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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로니에백일장 우수상_아동문학]푸른 눈동자, 윤석이

  • 작성일 2013-11-01
  • 조회수 824

[마로니에백일장 우수상_아동문학]

 

 

푸른 눈동자, 윤석이

 

 

이득자

 

 

 

 

    아빠가 “어머니 연락드릴게요.” 하고는 서둘러 자동차에 올라탔다. 할머니와 나만 남았다.
    “할머니, 뒷산에 갔다 와도 돼요?” 내가 물었다. 할머니는 위험하니까 옆집에 사는 진수랑 같이 가라고 했다.
    진수는 나보다 키가 한 뼘이나 크다. 그것도 아빠 손으로. 무엇보다 나는 나를 푸른 눈깔이라고 부르는 진수 자식이 싫다.
    “치, 싫어요. 나 혼자 갈 수 있어요.”
    나는 할머니에게 퉁명스럽게 대답하고 동네가 훤히 보이는 뒷산 꼭대기에 올라갔다.
    “엄마아아, 아빠아아.” 나는 입에 손을 대고 엄마, 아빠를 불렀다. 엄마가 그랬다. 할머니 집에 잠깐 있으면 동생 낳고 아빠랑 온다고.
    한 번 더 엄마 아빠를 부르려고 할 때였다.
    “에이, 여기 있었네. 한참 찾았잖아.”
    진수였다. 진수는 키도 더 커지고 덩치도 더 커졌다. 나는 나도 모르게 눈을 홱 돌렸다.
    내가 계속 본 체 만 체하자, “야, 푸른 눈깔. 여기서 뭐 하냐고.” 하면서 진수가 성큼 다가왔다.
    명절에 우리 가족이 할머니 집에 오면 마을 사람들은 나와 엄마를 구경하러 오곤 했다. 엄마가 서툰 한국말로 인사를 하면 신기하게 쳐다보았다.
    “푸른 눈깔로 보는 마을은 어떻노? 온통 푸르나? 아니면 푸르스름하나?”
    진수가 바로 앞까지 와서 비아냥거렸다.
    “그래, 푸르다 못해 퍼렇다. 어쩔래.” 저절로 내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그냥 무시하고 가려고 하는데, 진수가 내 앞을 가로막았다.
    “심심한데 같이 놀자. 너랑 나랑은 친구잖아.”
    친구 좋아하네. 내 이름도 모르면서.
    “너 내 이름 알아?” 내가 물었다.
    “네 이름? 알아야 하냐? 푸른 눈깔이라고 부르면 되지.”
    진수가 또 푸른 눈깔이라고 했다. 한 번만 더 푸른 눈깔이라고 놀리면 가만 안 놔둘 테다.
    “비켜, 갈 거야.” 진수를 밀쳤다. 그런 나를 진수가 그냥 놔둘 리 없었다.
    “그럼 나랑 내기해. 이기면 이름 불러 줄게.”
    솔깃했지만 당연히 들어야 할 이름을 꼭 이렇게 들어야 하는지 잠시 망설여졌다. 진수 심보로 봐서 무슨 내기를 하자고 할지 몰랐다. 진수가 이어서 계속 말했다.
    “동생도 푸른 눈깔로 태어나냐?”
    갑자기 내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나한테 하는 짓도 모자라 동생한테까지 그런다고 생각하니 화가 났다.
    “그래 좋아. 무슨 내기 할 건데?”
    턱을 내밀고 내가 말했다. 꼭 진수 자식 코를 납작하게 해줄 테다 꼭!
    진수를 따라간 언덕에는 비료 포대가 뒹굴고 있었다. 한 백 미터쯤은 멈추지 않고 미끄러져 내려갈 수 있는 길이 보였다. 아빠와 탔던 썰매하고는 너무 달랐다. 바람이 불어 몸이 움츠러들었다. 우리는 밑에 있는 나무까지 먼저 가는 사람이 이기는 걸로 정하고 출발선에 비료 포대를 깔고 앉았다.
    “셋에 출발하는 거다. 알았지?” 진수가 소리쳤다.
    “좋아!” 나는 쿵덕쿵덕 뛰는 소리를 진수에게 들키기 싫어 일부러 더 크게 소리쳤다.
    “하나, 둘, 셋!”
    진수가 먼저 미끄러지듯 내려갔다. 나도 질세라 바로 뒤따라 내려갔다.
    “으아아아아악!” 내 비명소리와 함께 흙이 섞인 하얀 눈거품이 따라왔다.
    절반쯤 지날 때였다.
    ‘찌지직’ 비료 포대 찢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찢어진 비료 포대가 점점 느려지더니 그대로 딱 멈춰 섰다. 그 사이 진수가 먼저 나무까지 내려갔다. 진수가 이겼다.
    “내가 이겼지? 푸른 눈깔.” 진수는 으스대며 산을 내려갔다.
    “내일 이 시간에 또 해!”
    나는 내려가는 진수 자식 뒤통수에 대고 으름장을 놓았다. 언덕을 올려다보았다. 푸른 하늘이 보였다. 내 눈처럼 파랗고 푸른 하늘. 엄마 눈처럼 예쁜 하늘이다.
    “어데 갔다 왔노. 진수가 니 찾던데.” 할머니가 내 바지를 툭툭 털어 주면서 말했다. 나는 입을 삐쭉 내밀었다.
    ‘치, 찾으면 뭐 하노. 진수 자식 두고 보자.’
    다음날, 나는 아침을 얼른 먹고 제일 튼튼해 보이는 비료 포대를 골라 진수보다 빨리 언덕에 올랐다. 튼튼한 비료 포대는 눈도 뜨지도 못할 만큼 빨랐다. 오르락 내리락 연습을 했더니 땀이 났다.
    잠시 후 휘파람 소리가 나더니 진수가 나타났다. 진수 손에도 비료 포대가 들려 있었다.
    “연습은 많이 했냐? 푸른 눈깔.”
    여전히 진수는 내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우리는 어제처럼 셋을 세고 출발했다. 이번엔 어제처럼 당하지 않을 테다. 나는 몸을 뒤로 젖혀 빠르게 내려가는 진수를 따라잡았다.
    휙 하고 바람소리가 났다. 당황한 진수가 내 팔을 확 잡아끌었다.
    “어어어어…….”
    비료 포대를 놓친 나는 그대로 눈 바닥에 나뒹굴었다. 얼굴과 무릎이 까져 쓰라렸다. 머리에서 피가 났다.
    “아야, 피 나잖아 피!” 내가 비틀거리면서 일어났다. 진수가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그러고는 몇 발짝 뒤로 걷더니 뒤도 안 보고 뛰어 내려갔다. 비겁한 자식.
    나는 쩔뚝거리며 산을 내려갔다. 눈물이 났다.
    “오메메. 내 강아지 누가 이래 놨냐.” 할머니가 내 얼굴을 요리조리 살폈다.
    “산에서 놀다가 미끄러졌어요.” 나는 얼렁뚱땅 얼버무렸다. 호랑이 우리 할머니한테 일러버릴까? 나는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밤늦은 시간에 진수 자식이 고구마를 들고 왔다. 진수 엄마가 갖다 주라고 시킨 모양이다. 억지로 온 진수 얼굴이 볼 만했다.
    “고구마 먹어 봐. 아주 맛있어.” 진수가 슬금슬금 내 눈치를 봤다.
    “진수 니 윤석이한테 뭐 잘못했노? 와 윤석이한테 착 달라붙었노?” 수상쩍은 진수를 보더니 할머니가 한마디 했다. 덩치 큰 진수가 쩔쩔매는 걸 보니 조금 고소했다. 마침 엄마에게 연락이 왔다. 나에게 형아 됐다고 했다. 날 형아라고 부르는 동생이 생겼다.
    “엄마, 근데 동생 눈도 파래?” 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엄마는 나를 닮았다고 했다. 진수 얼굴을 쳐다보았다. 영문도 모르는 진수가 나를 보고 시익 웃었다.
    전화를 끊고 나서 비장한 표정으로 내가 말했다.
    “내일 또 시합해. 이번에도 그러면 가만 안 둘 거야. 절대로!”
    내가 눈을 부릅뜨고 진수를 노려봤다.
    살짝 당황해하는 진수에게 계속 말했다.
    “그리고! 진수 넌 푸른 눈동자 가진 동생 없지? 난 있다. 부럽지?”
    고구마를 먹고 있던 진수가 놀라 캑캑거렸다.
    어슴푸레 푸른 달빛이 웃고 있는 나를 비춰 주고 있었다.

 

 

 

=== 수상소감 ===


    훌륭한 작가를 많이 배출한 ‘마로니에전국여성백일장’에서 상을 받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우수로 뽑혔을 때 안도감과 실망감이 교차하는데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이 상은 다시 시작하라는 의미로 내게는 너무나 큰 상입니다. 부족한 글이지만 애썼다고 다독여 주는 심사위원님들께 감사드립니다.
    글 쓰는 게 왜 이렇게 힘든지, 게으름도 참 많이 피웠습니다. 앞으로는 끈기와 용기를 갖고 더 열심히, 부지런히 공부하며 쓰겠습니다. 주인공의 마음속을 들여다보고, 세상과 마주하는 아이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는 글을 쓰도록 하겠습니다. 동화의 길에 한 걸음 더 내딛게 해준 분들께 너무도 감사드립니다.

 

 

 

    《문장웹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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