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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개인터뷰_나는 왜] 작품 속에서 작가의 가면을 쓰는가(최민석 편)

  • 작성일 2014-06-09
  • 조회수 2,515

 

연속기획 공개인터뷰_나는 왜(제3회)

 

 


작품 속에서 작가의 가면을 쓰는가?

― 소설가 최민석 편

 

정리 : 황현진(소설가)

 

 

 

 

    소설가 최민석 하면 으레 도무지 범접할 수 없는 유머와 해학을 떠올린다. 작가는 자신을 가리켜 생각보다 지질하지 않고 의외로 섬세한 사내라고 설명했다. 그 말 또한 옳은 말이다. 그가 굉장히 논리적이고 과학적인 사고력의 소유자임은 역시 부인하지 않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에겐 호쾌한 농담의 대가라는 이미지가 생생하게 들러붙어 있다. 특히 최근 출간된 『시티투어버스를 탈취하라』(2014. 창비)를 읽어 보면 더욱 그러한데, 아이러니하게도 책을 다 읽고 나면 다시금 그의 노골적인 자기소개에 동의하게 된다. 그는 우스갯소리에 능하지만 논리와 과학으로 세상을 직시하는 사람이다. 둘 중 어느 것이 보다 가면에 가까운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소설가 최민석, 당신은 왜 작품 속에서 작가의 가면을 쓰는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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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실물이 훨씬 젊어 보이는 소설가

 

    ▶ 김미월(이하 김) : 《문장 웹진》 주최, <나는 왜> 세 번째 시간입니다. 이제까지 낸 책으로 이미 개성적인 역량을 보여주셨지만 앞으로 낼 책에 대한 기대감이 훨씬 큰 작가 최민석 작가님과 함께 <나는 왜> 인터뷰를 진행하겠습니다.

    ▶ 최민석(이하 최) : 그다지 젊지 않은데, 젊은 작가라고 소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김 : 아직 불혹이 안 되었으니까요. 근데 프로필 사진보다 실물이 훨씬 젊어 보여요.

    ▶ 최 : 아, 그 사진 찍을 때 장염을 심하게 앓고 있어서 식사를 거의 못 했거든요. 그 바람에 표정이 굉장히 어두워요.

    ▶ 김 : 어두워 보이기도 하고, 오만해 보이기도 해서 소설이랑 잘 어울리긴 합니다. 제가 최민석 작가의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깨달은 바가 있는데, 왜 사람들은 작가에게 케케묵은 질문밖에 하지 않는 걸까, 늘 궁금했는데 이번에 제가 질문지를 준비하면서 아, 이런 질문들을 할 수밖에 없는 거구나 싶더라고요.

    ▶ 최 : 바로 그런 질문들이 필요한 질문이기도 하죠.

    ▶ 김 : 총 네 권의 책을 발간하신 걸로 알고 있는데 알고 보니 한 권의 책이 더 있다고 작가님께서 오늘 정정을 해주시더라고요.

    ▶ 최 : 제가 옛날에 구호단체에서 일할 때, 『바람의 딸,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는 책이 한창 유행했어요. 저도 그런 콘셉트의 책을 준비하던 참에 그럼 나는 바람의 서자라고 우스갯소리를 하다가 출판사에서 욕을 먹기도 했던 에세이 책입니다.

    ▶ 김 : 제가 그 책을 인터넷 사이트에서 검색해 봤는데요, 작가 소개에 다른 책과는 전혀 다른 글이 있더라고요. “오지여행 전문서적인 줄 알고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를 읽고 인생항로를 급선회했다.”라는 문장을 보고 재밌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 최 : 그 책은 슬픈 현실에 대한 보고서이자 기록이기 때문에 소설 쓰는 투로 글을 쓸 수는 없었어요. 그 책은 제가 할 수 있는 한 가장 진지한 버전으로 쓴 책이고요. 소설의 경우는 비교적 익살스럽게 쓰는 편이죠.

    ▶ 김 : 최민석 작가의 진지한 면을 알아보기 위해서 집에 가서 그 책을 꼭 읽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 최 : 보시면 후회하실 겁니다.

    ▶ 김 : 저 후회하는 거 좋아합니다.

 

 

    첫 번째 소설집 『시티투어버스를 탈취하라』 출간 후

 

    ▶ 김 : 『시티투어버스를 탈취하라』가 며칠 전에 출간되었습니다. 통산 다섯 번째 책이지만 소설집으로는 첫 책입니다. 소감을 말씀해 주세요.

    ▶ 최 : 소감이랄 게 딱히 없어요. 2010년 말에 단편소설 「시티투어버스를 탈취하라」로 등단하고, 2011년 1월에 소설집 한 권 분량을 이미 다 썼거든요. 만 삼 년이나 지난 거죠. 그때 이미 몸을 한번 쥐어짰기 때문에 그동안의 시간은 기다림의 시간이었죠. 그래서 크게 설레거나 이건 아니야, 라는 식의 자책도 크지 않고, 그냥 담담합니다. 때가 되어 나왔구나 하는 생각이 더 큽니다. 물론 장편소설을 낼 때와는 기분이 상당히 다르죠. 이번 소설집 속 작품들은 이미 몇 년 전에 쓴 것도 있고, 하루 이틀 만에 쓴 것도 있다 보니까 아무래도 담담해요. 앞으로 단편을 더 쓸지 모르겠어요.

    ▶ 김 : 전 최민석 작가의 단편을 장편보다 더 재밌게 읽었거든요. 그래서 앞으로 꼭 단편을 계속 써주셨으면 하는 바람이…….

    ▶ 최 : 그래요? 아, 그럼 내가 장편을 정말 못 쓴 거구나.

    ▶ 김 : 그게 아니라 장편은 장편 나름대로 재밌었는데, 저는 개인적으로 단편을 보면서 정말 많이 웃었거든요.

    ▶ 최 : 수습하시는군요.

    ▶ 김 : 진심입니다. 《문장 웹진》과 최민석 작가와 인연이 깊더라고요. 문장의 소리 라디오 진행도 하고 계시고, 2012년 8월 《문장 웹진》에서 <2000년대 작가로 살아간다는 것>을 주제로 좌담을 하신 적도 있습니다. 그때는 아직 책을 출간하기 전이었는데 그때의 마음가짐과 지금, 혹시 달라진 게 있나요?

    ▶ 최 : 글 쓰는 자세는 크게 변한 게 없고요. 뭐랄까 책을 낼 때의 심정은 좀 달라졌죠. 그 당시엔 제가 첫 소설을 내지 않은 상태라……. 첫 소설을 내기 전까지 굉장히 많은 열정과 노력과 에너지와 포기와 시간을 거쳐서 내잖아요. 하지만 첫 소설을 낸다고 해서 일상이 달라지진 않거든요. 변화는 거의 제로라고 봐야죠. 일단은 제가 직업이 소설가이다 보니까 책을 안 낼 수 없어요. 그때마다 드는 생각은 컨츄리 꼬꼬가 앨범을 내는 심정이 이렇지 않았을까? 컨츄리 꼬꼬가 가수잖아요. 그래서 앨범을 안 낼 수는 없거든요. 근데 사람들은 그들을 가수라기보다는 방송인으로 기억하죠. 저는 에세이를 많이 써요. 사람들은 제 에세이를 많이 봐주지 소설을 찾아서 봐주는 경우는 많지 않아요. 글 쓰는 자세는 변함없어요. 근데 책을 낼 때 큰 기대를 하지 않아요. 실망하지도 않고요. 열심히 쓰자, 그런 마음이죠. 갑자기 컨츄리 꼬꼬한테 되게 미안해지는데 사실 저는 그들을 무척 좋아하거든요. 요즘 불미스러운 일로 활동을 못 하고 있지만, 그 두 사람의 재치를 굉장히 좋아합니다.

    ▶ 김 : 컨츄리 꼬꼬는 가수로든 입담꾼으로든 많은 사람이 좋아하잖아요. 작가님도 아마 그 이상으로 많은 사람이 좋아하는 작가가 될 거라고 감히 단언합니다. 세 번째 질문을 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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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어로 쓰고 문어로 말하는 작가

 

    ▶ 김 : 최민석 작가님의 작품을 읽고 있으면 저잣거리에서 사람들 모아놓고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 혹은 무성영화 시절의 변사, 과장과 익살을 섞어서 말하는 사람의 이미지가 떠올라요. 단편 「부산말로는 할 수 없었던 이방인 부르스의 말로」에서 주인공 부르스가 ‘한국어는 쓰는 문자와 말하는 언어가 다르다’는 것을 깨닫는 장면이 있는데, 이를테면 작가님 작품이 바로 그 구어를 애써 문어로 옮겨 놓은 것 같다고 할까요? 특히 저는 「국가란 무엇인가」 이 소설을 좋아해요. 굉장히 재밌어서 우울할 때마다 이 책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거든요. 근데 거기 보면 언어유희, 말장난이 특히 많이 나와서 이 소설은 절대로 번역이 안 되겠구나, 라는 생각을 했어요.

    ▶ 최 : 그렇긴 하네요. 실패했네요.

    ▶ 김 : 저는 한국 작가로서 번역하기 힘든 작품을 쓰는 것을 굉장히 높게 평가하거든요.

    ▶ 최 : 그래도 번역은 되어야 좋은 거 아닐까요?

    ▶ 김 : 외국어와 한국어 사이의 접점을 잘 찾는 아주 뛰어난 사람이 나타나서 이 책의 내용을 훼손하지 않고 번역할 수 있는 날이 올 거라는 기대를, 저는 감히 가져 봅니다. 작가님은 입말을 활자로 바꾸는 데 그 거리를 상당히 조절을 잘하는 작가랄까요, 특히 작가 특유의 유머와 페이소스를 만들어내는 데 굉장히 뛰어난 기량을 가지고 있는 듯합니다. 일종의 소설적 전략인가요?

    ▶ 최 : 전략이 아주 없다고 할 순 없죠. 가독성 높게 쓰자, 항상 생각하고 있지만, 근본적으로 그것은 제가 책을 많이 안 읽어서 그런 것 같아요. 제가 책을 오래 못 읽어요. 그래서 책을 좀 펼쳤다가 덮는 편이거든요. 제가 책을 많이 읽었다면 문어체에 익숙하겠죠. 저는 대부분의 정보를 사람들과 나눈 이야기에서 섭취하다 보니까, 저 역시 글을 쓸 때 문어체 위주가 아니라 구어체 위주로 표현하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글은 제 경험치이자 단점의 결과이기도 한데, 애써 그걸 부인하기보다 기왕 그렇게 된 거 구어체처럼 잘 읽히게 쓰자, 염두에 두고 퇴고합니다.

    ▶ 김 : 이제 보니 말씀은 문어체로 하네요.

    ▶ 최 : 그런 얘기 많이 들어요. 그런데 제 말을 받아쓰다 보면 다시 구어체가 되더라고요. 이런 말, 제 입으로 하기 쑥스럽지만 말과 글의 혼연일체라고나 할까요.

    ▶ 김 : 작가의 말을 보면 사람들이 의외로 나를 보면 지질하지 않아서 놀란다, 점잖아서 놀란다, 횡설수설하지 않아서 좋아한다, 라고 되어 있어서 사실 기대했거든요. 작가님의 소설이 구어체의 향연이라면, 작가님의 평소 말씀은 아주 차분해서 굉장히 낯설다는 생각이 드네요. 나는 왜 작품 속에서 작가의 가면을 쓰는가. 사실 이건 멋있게 표현한 말인데, 이런 겁니다. 왜 주인공이 작가인 사람을 소설 속에 자주 등장시키는가? 소설을 읽어 보면 아예 나는 작가입네, 나는 최민석입네, 라고 대놓고 얘기를 하거든요. 투덜이 스머프처럼 불만을 토로하고, 도저히 미워할 수 없는 익살을 떠는, 최민석 작가만이 가진, 전매특허를 낸 캐릭터라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근데 사실 모든 소설가들의 소설이 자전적이라 말할 순 없거든요

    ▶ 최 : 당연히 「독립운동가 변강쇠」가 자전적일 순 없죠.

    ▶ 김 : 그래서 물어보고 싶었어요. 자전적인 소설을 쓰는 것도 아니면서 왜 작가를 주인공으로, 최민석이라는 사람을 주인공으로 삼는지.

    ▶ 최 : 맥 빠지는 대답일 수 있으나 대단한 의도나 문학 외적인 논의를 작품에 끊임없이 투입을 해서 사람들로 하여금 생각할 기회를 제공해 주고 싶어서가 아니고요, 저는 그냥 그렇게 글 쓰는 게 재밌어요. 제가 글을 쓰는 첫 번째 목적은, 글 쓰는 제자신이 스스로 재미있어야 되기 때문이거든요. 동시에 읽는 사람도 함께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글을 써내자, 하고 생각하거든요. 저는 소설책에 작가의 말 쓰는 걸 굉장히 꺼려요.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은 작품 안에서 다 끝나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러다 보면 작품 안에 작가가 개입하기도 하죠. 자연스레 너스레와 풍자를 떨게 됩니다. 작가의 말이 제일 부담스러워요. 많은 독자들이 서점에서 작가의 말을 먼저 펼쳐 보거든요. 그게 재밌으면 책을 사고 그게 재미없으면, 이 사람은 이 짧은 글도 못 쓰네 싶어서 책을 안 읽거든요. 심지어 제가 어느 에세이에서 나는 작가의 말을 쓰지 않는 작가가 되겠다고 해놓곤 그 2주 뒤에 작가의 말을 썼거든요. 그래서 이번엔 하는 수 없이 작가의 말에 그에 대한 변명을 썼어요.

    ▶ 김 : 전 그런 부분이 재밌었어요. 전 작가님의 솔직함과 융통성이 최민석이란 사람에 대한 매력을 높인다고 생각해요. 그래서일까, 최민석 작가님의 책에서 작가의 말을 읽으면 반드시 책을 사게 될 것 같아요.

    ▶ 최 : 작가의 말만 읽고 안 살까 봐 걱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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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장 중요한 것은 캐릭터

 

    ▶ 김 : 작가가 화자로 등장하는 작품 이외 작품에는 오히려 엉뚱하고 독특한 주인공들이 많습니다. 원숭이 인간, 부산 사투리를 쓰는 외계인, 키르기스스탄 용사의 후예 등등. 물론 세상의 모든 소설에서 인물은 곧 그 소설 자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중요하지만, 최민석 작가님 소설에서는 그런 점이 특히 부각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말하자면 이야기가 아니라 인물이 소설을 끌고 가는 기운이 승하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작품을 구상할 때 인물을 먼저 정해 놓는 편인가요?

    ▶ 최 : 쓸 때마다 다른데요. 『쿨한 여자』를 쓸 때는 목표가 하나였어요. 서정적인 분위기를 몰고 가자. 『능력자』는 끊임없는 장광설로 소설을 이끌어 보자. 「시티버스를 탈취하라」는 내가 쓰고 싶은 대로 마음껏 써보자, 라는 게 목표였어요. 이루고 싶은 목표가 정해지면 소설의 캐릭터와 분량 등등도 함께 정해지죠. 예컨대 소설 속 시간의 흐름이 백 년인 경우는 장편소설로, 이 인물이 굉장히 고독하다 싶으면 연애소설에 걸맞죠. 인물이 말이 많은 사람이다, 그럼 문체가 장광설의 소설이 되기도 하죠. 어떤 경우는 한 문장을 쓰고 문장에 문장을 덧붙이면서 쓰기도 해요. 그렇지만 종합적으로 말하자면 캐릭터를 굉장히 중요하게 여겨요. 캐릭터가 매력적이지 않은 소설은 읽기 힘들어요. 우리가 드라마를 보고 소설을 읽는 것은 누군가 매력적이기 때문이거든요. 소설에서 중요한 건 이야기지만, 구성상 부족한 부분을 채워 주고 뒷받침하는 것은 인물이죠. 구성도 탄탄하고 캐릭터도 매력적이고 주제의식도 명백한 소설, 앞으로 그런 소설을 쓰려고요. 다음부턴 그렇게 할게요.

    ▶ 김 : 첫 책 『능력자』로 큰 상을 받으셨는데, 가장 먼저 출간된 이 책이 실은 가장 늦게 쓰였습니다. 단편집 ‘작가의 말’에 책들의 집필 시기와 출간 시기가 역순이 되면서 독자들에게 최민석의 문학적 수준이 나날이 퇴보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면 어쩌나 걱정하셨는데, 그렇다면 『능력자』가 2014년 5월 현재 최민석 문학의 최고봉이라고 할 수 있나요? 혹은 작가 스스로 가장 애착을 갖는 작품이라 할 수 있을까요?

    ▶ 최 : 그런 시가 있죠. 가장 아름다운 노래는 아직 불리지 않았고 가장 아름다운 작품은 아직 쓰이지 않았다. 제 이름을 떳떳하게 박을 수 있는 작품은 아직 안 나왔다고 생각해요. 부끄럽지 않도록 앞으로 더 열심히 쓰려고 생각합니다. 가장 애착을 가진 작품은 『쿨한 여자』의 1부에 해당하는 단편이고요. 2·3·4부는 제가 새로 이어 쓴 부분이고요. 소설집을 묶으려고 보니『시티버스를 탈취하라』의 전체 맥락과 『쿨한 여자』가 어울리지 않았어요. 그래서 『쿨한 여자』를 소설집에서 뺐어요. 쓰고 난 뒤에 후회했어요. 내가 괜히 덧붙여서 아꼈던 『쿨한 여자』의 매력을 떨어트린 게 아닌가 싶더라고요. 나중에 혹시나 개정판을 낼 일이 생기면 공사를 좀 하려고 합니다. 보너스 트랙으로 실려 있는 「누구신지…」라는 소설도 책 전체와 결이 안 맞거든요. 그래서 앨범 식으로 구성을 한 거죠. 가수들이 보면 정규 앨범에 넣기 애매한 곡들을 보너스 트랙으로 넣잖아요. 「누구신지…」도 제게 그런 작품입니다.

    ▶ 김 : 전 결이 안 맞는다는 생각 못 했어요. 『쿨한 여자』가 들어갔으면 좋았을 텐데.

    ▶ 최 : 이미 늦었네요.

    ▶ 김 : 『쿨한 여자』는 표지에 아예 연애소설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있습니다만, 제주 강정마을 일화 때문인지 저는 그것을 작가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일종의 예술가 소설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읽었습니다.

    ▶ 최 : 작가가 책을 내면, 백 프로 자기 고집을 주장할 순 없죠. 출판사에서 강력하게 주장한 게 ‘최민석 연애소설’이라는 문구였어요. 그래서 저도 강력하게 주장한 바가 있는데 『쿨한 여자』의 표지를 2도 인쇄로 해달라는 거였어요. 근데 많은 독자들이 책 겉표지를 안 벗기고 소장해서 잘 모르더라고요. 표지의 색이 상징하는 바가 초콜릿에 박힌 민트거든요. 이런 깊은 뜻을 누가 알려나요.

    ▶ 김 : 도서관에 가면 겉표지를 벗겨서 진열을 합니다만.

    ▶ 최 : 몰랐어요.

    ▶ 김 : 정말 책을 안 읽으시는군요.

    ▶ 최 : 그럼 『쿨한 여자』는 도서관용 도서로 명명하겠습니다.

    ▶ 김 : 『쿨한 여자』를 읽으면서 결말이 굉장히 궁금했는데, 환상적이랄까요 이른바 열린 결말이더라고요.

    ▶ 최 : 원래는 이 소설의 결말 부분, 즉 별표 이후 덧붙인 부분 때문에 앞에 했던 이야기의 내용이 완전 뒤바뀌죠. 원래는 그 부분이 없었는데, 그렇게 써보는 것도 재밌을 것 같아서 써서 보냈더니 편집자가 괜찮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그 상태로 책을 냈는데 지나고 보니 덧붙인 부분을 빼고 싶더라고요. 별표 이후 부분을 빼면 『쿨한 여자』는 시리즈로 계속 이어질 수 있습니다. 제가 얼마 전에 아일랜드로 여행을 갔어요. 이 주인공도 더블린으로 여행을 가서 그 여자를 다시 만나는 거죠. 함께 여행하고, 술 마시면서 반복되는 이별 속 얽히는 에피소드. <비포 선라이즈>처럼 계속 연장되는 거죠. 그런데 제가 결말을 덧붙이면서 독자들의 위대한 상상력을 스스로 제한한 것 같은 안타까운 마음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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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초체력 훈련과도 같은 에세이 쓰기

 

    ▶ 김 : 원래 등단하기 전에는 소설이 아니라 에세이를 쓰고 싶어 하신 것으로 압니다. 그리고 결국 소설가가 된 후 바라 왔던 대로 에세이집을 출간하셨는데 지금도 정말 쓰고 싶은 글은 에세이라는 데 변함이 없나요?

    ▶ 최 : 전 등단 시스템을 몰랐어요. 신춘문예라는 말을 들어 보긴 했지만 제대로 몰랐어요. 출판사에 원고를 보내서 채택되면 책이 나오는 줄 알았어요. 저는 글 쓰는 일을 직업으로 삼고 싶었어요. 시를 써서 밥벌이를 할 만큼 잘 쓸 자신은 없었고, 그나마 쓸 수 있는 장르가 무얼까, 생각해 보다가 소설을 쓴 거죠. 지금도 에세이에 대한 애정이 커요. 일주일에 한 번씩 에세이를 쓰고 있거든요. 야구선수가 아무리 배팅 연습을 많이 해도 기초체력 훈련은 해야 되잖아요. 제게 에세이는 기초체력 훈련과 같아요. 에세이를 쓰면서 문장 연습도 하고 스타일도 익히는 거죠. 소설은 거짓말이잖아요. 내가 아무리 정치적인 소신을 소설 속에 밝혀도, 누가 내게 왜 그런 말을 했어, 라고 물으면 내가 한 말이 아니니까요, 라고 대답할 수 있죠.

    ▶ 김 : 식상한 질문인데 어쩌다 작가가 되셨나요?

    ▶ 최 : 원래는 직장인이었어요. 부서이동을 하는데 도저히 그 부서에 못 가겠어서 말을 했어요. 그래도 발령을 내더라고요. 그래서 사표를 냈어요. 자네 뭐 할 건가? 상사가 묻기에 글을 쓸 겁니다, 라고 대답했더니 아, 자네 그럴 줄 알았네, 라고 하시더라고요. 그 후로 사표 수리가 일사천리로 진행되더라고요. 그때 제가 첫 번째 에세이『너의 눈에서 희망을 본다』를 쓰고 있었거든요. 석 달 치 월급을 퇴직금으로 받고, 노트북 앞에 앉아서 뭘 할까 생각했어요. 독립영화를 한 편 찍으려니 돈이 너무 많이 들 것 같았어요. 그렇다면 글밖에 없겠다, 일단 소설을 써보자, 대신에 육 개월 안에 결과가 안 나오면 다시 구직활동을 하자, 생각했는데. 운 좋게 데뷔해서 작가 생활을 시작했죠.

    ▶ 김 : 듣고 보니 작가가 된 경위가 다른 작가들의 경우보다 훨씬 극적이고 소설적이란 느낌이 듭니다.

    ▶ 최 : 아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해요. 전 영화감독을 꿈꾸던 사람이었고, 영화감독도 결국은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인지라 원래 꿈에서 약간 변형되었다고만 생각해요. 당연히 어릴 때부터 소설가나 시인을 꿈꾸며 살아온 사람들도 있겠죠. 저도 크게 벗어나는 사람은 아니에요.

 


 

 

    기쁨과 고통이 공존하는 글쓰기

 

    ▶ 김 : 이런 질문을 이미 100번쯤 받아 보셨을 것 같아 여쭙기 죄송하지만, 작품을 쓰다가 글이 잘 안 풀리면 스트레스를 어떻게 해소하시나요? 좀 전에 글쓰기는 일단 자신에게도 재밌어야 하는 작업이다, 라고 말씀하긴 했지만, 늘 즐거운 건 아니죠?

    ▶ 최 : 샤덴프로이데(Schadenfreude)라는 말이 있잖아요. 풀어서 말하자면 남의 고통을 보고 내가 즐거워한다는 인간의 악마적인 본성을 드러내는 말이죠. 한마디로 이율배반적인 즐거움이 있는 거죠. 소설 쓰는 즐거움은 마라톤 할 때와 비슷해요. 제 경우엔 4킬로 넘으면 몸이 가뿐해지면서 즐겁게 뛸 수 있어요. 근데 그 전까진 엄청 힘들어요. 소설도 내가 생각한 바가 의도한 대로 표현되지 않으면 엄청 괴롭고 힘들죠. 근데 소설 쓰면서 재밌고 즐거운 것은 내가 생각한 대로 글이 써진다고 느낄 때죠. 그런데 그 과정은 굉장히 큰 고통을 수반한 즐거움이죠.

    ▶ 김 :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 최 : 딱히 계획이 없습니다. 여태 너무 바쁘게 쓴 것만 같아서 올해는 좀 충전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후에 장편을 쓰고 싶고요. 『시티버스를 탈취하라』가 영화화될 예정이라 제가 직접 시나리오 작업을 해야 합니다. 8월에는 『풍의 역사』라는 장편소설이 나옵니다. 요즘은 그 소설을 퇴고하고 있습니다. 9월부터는 베를린의 레지던스에서 석 달 동안 머무를 예정입니다. 거기서 맥주를 많이 마시고, 연구도 좀 해서 맥주에 대한 소설을 쓸까 합니다.

 

 

    최민석 작가는 구상 중인 맥주에 대한 소설을 꽤 자세하게 들려주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것은 듣기에도 굉장히 즐겁고 유쾌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그 자세한 내용을 글로 옮기진 않겠다. 추후 나올 그의 소설에 대한 스포일러가 될까, 조심스럽기 때문이다. 언젠가 그가 베를린에서 맥주를 마시다가 쓴 소설이라며 장편소설을 발표하는 날이 온다면 일독을 권하고 싶다. 웃지 않을 수 없겠으나 통쾌한 기분 또한 맛보게 될 것이다. 예상한 바지만 최민석 작가와의 인터뷰가 진행되는 동안 청중석에선 수시로 웃음이 터져 나왔다. 분위기가 화기애애했던 탓일까. 독자 분들의 질문들이 쏟아졌다.

 

    ▶ 독자(이하 독) : 『청춘 방황 그리고 눈물의 대서사시』를 먼저 읽었는데요. 그 책을 읽다 보니 작가님께서 생선을 좋아하는 것 같더라고요.

    ▶ 최 : 엄청 좋아합니다.

    ▶ 독 : 생선에 대한 사유가 우주에 대한 비유로 확장되어 가는 걸 보면서 재밌지만 진지한 사람이란 느낌이 들었어요. 근데 그 책에 B급이라는 단어가 자주 언급되더라고요.

    ▶ 최 : 베스트의 약자입니다. 농담입니다. 스스로 정한 기준이 있는데, 제가 생각하는 A급 이른바 훌륭한 주류문학이라는 것은 치밀한 구성과 버릴 것 없는, 결이 아름다우면서도 무게감 있으면서 훌륭한 문장으로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고, 주제의식 또한 누구나 고민하지 않았으나 정말 필요한 문제를 담고 있어야 하면서 너무 명징하게 드러나거나 흐릿하게 감춰져 있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저는 그런 문학을 할 여력과 내공이 부족합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 할 수 있는 문학, 내 나이 아니면 할 수 없는 문학을 하고 싶었어요. 황당무계한 이야기를 극단적으로 써내려가는 것, 지금 제 나이에서 가장 재밌게 할 수 있는 작업이라고 생각합니다. A에서 시작하지 않고 B에서 시작해서 중년을 지나 노년으로 나아가는 동안 A급으로 발전하고 싶습니다.

 

    ▶ 독 : 작가님에게 글쓰기의 의미는 즐거운 소통이라고 말씀하는 걸 어디선가 봤어요. 작가님이 의도하는 소통이 독자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 수 있을까요?

    ▶ 최 : 저는 소설 쓸 때 대단한 목적을 가지지 않아요. 제 소설로 인해서 사회나 독자가 변하는 걸 바라지 않아요. 작가가 그걸 염두에 두고 쓴다면 그건 작가가 독자를 너무 푸시하는 느낌이 들 거라고 저는 생각해요. 만약 독자가 책을 읽고 난 후, 일상이 조금 바뀌었다면 그건 굉장히 고마운 일이죠. 하지만 독자나 사회의 변화를 의도하는 글은 기사나 연설문이 더 적합할 것 같아요. 소설이란 게 킬링타임용이 아닌지라 어떤 의식이나 의도는 포함해야겠죠. 하지만 그 자체를 염두에 두진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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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론가 오창은 선생님의 질문도 이어졌다.

 

    ▶ 오창은(이하 오) : 소설에서 인물들이 중요한데, 예외성이나 의외성 또는 범상한 것과 평범한 것에 기반을 두고 캐릭터를 포착하는 기준이랄까요, 어떤 효과적인 측면을 고려해서 쓰는지 궁금합니다.

    ▶ 최 : 제가 좋아하는 캐릭터를 소설에 씁니다. 어떤 소설에선 굉장히 뻔한 인물들이 나와요. 『쿨한 여자』의 주인공은 고전문학의 전형적인, 『위대한 개츠비』에 나오는 고독형 인물이죠. 『풍의 역사』에 나오는 주인공은 허풍쟁이인데 그 인물도 굉장히 뻔하죠. 반면에 외계인이나 외국인 노동자는 다르죠. 저는 뻔하면서 약간은 다른 인물, 극단적인 인물이 아니라 ‘뒤섞인 인물’을 선호합니다. 독자의 생각과 계속 호흡하면서 움직이는 인물들, 이를테면 설마 죽는 거 아니야, 독자가 추측했을 때 정말로 죽어버리는 것처럼 독자와 보이지 않는 탁구를 치는 거죠. 이야기라는 공을 놓고 독자와 계속 감정선을 주고받는 것과 같죠. 뻔한 캐릭터와 뻔하지 않은 이야기, 뻔한 이야기와 뻔하지 않은 캐릭터를 뒤섞어 가면서 쓰는 것을 좋아합니다.

 

    ▶ 독 : 평소의 인간관계랄까, 사람을 대할 때 참을 수 없는 상황에 닥치면 어떻게 하는지요?

    ▶ 최 : 견딥니다. 소설을 쓸 때도 뻔할 수밖에 없는 장면들을 쓸 때가 있어요. 그럴 때는 더 뻔뻔하게 씁니다. 사람 관계에 있어서도, 저는 글을 쓰면 사람을 거의 못 만나요. 매일 혼자 있는 시간을 확보해야 되잖아요. 친구들이 만나자고 해도 나갈 수가 없어요. 술도 마실 수 없어요. 마감한 날 혼자 한두 잔 하죠. 제게 사람 만나는 시간은 중요해요. 그래서 되도록 견딥니다.

    ▶ 독 : 『능력자』를 읽었는데 화자가 작가라고 하긴 했지만, 주인공이 최민석은 아니잖아요. 상상과 달리 작가님이 의외로 점잖아서요. 혹시 그런 자신을 깨고 싶어서 소설 속 주인공들이 실제 작가님과 반대의 캐릭터를 갖는 건 아닌가요?

    ▶ 최 : 그런 것도 없잖아 있겠죠. 내가 아는 사람 중에는 글과 사람이 일치하는 경우도 있지만 아닌 경우도 있어요. 중간쯤인 사람이 또 있는데 저는 바로 거기에 해당하는 것 같아요. 원래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는데 혼자 소설을 쓰다 보니 말수가 적어지더라고요. 소통하고 싶은 욕구를 글로 실현하니까, 말하고 싶은 욕망이 줄어들더라고요. 혼자 쉬고 싶더라고요. 전 저 자신을 완전히 깨고 싶지도 않지만, 작가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해야 할 것 같긴 해서…… 제 정체성에 대해 늘 혼란스러워합니다.

 

    ▶ 김 : 작가님의 진짜 성격은 뒤풀이 자리에서 엿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멀리서 오신 최민석 작가님께 감사드려요.

    ▶ 최 : 저 가까이에서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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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장웹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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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지에서 쓴 일기

[에세이] 육지에서 쓴 일기 최진영 20240528 4박 5일 동안 육지에서 여러 일정이 있어 오늘 제주에서 서울로 왔다. 앞으로 며칠간 약속과 약속 사이, 출발지와 도착지 사이 시간이 날 때마다 이 창을 열고 단상을 써보려고 한다. Are you checking in? pm04:45. 여긴 충무로의 호텔. 3년 전 제주로 이사 간 뒤 처음으로 서울에 일이 있어 올라왔을 때 숙박한 후 매번 이 호텔만 이용하고 있다. 경기, 인천 지역에서 저녁 행사를 해도 근방 호텔을 잡지 않고 여기로 온다. 새로운 호텔을 검색하고 선택하는 게 번거로워서. 합리적인 위치나 가격을 따지려다가 검색 지옥에 빠져서 몇 시간을 고민한 뒤 결국 이 호텔을 예약했던 경험으로 깨달은 바가 있다. 시간이 돈이다. 더 저렴한 호텔을 찾으려 애쓰지 말고 검색하고 고민하는 시간을 줄이자. 점심시간 무렵 충무로 일대 분위기는 조금 묘하다. 커다란 캐리어를 끌고 거리를 걷는 외국인들과 점심 먹으러 나온 직장인들이 뒤섞이는 거리. 라디오 주파수를 돌리듯 여러 나라의 언어가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서울역, 명동, 한옥마을, 남산, 종로가 가까운 곳이어서 외국인 관광객이 정말 많다. 올 때마다 느끼지만 호텔 투숙객 중 한국인은 나뿐인 것 같다. 한 달에 두어 번은 와서 2박 이상 하니까 나름 단골이랄 수도 있는데 프런트 직원들은 매번 나를 처음 본 손님처럼 대한다(호텔의 특성이겠지?). 체크인할 때도 내게 영어로 말을 건넨다. “give me your passport.” 그럼 나는 “제 이름은 최진영입니다”라고 한국어로 대답한다. 성공한 인생 오늘 아침 9시쯤 택배 문제 때문에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엄마는 전화를 받자마자 놀란 목소리로 “왜 이렇게 일찍 일어났느냐”고 물었다. 내 용건에 개의치 않고 엄마는 거듭 물었다. 전화를 끊고 뿌듯해서 신나게 웃었다. 내 나이 이제 마흔이 넘었는데 아침 9시에 엄마에게 “왜 이렇게 일찍 일어났느냐”는 말을 들을 수 있다니, 이번 생은 성공한 것 같아서. 그건 바로 내 투쟁의 결과다. 거의 20년을 프리랜서로 살면서 남들 다 출근하는 시간에도 ‘성인 평균 적정 수면시간’을 사수하며 꾸준히 늦게 일어나는 생활양식을 차곡차곡 쌓아 온 결과 마침내 엄마도 나의 생활 패턴을 받아들인 것이다. 그래서 아침 9시에 전화하면 깜짝 놀라는 것이다. 나는 이런 게 진정한 성공 같다. 긴장감 저녁에 북토크를 할 예정이다. 사람들 앞에서 말하거나 낭독할 때는 별로 긴장하지 않는 편이다. 내가 긴장하는 순간은 따로 있다. 예를 들면 비행기 탈 때. 기내 짐칸에 캐리어를 올리다가 무거워서 또는 실수로 떨어트려서 누군가를 다치게 할까 봐 매번 긴장한다. 일어날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걸 알지만 식은땀이 난다. 캐리어를 끌고 에스컬레이터 탈 때도 마찬가지다. 에스컬레이터에서 넘어지거나 캐리어를 놓치는 구체적 상상에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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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장르 문학’ 하시는구나

[에세이] 아, ‘장르 문학’ 하시는구나 김용언 미스터리 장르를 좋아하고, 열심히 읽고, 그에 관한 잡지를 만들고, 또 가끔은 관련 공모전 심사를 보면서 언제나 느끼는 바가 있다. 한국에서 미스터리 장르에 대한 이해도는 여전히 심각하게 척박하다는 점이다. 가장 모순되는 감정을 느끼는 순간은 ‘장르 문학’이라는 단어를 들을 때다. ‘(그냥) 문학’1)의 카테고리에 속하지 않는 나머지 소설들은 굳이 ‘장르 문학’이라고 불린다. SF, 판타지, 미스터리/스릴러, 로맨스, 공포, 무협 등의 꼬리표가 붙고 낱낱이 분류되며 ‘문학은 문학이지만 그냥 문학이라고 부르기보단 그 안의 장르로 명명되어야 하는’ 존재가 된다. 의문이 생긴다. 그렇다면 장르 문학에 속하지 않는 작품은 그냥 문학이 아니라 ‘비장르 문학’이 되어야 하지 않는가? 아니면 순문학 역시 일종의 장르임을 인정하면서 모든 작품을 ‘장르 문학’이라고 불러야 하는 건 아닐까? 예전 한국 문단에서는 ‘순(純)’이라는 단어가 참여 문학/민중 문학 등의 대립항처럼 불렸다고 하는데, 지금에 와서는 참여 문학/민중 문학도 ‘그냥’ 문학에 포함된 것 같다. 아무튼 거칠게 말해서 ‘장르’를 사용하지 않고 인간과 현실 자체에 집중하는 소설을 ‘그냥’ 문학으로 호명한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장르’로 호명되는 특정한 이야기들에는 그 장르가 만들어지게 된 역사가 있고 또 그 안에서 통용되는 특정한 규칙이 존재한다. 그런 약속된 구조와 규칙을 이용해서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낸다고 해서, 그 결과물이 ‘그냥’ 문학으로 불릴 수 없고 장르 문학으로만 불려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오해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나는 장르 문학도 문학임을 인정하라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기 위해 이 글을 쓰는 게 아니다(그건 너무 당연한 사실이기 때문에 굳이 받아들여 달라고 애원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그 장르 문학 업계에서 일하는 사람으로서 불편해지는 순간들이 자꾸 찾아온다. 이를테면 한국 작가의 소설이 해외로 번역되었을 때 현지 리뷰들을 찾아보면, 스릴러/미스터리/공포 등의 명칭을 명확하게 부여하면서 소개한다. 한국에서는 기존 등단 작가들의 작품을 소개할 때 ‘추리적 기법을 활용한’ 또는 ‘경계를 넘어선 상상력을 발휘한’ 등의 애매모호한 문구로 시작할 때가 많은데, 해외에서는 자신들에게는 낯선 작가의 번역 작품의 특성을 단번에 설명하기 위해 ‘이것은 스릴러다’ 또는 ‘이것은 공포소설이다’라고 알려준 다음 그 작품의 특성이 어떤 점에서 새롭고 멋진지를 차근차근 설명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여전히 장르 문학과 장르 아닌 ‘그냥&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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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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