한 사람이 아닌 것 같다.
    현실적으로도 말을 타는 게 쉽지 않다. 승마 시설이 가까운 것도 아니고, 나는 그 비용을 감당할 처지도 못 된다. 어쩌면 나는 여우의 신 포도처럼 내가 누리지 못하는 생활의 여유를 말에 대한 사색으로 위로 삼는지 모른다. 정작 책 내용은 모르면서 몇 개의 이미지만으로 생각을 더해 가던 어린 시절처럼 말이다.
    말에 관한 에피소드 하나 더, 세상의 모든 살아 있는 것들에게 자비를 베풀라 했던 싯다르타의 이야기다. 그가 아직 수도자였을 때 그는 왕궁에서 도망치기 위해 자신의 백마 칸타카의 등에 안장을 놓으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너는 이미 오랫동안 여기 있었다. 그러나 이제 너는 등에 짐을 지거나 이끄는 일을 그만두어야 한다. 다만 이번만은, 오 칸타카여, 나를 이곳에서 떠나게 해다오. 내가 도를 얻으면 (불타가 되었을 때) 너를 결코 잊지 않으리라.” (레뮤자의 프랑스 역에서) 1)

 

 

작가소개 / 김멜라(소설가)

- 1983년 서울 출생. 2014년 《자음과 모음》 신인상 수상.

 

   《문장웹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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