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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체성보다는 다성성으로서의 장편소설-박형서, 『새벽의 나나』(문학과지성사, 2010)

  • 작성일 2010-10-31
  • 조회수 1,989

[기획/특집] 시와 소설로 보는 2010년 명장면들



총체성보다는 다성성으로서의 장편소설

- 박형서, 『새벽의 나나』(문학과지성사, 2010)


이수형


아주 새로운 테제는 아니지만, 몇 년 전부터 다시 호출되기 시작한 장편소설 대망론이 낳은 성과는 무엇일까? 최근 몇 년 사이에 잡지는 물론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문학 매체에 연재되었거나 연재 중인 장편소설의 수효를 따진다면 아무튼 양적으로는 눈에 띌 만한 성장을 한 것만은 틀림없어 보인다. 그런데 그 결과 장편소설의 시대가 도래했다거나 혹은 아직 황금기에 이르지는 못했을지언정 장편소설 대망론이 말 그대로 대망했던 완미한 단계에 이르는 과정이 목도된다거나 하는 식의 낙관적인 진단이나 전망을 하기에는 왠지 자신감이 부족한 형편인 것도 사실인 듯하다.

이렇게 회의론에 빠지다 보니, 장편소설 대망론으로 기대했던 것이 과연 무엇이었나 하는 근본적인 문제까지 회의하게 된다. 루카치의 장편소설론을 읽고 머릿속에 남는 말은 ‘자신의 영혼을 증명하기 위해 여행을 떠난다’라는 뜻의 문장과 ‘총체성’이라는 개념인데, 우선 영혼을 증명하기 위한 여행이 반드시 장편소설을 통해서만 형상화가 가능하다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한국소설이 지나치게 단편소설 위주로 편성되어 있다는 진단은 여러 차례 이루어진 바 있지만, 그 말은 곧 한국에서는 장편소설이 담당해야 할 몫이 어느 정도까지는 단편소설에 의해 보완되었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는 없을까? 체계적인 이해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아무튼 외국의 단편소설이 삶의 단편(斷片)을 포착하는 데 치중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 데 비한다면, 한국의 단편소설은 비교적 복잡하고 보다 심층적인 사회 구조까지 다루려는 경향이 뚜렷한 것처럼 보인다. 이런 측면에서 보자면, 최근에 출간된 몇몇 젊은 작가들의 첫 번째나 두 번째 장편소설이 그들이 써 왔던 단편소설들과 닮았다는 것을 꼭 장편소설이라는 장르에 대한 고민 부족 탓으로만 치부할 이유는 없을지도 모른다. 그들의 단편소설이 워낙에 장편소설스러운 주제나 스토리를 다뤄 왔던 것은 아닐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편소설을 통해 총체성이라는 개념을 수용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할 것이라는 점에서 장편소설과 단편소설의 장르적 차이는 분명하다. 물론, 원고 분량이 늘어난다고 해서 저절로 총체성이 획득되는 것은 아니다. 아니, 총체성을 다룬 이야기를 거대 서사라 명명하고 이에 대한 거부를 내세우는 것이 현대 혹은 포스트모던의 시대정신이라고 할 때, 거대 서사의 일종인 장편소설 역시 거부되어야 할 대상이 되어 버린 것은 아닐까? 그리스적이거나 신화적인 총체성이라면 그것은 애초에 루카치에 의해 선험적 고향 상실성이라 불림으로써 사라졌으며, 전통적인 마르크시즘에서 말했던 것처럼 경제적인 것이 사회의 다른 층위들을 결정하는 토대 환원론적인 의미의 총체성이라면 그것은 과학으로서의 특권적 지위를 상실함으로써 또한 사라졌다. 일찍이 루카치가 아이러니라는 이름으로, 그뒤에 프레더릭 제임슨이 재현 불가능한 실재(the Real)로서의 부정성이라는 개념으로 총체성에 대한 지향을 보존하려고 했던 것은, 한편으로는 경탄할 만한 일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좀 안타까운 일이다.

요컨대, 총체성이란, 잘 모르겠다는 것이다. ‘다성성’은 어떨까? 굳이 ‘루카치 대(對) 바흐친’이라는 식의 구도를 염두에 둬서가 아니라, 아무튼 장편소설이라면 서사의 볼륨을 문제 삼지 않을 수 없으니 서로 다른 많은 목소리들, 서로 다른 인간과 삶과 이데올로기로 이루어진 많은 세계들을 다루는 것은 나쁘지 않은 방법이지 않을까? 게다가 그것이 다성성이라 불리는 덕목을 지향한다면 나쁘지 않을 뿐 아니라 꽤 괜찮기까지 하지 않을까? 2010년에 출간된 소설 중에서 박형서의 『새벽의 나나』를 꼽을 수 있다면, 그 이유는 이 장편소설이 다성성이라는 덕목을 따르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방콕에 있는 나나라는 이름의 기차역을 중심으로 형성된, 태국에서 가장 큰, 아니 전 세계에서 가장 큰 사창가를 배경으로 하는 『새벽의 나나』에는 지아, 플로이, 라노로 이어지는(혹은 이어질 예정인) 매춘부 삼대(三代)를 중심으로 한 연대기가 펼쳐지고 있는바, 거기에는 현대적이고 도시적인 삶에 익숙한 우리들이 상상하기도 어려운 이야기들로 가득 차 있다. 상상하기 어려운 이야기이므로 그것은 라블레적인 카니발의 세계를 연상시키기도 하고, 마르케스의 『백 년 동안의 고독』과 같은 남미소설에서 보이는 마술적 리얼리즘의 세계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우리는 대체로 상상한 만큼만 이해할 수 있는 법이므로 아프리카에 가려다 우연히 방콕에 들른 주인공 레오가 나나를, 그들을 이해하기란 당연히 쉬운 일이 아니다. 방콕의 한 거리에서 플로이를 본 레오는 그야말로 첫눈에 사랑에 빠져 그녀의 집에 찾아가고, 욘과 리싸와 그밖에 많은 매춘부들과 함께 살아간다. “완전히 이해하는 건 불가능할지라도, 아무튼 그런 방식을 통해 꽤 가까이 접근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그 방식도 완전히 실패했다. 매 순간 보다 난해한 질문들이 생겨났을 뿐이다.” 그녀를 사랑한다고 믿고 있는 레오로서는 끊임없이 돈을 뜯어내고 거짓말을 일삼는 그녀의 태도를 전혀 이해할 수 없으며, 그래서 마침내 빈털터리로 한국행 비행기를 탄다.

그런데 상상하기 어려우며 이해할 수 없는 사건들이란, 곰곰이 생각해 보면, 우리가 잠시 여행을 떠났다가 바로 귀환해야 할 현대적이고 도시적인 삶에서 은폐되어 왔던 가장 근원적인 사건들이었을 것이다. 나나에서의 6개월을 통해 ‘삶이란 무엇인가’ 같은 근본적인 질문과 마주쳤던 레오는 이후로도 여러 차례 그 곳을 찾게 되거니와, 대학 졸업을 앞두고 우연히 방콕을 방문했을 때만 해도 편협하고 옹졸하기 짝이 없던 그가 점점 인생과 세상에 대해 알아갈 때, 그가 발견하게 되는 것 역시 나나의 매춘부들의 삶이 실은 자신의 삶이기도 하다는 깨달음이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레오는 전생을 볼 수 있는 힘을 빌려 이렇게 말한다.

슬펐다. 그토록 한계가 빤히 보이는 능력을 가졌다는 게 슬펐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안심이 되었다. 우리 중에 살인자가 아니었던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우리 중에 배신자가 아니었고 도둑이 아니었고 희생양이 아니었던 자는 없기 때문이다. 윤회의 풍차에서 불어오는 영겁의 바람은 모든 영혼의 이력을 평평하게 만들어놓았다. 단지 순서가, 오늘 여기서 맡은 배역이 다를 뿐이다. 우리 중에서 매춘부로 살아보지 않은 자는 한 명도 없었다.

삶이 영원히 순환하는 것이라면, 그 무한한 삶 중에서 우리가 배신자나 희생양이나 매춘부로 살았던 삶이 단 한 번도 없었을 리 없으며, 그러니 그들을 이해하지 못할 리도 없다. 타인을 이해할 준비가 되어 있다면 반드시 전생을 볼 수 있는 능력을 가져야 할 필요는 없으리라. 아니 어쩌면, 타인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그와 나 사이에 엮어진 전생의 인연 때문인 것일까?
모름지기 좋은 소설이란, 그것이 장편이든 단편이든 간에 주인공이 자기의 영혼을 증명하기 위해, 진정한 자기를 찾기 위해 떠나는 여행 과정을 다룰 것이다. 그리하여 『새벽의 나나』에서는 주인공이 정신적으로 성장하고, 그 성장과 함께 세상의 수수께끼와 신비와 지혜들이 얼마간 더 알려지고 있다. 그런데 그 성장이란, 그 깨달음이란 다소 역설적이다. 자기를 찾아 떠나는 여행에서 찾는 것은 실체로서의 자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새벽의 나나』가 다성적인 장편소설인 이유는 마지막에 도달한 자기의 영혼 또한 다성적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문장웹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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