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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아라 장수풍뎅이

  • 작성일 2011-04-18
  • 조회수 2,359

 

[기획특집] 동화를 읽자!

                  ─ 단편동화

 

날아라 장수풍뎅이

 

김남중

 

  

 



여름방학이 얼마 안 남았다. 강건이는 아빠를 졸랐다.



“아빠, 우리 마트 가. 방학숙제로 곤충채집해야 돼.”

강건이 아빠가 정보신문에서 눈을 떼지 않고 대답했다.

“곤충 잡으려면 산이나 들에 가야지.”

“마트에도 있어. 장수풍뎅이랑 사슴벌레.”

강건이 아빠가 피식 웃었다. 더 들어 보지 않아도 강건이 속셈을 알 것 같았다. 강건이는 오래 전부터 장수풍뎅이를 기르고 싶어 했다. 반짝반짝 검고 단단한 등껍질에 우뚝 솟은 뿔, 축구공도 밀 만큼 힘이 센 숲 속의 최강자, 장수풍뎅이를 이길 수 있는 곤충은 없었다. 강건이는 크리스마스에도 어린이날에도 장수풍뎅이 노래를 불렀다.

아빠 엄마는 물론 강건이의 소원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답을 안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장수풍뎅이는 비싸다. 게다가 플라스틱 집을 사야 하고 톱밥도 두툼하게 깔아 줘야 한다. 장수풍뎅이가 놀 수 있게 나뭇가지를 사서 넣어야 하고 밥인 곤충젤리도 한 무더기 사야 한다. 곤충젤리는 나무줄기를 잘라 만든 밥통에 끼워야 뒤집어지지 않는다. 파리가 알을 못 낳게 막으려면 하얀 부직포로 풍뎅이집을 덮어야 한다. 장수풍뎅이 한 쌍, 집, 톱밥, 놀이용 나뭇가지, 곤충젤리, 나무 밥통, 부직포를 모두 사려면 돈이 많이 든다.

강건이 아빠가 회사에 다닐 때라면 어떻게든 장수풍뎅이를 살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강건이 아빠가 회사에서 잘린 지 벌써 여덟 달째였다. 가끔 집 짓는 곳에 가서 벽돌을 나르기도 했지만 요즘은 그런 일도 없었다. 새벽 일찍 일감을 찾으러 나갔다가 그냥 들어오기 일쑤였다.

강건이는 아빠가 늘 집에 있어서 좋았지만 엄마는 점점 한숨이 늘었다. 강건이 아빠는 아침 일찍 정보신문을 가져와 밑줄을 그어 가며 전화를 해댔다. 가끔 면도를 하고 깨끗한 옷을 입고 면접을 보러 가기도 했지만 일자리를 쉽게 구할 수가 없었다.

아빠가 힘없이 돌아올 때마다 강건이와 엄마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강건이 아빠는 잘 생기고 키 크고 힘세고 부지런하다. 그런 아빠가 왜 일을 할 수 없는지 강건이는 알 수가 없었다.

강건이가 마트에 가자고 자꾸 조르자 아빠가 말했다.

“서없이돈 다겠죽!”

“중국말 하지 마!”

강건이가 짜증을 냈고 아빠는 씁쓸하게 웃었다. 엄마를 졸라 봤지만 나오는 말은 똑같았다.

 “도나 서없이돈 다겠죽!”

엄마도 강건이를 보며 힘없이 웃었다. 강건이는 화가 났다. 통닭이 먹고 싶다고 해도, 새 신발을 사달라고 해도, 텔레비전 광고에 나오는 장난감을 사달라고 해도 엄마 아빠는 이상한 말을 하며 웃었다. 강건이는 엄마 아빠의 웃는 얼굴이 싫었다. 사주지도 않으면서 약 올리는 것 같았다.

이튿날도 강건이는 아빠를 졸랐다.

“아빠, 곤충채집!”

“짜진 서없이돈 다겠죽.”

“자꾸 중국말만 하고, 내 곤충채집은 어떻게 해!”

강건이가 소리를 질렀다. 아빠가 벌떡 일어섰다. 강건이가 ‘아차!’ 입을 막았다. 아빠는 자상하지만 가끔 강건이가 버릇없이 굴면 무섭게 변했다. 강건이 아빠가 뭔가를 급히 찾았다.

‘회초리?’

강건이 심장이 콩닥콩닥 뛰었다. 지금이라도 도망갈까 망설이는데 강건이 아빠가 플라스틱 김치통을 불쑥 내밀었다.

“텃밭에 가자.”

“왜?”

“곤충채집하러!”

강건이네 아파트는 변두리에 있었다. 한 동짜리 나홀로 아파트 뒤에 텃밭이 있고 텃밭 뒤는 산이었다.

강건이는 아빠를 따라 텃밭으로 갔다. 비탈진 작은 텃밭들 사이로 좁은 밭두렁 길이 거미줄처럼 퍼져 있었다. 텃밭마다 갖가지 채소가 자랐다. 대나무 버팀목에 매달려 빨간 방울토마토가 열렸고 길쭉한 오이 끝에는 노란 꽃이 말라 있었다. 반들반들 탱탱한 보랏빛 가지와 푸릇한 상추도 보였다.

강건이는 아빠 몰래 방울토마토를 하나 땄다. 입에 넣고 깨물자 토마토 즙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강건이 아빠 반바지에 토마토 물이 묻었다.

“아야!”

강건이 아빠가 찰싹 다리를 때렸다. 배가 통통해질 때까지 피를 빨던 까만 모기 한 마리가 납작해졌다. 모기는 한 마리가 아니었다. 여기저기서 모기가 덤벼들었다.

강건이는 모기를 피해 아파트 주차장으로 도망을 쳤다. 하지만 아빠는 꿋꿋이 텃밭 사이를 헤맸다. 쉬지 않고 팔을 휘둘러 모기를 쫓는 모습이 꼭 탈춤을 추는 것 같았다. 강건이는 박자에 맞춰 추임새를 넣었다.

“얼쑤!”

멀리서 보기엔 탈춤 같았는데 실제로는 처절한 싸움이었다. 강건이는 텃밭에서 돌아온 아빠 몸에서 모기 자국을 세었다. 양쪽 다리에 넷, 팔에 둘, 목덜미에 두 개였다. 모기 자국은 오백 원 동전 크기로 벌겋게 달아올라 보기만 해도 간지러워 보였다. 아빠가 모기 자국에 침을 바르며 강건이에게 김치통을 내밀었다.

“이 정도로는 숙제 안 되겠지?”

투명한 플라스틱 통 속에는 다리가 길고 날씬한 거미, 다리가 짧은 대신 통통 뛰어다니는 털투성이 거미, 까맣고 재빠른 왕개미 두 마리가 있었다.

“방아깨비나 사마귀 같은 걸 잡아야 하는데. 내일 또 와 보자!”

통 속의 거미와 개미를 보자 강건이는 신이 났다. 아빠는 뭐든지 척척이니까 내일은 방아깨비와 사마귀도 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강건이는 밤이 늦도록 김치통 속을 구경했다. 모두 네 마리뿐이지만 그중에서도 강하고 약한 등급이 있었다. 털투성이 거미는 가만히 있다가 왕개미가 가까이 오면 공격을 했다. 왕개미는 털투성이 거미를 피해 다리 긴 거미를 공격했다. 다리 긴 거미는 왕개미와 털투성이 거미를 엉금엉금 피했다.

“아빠! 사마귀가 거미 이겨?”

“이길걸?”

내일은 더 재미있는 일이 벌어질 것 같았다. 강건이는 빨리 사마귀를 잡아서 김치통에 넣어 보고 싶었다.

 

아침이 되자 강건이 고함 소리가 울려 퍼졌다.

“다 죽었잖아!”

김치통은 무덤이 되었다. 다리 긴 거미는 다리가 다 뜯겨 있었고 왕개미들은 다리를 움츠린 채 죽었다. 털투성이 거미는 뒤집어져 있었다. 밤새 엄청난 싸움이 있었던 것 같았다. 강건이는 싸움을 못 봐 아쉬워했고 아빠는 애써 잡아온 녀석들이 다 죽어서 아까워했다.

강건이와 아빠는 다시 텃밭으로 나갔다. 긴 옷을 입고 가니까 모기를 피할 수 있었다. 그런데 곤충이 눈에 띄지 않았다. 사마귀도 방아깨비도 없었다. 거미와 왕개미도 없었다. 깨알만 한 개미들만 줄을 지어 밭두렁을 기어다녔다.

“허, 이것 참!”

강건이 아빠가 머리를 긁적였다. 강건이와 아빠는 머리를 맞대고 고민을 했다. 잡을 생각 없을 때는 곧잘 보이던 벌레들이 다 어디로 갔을까? 강건이가 말했다.

“곤충표본 되기 싫어서 도망갔나 봐. 아니면 다른 애들이 다 잡아갔나?”

강건이 아빠 생각은 좀 달랐다.

“우리가 너무 쉽게 생각한 것 같다. 이렇게 쉬운 거라면 숙제일 리가 없어. 일단 집으로 후퇴하자.”

강건이는 곤충채집을 포기하고 싶었다. 사실 곤충채집을 핑계로 장수풍뎅이를 가지고 싶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강건이 아빠는 포기하지 않았다.

“오랜만에 실력 발휘를 좀 해야겠군.”

저녁밥을 먹고 강건이 아빠가 손전등을 챙겼다. 모기장 그물을 오려붙여 채집망도 만들고 플라스틱 병도 챙겼다. 물병에는 진한 흑설탕물을 담았다. 강건이는 아빠를 텃밭까지만 따라갔다.

“아빠, 잘 갔다 와.”

“같이 가야지! 이거 네 숙제잖아.”

“고마워요! 사랑해요!”

강건이가 아빠 등을 떠밀었다. 강건이 아빠가 쩝쩝거리며 텃밭 사이를 걸어 올라갔다. 텃밭의 끝은 어둡고 깊은 숲이었다. 낮이라면 모르겠는데 밤에는 가고 싶지 않은 곳이었다. 강건이는 숲 속으로 사라지는 손전등 불빛을 지켜보았다. 불빛은 곧 숲 속으로 완전히 사라졌다.

강건이 아빠는 밤늦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밤늦게 기다리다 눈을 떠보니 아침이었다. 강건이가 벌떡 일어났다.

“아빠는?”

“주무시니까 조용히 해.”

강건이는 조용히 할 수가 없었다. 아빠가 뭘 잡아왔는지 확인하는 순간 자기도 모르게 함성을 질렀다.

“아빠 최고다!”

마루 위에는 넓적한 뚜껑이 달린 유리병들이 늘어서 있었다. 병마다 장수풍뎅이, 사슴벌레, 풍이 두 마리, 손바닥 크기 나방, 매미, 사마귀가 들어 있었다. 나방과 매미는 죽었지만 사마귀, 장수풍뎅이, 사슴벌레, 풍이는 살아 있었다.

강건이는 마루를 깡총깡총 뛰어다녔다.

“왜 이렇게 시끄러워?”

강건이 아빠가 하품을 하며 방에서 나왔다. 강건이가 달려가 아빠 허리를 덥석 안았다. 아빠가 강건이 머리를 쓰다듬으며 물었다.

“좋냐?”

강건이가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침밥을 먹고 아빠가 구인광고를 살피는 동안 강건이는 장수풍뎅이를 가지고 놀았다. 사슴벌레와 씨름을 시켰는데 역시 장수풍뎅이가 최고였다. 납작한 사습벌레는 제대로 힘도 써보지 못하고 밀려났다. 강건이는 하루 내내 장수풍뎅이만 쳐다보았다. 흑설탕물도 잔뜩 먹여 주었다.

강건이는 밤이 늦어서야 곤충채집판을 만들었다. 내일 학교에 가지고 가야 하니까 더 기다릴 시간이 없었다. 두꺼운 상자를 잘라 곤충 이름을 쓰고 그 위에 곤충들을 투명한 테이프로 붙였다. 풍이 두 마리가 아쉽게도 죽었다. 황금색과 청록색으로 반짝이는 예쁜 풍이였다. 죽은 풍이에게는 미안하지만 그래서 곤충채집판에 붙이기가 더 쉬웠다. 살아 있으면 붙일 수가 없다.

장수풍뎅이와 사슴벌레는 여전히 살아 있었다. 강건이는 고민 끝에 살아 있는 곤충들을 작은 플라스틱 병에 담아서 채집판 위에 붙이기로 했다. 선생님한테 보여만 주고 다시 집으로 가져와서 기를 생각이었다.

 

선생님이 강건이를 칭찬해 주었다. 사 온 게 아니라 산에 가서 직접 곤충채집을 해 온 아이는 강건이밖에 없었다. 강건이는 아빠가 잡아왔다는 걸 말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망설이다가 결국 말하지 않기로 했다. 선생님을 실망시키는 건 나쁜 짓이다.

쉬는 시간이 되자 아이들이 강건이 곤충채집판 앞에 모여들었다. 플라스틱 병 속에 들어 있는 장수풍뎅이를 보기 위해서였다. 장수풍뎅이를 키우고 있는 아이들이 특히 관심이 많았다. 마트에서 사지 않은 장수풍뎅이는 처음이었다.

장수풍뎅이와 사슴벌레를 두 쌍씩 키우는 정훈이가 강건이에게 말했다.

“장수풍뎅이, 나한테 팔아라.”

“뭐?”

강건이가 깜짝 놀라 돌아보자 정훈이가 손가락을 두 개 들었다.

“이천 원 줄게.”

강건이는 가만히 있는데 다른 아이들이 떠들어댔다.

“야! 이천 원이 뭐냐? 마트에서는 만 원도 넘는데.”

“일등 문구점에서도 칠천 원이야.”

“나한테 팔아. 나는 삼천 원 줄게.”

“나는 삼천 오백 원.”

아이들이 소리를 질렀다. 강건이는 멍한 얼굴로 장수풍뎅이를 바라보았다. 집에 가져가서 키울 생각이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장수풍뎅이를 팔 생각은 전혀 없었다. 하지만 사겠다고 나서니 팔고 싶었다. 강건이는 오랫동안 엄마 아빠한테 용돈을 받지 못했다. 돈이 생기면 일등 문구점에서 게임을 할 수도 있고 아이스크림도 사먹을 수 있고 장난감도 살 수 있다. 강건이가 말했다.

“사천 원 주면 팔게.”

아이들이 조용해졌다. 강건이는 잠깐 망설였다. 그냥 삼천 원에 팔까? 강건이는 아이들 눈을 하나하나 살펴보다가 침을 꿀꺽 삼켰다. 사천 원을 불렀는데도 돌아서는 아이가 한 명도 없었다. 강건이가 다시 한마디를 더했다.

“이거 밤 열두 시에 숲 속에 가서 잡아온 거야. 진짜 무서웠어!”

강건이 말이 맞았다. 무서워서 강건이는 숲에 들어가지도 못했다. 계곡에서 버들치를 잡아다 키우는 준도가 강건이 편을 들었다.

“자연산은 원래 더 비싸. 알도 잘 낳을걸?”

어제 용돈을 받은 민찬이가 손을 번쩍 들었다. 장수풍뎅이를 키워 보고 싶지만 살까말까 고민하던 참이었다.

“내가 살게.”

강건이는 사천 원이 생겼고 민찬이는 장수풍뎅이가 생겼다. 사슴벌레도 삼천 원에 팔았다. 강건이에게 갑자기 큰돈이 생겼다. 아이들이 부러운 얼굴로 강건이를 바라보았다. 민찬이가 물었다.

“이거 알 언제 낳아?”

“야! 그거 수놈이야!”

강건이가 대답하자 민찬이가 눈을 깜짝였다. 수업종이 울렸다.

 

칠천 원이 없어지는 데 두 시간밖에 걸리지 않았다. 우선 아이스크림을 하나 물고 일등 문구점 안에서 게임을 했다. 일등 문구점은 교문에 가까워 게임기를 안에다 들여놓았다. 게임기를 밖에 놓으면 선생님한테 들켜 혼난다. 게임을 하고 합체 팽이를 사니까 돈이 떨어졌다.

문구점 밖에는 합체팽이 싸움장이 있었다. 오늘따라 합체팽이 싸움장에 아이들이 많이 몰려들었다. 강건이는 불꽃 튀는 팽이 싸움을 지켜보았다. 지금 판이 끝나면 강건이 차례였다.

“강건아, 뭐 하니?”

누군가 강건이를 불렀다. 강건이는 돌아보지도 않고 대답했다.

“팽이싸움 하잖아. 말 시키지 마.”

“말 시키고 싶은데?”

강건이가 뒤를 돌아보았다. 강건이를 찾으러 나온 아빠가 우뚝 서 있었다. 언제부터 서 있었는지 알 수 없었다. 아빠가 강건이 귀를 잡아당겼다. 강건이는 팽이 싸움도 못하고 싸움장에서 끌려나왔다.

강건이 아빠가 학교 운동장으로 갔다. 강건이는 고개를 푹 숙이고 아빠를 따라갔다.

“아빠가 묻는 말에 솔직하게 대답했으면 좋겠다.”

강건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질문을 할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강건이 아빠가 한숨을 쉬더니 말했다.

“돈 어디서 났냐?”

“팔았어.”

“뭘?”

“장수풍뎅이.”

강건이 아빠가 피식 웃었다. 강건이는 아빠 표정을 살폈다. 저 웃음은 무슨 뜻일까? 강건이 아빠가 물었다.

“얼마 받았냐?”

“장수풍뎅이 사천 원. 사슴벌레 삼천 원.”

“많이 받았네?”

“응. 애들이 자연산이라고 좋아했어.”

“돈으로 뭐 했어?”

“아이스크림이랑 게임이랑 합체팽이 샀어. 전부 다.”

“좋았냐?”

강건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빠가 팔짱을 끼더니 강건이에게 말했다. “집에 가라. 아빠는 좀 있다가 갈게.” 강건이는 교문을 나서기 전에 뒤를 돌아보았다. 벚나무 밑에 앉아 있는 아빠가 보였다. 바람이 불어 나뭇잎이 흔들렸지만 강건이 아빠는 석상처럼 가만히 움직이지 않았다. 강건이는 아빠한테 미안했다. 잠도 못 자고 잡아다 준 장수풍뎅이를 달랑 팔아먹고 아빠한테는 아이스크림 하나도 사주지 않았다. 얌체 같았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돈은 하나도 남지 않았고 이미 포장 뜯은 팽이를 무를 수도 없다.

강건이는 집으로 올라가기 전에 편지함을 열었다. 오늘따라 편지가 많았다. 편지마다 네모나고 빨간 도장이 찍혀 있었다. 청구서도 있었다. 청구서에도 빨간 글씨가 보였다. 몇 달이나 돈이 밀려서 그렇다. 엄마 아빠가 보면 한숨을 쉴 편지들이었다. 강건이는 돈을 다 쓰지 말 걸 그랬다고 생각했다. 강건이는 편지들을 다시 편지함에 집어넣었다. 잘 보이지 않게 가지런히 눕혀 놓았다. 엄마 아빠가 봐서 별로 기분좋을 편지가 아니었다.

 

강건이네 반에 굉장한 소문이 퍼졌다. 학교 앞에 풍뎅이를 파는 노점상 아저씨가 나타났다는 이야기였다. 엄청나게 싸게 판다는 소식에 아이들이 만세를 불렀다. 벌써 여러 아이들이 장수풍뎅이를 샀다. 강건이도 장수풍뎅이를 구경하고 싶었다. 사지는 못해도 구경은 공짜다. 쉬는 시간마다 아이들이 떠들어댔다.

“그 아저씨, 오늘도 올까?”

“나는 돈 가져왔어.”

학교가 끝나자마자 강건이와 친구들은 교문 앞으로 달려 나왔다. 하지만 장수풍뎅이 아저씨는 없었다.

이튿날 학교에 가보니 어제 장수풍뎅이를 샀다는 친구들이 있었다.

“그 아저씨 진짜 마음씨 좋아. 작은 건 오백 원 깎아 줬어.”

“사슴벌레도 다리 하나 없다고 깎아 줬어.”

“풍이는 천 원! 완전 황금 풍이.”

풍뎅이 아저씨를 만난 아이들이 떠들어댔다. 장수풍뎅이를 사러 돈을 가져왔지만 아저씨를 만나지 못한 다른 아이들은 약이 올랐다. 어제 허탕을 친 강건이도 마찬가지였다. 강건이는 꼭 풍뎅이 아저씨를 만나고 싶었다. 며칠 있으면 생일인데 선물로 장수풍뎅이를 사달라고 할 생각이었다.

마지막 수업 시간이 되자 아이들은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풍뎅이 아저씨가 오늘도 왔는지 궁금했다. 창가 쪽 아이들은 자꾸 교문을 바라보았다. 선생님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수업이 끝나자 아이들이 교문을 향해 달려갔다. 강건이가 일등이었다. 교문 앞은 학원차들로 가득했다. 태권도복을 입은 사범 아저씨가 축구공, 쌍안경, 게임기 같은 선물을 전시해 놓고 입관 신청을 받고 있었다. 아이들이 태권도장 선물을 구경했다. 그뿐이었다. 어디에도 장수풍뎅이 아저씨는 보이지 않았다.

뒤따라온 강건이네 반 아이들도 실망했다. 강건이는 친구들과 함께 교문 옆에 줄줄이 앉아서 풍뎅이 아저씨를 기다렸다. 학원차가 모두 떠나고 태권도 사범마저 선물을 챙겨 떠났지만 풍뎅이 아저씨는 나타나지 않았다. 강건이는 친구들과 헤어져 횡단보도를 건넜다.

집에 가는 길모퉁이에 문구점이 하나 더 있었다. 노벨 문구점이었다. 노벨 문구점은 밖에 게임기를 내놓았다. 교문 앞이 아니어서 선생님한테 들킬 염려가 없어서였다. 강건이는 쭈그려 앉아 게임을 하는 아이들 어깨 너머로 구경을 했다. 언제나 그렇듯 잠깐만 구경하다 집에 갈 생각이었다.

“이강건! 나 장수풍뎅이 샀다!”

같은 반 준도가 지나가다가 강건이를 불렀다. 준도는 방금 전에 샀다며 장수풍뎅이를 자랑했다. 강건이가 물었다.

“풍뎅이 아저씨 왔냐?”

“응.”

강건이가 학교 가는 길을 달려갔다. 저만치 교문 앞에 모여 있는 아이들이 보였다. 두어 명은 손에 장수풍뎅이를 들고 있었고 나머지는 구경하는 아이들이었다. 강건이가 아이들에게 물었다.

“풍뎅이 아저씨는?”

“다 팔고 갔어.”

강건이는 약이 올랐다. 풍뎅이 아저씨가 강건이를 놀리는 것 같았다. 숨바꼭질이라도 하자는 건가? 강건이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강건이는 후회를 했다. 친구들이 자기 풍뎅이 자랑을 할 때마다 팔아버린 장수풍뎅이가 생각났다. 다시 한 번 장수풍뎅이를 가질 수 있으면 절대 팔지 않고 키울 자신이 있었다. 그렇지만 장수풍뎅이는 공짜가 아니었다. 마트에서는 한 마리에 만 원이 넘고 풍뎅이 아저씨한테는 오천 원을 줘야 한다. 물론 아빠가 숲 속에 들어가서 잡아올 수도 있다. 셋 중에 선택하라면 강건이는 풍뎅이 아저씨를 택할 생각이었다. 아빠한테 또 장수풍뎅이를 잡아다 달라고 부탁하기가 미안했다. 하지만 엄마 아빠한테 돈을 달라고 하기도 쉽지 않았다. 예전에는 돈을 달라면 중국말이라도 하며 웃던 엄마가 요즘에는 아예 대답을 하지 않았다. 아빠는 얼굴 보기가 힘이 들었다.

강건이 아빠가 변했다. 늘 아침 일찍 일어났는데 요즘은 강건이가 학교에 갈 때까지 일어나지 않았다. 강건이가 잠들 때까지 집에 들어오지 않은 날도 많았다.

강건이 생일이 되었다. 아침에 새우 미역국을 먹었다. 강건이는 쇠고기 미역국을 좋아하지만 아무 말 없이 미역국 그릇을 비웠다. 강건이는 두근두근 기대하며 빈 밥상머리에 앉아 기다렸다. 설거지를 하던 엄마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케이크랑 선물이랑 다음에 숨 좀 쉴 만하면 해줄게. 이번 것까지 합쳐서.”

혹시나 했던 강건이 입술이 한 뼘은 튀어나왔다. 누가 이름만 크게 불러도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강건이가 학교에 가려고 집을 나섰다. 아빠가 뒤따라 나오더니 강건이 주머니에 뭔가를 넣어 주었다.

“생일 선물이다. 얼굴 좀 펴.”

강건이 아빠가 기지개를 켜며 돌아섰다. 쉴 새 없이 하품을 하는 걸 보니 들어가자마자 바로 누울 기세였다. 강건이는 주머니에 든 것을 꺼내 보았다. 구겨진 종이돈, 만 원짜리 한 장이었다.

강건이 눈에 고였던 눈물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강건이가 활짝 웃었다. 찢어진 슬리퍼를 신어도, 뒷머리가 베개에 눌려도 아빠는 멋졌다.

 

강건이는 풍뎅이 아저씨를 기다렸다. 풍뎅이 아저씨는 다른 노점상과 달랐다. 늦게 와서 일찍 갔다. 강건이는 오늘은 절대 놓치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제일 먼저 가서 가장 튼튼하고 멋진 장수풍뎅이를 살 생각이었다.

강건이는 수업시간 내내 계획을 짰다. 문제는 시간이었다. 풍뎅이 아저씨는 오래 머물지 않았다. 잠깐 나타나 재빨리 팔고 일찍 자리를 뜬다. 도둑고양이처럼 나타나는 풍뎅이 아저씨를 만나려면 교문에서 오랫동안 기다리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강건이는 수업이 끝나자마자 교문을 향해 달려 나갔다. 혹시나 하고 기대를 했지만 풍뎅이 아저씨는 보이지 않았다. 강건이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저만치 골목에서 고개를 내밀고 있는 강건이 아빠가 보였다. 강건이를 본 아빠가 놀란 거북처럼 고개를 쑥 집어넣었지만 이미 늦었다.

“아빠, 거기서 뭐해?”

강건이 아빠가 쭈뼛쭈뼛 골목에서 나왔다. 손에 종이 상자를 든 아빠가 강건이에게 물었다.

“너, 집에 안 가니?”

“갈 거야. 아빠는 어디 가?”

“산에 운동 간다.”

강건이 아빠가 손을 흔들며 산 쪽으로 걸어갔다. 강건이는 아빠를 따라갈까 하다가 일등 문구점으로 들어갔다. 잠깐 게임 구경을 하면서 풍뎅이 아저씨를 기다릴 생각이었다.

게임을 하면 시간이 빨리 갔다. 구경만 해도 마찬가지였다. 강건이가 넋 놓고 게임 구경을 하고 있는데 민찬이가 들어왔다. 민찬이가 강건이 팔을 흔들었다.

“강건아, 이거 봐라.”

민찬이는 암컷 장수풍뎅이를 들고 있었다. 강건이보다 먼저 일등 문구점 아줌마가 물었다.

“그거 어디서 났니?”

“샀어요. 저기서.”

민찬이가 바깥쪽을 가리켰다. 강건이가 오락기 너머로 창 밖을 보자 교문 옆에 앉아 있는 아저씨 등이 보였다. 풍뎅이 아저씨였다. 아이들이 풍뎅이 아저씨 앞에 모여 있었다. 문구점 아줌마가 민찬이에게 물었다.

“얼마 줬는데?”

아줌마 목소리가 곱지 않았다. 그럴 만한 것이 문구점에 있는 장수풍뎅이가 며칠 동안 한 마리도 팔리지 않았다. 아줌마는 이제야 원인을 알았다는 표정이었다. 민찬이가 대답했다.

“오천 원요.”

문구점 아줌마가 입술을 삐죽거리며 말했다.

“그거 싸구려를 가져다가 파는 거야. 금방 죽을걸?”

“아니에요. 이거 자연산이라 엄청 튼튼해요.”

“세상에 자연산이 어딨어?”

“저 아저씨가 산에서 직접 잡아왔대요.”

“그래?”

문구점 아줌마 눈이 가늘어졌다.

강건이는 민찬이와 아줌마가 나누는 이야기가 들리지 않았다. 감전이라도 된 것 같았다. 강건이는 풍뎅이 아저씨 등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네. 노점상도 불법인데 산에서 야생곤충을 잡아다 파는 건 더 나쁘잖아요. 아주 나쁜 사람이라니까요. 빨리 좀 와주세요.”

풍뎅이 아저씨 등을 노려보며 문구점 아줌마가 전화기를 내려놓았다. 민찬이가 강건이 팔을 흔들었다.

“이거 잠깐 가지고 있어.”

민찬이가 강건이에게 장수풍뎅이를 맡기고 게임기에 동전을 넣었다. 강건이는 얼떨결에 받은 장수풍뎅이를 바라보았다. 암컷이어서 그런지 뿔도 작고 덩치도 작았다. 그래도 힘은 셌다. 갈고리 발톱이 붙은 다리를 마구 휘저었다.

강건이는 일등 문구점 밖으로 나가고 싶었다. 나가서 풍뎅이 아저씨 얼굴을 보고 싶었다. 하지만 나가지 못했다. 짐작이 맞을까 봐 겁이 났다.

“왔다!”

문구점 아줌마가 웃었다. 길 건너편에 경찰차가 와서 멎었다. 권총을 찬 경찰 아저씨 두 명이 교문 앞에 모여 있는 아이들을 보고 서로 고개를 끄덕였다. 경찰 아저씨들이 길을 건너려고 했다. 마침 차들이 줄을 지어 지나갔다. 경찰 아저씨들은 한걸음 물러서서 차들이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강건이는 침을 꿀꺽 삼켰다. 차들이 다 지나가면, 경찰 아저씨들이 길을 건너면, 풍뎅이 아저씨는 잡혀간다. 수갑을 찰지도 모른다. 어쩌면 감옥에 갈지도 모른다. 장수풍뎅이를 파는 일이 그렇게 나쁜 일인지 몰랐다. 권총을 찬 경찰 아저씨들이 출동할 일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하지만 경찰 아저씨가 왔다. 그것도 두 명이나!

강건이가 문구점 밖으로 뛰어나왔다.

“풍뎅이 아저씨.”

강건이가 소리내어 불렀다. 풍뎅이 아저씨만 듣기를 원했는데 누구도 듣지 못했다. 강건이가 더 큰 소리를 냈다.

“풍뎅이 아저씨!”

그래도 듣지 못했다. 강건이는 자기가 틀렸기를 바라며 더 크게 불렀다.

“풍뎅이 아저씨!”

신호등이 빨간 불로 바뀌고 횡단보도 신호가 초록불로 바뀌었다. 차들이 멈추자 경찰 아저씨들이 횡단보도를 건너기 시작했다. 강건이가 눈을 질끈 감고 고함을 질렀다.

“아빠아아!”

풍뎅이 아저씨가 뒤를 돌아보았다. 모자를 눌러썼지만 그 모자마저 강건이가 알고 있는 모자였다. 풍뎅이 아저씨, 강건이 아빠가 급히 고개를 돌렸다. 경찰 아저씨들이 횡단보도를 다 건넜다. 조금만 더 오면 교문이었다.

“도망 가, 아빠!”

아빠가 강건이를 다시 돌아봤다. 강건이가 경찰 아저씨들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경찰 아저씨를 본 강건이 아빠가 벌떡 일어섰다. 강건이 아빠는 풍뎅이가 담긴 종이상자를 집어 들고 아래쪽 길을 향해 달렸다.

“어이! 아저씨! 기다려요!”

경찰 아저씨들이 소리를 질렀지만 강건이 아빠는 멈추지 않았다.

“삑! 삐빅!”

호루라기 소리가 들렸다. 경찰 아저씨들이 강건이 아빠를 쫓아 달렸다. 강건이도 따라 달렸다. 풍뎅이를 구경하던 아이들이 벌떡 일어났다. 다들 신난다는 표정이었다. 눈앞에 있던 아저씨가 도망가고 경찰들이 호루라기를 불며 달려간다. 장수풍뎅이보다 훨씬 멋진 구경이었다.

두 번째 문구점을 지나면 사거리가 있었다. 사거리를 넘어가면 시장이 나온다. 강건이 아빠는 시장 쪽을 향해 달렸다. 인도에 사람이 많아서 강건이 아빠는 빨리 달리지 못했다. 경찰들이 점점 가까워졌다. 강건이도 경찰 아저씨 뒤를 열심히 쫓았다.

사거리가 나왔다. 횡단보도 신호등이 빨간색이었다. 강건이 아빠가 뒤를 한 번 돌아보더니 넓고 긴 횡단보도로 뛰어들었다.

“빠아앙!”

“끽! 끼긱!”

귀가 찢어질 것 같은 소리가 났다. 한두 대가 아니었다. 길가에 있던 사람들도, 경찰들도, 강건이도 걸음을 멈췄다. 다들 횡단보도를 달리는 강건이 아빠를 바라보았다. 강건이 아빠가 급히 멈추는 차들을 이리저리 피하며 앞으로 나갔다. 경찰 아저씨 한 명이 호루라기를 길게 불었다.

“삐이이이이이익!”

호루라기 소리가 끝나기 전에 요란한 소리가 들렸다.

“끼이익.”

강건이 아빠를 늦게 본 택시 한 대가 미끄러지며 멈췄다. 하지만 조금 늦었다.

“쾅!”

강건이는 보았다. 아빠가 택시 위로 둥실 떠올랐다. 손에 들고 있던 종이상자는 사람보다 더 높이 솟았다. 상자가 열리면서 뭔가가 쏟아져 나왔다. 수박씨처럼 흩뿌려진 장수풍뎅이, 사슴벌레, 풍이들이었다. 강건이 아빠는 풍뎅이들과 함께 하늘을 날았다. 일 초 같기도 하고 일 분 같기도 했다. 강건이는 아빠가 장수풍뎅이로 변한 게 아닐까 생각했다. 힘세고 빛나는 풍뎅이들, 그중에 가장 힘센 장수풍뎅이가 아빠 같았다. 하늘 높이 흩뿌려져 반짝 빛나던 풍뎅이들이 일제히 날개를 폈다. 풍뎅이들이 더 높은 하늘로 힘차게 날아올랐다. 그렇지만 강건이 아빠에게는 날개가 없었다. 두 팔을 내저었지만 날아오를 수가 없었다.

종이상자가 툭 떨어졌고 강건이 아빠가 털썩 떨어졌다. 뒤늦게 사람들이 비명을 질렀다. 강건이도 소리를 질렀다.

“아빠!”

강건이 목소리를 듣기라도 한 듯 아빠가 벌떡 일어났다. 택시에 치였으면서도, 하늘에서 떨어졌으면서도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아빠는 강했다. 절룩거리면서도 멈추지 않았다.

강건이 아빠가 순식간에 시장으로 사라졌다. 풍뎅이들도 어디론가 날아가 버렸다. 사거리 한복판에는 멈춰 선 택시와 텅 빈 종이상자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시간이 멈춘 듯 움직이지 않던 사람들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경찰 아저씨들이 서로 이야기하더니 한 명은 택시 쪽으로, 다른 한 명은 강건이 쪽으로 걸어왔다. 강건이가 뒤돌아서서 달렸다.

“얘야! 잠깐만!”

뒤에서 부르는 소리가 들렸지만 강건이는 멈추지 않았다. 사람들 사이를 뚫고 골목을 이리저리 돌아 정신없이 달렸다. 아무도 없는 낯선 집 앞까지 와서야 걸음을 멈췄다. 숨이 막혀서 죽을 것 같았다. 강건이는 정신없이 숨을 몰아쉬었다.

숨이 진정되자 손바닥이 따끔거렸다. 강건이가 손을 내려다보았다.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는데 강건이는 여전히 장수풍뎅이를 쥐고 있었다. 달리는 동안 자기도 모르게 손바닥에 힘을 줬나 보다. 장수풍뎅이가 괴로운 듯 다리를 버둥거렸다. 강건이가 손의 힘을 풀었지만 장수풍뎅이는 뒤집혀 좀처럼 일어나지 못했다. 강건이는 장수풍뎅이를 쓰다듬었다. 빨리 기운을 차리기를, 그래서 훨훨 날 수 있기를 바랐다.

장수풍뎅이는 좀처럼 기운을 내지 못했다. 이러다가 죽을 것만 같았다. 강건이는 장수풍뎅이에게 손가락을 내밀었다. 다리 끝에 달린 발톱으로 손가락을 잡고 벌떡 일어나기를 바랐다.

장수풍뎅이는 강건이 손가락이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 손가락을 대줘도 자꾸 하늘을 향해 발을 내저었다. 강건이에게는 보이지 않는 무엇이 보이는 것 같았다, 그것을 잡고 일어나려는 것 같았다. 장수풍뎅이는 보이지 않고 잡히지도 않는 것을 향해 계속 발톱을 내저었다. 조금씩 느려지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강건이는 갑자기 아빠가 보고 싶었다.

 

《문장웹진 5월》

 

 

김남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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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리자
  • 2024-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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