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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미술유람기⑥] 식민과 전쟁 뒤에 오는 것들

  • 작성일 2015-08-01
  • 조회수 958

 

[나의 미술 유람기⑥]

 

 


식민(植民)과 전쟁 뒤에 오는 것들

 

 

 

유종인(시인, 미술평론가)

 

 

 

 

    베트남의 중부 휴양도시 다낭(Da Nang)에 들어갔다. 다낭 항(港)은 접안 시설이 취약해 배는 항구 외곽에 머물고 통선을 타고 들어갔다. 화물과 어선이 동시에 정박하는 고적한 항구의 선착장 주변엔 갯메꽃이 바닥을 기어 다니듯 피어 있었다. 배 바닥에 물이 스며드는 통선에서 본 항구의 언덕이 마치 바다를 바라고 선 왜장녀의 가슴처럼 느껴진다. 그 가슴 양편에는 해수관음보살상과 식민 시절에 지어진 고딕 양식의 흰색 교회 건물이 눈에 띄었는데, 항구의 한쪽 나무그늘 밑엔 해신(海神)을 모신 작은 전각에서 향 연기가 희미하게 흩어졌다.
    다낭은 월남전쟁의 기억이 무색할 정도로 열대 바닷가 휴양도시의 분위기가 완연했다. 훼(후에)시(市)의 카이딘 황제릉을 찾아갔다. 간간이 원숭이가 보였다. 전생 같은 게 있다면, 불쑥불쑥 그 기억의 얼굴을 내밀었다 날쌔게 사라지는 장난처럼 엿보였다.
    나는 반가움과 놀라움에 채 정리되지도 않은 채 뭔가 말을 꺼내려 했다. 스스럼없는 마음과 몸짓이 그리고 그런 선선한 기미(機微)가 내게 머문다는 게 가만히 좋았다. 그림이나 시(詩)가 그런 자연스러운 발로였던 적이 드물어졌다. 즉물적(卽物的)으로 다가오는 것의 새뜻함이 경박한 것만은 아니었음을 느끼는 순간, 나는 처음인 이 나라가 오래전에 살았던 나라였다는 생각도 선뜻 마음에 받는다. 옜다! 네 전생의 기억 한 덩이를 받아라. 누군가 야자열매처럼 내 가슴에 던져 준다면, 나는 얼떨결에 없는 치마폭이라도 펼쳐서 받을 것 같다. 어떤 영혼의 친숙함이 드는 순간은, 선험(先驗)과 경험(經驗)이 서로 말을 트고 눈빛이 깊어지고 언어를 뛰어넘는 마음의 겨를이 생기려 한다.
    황릉으로 올라가는 계단 난간은 석조와 시멘트로 능란하게 장식한 용(龍)이 넘실거렸다. 마치 유능한 제빵사가 둥근 케이크 빵에 짤주머니의 생크림을 짜내 갖가지 문양과 형상을 데코레이션 하듯이. 시멘트를 주조로 한 저 난간의 용들은 맺힘이 없고 활달하여 어떤 모자란 기운만 보태진다면 금방이라도 난간을 박차고 오를 것만 같다.
    베트남 응우옌 왕조의 후기 시대를 보낸 카이딘 황제는 식민지배 하에 실권이 약한 꼭두각시 황제로 치부되곤 한다. 하여 대개의 식민지 황제나 왕들이 그렇듯이 실질적인 국정보다는 탐미적이고 쾌락적인 쪽에 자연 관심을 두었을 터이다. 자신의 사후 무덤을 조성하는 데 오히려 관심을 가졌던 황제의 주검은 지하 18미터에 묻혀 있다 한다. 식민지배의 문화 섞임에 의해 카이딘 황제릉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석조와 시멘트를 이용한 서양 건축의 외관 이미지와 동양 한자(漢字)문화권의 고전적 풍미가 묘하게 어우러져 있다. 친숙한 듯 낯설었고 어디 따로 기댈 데 없이 고유한데, 동아시아적인 고풍(古風)에 유럽식 건축 양식이 칼처럼 배어들어 묘한 뉘앙스를 드리웠다. 세월에 풍화된 석조와 시멘트 건축물의 빛깔은 단청을 하지 않은 사찰 대웅전만큼이나 이채로우면서도 어딘가 기괴한 맛도 감돈다. 그것은 어쩌면 제국(帝國)과 독립국이 서로 자신들의 고유한 빛깔을 숨긴 채 유보해 놓은 해괴한 점이지대나 완충지대의 서늘한 빛깔 같았다. 좋을 수도 나쁠 수도 없는 회색지대의 의뭉스러운 빛깔 같은 거 말이다.
    황제의 시신이 안치돼 있는 계성전(啓聖展)의 벽면이나 천장, 기둥 양식은 매우 화려하고 독특하다. 그 평면이나 곡면을 치장한 글씨나 형상, 그리고 문양 등은 대개 도자기와 유리 파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가이드의 말에 의하면, 저 도자기들은 그 자체로 예술적 가치나 실용을 위해 자국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그 당시 외국에서 수입해 온 것들이라 한다. 그러니까 당시에는 중국이나 일본 같은 주변국과 그보다 더 멀리 있는 나라에서 수입해 온 온전한 도자기와 색유리를 재료로 썼던 셈이다. 일부러 도자기나 색유리를 깨뜨리거나 의도에 맞게 재단해 황궁이나 황릉의 건축물 요소에 장인의 손길로 아름답게 재구성한 것이다. 그건 볼륨 있는 몸매의 채색 도자기라는 입체(立體)가 황궁의 벽면에 평면(平面)으로 새롭게 들어가 박힌 것이다. 쪽매가 된 부드러운 곡선의 도자기는 장인의 눈썰미에 의해서 새로운 벽화가 되기도 하고 장식적 문양으로 거듭나기도 한다. 혹은 기둥의 주련(柱聯) 혹은 대련(對聯) 글씨를 구성하는 소재로 벽면에 다시 짜맞춰 준다. 하나의 글씨에 몇 개의 도자기 파편이 들어가는지, 하나의 꽃과 짐승을 형상화하는 데 몇 개의 도자기가 소요되는지 일일이 가늠하기는 어렵다. 장인이 바다 건너 혹은 국경을 넘어온 생생하고 화려한 도자기를 깰 때의 심정이 사뭇 궁금해지기까지 한다. 어쩌면 서구 열강의 식민지배 속에서 그들 고유의 독자적인 전통문화를 섭렵하고 현대적으로 옹립하기가 그만큼 지난했다는 반증이 아닐까. 그런 식민시대의 자의식이 낳은 파괴적 아니 해체적 미의식이 무기력한 황릉(皇陵) 내외부를 지배했는지도 모른다. 채도(彩陶)의 도자기 그 자체도 골동인데 그걸 굳이 깨뜨려서 다른 장식이나 형상화의 재료로 삼는 발상은 놀랍다. 오늘날의 베트남은 근현대 기간 동안 여러 나라의 식민 지배와 간섭을 받았고 지정학적으로 중국이라는 대국의 변방에 처해 있는 듯 보인다. 그러나 그들 국민성은 그리 호락호락한 것만은 아니었다. 그들은 저항했다. 저항은 새로운 미술의 토대이기도 하다. 같은 한자문화권에 속하지만 중국과는 또 다른 자신만의 정체성을 견지하는 데 무던히 내공을 길렀던 게 아닌가.
    어찌 보면 카이딘 황릉뿐 아니라 민망 황제릉의 여러 장식에서도 다른 나라의 도자기나 색유리를 이용한 작업의 결과물은 곳곳에 눈에 띈다. 제국에 복속된 나라가 자신의 식민 상태를 결코 잊지 않는 방식으로서의 미술 표현이 저 ‘모자이크 미술’에서 암시적으로 드러났다 하면 너무 자의적인 생각인가. 동아시아 국가는 물론 유럽의 비싼 미술품과 재료를 지배국의 뉘앙스가 아닌 자기들만의 해체적 방식으로 재구성하는 문화적 옹립이 나에겐 예술적 자존심으로 읽힌다. 그중에 하나가 바로 채도 파편을 통한 벽면 혹은 벽화미술이 아닌가 싶다. 상대방 국가의 입장에서 보면 조금 자존심이 상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당시 정당한 교역을 통해 수입된 당대 문화생활용품에 속했을 도자기류의 예술적 활용 문제를 일방적으로 문제 삼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중국의 도자기든 일본의 도자기든 멀리 유럽 열강의 색유리든 상관없이 당시 베트남의 전신인 안남국(安南國) 사람들의 속내엔 끝끝내 식민의 그늘에만 처할 수 없는 정신이 엿보였다. 그것은 자신을 잊지 않으려는 안간힘이기도 하다. 나의 것을 내가 믿고 사랑해 줘야지 홀대할 수 없다는 근원적인 자기애(自己愛)의 기운이 저 도편(陶片)과 색유리 쪽매 속에 갈마들어 있다. 그 온전한 도자기와 유리들을 또 다른 제3지대의 미술로 탈바꿈시킨 식민지 월남 예술 장인들의 손끝과 눈매와 얼굴이 언뜻 보이는 듯하다. 순수한 저항은 순정한 사랑과도 맞닿아 있다. 내 본색(本色)은 그래서 내 것으로 아름답고 돌올하고 낙락하다. 서로 어울리지 않은 것처럼 두동지고 어긋한 파편이나 쪽매들이 하나의 사슴과 한 구절의 글자를 모아낼 때, 저들이 보여주는 것은 파괴나 단순한 해체가 아니라 지극한 마음의 옹립이었구나 싶다. 한 나라의 정치권력은 제국의 손에 쥐락펴락 휩쓸렸어도 월남의 뿌리 깊은 예술적 속내만은 그리 호락호락 내주지 않았던 모양이다. 받아들이되 다 받아들이지 않고 저들 자신의 알심만은 지키려 했다. 좀 상황은 다르지만, 나는 파락호 양반이 제 권세만 믿고 그림을 강매시키려 할 때 호생관(毫生館) 최북(崔北)이 했던 기행(奇行)을 떠올렸다. 변방국 월남의 뿌리 깊은 자긍심엔 그들 자신을 전혀 변방으로 여기지 않는 자애(自愛)가 노란빛이 감도는 우윳빛 화스 꽃처럼 사철 피어 있다. 순정한 선량(善良)함이 너나들이하는 그들이다. 이건 윽박지른다고 쉬 없어질 수 없는 천분(天分)이다. 제국은 아시아 변방의 약소국을 건드렸지만 그들의 손이 탄 것은 단순한 외물(外物) 이상은 아니었다. 그들이 건드린 것은 제국의 이기심과 탐욕 그 자신일 뿐이었다. 그러니 사랑 또한 변방일 리가 없다. 범박하게 말해 보면, 오지랖 넓고 웅숭깊은 사랑에 들지 못하는 모든 허세와 편벽한 분별심이 넘치는 중심이 변방일 따름일 게다.
    전쟁은 단순한 파괴와 파탄만으로 끝나지만 웅숭깊은 예술은 그 파괴와 해체를 과정으로만 삼을 따름이다. 당대 사회주의 국가이념을 넘어선 원초적인 베트남인들의 가슴 속에 드리운 것은, 그 어떤 부당한 외세에도 지지 않는 마음일 텐데 그것은 바로 스스로에 대한 선량한 믿음, 그런 사랑인 것이다. 개인이든 국가든 그 자연에 깃든 천분대로 살려는 지극한 의지를 나는 다시 최북에 대한 시 한 편에서 엿본다..

 

순 쌍놈 이름 갖고 싶소
北자 이름 찢어발겨 七七이가 된
최칠칠 최북

 

꽃과 짐승과 새와 산과 물을 잘 그렸네
비리비리한 덤불 메추라기들 꼬락서니
그저 좋아
더더욱 잘 그렸네
최산수 최메추라기 최북

 

언젠가 불쑥
멀쩡한 두 눈이 오히려 죄가 된다오
한 짝 눈 푹 찔러 멀게 하곤
개눈 박은 최북
미천하고 깨끗하기 이를 데 없어라
그 개눈, 마침내

 

바다 속에서 막 뛰쳐나온
괴상망측한 바위 하나
지게작대기로 그린 듯
굵게 굵게 그렸소
까짓 거 팔아 봐야
저녁 한 끼 밥거리도 안 될 텐데

 

오, 아무도 이길 수 없고
아무나 다 이길 수 있는
최북 최칠칠이

 

- 윤한로,「기암도(奇巖圖)」 전문

 

    가난하다고 하여 자본주의적 관점의 국력이 열세라고 하여 제국 열강이 침탈했는지 몰라도 그들 베트남은 아니 베트남의 민심(民心)은 쉽게 무너지고 오염되지만은 않았다. 그들의 예술적 감수성엔 그 어떤 선진 열강도 쉬 넘볼 수 없는 사랑의 자연(自然)이 여실하고 늡늡했다. 환쟁이 최북이 자기 눈을 찔러 가며 자기의 줏대와 역량을 지켜내는 힘은 단순한 기벽(奇癖)이 아니라,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존재로서의 자신을 사랑해서다. 나라[國]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그러니 식민지배는 언젠가 종식되기 마련이다. 자기 민족과 나라의 터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자존은 그 어떤 책략으로도 쉬 꺾이지 않는다. 봐라, 좋아하니까, 좋아하는 것을 버리지 않고 나머지 여줄가리들만 버리듯 침략자들에게 내주니까, 사랑이 예술이 남는다, 라고 말해야 되지 않을까. 제국의 식민과 열강의 침탈과 전쟁이 지나간 베트남의 유적과 미술들은 푹푹 찌는 더위에도 그늘 한켠을 빌려 서늘하게 말하는 듯하다.
    자기 것을 귀히 여기는 마음은 허투루 남의 것을 박대하지 않는다. 다만 자기 것인 것에 갇히지 않는다면 식민의 그늘이든 천민 자본의 그늘 아래서든 무엇이 그리 크게 문제가 될까. 명나라 말의 화가 동기창(董其昌)의 일설(一說)은 의미심장한 그늘을 지닌다.

 

  人須自具法眼 勿隨人耳食也
  (사람들은 스스로 자기 안목을 가져야 한다. 남을 따라서 듣는 것만으로 맛보아서는
안 된다.)

 

- 동기창, 「畵眼」중에서

 

    다낭시의 중앙박물관엔 눈에 익은 사진 한 장이 전시돼 있다. 벌거벗은 아이가 폭탄의 화염을 피해 울부짖으며 맨발로 달려오는 사진 한 장,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나도 미처 엉겁결에 아이를 끌어안고 뒤미처 불구덩이 반대로 내달렸을 것이다.
    이 사진은 전쟁의 참상을 적나라하게 알린 덕에 퓰리처상을 받은 것으로 유명하다. 이 유명은 전쟁이, 전쟁을 지어낸 이데올로기의 집단이 일구어낸 없어도 좋을 유명세에 불과하다. 그런 처참한 전쟁이 있은 뒤에 남는 찌꺼기들, 커다란 포탄과 총알들, 철모들, 수류탄, 부비트랩, 야포(野砲)며 박격포 소총들……. 당시 월남전에서 사용했던 무기류들이 다양하게 재탕처럼 전시돼 있다. 그런데 그런 전쟁의 철지난 무기들 한켠엔 하나의 미술품이 있다. 찢겨진 포탄과 크고 작은 탄피들, 뇌관이 제거된 녹슨 불발탄들을 하나로 연결해 멋진 꽃나무 같은 형상을 만들었다. 그건 사람 같기도 했고 사랑하는 연인 같기도 했다. 파괴의 화염이 지나간 자리에 그 파괴의 잔재들로 만든 저 박물관의 붉은 철골은, 사랑의 화신(化身)으로 찢겨진 파열음의 직선을 부드럽게 아물리고 있다. 사랑은 물질의 용도를 다시 바꾼다. 참혹한 전장(戰場)이 소박한 정토(淨土)가 되는 건 시간문제다, 아니 마음의 겨를이다. 그렇게 무더운 전시관을 둘러보다 아열대의 크고 화려한 나비 한 마리가 진열장 다리에 붙어 있는 걸 보았다. 너는 어디서 왔느냐. 나는 묻고 나비는 묵묵하다. 어디서 왔느냐는 말은 쉬운 질문이지만 깊은 질문이기도 하다. 순간순간 덧난 곳을 들여다보듯 미술은 세상 도처의 상처에 바르는 영원(영혼)의 눈빛이 담긴 연고(軟膏) 같다는 생각이다. 그럴 수만 있다면 연고는 처음부터 우리가 모든 자연으로부터 가져온 심성들이 아닌가. 그걸 깨워 품어내는 사랑이 또한 자연(自然)이 아닌가. (끝)

 

 

작가소개 / 유종인(시인, 미술평론가)

1996년 〈문예중앙〉 신인상으로 「화문석」 외 9편이 당선.2002년 〈농민신문〉 신춘문예 시조 부문, 200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조부문 당선. 시집으로 『아껴 먹는 슬픔』(2001), 『교우록』(2005), 『수수밭 전별기』(2007)이 있고, 산문집으로 『염전』(2007), 『산책』(2008)이 있다.

 

   《문장웹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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