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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개인터뷰_박솔뫼 작가편] 나는 왜 중심 없는 세상을 꿈꾸는가

  • 작성일 2015-06-13
  • 조회수 6,160

 

연속기획 공개인터뷰 _ 나는 왜?(제12회)

 

 

나는 왜 중심 없는 세상을 꿈꾸는가?

- 소설가 박솔뫼 편

 

 

정리 : 안희연(시인)

 

 

 

    어린 장금이의 대사를 기억하시나요? “홍시 맛이 나서 홍시 맛이 난다 하였는데 어찌 생각했느냐 하시면 그냥 홍시 맛이 나서 홍시라 생각한 것이온데…….” 그냥 그래서 그렇다는 것인데 계속해서 ‘왜’냐고 묻는 어른들이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정확하게, 그럴싸하게 답하라는 주문. 그런 어른들에게 답하기란 여간 곤란한 일이 아니지요.
    그런 우리의 마음을 대변해 주는 별종 소설가가 있습니다. “나는 피곤하기만 하다. 그런데 피곤하기만 한 것은 자꾸만 잠을 자게 하니까 뭐 좋다. 그러니까 지금처럼 으음 앞으로 뭐든 열심히 안 해야지. 아 잠만 열심히 자야지 열심히 안 해 아무것도. 지금까지 열심히 한 적도 없지만 앞으로도 안 한다. 안 해 절대 안 해.”(「안 해」 부분) 뭐라도 해야 한다고, 안 하는 것은 무능하고 실패한 것이라고 강요당하는 세계에서 안 한다고 으름장을 놓는 소설이라니, 아니 이런 소설가가 있단 말이야?
    그렇습니다. 여기, 있습니다. 오늘 모신 박솔뫼 소설가가 바로 그분이지요. 혹시 당신은 아무것도 안 하고 있지만, 더욱 격렬하게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사람인가요? 그럼 이리로 오세요. 이리 와서 박솔뫼 소설가의 이야기를 들어 보세요. 우리 함께 아무것도 안 합시다. 안 하는 공동체를 이룹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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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르겠네요, 모르겠어요.

 

    ▶ 오창은(이하 오) : 문장 웹진》의 소규모 독자 모임 [나는 왜] 시간입니다. [나는 왜] 행사는 작가에게 ‘왜’라는 질문을 던짐으로써 그의 문학세계를 조망해 보는 시간인데요. 오늘의 초대 손님으로는 요즘 가장 핫한 젊은 작가 박솔뫼 씨를 모셨습니다. 오늘 제가 박솔뫼 작가의 소설세계에 던지는 질문은 ‘나는 왜 중심 없는 세상을 꿈꾸는가?’입니다. 자신의 소설세계에 적합한 질문이라고 생각하시나요?

 

    ▶ 박솔뫼(이하 박) : (오랜 침묵 후)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일동 웃음)

 

    ▶ 오 : 작가랑 독자의 생각이 어긋나면 좀 어떤가요. 예전에 한 인터뷰에서 “작가와 독자는 각자 서로의 세계에서 쓰고, 읽는 것이 아니냐”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는 것으로 기억합니다. 아무쪼록 독자 분들께 간단한 인사말씀 부탁드려요.

 

    ▶ 박 :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 오 : 박솔뫼 작가는 2009년 제1회 《자음과모음》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하셨습니다. 스물다섯 살에 등단을 하신 건데요. 등단 즈음 하던 일을 그만두고 쉬고 있으셨던 것으로 압니다. 당시 상황이 어떠했는지요? 자신의 글쓰기에 어떤 간절함과 욕망이 있으셨는지 궁금합니다.

 

    ▶ 박 : 제가 오늘 여기 오면서 질문지를 미리 읽어 봤는데 질문이 너무 어렵더라고요. 제가 할 수 있는 말이 없어요. 생각하시는 간절함이 무엇인지도 잘 모르겠고요. 아무래도 이런 자리에서는 질문을 하는 사람에게 힘이 있을 수밖에 없으니, 저도 질문자에게 중간 중간 질문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왔습니다. (일동 웃음) 어떤 질문을 받고 또 이렇다 저렇다 이야기를 하는 것은 말이 말을 만드는 과정인 것 같아요. 말을 하다 보면 제가 의도치 않은 이야기를 하게 되기도 하고요. 그래서 말을 아끼게 되는데, 아무튼 등단작이었던 『을』은 스물세 살 때쯤 썼던 소설이에요. 책이 나오기 2, 3년 전에 쓴 소설인데요. 쓴 시기와 책이 나온 시기가 다르다 보니 소설을 쓸 때의 이야기를 하려면 아주 많이 되돌아가야 하는 기분이 들어요. 복기하다 보면 진짜 그랬나, 싶고요. 원래는 숲에서 사라진 사람에 대해 쓰고 싶었는데 막상 완성된 원고를 보니 숲에서 사라진 얘기는 10프로도 안 되었고요. 애초의 다짐과는 다른 소설이 됐어요. 그렇지만 소설에서 공간을 만드는 것이 좋았고, 재밌게 작업했던 소설이에요.

 

    ▶ 오 : 장편을 완성하는 재미가 작업을 계속하게 하는 힘이었군요. 아무래도 첫 책이다 보니 각별하셨을 것 같습니다. 첫 책이 지닌 애틋함이 있잖아요. 내 이름으로 된 책을 가지고 싶다는 열망도 있었을 테고, 나라는 인간의 존재 증명이라는 생각도 들고요. 제 경우에는 그랬는데, 박솔뫼 작가는 어떠셨나요? 등단 당시의 상황이나 마음의 상태에 대해서는 답변을 안 해주신 것 같아요.

 

    ▶ 박 : 음, 저는 습작이라는 말이 싫었어요. 지금도 싫어하는데, 등단 전에 쓴 건 습작이고 등단 후에 쓴 건 아닌가요? 저는 제 작품이 습작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고 제가 쓴 소설들이 재미있다고 생각했어요. 물론 등단을 거쳐야 이런저런 기회가 생기는 게 사실이고, 제도를 통과해야 한다는 스트레스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그것에 얽매이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당시 적은 돈이지만 돈도 벌고 있었고, 일하면서 좋은 친구들도 많이 만났고, 운동하고 영화 보고 산책하면서 시간을 보냈던 것 같아요. 그런 시간이 좋았어요. 계속 데뷔를 못 했다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겠지만 그래도 나름 즐겁게 지내지 않았을까요.

 

    ▶ 오 : 『을』이라는 소설에 대해 이야기를 해볼까요? 이 소설은 공간(호텔)이 주인공인 소설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가 여행을 떠나는 이유는 사람들 속으로 사라지고 싶은 욕망, 익명이 되고 싶은 욕망 때문이기도 할 텐데요. 인물이 아닌 공간을 중심에 놓고, 다시 인물의 내면으로 돌아오는 이러한 서사는 어떻게 출발한 것인가요? 기획된 것인가요, 아니면 자연스럽게 쓰인 것인가요?

 

    ▶ 박 : 반반이었던 것 같아요. 그렇게 안 되는 경우도 물론 있지만, 대체로 큰 얼개를 짜놓고 시작하면 그 후엔 흘러가는 대로 쓰는 편이에요.

 

    ▶ 오 : 공간도 마찬가지인가요? 실제 경험한 공간인가요?

 

    ▶ 박 : 직접 본 것도 있고 하다 보니 그렇게 된 것도 있어요. 친구가 외국(미국)에 살 때 갔던 집과 한국에 살 때의 집이 뒤섞인 것 같습니다.

 

    ▶ 오 : 『을』을 읽으면 소설의 서사가 남는 것이 아니라 인물의 내면이 영상처럼 가슴에 새겨집니다. 을, 민주, 씨안, 프래니, 주이의 어긋나는 관계는 사람들 사이의 관계의 충족 불가능성에 대해 생각하게 하지요. 작가(소설의 화자)는 작중 인물도 되었다가 관찰자도 되잖아요. 이러한 방식을 통해 작가 자신은 어떤 경험을 하게 되나요?

 

    ▶ 박 : 넘나드는가는 잘 모르겠고, 글을 쓸 땐 그냥 뭘 더 쓰면 좋을까 하는 생각만 해요. 별로 구체적인 대답은 아니지만, 그다음에는 무얼 하지, 더 하고 싶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쓰는 것 같아요.

 

    ▶ 오 : 작중 인물들의 어긋나는 관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 박 : 아무 문제의식이 없어요. (일동 웃음) 이런 얘기도 잘 모르겠는 게, 소설 속에서 인물들의 관계가 별로 안 드러나는 것 같은데요. 소설 속에서 관계에 대해서는 그리 중요하게 다루지 않은 것 같은데…….

 

    ▶ 오 : 그렇군요. 저는 이 소설의 내러티브가 관계의 충족 불가능성을 다루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개성적인 인물들의 충돌보다 박솔뫼 작가가 인간관계를 다루는 방식, 즉 내면이 가시화되는 방식이 더 효과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웃음) 그런가 하면 『그럼 무얼 부르지』도 독특한 개성이 드러나는, 자주 언급되는 소설집이지요.

 

    ▶ 박 : 아무래도 첫 단편집이라서 이야기를 많이 하시는 것 같아요.

 

    ▶ 오 : 저는 『그럼 무얼 부르지』에 수록된 단편들이 중심을 그리 욕망하지 않는, 권력이라든가 화려한 삶에서 벗어난 이야기들로 읽었습니다. ‘중심으로부터 벗어난 가장자리의 서사’를 통해 질서의 세계를 가로지르는 듯합니다. 마치 ‘세상에 중심은 없다’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계신 것처럼 보이는데, 아마도 이것이 박솔뫼의 작가적 개성이자 세계관이 아닐까요? 작가님 생각은 어떠신가요?

 

    ▶ 박 : 질문을 듣고 대답을 하면, 왠지 그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돼요. 저는 그냥 열심히 공부하고 열심히 살고 싶은 사람인데요. 그냥 저는 먼 곳을 보고 계속하고 있는데, 그 먼 곳이 평론가님께서 말씀하신 그것인지는 모르겠는데…… 모르겠네요. 모르겠어요. 뭐라고 얘기하면 좋을지 모르겠어요. (일동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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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뭔가 이상한 데가 있는

 

    ▶ 오 : 제가 너무 딱딱한 질문을 던지나 봐요. 독자 분들의 질문을 좀 받아 볼까요?

 

    ▶ 독자 질문 : 박솔뫼 작가님은 소설을 쓸 때 궁극적으로 뭘 지향하시나요? (일동 웃음)

 

    ▶ 박 : 이렇게 큰 질문이 있으면 그에 근접한 대답을 드려야 하는데…… 글쎄요, 평소에 생각하는 주제의식이나 가치관 그런 게 있긴 분명히 있는데 이게 말로 하다 보면 분명하지가 않아요. 질문에 비해 작은 대답인 것 같기는 한데요. 저는 글을 쓸 때, 제가 훌륭하다고 멋있다고 생각하는 글들과의 긴장감을 많이 생각해요. 제가 좋아하는 작가들이 무엇을 썼는가를 생각하고 그것들과 긴장감을 갖는다는 생각으로 써요. 물론 제 소설에 내려지는 평가나 얘기들을 신경 안 쓰는 건 아닌데 그것이 별로 중요하다는 생각은 안 해요.

 

    ▶ 독자 질문 : 좋아하는 영화나 감독이 궁금합니다.

 

    ▶ 박 : 가장 많이 본 영화는 웨스 앤더슨(Wes Anderson) 영화인 것 같아요. 많이 돌려 봤어요. 제자신 안에 있는, 감출 수 없는 어린이 같은 면이 잘 드러나는 것 같아요. 감독으로 좋아하는지는 모르겠고 그때그때 이 영화 좋았지 하는 생각을 했고요. 작년에는 왕빙 영화가 좋았어요. 너무 길어서 힘들었지만 뭔가 이상한 데가 있었어요. 「기생수」도 재밌게 봤어요. 그리고…… 음…… 최근에는 영화를 별로 안 본 것 같아요. 「매드 맥스」는 봐야 하는데 못 보고 있네요. 그런데 저는 극장에 가는 걸 좋아하는 건지 영화 보는 걸 좋아하는 건지 잘 모르겠어요. 극장 가서 잘 자거든요. 극장에 있을 때 편안함을 느끼는 것 같아요.

 

    ▶ 오 : 영화 이야기도 하셨지만, 소설에 음악 얘기도 많이 나옵니다. 「도시의 시간」에서는 ‘제니 준 스미스’의 음악과 관련해 다음과 같은 구절도 나오지요. “준의 음악은 흐르는 물의 느낌으로 천천히 다가왔다. 멀리서 파란 물이 되어 내 몸 위를 걸어 다녔다.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내 몸 위를 걸었는데, 걸으면 걸을수록 파란 물은 커졌다.” 비유컨대, 박솔뫼 작가의 소설은 세계를 배회하며 리듬을 타는 소설 같은 느낌을 자아냅니다. 소설과 음악은 어떤 관계가 있나요?

 

    ▶ 박 : 최근 발표하는 소설에는 음악에 관한 얘기가 별로 없어요. 음악 얘기는 쓰기가 까다로운 것 같아요. 굳이 그것을 연상시킬 의도가 있는지, 그걸 잘 판단하고 있는지 의심스럽고, 시간이 지나면 촌스러워지는 것을 피하기도 어렵고요. 그래서 요새 음악 이야기를 안 쓰는 건지 아니면 지금껏 많이 했기 때문에 안 쓰는 건지는 모르겠네요. 음악에 대한 건 그 정도의 생각이에요. 음악에 대해 쓰는 것에 확신이 없어요. 도리어 저는 제 소설에 먹는(음식) 얘기가 너무 많이 나온다는 생각이 들어서 부끄러울 때가 많아요. 내가 정말 먹는 걸 좋아하는구나, 하면서 퇴고할 때 지우기도 하고요. (웃음)

 

    ▶ 오 : 어떤 음악 좋아하시나요?

 

    ▶ 박 : 요즘은 음악을 잘 안 듣는데, 대체로 포크 음악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 오 : 음악은 문체와도 연관이 있습니다. 박솔뫼 작가의 문체는 문장의 반복(변주)을 통한 리듬의 형성, 어휘나 이미지의 연결을 통한 리듬의 형성이 두드러지는데요. 실제로 「우리는 매일 오후에」는 2014년 4월에 산울림 소극장에서 ‘2014년 단편소설 입체 낭독극장’으로 공연된 적도 있습니다. 굵직한 서사를 좋아하는 독자들은 적응하기 어렵지만, 리듬을 타고 읽는 소설을 좋아하는 작가들은 박솔뫼 작가의 소설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 박 : 제 말투랑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소설을 쓸 때, 문장을 반복해서 읽으면서 그 안에서 자연스러운 리듬을 찾으려고 해요.

 

    ▶ 오 : 소설에 단문이 많아요. 의식하고 쓰시는 건가요?

 

    ▶ 박 : 복문을 못 써서 그런 것 같아요. 그건 그냥, 반드시 그렇게 해야겠다는 식은 아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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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고 싶은 것을 계속하고 싶어요.

 

    ▶ 오 : 한편 박솔뫼 작가의 작가론은 그리 많지 않은데, 그중에서도 김홍중 평론가의 논의가 인상적이었습니다. 김홍중 씨는 ‘탈존주의’라는 표현을 썼더군요. ‘탈존주의’는 ‘생존주의’에 반하는 표현으로, 오늘날 대부분의 청년들이 스펙을 강요당하며 생존 경쟁에 내몰린 데 반해 박솔뫼의 소설(과 인물들)은 이 시대를 탈주해 버리는 방식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청년 세대의 무기력을 잘 포착하는 작가’라는 평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 박 : 저는 제 론이 생각보다 너무 많다고 생각하는데요. 가끔 문학잡지에서 비평을 보면 정말 고생하신다는 생각을 합니다. (웃음) 데뷔한 지 5년 정도밖에 안 되었는데 너무 많은 게 아닐까요? 김홍중 평론가께서 그 글에서 ‘집중해서 미문을 만들지도 않고, 아주 의미 있는 문장이 있는 것도 아니다’라는 이야기를 해주셨는데 그 부분을 읽으며 맞네, 그렇지, 했던 것 같아요.
    그런 이야기들을 포함해서 소설에 내려지는 평가들은 일리 있고,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딱 거기까지예요. 그렇지만 저는 그걸 증명할 필요도 없고 거기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는 것 같아요. 보여주겠다는 의도가 없어도 보여지는 위치에 있으니까요.
    저는 제가 해야 하는 것을 계속해야 한다는 생각만 하고 있어요. 어딘가를 바라보는 일을 계속해야겠다는 생각이요. 공을 던지는 일, 공이 유리창을 깨는 일, 그렇게 깨고 나오는 힘. 그런 힘을 가진 것들을 하려고 하고, 어떤 식으로 살아야 하는지 지금 여기가 어떤 곳인지에 대해서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런 질문에 대해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대답하는지 잘 모르겠네요.

 

    ▶ 오 : 시대적인 문제에 대해서도 다루고 계시잖아요. 5·18이라든가 원전이라든가, 불행한 세계에 대한 응시, 그런 불안의식을 간접적으로 다루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문학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을지라도, 글을 쓰는 작가로서의 책임감을 느껴서인가요?

 

    ▶ 박 : 이 질문은 시작부터 힘이 빠진 질문 같아요. 이미 체념하고 있는 상태에서, 뭔가 멋있는 말을 요구받는 느낌이 들어요. ‘문학이 할 수 있는 일이 없을지라도……’의 그 다음 말을 요구받는 느낌이랄까요. 물론 힘이 나지는 않겠죠. 그런 문제들을 소설에서 어떤 식으로 드러내는지가 중요하겠지만 그런 걸 드러내고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할 말은 소설에서 다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 오 : 제가 준비한 마지막 질문입니다. 등단하고 6년 사이 네 권의 책을 낼 정도로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하셨습니다. 박솔뫼 작가는 개성적인 스타일을 가진 작가지만, 스타일이 강할수록 그 스타일에 갇힐 위험 또한 존재합니다. 장점이자 과제이기도 할 텐데요. 현재 작가로서 고민하는 것들, 그리고 향후 작가로서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 박 : 저는 너무 조금 했는데, 제가 60년을 한 것도 아닌데, 스타일에 갇힐 수 있다는 말은 글쎄요. 웃기는 얘기라고 생각합니다. 뭘 얼마나 했다고 그런 이야기를 할까? 그런 생각이 들고요. 그것이 장점이자 과제라는 말도 그런가? 그런가 보다 싶네요. 지금 제 작품이 어떤 문체다 어떤 스타일이다 이야기하는 것을 인지하고는 있지만 그래서 앞으로 어떤 식으로 해야겠다는 대답이 꼭 있어야 하나 싶네요. 대답하고 싶지 않아요.
저는 그저 조용히, 하고 싶은 것을 계속하고 싶어요. 좋은 것들을 많이 읽고 자극받으면서요.

 

    ▶ 오 : 구체적인 계획은 없나요?

 

    ▶ 박 : 정해진 건 없어요. 장편을 하나 더 써야겠다는 생각은 하고 있고요. 잘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은 들지만 안 해본 것도 해보고 싶어요. 이를테면 탐정 나오는 추리소설이요. 그리고 희곡도 써보고 싶어요. 그런데 이건 정말 막연한 얘기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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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멋있는 것을, 어떤 식으로든 힘이 있는 것을

 

    ▶오 : 지금부터는 독자 여러분들이 자유롭게 질문하시는 시간입니다.

 

    ▶ 독자 질문 : 최근 읽은 책 중에 좋았던 것이 궁금합니다.

 

    ▶ 박 : 최근에 읽은 소설 중에는 문학동네 명작선에 포함된 사샤 소콜로프의 『바보들을 위한 학교』와 아베 고보의 『불타버린 지도』가 정말 좋았어요. 두 소설 다 흉내 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소설이었어요. 아마 앞으로 어떤 식으로는 베껴 쓰고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정말 좋았어요.

 

    ▶ 독자 질문 : 소설을 쓸 때 작가님은 내가 쓰는 것을 알고 있다고 확신하고 쓰시나요? 아니면 쓰면서 알아 가나요?

 

    ▶ 박 : 기본적으로 저는 등장하는 사람의 무엇을 다 알고 쓴다기보다는 그 사람의 장소가 어떠한가를 많이 생각해요. 그 장소에서 그 사람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생각하면서 소설을 쓰는 편이에요. 다 알고 쓰는 것 같지는 않고요.

 

    ▶ 독자 질문 : 저는 박솔뫼 작가의 광팬입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박솔뫼 작가의 소설은 평론가의 해설을 부추기는 소설인 것 같아요. 왜냐하면 정형화되고 도식적인 구성이 아니라 흐르듯이 흐르는 소설이니까요. 작가는 그렇게 쓰지 않았는데 평단에서는 계속 해석을 요구해서, 작가가 스트레스 받지 않을까 하는 독자로서의 오지랖이 좀 있어요. 특히나 『백 행을 쓰고 싶다』는 제가 무척 힘들었던 시절에 한 페이지씩 아껴 읽으며 위로받은 소설이에요. 저는 박솔뫼 작가의 소설이 20대 독자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킨다고 생각해요. 허무를 강요받는 시대에서 조금이라도 낭만을 가지고 살아가려는 특별한 개인들이 있고, 그게 나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위안을 받게 되거든요. 작가님은 본인의 텍스트가 사람들에게 무엇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자신의 작품이 지닌 가치, 효용성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 박 : 『백 행을 쓰고 싶다』는 제 소설 가운데서도 특히 독자가 별로 없는 소설이에요. 그렇지만 제 개인적으로는 스트레스를 많이 받던 시점에 쓴 소설이라 각별함이 있어요. 이 소설을 쓰고 뭔가 더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갖게 됐거든요. 쓰고 고치는 동안 어떤 지점을 넘을 수 있게 된 소설이었어요. 제 소설 중에 한 편을 꼽으라면 이 소설을 꼽고요. 몇 명 읽지도 않은 소설을 이야기해 주셔서 무척 반갑네요.
    이 소설이 6년 전에 쓴 소설이니까 기억을 한참 더듬어 가야 하는데, 이 소설을 쓸 때는 분명한 의식이 있었던 것 같아요. 뭔가를 던지는 느낌으로 썼는데 발표 기회를 좀처럼 얻지 못했고 그래서 피난 보따리처럼 여기저기 흐르다 나오게 된 책이고요. 소설을 쓸 때와 지금은 시간차가 있어서 어떤 질문이 와도 그 대답은 다소 만들어지는 것 같아요. 저는 세계관이라든가 글에 대해서 부연하는 것이 조금 불편해요. 소설에서 다 얘기하는데 뭘 더 얘기해야 하나. 말이 안 되고 이상하다는 생각이 늘 들어요. 그게 꼭 소설에서 잘 안 드러나더라도 ‘세상, 세계, 지금’과 끊임없이 긴장감을 가지면서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쓰겠다는 의지는 굉장히 강하고 잘하고 싶어요. 생각처럼 잘 되지 않더라도.

 

    ▶ 독자 질문 : 글을 쓰실 때 멋있는 것을 글에 담으려 하신다고 하셨는데요. 사람마다 ‘멋지다’는 말의 기준이 다른데, 어떤 게 멋진 것인지 궁금합니다.

 

    ▶ 박 : 멋있다는 말에 대해 이야기하다 보면 애초의 생각과는 다른 말의 회오리에 빠지게 되니까, 구체적인 작가를 말씀드리는 게 좋을 것 같네요. 로베르토 볼라뇨는 늘 멋있다고 생각하고요. 다카하시 겐이치로도 좋아합니다. 미즈키 시게루의 만화를 재밌게 봤어요. 레이몽 루셀의『로쿠스 솔루스』라는 책도 정말 좋았고, 배수아 작가님도 멋있다고 생각하고 박상순 시도 좋아합니다. 저는 어떤 식으로든 힘이 있는 사람이 좋은 것 같아요. 어깨가 있고, 팔이 두꺼운 게 작품에서 드러날 때 멋있다는 생각이 들고 힘을 얻어요.

 

    ▶ 독자 질문 : 프로필을 보니 예술경영과를 나오셨는데, 처음 어떻게 글을 쓰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 박 : 읽는 걸 좋아했어요. 그래서 쓰게 됐고, 제가 다닌 학교에서 다른 과 수업 듣기가 좋았거든요. 극작과나 소설창작 수업을 수강하면서 직접 써봤는데 쓰는 일이 재밌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계속 써보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 독자 질문 : 학교 다니실 때 김영하 소설가님의 수업을 들으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영향을 많이 받았나요?

 

    ▶ 박 : 김영하 작가님 수업은 정말 재밌었어요. 그 수업이 아니었더라도 글을 쓰기야 했겠지만 지금보다 조금 늦어졌을 거라는 생각은 들고요. 예술 관련 학과를 다니면 평가받는 것에 익숙해지는데 그게 꼭 좋은 건지는 모르겠어요. 학생들이 크게 칭찬받을 일이 없고, 칭찬을 들어도 그게 왜 칭찬인지 모를 때도 많고요. 그런데 기본적으로 김영하 선생님은 칭찬을 많이 해주시는 선생님이셨어요. 수업 분위기가 매우 좋았고요. 종이접기 하러 유치원에 가는 것처럼, 얼른 또 가고 싶은 순수한 즐거움이 있었어요. 선생님 자체도 명쾌하고 산뜻한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았고요.
    함께 수업을 듣는 학생들을 통해서도 많이 배웠어요. 당시 제가 들은 강의가 타 전공자들의 글쓰기 수업이었고 영화과 학생이 많았거든요. 그 학생들이 쓴 글이 아직도 생각나요. 연락하고 지내는 친구도 많고요.

 

    ▶ 독자 질문 : 작가님 별명은 무엇인가요?

 

    ▶ 박 : 생각보다 귀여운데요. (웃음) 제 이름을 타자로 칠 때 ‘소로미’라는 오타가 자주 나와요. 그래서 ‘소로미’라는 별명이 있고, 주로 이름을 변형한 것들이 많은데 솔개, 송골뫼, 소르, 뫼르 그런 것들이요. (일동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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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솔뫼 작가와 함께한 시간은 생각보다 이상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날의 수많은 질문에 대해 작가님은, 대체로 모르겠다,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아닐지도 모른다 등등의 말을 반복하셨습니다. 말이 말을 만드는 일, 그래서 진심이 오해되거나 왜곡되는 일을 무척 경계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 말들 속에서 간신히 건져 올린 말들이 있습니다. “모르겠어요, 모르겠네요.” “뭔가 이상한 데가 있는” “하고 싶은 것을 계속하고 싶어요.” “멋있는 것을, 어떤 식으로든 힘이 있는 것을.” 아마도 이 말들은 말의 홍수 속에서도 변함없이 반짝거리는, 작가님 마음의 근사치가 아닐까요.
    그런데 참 이상하지요. 작가님은 자꾸만 모르겠다고 하시는데 우리는 그 마음 알 것 같아요. 멋있는 것을 정의하기 싫다고 하셨는데 그 멋있음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아요. 말이 말을 만들지 않아도, 다 전해지는 맘. 순수한 즐거움으로 가득했던, 즐거운 초여름 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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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장웹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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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산책과 가을의 일 박주영 오랜만에 동네 산책을 했다. 여름이 시작되고는 햇빛이 사라진 밤 산책을 하다가 그나마도 열대야 때문에 멈춘 지 오래되었다. 오늘은 해가 뜨기 전 일어났고 스탠드를 켠 책상에 앉아 소설을 썼다. 어느새 창밖이 밝아지는 걸 보다가 해가 완전히 뜨기 전에 바깥으로 나가 걷기로 했다. 산책은 어슬렁거리며 그냥 걷는 것이지만 소설가의 산책에는 생각이 없을 수 없다. 생각을 하지 않으려는 목적이었다면 달리기를 했을 것이다. 나는 산책과 걷기를 구분해서 다이어리에 기록한다. 산책이 바라보고 생각하며 이동하는 것이라면 걷기는 건강이라는 목적을 가장 염두에 둔 움직임이다. 여름이 아니라면 산책은 주로 오후나 해질 무렵에 한다. 늦게 자고 오전에만 일어나도 뿌듯한 사람이라 일어나자마자 소설을 쓰고 쉴 즈음이 대개 그 시간이기 때문이다. 산책을 하면서 내가 지금까지 쓴 것을 생각하다가 빈틈을 메울 생각이 떠오르기도 하고 다음 장면을 생각하기도 하고 이 소설이 제대로 가고 있는지 고심하기도 한다. 여름 해가 뜨기 전 오래간만에 소설을 생각하며 산책을 한다. 나는 문학 전공도 아니고 소설 쓰기를 배운 적도 없고 주변에 글 쓰는 사람도 없었다. 그래서 소설가가 된 후 소설가를 만날 기회가 생기면 알고 싶은 것들을 질문하곤 했다. 글쓰기가 잘 안 될 때는 어떻게 하느냐는 질문에 대한 2개의 대답을 기억한다. 한 분은 그냥 걷는다, 라고 답했고 한 분은 안 되어도 앉아서 써야지 어떡해, 라고 했다. 두 분 다 그때 20년 가까이 소설을 거뜬히 써온 분이었다. 나는 2개의 답을 지금껏 생각하고 있고 그게 지금의 나에게는 정답이 되었다. 하지만 정답을 안다고 정답대로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나는 자주 책상 앞에서 벗어나고 걷는 것이 아니라 누워 있는다. 그냥 진짜 누워만 있는데, 요즘은 소설 쓰는 일에 자주 지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또 한 분의 조언이 생각난다. 건강을 챙기고 운동을 해라, 그러지 않으면 장편소설을 쓸 수 없다. 여기의 조건은 ‘나이 들수록’이다. 비교적 늦은 나이에 등단했고 처음부터 장편소설을 썼던 나는 그 조언이 그때는 크게 와 닿지 않았다. 나는 이미 젊지도 않고 약해 빠졌는데 장편소설을 쓰는 데 그리 힘이 들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그 조언의 참 의미는 어떤 고비마다 왔다. 나이는 한 살씩 먹는 게 아니라 쌓여 있다가 한꺼번에 온다는 걸을 알게 되었다. 어느 날부터 손목이 아프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허리가 아프기 시작하고 이제 어깨가 아프다. 남들은 여름휴가를 가는 시기 나는 병원을 다녔다. 의사는 어깨 인대가 손상되었다고 했다. 특정 자세를 취하지 말라고 했는데 그 자세는 하필 내가 반평생을 취해 온 자세이다. 지금도 나는 그 자세이다. 자판을 치고 노트에 글을 쓰려면 취할 수밖에 없는 자세. 그리고 의사는 옆으로 눕지 말라고 했다. 그런데 어릴 때부터 나는 그렇게 누운 자세로 책을 읽었다. 너무 크고 두껍고 무거운 책만 그 자세로 읽을

  • 관리자
  • 2024-10-01
다시 서정을 위해

[에세이] 다시 서정을 위해 권상진 스무 살 무렵이었던 것 같다. 서른이 되기 전에 시인이 되겠다고 주변에 떠들고 다녔던 기억이 아슴하다. 「홀로서기」를 외웠고 「지란지교를 꿈꾸며」를 외웠다. 이생진을 읽고 백창우를 읽고 박노해를 읽었다. 잔잔하게 때로는 웅장하게 가슴을 밀고 들어오는 시편들이 심장을 가로세로로 뛰게 만들었다. 백석과 김수영과 기형도의 이름은 몰랐지만 굳이 그들이 아니어도 충만한 시간들이었다. 시집이 이천 원에서 삼천 원 정도 할 때여서 큰 부담 없이 고를 수 있었고 외출할 때 시집 한 권을 들고 밖을 나서도 아무도 이상하게 쳐다보는 이도 없었다. 오히려 뭇 여성들의 시선이 슬쩍슬쩍 내 턱선을 지나 책장에 닿는 기분을 느낄 수 있어 좋았다. 생일이나 기념일에는 으레 서점에 들러 시집을 골랐다. 『넌 가끔가다 내 생각을 하지 난 가끔가다 딴 생각을 해』(원태연),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류시화), 『친구가 화장실에 갔을 때』(신진호) 같은 시집을 골라 슬쩍 건네던 날들이 아련하다. 스물이라는, 가라앉을 것 하나 없는 맑은 감정에서 속살거리는 말들을 시인들은 대신 말해 내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 십 대는 가고 이십 대가 펼쳐지고 있었다. 고등학교 입시에 실패하고 대학을 쫓겨나 군대를 다녀오고 나니 어느새 아무데도 기댈 수 없는 성인이 되어 있었다. 오래된 가난이 불편하지는 않았지만 그때부터 가난은 나를 가만히 두지를 않았다. 공장 일을 시작했는데 처음 해보는 노동이란 게 미치도록 좋았다. 종일 몸을 쓰고 땀을 흘리는 일이 알 수 없는 쾌감을 안겨 주었고 월급이라는 보상까지 덤으로 안겨 주었다. 시를 읽고 쓰는 일만큼 일이 재미있었고 누구의 도움 없이 혼자서도 살아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더없이 좋았다. 지쳐 잠들기 전 문득 돌아본 시의 한때는 짧은 여행지의 추억처럼 아득하기만 했다. 나의 스물은 급류처럼 흘러갔고 시는 둑 너머에 있어 쉽게 손이 닿지 않았다. 하지만 일과 돈, 그리고 자립의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노동은 즐겁고 땀은 향기로웠지만 갑자기 내가 꿈꾸던 삶이 이런 것이었던가 하는 질문이 나를 툭 한 번 치고 갔다. 해지는 풍경만 봐도 맥박이 난동을 부리고 꽃과 낙엽의 표정을 살피면 왠지 모를 눈물이 맺히던 한 시절의 기억이 불현듯 피곤에 지친 등을 흔들어 깨웠다. 시인이 되겠다던 꿈을 무참히 짓밟고 나를 공장 노동자로 내몰았던 대학교 재단 이사장의 말이 떠올랐다. ‘약속은 지키면 좋은 것이고 못 지키면 어쩔 수 없는 일’이라던 그의 말. 그가 지키지 않은 약속 때문에 학교에서 쫓겨난 나는 궤도를 이탈해 버린 행성처럼 어둠 속으로 무작정 떠밀려가고 있었다. 막막한 혼돈 속으로 나를 밀어 넣었던 약속이란 단어가 다시 나를 수습하고 있었다. 시간은 이미 서른을 지나갔고 아무도 내게 왜 약속을 지키지 않느냐고 물어 보는 이는 없었지만 스스로와의 약속은 끝내 지켜주고 싶었다. 그렇게 시가 다시 내게로 왔다. 세월도 변했고 시도 변해

  • 관리자
  • 2024-10-01
과거를 보는 미래 SF

[에세이] 과거를 보는 미래 SF 곽재식 며칠 전 나는 한 행사에서 SF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소개하는 발표를 하나 맡게 되었다. 발표가 다 끝나고 질문 답변 시간이 되었는데 청중 중 한 분이 “SF라면 미래를 생각해 봐야 하는데, 왜 옛날 SF를 소개했느냐?”라고 질문했다. 그날 행사 중에는 답변을 짧게 드렸지만 이 내용은 한번 깊게 따져 볼 만한 재미난 주제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오늘은 그 이야기를 한번 해보려고 한다. 명작 SF로 자주 손꼽히는 1970년대 영화로 <>이라는 할리우드 영화가 있다. 찰턴 헤스턴이 주연을 맡아 대형 영화사에서 배급한 그야말로 정통 할리우드 영화인데 그러면서도 비참한 미래의 모습을 예상해서 보여주는 내용이다. 그 결말도 뻔한 할리우드 영화의 행복한 결말이라고 말하기는 매우 어려운 방향으로 흘러가기에 눈에 뜨이는 영화이기도 하다. 맨 마지막에 주인공이 외치는 대사는 SF 영화사에서 유명한 대사 순위를 꼽으면 상위권에 자주 오를 만큼 잘 알려져 있기도 하다.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미래는 인구가 너무나 빠르게 늘어났기 때문에 멸망해 가고 있는 세상이다. 인구가 너무나 많은 데 비해 식량과 자원은 부족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굶주리고 모든 물자가 부족해 다들 비참하게 살고 있다. 영화 제목인 “소일렌트 그린”이란 식량이 부족한 세상에서 특별히 개발해 보급 중인 신형 인공 식품을 말한다. 그러므로 <>은 19세기 맬서스의 등장 이후 수많은 사람들이 미래 인류의 멸망 시나리오라고 철석같이 밀었던, 맬서스 함정을 정통으로 다룬 영화다.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하는데,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성장한다.”라는 말은 어지간하면 한 번쯤 들어 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지구는 망한다, 그러니 사람이 많은 것은 해악이다, 라는 말을 하는 사람을 본 적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런 생각은 곧 “사람이 곧 모든 파괴의 근원이며, 사람이 없어져야 지구가 살아난다.”는 생각으로도 자주 이어지기도 한다. 재미난 사실은 이 영화에서 다루는 멸망해 가는 미래가 2022년이라는 점이다. <>은 1973년에 개봉된 영화이므로 이 영화에서 말하는 2022년이란 영화가 제작되던 1972년으로부터 50년 후를 말하는 이야기일 것이다. 그런데 이 SF 영화에서 말하는 2022년의 미래라는 시간은, 2024년을 사는 현대의 우리에게는 2년 전의 과거가 되었다. 나는 영화를 보는 과정에서 이렇게 시간의 꼬임을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이 굉장히 신비롭다. 게다가 요즘 이 영화의 내용을 보다 보면 더욱 중요한 사실도 깨달을 수 있다. 실제 2022년이 인구가 너무 많아 식량 부족으로 멸망하는 시간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우리가 겪고 있는 2020년대는 인구가 너무 많은 것이 문제가 아니라 인구 감소와 초고령화가 문제인 시대다. 이러한 현상은 한국만 겪고 있는 문제도 아니다. 한국에서 인구 문제가 워낙 극심하게 나타나

  • 관리자
  • 2024-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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