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대한민국 태극기이 누리집은 대한민국 공식 전자정부 누리집입니다.

공식 누리집 주소 확인하기

go.kr 주소를 사용하는 누리집은 대한민국 정부기관이 관리하는 누리집입니다.
이 밖에 or.kr 또는 .kr등 다른 도메인 주소를 사용하고 있다면 아래 URL에서 도메인 주소를 확인해 보세요.
운영중인 공식 누리집보기

여러 도시, 친구, 이별을 통과하기

  • 작성일 2013-04-01
  • 조회수 739


여러 도시, 친구, 이별을 통과하기

 

김성중 

 

 

 

 

   트리니다드로 올라와 한국에서 온 L을 만났다. L은 나처럼 아르코 해외 레지던스 프로그램으로 쿠바에 온 사진작가인데, 일정이 맞아 합류한 것이다. 우리 네 명(L과 큐레이터인 H, 요가 강사인 C)은 트리니다드에서 자주 어울려 앙콘 해변도 가고 동굴 나이트도 갔는데, 랍스터에 와인(둘 다 쿠바에서는 무척 싸다)을 사다 원 없이 먹었다. 숙소에서 만나 친해진 C는 이때부터 일주일간 나의 길동무가 되어 주었는데, 요가 강사라는 직업이 세계 어디에서도 일자리 얻기가 쉽다는 사실을 새로이 알았다. 마요르 광장에서 밤마다 펼쳐지는 공연들, 하이킹에서 만난 서양 친구들, 태풍이 오면 스스로 잎을 뒤집어 준비하는 나무 이야기를 마음의 필름에 찍는 동안 시간은 금세 흘러갔다. C와 나는 산타클라라의 체 기념관에도 같이 갔으나 거기까지만 여정이 같아서 헤어져야 했다. 차를 타고 먼저 떠나오는 동안 조그맣게 멀어지는 C의 모습을 보자 여행의 시간이 실감났다. 끊임없이 만나고 헤어지는 일을 반복하게 될 터인데, 스물네 시간 내내 붙어 지내던 친구와 헤어지는 일에 익숙해지기란 쉽지 않을 것 같다.
   산타클라라에서 비냘레스까지는 혼자 갔고, 내내 혼자 머물렀다. 비냘레스는 공룡이 나올 법한 원시적인 풍광을 지닌 곳인데, 마을 끝쪽의 산에는 거대한 인디안 그림도 남아 있다. 나는 숙소에서 소개시켜 준 일일투어를 통해 난생처음 말을 타고 이 풍경을 둘러보았는데, 말을 계속 다섯 시간 타고 나무들과 담배농장, 계곡, 동굴을 둘러보는 동안 종아리 안쪽과 복숭아뼈 안쪽에 멍이 들었다. 내가 탄 말은 성질이 드센 놈이어서 길가의 맛있는 풀만 보면 뜯어먹기 바쁘고, 누가 앞장서는 꼴을 못 봐서 머리를 마구 밀치고 달려가고, 남의 꽁무니를 쫓아가야 하는 순간이면 하염없이 느릿느릿 걷고, 하여튼 큰 짐승이 말을 듣지 않자 작은 짐승인 나는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타다 보니 요령이 생겨 열심히 칭찬해 주고, 고삐도 좀 바짝 쥐자 순해져서 나중에는 헤어질 때 서로 아쉬워했다(분명히 이 말도 아쉬워하는 것 같았다).
   아바나에 돌아와서 남미로 가기 전에 다시 며칠을 보냈다. 남미로 함께 넘어갈 길동무를 열심히 물색하던 나는 만나는 사람마다 “나랑 에콰도르 같이 갈래?”라는 소리를 하고 다녔다. 물론 아무도 반응하지 않았다. 그런데 최초로 반응을 보인 사람이 나타났는데 다만 조건이 있었다. 장기여행자인 A와 Q는 멕시코를 거쳐 남미로 갈 계획이어서 나에게 키토 항공권을 바꿔서 멕시코에 보름 정도 머물다 함께 내려가자는 제안을 한 것이다.
   그날 오후 나는 산테리아(가톨릭+부두교) 신도인 살사 선생님에게 타로점을 봤다. 타로점은 난생처음 보는데, 기묘하고 조잡하게 생긴 종교기물을 늘어놓고 향을 피운 후 내가 뽑은 카드를 해석해 주었다. 산테리아 아줌마의 말에 따르면 A와 Q를 따라가면 멋진 여행이 될 것이고 글의 소재도 많이 얻게 될 것이라 한다. 물론 이 말을 100% 믿는 것은 아니었으나 내가 중요한 글을 쓰게 될 것이며, 그로 인해 경제적 곤경(?)에서 벗어난다고 하니 멋진 점괘를 믿고 싶은 맘이 들 수밖에.
   그리하여 느닷없이 내 여행 일정에 멕시코가 추가되었다. 다음날 나는 항공사에 가서 21만 원짜리 멕시코 비행기 티켓을 샀다. 아바나에서 멕시코시티까지 한 시간 반밖에 걸리지 않아서 티켓이 비싸지 않았다.
   떠날 준비를 마치자 온갖 이별이 남아 있었다. 쿠바 친구들, 한국 친구들, 아나 아줌마네 식구들과 헤어질 시간이 다가왔다. 공항에 데려다줄 택시가 현관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문득 플로리 아줌마를 보니 그 예쁜 눈에 눈물이 가득 고여 있었다. 언제든 이 집으로 오라고, 이곳은 너의 집이라고 말해 주는 아나 아줌마 역시 울고 있었는데, 나 또한 울었기 때문이다. 한국 친구들과 헤어지는 일은 나중의 만남을 기약할 수 있어서 그렇게 슬프지 않았는데, 이 집 식구들과 헤어질 때는 지금이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내가 다시 쿠바에 올 수 있을까? 이들을 만날 수 있을까? 아스투르발 아저씨도 아나 아줌마도 연세가 적지 않은데, 아바나에서 계속 사신다는 보장도 없고……. 하필이면 비가 내리고 있었고, 창밖의 아바나가 흐려지고 있었다. 택시기사에게 부끄러웠지만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
   언젠가 한 쿠바 친구가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corazon limpio(순수한 마음)라고 말해 준 적이 있다. 혼란스럽고 어리둥절한 순간이 많았지만 순수한 마음을 지닌 많은 이들을 만날 수 있었던 쿠바를, 난생처음 여행이 아니라 닻을 내리고 잠깐 살아 본 이 나라를 나는 또 얼마나 그리워하게 될까?
   한 선배에게 쿠바에서 이렇게 메일을 보낸 적이 있다. ‘이상하지. 때때로 멀리 떠나고 싶어. 이렇게 멀리 떠나왔는데도 말이야. 그러니까 ‘먼 곳’은 내 마음에만 있는 지명인 것 같아.’
   또다시 ‘먼 곳’으로 떠날 시간이었다. 하늘 길이 멕시코에 닿든 페루에 닿든 내가 가고 싶은 ‘먼 곳’은 어쩌면 하나의 도시, 하나의 ‘상태’인지도 모른다. 접으면 손바닥만큼 작기도 하고, 펼치면 은하보다 더 넓은 ‘먼 곳’으로 가기 위해, 나는 지금 공항 의자에 앉아 있다.

 

 

   《문장웹진 4월호》

 

 

추천 콘텐츠

산책과 가을의 일

[에세이] 산책과 가을의 일 박주영 오랜만에 동네 산책을 했다. 여름이 시작되고는 햇빛이 사라진 밤 산책을 하다가 그나마도 열대야 때문에 멈춘 지 오래되었다. 오늘은 해가 뜨기 전 일어났고 스탠드를 켠 책상에 앉아 소설을 썼다. 어느새 창밖이 밝아지는 걸 보다가 해가 완전히 뜨기 전에 바깥으로 나가 걷기로 했다. 산책은 어슬렁거리며 그냥 걷는 것이지만 소설가의 산책에는 생각이 없을 수 없다. 생각을 하지 않으려는 목적이었다면 달리기를 했을 것이다. 나는 산책과 걷기를 구분해서 다이어리에 기록한다. 산책이 바라보고 생각하며 이동하는 것이라면 걷기는 건강이라는 목적을 가장 염두에 둔 움직임이다. 여름이 아니라면 산책은 주로 오후나 해질 무렵에 한다. 늦게 자고 오전에만 일어나도 뿌듯한 사람이라 일어나자마자 소설을 쓰고 쉴 즈음이 대개 그 시간이기 때문이다. 산책을 하면서 내가 지금까지 쓴 것을 생각하다가 빈틈을 메울 생각이 떠오르기도 하고 다음 장면을 생각하기도 하고 이 소설이 제대로 가고 있는지 고심하기도 한다. 여름 해가 뜨기 전 오래간만에 소설을 생각하며 산책을 한다. 나는 문학 전공도 아니고 소설 쓰기를 배운 적도 없고 주변에 글 쓰는 사람도 없었다. 그래서 소설가가 된 후 소설가를 만날 기회가 생기면 알고 싶은 것들을 질문하곤 했다. 글쓰기가 잘 안 될 때는 어떻게 하느냐는 질문에 대한 2개의 대답을 기억한다. 한 분은 그냥 걷는다, 라고 답했고 한 분은 안 되어도 앉아서 써야지 어떡해, 라고 했다. 두 분 다 그때 20년 가까이 소설을 거뜬히 써온 분이었다. 나는 2개의 답을 지금껏 생각하고 있고 그게 지금의 나에게는 정답이 되었다. 하지만 정답을 안다고 정답대로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나는 자주 책상 앞에서 벗어나고 걷는 것이 아니라 누워 있는다. 그냥 진짜 누워만 있는데, 요즘은 소설 쓰는 일에 자주 지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또 한 분의 조언이 생각난다. 건강을 챙기고 운동을 해라, 그러지 않으면 장편소설을 쓸 수 없다. 여기의 조건은 ‘나이 들수록’이다. 비교적 늦은 나이에 등단했고 처음부터 장편소설을 썼던 나는 그 조언이 그때는 크게 와 닿지 않았다. 나는 이미 젊지도 않고 약해 빠졌는데 장편소설을 쓰는 데 그리 힘이 들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그 조언의 참 의미는 어떤 고비마다 왔다. 나이는 한 살씩 먹는 게 아니라 쌓여 있다가 한꺼번에 온다는 걸을 알게 되었다. 어느 날부터 손목이 아프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허리가 아프기 시작하고 이제 어깨가 아프다. 남들은 여름휴가를 가는 시기 나는 병원을 다녔다. 의사는 어깨 인대가 손상되었다고 했다. 특정 자세를 취하지 말라고 했는데 그 자세는 하필 내가 반평생을 취해 온 자세이다. 지금도 나는 그 자세이다. 자판을 치고 노트에 글을 쓰려면 취할 수밖에 없는 자세. 그리고 의사는 옆으로 눕지 말라고 했다. 그런데 어릴 때부터 나는 그렇게 누운 자세로 책을 읽었다. 너무 크고 두껍고 무거운 책만 그 자세로 읽을

  • 관리자
  • 2024-10-01
다시 서정을 위해

[에세이] 다시 서정을 위해 권상진 스무 살 무렵이었던 것 같다. 서른이 되기 전에 시인이 되겠다고 주변에 떠들고 다녔던 기억이 아슴하다. 「홀로서기」를 외웠고 「지란지교를 꿈꾸며」를 외웠다. 이생진을 읽고 백창우를 읽고 박노해를 읽었다. 잔잔하게 때로는 웅장하게 가슴을 밀고 들어오는 시편들이 심장을 가로세로로 뛰게 만들었다. 백석과 김수영과 기형도의 이름은 몰랐지만 굳이 그들이 아니어도 충만한 시간들이었다. 시집이 이천 원에서 삼천 원 정도 할 때여서 큰 부담 없이 고를 수 있었고 외출할 때 시집 한 권을 들고 밖을 나서도 아무도 이상하게 쳐다보는 이도 없었다. 오히려 뭇 여성들의 시선이 슬쩍슬쩍 내 턱선을 지나 책장에 닿는 기분을 느낄 수 있어 좋았다. 생일이나 기념일에는 으레 서점에 들러 시집을 골랐다. 『넌 가끔가다 내 생각을 하지 난 가끔가다 딴 생각을 해』(원태연),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류시화), 『친구가 화장실에 갔을 때』(신진호) 같은 시집을 골라 슬쩍 건네던 날들이 아련하다. 스물이라는, 가라앉을 것 하나 없는 맑은 감정에서 속살거리는 말들을 시인들은 대신 말해 내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 십 대는 가고 이십 대가 펼쳐지고 있었다. 고등학교 입시에 실패하고 대학을 쫓겨나 군대를 다녀오고 나니 어느새 아무데도 기댈 수 없는 성인이 되어 있었다. 오래된 가난이 불편하지는 않았지만 그때부터 가난은 나를 가만히 두지를 않았다. 공장 일을 시작했는데 처음 해보는 노동이란 게 미치도록 좋았다. 종일 몸을 쓰고 땀을 흘리는 일이 알 수 없는 쾌감을 안겨 주었고 월급이라는 보상까지 덤으로 안겨 주었다. 시를 읽고 쓰는 일만큼 일이 재미있었고 누구의 도움 없이 혼자서도 살아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더없이 좋았다. 지쳐 잠들기 전 문득 돌아본 시의 한때는 짧은 여행지의 추억처럼 아득하기만 했다. 나의 스물은 급류처럼 흘러갔고 시는 둑 너머에 있어 쉽게 손이 닿지 않았다. 하지만 일과 돈, 그리고 자립의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노동은 즐겁고 땀은 향기로웠지만 갑자기 내가 꿈꾸던 삶이 이런 것이었던가 하는 질문이 나를 툭 한 번 치고 갔다. 해지는 풍경만 봐도 맥박이 난동을 부리고 꽃과 낙엽의 표정을 살피면 왠지 모를 눈물이 맺히던 한 시절의 기억이 불현듯 피곤에 지친 등을 흔들어 깨웠다. 시인이 되겠다던 꿈을 무참히 짓밟고 나를 공장 노동자로 내몰았던 대학교 재단 이사장의 말이 떠올랐다. ‘약속은 지키면 좋은 것이고 못 지키면 어쩔 수 없는 일’이라던 그의 말. 그가 지키지 않은 약속 때문에 학교에서 쫓겨난 나는 궤도를 이탈해 버린 행성처럼 어둠 속으로 무작정 떠밀려가고 있었다. 막막한 혼돈 속으로 나를 밀어 넣었던 약속이란 단어가 다시 나를 수습하고 있었다. 시간은 이미 서른을 지나갔고 아무도 내게 왜 약속을 지키지 않느냐고 물어 보는 이는 없었지만 스스로와의 약속은 끝내 지켜주고 싶었다. 그렇게 시가 다시 내게로 왔다. 세월도 변했고 시도 변해

  • 관리자
  • 2024-10-01
과거를 보는 미래 SF

[에세이] 과거를 보는 미래 SF 곽재식 며칠 전 나는 한 행사에서 SF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소개하는 발표를 하나 맡게 되었다. 발표가 다 끝나고 질문 답변 시간이 되었는데 청중 중 한 분이 “SF라면 미래를 생각해 봐야 하는데, 왜 옛날 SF를 소개했느냐?”라고 질문했다. 그날 행사 중에는 답변을 짧게 드렸지만 이 내용은 한번 깊게 따져 볼 만한 재미난 주제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오늘은 그 이야기를 한번 해보려고 한다. 명작 SF로 자주 손꼽히는 1970년대 영화로 <>이라는 할리우드 영화가 있다. 찰턴 헤스턴이 주연을 맡아 대형 영화사에서 배급한 그야말로 정통 할리우드 영화인데 그러면서도 비참한 미래의 모습을 예상해서 보여주는 내용이다. 그 결말도 뻔한 할리우드 영화의 행복한 결말이라고 말하기는 매우 어려운 방향으로 흘러가기에 눈에 뜨이는 영화이기도 하다. 맨 마지막에 주인공이 외치는 대사는 SF 영화사에서 유명한 대사 순위를 꼽으면 상위권에 자주 오를 만큼 잘 알려져 있기도 하다.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미래는 인구가 너무나 빠르게 늘어났기 때문에 멸망해 가고 있는 세상이다. 인구가 너무나 많은 데 비해 식량과 자원은 부족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굶주리고 모든 물자가 부족해 다들 비참하게 살고 있다. 영화 제목인 “소일렌트 그린”이란 식량이 부족한 세상에서 특별히 개발해 보급 중인 신형 인공 식품을 말한다. 그러므로 <>은 19세기 맬서스의 등장 이후 수많은 사람들이 미래 인류의 멸망 시나리오라고 철석같이 밀었던, 맬서스 함정을 정통으로 다룬 영화다.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하는데,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성장한다.”라는 말은 어지간하면 한 번쯤 들어 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지구는 망한다, 그러니 사람이 많은 것은 해악이다, 라는 말을 하는 사람을 본 적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런 생각은 곧 “사람이 곧 모든 파괴의 근원이며, 사람이 없어져야 지구가 살아난다.”는 생각으로도 자주 이어지기도 한다. 재미난 사실은 이 영화에서 다루는 멸망해 가는 미래가 2022년이라는 점이다. <>은 1973년에 개봉된 영화이므로 이 영화에서 말하는 2022년이란 영화가 제작되던 1972년으로부터 50년 후를 말하는 이야기일 것이다. 그런데 이 SF 영화에서 말하는 2022년의 미래라는 시간은, 2024년을 사는 현대의 우리에게는 2년 전의 과거가 되었다. 나는 영화를 보는 과정에서 이렇게 시간의 꼬임을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이 굉장히 신비롭다. 게다가 요즘 이 영화의 내용을 보다 보면 더욱 중요한 사실도 깨달을 수 있다. 실제 2022년이 인구가 너무 많아 식량 부족으로 멸망하는 시간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우리가 겪고 있는 2020년대는 인구가 너무 많은 것이 문제가 아니라 인구 감소와 초고령화가 문제인 시대다. 이러한 현상은 한국만 겪고 있는 문제도 아니다. 한국에서 인구 문제가 워낙 극심하게 나타나

  • 관리자
  • 2024-10-01

댓글 남기기

로그인후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을 남겨 주세요!

댓글남기기 작성 가이드

  •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는 욕설, 비방 등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주제와 관련 없거나 부적절한 홍보 내용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기타 운영 정책에 어긋나는 내용이 포함될 경우, 사전 고지 없이 노출 제한될 수 있습니다.
0 / 1500

댓글0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