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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 2009년 겨울’, 통증의 연금술-이영광의 「아픈 천국」(『아픈 천국』, 창비, 2010)

  • 작성일 2010-10-23
  • 조회수 1,289


[기획/특집] 시와 소설로 보는 2010년의 명장면들

‘용산, 2009년 겨울’, 통증의 연금술


- 이영광의 「아픈 천국」(『아픈 천국』, 창비, 2010)

- 오연경 -



「서울, 1964년 겨울」이 ‘용산, 2009년 겨울’로 악몽처럼 되돌아왔다. 여관방 너머의 벽이 공권력의 바리케이드로 바뀐 채. 죽음은 숭고와 애도의 영역 바깥으로 추방되었다. 검은 아스팔트에 그려진 사고의 흔적처럼 명백한 그것은 매일 지나다니는 우리의 발밑에 감금되었다. 죽음의 소식만이 취업과 입시를 위한 ‘최신 이슈’로 갈무리되어 실업 탈출용으로 재활용되고 있다. 2010년, 죽음은 어디에 있는가?

여기, 죽음의 성지에 얼굴을 묻은 채 “숨 멈추고, 검은 젖을 깊이”(「검은 젖」) 빨고 있는 시인이 있다. 첫 번째 시집에서 “세상에는 견딜 수 있는 것과 견딜 수 없는 것이 있을 뿐”이라고 말하던 이영광 시인, 두 번째 시집에서는 육친의 죽음도 견뎌낸 것 같았던 이영광 시인이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정치사회적 죽음 앞에서 “깊어갈수록, 헐값에는 팔 수 없는 싸구려”(「지긋지긋한 슬픔」, 『직선 위에서 떨다』) 시집을 내놓았다. 오랫동안 ‘싸구려’로 취급되어 왔던 구덩이를 누구보다 깊이 파놓아서 헐값에 팔아넘길 수 없는 광천수가 솟아나왔다. 그 물맛이 맑다. 시원하다. 따끔하다. 여기가 “아픈 천국”이라고 사색(死色)이 되어 말하는데, 그 말에서 “몇 가닥 활로(活路)”(「아픈 천국」)가 열린다. 기적 같다. “삼천대천세계의 어둠들이 몰려”오는 구덩이에서 그 어둠을 원군 삼아 “구정물에 뜬 밥알 같은/ 하늘의 눈”(「반달」)을 활활 태우고 있으니 기적이다. 하긴, 무섭도록 기적이 필요한 시대다.

오늘날 경제학자들은 도시의 온갖 틈새와 주름 속에서 목숨을 부지하고 있는 자들을 비공식 부문에 종사하는 ‘비(非)시민들’로 분류한다. 지금 이 세계에는 모든 것을 빼앗긴 채 고통 받는 사람들이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그들은 통계에도 잡히지 않고 언론에도 등장하지 않으며 거리에서도 눈에 띄지 않는다. 그들은 목소리만 잃은 것이 아니라 존재 자체를 잃었다. “남의 세상에 놀러왔다 가는 무소속 후보들”, “저 가슴 저리는 노선”(「무소속」)에 대해 이영광은 ‘유령’이라는 존재론적 지위를 명명한다. 그들은 봉사하고 농락당할 ‘몸’은 있는데, 사람을 만날 때마다 ‘나’는 사라지는 이상한 존재들이다. 그들은 살아서는 죽은 것처럼 ‘대신(代身)’(「유령2」)의 삶을 살다가, 죽을 때는 “사람입니다, 밝히지 못하고”(「유령3」) 죽는다. 이 첨단의 거리에는 죽기도 전에 유령이 되어 버린 존재들이 도처에 배회하고 있다. 지금 대한민국은 “유령과/ 유령이 되지 않기 위해 몸부림치는 몸들”(「유령1」)의 아수라장이다.

그러나 이영광의 유령 사회학은 비판이나 비관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는 “決死的으로/ 總體的으로/ 電擊的으로/ 죽은 것들이, 죽지 않는”(「유령3」) 죽음에서부터 ‘활로(活路)’를 연다. “죽음을 들여다보지 않으면 아무것도 되지 않”기 때문에, “죽음을 들여다보지 않으면 아무것이나 다 되고” 말기 때문에, 그는 젖가슴만 한 무덤들 사이에 누워 “검은 젖”(「검은 젖」)을 수혈 받는다. 그 죽음의 젖줄로부터 기적처럼 희망이라 부를 만한 것이 흘러나온다. “검은 동공이 빛을 내듯/ 시커먼 구두약이 광이 되듯”(「구두」) 어둠이 빛이 되는 통증의 연금술. 이 통증의 연금술을 “멀고 높은 곳에 불현듯 마음을 걸어드는 오후”의 일상 속에 마술처럼 풀어 놓은 시가 바로 표제작인 「아픈 천국」이다.



101동과 103동 사이 탄환처럼 새들이 빠져나간 자취가 몇 가닥 활로(活路) 같다.
세 들어 사는 자의 까칠한 눈으로, 나는 내가 먼빛의 명멸을 봤다는 생각이 든다. 쨍한 무심결의 일순, 아연실색할 악착이 유리 같은 불안이 심증에 없었다는 것. 그리고,
깃털처럼 파란이 남아 아물대는 허공.

눈 그친 뒷산 잡목 숲이 생가지 분지르는 소리 이따금씩 들려오고
놀던 아이가 별안간 넘어져 크게 울고, 젊은 어머니가 사색이 되어 뛰어나오기도 한다. 다친 몸을 더 다친 마음이 새파랗게 여미어 안고 간다.

실직과 가출, 취중 난동에 풍비박산의 세월이 와서는 물러갈 줄 모르는 땅
고통과 위무가 오랜 친인척 관계라는 곤한 사실이야말로 이 생의 전 재산이리라. 무릎 꿇고 피 닦아 주던 젖은 손 울던 손.

사색(死色)이란 진실 된 것이다. 아픈 어미가 그러했듯 내 가슴에도 창백한 그 화석 다발이 괴어 있어, 오그라들고 까무러치면서도 한 잎 두 잎 쉼 없이 꺼내 써 마침내 두려움 없는 한 장만을 남길 것이다.

이 골짜기에는 돌연이었을 건축들 위로 출렁이는 구름 전함들이 은빛 닻을 부리고 한 호흡 고른다. 깨뜨리고 싶은 열투성이의 의식 불명을 짚고 일어나 멀고 높은 곳에 불현듯 마음을 걸어 두는 오후.

저 허공은 한 번쯤 폭발하거나 크게 부서지기 위해 언 몸 가득 다시 청색의 피톨들을 끌어 모으는 중이지만, 전운이란 끝내는 피할 수 없다는 것, 다만 무성한 속절의 나날에 대하여 나는

괴로워했으므로 다 나았다, 라고 말할 순 없을까.
살 것도 못 살 것도 같은 통증의 세계관 가지고 저 팽팽한 창밖 걸어가면 닿을까, 닿을 것이다, 닿을 수 있을 것이다, 환청처럼 야위는 하늘의 먼빛.

가시 숲에 긁히며 돌아오는 지친 새들도, 아까징끼 바르고 다시 놀러 나온 아이도, 장기휴직 중인 104동의 나도 사실은 실전의 정예들

목숨 하나 달랑 들고 참전 중이었으니.
아픈 천국의 퀭한 원주민이었으니.

 

- 이영광, 「아픈 천국」전문』


 

아파트 건물 사이에 옹색하게 끼어 있는 한 조각하늘이 기적의 활로다. 파란 허공이 선사한 “쨍한 무심결의 일순”. 악착도 불안도 없는 기적 같은 순간. 그러나 아무리 “청색의 피톨들”을 끌어 모아도 삶에 짙게 깔린 전운을 지울 수는 없다. 전쟁 같은 세월 앞에서 몇 번씩이나 오그라들고 까무러치면서 그 때마다 꺼내 쓸 수 있는 것은 ‘사색(死色)’뿐. “살 것도 못 살 것도 같은” 순간마다 내 안에서 쉼 없이 끄집어내지는 “창백한 그 화석 다발”. 그것은 극한의 순간 산 자의 얼굴에 떠오르는 죽음의 빛깔, “다친 몸을 더 다친 마음”의 새파랗게 질린 얼굴색이다. 사색에는 속일 수 없는 고통의 진실함이 들어 있다. 이영광은 그 “통증의 세계관”으로 의식불명의 삶을 짚고 일어나 “환청처럼 야위는 하늘의 먼빛”에 닿고자 한다. “닿을까, 닿을 것이다, 닿을 수 있을 것이다”라는 어미의 변주에서 “멀고 높은 곳”을 힘겹게 겨냥하는 통증의 활시위가 팽팽하다.

한 가지 다행스러운 것은 고통이 칼과 한패가 아니라 위무와 짝패라는 “곤한 사실”이다. “날마다 지기 때문에 심장에서 무럭무럭 자라 온 한 뼘, 칼”(「칼」)은 결국 자신을 찌르는 죽음이나 살의에 굴복하는 죽임으로 끝나기 쉽다. 그것은 목숨마저 없는 ‘아픈 지옥’이다. 이영광은 목숨 하나만은 꼭 붙들고 “실전의 정예들”이 되어 “아픈 천국”에서 기어코 살고자 한다. “패잔병들도 전쟁 중”(「포장마차」)이므로, 그들에게 필요한 건 위무. 풍비박산의 상처에 바르는 ‘아까징끼’는 위로(慰勞)가 아니라 위무(慰撫)다. “무릎 꿇고 피 닦아 주던 젖은 손 울던 손”(手)으로 먼 허공(無)을 어루만지는 위무(撫). “괴로워했으므로 다 나았다”라고 말해 줄 것만 같은 먼빛의 명멸이 있어, “세 들어 사는 자의 까칠한 눈”에도 “희망만큼 곤한 그리움”(「구두」) 깃들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백석의 문창 밖에 서 있던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는 “101동과 103동 사이” “깃털처럼 파란이 남아 아물대는 허공”으로 변주되어 ‘용산, 2009년 겨울’을 견디게 해 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황현산은 이영광의 첫 번째 시집에 대한 해설 말미에서 이 젊은 시인의 앞날을 다음과 같이 예언했다. “그는 이제 아는 것이 없는 자로 현실 앞에 서게 될 것이며, 현실을 소박하고 용감하게 말하는 가운데, 무엇을 유비한다는 생각도 없이, 무엇을 유비할 겨를도 없이, 전혀 다른 수준의 유비에 도달하기도 할 것이다. 시는 아는 것을 상징하지 않는다. 상징은 모르는 것에 대한 말이다.”(「이영광의 유비적 사고」) 이번 시집에 실린 「시인의 말」은 그 예언의 도달 지점을 보여준다. “모르면, 헛소리가 새어나오던 몸./ 앎이 암이랴만,/ 아직 내게 배달되지 않는 나의 비밀들/ 터지지 않은 뇌리의 폭탄들/ 좀처럼 끝장나지 않는 내일들에 의해/ 종교적으로, 나는 산다.” 그런 의미에서 “아픈 천국”은 이미 드러난 현실을 상징하는 것이 아니라 맞이하게 될 미래, 아직 시인 자신도 모르는 미래를 상징하고 있다. 그것은 현 실태가 아니라 가능태를 지시한다. 그 가능태는 아픔의 통증으로 간신히 닿을 수 있는 세계, 아직은 “환청처럼 야위는 하늘의 먼빛”으로만 존재하는 세계다. 그것은 먼빛의 명멸을 본 자가 그 가능태에 대한 ‘믿음’과 ‘모름’ 사이에서 종교적으로 도달한 지점이다. 지금 여기가 아픈 천국이라고 읽지 않고 아픔으로 끝내 닿을 천국을 허공중에 걸어 놓는다고 읽을 때, 사색이 된 퀭한 원주민의 얼굴에서 패배적이지 않은 희망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이영광에게 사랑은 그 허공에서부터 불어오는 “높새바람” 같은 것이다. 「높새바람같이는」은 이 시집에서 가장 뛰어나게 아름다운 사랑의 시다. “당신과 함께 있으면, 내가 좋아지던 시절이 있었네”라는 사랑의 읊조림은 “나도 나였던 적이 있다구요”(「유령2」)라는 유령의 한탄 속에서 묘하게 공명한다. 아직 이 땅의 “퀭한 원주민”인 나는 넝마를 두르고 앉아 사랑의 시절을 회고한다. 진심은 전장에 버려져 파국으로 치달았고, 당신과 나는 끝내 치유되지 못했다. 그러나 “높새바람같이는 살아지지 않는 마음” 속에 바로 ‘높새바람’이 살고 있다. 그것은 살아지지는 않지만 살아가고 싶은 가능태로서, 한 가닥 천국의 바람을 가져다 준다. 사랑은 「높새바람같이는」이나 「사랑의 미안」에서처럼 나와 당신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남기는 것이지만, 「여행가」나 「기우」에서처럼 ‘지금’과 ‘먼 훗날’을 살아가게 하는 힘이기도 하다. 이 신산한 유령들의 거리에서 죽음만이 아니라 사랑을 함께 노래할 수 있는 시인이 있어 참 다행이다.

이영광의 “아픈 천국”은 통증의 생생함과 먼빛의 아련함으로 빚어낸 숭고한 상징이다. 그것이 지칭하는 곳은 아직 알려져 있지 않다. 다만 현실의 통증이 팽팽할수록 “아픈 천국”이라는 심연은 끝내 경험될 것이다. 


《문장웹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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