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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개인터뷰_민구 시인편] 나는 왜 ‘너에게 바치는 유일한 시’를 쓰는가

  • 작성일 2015-08-01
  • 조회수 3,114

 

연속기획 공개인터뷰 _ 나는 왜?(제13회)

 

 

나는 왜 ‘너에게 바치는 유일한 시’를 쓰는가?

- 시인 민구 편

 

 

정리 : 안희연(시인)

 

 

 

    [나는 왜] 행사가 7시에 시작될 예정이니 5분 10분 전에 도착하게 와달라는 문자를 보냈다. 행사 당일, 민구 시인은 5시 10분에 전화를 걸어와 어디로 가면 되느냐고 물었다. 이른 도착이 의아해서 왜 벌써 왔느냐고 묻자 약속시간이 5시 10분 아니었느냐고 되묻는다. 민구 시인은 멋쩍게 웃었다. 아무래도 단단히 긴장을 한 모양이다.
    민구 시인은 폭우를 뚫고 내가 있는 근처 카페로 왔다. 엉뚱하고, 자유롭고, 늘 예상을 빗나가는 그의 시와 잘 어울리는 에피소드라고 생각했다. 그는 가방 속에서 질문지를 꺼내 연습(?)을 했다. 답변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시집이 나오고 처음 하는 독자와의 만남이라고 했다. 상기된 그의 표정을 보면서 문득 떠오르는 장면이 있었다. 어느 해 신입생 환영회 자리였던가(그와 나는 같은 대학 동문이다), 잠시 바람을 쐴 요량으로 밖에 나왔더니 민구 시인이 가로수를 발로 걷어차며 뭐라 뭐라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이었다. 그 모습이 너무 재미있어서(실은 너무 웃겨서) 두고두고 놀렸었는데, 그의 시집을 읽으며 깨달은 게 있다. 그는 술이 취한 게 아니라 나무와 대화하는 법을 아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행사가 시작됐다. 그날 민구 시인은 많은 비밀을 누설했다. 거울이 입을 열어 말하고, 달을 호빵처럼 반으로 쪼개면 팥이 나올지도 모른다고, 사물이 스스로 말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자신의 역할이라고 말이다. 우리의 질문은 끊이지 않았다. 당신은 왜 ‘너에게 바치는 유일한 시’를 씁니까? 그때의 ‘너’는 누구입니까?
때론 진지하고, 때론 엉뚱한 민구 시인과의 데이트! 빼곡한 그의 답변지에는 어떤 대답이 적혀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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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펜으로 사람을 살리는 사람

 

    ▶ 이영주(이하 이) : 《문장 웹진》 공개인터뷰 [나는 왜] 시간입니다. [나는 왜] 행사는 첫 시집 혹은 두 번째 시집을 발간한 시인 가운데 한국 시단의 미래를 책임질, 주목할 만한 시인을 모시고 이야기 나누는 자리인데요. 오늘의 주인공은 민구 시인이에요. 간단히 소개해 드릴게요. 민구 시인은 1983년 인천에서 태어나셨고 2009년 《조선일보》로 등단하셨습니다. 시집으로는 『배가 산으로 간다』(문학동네, 2014)가 있습니다. 독자 여러분께 간단한 인사말씀 해주세요.

 

    ▶ 민구(이하 민) : 반갑습니다. 저는 시 쓰는 민구라고 하고요, 데뷔 후 5년 만에 첫 시집을 묶었습니다.

 

    ▶ 이 : 분위기를 누그러뜨릴 겸, 민구 시인께서 시를 한 편 낭독해 주시면 어떨까요. 첫 인사를 드린다는 느낌으로요.

 

    ▶ 민 : 「불청객」이라는 시를 읽어 보겠습니다.

 

      불청객

 

 

가로등 불빛이
작은방 창으로 들어온다
밥상을 타넘고
안방으로 걸어와서 어머니 가슴에
발을 올려놓는다
괘씸하지만
꽁꽁 언 발을 끄집어낼 수도 없어
그대로 둔다
 
 
보일러 돌아가는 소리에도
잠을 깨시는 어머니
늘 걷어차던 이불을 웬일로
한 번 안 차고 주무신다
 
 
네가 붙잡았나 싶어서
불빛이 시작한 자리를 가만히
오래오래 본다
 
 
저리 보면
달이 뭐 별건가

 

    ▶ 이 : 왜 이 시를 고르셨나요?

 

    ▶ 민 : 이 시는 시집으로 묶은 48편 가운데 가장 오래된 시예요. 제가 대학교 1학년 때 쓴 시인데요. 이 시를 썼을 때, 제가 후에 시인으로 데뷔해서 시집을 묶는다면 시집의 맨 마지막에 싣겠다고 스스로와 약속했거든요. 작은 방에서 어머니가 주무시는 광경을 묘사한 소품인데, 어려운 말은 하나도 없는, 개인적으로 참 좋아하는 시예요. 그래서 고르게 됐어요.

 

    ▶ 이 : 의미 있는 낭송으로 시작했네요. 스스로와의 약속을 지키셨으니 감회가 남다르시겠어요.

 

    ▶ 민 : 낭송하게 될 줄은 몰랐어요. (웃음)

 

    ▶ 이 : 그러면 지금부터 본격적인 이야기를 나눠 보도록 할게요. 누구에게 물어도 다 다른 대답을 하는, [나는 왜]의 공식 질문입니다. 민구 시인을 문학의 길로 인도한 결정적 계기 같은 것이 있었나요?

 

    ▶ 민 : 오늘 이 자리는 제가 독자 분들과 처음으로 만나는 자리예요. 친구에게 이야기하듯이 편하게 할게요. 사실 저는 고등학교를 다닐 때만 해도 꿈이 이쪽이 아니었어요. 글 쓰는 걸 좋아하긴 했지만 그리 열성적이지는 않았고, 작가가 되겠다는 생각도 안 했고요. 사실 저는 의사가 되고 싶었어요. 당시 MBC에 다큐멘터리 《성공시대》라는 프로그램이 있었거든요. 거기 송명근 박사라고 권위 있는 심장 전문의인데, 그분 다큐가 방영된 적 있어요. 생사의 기로에서 사람을 살려내는 일이 너무 멋지다고 생각했죠. 고등학교 때는 길에서 쓰러진 행인에게 심폐소생술을 하기도 했고요.
    그런데 성적이 안 나와서 고민을 하고 있었어요. 그때 담임선생님께서 제게 하신 말씀이 있어요. “너는 글을 잘 쓰잖아. 칼로 사람을 살릴 수도 있지만 펜으로도 사람을 살릴 수 있다.” 그건 제가 학교 들어가서 처음으로 들은 칭찬이었어요. 뇌리에서 잊히지 않더라고요. 당시 제가 도서부 활동을 하고 있었는데 그 말을 듣고 도서관에 가니 서가에 꽂힌 시집이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김기택 시인의 『바늘구멍 속의 폭풍』을 꺼내 읽었어요. 거기 「얼굴」이라는 시가 있거든요. 눈이 침침해서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더니 해골이 만져졌다는 문장을 보자마자 쿵, 얻어맞은 듯했어요. 어떻게 해골을 만져? 말도 안 되는 말인데, 놀랍더라고요.
    그게 문학을 시작하게 된 계기인 것 같아요. 어릴 때는 폐허, 균열, 시체, 죽음. 그런 단어들을 좋아했어요. 제 옆에 있는 것 같은 단어였고 친숙했고요.

 

    ▶ 이 : 사소한 데서 꿈이 시작되는 것 같아요. 선생님의 그 말씀이 아니었다면, 민구 시인은 없었겠죠. 데뷔를 하고 나서는 어떠셨나요?

 

    ▶ 민 : 데뷔를 하고 나서는 좀 달라졌어요. 솔직히 말하면, 청탁이 시를 쓰게 하는 것 같아요.

 

    ▶ 이 : 청탁과 마감이 시의 뮤즈라니, 이건 거의 중견급인데요? (일동 웃음)

 

    ▶ 민 : 그래도 늘 긴장하고 있습니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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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배가 산으로 가는 방법

 

    ▶ 이 : 첫 시집 제목이 『배가 산으로 간다』인데요. 과감하면서도 특이한 제목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관용구로 많이 쓰이는 문장이지만 시집 제목으로 등장하니 굉장히 신선한데요. 제목을 지을 때 어떤 기준이나 사연 같은 것이 있었을까요?

 

    ▶ 민 : 제 시집 목차를 읽어 보시면 알겠지만 시 제목들이 별로 재미가 없어요. 제목을 잘 못 짓는다는 걸 아실 거예요. (웃음) 처음에 출판사에서 어떤 제목이 좋으냐고 물었을 때 방, 공기, 달, 동백 등을 이야기했어요. 수수한 제목이지만 저랑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고, 주목을 못 받을 것 같지만 고집을 부리고 싶었어요. 그런데 김민정 시인께서 이 제목을 추천해 주셨어요. 시집을 관통하는 제목인 것 같다고요.
왜 시인이 시집 제목 따라 산다는 말이 있잖아요. 나중에 자연인이 되어서 산에 들어가 살게 될까 봐 고민했는데요. (웃음) 막상 시집 제목으로 삼고 옆에 두고 보니 찌릿찌릿 전기가 오기도 하고 좋더라고요.

 

    ▶ 이 : 맞아요. 시집 제목이 중요해요. 저는 시집 제목을 『차가운 사탕들』로 지었더니 반응이 차가워서…… 『따뜻한 사탕들』로 지을 걸 그랬어요. (일동 웃음)

 

    ▶ 민 : 요즘 산이 인기잖아요. 아웃도어 시장도 넓어지고요. 그래서 좀 유명해질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반응이 없네요. (웃음) 그런데 보면 볼수록 저랑 닮은 제목인 것 같긴 해요.

 

    ▶ 이 : 민구 시인의 시에는 자연의 매개물이 많이 등장합니다. 흔히 이야기하기는 서정은 자연과의 동일성을 지향하는 움직임인데, 민구 시인의 시는 서정을 이야기함에도 불구하고 그 동일성의 지향이 자꾸 어긋나는 느낌이 듭니다. 이 틈에서 독특하고 새로운 목소리가 출현하는 것 같아요.

 

    ▶ 민 : 질문이 점점 어려워지기 시작하네요. 제 시가 기존의 서정시와 어떤 변별점을 가지고 있냐는 질문인 것 같은데요. 사실 제가 어떤 방향성을 가지고 있지는 않아요. 대신 제가 보는 사물들이 각자 방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제 시는 거기서부터 시작돼요. 가령 ‘방에서 거울이 입을 열어 말을 하기 시작한다’고 할 때 저는 거울이 거울 나름대로 할 말이 있고 그걸 따라가며 적는 역할을 할 뿐이거든요. 비현실적인 얘기 같지만 저는 사물도 생각을 한다고 봐요. 제가 생각하듯이 사물도 생각하고, 제가 말하듯이 사물도 말하는 것이라고요. 서로 동등한 눈높이에 있으면 누가 먼저 장악할 수 없으니 공평한 거죠.

 

    ▶ 이 : ‘내가 아니라 사물들이 각자 자기 방향을 갖고 있다’는 말씀이 재미있네요.

 

    ▶ 민 : 제 시 중에 「움직이는 달」 혹은 「기어가는 달」이라는 시가 있는데 그 시들도 이런 발상에서 시작됐어요. 달도 움직이고 있다. 내가 기어가듯이 달도 기어간다. 그렇게 출발한 시이고 사실 그게 다예요. 제가 사물의 속성을 일부러 끄집어내지 않고 자유롭게 흘러나오는 대로 써요. 그래야 저도 죄책감이 덜 들어요. 얘기가 너무 어려워지나요?

 

    ▶ 이 : 아닙니다. 편히 얘기하세요.

 

    ▶ 민 : 제가 말을 하다 보면 자꾸 배가 산으로 가요.

 

    ▶ 이 : 괜찮습니다. 하고 싶은 말 다 하세요.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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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너라는 나에게 보내는 연애편지

 

    ▶ 이 : 시집을 보면 ‘방(房)’ 시리즈가 시집에 비중 있게 실려 있습니다. 민구 시인의 ‘방(房)’ 시리즈는 서로 연결되면서 다른 곳을 불러오는 독특하고 재미있는 상상력이 돋보이는데, 이 시리즈는 어떤 설계를 가지고 쓰신 것인가요?

 

    ▶ 민 : 처음에는 모든 시의 제목이 다 ‘방(房)’이었는데 나중에 부제를 붙였어요. 부제를 붙이면 독자들한테 다가가기 쉽고, 시를 찾을 때도 좋지 않을까 싶어서요. 방 연작을 쓸 때 방에 있었던 적은 한 번도 없어요. 모든 연작을 밖에서 썼고요. 돌아가신 할머니가 멀리 있으니까 더 그립듯이, 거리가 벌어지면 더 깊고 간절해지잖아요. 설계하고 쓰지는 않았고, 평소에 메모를 자주 하는 편인데 버스에서나 카페에서나 메모해 둔 것을 바탕으로 썼어요.
    방에 관해 쓰는 건 어려운 일이었어요. 왜냐하면 방은 늘 나를 바라보는 대상(나를 관찰하고 있는 대상)이니까요. 방에 대해 쓰는 것은 실은 나 자신에 대해 쓰는 것이었고 그래서 괴로웠어요. 저는 살면서 제 자신을 좋아해 본 적이 없었거든요. 항상 남들 눈치만 보고 남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대답했지 제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해 본 적이 없었어요. 그걸 서른한 살에 처음으로 깨달았던 거예요.
    방 시리즈는 그렇게 시작됐어요. 내가 싫어하는 나를 정면으로 보는 작업이었고, 제 스스로에게 보내는 연애편지와 같았죠. 때론 조증 환자처럼 시시덕거리기도 하고, 때론 우울한 나를 어루만지기도 하고요. 내가 나를 만지는 시편이라고 할 수 있어요. 저에겐 무척 의미 있는 작업이었습니다. 시를 쓰지 않았다면 이런 질문도 하지 못했을 테니까요.

 

    ▶ 이 : 방 연작 중 하나를 함께 읽어 볼까요? 독자 분의 목소리로 들어 보겠습니다.

 

     

- 빛의 사과

 

 

그림 속의 사과 하나가
내 앞으로 굴러왔다
잠시 뒤 바구니를 든 여인이 나타나
사과를 달라고 부탁했다
나는 방바닥의 사과를 주워
송진 냄새가 진동하는 들판을 향해
천천히 내밀었다 그러자 사과는
손바닥에서 뛰는 심장처럼
은은하게 빛이 번져 어두운 방구석을 환하게 비추었다
나는 사과를 반으로 잘라서 삼켰다
나머지 반은 책상에 엎어 두고
그녀가 그림에서 나오기를
멀리 점으로 묘사한 굴뚝의 연기와
소리 없이 날아가는 철새들이
검은 우박처럼 방 안으로 쏟아지기를 기다렸다
그녀는 구부정하게 서 있다가
드넓은 포도농장을 가로질러
물감이 덜 마른 갈대밭으로 사라졌다
빗방울이 들이치고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반쪽 사과를 집어 들었다
추수를 마친 사내들이 술잔을 부딪치며
빈 오크통을 굴리는 소리가
짤막한 천둥과 함께 들려왔다

 

    ▶ 이 : 시인의 설명을 듣고 보니 시가 더 인상적으로 다가오네요. 그런가 하면 최근 젊은 시인들의 작품에서 ‘나’라는 주체가 어떻게 나타나는지도 흥미롭게 살펴볼 만한 부분인데요. 민구 시인의 ‘나’는 규정된 모든 것을 지우는 일에 골몰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또 다른 ‘나’와 엉키고 부딪히면서 분명하게 드러나는 ‘나’의 모습은 미지의 것으로 남겨지는데요. ‘나’라는 1인칭은 시인에게 어떤 의미를 담고 있을까요?

 

    ▶ 민 : 나라는 말은 자꾸 비껴가요. 내가 나인 것 같지만, 내가 나구나 하는 순간 나는 없어요. 내가 기대하고 원했던 모습으로는 살아지지가 않으니까요.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라는 문장도 있잖아요.
    실제로 저는 시에 ‘나’라는 말을 쓸 때 거북함을 느껴요. ‘나’라는 단어에 묶여버리는 것 같아서요. 그래서 저는 어항 속의 물고기를 풀어 주고, 양을 초원에 방목하는 심정으로 시를 써요. 때로 그로테스크하고, 말도 안 되는 장면이 돌출되더라도 나 자신을 한 마리의 짐승처럼 풀어 두고 그 짐승이 어떤 말을 하고 어떤 행동을 하는지 살펴보는 거예요. 비낌, 미끄러짐, 배반의 특성을 시에서 부드럽게 드러내고 싶었어요. 그래서 ‘나’가 많이 나오지만 나에 대한 얘기는 별로 없어요.

 

    ▶ 이 : 시 자체는 전통 서정의 리듬으로 쓰였는데 시가 자꾸만 비껴가는 건 그래서였군요. 나라는 주체가 사물을 장악하지 않고 사물 스스로 말하게 하는 것, 나라는 주체를 묶어 두지 않고 자유롭게 두는 것은 서로 통하는 이야기인 듯합니다. 어떤 산문에서는 시를 ‘짐승’에 비유하기도 했어요. 마치 맹수가 초원을 이동하듯이 시라는 짐승도 이 세계를 떠나 다른 세계를 향해 이동한다, 라는 인식이 돋보이는데요. 시인의 시론은 무엇일까요?

 

    ▶ 민 : 그 산문은 3, 4년 전에 쓴 것인데요.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어요. 저는 평생 시론은 안 가질 거예요. 시는 미꾸라지처럼 자꾸 제 손을 빠져나가요. 그 미꾸라지 한 마리가 저를 잡고 질질 끌고 다녀요. 그 짐승을 달래고 싶고 제 방에 재우고 싶은데 길들여지지가 않아요. 잡아먹혀도 좋으니 내 식구로 만들고 싶은데 자꾸 도망가요. 시가 그래요, 저에게. 모르겠어요. 홀린 것 같아요. 그렇게밖에는 이야기할 수가 없어요. 그런데 그게 시의 매력인 것 같아요.

 

    ▶ 이 : 맞아요. 저는 시가 ‘나쁜 남자’ 같아요. 갖고 싶지만 영원히 가질 수 없는 대상. 너무나 매력적이어서 그만둘 수는 없는 존재.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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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달, 공기, 동백

 

    ▶ 이 : 시집 전체에 ‘달’ 이미지가 굉장히 많습니다. 특별히 달에 집중하는 이유가 있을까요?

 

    ▶ 민 : 어릴 때 인천에 살았는데 ‘수도국산’이라는 데가 있어요. 달동네였는데, 정상에 수도국이 있어서 ‘수도국산’이라고 불렸어요. 굉장히 가난한 동네였어요. 하루는 집에 도둑이 들었는데 도둑이 훔쳐갈 게 없어서 그냥 나가는 것을 봤어요. 자다가 눈이 떠졌는데, 도둑이 선이 끊어진 비디오를 들었다가 그냥 내려놓더라고요. 무섭기보단 불쌍했어요.
    그 집 창문에서 보면 달이 이따만 했어요. 토끼도 잘 보였고요. 어려서부터 제겐 달이 친숙했어요. 어린 마음에 그게 꼭 호빵 같았거든요. 쪼개면 팥이 나올 것 같고. (웃음) 사실 우리 문학사에서 달은 남성보다는 여성, 따뜻함보다는 차가움의 상징인데 저에게는 달이 만두 같고 호빵 같은데 차가울 수가 없잖아요. (웃음)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달의 이미지가 제겐 되레 생경했어요.
제 데뷔작도 달 이야기예요. 「오늘은 달이 다 닳고」라는 시인데, 그 시도 아주 자연스럽게 나왔어요. 그 후에도 달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썼죠.

 

    ▶ 이 : 수사학이 아니라 체험에서 나오는 이미지이기 때문에 자기 목소리를 얻게 되고, 독자들에게도 진솔하게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얼마나 배고프면 달을 먹고 싶었을까요?
그런가 하면 ‘공기’에 대한 사유도 돋보입니다. 시인에게 ‘공기’는 어떤 의미인가요?

 

    ▶ 민 : ‘공기’는 무정형이잖아요. 안 보이는데 분명히 있죠. 우리가 숨을 쉬고, 음식이 부패하는 것은 다 공기 때문이잖아요. 거기 주안점을 두었어요. 어차피 안 보이니까 사람들이 틀렸다고 잘못됐다고 얘기하는 게 별 문제가 아니겠구나 싶어 마음대로 썼어요. 애착을 갖고 있는 소재 중 하나고요. 공기라는 제목으로 50편의 시를 묶고 자서에 ‘산소가 부족할 때’라고 쓰려는 생각도 가지고 있었어요. (웃음)

 

    ▶ 이 : ‘달’, ‘공기’만큼이나 ‘동백’도 자주 등장합니다. 독자 분의 육성으로 동백이라는 시를 청해 듣고 계속해서 이야기 나눠 볼까요?

 

      동백

 

 

산 중턱 절간에 구부리고 앉아 눈 덮인 마을을 내려다보는데
모기들이 떼 지어 나무에 매달려 있다
저 나무 어딘가에 마르지 않은 검은 웅덩이가 있어
입안에 가시 돋은 채 태어나는 벌레들
얼음 깨고 나와 공중을 움켜쥐고 피를 빠는지
뒤늦게 낡은 서가를 뒤적이는지
 
 
부어오른 손바닥 하나가
기어이 내 귀뺨을 한 대 올리고 간다
 
 
여기는 흰 소매 걷어 올린 산의 가파른 능선
단단한 팔뚝 어디쯤인가
그러고 보면 사찰도 풍경도 한낱 시간에 지워지는 문신이다
발아래 누그러진 바위의 맥을 짚어 본다
돌 속으로 한 손이 지워진다 누군가 내 손을 잡고 있다
 
 
나는 천천히 돌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눈 덮인 지붕 아래서 죽은 자들이 일가를 이루고 산다
뼈만 앙상한 노모를 위해 남자는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나무 웅덩이에서 계속 물을 길어온다
파리채로 모기를 잡던 여자가 밥상을 내온다
이걸 먹으라고? 기가 차서 주위를 둘러보면
 
 
벽에 문드러진 동백

 

    ▶ 이 : 이 시는 어떻게 쓰셨나요?

 

    ▶ 민 : 이 시는 잘 모르는 상태에서 쓴 시예요. ‘동백은 벌겋다. 움직인다. 어딘가로 가고 있다’ 정도만 겨우 아는 상태에서 쓰기 시작했는데, 쓰고 보니 이런 시가 되어 있더라고요. 이 시는 제가 읽으면서도 잘 모르겠는 시이고, 시집에 있는 시 중에 가장 빨리 쓴 시예요. 자유연상으로 따라가다 보니 10분도 안 걸렸어요. 쓰고도 고치지 않았고요. 이 시도 시집에 묶을 때 꼭 넣겠다고 약속한 시예요. 의리 같은 거죠. (웃음)

 

    ▶ 이 : 무슨 김보성인가요? (일동 웃음) 사실 꽃이라는 것은 죽음을 환기하는 오브제잖아요. 꽃의 핌은 곧 다가올 죽음을 예비하는 것이니까요. 저는 이 시를, 동백을 통해 죽음을 봤지만 죽음 이후에도 지속되는 삶에 대한 아이러니라는 측면에서 읽었습니다. 식물성 안에 들어 있는 동물성, 그것이 벌겋게 핀 동백의 짐승 같은 이미지와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고요. 민구 시인은 이런 식의 발상에 탁월한 재능이 있다고 생각됩니다.

 

    ▶ 민 : 감사합니다.

 

    ▶ 이 : 한편 민구 시인의 시에는 가난을 환기하는 시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직접적으로 발언하기보다는 우회적인 이미지를 통해 드러내지요. 시 안에 담긴 현실 인식을 대놓고 발언하기보다 아름다운 이미지로 환기되는 방식을 즐겨 쓰시는 것 같은데 어떤 의도가 있을까요?

 

    ▶ 민 : 최근에 들은 칭찬 중 제일 좋은 칭찬인 것 같아요. (웃음) 저도 직설적으로 와 닿게 쓰고 싶은데 잘 안 되네요. 그렇게 쓰면 흉내 내는 것 같고 제 시가 아닌 것 같아요. 사실 저는 그게 우회적으로 이야기하는 건지도 몰랐어요. 그런데 그런 시가 많더라고요. 제가 앞으로 돌파해야 할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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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 그럼 지금부터는 독자 분들의 질문을 받아 볼까요?

 

    ▶ 독자 질문 : 저는 시를 쓰는 학생인데요. 제가 쓴 시를 남에게 보이는 게 힘들어요. 제 내면을 들키는 것 같고요. 시인님은 어떤지 궁금합니다.

 

    ▶ 민 : 저도 똑같아요. 남들 앞에서 발가벗고 있는 것 같고요. 대학 때 문창과를 다녔는데 합평이라는 걸 했거든요. 제가 앞에 나와 시를 읽으면 사람들이 그 시에 대해 한 마디씩 하는 거예요. 저는 거의 발언권이 없어요. 그런데 시는 내밀한 언어이고, 비밀스러운 언어잖아요. 가정사도 노출될 때가 있고요. 그러니 그 앞에만 서면 어떻겠어요. 떨리고 답답하고 죽고 싶고 울렁거리고 탈출하고 싶고 그렇죠. 그런데 자기 자신을 인정해야 하는 것 같아요. 자기 언어니까 부끄러운 게 당연하잖아요. 자기 자신을 인정하고 그것을 갱신하고 노력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제가 드릴 수 있는 응원의 말은 이 정도인 것 같아요.

 

    ▶ 독자 질문 : 아까 제목을 잘 못 짓는다고 하셨잖아요. 그런데 그걸 돌파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하시는지, 끌어안고 갈 부분이라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 민 : 솔직히 말하면 전 간결하고 짧은 제목이 좋아요. 최근에도 긴 제목으로 시를 발표했는데 마음에 안 들더라고요. 제목 짓는 것도 재능인데, 저는 기술이 너무 없으니까 앞으로 돌파를 하긴 해야겠죠. 제가 독자여도 시집을 펼쳤는데 방, 방, 방, 공기, 공기, 공기 이러면 안 살 것 같아요. (웃음) 그래도 저를 속인다거나 제 자신에게 부끄러운 시집은 안 됐으면 좋겠어요. 의리는 지켜야죠.

 

    ▶ 이 : 돌파해야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사실은 고수하고 싶은 것 같은데요?

 

    ▶ 민 : 돌파하고 싶어요. (웃음) 시는 다 제 자식 같은데 시집으로 묶이는 순간 손을 떠나거든요. 그래서 아쉬운 점이 많아요. 다음 시집 제목은 더 좋아지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습니다.

 

    ▶ 이우성 시인 : 민구 시인이 등단하고 초기에 쓴 시들을 많이 버렸다고 하더라고요. 시집으로 묶은 시들은 거의 새로 쓴 시라고 하더라고요. 초기의 시들과 지금 시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민구 시인의 시를 보면 약간 되바라지고 엉뚱한 면이 있어요. 아까 읽은 「동백」이라는 시에서도 “이걸 먹으라고?”라는 질문이 있듯이, 실은 비딱하고 엉뚱한 게 민구 시인의 정체성이자 매력이에요. 그런데 시에서는 자기를 내보이는 것에 머뭇거린다는 느낌을 받아요. 그런 부분을 더 솔직하게 드러내도 될 것 같은데요.

 

    ▶ 민 : 맞아요. 머뭇거려요. 아직도 제 시는 팬티를 입고 있는 것 같아요. 다 벗질 못하는 거죠. (웃음) 자신감이 없고 문장에 대한 검열이 혹독해요. 비문을 거의 안 써요. 제 안에 해소하고 싶은 열망은 있는데 기질상의 문제가 있는 것 같아요. 제가 바르게 살아서. (일동 웃음) 너무 자신을 통제하고 있는 것 같아요. 시에서 확 내지르지 못해요. 그렇지만 불발탄처럼, 푹 꺼지는 느낌도 제게는 잘 맞는 것 같아요. 그래도 앞으로 계속 고민해 나가야 할 점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시는 정말 많이 버렸어요. 그중에는 좋은 평을 얻은 시도 있었어요. 한번은 제가 지금껏 쓴 시들을 바닥에 쫙 펼쳐 놓고 본 적이 있는데 100편 가까운 시 중에서 제 마음에 드는 시는 5편도 없더라고요. 솔직히 시집으로 묶은 시도 다 마음에 들진 않아요. 연작을 쓰기 이전 시와 이후 시로 나뉘는데 시집에는 뒤섞여 있어요. 걱정이 많이 되지만 그냥 서로 다른 매력이라고 생각하기로 했어요. 생크림이랑 딸기처럼 섞어 놓으면 또 잘 어울리고요. (웃음)

 

    ▶ 독자 질문 : 이렇게 인터뷰를 하니까 작가의 정신세계를 이해하게 되어 좋은 것 같아요. 민구 시인은 시를 쓰기 싫을 때 없었나요? 다 내려놓고 싶은 순간은?

 

    ▶ 민 : 많았어요. 그런데 안 내려졌어요. 그만두고 싶단 생각은 아니고 쓰기 싫다 정도였는데요. 자꾸 의리, 의리 해서 죄송한데 (웃음) 제가 최초에 생각한 시의 지점이 있어요. 타협하지 않고 안주하지 않고 끝까지 질질 끌려 다니겠다는 다짐이요. 문을 두드려도 안 열어 줄 걸 알고 있어요. 문이 열려도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요. 그렇지만 아무것도 없으니까 해볼 만하지 않나, 생각해요. 시 쓰는 게 애증이에요. 싫을 때도 있지만 버리고 싶진 않아요. 앞으로도 저를 질질 끌고 가겠죠.

 

    ▶ 이 : 이제 마지막 질문을 건네 볼까 합니다. 원래 제가 이 질문을 건너뛰려고 했는데, 민구 시인이 적어오신 답변을 슬쩍 봤는데 너무 재밌어서 해보려고 합니다. 시인이 되고 나서 달라진 점이 있나요? 삶에 어떤 변화가 있는지요?

 

    ▶ 민 : 제가 세 가지를 적어왔어요. 첫째는 사람들이 저를 시인이라고 부른다는 것이고요. 둘째는 청탁 전화가 온다는 것이고요. 셋째가 중요한데, “나 장가갈 수 있을까? 장가 못 가는 거 아닐까?” (일동 웃음)

 

    ▶ 이 : 세 번째 답변이 너무 재미있어서 질문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 해주세요.

 

    ▶ 민 : 어젯밤에 팩하고 잤어요. (일동 웃음) 태어나서 처음 하는 독자와의 만남이라, 소개팅 하러 오는 기분이었어요. 평소에 사람 만나는 걸 별로 안 좋아하는데 오늘은 무척 반가웠고요. 한 분씩 눈을 마주치고 말할 수 있어서 기뻤습니다. 앞으로 다른 자리에서 또 뵈면 반갑게 인사해 주세요. 지금보다 더 부지런히 쓰는 시인이 되겠습니다.
    그가 누설한 비밀들은 가슴 깊이 와 닿았다. “문을 두드려도 안 열어 줄 걸 알고 있어요. 문이 열려도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요. 그렇지만 아무것도 없으니까 해볼 만하지 않나, 생각해요.” 그가 누구보다 치열한 마음으로 시를 대하고 있다는 걸 증명하는 문장이 아닐까 싶었다.
    나무와 대화하더니 이젠 난독증이냐고, 5분 10분을 어떻게 5시 10분으로 보냐고 놀리기 바빴지만 나는 안다. 그의 배는 앞으로도 오랫동안 산으로 갈 것이다. 그 엉뚱함으로, 그 진지함으로 오래오래 개성적인 시를 써나갈 것이다. 그 끝엔 아무것도 없을 테니까. 그 없음의 힘으로 묵묵히 배를 저어가는 시인이 눈에 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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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장웹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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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산책과 가을의 일 박주영 오랜만에 동네 산책을 했다. 여름이 시작되고는 햇빛이 사라진 밤 산책을 하다가 그나마도 열대야 때문에 멈춘 지 오래되었다. 오늘은 해가 뜨기 전 일어났고 스탠드를 켠 책상에 앉아 소설을 썼다. 어느새 창밖이 밝아지는 걸 보다가 해가 완전히 뜨기 전에 바깥으로 나가 걷기로 했다. 산책은 어슬렁거리며 그냥 걷는 것이지만 소설가의 산책에는 생각이 없을 수 없다. 생각을 하지 않으려는 목적이었다면 달리기를 했을 것이다. 나는 산책과 걷기를 구분해서 다이어리에 기록한다. 산책이 바라보고 생각하며 이동하는 것이라면 걷기는 건강이라는 목적을 가장 염두에 둔 움직임이다. 여름이 아니라면 산책은 주로 오후나 해질 무렵에 한다. 늦게 자고 오전에만 일어나도 뿌듯한 사람이라 일어나자마자 소설을 쓰고 쉴 즈음이 대개 그 시간이기 때문이다. 산책을 하면서 내가 지금까지 쓴 것을 생각하다가 빈틈을 메울 생각이 떠오르기도 하고 다음 장면을 생각하기도 하고 이 소설이 제대로 가고 있는지 고심하기도 한다. 여름 해가 뜨기 전 오래간만에 소설을 생각하며 산책을 한다. 나는 문학 전공도 아니고 소설 쓰기를 배운 적도 없고 주변에 글 쓰는 사람도 없었다. 그래서 소설가가 된 후 소설가를 만날 기회가 생기면 알고 싶은 것들을 질문하곤 했다. 글쓰기가 잘 안 될 때는 어떻게 하느냐는 질문에 대한 2개의 대답을 기억한다. 한 분은 그냥 걷는다, 라고 답했고 한 분은 안 되어도 앉아서 써야지 어떡해, 라고 했다. 두 분 다 그때 20년 가까이 소설을 거뜬히 써온 분이었다. 나는 2개의 답을 지금껏 생각하고 있고 그게 지금의 나에게는 정답이 되었다. 하지만 정답을 안다고 정답대로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나는 자주 책상 앞에서 벗어나고 걷는 것이 아니라 누워 있는다. 그냥 진짜 누워만 있는데, 요즘은 소설 쓰는 일에 자주 지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또 한 분의 조언이 생각난다. 건강을 챙기고 운동을 해라, 그러지 않으면 장편소설을 쓸 수 없다. 여기의 조건은 ‘나이 들수록’이다. 비교적 늦은 나이에 등단했고 처음부터 장편소설을 썼던 나는 그 조언이 그때는 크게 와 닿지 않았다. 나는 이미 젊지도 않고 약해 빠졌는데 장편소설을 쓰는 데 그리 힘이 들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그 조언의 참 의미는 어떤 고비마다 왔다. 나이는 한 살씩 먹는 게 아니라 쌓여 있다가 한꺼번에 온다는 걸을 알게 되었다. 어느 날부터 손목이 아프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허리가 아프기 시작하고 이제 어깨가 아프다. 남들은 여름휴가를 가는 시기 나는 병원을 다녔다. 의사는 어깨 인대가 손상되었다고 했다. 특정 자세를 취하지 말라고 했는데 그 자세는 하필 내가 반평생을 취해 온 자세이다. 지금도 나는 그 자세이다. 자판을 치고 노트에 글을 쓰려면 취할 수밖에 없는 자세. 그리고 의사는 옆으로 눕지 말라고 했다. 그런데 어릴 때부터 나는 그렇게 누운 자세로 책을 읽었다. 너무 크고 두껍고 무거운 책만 그 자세로 읽을

  • 관리자
  • 2024-10-01
다시 서정을 위해

[에세이] 다시 서정을 위해 권상진 스무 살 무렵이었던 것 같다. 서른이 되기 전에 시인이 되겠다고 주변에 떠들고 다녔던 기억이 아슴하다. 「홀로서기」를 외웠고 「지란지교를 꿈꾸며」를 외웠다. 이생진을 읽고 백창우를 읽고 박노해를 읽었다. 잔잔하게 때로는 웅장하게 가슴을 밀고 들어오는 시편들이 심장을 가로세로로 뛰게 만들었다. 백석과 김수영과 기형도의 이름은 몰랐지만 굳이 그들이 아니어도 충만한 시간들이었다. 시집이 이천 원에서 삼천 원 정도 할 때여서 큰 부담 없이 고를 수 있었고 외출할 때 시집 한 권을 들고 밖을 나서도 아무도 이상하게 쳐다보는 이도 없었다. 오히려 뭇 여성들의 시선이 슬쩍슬쩍 내 턱선을 지나 책장에 닿는 기분을 느낄 수 있어 좋았다. 생일이나 기념일에는 으레 서점에 들러 시집을 골랐다. 『넌 가끔가다 내 생각을 하지 난 가끔가다 딴 생각을 해』(원태연),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류시화), 『친구가 화장실에 갔을 때』(신진호) 같은 시집을 골라 슬쩍 건네던 날들이 아련하다. 스물이라는, 가라앉을 것 하나 없는 맑은 감정에서 속살거리는 말들을 시인들은 대신 말해 내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 십 대는 가고 이십 대가 펼쳐지고 있었다. 고등학교 입시에 실패하고 대학을 쫓겨나 군대를 다녀오고 나니 어느새 아무데도 기댈 수 없는 성인이 되어 있었다. 오래된 가난이 불편하지는 않았지만 그때부터 가난은 나를 가만히 두지를 않았다. 공장 일을 시작했는데 처음 해보는 노동이란 게 미치도록 좋았다. 종일 몸을 쓰고 땀을 흘리는 일이 알 수 없는 쾌감을 안겨 주었고 월급이라는 보상까지 덤으로 안겨 주었다. 시를 읽고 쓰는 일만큼 일이 재미있었고 누구의 도움 없이 혼자서도 살아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더없이 좋았다. 지쳐 잠들기 전 문득 돌아본 시의 한때는 짧은 여행지의 추억처럼 아득하기만 했다. 나의 스물은 급류처럼 흘러갔고 시는 둑 너머에 있어 쉽게 손이 닿지 않았다. 하지만 일과 돈, 그리고 자립의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노동은 즐겁고 땀은 향기로웠지만 갑자기 내가 꿈꾸던 삶이 이런 것이었던가 하는 질문이 나를 툭 한 번 치고 갔다. 해지는 풍경만 봐도 맥박이 난동을 부리고 꽃과 낙엽의 표정을 살피면 왠지 모를 눈물이 맺히던 한 시절의 기억이 불현듯 피곤에 지친 등을 흔들어 깨웠다. 시인이 되겠다던 꿈을 무참히 짓밟고 나를 공장 노동자로 내몰았던 대학교 재단 이사장의 말이 떠올랐다. ‘약속은 지키면 좋은 것이고 못 지키면 어쩔 수 없는 일’이라던 그의 말. 그가 지키지 않은 약속 때문에 학교에서 쫓겨난 나는 궤도를 이탈해 버린 행성처럼 어둠 속으로 무작정 떠밀려가고 있었다. 막막한 혼돈 속으로 나를 밀어 넣었던 약속이란 단어가 다시 나를 수습하고 있었다. 시간은 이미 서른을 지나갔고 아무도 내게 왜 약속을 지키지 않느냐고 물어 보는 이는 없었지만 스스로와의 약속은 끝내 지켜주고 싶었다. 그렇게 시가 다시 내게로 왔다. 세월도 변했고 시도 변해

  • 관리자
  • 2024-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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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과거를 보는 미래 SF 곽재식 며칠 전 나는 한 행사에서 SF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소개하는 발표를 하나 맡게 되었다. 발표가 다 끝나고 질문 답변 시간이 되었는데 청중 중 한 분이 “SF라면 미래를 생각해 봐야 하는데, 왜 옛날 SF를 소개했느냐?”라고 질문했다. 그날 행사 중에는 답변을 짧게 드렸지만 이 내용은 한번 깊게 따져 볼 만한 재미난 주제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오늘은 그 이야기를 한번 해보려고 한다. 명작 SF로 자주 손꼽히는 1970년대 영화로 <>이라는 할리우드 영화가 있다. 찰턴 헤스턴이 주연을 맡아 대형 영화사에서 배급한 그야말로 정통 할리우드 영화인데 그러면서도 비참한 미래의 모습을 예상해서 보여주는 내용이다. 그 결말도 뻔한 할리우드 영화의 행복한 결말이라고 말하기는 매우 어려운 방향으로 흘러가기에 눈에 뜨이는 영화이기도 하다. 맨 마지막에 주인공이 외치는 대사는 SF 영화사에서 유명한 대사 순위를 꼽으면 상위권에 자주 오를 만큼 잘 알려져 있기도 하다.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미래는 인구가 너무나 빠르게 늘어났기 때문에 멸망해 가고 있는 세상이다. 인구가 너무나 많은 데 비해 식량과 자원은 부족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굶주리고 모든 물자가 부족해 다들 비참하게 살고 있다. 영화 제목인 “소일렌트 그린”이란 식량이 부족한 세상에서 특별히 개발해 보급 중인 신형 인공 식품을 말한다. 그러므로 <>은 19세기 맬서스의 등장 이후 수많은 사람들이 미래 인류의 멸망 시나리오라고 철석같이 밀었던, 맬서스 함정을 정통으로 다룬 영화다.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하는데,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성장한다.”라는 말은 어지간하면 한 번쯤 들어 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지구는 망한다, 그러니 사람이 많은 것은 해악이다, 라는 말을 하는 사람을 본 적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런 생각은 곧 “사람이 곧 모든 파괴의 근원이며, 사람이 없어져야 지구가 살아난다.”는 생각으로도 자주 이어지기도 한다. 재미난 사실은 이 영화에서 다루는 멸망해 가는 미래가 2022년이라는 점이다. <>은 1973년에 개봉된 영화이므로 이 영화에서 말하는 2022년이란 영화가 제작되던 1972년으로부터 50년 후를 말하는 이야기일 것이다. 그런데 이 SF 영화에서 말하는 2022년의 미래라는 시간은, 2024년을 사는 현대의 우리에게는 2년 전의 과거가 되었다. 나는 영화를 보는 과정에서 이렇게 시간의 꼬임을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이 굉장히 신비롭다. 게다가 요즘 이 영화의 내용을 보다 보면 더욱 중요한 사실도 깨달을 수 있다. 실제 2022년이 인구가 너무 많아 식량 부족으로 멸망하는 시간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우리가 겪고 있는 2020년대는 인구가 너무 많은 것이 문제가 아니라 인구 감소와 초고령화가 문제인 시대다. 이러한 현상은 한국만 겪고 있는 문제도 아니다. 한국에서 인구 문제가 워낙 극심하게 나타나

  • 관리자
  • 2024-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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