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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 활용법

  • 작성일 2012-12-08
  • 조회수 1,062

 

   [새 문장에 바란다]

 

 

〈문장〉 활용법

 

박형권(시인)

 

 

 

 

 

   2005년 여름이었을 것이다. 나는 바지락조개 양식장에서 일하고 있었다. 물안개 피어오르는 바다에 허리까지만 물에 담고 바지락을 캤다. 바다는 중독성이 있다. 하루도 바닷물이 몸에 닿지 않으면 커피 다섯 잔을 마시던 사람이 갑자기 커피를 끊은 것 같은 느낌에 사로잡힌다. 하지만 그 중독에는 치유의 능력이 있다. 하던 일에서 몇 차례 실패하고 이게 마지막이다 생각하며 풍덩 뛰어든 바다 일로, 거듭된 실패에서 얻은 상처가 나도 모르게 치유되어 가고 있었다. 아마 내가 던져 주는 새우깡을 먹겠다고 매일 찾아오는 갈매기와 일 나갔다가 돌아오는 저녁 배, 바다에 내리는 소나기, 일몰. 제법 튼실한 바지락을 조개집하장에 냈을 때 받는 ‘싱싱한 돈맛’……. 이런 것들이 나를 건강하게 만들었다. 그냥 그대로 바다에 젖어 살면 나 개인의 충일감에 젖어 한 세월 그럭저럭 살다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때 내 나이는 마흔다섯, 포기하기도 어렵고 새로 시작하기도 어려운 나이였다. 몸과 마음이 건강해지자 쭈그러져 있던 의욕이 다시 펴지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자연이 나를 향해 읽어 주는 시가 들리기 시작했다. 나는 스물 몇에 잠깐 꾸었던 꿈을 다시 꾸기 시작했다.

   “시인이 되자.”

   그런데 솔직히 고백하자면 내 인생에서 돈을 주고 시집을 사본 것이 도종환 시인의 『접시꽃 당신』 달랑 한 권이었다. 그리고 학교에서 배운 시 몇 편 그것이 내가 시에 대하여 알고 있는 것의 전부였다. 여러 가지로 부족하였지만 나는 배우면서 쓰겠다는 원칙을 세웠다.

   내가 찾아낸 곳이 〈문장〉이었다.

   회원 가입하고 당장 ‘공모마당’으로 찾아 들어갔다. 나는 시인이 되겠다고 각오하였으므로 솜씨를 뽐내 보는 것이 두렵지 않았다. 하루에 한 편씩 공모마당에 시를 올리는 것은 물론이고 어떤 때는 하루에 두 편 올릴 때도 있었다. 그때 공모마당의 심사위원은 송호필 시인이었다. 그가 내 시에 댓글을 달아 주기 시작했다. 스승이 없는 나에게 그가 달아 주는 촌평은 금과옥조였다. 나는 그와 대화하는 마음으로 시를 썼다. 물론 덜 익은 과일이지만 조금 익은 부위를 골라 그가 베어 물어 주었다. 〈문장〉에서 만날 수 있는 여러 시인들, 모두 살아 있는 나의 영웅들이었다. 그리고 플래시 마당에 실려 있는 김선우 시인의 「목포항」, 말 그대로 시가 내게 왔다. 사진으로 본 김선우 시인은 대단한 미인이기도 하였다. 나는 송호필 시인과 김선우 시인을 스승으로 삼았다. 물론 두 시인이 나보다 나이가 적었지만 그것은 나의 선택이고 나의 자유였다.

   바다에 담겨 조개를 캐다가 떠오르는 것이 있으면 메모해 두었다. 내 머릿속은 온통 시 생각뿐이었다. 일을 마치고 돌아오면 〈문장〉과 마주앉았다. 내 생애에 무엇에 그렇게 몰두하기는 처음이었다. 늦게 타오르는 열정이었다. 그때의 내가 얼마나 황홀한 삶을 살았는가는 시를 좋아하는 당신들은 알 것이다.

   공모마당에서 실력을 뽐내고 ‘문장 블로그’로 돌아오면 얼굴은 모르지만 마음을 열어 놓은 도반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대화하고 정보를 공유했다. noonoo님, 여선님, 밝은숲님, 솔향님, 김승기님, 동글동글밍키, 한설, 선율, 재현이, 빵우…… 빵우는 그때 중학생이었다. 그들도 나의 영웅이었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한 덩이가 되어 즐겁게 놀았다. 그러던 중에 여선님의 연락이 왔다. “시를 공모에 내보는 게 어떻겠어요? 현대시학에서 공모하는 것 같던데.” 아직 실력을 더 쌓아야 할 것 같았지만 그동안 적어 둔 시에서 열 편을 골라냈다. 2006년 4월, 눈이 올 때가 아닌데 눈이 왔다. 그날 당선 연락을 받았다. 절차적인 측면에서 등단하였지만 나는 내가 시인이라고 체감하지 못했다. 〈문장〉에서 무슨 시상식이 있는 날, 계획 없이 그냥 참석했는데, 내가 들어서는 걸 보고 사회를 보던 정우영 시인이 “우리 〈문장〉 출신의 시인 세 분을 소개하겠습니다.” 하더니 하상만 시인과 김산 시인 그리고 나를 소개했다. 그 순간 ‘내가 시인이 되었구나.’ 설렘과 책임감을 동시에 느꼈다. 그 후, 내가 〈문장〉에서 만난 영웅들을 오프라인에서 차례차례 만나기 시작했다. 〈문장〉은 가만히 있었지만 나는 끝없이 〈문장〉을 탐색하고 〈문장〉을 후광으로 삼았다. 나는 그렇게 〈문장〉을 사용했다.

   〈문장〉 활용법을 이야기하려다 내 이야기를 하고 말았다. 〈문장〉이 새 단장을 한다고 한다. 어떻게 변화할지는 나도 모른다. 어쩌면 문학의 배설 기능을 중요시하여 〈문장〉이 변기 뚜껑이 되어버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와서 유용하게 써먹어 주기를 〈문장〉은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시인이 되기 위하여 〈문장〉을 활용했다. 당신은 〈문장〉을 어디에 쓸지 기대된다. 〈문장〉은 또 〈문장〉대로 문학을 아끼는 사람들의 중요한 도구가 되기를 바란다.

 

   《문장웹진 12월호》

 

 

 

   지금 ‘사이버문학광장(www.munjang.or.kr)’은 홈페이지 개편 작업이 한창 진행입니다. (2013. 1. 10 오픈 예정)

   본 내용은 새 '사이버문학광장'에 대한 다양한 기대의 목소리를 담기 위해 마련했습니다. 올 12월과 내년 1월 두 달에 걸쳐, 각 분야 다양한 필자의 글이 릴레이로 연재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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