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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 이야기

  • 작성일 2011-07-11
  • 조회수 1,345

 

최창근의 쉽고 재밌는 희곡 이야기(첫번째)

 

최창근(극작가)

 

 

 

 

 

성과 속의 경계에서 떠도는 영혼들의 축제

─ 『그리고 또 하루』, 최명숙, 평민사, 2009

 

2001년 첫 희곡으로 문단과 연극판에 데뷔한 이래 내가 매년 빼놓지 않고 하는 일이 있다. 하나는 그해 신춘문예로 등단하거나 여러 공모를 통해 연극계에 발을 들여놓은 신인작가들의 희곡을 구해 읽는 일이고 또 하나는 책방에 나가 갓 출간된 극작가들의 희곡집을 정독하는 일이다. 그와 병행해서 새로 출판된 연극비평가들의 비평집 역시 기꺼운 마음으로 즐겨 훑어보는 습관이 어느 샌가 몸에 배었다.

그러다가 눈에 번쩍 띄는 희곡이나 비평들을 발견하게 되면 그 글을 쓴 작가를 만나 작품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진다. 그런데 시나 소설에 비해 희곡은 그런 유쾌한 ‘만남’을 자극하는 경우가 참으로 드물다. 굳이 꼽자면 그동안의 신춘문예 당선작 중에서는 안은영의 「창 달린 방」, 강석현의 「아이야, 청산 가자」, 정미진의 「항아리의 꿈」, 이오의 「아일랜드행 소포」, 김은성의 「시동라사」, 이양구의 「별방」, 김나정의 「여기서 먼가요?」, 조연미의 「꿈꾸는 심해어」 들이 특별하게 문학적인 느낌이 묻어나는 작품으로 다가왔었다. 다른 경로를 통해 데뷔한 작가로는 고재귀나 조현진, 지경화, 문정연, 이시원 같은 이들의 어떤 희곡들이 품고 있는 독특한 상상력이 좋았다.

‘고수는 고수를 알아본다.’는 말처럼 ‘작가는 작가를 알아본다.’는 말이 있다. 최명숙의 희곡은 ‘내 곁에도 이런 괜찮은 극작가가 있었구나!’ 하는 놀라움과 함께 오랜만에 문학다운 희곡을 읽는 재미를 톡톡히 안겨 준 사례에 속한다. 별 기대 없이 무심코 펼쳐든 희곡집에서 한 편의 희곡을 읽고 난 다음 다른 작품이 궁금해서 또 한 편을 읽게 되고 그 희곡을 읽고 난 후에 또다시 나머지 희곡들을 읽게 되어 나중에는 처음 앉은 자리에서 희곡집에 수록된 모든 희곡들을 읽게 되는 경우는 짧지 않은 독서체험을 돌이켜봐도 그렇게 흔한 경우가 아니었다.

희곡집에 실려 있는 작품들을 다 읽고 나서 바로 작가에게 전화를 넣어 독후감을 솔직하게 털어놓은 것은 물론이었다. 믿을 만한 동료작가 한 사람을 새로 얻었다는 즐거움은 내게도 그동안 잠자고 있던 희곡 창작에 대한 열망과 의지를 불러일으켰다. 그전에는 단순히 가까운 친구로만 알고 지냈던 사이가 하나의 세계를 품은 극작가와 극작가의 관계로 더 끈끈하고 밀접하게 맺어지고 연결된 행복한 체험에 속한다고나 할까.

단언하자면 최명숙의 희곡은 소설 같다. 희곡이 소설 같다는 말은 작가 자신에게는 큰 미덕으로 여겨질 수도 있고 그 반대로 심각한 결함으로 다가올 수도 있으리라. 그 말은 그의 희곡이 우리가 일반적으로 교과서로 삼는 희곡들의 경향과는 조금은 다른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는 얘기일 듯하다. 사실 계몽적이고 교훈적인 그래서 판에 박힌 박제된 희곡들이 주위에는 얼마나 많은가. 또 이런저런 심사에서 그런 모범 답안 같은 심사평을 늘어놓는 심사위원들은 그보다 더 많지 않은가.

최명숙이 전반적인 의미에서 글 자체에 대한 빼어난 감각이 있는 뛰어난 문장가라고 얘기하긴 어려울 듯하다. 그러나 극작가로서의 그에겐 동시대의 다른 젊은 작가들과는 구별되는 탁월한 면이 존재한다. 그의 희곡에서 우선적으로 돋보이는 것은 시공간에 대한 선명한 이해와 음악적인 리듬감이다. 어떻게 보면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유려한 흐름이 전체 희곡을 관통하고 있다. 그런데도 그 희곡이 영화적이라기보다는 문학적으로 느껴지는 이유는 일반적인 희곡에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시적인 지문과 일상적이면서도 철학적인 대사들 그리고 깊이 있고 독창적인 주제의식 때문일 것이다. 그러면서도 결코 낡지 않은 현대적인 감수성이 작품 곳곳에 녹아 있다.

첫 희곡집인 『그리고 또 하루』에는 신춘문예 등단작인 「두 아이」를 포함하여 모두 여덟 편의 희곡이 실려 있다. 그런데 그중에서 지금까지 공연된 희곡은 등단작을 제외하면 고작 세 편─「표현의 자유」, 「처음 해본 이야기」, 「모텔 ‘피아노’」─에 불과하다. 희곡낭독공연을 거친 「사랑해선 안 될」까지 넣는다고 해도 네 편이다. 공연의 성과와는 관계없이 다른 연출가의 손에 의해 어찌 됐든 무대에 올라간 작품은 「표현의 자유」와 「모텔 ‘피아노’」 단 두 편이다. 나머지 한 편인 「처음 해본 이야기」는 작가 자신이 스스로 무대 위에 올리면서 공식적으로 연출가 겸업을 선언하고 나선 경우에 해당한다. 등단 칠 년 차의 신인임을 감안하더라도 희곡의 완성도에 비하면 이해가 가지 않을 정도로 많은 작품들이 공연되어지지 못했다고 볼 수 있다.

언뜻 보기에 이상한 점이 또 있다. 보통 희곡집의 경우 네 편이나 다섯 편의 작품을 싣는 것에 비해 한꺼번에 여덟 편을 실었다. 수록 희곡 수가 많은 편이다. 두 번의 희곡집에 나누어 실을 분량의 작품들을 한 희곡집에 몰아넣은 인상이 짙다. 아마도 작가 자신은 희곡이 공연이 잘 안 되다 보니 우선 지면을 통해서나마 독자들과 만나고 싶은 생각이 컸으리라. 좋은 희곡을 발굴하는 것은 연극의 제작을 맡은 극단과 연출가의 권리이자 책임인데 그렇게 보면 이 작가는 지독히도 공연 운이 없었다고 해야겠다.

공연이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희곡을 잘 쓰고 못 쓰고를 떠나서 작가의 독특한 개성으로 자신의 작품세계를 고집스럽게 밀고 나가는 젊은 극작가들이 있다. 고연옥이 그렇고 배삼식이 그렇고 백하룡이 그렇고 정영욱이 그렇다. 비평가와 연출가, 배우를 겸하고 있는 일부 극작가들을 제외하면 이 젊은 작가들이 한국희곡의 미래를 새롭게 열어 나갈 것임은 자명한 것처럼 보인다.

작가는 누구나 미덕이 존재하는 반면 그 미덕만큼이나 큰 결함도 함께 지니고 있다. 중요한 것은 기존의 정형화된 틀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고유한 길을 개척해 나가려는 작가의 의지일 것이다. 생각해 보라. 모든 예술작품과 마찬가지로 희곡 창작에 무슨 정답이나 모범답안에 가까운 극작술이 존재하겠는가. 때로는 시 같은, 소설 같은, 수필 같은, 심지어는 다큐멘터리영화나 구성사진과도 같은 희곡들도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한국연극계에 진실로 더 필요한 희곡들은 바로 그러한 다양한 형식과 내용을 갖춘 작품들이 아니겠는가.

어쩌면 최명숙의 희곡 역시 지금까지 존재해 온 천편일률적인 작품에 가까운 것이 아니라 조금은 다른 출생의 비밀을 품고 있는, 비유하자면 머나먼 외계에서 지구로 막 도착한 비행접시와도 같은 낯선 희곡들 중의 하나일 것이다. 그러니 이제 이 낯선 외계인을 친숙한 벗으로 반갑게 맞아들이는 것은 순전히 외계 생명체를 사랑하는 열혈독자 지구인들의 몫이리라.

 

 

 

길 잃은 아웃사이더들을 위한 인생찬가

─ 『정의신 희곡집』, 정의신, 연극과인간, 2007

 

재일교포(자이니치) 2.5세에 해당하는 정의신은 1990년대 중반 국내 연극계에 처음 소개되면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던 유미리 이후 최근 우리나라에서 자주 공연되는 극작가다. 유미리가 극작가이자 소설가이고 뛰어난 에세이스트이듯 정의신은 희곡을 쓰면서 연출을 겸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시나리오와 텔레비전, 라디오 드라마를 쓰면서 영화판과 방송계에서도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중이다.

그의 대표작들을 뽑아 엮은 이 희곡집에는 희곡 다섯 편─「아시안 스위트」, 「20세기 소년소녀 창가집」, 「가을 반딧불이」, 「겨울 선인장」, 「인어전설」─이 실려 있는데 「가을 반딧불이」를 빼고는 모두 우리나라에서 한 번씩 공연된 작품들이다. 1993년 한강변의 거대한 텐트에서 공연되어 한동안 문화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인어전설」이 정의신의 국내 초연작이다. 희곡집에 수록된 작품 외에도 일본의 태평양전쟁에 동원되어 전범으로 사형대에서 희생되어 간 한국인 청년들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적도 아래의 맥베스」를 비롯한 「야끼니꾸 드래곤」과 「행인두부의 마음」 같은 작품들이 꾸준히 소개되어 연극계의 지속적인 관심을 받아 왔었다.

정의신은 찰리 채플린처럼 객석을 웃기다가 울리는 재주가 있다. 대중과 호흡하는 그의 남다른 감각을 실감할 수 있는 부분이다. 내가 아주 오래 전에 일기장 한귀퉁이에 나중에 이런 종류의 글을 쓰고 싶다고 소망해 왔듯이 그의 희곡엔 웃음과 눈물이 공존한다. 그리고 파란만장한 사연을 품고 있는 일반 서민들의 가슴 절절한 이야기가 시침 뚝 떼고 능청스럽게 펼쳐진다. 어찌 보면 연극이라기보다는 방송드라마에 가까운 극사실주의 작품이 대부분이다. 오사카의 빈민가에서 태어나 고물상을 운영하는 부모 밑에서 고단하고 어려운 유년 시절을 보내면서 주변부 인생과 비주류의 삶을 온몸으로 헤쳐 나간 경력이 작품에 그대로 반영돼 있다고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체호프로부터 받은 영향이 지나칠 만큼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그 드라마들은 여지없이 사회적 소수와 약자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다. 탈출구를 잃어버린 하층민과 다리를 저는 장애인, 성적 소수자들이 정의신표 드라마의 주인공들이다. 이를테면 재개발지역에서 양장점을 하면서 살아가는 「아시안 스위트」의 치요코나 「야끼니꾸 드래곤」에 나오는 큰딸 시즈카는 모두 다리를 절고 있는 신체 장애인들이다. 또 「겨울 선인장」의 소년 같은 남자들은 동성애자들이다. 「20세기 소년소녀 창가집」도 마이너리티 가족의 인생을 다루고 있다.

그의 희곡에 나타나는 또 하나의 특징은 음식 먹는 모습이 해학적으로 그려지고 있는 대목이 자주 등장한다는 점이다. 거의 모든 희곡에 일본의 서민들이 먹을 법한 다양한 음식들이 소개되고 있다. 「가을 반딧불이」에서 변두리 보트선착장 매점에 둘러앉아 먹는 국수와 전골은 단골 메뉴에 가깝다. 「야끼니꾸 드래곤」은 아예 돼지곱창을 볶으면서 극이 시작될 정도다. 「행인두부의 마음」에도 중국인들이 즐겨먹는 새콤달콤한 맛에 부드러운 촉감을 지닌 디저트의 일종인 행인두부가 나온다. 성탄 전야에 헤어지는 부부의 마음을 행인두부에 비유한 것이다. 동성애자의 삶과 사랑을 통해 새로운 형태의 가족상을 제시하고 있는 「겨울 선인장」에도 여지없이 메밀국수나 전병 같은 일본의 정월 음식이 나와 관객들의 구미를 끌어당기고 일상의 삶에 매복돼 있는 식욕을 자극한다.

「아시안 스위트」는 우리나라 영화 〈애란〉과 〈미친 사랑의 노래〉에 출연해서 국내 관객에게도 꽤 이름이 알려져 있는 재일교포 3세대 여배우 김구미자(일본명 가네무라 구미코)의 유작이다. 정의신은 그녀와 함께 재일교포 연극인 중심으로 창단된 신주쿠양산박의 초기 멤버로 활동했었다. 나는 그녀를 영화평론가 정성일이 시나리오를 쓰고 이황림 감독이 연출한 저주받은 걸작 〈애란〉을 통해 처음 만났다. 김구미자는 그 영화에서 젊은 유학생 철민(임성민 분)에게 연정을 느끼는, 일본인 조류학자 요시무로(박영규 분)의 아내 히데코 역으로 열연했었다. 또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1989년 10월 서울에서 신주쿠양산박의 김수진 연출로 무대 위에 올려진 연극 〈천 년의 고독〉에서는 나비와 함께 고독하게 늙어가는 여인 아게하 역을 멋지게 소화해서 한국의 연극 팬들에겐 많은 사랑을 받은 걸로 알고 있다.

김구미자는 평소 절친한 벗이자 연극동료였던 정의신이 자신을 위해 써준 희곡 「아시안 스위트」를 공연하고 나서 2004년 10월 마흔다섯의 아까운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치요코 역을 맡은 그녀가 극 중 마지막 장면에서 웨딩드레스 차림을 하고 객석을 향해 “고맙습니다.”라고 남긴 고별인사는 일본 연극계에서도 두고두고 회자될 정도로 유명하다. 해체되어 가는 현대 일본사회 한 가족의 애환을 담담하면서도 따스한 시선으로 그려내고 있는 이 희곡의 제목 ‘아시안 스위트’는 일본의 편의점이나 슈퍼마켓에서 손쉽게 살 수 있는 푸딩 이름에서 따왔다고 전해진다. 겉으로만 그럴듯하게 포장된 인간관계의 덧없음을 상징하는 것이리라.

2011년 한일문화교류전의 일환으로 정의신의 희곡들은 올해 초부터 연말까지 계속해서 무대에 오를 듯하다. 이미 상반기에 「야끼니꾸 드래곤」과 「겨울 선인장」은 관객들을 만났고 「아시안 스위트」는 현재 공연 중에 있다. 7월 14일까지는 서울에 있는 대학로예술극장소극장에서, 7월 23일부터 30일까지는 장소를 옮겨 혜화로터리 근처에 자리 잡고 있는 키작은소나무극장에서 선을 보일 예정이니 정의신표 희곡의 진가를 알고 싶은 독자나 관객들은 한 번쯤 관람해 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문장웹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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