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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의 미래? 한국문학의 미래!!!

  • 작성일 2012-12-21
  • 조회수 1,169


   [새 문장에 바란다]

 

 

〈문장〉의 미래? 한국 문학의 미래!!!

 

최창근

(극작가 겸 연출가)

 

 

 

 

 

 

   사이버문학광장이 개통한 지 벌써 8년이 지났네요. 어느새 그렇게 됐어요. 저는 〈문장〉이 처음 만들어질 당시 ‘문장의 소리─행복한 문학여행’의 초대 프로듀서를 맡으면서 직접적인 연을 맺게 됐는데요, 그때가 바로 엊그제 같은데 벌써 8년이라니 도무지 실감이 나질 않아요. 서른 중반이던 저도 이제 마흔으로 접어들었으니 시간이 흐르긴 흐른 걸 텐데 말이에요.

   국내 최초의 인터넷 문학라디오(?)라는 다소 거창한 타이틀로 시작한 ‘문장의 소리’도 300회를 훌쩍 넘겼으니 곧 있으면 400회, 500회를 맞을 날도 오겠지요. 〈문장〉 역시 10주년을 눈앞에 두고 있으니까요. 처음 〈문장〉이 개통될 때만 하더라도 이렇게 오래 지속적으로 그것도 매번 새롭게 그 모습을 바꿔 가면서 지금, 여기까지 오게 되리라 예상했던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을 텐데요, 그냥 인사치레가 아니라 한 해 두 해 역사가 쌓이는 것이 참으로 대견하고 가슴 뿌듯하네요. 물론 〈문장〉이 여기까지 오는 데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고생했던 분들의 수고와 헌신이 있었기 때문이겠지요. 이 세상에 저절로 이루어지는 일은 없으니까요.

   ‘문장의 소리’ 피디를 그만둔 후에도 ‘문학나눔콘서트’ 연출이나 ‘문학집배원’ 연출로, ‘글틴’과 ‘문장웹진’의 기고자로 인연은 계속 이어졌는데요, 이제 〈문장〉은 문단 안에서도 제법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됐기 때문에 〈문장〉이 존재해야 하는 의미도 예전보다 커졌다고 봐야겠어요. 국민의 세금만으로 운영되는 국내에서 거의 유일한 문학 포털 사이트라는 자부심은 국민주로 발간되는 한겨레신문의 사례와도 비견될 만한 것이지요. 그런데 그러한 〈문장〉이 다시 한 번 새롭게 변신을 준비 중이라고 하네요. 그래서 여기 새 〈문장〉에 관한 바람을 몇 마디 적어 보려고 합니다.

   늘 하는 말이지만 〈문장〉은 문단의 어떤 특정한 이념이나 정파를 떠나 어느 한 곳에 치우치지 않는 공정한 문학의 광장으로 남았으면 좋겠어요. 이름 그대로 좁고 컴컴한 ‘개인의 밀실’이 아닌 드넓게 열려 있는 ‘만인의 광장’으로요. 문학을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러한 열정 하나만으로 자유롭게 만나 문학에 관한 이야기들을 나누고 다 같이 친구가 될 수 있는 문턱이 없고 품이 너른 따뜻한 보금자리를 만드는 것이지요. 또 이미 유명해져 많은 일반인이 알고 있는 문인들보다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하게 열심히 글을 쓰는 작가들로 독자들과 만날 기회가 별로 없는 이들에게 좀 더 많은 기회와 지면이 할애됐으면 하고요. 정말 필요한 작가들에게 필요한 자리를 마련해 주는 것이지요.

   지나간 10여 년에 더해 앞으로의 10년 그리고 20년, 무한하게 발전할 〈문장〉의 유쾌, 상쾌, 통쾌한 미래를 그려 보면서 이 글은 ‘문장의 소리’가 출발할 당시 내걸었던 선언문의 일부를 소개하면서 마치려고 해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요렇게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런 의미에서 〈문장〉, 파이팅!

 

   ‘행복한 문학여행’은 우선 문학을 아끼고 사랑하는 청취자분들이 편안하게 들을 수 있는 방송을 지향해 나가겠습니다. 창작자인 작가와 향수자인 독자 사이에 놓여 있는 보이지 않는 벽을 허물고 서로가 서로에게 물과 공기 같은 존재, 없어서는 안 될 절친한 벗 같은 친밀한 존재로 남을 수 있도록 관계의 촘촘한 그물망을 엮어 나가는 거멀못 노릇을 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문학이라는 이름으로 이 땅에 숨 쉬고 있는 길가에 구르는 보잘 것 없는 돌멩이 하나, 이곳저곳을 날아다니는 연약한 풀씨 하나의 고귀함을 생각하며 그 모든 고유명사와 보통명사들의 살아 있음에 넉넉히 입 맞추겠습니다. 문학이라는 이름으로 존재하는 모든 이들이 편하게 들어와서 여유 있게 쉬었다 갈 수 있는 푸근한 안식처를 마련하겠습니다.

  문학이 문학의 본질과 고유한 영역을 지켜 나가면서도 인접 문화예술 장르와의 연계 고리를 통해 문학의 외연을 보다 깊고 넓게 확장시켜 나가는 일에 주저하지 않겠습니다. 나아가 이 사회의 불합리한 모순과 불편부당한 사건들에 대한 문학적인 응전의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펼쳐 보이겠습니다. 시대의 약자와 소외된 이들, 소수자의 권리에 대한 옹호와 지지를 통해 만인이 자유롭고 평등하게 잘살 수 있는 세상에 대한 믿음과 그에 부합하는 문학의 궁극적인 존재 이유와 가치를 환기시켜 나가겠습니다.

   또한 드넓고 푸른 바다 위에 점점이 떨어져 숨을 쉬는 외딴 섬처럼 지금 우리가 발을 딛고 서 있는 이 행성이 아닌 저 머나먼 별을 향하여 저 홀로 묵묵히 주파수를 쏘아올리고 있는 동시대의 가장 신선하고 패기만만한 젊은 문학이 청취자들과 자유롭게 만나 당당하게 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자리를 지속적으로 마련하겠습니다.

   끝으로 인터넷 라디오 방송이라는 장점을 최대한 활용하여 눈으로 보는 데 익숙해진 독자 여러분께 귀로 듣는 즐거움을 선사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아울러 상상력의 확장이라는 측면에서 방송을 듣는 청취자들에게 시각매체에서는 느낄 수 없는 문학의 전문성과 대중성을 골고루 맛볼 수 있도록 다양하고 풍요로운 문학세계를 열어 드리려 합니다.

 

   《문장웹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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