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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시집 발간 시인들과 함께

  • 작성일 2011-06-01
  • 조회수 2,941

 

[기획특집 좌담]

 

첫 시집 발간 시인들과 함께

 

 

 

 

■ 진행 : 남승원(문학평론가)

참여

― 김명철(『짧게, 카운터펀치』, 창비)

― 배영옥(『뭇별이 총총』, 실천문학)

― 김윤이(『흑발 소녀의 누드 속에는』 ,창비)

 

 

 



▶ 사진(위) 좌로부터 김명철 시인, 배영옥 시인, 김윤이 시인, 남승원 평론가

사진(아래) 좌로부터 배영옥 시인, 김윤이 시인
 

남승원 : 이번 좌담은 참여하신 시인 분들 모두가 주목받는 첫 시집을 내신 만큼 시인 여러분이 어떻게 시를 접하기 시작하셨으며, 어떤 마음가짐으로 현재 시를 만들고 계신지, 첫 시집을 내신 소감 그리고 앞으로의 시쓰기에 대한 다짐 등을 듣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그래서 이 좌담을 접하게 될 독자들이 세 분 시인들의 작품은 물론이고 시문학 전반에 보다 더 친근하고 가깝게 다가갈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먼저 이 좌담의 전체적인 틀에 관련해서는 제가 세 분께 이메일로 내용을 보내 드렸습니다. 거기에서 제가 언급한 부르주아(Louise Bourgeois)의 다음과 같은 말이나,

 

예술의 목적은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작품 제작의 행위는 무의식 속 두려움을 눈에 보이는 물리적 대상으로 만들어 감정을 해소하는 과정이다.

 

에곤 실레(Egon Schiele)의

 

어른들은 그들이 아직 어린아이였을 때 얼마나 타락해 있었는지, 얼마나 성적 충동에 시달렸는지 잊어버린 것일까. 어른들은 자신들이 아직 어렸을 때 공포스러운 욕정이 급습하여 괴로웠던 기억을 잊어버린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잊지 않았다. 왜냐하면 나는 그로 인하여 정말 무섭고 괴로웠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간은 성에 대한 감각을 잃지 않는 한, 성에 대한 번민으로 괴로워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와 같은 말을, 저는 예술가가 예술 작품을 탄생시키는 스스로의 근원에 대한 가장 타당한 언급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를 바탕으로 예술가들은 생물학적·정신분석학적 범위의 근원적 인식, 사회적으로 형성된 인식, 자신이 몰두하거나 기타 인접한 다른 장르를 포괄하는 예술 장르에 대한 인식 등으로 구성되는 존재라고 믿고 있습니다.

오늘 제가 시인 분들께 질문하고 싶은 모든 것은 이 범위를 벗어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여러분을 시인으로서, 그것도 주목받는 첫 시집을 낸 한국의 시인이라는 특수성을 가진 시인으로 구성하는 데 위에 언급한 세 범주의 차원에서 어떤 인식을 가지고 계신지 들어 보고 싶습니다. 세 분 시인의 개별성에 대해서는 말씀을 나누면서 자연스럽게 연결시켜 좌담이 이루어졌으면 합니다.

먼저 여기 계신 시인들의 강박이랄지, 시를 쓰기 시작한 계기랄지 내면의 근원적 인식에 대해서 차례로 들어 보면 좋겠습니다.

 


▶ 남승원(문학평론가, 진행)

 김명철 : 저는 먼저 남승원 선생님께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부르주아와 실레의 이야기를 좋다 하셨는데, ‘좋다’는 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인지 궁금합니다.

 

남승원 : 제 말이 가장 적어야 좌담이 지루하지 않을 텐데요.(웃음) 간단히 말하겠습니다. 앞에서 언급한 실레의 말은 사실 미성년자 유인 등 성범죄 혐의로 실레가 재판을 받았을 때 법정에서 진술한 내용의 일부입니다. 범박하게 말하자면, 항상 예술은 제도를 뛰어넘고 대치되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고 항변하고 있다고 여겨집니다. 부르주아의 언급 역시 만일 제가 이 말을 몰랐더라면 부르주아의 그림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감상했을 것 같습니다. 이것이 좋은 감상법은 아닐지 모르지만 저는 예술의 동력에 대해 말하는 진정성을 강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런 면에서 강박이랄지, 시를 쓰게 하는 동력에 대한 시인 분들의 내면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보고 싶었습니다.

 

김명철 : 그렇군요. 그렇다면 실레와 부르주아 작품의 진정성은 성적 자극이나 충동 혹은 거기에서 야기된 트라우마와 관련이 있는 것 같습니다. ‘성’과 관련하여 발생된 상처를 치유하고 그 두려움을 극복하는 과정의 예술 창작으로 이해됩니다. 그런데 예술 창작이 정말 ‘성’과 관련 하에 출발할 때만 그 진정성이 확보되는 것인지 선뜻 동의가 안 됩니다. 프로이트의 견해로 보면 정신적 성숙이 성과 관련된 것임은 틀림없지만, 물론 저의 정신분석에 대한 지식이 미천해서 이런 의문이 들겠지만, 예술 창작의 근원이나 그 추동 요소로 무의식적 요인 말고 다른 요인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싶습니다.

‘강박’이라는 단어가 등장하면 저는 좀 무서워집니다. 저에게는 도대체 그런 것이 없는 것처럼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사실, 시를 쓰는 일에서 강박적 사고가 중요한 요인이라면, 나에게도 그런 것이 있을 텐데, 하지만 나는 없는 것 같은데, 그러면 나는 제대로 된 시인이 못되는 것인가, 그러면 좋은 시 쓰는 일이란 나에게 불가능한가 하고 불안해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이거 큰일이다 싶었죠.

 

남승원 : 학생들에게 시를 가르치다 보면 여러 가지 일이 있습니다. 특히 곤란한 것은 학생들에게 시적 감동을 가르칠 수 없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변명이지만 저는 학생들에게 시적인 것과 시로 만들어진 것이 다르다는 이야기를 하게 됩니다. 분명 시적인 것이 시인의 가슴을 터치해서 표현한 것이 시일 텐데, 어쩔 수 없이 해석을 하면 그것을 손 안에 잡을 수 없는 괴로움이 분명히 있지요. 그것을 시인 분들의 입을 통해 한번 들어 보고자 드린 질문입니다.

 

김명철 : 저는 뒤늦은 나이에 시 공부를 시작했어요. 그전에는 시라는 것에 대해 전혀 몰랐습니다. 제가 쓴 글은 고등학교 때까지 쓴 일기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 갈수록 더욱더 저 자신에 대해 궁금한 것이 많아지기 시작했습니다. 불혹이 아니라 미혹이었습니다. 답답했지요. 저 자신에 대해 정리를 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일기를 쓰기 시작했는데 그래도 ‘나’에게 접근이 안 되더라고요. 나이에 걸맞지 않게 정신적으로 참 미숙하구나 하는 자탄만 늘어 갔어요.

그런데 어느 날 어떤 문예지에 난 시들을 우연히 읽어 보게 되었어요. 처음에는, 시인들의 약력을 보면 저보다 어리고 젊은 사람들이 쓴 것 같은데 그들의 정신적 깊이 때문인지 잘 이해를 못하겠더라고요. 시인들이란 사람들이 저보다 굉장히 정신적으로 성숙해 보였습니다. 또 세상을 보는 시각이 저와 너무 다르다는 것도 새로웠습니다. 그래서 시를 쓰면서 ‘나’를 정리해 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저의 시공부의 발단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처음에 시 쓰기를 할 때부터 ‘정확히 그리고 적확히’를 제일 중요한 모토로 삼았습니다. 그러나 시를 쓰게 된 저의 이런 목적은 오히려 시를 쓸수록 더 멀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요즈음엔 ‘이것이 나다’라고 정리하는 것보다는 ‘나’를 찾아가는 과정 자체 속에 ‘나’가 존재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과정에서 ‘좋은 시를 쓰고 싶은 나’를 발견한 것이 하나의 결실이라고 위로하고 있습니다.

 

남승원 : 어쩌면 자신의 생각을 정확하게 표현해야 된다는 것도, 일기보다 시로써 정확하게 표현해야겠다는 것도 강박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김명철 시인은 거부하실지 모르지만 『짧게, 카운터펀치』를 보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그렇게 볼 수도 있습니다. 아마 그래서 그런지 선생님의 시를 보면, 시 한 편에 드러난 이미지가 다양하고 현란할 때조차 확연히 드러날 정도의 정확한 문장으로 표현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김명철 : 제 시를 읽은 사람들에게 유일하게 듣는 칭찬이 시가 좋다는 말보다 문장이 정확하다는 얘기였습니다. 문장가가 아니라, 그 축에도 못 들지만, 좋은 시인이고 싶습니다. 속이 상해 죽겠습니다.(웃음)

 

배영옥 : 저도 김명철 선생님처럼 늦은 나이에 시를 시작했습니다. 제가 서른두 살 즈음에 지인을 따라간 곳이 시를 배우는 곳이었습니다. 그때 잠시 직장생활을 쉬고 있을 때였지요. 일주일에 한 번 시에 대해 강의를 들었어요. 일 년은 그냥 듣는 것이 전부였는데 2년째부터 시를 써야 했습니다. 물론 어릴 적부터 책을 읽는 것을 좋아했고, 김소월이나 한하운의 시집 을 읽긴 했지만 시를 써본 적이 없어서 많이 당황했습니다. 그렇게 일 년쯤 보내다 덜컥 등단을 해버렸습니다. 그러다 보니 문학에 대한 공부가 많이 부족했습니다. 제가 잘 모르는 세계로 나와서 그런지 한동안 제가 등단후유증이라고 할까 그런 것을 겪었지요. 저는 등단 후에 본격적인 문학수업을 했습니다.

 

남승원 : 하지만 문학에 전혀 관심이 없는데 다른 사람이 가자고 해서 그냥 시를 쓰는 곳으로 간 것은 아닐 것 같습니다. 대학에서는 어떤 것을 공부하셨는지요.

 

배영옥 : 문학에 관심은 있었지만 제가 직접 찾아가서 배우겠다는 적극적인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등단 한참 후에 문예창작학과 대학원 과정을 마쳤지요.

 


▶ 김윤이 시인

 

김윤이 : 저는 이곳에 나오기 전에 많은 고민이 있었습니다. 같이 출연하시는 분들이 비슷한 또래도 아니고 두 분에 비해 비교적 제가 시집도 빨리 나온 것 같아 아무 생각 없이 선뜻 승낙을 한 후 고민에 빠졌습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이런 자리에 나와 제 시와 문학에 대해 얘기할 수 있게 되어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김명철 선생님은 제가 예전에 한 번 뵌 적이 있고, 아까 지하철에서도 우연히 먼저 뵙게 되어 반가웠습니다. 제가 아직도 학교에 적을 두고 공부를 하고 있어서 주변에 시를 쓰는 학생들이 많습니다. 시집을 출간하셨을 때 시 쓰는 문청에게 권해 줬습니다. 배영옥 선생님 것도 물론 출간 당시 읽었고, 학교도서관에도 신청해 놨고요.

저의 문학이 시작되기까지 과정을 간략히 말씀드리면, 저는 시인이 될 거라는 생각을 어려서부터 했습니다. 초등학교 때도 언젠가부터 글을 쓰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그때는 단순히 소녀적 감정이었습니다. 어릴 때는 명민하다, 영특하게 잘 쓴다고 칭찬을 받기도 했고, 그러다 보니 칭찬에 길들여져 백일장을 다니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나이 들면서 글솜씨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는 자각도 들고, 환경적 여건이 글을 쓸 수 없는 상황으로 만들었고, 전공도 다르다 보니 시를 쓰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첫 시집을 준비하면서 여러 편의 작품을 뺐습니다. 그리고 시집 나오기 전에 일 년 정도 제가 교정을 본다고 생각하고 고쳤습니다. 너무 소녀적 취향의 시들은 빼고 나머지는 수정을 했습니다. 대학원도 이제 들어갔는데요, 소녀적 감상과 나르시시즘만으로 시세계를 구축하면 안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 공부를 더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습니다. 반드시 진학을 해서 시 공부를 해야 하는가, 라고 묻는다면 사람마다 다를 테지만 저에게는 지금 나이에 하는 공부가 자극과 도움이 된다고 답변 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강박이라는 표현이 부정적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시인은 어느 선까지는 자신을 바꾸어야 한다고 여겨지고요, 그래서 저의 어떤 부분을 바꾸고자 노력했습니다. 제가 미용일도 했었는데, 미용사를 하면서도 언젠가 작가가 될 수 있을까를 염두에 두고 평론집들도 꽤 보았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미용사일 때는 미용사란 직업을 잣대로 저를 보고 학원 강사일 때는 강사라는 시선으로 바라봅니다. 사실 저는 그전에는 미용사였지만 그전에 대학을 마쳤습니다. 미용사 얘기를 하면 사람들은 그것을 편집해서 한 부분만 이야기합니다. ‘이 사람은 그냥 삶의 현장에서 나와서 시를 쓴 사람이다’ 라거나 ‘공부를 하면서 대학원을 다니니까 머리로 쓴 시다’라는 식으로 평가가 굉장히 달라지는 것 같습니다. 나는 여기 있는데 나를 기억하는 타자의 방식은 다 다른 거지요.

 

남승원 : 이제까지 시를 쓰게 된 동기나 원인을 들어 보았는데 그 다음에는 시인을 구성하는 사회적 인식 같은 것에 대해 말씀 좀 들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먼저, 김윤이 시인은 〈시힘〉 동인이시고 배영옥 시인은 〈천몽〉 동인이신데 시를 쓰는 분들에게 동인활동이 시를 만드는 순간 어떤 영향을 주는지 다양한 이야기를 들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김윤이 : 혹시, 김명철 선생님은 〈빈터〉 동인 아니신지요?

 

김명철 : 아니, 그걸 어떻게 아셨어요? 제 집사람도 모르는 일인데.

 

김윤이 : 제가 평소에도 시에 빠져 살다 보니 문학에 관련된 것은 사소한 것이라도 기억을 잘하는 편입니다. 그래서 언니에게 땅에 발 좀 딛고 살아가라거나 시가 아무리 중요해도 돈과 그와 관련된 생활도 중요하니까 너도 그 생각을 하라는 얘기를 많이 듣습니다.

제가 〈시힘〉 동인에 들어간 지 벌써 몇 년이 되었습니다. 저희 동인에는 연세가 많으신 선생님들이 계십니다. 김백겸, 정일근, 양애경 선배님 등 1기 선배님들이 그렇고요, 저는 3기인데 저랑, 김성규 시인, 휘민 시인이 있습니다. 〈시힘〉은 나이 차이도 있고요, 아무래도 선생님, 선배님들이 어렵기도 해서 주로 행사가 있는 경우 참여해 많이 배우는 편입니다. 지방에 계신 선배님들이 많아서 모이기가 힘듭니다. 서울, 경기 모임을 하자고 해서 고운기 선배님이 좌장이 되어 몇 번 모임을 가졌지만 그것도 마땅치 않아 요즘은 행사가 있을 때 모이는 편입니다. 저희는 주로 서정시에 바탕을 두고 있는데 3기는 약간 다른 경향을 갖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시의 색깔에 대해서는 개인의 시적 방향성이 있고요. 사회적 참여와 인식의 문제도 각 시인의 개별적인 것이라고 여겨집니다. 그것에 대해서는 서로 존중을 해줍니다.

 


▶ 배영옥 시인

 

배영옥 : 제가 등단하자마자 〈천몽〉이라는 동인이 만들어졌습니다. 비슷한 또래끼리 모였지만 시의 경향은 다양합니다. 저는 서정시 쪽에 가깝지만 동인들 중에는 미래파 쪽인 시인들도 있습니다. 저희는 동인을 받아들일 때 경향보다 그때 시적 성취나 방향이 서로 맞을 것 같은 사람들을 받아들였지요. 그동안 나름의 독특한 시 세계를 이룬 사람들도 있고 변함없이 자기 세계를 그대로 이어 간 사람들도 있습니다. 어쨌든 동인 활동은 제가 시를 포기하지 않고 쓰게 하는 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합평회도 하고 자주 만났는데 세월이 지나고 모두들 바쁘니까 모이기가 힘들어졌어요. 김윤이 시인이 말씀하셨듯이 지금은 동인들이 시집을 낸다든가 하는 특별한 행사가 있을 때 만납니다.

저는 동인 모임이 정기적인 것보다 시간이 될 때마다 편하게 만나는 것이 좋습니다. 〈천몽〉 동인은 1999년에 만들어졌는데 이렇게 오래 이어질 수 있는 까닭이 서로 있는 듯 없는 듯한 자유로운 분위기가 이유인 것 같습니다. 단 한 권의 동인지도 내지 않은 동인이지만, 다들 열심히 문단활동을 하고 있지요. 그동안 동인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담아서 시집에 〈천몽〉 동인이라고 밝혔습니다.

 

김명철 : 김윤이 시인이나 배영옥 시인은 행복하시겠습니다. 저는 등단을 한 후에도 불러 주는 사람도 없었고, 동인을 하자는 제의도 없었습니다. 등단 전보다 더 외로워졌지요. 등단을 했지만 나이 때문인지 젊은 시인들 사이에 끼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중견 시인도 아니고…….

처음 등단했을 때는 ‘나에게도 시인이라는 호칭이 주어졌으니까 본격적으로 시를 쓰는 사람들 틈에서 같이 보조를 맞춰 가며 시를 쓸 수 있을 거야’라고 상상하는 즐거움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문인들의 모임에 어색한 모습으로 참석하면 늘 외로움만 느끼고 돌아왔습니다.

첫 시집을 내고 나서야 어떤 시인이 제게 이제야말로 프로가 되었다고 말한 적이 있어요. 물론 첫 시집을 내지 않고도 프로다운 시인들이 많지만, 저는 그 소리를 듣고 나서야 시인들 사이의 외로움이 조금 덜해진 듯합니다. 자신이 없었던 것이지요. 제 성격 탓일 수도 있지만, 아무래도 저의 외로움의 원인은 타인들의 눈을 의식한 피상적인 인정에 있었던 듯합니다. 조금, 아니 아주 많이 부끄러웠습니다.

아까 김윤이 시인이 〈빈터〉 얘기를 하셨는데, 어쩌다가 그 회원들과 만나 술을 한잔 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분들에게서는 사람 냄새가 물씬 풍겼습니다. 위계는 물론 관계에 따른 득이나 실을 의식할 수 없는 만남이었습니다. 편안했지요. 저에게는 이런 모임이 맞는 것 같습니다. 김윤이 시인께서는 ‘시를 사랑하고 시를 위해서’라고 말씀하셨는데, 저는 시보다는 확실히 사람이 먼저인 것 같습니다.

 

김윤이 : 아까 저의 말에 약간의 오해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제가 추구하는 문학적 방향성은 미적인 것만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먼저 둔 것이고 그 안에 문학적 감성을 담는 것으로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 김명철 시인

 

김명철 : 오늘 대담에서 질문할 기회가 있다면 시가 먼저일까 사람이 먼저일까 묻고 싶었습니다. 저는 시를 읽다 보면 시를 위한 시인가 사람을 위한 시인가 생각하게 됩니다. 시를 위한 시를 읽을 때의 즐거움이나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시를 읽을 때의 즐거움이나 그 둘의 크기를 잰다는 것이 맹랑한 일이겠으나, 소박하게 얘기하자면 재미냐 감동이냐로 볼 수 있겠는데, 어느 것이 더 좋고 나쁘고가 아니라, 그냥 어떤 성향인지가 궁금해집니다. 그 성향에 따라서 형식 쪽이냐, 내용 쪽이냐 등 시의 포인트를 어디다 두어야 할지 생각하게 되고, 그게 설정되면, 그냥 읽는 것보다는 더 많은 즐거움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어느 한쪽으로 지나치게 치우친 시를 읽을 때는 곤혹스러워하고 읽다가 중단하기도 하는 저를 보아도, 역시 그 두 성향이 적절히 조화를 이룬 시가 바람직한 것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저는 따뜻한 성향이 강한 쪽으로 끌립니다.

언어를 중시하는 시들은 참 재미있습니다. 다른 시인들의 시집을 읽으면서 생동감 있게 살아 있는 시어들을 보면 부럽기도 했습니다. 그런 시들을 한동안 써보고 싶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그런 성향이 저하고는 잘 맞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배영옥, 김윤이 시인들께서는 언어와 내용 중 어느 쪽에 더 신경을 쓰는지 궁금합니다.

 

배영옥 : 저도 시의 방향에 대해 김명철 선생님과 같은 고민을 한 적이 있습니다. 저의 은사이신 이성복 선생님의 말씀에 의하면 시가 말하는 방식은 ‘깊이에 닿아 있는 말장난하기’입니다. 깊이가 사람을 위한 시라고 한다면, 말장난은 시를 위한 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우리가 시를 쓸 때, 두 가지 지향점이 있습니다. 한쪽은 진정성, 반성하는 정신이고 또 다른 한쪽은 언어감각입니다. 삶에 대한 반성이 없다면 굳이 예술을 할 필요가 있을까요. 언어가 중요하지 않다는 뜻은 아닙니다. 언어의 결에 민감해야 하고 말에 실려 가는 글쓰기가 되어야 합니다. 시의 화자는 말에 유혹되는 화자라고 할 수 있어요. 하지만 그 말 속에는 깊이가 있어야 하겠죠. 시인인 이상 언어를 떠날 수는 없습니다. 또한 사람을 떠난 언어만 위한 시는 허망하기 짝이 없습니다. 말장난이지만 ‘깊이에 닿아 있는 말장난’ 이 말이 시를 가장 적확하게 표현한 말이 아닐까요.

 

김명철 : 아, 그런데 저는 시를 ‘만든다’는 표현을 불편하게 받아들이게 됩니다. 내용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본래 있는 것을 끄집어내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내용에 따라 형식이 달라지고 형식에 따라 내용이 달라진다고는 하지만, 없는 내용을 만들어낼 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 ‘만든다’는 표현은 한쪽으로 치우친 느낌이 있습니다.

 

남승원 : ‘만든다’는 표현에 대해 약간의 거부감을 갖는 시인도 계신데, 저 같은 경우 ‘만든다’는 말에는 시인에 대한 존경과 감탄의 마음을 담고 있습니다. 분명히 그냥 흘러가는 시공간 속에서 시인들은 기어이 무언가를 뽑아내 자신만의 방법으로 그것들을 하나의 시 작품으로 형상화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런 관점으로 김명철 시인의 시를 하나만 뽑으라고 한다면 「탄탄대로」를 뽑고 싶습니다. 작품에 보면 동전 하나가 떨어져서 굴러가는 동안 그 동전의 양면에 얽혀 있는 모든 것이 굴러가는 시간 동안에 팽팽한 긴장감을 가지고 담겨 있습니다. 이렇게 ‘만든다’는 것을 저는 시인의 주체적 힘을 강조해서 말하고 싶을 때 씁니다.

김명철 시인이 말씀하셨듯이 범박하게 말해서 ‘시를 쓸 때 사람을 위해서 쓰느냐 시를 위해서 쓰느냐’라는 질문은 저 역시 한번은 던져 보고 싶은 질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사람을 위한 시라는 것을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

 

김명철 : ‘만든다’고 하는 표현에 대해 보는 관점이 약간 다른 것 같습니다. 저는 처음 시 공부를 할 때 ‘내가 과연 시를 쓸 만한 사람인가’라는 회의가 들었고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감이 없어졌습니다. 재능이 없는가 하는 고민도 많았고 천부적 시인들도 있다는데 나는 아무래도 천부적인 것은 아닌 것 같고, 그렇다면 노력만으로 될 수 있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회자님이 말씀하신 의미대로라면 「탄탄대로」는 만들어졌다고 보아야겠습니다. 그런데 그 시에서 동전이 굴러가는 것의 이미지와 어감을 맞추기 위해 시행을 엇걸침하는 등 조작이 있었는데 그 조작이란 것이 억지로 만든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동전이 굴러가는 속도에 따라서 언어의 호흡도 조절이 되고 길이도 조절되는 것이지, 먼저 언어가 조절되고 나서 동전의 모습이 끼어 들어가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시를 위한 시냐 사람을 위한 시이냐라는 것은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그 분별이 어렵고, 또 어려워야 좋은 시인 듯도 합니다. 저의 ‘사람’이라고 하는 표현 속에는 타인이라는 의미가 들어갑니다. 제 시집의 시 속에는 ‘나’만을 위한 시가 몇 편 있습니다. 서두에 말씀드렸듯이 제가 시를 쓰기 시작한 목적은 ‘나’를 찾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등단 전후에 씌어졌던 시들 중에 그 ‘나’란 것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시들이 있습니다. 지금도 보기 싫지만 제가 짊어지고 가야 될 시들이기도 합니다.

정말 제 자신을 잘 표현한다면 다른 사람들이 제 속으로 들어오거나 제 속에서 나가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저의 수준으로는 그럴 자신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생각을 바꾸어서, 감히 잘 될지 모르겠습니다만, 제가 타인들 속으로 들어갔다가 나오자는 생각입니다. ‘나’를 찾는 과정 자체가 제 시의 목적지라면 그 과정 속에서 타인들을 앞세우고 싶은 마음입니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시집 출간 오륙 개월 전부터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오래 전에 씌어졌던 시들이 많이 누락되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제가 시 쓰기의 둔재라, 제 생각이 시집 속에 제대로 구현된 것도 아님을 잘 알고 있지만 말입니다.

 

남승원 : 자신의 시에 다른 사람을 담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불가능해 보이는 목표인데, 혼자 시를 읽으면서 이론적으로만 생각하다가 시인 분들의 시를 읽으면서 직접 말을 들어 보니까 더 많은 공감을 가지게 됩니다.

배영옥 시인의 시에 대해 말씀을 듣고 싶습니다. 읽다 보면 평론가의 습관 때문인지 자꾸 분류를 하게 됩니다. 특히 성 구분이 그렇지요. 남성에게는 남성 시인이라고 말을 안 하는데 여성에게는 여성 시인이라고 말을 하는 것처럼요. 하지만 분명히 어릴 때부터 보다 익숙한 사회적 환경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 면에서 특히 여성 시인들의 시가 경계, 틈 같은 시어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 같습니다. 이것은 가령 「주름」에서 “중심에서 밀려나는 것이 아니라 있는 힘을 다해 스스로를 밀어내고 자신을 비워내는 것”이라는 놀라운 표현과 인식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특히 죽음을 다룰 때 재미있는 시들이 있습니다. 「유쾌한 성묘」, 「칠성 장의사」 같은 경우는 마치 작은 구멍을 통해 주머니를 한 번에 확 뒤집는 것과 같이 죽음의 인식을 전복시키는 것을 보면서 일종의 통쾌함까지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 역시 배영옥 시인의 특유의 경계, 틈, 주름과 같은 인식에서 비롯된다고 여겨집니다.

 

배영옥 : 제가 사물을 볼 때 오랫동안 관찰하고 사유하는 측면이 있습니다. 시집을 묶고 보니 의외로 죽음에 대한 내용이 많았어요. 물론 그 이유 중에는 가족사적인 것도 있지만 살고 있는 시공간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제가 살던 동네는 철길이 지나가는 마을이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주로 철길에서 놀았어요. 돌멩이나 대못을 철로에 올려놓거나, 철길을 따라 끝없이 걷다 기차와 정면으로 마주치는 놀이를 했어요. 예전에는 철길에 차단기가 없었어요. 길게 이어진 철길 위에서 일주일에 한두 명씩 죽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누가 술 취해서 철로에 누워 있다 죽었단다’라는 얘기를 해주었고, 눈앞에서 바래어 가는 핏자국을 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죽음에 대해 다른 사람보다 민감하다고 할 수 있죠. 그 공간에서 뛰어놀며 살았기 때문에 죽음에 천착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공간은 불모의 공간만은 아니고 소통의 공간이기도 했습니다. 어떤 사람이든 철길을 지나야 마을을 벗어나거나 다시 들어올 수 있기 때문이죠. 그곳에서 여러 가지 결락의 틈이나 흔적을 엿볼 수 있었고, 그 틈을 통해 죽음이 다른 데로 사라져서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모습으로 변화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죠. 「똥개」라는 시에서도 똥개의 죽음이 파리에게로 옮겨진다고 했듯이 제가 가진 세계관은 불교의 생사일여(生死一如)에 가깝습니다. 삶과 죽음은 다른 것이 아니라 수레바퀴의 원처럼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순환적 세계관에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개인사적으로 어머니에 대한 상처를 부인할 수는 없지만 그것은 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만으로 제 시집 전체를 파악하는 것은 오해의 소지가 있어서 이 자리에서 밝힙니다.

 

남승원 : 그것이 여성이라는 정체성과 연관이 있다고 혹시 스스로 생각을 하시는지요.

 

배영옥 : 물론 제가 생물학적으로 여성이기 때문에 여성성이 없을 수는 없겠지요. 그렇지만 굳이 여성성으로 규정짓고 싶지 않습니다. 성격이 내성적인 편이지만 스스로 여성적이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습니다. 여성적 면이라기보다는 어쩌면 인식의 차이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제 인식의 어느 부분이 ‘죽은 사람을 떠안으면서 사람을 만나는 방식’, 모든 것을 포용하는 바로 그 자리와 만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김명철 선생님의 시집에도 경계와 틈에 대한 시가 상당수 있는데 그 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남승원 : 죽음이라는 이미지를 비교해 보자면 김명철 시인의 시는 그것을 직접 몸으로 부딪치면서 밀고 나가고 있다면, 배영옥 시인의 경우에는 그것들을 모두 안고 간다는 느낌이 강하게 듭니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의 경우 강신무(降神巫)는 여성밖에 없듯이, 배영옥 시인의 시는, 유년기의 경험이라고 말씀하셨지만, 죽은 사람을 떠안으면서 사람을 만나는 방식이고 이것이 읽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여성적이라는 느낌을 받습니다.

김윤이 시인에게 여쭈어 보겠습니다. 시집을 읽으면서 제가 가장 궁금했던 것은 시인의 독특한 문장 단위였습니다. 시집을 보면 김윤이 시인은 오히려 종결어미로 문장을 완성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완성된 문장으로 이루어진 행과 행 사이에는 사실 굉장히 많은 휴지(休止)가 느껴집니다. 그래서인지 실제 시의 길이도 긴 편입니다만, 물리적 길이와는 상관없이 시를 읽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립니다. 시인께서 시를 쓰실 때 자신만의 문장 단위에 대해 따로 노력을 하거나 염두에 둔 것이 있으신지요?

 

김윤이 : 쓰는 데도 긴 시간이 걸립니다. 비슷한 질문을 여러 번 받으면서 제가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일부러 다르게 보려는 바가 큰 것이 아니라 시를 써야겠다는 생각이 오래 축적 되다 보니 사물을 보는 바가 다르게, 그런 시각으로 나타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행들은 사실 저도 모르게 나오게 됩니다.

저는 영화를 볼 때도 줄거리나 내용 파악을 잘 못하고 이미지만 기억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영화 줄거리보다 그냥 지나치는 장면에서 시적인 것을 포착해 내려고 해서 그런지 영화를 보다가도 한 장면이 저에게 강렬하게 다가오면 저는 영화가 끝날 때까지 계속 그 장면에 멎어 있어요. 그러다 보니 나 혼자 이미지를 생각하고 어떤 방식으로 받아들이는 와중에 영화는 흘러가고 줄거리 파악을 하지 못하고 장면만 남게 됩니다. 현실의 시간이라는 작용은 그대로 흘러가고 내 속의 작용은 한 신scene에 고정되어 내 안에서 재구성되면서 작용하고, 그런 두 개의 흐름을 느낄 때가 많습니다. 비단 영화가 아니라 타 장르에서 시적인 것을 발견하면 자주 그럽니다. 비근한 예로 뭔가 문학적 갈망이 진행되는 와중에는 현실의 가려던 목적지, 행선지마저 잃어버리고 헤매는 경우가 있습니다. 주변에서는 대단한 길치, 방향치로 알고 있고, 저도 그렇게 인정하고 웃어넘깁니다.

 

배영옥 : 김윤이 시인의 시집을 읽다 보니 두 권의 시집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강렬한 이미지시와 서정시가 한 시집 안에 공존하고 있습니다. 굳이 선후를 따지자면 이미지시가 먼저인지 아니면 서정시가 먼저인지 궁금합니다.

 

김윤이 : 다른 분들도 그런 말씀을 하시는데 저의 시집에 차이가 너무 확연히 드러나서 의아하다고 하십니다. 저는 시집 구성을 뒤에서 앞으로 발표역순으로 엮었습니다. 중간에 여러 개가 섞이긴 했지만 완벽하게 시적인 방향이 일부러 다르게 만들려고 하진 않았고요. 그렇지만 그렇게 나온 측면이 있다는 생각은 듭니다. 우선은 시집 발간된 시기가 4년이 더 넘었고요, 개인적으로는 건강이 안 좋았었고, 중간에 시를 안 쓸 생각을 할 정도로 개인적으로 고통스러운 일도 있었습니다. 그런 여러 일 때문에 변화가 두드러진 것 같습니다.

 

김명철 : 저도 질문을 하나 드리고 싶습니다. 「개와 늑대의 시간에 빚은 길 끝에」라는 시에서 “너. 는. 돌. 아. 오. 지. 않. 는. 다.”라고 표현을 하셨는데, 이렇게 쓴 것은 강조의 의미인지 내용을 못박아 두고 싶은 시인의 의지인지요.

 

김윤이 : 그런 강조의 의미도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형식면에서는 띄어 쓰면 읽을 때 리듬이 살아날 것 같아서였습니다. 퇴고는 길고 오래 하는 편이지만, 초고를 쓸 때는 직관적으로 그렇게 하는 게 좋겠다는 느낌에서 씁니다. 문득, 불현듯, 그 순간에 말입니다.

 

김명철 : 그럴 것도 같습니다. 그런데 제가 궁금한 것은 바로 그 ‘너’가 누구인가라는 실체에 대해서입니다.

 

김윤이 : 애매성의 질문인 듯합니다. 시집 뒤 평론가 선생님이 쓰신 글에서 너를 나로 해석해 주셨는데 그렇게 보아도 좋을 것 같습니다.

 

남승원 : 저는 김윤이 시인의 시를 가장 오랜 시간 보게 되었는데 혹시나 독자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말을 좀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배영옥 시인처럼 김윤이 시인의 과거와 유년 시절을 좀 말씀해 주셔도 좋구요. 연배만 보기에는 도시생활의 경험이 많이 있었을 것 같은데 실제로 시를 읽다 보면 단어 공부로만은 알 수 없고 실제 가족들과의 생활에서 알게 된 단어들, 예를 들어 「가을 아욱국」 같은 시에 나온 많은 시어들은 아마 방언사전에도 없을 것 같습니다. 특히 재미있게 본 시는 「막돌 위의 저녁 햇살처럼」인데, 시를 쓰실 때의 영향 같은 것을 더 얘기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김윤이 : 유년에 관해서 말한다면 저는 서울내기입니다. 마포에서 태어나서 지금까지 살고 있습니다. 공덕에서 도화로 넘어가는 중간에 철로가 있었는데 그곳을 지나는 화물열차의 기억과 굴다리시장의 시끌벅적함. 서울이지만 저에게는 그런 기억이 강하게 남아서 달라붙어 있는 듯합니다. 외가는 전라도고요, 또 부모님이 일을 나가셔서 할머니, 그 다음에는 외할머니 손에 길러졌습니다. 그래서인지 이따금 사투리 억양이 나옵니다. 쓰는 것을 몰랐는데 나중에 주변 분들이 알려줘서 아, 그렇구나, 했습니다. 아무래도 들은 바가 있어 자연스럽게 그런 시어를 쓴 것 같습니다. 그리고 외할머니, 이모, 어머니의 사투리를 들으면 흥미롭습니다. 방이 두굴두굴 울린다, 라거나 그런 입소리를 들으면 어서 이거 시에 써야겠다, 표현해야겠다, 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경험에서 얻어진 시편들이 있습니다. 「가을 아욱국」은 아욱국 먹고 그냥 편하게 쓴 시고요, 「막돌 위의 저녁 햇살처럼」이라는 시는 실제 열 살 차이가 나는 제 동생과 있었던 유년의 그 어느 날에서 길어올린 것으로 쓴 시입니다.

 

남승원 : 시인들께서 서로 궁금하신 점을 더 말씀해 주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김명철 : 배영옥 시인의 「벽돌 한 장?이라는 시에 보면 객체가 주체화되어 나타나는 표현이 있습니다. 할머니가 벽돌을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벽돌이 할머니를 끌고 간다는 방식의 표현이 시집에 많이 등장합니다. 또 ‘내가 어디에 닿아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진술처럼 불교적 세계와도 연관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전반적으로 시집을 읽으며 타나토스적 무게감이 상당히 느껴졌습니다. 추락, 절망, 퇴색은 물론 죽음의 직접적 이미지가 강하게 전달되었습니다. 「푸른 방」의 여섯 번째 행에 “내 몸속에서 발광하는 이 목마름은 무엇인가”라고 쓰셨는데 그 ‘목마름’의 의미가 궁금합니다.

 

배영옥 : 모든 사물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남산의 소가 풀을 뜯으면 북산의 소가 배가 부르듯이, 사물과 사물은 둘이 아니라 서로 연결된 하나인 존재이지요. 이런 생각들이 시집 곳곳에 스며들어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불교의 순환적 세계관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요. 타나토스적 무게감을 느끼셨다고 하셨는데 죽음에 경도된 저로서는 죽음이 마지막이 아니라 변화를 촉구하는 하나의 계기가 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추락, 절망, 퇴색의 이미지를 거느리고 있지만 그 절망의 밑바닥에서 또 다른 생명들이 태어나게 되지요. 보이지 않는다고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 다른 모습으로 모습을 바꾼다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할머니의 「벽돌 한 장」에 대해서도 같은 말을 할 수 있겠습니다. 시를 쓸 때 관찰을 많이 하는 편이지만 당시에 그 물체가 벽돌이었는지 잘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혼자만의 생각으로 벽돌이라고 단정을 지었는지도 모릅니다. 다만 그 순간에 벽돌이 할머니가 되고 할머니가 벽돌이 되는 등가의 관계가 꿈처럼 이루어졌던 것이지요. 그 순간에 느꼈던 것을 그대로 쉽게 받아 적은 시입니다.

「푸른 방」이라는 시는 굉장히 오래된 시인데 시집에 넣을까 말까 망설였지요. 제가 시를 포기하지 않고 다시 쓸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준 시입니다. 아마도 그때의 목마름이 그대로 시화되지 않았을까요. 시 속에서 뱀파이어오징어가 내가 되고, 내가 뱀파이어오징어가 되는 경지를 꿈꾸었습니다. 그 순간의 목마름은 어떤 단어로도 표현하기가 불가능한 것 같습니다.

 

김명철 : 그렇다면 정말 만들어진 시는 아니군요. 배영옥 시인은 천부적 시인인 것 같습니다.(웃음)

 

배영옥 : 그렇지는 않습니다. 저는 남다른 호기심이(?) 있어서 무엇이든지 배우기를 좋아합니다. 저의 이십대는 배움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시기라고 할 수 있지요. 또한 저는 코드가 맞는 사람들을 만나는 자체를 좋아하고, 한번 사람을 만나면 길게 오래 만나는 편입니다. 그러다가 시를 쓰게 되니 모든 것을 절제할 수밖에 없었어요.

저는 시를 쓰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하는 스타일입니다. 좋은 시를 읽고 시를 생각하고 산책을 하면서 스스로 내면으로 침잠하는 시간을 가져야 시를 쓸 수 있습니다. 일상에 매몰되면 시쓰기가 아주 힘듭니다. 저는 집중력이 뛰어난 편이 아니므로, 언제나 시를 생각하고 시와 가까워지기 위해 팽팽한 방심 상태를 유지하려고 합니다. 그러면 어느 순간, 시가 저에게 들어오는 순간이 있습니다. 제 시 중에는 ‘만든 시’도 있고 ‘받아 적은 시’도 있는데 제가 고양된 순간에는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여도 시가 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남승원 : 그렇다면 김명철 시인은 어떠신지 묻고 싶습니다. 가령 「하늘 맨 끝으로」를 보면 연을 날릴 때의 모습을 그리면서도 역설적으로 연줄을 끊어서 날려 보내는 것에 더 신경을 쓰시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요. 그런 역설적 인식을 얻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하시는지요.

 

김명철 : 「하늘 맨 끝으로」라는 시에서 사회자께서는 “제때에 끊어질 수 있도록”이라는 표현이 마음에 걸리셨는가 보군요. 왜 연실을 끊어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 같습니다. 그런데 저는 거기에서 ‘제때’를 읽어 달라는 의도였습니다. 본래 연날리기는 연을 날리는 사람의 소망을 담아, 혹은 같은 의미겠지만, 액운 등을 멀리 날려 보내는 의미를 지닌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연을 날리다 보면 자기가 바라지 않을 때 끊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다면 연이 제때에 끊어질 수 있도록 기원한다는 것은 긍정적 내용으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시적 흐름에서는 상식적 상황을 역전시킨다거나 의도적으로 독자의 기대를 버리는 경우가 많은데, 저의 경우에는 단순히 재미를 위해서가 아니라 독자들에게 오히려 질문을 던져 보고 한 번 더 생각해 주기를 바라는 의도입니다. 어떤 주어진 상황에서 ‘나는 그렇게 되는 것을 원치 않는데, 만약 그렇게 된다면 당신들은 어떻게 할 것이냐’고 물어보는 거지요.

 

김윤이 : 먼저 배영옥 선생님의 시를 언급하고 넘어가면요, 「푸른 방」이라는 시가 저도 좋았습니다. 시집 전체로 보면 앞부분의 유년을 다룬 시가 개인적으로는 더 좋았지만 말입니다. 제 시에 같은 제목의 시가 있는데요, 저와 비슷한 색감의 시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회화적인 제 것과 비교해 볼 때 배영옥 선생님의 푸른 방은 동물적인 것으로 다른 느낌이기도 한 까닭입니다. 그리고 김명철 선생님의 시집도요. 화자가 내면으로 너무 들어가는 것 같아서 육개월 전부터 앞으로의 시의 방향을 내면으로 들어가지 않는 것으로 생각한다 하셨는데 독자로서는 이번 시집에서 화자의 내면이 엿보여 아주 재미있게 읽혔습니다. 「탄탄대로」같은 시도 삶의 신산함이 엿보이고. 아버지의 어떤 면도 느껴지고요, 개인적으로 저의 아버지도 생각나고요. 「수선되는 시간」이라는 시제로 생계와 생업을 짊어진 아버지, 그 모습을 다룬 제 시와 비교되는 어떤 면도 있고요.

이것을 ‘경계’를 중심으로 좀 단순화 시켜 말하자면 모든 흐름이 빨리 진행되는 현실에서 오히려 경계는 이분법적인 것에서 비롯된 어떤 것이 아니라, 어느 순간 이방의 것으로 자신 혹은 상황이 놓인 듯한. 그것에 놓인 모든 것 같습니다. 물론 독자에게 긍정 혹은 부정으로 의도성을 가지고 다가가려는 것은 아닙니다.

제가 나이 먹고 학교에 들어갔는데요, 함께 공부하는 이십대 학생들이 많습니다. 그 학생들과 같이 공부를 할 때 그 학생들에게서 저는 너무 늦게 학교에 왔다는 열등의식이 있습니다. 저는 그 나이 때 공부를 할 수 없었고 돈을 벌어야 했기에 그런 것들이 부럽습니다. 그런데 제 자신은 오히려 그런 열등감을 치유하려 하지 않고 간직하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그때 유독 느꼈던 느낌들, 나는 이런이런 사람입니다, 라고 자신을 변호하지 않으면 나를 직업에 맞춰 보는 타인들의 시선, 그것과 진짜 나와의 괴리, 그때 느껴지는 감정, 그런 것이 저의 문학적 자양분이 되었기에 부러 없애지 않고 갖고 있으려는 면이 있습니다. 때때로 학교에서 여학생 분들이 친해지려고 그러는지 저에게 화장품, 머리, 연예인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저는 그것이 불편하고 당혹스럽습니다. 제가 너무 편협하게 보일까 봐 표현을 하진 않지만 말입니다. 싫어하는 일을 오래 해서인지 일반적인 여자 분들의 대화에 끼지 못하는 바가 있습니다. 그런 이야기보다는 나와 책과의 시간을 갖는 것. 당연히 일정부분 외로운 사람이 되더라도 미지에의 묘한 느낌을 동반하는 새로운 책과 만나는 것을 즐깁니다.

그리고 이제는 제가 직장인도 아니고 대학원생, 말하자면 사회적 지식인인데 그럼에도 제 스스로 불구(不具)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의 경계에 놓인 느낌을 앞선 이유로 지속시키는 경향이 있습니다.

 

남승원 : 마지막으로 첫 시집을 내신 후의 기분이라고 해야 할까요 소감을 말씀해 주셨으면 합니다.

 

배영옥 : 제가 등단 후 만 12년 만에 첫 시집을 냈습니다. 시집이 출간된 후 소감이 어떠냐는 질문을 가장 많이 받았습니다. 시집 출간 후보다 시집 출간 직전에 느꼈던 설렘에 대해서 말하고 싶습니다. 첫아이를 순산하는 심정이라면 답변이 될지 모르겠습니다. 두근두근하며 심장을 울리던 내 속의 또 다른 나를 처음 대면하기 직전의 기분이랄까. 이제 태어날 아이가 어떤 아이일지, 어떤 길을 걷게 될지 모르지만 다만 확실한 것은 제가 그 아이의 어머니라는 사실이지요. 그동안은 오롯이 제가 책임져야 할 저만의 몫이었지요. 아이는 이제 제 품을 떠나서 세상으로 나아가는 독립적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시집에 대한 평가는 시를 읽는 독자의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시집 내고 난 후의 감회라고 하기엔 그렇지만 출간 직전이 설레었어요. 그 후에는 앞으로 어떻게 시를 써야 할 것인가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였습니다. 시는 해답을 제시해 주는 게 아니라 질문을 던져 주어야 한다고 합니다. 한 편의 좋은 시는 반드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의 방향을 제시해 줍니다. 말할 수 있는 것을 통해서 말할 수 없는 부분을 드러낼 때 우물 속에서 시체가 떠오르듯이 진실이 떠오르지요. 잊어버렸던 아니 외면해 버렸던 참혹한 진실이 드러나는 순간을 살다 보면 나 자신과 세상에 대해 조금 더 알게 되리라 생각합니다.

 

김윤이 : 저는 시집을 내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는데 막상 나오고 보니 출판사에서 표지를 정말 예쁘게 해주셨습니다. 기대 이상으로 시집이 예쁘게 나왔고, 반은 농담인데요, 예쁘다는 얘기만 엄청나게 많이 들어서 기분이 좀 상하기도 합니다. 시가 좋다는 평가를 많이 받고 싶습니다. 그래도 작가의 머리가 예쁘다, 옷은, 구두는, 가방은, 액세서리는…… 이것보다 책이 예쁘다, 라는 말이 듣기 좋습니다. (웃음) 하도 외양에 치우친 평가로 재단하는 현대이다 보니 그렇긴 하지만 상품 가치가 되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염결성을 가지고 시인들이 쓴 시들, 그 속에 담긴 무한히 열린 것들을 많이 사랑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시집이 나오기까지 실은 4년이 더 걸렸고, 그 사이 인생의 큰일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우여곡절 끝에 나온 시집이고. 애정표현을 다하지 못하는 성격적인 면에 있어, 이제껏 식구들에게도 마음고생을 시켜 미안하다는 말을 못했습니다. 선생님들, 시를 쓰지 않는, 문학을 하지 않는 친구들, 등단 전부터의 지인들에게도 말입니다.

첫 시집을 냈으니 이제 앞으로의 일을 생각해야겠습니다. 주목을 받았다 안 받았다, 로 일희일비하는, 흔히 젊은 시인들이 내보이는 성향과 개인적인 일에 함몰되지 않게, 매사에 의연함으로, 노력을 더 해야겠다는 것, 이 선상에서의 일일 듯합니다.

그리고 제가 이뻐하는 문청에게서 지금 막 문자가 왔는데요. 실례를 무릅쓰고 소개한다면, ‘꽃이 없는 봄은 생각할 수 없다. 꽃이 피지 않는 마음도 마음이 아니다. 남은 오월 꽃 피우며 마감해요.’라는 문자가 왔습니다. 이 말처럼 남은 오월을 잘 마감하고, 유월을 기약하며 문장으로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김명철 : 어떤 동물이 다수의 새끼를 낳을 때, 맨 처음으로 태어난 녀석을 무녀리라고 합니다. 제일 먼저 문을 열고 나온 녀석이라는 뜻이지요. 그런데 그런 무녀리는 닫혀 있던 문을 처음 열어야 하기 때문에 몹시 지친 상태로 출생하게 되고 이후 대체로 허약하고 못나게 자라게 됩니다. 저는 저의 시집을 무녀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다른 시인들의 확고한 생각을 접하면 저는 주눅이 듭니다. 이것은 이것이다라고 자신 있게 표현할 수 있는 것은 신념이나 혹은 당위적인 내·외적 명령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그런 것에 여전히 자신이 없습니다. 다만,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제 시 속에 저보다 다른 사람들이 많이 보였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입니다.

시집이 출간되기 전에 다른 시인들에게 첫 시집을 냈을 때 어땠느냐고 물어보았는데, 너무 황홀해서 잠을 잘 수 없었다라고 한 사람도 있고 자신의 얼굴인데 굉장히 두려웠다고 한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솔직히, 아무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냥 멍한 상태였고 아내와 집에서 소주를 조금 마셨을 뿐입니다. 흥분이나 두려움보다는 시집 속에서 결정하지 못한 몇몇 주제의식이 앞으로 잘 정리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앞섰습니다. 출간된 시집은 시인에게서 떠나 독자의 몫이 되는 것이라고들 하지만, 저는 무녀리인 제 첫 시집을 죽을 때까지 끌어안고 살아갈 생각입니다.

 

남승원 : 긴 시간 동안 대담하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오늘 참여해 주신 세 분 시인께 감사드리며 오늘 대담을 마치겠습니다. 앞으로도 첫 시집을 뛰어넘는 훌륭한 작품을 접할 수 있길 고대하겠습니다.

 



《문장웹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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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7-01
거대한 존재들의 무한한 경탄

[에세이] 거대한 존재들의 무한한 경탄 제이크 레빈 소개 거의 12년 동안 나는 한국 대학교에서 강의를 했다. 지난해부터 강의하는 교사의 내면적 생활과 관련된 일기와 같은 글들을 쓰기 시작했다. 외국인 교수로서 처음 강의를 시작했을 때 모든 것이 낯설고 이방인 같은 느낌이었는데 이제는 한국 문화에 익숙해졌지만 여전히 교수의 삶은 익숙하지 않다고 믿는다. 학생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고 다른 교수의 마음도 이해하기 어렵다. 다른 강의실에 들어갈 때마다 새로운 학생들을 만날 때마다 이전에 만나지 못했던 민족을 만나는 것 같이 나는 죽을 때까지 방랑자처럼 매일 새로운 것을 경험한다. 학교에서는 현실에 경험한 것이 꿈꾸는 것 같고 꿈꾸는 것이 더 현실처럼 느껴지듯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가 가끔은 사라진다. 이 산문은 시나 소설이 아니고 현실의 기록도 아닌 교사로서의 삶의 내면적 반응이다. 교사는 인간이다. 가끔 사회가 인문대 교사의 인간중심주의를 억압한다고 생각한다. 신자유주의의 자본주의는 모든 것을 계산하지만 인문학과 시의 영향력은 계산될 수 없는 가치다. 인간중심주의 가치를 점점 찾기 힘든 사회의 학생들은 학교에서 문화를 배워야 한다. 이 모순적인 긴장의 환경에 존재해야 한다. 학교의 목적은 타인의 인간성을 인정하는 것에 있다. 이 산문은 한 인간의 존재하는 기록이다. 거대한 존재들의 무한한 경탄이라는 제목은 완전한 이해가 불가한 타인의 인간성을 발견하는 것에서 왔다. 이 기록은 내 개인적 경험과 전해 들은 동료 교사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작성하였으며 영어로 작성한 문장을 나의 소중한 학생 김혜인이 나와 함께 번역하였다. 지우개 머리 어떤 날 나는 대답하기 위해 여기 있고, 어떤 날 나는 오직 듣기 위해 여기 있다. “질문 있어?” 많은 학생들이 질문의 형태로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그다지 어려울 것 없는 예술을 배웠다. 그런 질문에 대답하는 유일한 방법은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이 질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질문자가 자신의 질문에 답변하는 동안 사용감 있는 지우개처럼 커피를 홀짝이며 머리에서 머리카락이 떨어지는 것을 느껴 보라. 학생들의 목소리는 배경소리가 되어 가다가, 불현듯 보이스 오버. 지우개는 부러지기 전까지 얼마나 많은 얼룩을 견딜 수 있을까? 숭고한 느낌 지난 몇 주간, 를 듣는 학생들은 책상 아래 숨어 있었다. “교수님, 저희는 불확실성에 머물고 있어요.” 그들은 말한다. 일정 기간 동안 불확실성에 머문 뒤, 한 학생이 책상 아래서 나타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저는 숭고한 느낌을 얻었어요.” 그들이 말한다. “저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아름다움에 압도당해 죽음이 무섭고 두려워요.” “이제 제 핸드폰 돌려주시겠어요?” 정적. 학생이 나를 응시한다. 정적. 나는 천천히 커피 한 모금을 마시고 학생을 응시한다. 흰 두루미 “주말 잘 보냈니?&r

  • 관리자
  • 2024-07-01
아, ‘장르 문학’ 하시는구나

[에세이] 아, ‘장르 문학’ 하시는구나 김용언 미스터리 장르를 좋아하고, 열심히 읽고, 그에 관한 잡지를 만들고, 또 가끔은 관련 공모전 심사를 보면서 언제나 느끼는 바가 있다. 한국에서 미스터리 장르에 대한 이해도는 여전히 심각하게 척박하다는 점이다. 가장 모순되는 감정을 느끼는 순간은 ‘장르 문학’이라는 단어를 들을 때다. ‘(그냥) 문학’1)의 카테고리에 속하지 않는 나머지 소설들은 굳이 ‘장르 문학’이라고 불린다. SF, 판타지, 미스터리/스릴러, 로맨스, 공포, 무협 등의 꼬리표가 붙고 낱낱이 분류되며 ‘문학은 문학이지만 그냥 문학이라고 부르기보단 그 안의 장르로 명명되어야 하는’ 존재가 된다. 의문이 생긴다. 그렇다면 장르 문학에 속하지 않는 작품은 그냥 문학이 아니라 ‘비장르 문학’이 되어야 하지 않는가? 아니면 순문학 역시 일종의 장르임을 인정하면서 모든 작품을 ‘장르 문학’이라고 불러야 하는 건 아닐까? 예전 한국 문단에서는 ‘순(純)’이라는 단어가 참여 문학/민중 문학 등의 대립항처럼 불렸다고 하는데, 지금에 와서는 참여 문학/민중 문학도 ‘그냥’ 문학에 포함된 것 같다. 아무튼 거칠게 말해서 ‘장르’를 사용하지 않고 인간과 현실 자체에 집중하는 소설을 ‘그냥’ 문학으로 호명한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장르’로 호명되는 특정한 이야기들에는 그 장르가 만들어지게 된 역사가 있고 또 그 안에서 통용되는 특정한 규칙이 존재한다. 그런 약속된 구조와 규칙을 이용해서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낸다고 해서, 그 결과물이 ‘그냥’ 문학으로 불릴 수 없고 장르 문학으로만 불려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오해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나는 장르 문학도 문학임을 인정하라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기 위해 이 글을 쓰는 게 아니다(그건 너무 당연한 사실이기 때문에 굳이 받아들여 달라고 애원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그 장르 문학 업계에서 일하는 사람으로서 불편해지는 순간들이 자꾸 찾아온다. 이를테면 한국 작가의 소설이 해외로 번역되었을 때 현지 리뷰들을 찾아보면, 스릴러/미스터리/공포 등의 명칭을 명확하게 부여하면서 소개한다. 한국에서는 기존 등단 작가들의 작품을 소개할 때 ‘추리적 기법을 활용한’ 또는 ‘경계를 넘어선 상상력을 발휘한’ 등의 애매모호한 문구로 시작할 때가 많은데, 해외에서는 자신들에게는 낯선 작가의 번역 작품의 특성을 단번에 설명하기 위해 ‘이것은 스릴러다’ 또는 ‘이것은 공포소설이다’라고 알려준 다음 그 작품의 특성이 어떤 점에서 새롭고 멋진지를 차근차근 설명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여전히 장르 문학과 장르 아닌 ‘그냥&r

  • 관리자
  • 2024-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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