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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카페 유랑극장 후기]우리 모두의 기다림이 그대들에게 닿기를……

  • 작성일 2014-05-14
  • 조회수 692

 

[문학카페 유랑극장 참관후기]

 

 


우리 모두의 기다림이 그대들에게 닿기를……

 

 

 

나미나(미디어아티스트)

 

 

 

 

진해_이은선-1

 


누사람에게 적막은 왼쪽 가슴에 있는 제 심장소리를 듣는 일이다.
그 소리가 무엇을 향해 뛰는지 알게 되는 일이다.
은현리에서 내 시는 내 심장소리다.
오직 그 사람을 향해 뛰는 심장소리다.
내 심장소리를 귀 열고 따뜻하게 들어주는 세상을 기다리고 싶다.


 

- 정일근 시집 『기다린다는 것에 대하여』 뒤표지 글 중 일부

 

    이 날 내 심장소리는 한 곳을 향해 있었고, 내 심장소리에 반응해 들려올 희망을 기다리고 있었다. 내 심장소리를 들으며 잠이 들었고 아침에 일어나서 들려오는 소식에 그 심장소리가 점점 빨라지더니 이내 멈춰버린 것만 같은 슬픔을 느꼈다.

 

    작년 10월에 나는 세월호에 올랐다. 육지에서 모인 책들을 제주도 강정마을에 전달하기 위한 ‘십만대권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사람들이 인천에 모여 배를 타고 제주도로 가는 길이었다. 이때의 경험으로 세월호의 구조는 어느 정도 내 머릿속에 있다. 간밤의 꿈에 나는 배를 돌아다니며 친구들에게 빨리 갑판 위로 올라가라고 간절하게 소리쳤다.

 

    2014년 4월 18일, 평소보다 여유롭게 상계역을 출발했다. 일행들이 모두 모이기로 약속한 장소는 사당이었다. 그때 나는 스마트폰에 빠져 무슨 역을 지나치는 줄도 몰랐다. 문득 무슨 역인가 전광판을 보니 이촌이었다. 고개를 돌려 전광판 옆 지하철 노선도를 보니 사당을 세 정거장이나 지나 있었다. 머리를 툭툭 치며 내려 반대편 지하철을 탔다. 두 정거장 지났을까. 삼각지라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뭔가 다시 집 쪽으로 돌아간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번에도 전광판 옆 지하철 노선도를 보니 사당에서 다섯 정거장이 멀어져 있었다. 이촌은 사당 세 정거장 전이었던 것이다. 한두 번 가본 것도 아닌데 내 머리는 그런 인식을 할 여유가 남아 있지 않았다. 결국 약속시간에 8분 늦었다. 평소라면 이 8분의 지각이 별로 크게 다가오지 않았겠지만 이 날만큼은 우리 모두에게 크게 다가왔다. 너무나 미안한 마음으로 사당에서 기다리던 일행의 차에 올랐고 그렇게 우리는 진해를 향해 출발했다.
    평소에 나는 스마트폰에 빠져 살지 않는다. 하지만 이 날은 밤에 잠자고 일어나면 보게 될 뉴스 소식에 희망을 품고 기다리며 폰을 손에 꼭 쥐고 잠들었다. 일어나자마자 스마트폰을 보면서 TV를 켰다. 희망은 이내 슬픔으로 바뀌었고 다시 분노로 바뀌었다. 그러나 또 다른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다. 나갈 채비를 하면서, 밥을 먹으면서, 지하철역까지 걸어가면서, 지하철을 타고 가면서 스마트폰을 손에 놓지 않고 계속 소식을 접했다. 혼자 무엇이 문제였을까 고민도 하면서.
    진해에 도착했다. 처음 가본 진해는 산과 바다가 어우러진 아름다운 곳이었다. 그러나 그 풍경을 눈에 담고 저 멀리 서쪽을 보니 이내 풍경을 감상을 하고 있는 나 자신이 어색하게 느껴졌다. 이제 곧 문학카페 유랑극장이 시작될 것이다. 결코 가볍지 않은 걸음으로 행사장인 진해구민회관 2층으로 올라갔다.
    이 날의 강연 주제는 ‘애틋하고도 충만스러운 그 한껏 기다림에 서로 몸 담그기’였다. 이 주제는 오늘 어찌나 마음에 와 닿던지 온 마음을 다해 강연을 들었다. 정일근 시인의 시 대부분은 기다림에 관한 것이었다. 이 기다림에 대하여 홍윤기 철학가가 깊이 분석하여 우리에게 그 기다림이 어떤 기다림인지 꺼내 보여주었다. 오랫동안 정일근 시인의 시를 접하며 깊이 연구하여 우리에게 꺼내 보여준다는 느낌을 받았으며 강연 내용 또한 그대로 마음속에 들어왔다. 그러면서 우리는 그 기다림이 저 멀리 진도에 가 닿기를 바라고 또 바랐다. 초대 시인과 철학가도, 행사 스태프들도, 관객들도 모두 간절히 빌었을 것이다.
    이 날의 행사는 들뜬 마음과 재미와 웃음보다는 모두들 숙연한 마음으로 정일근 시인의 시를 접하고 홍윤기 철학가의 강연을 들었다. 중간에 고등학생들이 나와서 시인의 시를 바꾸고 창작을 해보는 시간을 가졌는데 교복 입은 이들만 봐도 어찌나 마음이 짠하던지. 아이들이 기다림에 대하여 말하니 슬픔은 배가 되어 다가왔다. 그래도 산 사람은 어찌 살아간다고 나는 이 날도 밥을 먹고 이야기도 하고 조금 웃어도 가며 할 일을 다 했다. 그래도 마음 한편에 남아 있는 아림은 나를 떠나지 않았고 밥을 먹고 이야기를 하고 조금 웃어도 가며 할 일을 할 때 죄책감마저 들었다. 이 죄책감이 모든 사람에게 전해져 빨리 구조작업에 열중하고 한 명이라도 살아오길 바랐다. 우리에게는 너무도 절실한 화두였다.
    이토록 애가 타서 누군가를 기다려 본 적이 없었다. 그 기다림이 이 행사를 채웠고 그 기다림을 간절히 바라다 보니 어느덧 행사의 막바지가 다가왔다. 진행을 맡은 이은선 작가도 그 기다림을 우리에게 전했다. 기적을 믿고, 아직도 당신들의 생환을 기다리고 있다는 이은선 작가의 말에 관객들 일부는 눈물을 흘렸고 사진을 찍던 나도 남몰래 눈물을 훔쳤다. 행사는 모두의 마음을 담아 마무리되었고, 이날따라 집에 오는 길은 유난히 힘들었다. 하지만 기다림에 대해 모두와 마음을 나눈 자리가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혼자보다는 모두가 모여 생환을 바라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나는 아직도 모두의 무사 귀환을 기다리고 있다. 사망자들의 명복을 빈다. 미안하고, 미안하고 또 미안해서 사랑한다는 말도 제대로 못 하는 내 자신이 참 작게만 느껴지는 나날이다.

 

진해_이은선-2

 

 

 

 

   《문장웹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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