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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작가의 樂취미들] 1번국도

  • 작성일 2015-12-01
  • 조회수 1,055

 

[젊은작가의 樂취미들]

 

 


1번 국도

 

 

 

김아정

 

 

 

 

    운전면허를 앞두고 고민에 빠졌다. 요즘은 스쿠터 하나를 몰려고 해도 면허가 필수인 것이다. 2종 보통 면허만 있어도 스쿠터를 몰 수 있다고 하는데 사실 나는 자동차에 관심이 없다. 기본적인 소양으로 하나쯤 따두면 좋겠지만 딱히 그런 기본적인 소양에도 관심이 없다. 스쿠터를 타고 싶은 거라면 원동기 면허 하나만 있어도 그만이다. 하지만 나는 사실 그런 귀여운 스쿠터를 타고 싶은 게 아니다. 크루저나 모타드와 같이 보다 강력한 엔진을 가진 오토바이를 타고 싶은 것이다. 우리가 흔히 아는 스쿠터나 배달 오토바이들은 배기량 125cc 이하다. 내 머릿속을 질주하고 있는 오토바이들은 보통 배기량 250cc부터 시작해 1000cc를 웃돌기도 한다. 이런 오토바이들을 몰기 위해서는 2종 소형 면허를 반드시 따로 취득해야 한다.
    여기서 나는 새로운 국면의 고민을 또 맞이하게 된다. 경제적인 여건이 충족되지 못할뿐더러 어머니의 반대와 맞서 싸울 용기도 부족하다. 무엇보다 겁이 많은 내가 과연 그런 주체할 수 없는 속도를 감당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여기서 나는 작아지게 된다. 그렇다면 무난하게 스쿠터를 시작해 보는 것은 어떨까? 아, 그런데 요즘은 스쿠터 하나를 몰려고 해도 면허가 필수인데. 고민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다.
    오토바이에 대한 로망이 생기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열대야가 극심하던 어느 여름 밤, 한강 공원 근처로 피신을 간 적이 있었다. 자꾸 종아리에 들러붙는 모기를 잡으며 편의점 파라솔 밑에 앉아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는데 어디선가 요란한 굉음이 일었다. 사납고 묵직하게 생긴 까만 오토바이 하나가 편의점 앞에 섰다. 할리 데이비슨의 로고는 어디선가 본 적이 있었다. 오토바이 주인이 헬멧을 벗는데 나는 하마터면 먹고 있던 아이스크림을 바닥에 떨어뜨릴 뻔했다. 당연히 나이 많은 아저씨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시원하게 쇼트커트를 한 꽤 젊은 여자였다. 헐렁한 티셔츠에 펑키한 스키니진 차림의 여자였다. 화장기 없는 얼굴이라 그런지 순해 보였다. 샤프하게 자른 쇼트커트와 어울리지 않는 얼굴이었다. 그런 미묘한 느낌이 여자의 인상을 더욱 뚜렷하게 남겼다. 여자는 편의점에서 사온 생수를 그 자리에서 단번에 들이켰다. 당시 나는 조지 밀러의 『매드맥스』라는 영화를 인상 깊게 봤다. 나도 모르게 여자를 영화 속 한 장면에 대입했다. 여자를 영화 속 소녀들과 함께 사막 위를 달리게 했다. 여자는 사막과 잘 어울렸다. 시끄럽게 몰려다니는 폭주족들과 달랐다. 광활한 사막 위를 오롯이 혼자서 압도하고 있었다.
    문득 그 자리에서 회의감이 들었다. 당시 나는 자전거를 타고 전국 일주를 하는 한량의 이야기를 퇴고하고 있었는데 여자를 보자 내 소설 속 남자 주인공이 몹시도 초라해 보였다. 고작 자전거라니, 한량이라면 저런 할리 데이비슨 오토바이쯤은 되어야지, 내 상상력이 어쩐지 볼품없게 느껴졌다. 여자는 다시 헬멧을 쓰고 오토바이에 올랐다. 시동을 걸고 요란한 굉음을 내며 도로 위를 질주했다. 멀어져 가는 여자의 뒷모습을 보다가 문득 여자가 오토바이를 타고 전국을 일주하는 모습을 떠올렸다.
    오토바이에 대한 최초의 기억은 아버지에 대한 최초의 기억과 함께 묶여 있다. 내 유년기 속 아버지는 바이커였다. 아버지는 혼다에서 제조한 흰색 CBR 오토바이를 몰았다. 어린 나는 커다란 헬멧을 쓰고 아버지의 무릎 사이에 앉았다. 아직 유치원을 다니던 때였다. 나는 생일선물로 신데렐라 책이 갖고 싶다고 했다. 아버지는 퇴근 후 서둘러 저녁을 먹고 외출 준비에 나섰다. 아버지가 시내에 있는 동네 서점에 가자고 했다. 아버지는 가죽 재킷을 걸쳤다. 나는 옷장에서 가장 두툼한 코트를 꺼내 챙겨 입었다. 하늘이 그새 캄캄해져 있었다. 아버지의 오토바이는 아파트 1층 창고 안쪽에 주차되어 있었다. 내가 두 팔로 겨우 껴안을 수 있는 커다란 헬멧을 아버지가 씌워 주었다. 아버지가 먼저 오토바이에 오르고 이어서 내가 아버지의 무릎 사이에 끼어 앉았다. 아버지가 시동을 걸자 배기음이 요란하게 쏟아졌다. 캄캄한 도로 위에 가로등이 드문드문 서 있었다. 앞을 보기 위해 나는 고개를 꼿꼿이 쳐들었다. 주황색 가로등 불이 눈앞을 번쩍번쩍 스쳐 지나갔다. 아버지가 무어라 말을 한 것 같았지만 시끄러운 오토바이 소리 탓에 들리지 않았다. 도로 위엔 아버지와 나뿐이었다. 아버지가 좀 더 속도를 냈다. 아버지의 품속에서 나는 잠깐 날았다. 오토바이가 도로 위를 붕 뜨며 날아오른 것이었다. 아버지에게 지금 날고 있느냐고 물었지만 아버지 역시 배기음 탓에 듣지 못한 모양이었다.
    나는 곧잘 엉뚱한 상상을 하곤 했다. 어른들이 잠가 놓은 아파트 옥상에는 무지 신나는 놀이터가 있을 것만 같았고 아랫집에 살던 무섭게 생긴 할머니는 사실 마녀일 것 같았다. 친구들에게 아버지 오토바이를 탔더니 잠깐 하늘을 붕 날았더라는 얘기를 해줬지만 나는 또 허풍쟁이가 되어버렸다. 허풍쟁이라고 놀림 받아도 상관없었다. 그때 내겐 그 모든 게 진짜였다. 아버지의 오토바이가 중고 카센터에 팔리기 전까지도 나는 허풍을 멈추지 않았다. 가족들을 위해 아버지는 오토바이를 팔고 승용차를 구입했다. 승용차는 온 가족이 다 함께 탈 수 있는 데다 안락하기까지 했다. 오토바이와 달리 비가 세차게 내려도 끄떡없었다. 승용차 뒷좌석에 앉아 차창 너머로 가로등 불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하지만 역시 오토바이처럼 하늘을 날지는 못했다.
    어렸을 땐 아버지와 오토바이를 타고 동네 서점에 다녀올 만큼 꽤 친했지만 나이를 먹으면서 유년의 기억과 함께 사이가 점점 멀어졌다. 집 앞 편의점도 각각 따로 다녀왔다. 아버지와의 대화는 언제나 어색했다. 어색함을 뚫고 아버지에게 오토바이 타던 시절 얘기를 물었다.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말해 보라고 했다. 아버지가 잠깐 고민하더니 새벽시장 얘기를 해주었다. 가로등 불이 하나 둘 꺼질 무렵 아버지는 친구와 함께 시장 앞을 지나고 있었다. 청소 아저씨들이 채소 쓰레기를 도로에다 부어 놓고 정리를 하고 있었는데 아버지의 오토바이가 쓰레기 더미에 그대로 꽂혔다. 채소 쓰레기 더미라 다행히 다치지는 않았다고 했다. 나는 가만 고개를 끄덕였다. 하나도 재밌지 않았지만 재밌다고 했다. 아버지에게 오토바이를 타겠다고 했더니 자기가 타봐서 아는데, 위험하니까 타지 말랬다. 아버지의 그 말이 더 재밌었다. 아버지가 젊은 시절 오토바이 앞에서 찍은 사진들을 보여주었다. “똥폼 잡고 있는 거 봐라.” 나는 키득거리며 웃었지만 속으론 좀 멋지다고 생각했다. 나도 아버지 같은 똥폼을 잡고 사진을 찍고 싶었다.
    아버지가 오토바이는 안 된다고 했지만 나는 조금씩 적금을 부었다. 인터넷으로 바이커들의 블로그 게시 글을 뒤져 보기도 했다. 오토바이는 고속도로 주행이 불가능했다. 국도나 일반 통행로만 가능했다. 그것도 일부는 제한됐다. 전국 일주가 쉽지는 않겠구나 싶었다. 딱히 여행을 즐기는 편이 아니다 보니 아직 전국 일주 여행은 아직 가본 적이 없었다. 여자의 이미지가 아른거렸다. 머릿속 한쪽 귀퉁이에 오토바이 국도 여행을 새겨 넣었다. 배낭 하나를 들쳐 메고 오토바이에 기름을 가득 채운 뒤 햇볕 따스한 봄이나 가을에, 가로등 불이 하나 둘 꺼지기를 기다렸다가 1번 국도에 올라야지, 마음먹었다.

 


 

 

작가소개 / 김아정(소설가)

- 1993년 서울 출생. 중앙대학교 문예창작 4학년 재학. 2015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동화 부문 당선.

 

   《문장웹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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