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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 같은 세상을 꿈꾸는 이유

  • 작성일 2011-04-22
  • 조회수 1,247

 

[기획·특집] 동화를 읽자!

                   ─ 여는 글_2

 

동화 같은 세상을 꿈꾸는 이유

 

김남중

 

 

 

 


힘든 세상이다. 내일은 나아질 거란 희망도 없다. 차츰 침몰하는 타이타닉 같은 세상. 홀몸이라면 기울어지는 갑판 위에서 술병이나 비우며 빨리 끝나길 기다릴 테지만, 새근새근 잠든 자식들을 보면 술기운이 확 달아난다. 나는 이리 살다 가겠지만 너희들은 무슨 죄냐. 너희들만은 더 좋은 세상에서 살게 하고 싶다. 부모와 다르게 살게 해주고 싶다. 그리하여 세상을 바꾸는 촉매는 누군가의 자식들이다. 어린이가 세상의 희망인 이유다.

세상이 각박해질수록 우리는 ‘동화 같은’ 이야기에서 위로를 찾는다. ‘동화 같은’이라는 표현이 잦아진다. 동화를 쓰는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동화가 언급되는 것이 반가운데 막상 그 용도를 찬찬히 살피면 ‘동화 같은’이라는 아름다운 표현이 어째서 부정적으로 쓰이게 되는지 섭섭할 뿐이다. 우연이 두드러지고, 그저 아름답거나 막연하게 재미있을 때, 무책임한 환상이 난무해 현실감이 희박할 때 흔히 쓰이는 ‘동화 같은’이라는 표현은 절대 타당하지 않다. 아무래도 동화에 대한 오해가 고정관념으로 굳어져 생긴 현상이 아닐까 싶다.

동화는 부드럽고 따뜻하고 아름다운 이야기로 어린이들의 ‘동심’을 지키고 가꿔 주며 거기에 더해 ‘바른생활’적인 가치를 전해야 한다는 그 편견이 ‘동화 같은’이라는 수식을 만들어낸 배경이다. 갓 올린 고등어처럼 팔팔하고 럭비공처럼 어디로 튈지 모르는 동화, 가장 생동감 있게 살아 있는 문학의 갈래인 동화에 어른들이 원하는 이미지를 강제로 주입시킨 결과 동화는 세상물정 모르고, 도덕책에서나 나올 법한 모범생이 되어 비웃음을 사고 있다. 과연 동화는 그런 뿐 일까? 요즘 동화가 어떻게 변하는지,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모르면서 선입견에 기대 동화를 비웃고 있는 건 아닐까?

전통적인 동화의 주제는 설화나 민담의 주제와 통한다. 나쁜 사람 벌 받고, 착한 사람 복 받고, 노력하면 이뤄지고, 정성을 들이면 하늘이 알아주고, 기다리면 만나게 되고, 욕심 부리면 가난해지고, 검소하면 부자 되며 억울함은 끝내 풀어지는 것이 동화의 세계다. 설화나 민담이 민중의 소망이라는 점에 주목하면 동화 역시 민중의 소망을 담고 있다. 가혹한 현실이 우리를 배신할 때 우리는 동화 속에서라도 우리가 원하는 세계에 대한 염원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동화 같은’이라며 싸잡아 부정하는 가치 중에 정말 우리가 온 힘을 다해 회복해야 하고 추구해야 하는 가치는 없는 것인지 다시 생각해 봐야겠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 공공연하게 통용되는 새 진리가 있다. 돈이 돈을 벌고, 노력이 출신배경을 이기지 못하고, 정의가 권력과 금력에 무너지며, 성실과 신뢰보다는 변칙과 배신이 성공으로 가는 첩경이 되는 것이다. 일부일 뿐이라고 강변한다 해도 일부는 그렇다는 것을 인정하는 셈이다. 일부의 균열로 배가 침몰하고 비행기가 추락한다. 이런 세상은 절대 동화 같지 않다. 동화 같지 않은 세상에 살면서 우리는 동화 같은 어떤 것을 비웃고 있다.

여기에 선택의 문제가 등장한다. 동화 같지 않은 세상을 인정할 것인가, 다시 동화 같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인가. 어린이가 어서 우리처럼 때 묻기를 바랄 것인가, 우리가 어린이와 같은 가치를 추구해야 할 것인가. 답은 분명하다. 실행하기가 어려울 뿐.

다른 문학 장르에 비해 동화는 출발이 현저하게 늦었다. 어린이 교육이라는 뚜렷한 목적 때문에 문학성을 훼손당하는 경우도 잦았다. 반면 짧은 역사로 그 생동감 있는 변화가 선명하게 눈에 띄기도 한다. 지난 세기에 동화는 일방적인 교훈전달의 의도와 결별하여 문학성을 획득했고, 사회의 부조리에 대해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어린이의 눈높이에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연막에 싸였던 많은 난제가 명쾌하게 정리되어 쾌감에 가까운 직설을 토해내게 되었다.

최근의 동화는 예전의 동화와 상당히 다르다. 행복한 마무리의 강박관념에서 벗어났고, 안전지대에 머물러야 했던 어린이를 사회의 어두운 부분에도 노출시키고 있다. 명분에 이끌렸던 동화가 그 아래 가려진 현실과 실체에 주목하게 된 것이다.

동화가 오로지 곰돌이와 꿈과 아이스크림의 세계라 생각했던 독자들은 충격을 받을 수도 있다. 폭력과 눈물과 아픔에 대한 이야기들이 어린이들에게 상처를 주지 않을까 염려할 수도 있다. 하지만 어린이들을 아프게 하는 것은 새로운 동화가 아니라 현실의 세계다. 일회용 밴드도 되지 못하는 달콤한 말의 성찬들은 어떤 위로도 되지 못한다.

새로이 등장한 ‘동화 같지 않은’ 동화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동화 같지 않은 동화들이 ‘동화 같은’ 세상을 지향한다는 역설이다. 현실과 이상의 간극을 좁히기 위해 현실을 있는 그대로 파악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아프고 가난하고 약한 존재에 대한 애정, 뒤틀려 있는 세계를 바로잡으려는 구상이 여러 가지 형태로 끊임없이 시도되고 있다. 동화 같지 않더라도, 슬프고 힘든 이야기일지라도 끝은 언제나 희망에 닿아 있다. 더 나은 세계를 만들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지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있다.

정치적 이념의 시대에는 문학이 갈 길이 분명했다. 인간을 지키기 위해 싸웠던 시와 소설들은 빛났고 아름다웠다. 지금은 경제의 시대다. 돈이 이념이 되었고 최우선의 가치가 되었다. 싸워야 할 대상이 명확했던 과거와 달리 요즘은 어떻게 싸워야 할지, 누구를 대상으로 싸워야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는지 분명하지 않다. 세상살이는 점점 각박해지는데 이 거대한 흐름에 맞설 수 있는 방법은 보이지 않는다.

시대의 그늘이 짙어질수록 동화의 역할은 점점 커진다. 아직 굳어버리지 않은 어린이들에게, 어린이의 마음을 가지고 있는 어른들에게 가능성을 전해 주는 것이다. 요즘 동화를 읽는다는 것은 사람 사는 세상, 사람이 존중받는 세상에 대한 희망을 가진다는 의미다. 인간을 압박하는 물질의 가치에 대해 저항한다는 뜻이다. 지켜야 할 소중한 무엇을 굳게 끌어안은 사람들끼리 서로 신호를 주고받는 것이다.

동화에 대한 고정관념을 내려놓는다면 훨씬 다채롭고 풍성해진 동화의 세계를 만날 수 있다. 동화가 다루지 못할 주제는 없고, 쓰지 못할 소재도 없다. 특히 우리나라의 동화는 이십세기 말부터 시작된 동화의 재발견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사회의 음영은 문학의 자양분이 되는데 요즘은 특히 동화의 활약이 두드러진다.

동화는 주로 어린이들이 읽는다. 어린이들에게는 좋은 것만 줘야 한다. 따져 보면 굳이 어린이들뿐이 아니다. 어린이들을 잘 대해 주다가 결국 어른들도 어린이들처럼 대접받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유엔아동권리협약의 네 가지 기본권인 생존, 보호, 발달, 참여의 권리는 어린이뿐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보장되어야 하는 권리다. 당연히 그렇게 되어야 하는 세상을 동화는 그리고 또 말하고 있다.

동화 읽기를 통해 스스로의 녹을 줄질해 간다면, 때 벗기는 아픔과 부끄러움을 극복한다면, 우리 모두 아기처럼 뽀얀 새 살을 가진 사람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다. 그런 사람으로 가득한 세상, 욕심과 폭력과 차별과 배고픔이 없는 세상은 아름다울 것이다. 오래 살고 싶을 것이다. 어린이들에게 자랑스럽게 물려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세상을 만들고 싶다면 동화를 읽을 일이다.

‘동화 같은’이라는 표현의 의미가 긍정적으로 바뀔 때까지 말이다.

 

《문장웹진 5월호》

 

 

 

김남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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