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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도 장편공모 수상작가들과 함께

  • 작성일 2010-09-30
  • 조회수 2,839

2010

[기획 특집 좌담]


2010년 장편공모 당선 작가들과 함께
 

일시_ 2010. 9. 9(목) 16:00~18:00


장소_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대회의실


진행_ 고봉준(문학평론가, 문장 《웹진》 편집위원)
 

참여작가

_ 김기홍, 『피리 부는 사나이』(문학동네)_ 제15회 문학동네 소설상 수상

_ 김혜나, 『제리』(민음사)_ 2010 오늘의 작가상 수상

_ 문진영, 『담배 한 개비의 시간』(창비)_ 제3회 창비 장편소설상 수상

_ 박솔뫼, 『을』(자음과 모음), 제1회 자음과모음 신인문학상 수상

_ 최진영, 『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한겨레출판)_ 제15회 한겨레문학상 수상
 


# 고봉준 - 반갑습니다. 먼저, 늦었지만 다섯 분의 등단과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이미 들으셨겠지만 오늘 좌담은 최근에 장편 공모로 등단한 다섯 분의 젊은 작가를 모시고 80년대생 작가들의 문학적 내면에 대해 토론하는 시간을 갖기 위해 마련되었습니다. 다섯 분 모두가 비슷한 시기에 태어나셨고, 또 비슷한 시기에 등단했으니 여러분들 각자가 지니고 있는 동일성과 차이를 확인해볼 수 있는 유익한 시간이 아닐까 예상됩니다만, 어떤 결론을 도출해야 하는 자리는 아니니 평소에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편안한 자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우선, 긴장을 풀고 서로에게 친숙해지는 시간을 되기 위해서 간단한 질문을 한두 가지 드리면서 시작하겠습니다. 제가 준비한 첫 번째 질문은 ‘나는 이런 과정을 거쳐서 등단했다’입니다. 대학생활에 대해서 들려 주셔도 좋고, 자신의 문학수업에 관해 말씀을 해 주셔도 좋습니다. 
 
# 박솔뫼
– 그게 상을 받았으니까 된 거죠. 상을 받았으니까 사람들이 등단했구나 생각해 준 거죠. 
 
# 고봉준 – 상 받기 전까지, 그러니까 등단 이전의 문학수업은 어땠나요?
 
# 박솔뫼 - 책 읽고 쓰는 과정이었죠. 지금도 그렇지만 상을 받기 전까지는 등단이라는 말이 무척 싫었어요. 어떤 식의 단계적인 느낌이 들어서 누가 등단을 했다고 하면 상 받은 거죠, 라고 하고 말았는데. 생각해 보면 학교 다닐 때 글 쓰는 수업을 들을 때 그 때 좀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그 전에도 언젠가 쓰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막연히 했었어요. 왜냐하면 친구가 ‘읽는 사람은 쓴다’라는 격려를 해 줬고 줄곧 쓰게 되면 좋겠다, 라는 생각을 조금씩 하다가 여기저기 많이 공모에 떨어지면서 이런 식으로 상 받고 데뷔하게 되지는 않겠구나 생각할 때 즈음에 수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중에 또 책을 발간하게 되었구요. 
 
# 김기홍 – 저도 전공이 국문학이다 보니 아무래도 수업시간에 읽을 기회가 많았구요. 특별히 어떤 계기가 있어서 쓰게 되었다기보다는 막연하게 책을 읽어 나가다 보면 여러 가지 생각이 들잖아요. ‘이 사람 정말 잘 쓴다’라거나, ‘이렇게 쓸 수 있었으면 좋겠다’, 또는 ‘내가 써도 이보다는 잘 쓰겠다’ 같은. 그러다가 복학을 하고 나서 제대로 한번 써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저의 경우엔 주변에 글을 쓰는 사람이 거의 없어서 그 부분이 가장 외롭고 힘들었어요. 얘기를 나누거나 글을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았어요. 그래서 지금도 소설 쓰는 사람이 옆에 있으면 신기해요. 저 분들은 어떻게 해 오셨을까 궁금하기도 하고.
 
# 고봉준 – 작가의 경우에는 읽는 행위와 쓰는 행위가 긴밀하게 연결되지만, 그렇다고 읽는 행위가 곧바로 쓰는 행위로 연결되는 건 아니잖아요? 그리고 왜 하필 그 ‘쓰다’의 목적어가 소설이었을까요? 
 
# 김기홍 - 우선은 소설이라는 장르를 즐겨 읽고 좋아했기 때문이겠죠. 그리고 혼자 할 수 있는 일이라는 데 매력을 느꼈어요. 영화나 음악은 공동 작업이 필요하기 때문에 자기 뜻대로 되지 않거나 사람들 사이에 갈등이 생길 수 있는 데 반해, 문학은 혼자 하는 작업이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책임도 크지만 그만큼 매력이 있다고 느꼈어요.
 
# 문진영 – 저는 책을 좋아하긴 하는데 많이 읽지는 못한 것 같아요. 저는 고등학교를 1학년만 다녔는데, 자퇴 후에는 도서관에 가 있는 경우가 많았어요. 읽으면서 쓰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고, 그 때는 그래서 혼자서 끄적이곤 했어요. 대학 들어가면서부터는 전혀 그러지 못했어요. 대학 1학년 마치고 휴학하고 나름 세계여행을 간다느니 하면서 바쁘게 살다 보니 전혀 쓰지 못했는데요. 오히려 전혀 쓰지 않았던 3년 정도의 시간이 쓸 수 있는 에너지를 준 것 같아요.
 
# 김혜나 – 저는 사실 문학이나 작가와 전혀 무관한 삶을 살았어요. 어릴 때부터 공부를 너무 못했고 그렇다고 다른 재능이 있지도 않았어요. 다만 수업시간에 공부 대신 할 수 있는 게 책을 읽는 것이었어요. 그것이 저에게는 도피처처럼 느껴졌는데, 책에 대한 정보가 없으니까 교과서에 실려 있는 작품의 작가들 전작을 사서 읽었죠. 중학교 내내 공부는 거의 하지 않고 소설만 읽었던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성적이 최하위여서 인문계 진학은 포기하고 실업계 고등학교에 입학했는데 거기서도 적응을 못해서 여기저기 옮겨다녔어요. 스무 살에는 대학도 가지 않았고, 그렇다고 달리 하고 싶은 것도 없었죠. 그냥 이렇게 술 마시고 알바하고 그러다가 삶이 끝나겠지, 하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스무 살이 끝나 갈 무렵에 문득 술을 마시며 보내는 삶이 허무하게 느껴졌고, ‘나는 대체 뭐지’라는 사소한 질문이 갑자기 걷잡을 수 없이 커지면서 존재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졌어요. 나는 여기서 뭘 하는 걸까, 내 삶은 이게 다일까, 나는 대체 어디에 쓰일까, 라는 질문이 들었고, 내 안에 내가 없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진짜 나는 어딘가 멀리에 있는 것 같고, 지금은 그저 빈껍데기만 남아서 살고 있구나 그런 생각이요. 그렇게 스물한 살을 맞이하게 되면서 진짜 나를, 어딘가 멀리 떠나 있는 진정한 나를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때 문득 떠오른 게 소설이었고, 글을 쓰겠다는 의지나 각오 없이 그냥 책을 읽기 시작했어요. 그 뒤로는 줄곧 책만 읽었고, 그러다 보니 뒤늦게나마 문학을 제대로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수능을 보고 대학에 들어갔죠. 하지만 책을 많이 읽고, 대학에 갔다고 해서 갑작스레 작가의 꿈이 생긴 건 아니었어요. 저는 정말 재능도 없고, 공부도 못하고 아무것도 잘하는 게 없는 사람이라서 감히 글을 쓰는 자가 된다는 생각을 할 수조차 없었고, 특히나 창작이라는 것은 뭔가를 창조해 내는 거잖아요. 제가 그런 일을 할 수 있을 거라곤 생각 못했어요. 창의력이 좀 없는 편이었거든요. 그런데 대학교 1학년 여름방학이 끝날 무렵에 그냥 저절로 알게 되었어요. 기존에 없던 무언가를 창조하는 것이 소설창작이 아니라, 그냥 내 눈에 비친 한 세계를 쓰는 거구나, 라는 것을요. 그것을 알게 된 뒤부터 담담하게 소설을 쓰기 시작했어요. 한데 국문과에는 창작수업이 없기 때문에 함께 소설을 쓰는 동료나, 평가해 줄 선생님이 전혀 없었죠. 여기저기 찾아보다가 윤후명 선생님 창작교실을 알게 돼서 5년 동안 습작을 했고요, 그 때부터 매년 신춘문예나 문예지 신인상에 응모하고, 문예지도 많이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작가의 꿈을 가지게 되었어요. 저도 정말 많이 떨어졌고요. 나중에는 5년 동안이나 문을 두드렸는데 안 되면 정말 마음 비우고 다른 길을 찾아야겠다 싶었는데 이렇게 좋은 기회로 책이 나오게 됐어요.

 
# 고봉준 – 음, 되게 슬프면서도 비장한 얘기네요. 최진영 선생님은 어떠셨나요?(웃음) 
 
# 최진영 – 저는 2006년에 엉겁결에 등단을 하게 되었어요. 어릴 때부터 쓰는 것을 좋아했어요. 대학 졸업하고 낮엔 학원에서 일하고 밤엔 글 쓰다가, 내가 쓰는 게 과연 소설일까 싶어서 여기저기 내봤죠. 그러다가 2006년에 『실천문학』으로 등단을 했는데, 그 때도 제가 소설가라는 생각은 없었지만 지금도 그래요. 등단은 했는데 청탁은 안 들어오고. 일 년에 한 번 청탁 들어오는 데가 『실천문학』이구요. 아, 이렇게 있으면 안 되겠다 싶어서 단편 써서 각 출판사에 보내도 우리 출판사와 맞지 않다는 뭐 이런 답을 듣고. 그래서 2008년까지는 이도저도 아닌 상태로 있다가 장편을 써 보자고 마음먹고 일 년에 하나씩 써서 쓰는 족족 『한겨레』에 냈어요. 소설이라는 것은 얼마든지 집에서 혼자서도 쓸 수 있지만, 소설가는 너무 연예인 같은 직업이어서 감히 내가 소설가가 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못했어요. 그러다가 문득 내가 평생 소설을 쓰면 그게 소설가지 뭐야, 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 때부터 장편을 쓰기 시작했어요. 정말 엉겁결에 이루어졌기 때문에 지금도 소설가, 작가, 선생님이라는 소리를 들으면 굉장히 민망하고. 지금도 저는 딱히 그런 자각이 안 돼요. 
 
# 고봉준 – 저도 ‘선생님’이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제 자신이 ‘꼰대’처럼 느껴져서 정말 싫어요. 그런데 또 ‘선생님’이라는 말이 규범화되어 쓰이는 말이니까, 다른 호칭을 쓰는 게 더 이상한 경우도 있어요. 그러니 부디 ‘선생님’이나 ‘작가’라는 단어에 하루 빨리 익숙해지길 바랄게요. 여기서 잠깐 즉흥적인 질문을 하나 드릴게요. 만약 본인이 세 시간 정도 독자를 대상으로 ‘소설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강의를 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어떤 작품을 갖고, 또 어떤 이야기들을 할 것 같으세요? 
 
# 최진영 – 소설은 가장 쉬운 방법으로 자기의 삶을 돌아볼 수 있는 도구라고 생각해요. 제가 글을 쓴 이유도 한글은 누구나 쓸 수 있으니까 시작했던 것 같고요. 누구나 소설을 쓸 수 있다고 생각해요. 자기가 살아 온 삶을 사건 중심으로만 나열해도 소설이 될 수 있거든요. 저는 질문을 던지는 소설을 좋아해요. 생각할 수 있게 만들기 때문에. 소설을 다 읽고 책장을 덮어 버리면 끝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진짜 독서는 책장을 덮은 후부터 시작된다고 생각해요. 그런 의미에서 저는 카프카 소설을 예로 들고 싶어요. 어느 날 누군가가 아무 이유 없이 당신을 잡아가려고 한다. 그런 상황에서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이냐고. 그 소설을 내밀면서 자기 자신에 대해 생각을 해 보라고.
 
# 김혜나 – 진짜 들을 때마다 어려운 질문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갑자기 어릴 때 생각이 나는데요, 저에게 소설은 도피처였던 것 같아요. 이를테면 내가 속한 현실세계는 항상 너무 싫은 거예요. 거짓과 위악만 난무하는 집과 학교, 학원 등 모든 것을 견딜 수가 없었는데 그런 견딜 수 없는 현실을 견딜 수 있게 해 준 게 소설이었죠. 책을 읽고 있으면 일단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잖아요. 아무도 저를 안 건드려서 좋았어요. 그렇게 읽은 소설 속에는 현실의 위선이나 위악과 달리, 진실하고 진정한 세계가 펼쳐져 있었죠. 그래서 그 세계 안으로 들어가고 싶었고, 그러다 보니 현실적으로나 이상적으로나 도피처로서의 역할을 해 주었던 같아요. 그나마 나이를 먹고 국문학과 창작을 배우면서 가지게 된 생각은, 소설은 기본적으로 인간에 대해, 삶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것, 그것에 정의를 내리는 것이 아니라 진지한 질문을 던지는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도 최진영 선생님 말씀에 무척 공감을 하는데요, 저 또한 카프카를 제일 좋아했어요. 그리고 저에게 가장 많은 질문을 던져 주었던 작품은 이승우 작가님의 『생의 이면』이었어요. 최근에는 『오래된 일기』도 좋았고, 이승우 작가님 소설을 다 좋아하거든요. 소설이란 이런 것이다, 라고 가르치기 어려운 텍스트이기는 한데 가르치기보다 보여줄 수 있는 작품인 것 같아요.
 
# 문진영 – 너무 어려워요. 소설이 뭔지 잘 모르겠어요. 제가 독자의 입장에서 가장 감동을 받는 작품은 진심이 느껴지는 글이에요. 이번에 책이 나오고 나서 든 생각은 ‘앞으로 내가 소설을 쓴다면 그건 진심으로 거짓말하는 것이 되어야겠구나’라는 것이었어요. 또 한편으로는 읽었을 때 그 자체로 시선을 멈추게 하는 문장들, 아름다운 것에 어느 정도 가치를 두면서 읽는 것 같아요. 크리스토프 바타유의 『안남, 다다를 수 없는 나라』라는 작품을 읽었을 때 정말 군더더기 없는 문장의 나열인데 어떤 분위기가 만들어지는 것을 느꼈어요. 무척 특별했던 작품이었어요.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예요. 
 
# 김기홍 – 정말 생각할수록 어려운 질문인 것 같아요. 
 
# 고봉준 – 김기홍 선생님은 국문학을 전공했다고 하셨는데, 그러면 학교 다닐 때 ‘소설’에 관한 강의를 들으신 적이 있죠? 그 때 강의를 들으면서 어떠셨나요? 혹시 불쾌하거나 짜증이 나지는 않으셨나요? 
 
# 김기홍 – 아, 소설이 그런 거구나 했는데요.(웃음) 앞의 분들 말씀하신 것처럼 저도 제가 좋아하는 작품을 소개할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그렇다고 해서 그 작품이 소설의 전부다, 라고는 말할 수 없겠지만.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소설과 뭔가 다르다, 이런 소설도 가능할 수 있겠구나, 라고 느낀 건 보르헤스의 소설들이었어요. 소설을 통해 우리가 미처 생각지 못했던 것, 막연하게 알고는 있지만 의식하지 못했던 것들을 보여줄 수 있다는 걸 깨달았죠. 진부한 표현이지만, 인간과 세계를 바라보는 눈을 넓혀 주었다고 할까요. 그 당시 제게는 소설이라는 장르의 확장을 느끼게 해 준 작품이어서 나름대로 의미가 있지 않을까 싶어요.
 
# 박솔뫼 – 그런 것 생각하지 말라고 할 것 같아요. 칠판에 씌어진 것 지우고 뭔가 말하겠죠. 제가 수상 소감 때도 얘기를 하고 평소에도 자주 말해서 주변 사람들이 이제 그만 말하라고 할 정도로 다카하시 겐이치로를 좋아하는데요. 아무래도 다카하시 겐이치로를 많이 읽어서 인용할 것 같은데요. 그 중에서도 「사요나라 갱들이여」를 가장 많이 읽었으니까 얘기를 할 것 같아요. 거기 보면 시의 학교에서 시를 가르치는 선생님이 주인공이고 그 선생님이 가르치는 교실의 구조가 나와 있어요. 책상과 커피포트가 있는데, 매일 마시는 커피의 브랜드가 S. B 블랜드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어요. 만델링과 모카를 반씩 섞고 코스타리카를 약간씩 섞는다고 덧붙이는데요. S. B 블랜드를 마시면서 시를 가르치는 장면이 있는데 그런 자리에서 그런 거 마시면서 이야기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사요나라 갱들이여」 같은 경우에는 누군가한테 좋다고 추천을 많이 했는데 이후에 그 사람들이 읽은 경우는 드물고 읽었을 때 좋았다는 이야기를 들은 경우도 한두 번밖에 없었어요. 머리가 아프네요, 대체 왜 이걸 읽으라는 건지요, 라는 반응들이었어요. 그러니까 그런 자리에서 다수를 대상으로 그런 것을 말해도 대체로 좋은 반응은 나오지 않을 것 같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생각해 보면 누가 보아도 객관적으로 뛰어나고 아름답다고 말해지는 것들이 있지만 그런 영역보다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칠고 예쁘지 않으며 분명히 부족하고 흠이 많지만 나름의 힘과 아름다움을 가진 것들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굳이 소설이 아니더라도 기타 다른 것들이라도 그렇게 생각하는데 한편으로는 그런 식의 것들을 언제까지 유지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아직까지는 점을 찍어 놓고 있는 지점이 있다면 그런 것 같아요.

 
# 최진영 - 거기 모인 학생들에게 소설이 뭐냐고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물어 보면 세 시간이 끝나지 않을까요?(웃음) 당신이 생각하는 소설과 당신이 좋아하는 작품이 뭐냐고 묻는 거예요. 
 
# 고봉준 - 그거, 날로 먹는 거 아닌가요?


# 최진영 - 그게 가장 다양하게 들을 수 있으니까 가장 좋을 것 같아요. 
 
# 고봉준 - 제가 준비한 몸풀기 마지막 질문을 드릴게요. 그나마 소설은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읽는 장르지만, 여러분이 출간한 이 책들도 많은 사람들이 선택하진 않을 거예요. 워낙 많은 책들이 쏟아지기도 하고, 또 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들도 대부분 유명한 작가들에게만 관심을 갖는 경우가 많잖아요? 저는 다섯 분의 책을 읽으면서 공통점과 차이점을 가늠해 보려고 애를 썼어요. 그래서인지 각자가 지닌 문제의식이나 시각의 차이가 비교적 선명하게 느껴지더군요. 그런데 소설을 다 읽고 난 후에 불현듯 이 소설들을 쓰게 된 배경이 어떤 것일까, 왜 하필이면 작가는 이런 이야기를 선택하게 되었을까 하고 궁금증이 생겼어요. 김기홍 선생님부터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선생님의 소설 전반부는 대학생들의 얘기잖아요. 그런데 대학 교정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지다가 어느 순간에 ‘조직’이 등장하면서 이야기가 돌변한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러면서도 2000년대 한국 사회의 현실을 연상시키는 구체적인 사건들도 등장하구요. 이 작품을 구상하게 된 배경이나 계기가 있나요? 
 
# 김기홍 – 아무래도 장편소설이고 안에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들어가 있기 때문에 한 가지 계기를 딱 잘라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구요. 제가 그 당시에 갖고 있었던 고민이나 관심이 많이 투영된 것 같아요. 큰 줄기를 몇 가지 생각해 보면, 우선 세계적으로, 혹은 주위에서 일어나는 폭력에 대한 고민이 있었어요. 그런 폭력은 보고 싶지 않아도 볼 수밖에 없는 것들이니까 그것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죠. 어째서 끊임없이 그런 사건이 벌어지는지, 왜 이런 식으로 존재해야만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있었어요. 아주 오랫동안 이런 식으로 존재해 왔잖아요 인간이. 그리고 언뜻 우발적으로 보이는 아주 작은 사건 뒤에도 굉장히 복잡한 이면의 맥락이나 구조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고. 또 하나는 제목과 연결되는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라는 독일 민담인데, 어릴 때 읽은 그 동화의 기묘함이 나이가 들어서도 잊히지 않고 자주 생각이 났어요. 사라진 아이들은 과연 어디로 갔을까, 어떤 삶을 살게 되었을까 그런 상상을 자연스럽게 하게 되었죠. 결과적으로 그 두 가지가 가장 큰 배경이 되지 않았나 생각해요. 
 
# 고봉준 - 앞부분의 대학생들 이야기, 그러니까 두 남자와 두 여자가 등장하는 캠퍼스 스토리를 쓸 때 이미 뒷부분의 ‘폭력’ 문제를 염두에 두고 있었나요? 아니면 쓰는 과정에서 바뀐 건가요?
 
# 김기홍 – 처음부터 생각하고 있었어요. 이야기의 분위기가 많이 달라진다는 반응을 듣곤 하는데, 저로서는 학교생활을 그린 부분에서 인물들이 함께 보낸 시간이 뒤에 벌어지는 사건들 속에서 주인공이 내리는 결단에 당위성 또는 필연성을 부여해 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그런 구조를 택했던 거죠. 
 
# 고봉준 - 박솔뫼 선생님의 소설은 스타일의 독특성이 돋보이는 작품인데, 어떤 계기로 쓰게 되셨어요?
 
# 박솔뫼 – 아…… 저게…… 그게…… 3년 전에 쓴 건데. 두 가지 기둥이 있는데 하나는 스물두 살 때 제가 숲이 나오는 배경을 써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스무 살, 스물한 살 때 나무를 무척 좋아했거든요. 누가 제가 나중에 뭐가 될래 물어 보면 돈 벌어서 식물원 사장이 되어야겠다고 할 정도로요. 꼭 숲이 나오는 소설을 써야지 했지만 그 때 안 됐어요. 나이 들면 쓸 수 있겠지, 라고 했죠. 그리고 일 년 후에 그것을 썼어요. 나머지 하나는 지구 종말에 대해 써야지, 라고 생각했어요. 인류가 멸망해도 크게 나쁘지 않을 것 같은 느낌도 있는데 막 사람들 다 죽고 없는데 한 명 두 명 남게 되면 어떻게 되나 이런 식으로 인류 멸망에 대한 구도를 많이 생각했어요. 만약에 아버지랑 딸이 남는다면에 대한 이그젬플 원이 있으면, 어머니와 아들이 남는다면 하는 이그젬플 투도 있어요. 아버지랑 딸이 남는다는 것이 스스로 재미있었겠죠. 숲이랑 그게 있다면 이 두 사람이 만나려면 유동적인 공간이어야 하고 걔네가 만나는 공간이 숙박업소인 거죠. 숙박업소가 배경이 되면 여행자가 나와야 되고……. 숲과 인류 멸망 그런 식으로 맞추다 보니까 이야기가 전개된 거죠. 이런 얘기를 하다 보면 모두 어이없어 하죠. (웃음) 전혀 안 와 닿나 봐요 사람들이.
 


# 고봉준 – 그 작품에 숲이 나왔었나요? 
 
# 박솔뫼 – 나와요. 많이 자꾸 나와요. 
 
# 고봉준 - 이번에는 같은 질문을 최진영 선생님께 여쭐게요. 
 
# 최진영 – 저는 장편 두 번 썼다가 모두 떨어졌잖아요. 그 때 스물아홉 살이었어요. 곧 서른이 되잖아요. 더 이상 버티고 있을 자신이 없었어요. 집에서나 어디서나 무직자로서. 아…… 이번이 마지막이란 마음으로 썼어요. 그렇지만 이번에 안 됐더라도 또 썼을 거예요, 아마. 그런 마음가짐이 중요했던 거죠. 마지막이란 생각으로 내가 진짜 쓰고 싶은 것이 뭘까, 생각해 봤죠. 소녀 얘기를 쓰고 싶었어요. 제가 소녀에 뭐가 있나 봐요. 소녀 얘기를 할 때 가장 잘 풀려요. 정신연령이 비슷한 거 같아요. 다른 등장인물들은 내가 쓰고 싶은 인물들을 모두 데려온 거예요. 각설이패, 할머니, 다방언니, 청소년들. 그들을 데려와서 소녀가 지나가는 과정에 둔 거죠. 그게 배경이라면 배경일 수 있어요. 
 
# 고봉준 – 그런데 그 인물들의 이야기가 짧은 시간에 한곳에서 벌어진 게 아니라 마치 천명관의 『고래』나 오비디우스의 『귀환』을 연상시키듯이 시?공간을 따라 흘러가면서 펼쳐지고, 그 과정에서 아이가 성장하지 않나요? 
 
# 최진영 - 저는 여기 모인 작가님들의 소설을 읽으면서 어쩌면 이 소설들이 ‘성장’이라는 단어로 묶일 수 있겠다 생각했어요. 근데 저는 성장이 뭔지 잘 모르겠어요. 백과사전을 뒤져 봐도 육체적 성장밖에 안 나오고. 일반인들이 말하는 성장이 육체적 성장만 얘기하는 건 아니잖아요. 저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보편적인 성장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잘 모르겠거든요. 그래서 각자 생각하는 성장이 무엇인지 너무 궁금했고. 저는 성장에 대한 정의를 못 내린 상태였어요. 그래서 소녀 얘기를 쓸 때도 성장에 초점을 두지 않았어요. 소녀의 생존기였죠. 
 
# 고봉준 – 김혜나 작가님의 소설은 ‘반도덕적’이라는 광고 카피가 인상적이었어요. 저는 선생님의 소설을 읽으면서 자전적인 요소가 강할 거라고 예상했는데, 어떤가요? 
 
# 김혜나 – 그 질문을 가장 많이 받았는데, 저도 쓴 지가 좀 오래 됐어요. 4년 전에 초고를 썼고 3년 동안 퇴고 과정을 거쳐 왔거든요. 제 경우에는 주변에 룸이나 바에서 일하는 친구들이 워낙 많았어요. 그런 유흥문화 속에 있었고 너무 어릴 때부터 거기에만, 그 속에만 있었기 때문에 사실 저에게는 익숙한 일상이었어요. 매일 술 마시고 아침에 들어가고…… 그런 것이 너무 자연스러웠는데 다들 매우 놀라시더라구요. 소재 면에 있어서는 4년 전에 처음 채택을 할 때 호스트바 남자 선수들 이야기를 쓰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스무 살 때 만난 친구 중에 호스트바 선수로 일하는 남자애가 있어서 인상 깊었거든요. 여자친구 중에도 룸에서 일하는 친구가 있어서, 매상 올려 준다고 하면서 많이 놀러가곤 했어요. 많이 봤죠. 그 당시, 스무 살 때는 소설과는 무관한 삶을 살았기 때문에 글을 쓸 거라는 의식이 전혀 없었는데, 그 때 봤던 모든 것들이 매우 선연하고 뚜렷하게 남아 있기는 해요. 명확했죠. 습작을 하는 동안에 소재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는데, 독특한 소재나 일상, 남들이 잘 쓰지 않은 소재를 찾고 싶었어요. 그래서 채택한 것이 노래바 남자 도우미였어요. 조금 다르고 새로운 것을 보여주고 싶다는 욕심이 소재나 배경을 선택하게 된 계기가 된 것 같아요.
 
# 문진영 – 제 글을 읽고 나서 주변 사람들이 일기장 훔쳐본 것 같다는 얘기를 많이 했어요.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제 스무 살 무렵 경험했던 것들이 녹아 있기 때문일 거예요. 저는 고등학교를 그만둔 다음에는 사람들을 거의 만나지 않고 3년 정도의 시간을 혼자 지냈는데 그러고 나서 사회 안으로, 나름 세상 안으로 들어가게 된 거죠. 그 때는 정말 인사하는 것도 어색할 정도로 인간관계가 무척 서툴렀어요. 사는 게 아름답다는 거, 사람들과 어울려 사는 것이 아름답다는 것을 느끼게 해 준 시간들이어서 그것을 좀 남겨 두고 싶었던 게 많았어요. 쓰지 않았던 시간이 에너지가 되었다고 했잖아요. 일단 살고, 그 시간을 어떤 형태로 남겨 두고 싶었어요. 그래서 쓴다는 것에 대한 진지함 같은 것이 부족했던 것 같지만 저에게는 그런 의미가 있어요. 
 

 
# 고봉준  - 자, 이제 좌담에 조금 익숙해지셨을테니, 지금부터는 한 권씩을 테이블에 올려 두고 이야기를 이어가도록 하지요. 먼저, 문진영 선생님의 책부터 시작할까요? 다들 어떻게 읽으셨어요? 사소한 것이라도 좋으니 남기지 말고 궁금한 점에 대해 물어 보세요.
 
# 최진영 – 주인공만 담배를 안 피우잖아요. 그 설정에 어떤 의도가 있으신가요? 
 
# 문진영 – 제가 안 피워서 그런 것 같긴 한데, 저는 직접 담배를 피우는 것보다 누군가 담배를 피울 때 갓 피운 담배 냄새 맡으면서 옆에 있는 것이 좋더라구요. 딱히 의도를 했다기보다 옆에 있는 사람의 역할을 하다 보니까 맞담배 피우는 건 아니고 그렇게 됐던 것 같아요. 
 
# 최진영 – 『담배 한 개비의 시간』이라는 것이 작가에게 어떤 시간인지? 담배 한 개비를 피울 때의 시간이라는 게 저는, 혼자 멍하게 있는 시간, 가장 적막하게 혼자 생각할 시간, 아무것도 안하는 그런 시간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작가님에게 담배 한 개비의 시간은 어떤 시간이었는지? 
 
# 문진영 – 아마 제가 담배를 안 피우니까 흡연자의 담배 한 개비의 시간이 어떤 시간인지는 잘 모르겠지요. 제게 비흡연자로서의 담배 한 개비의 시간은 한 개비 타들어가는 그 시간과 공간에 존재하는 누군가를 확실하게 인식하는 시간, 그런 의미였어요. 
 
# 고봉준 – 최근 젊은 작가들의 소설들은 반지하, 옥탑방 같은 공간의 공통성을 갖고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인물들의 생활이라는 게 대개 알바로 위태롭게 유지되는 것 같구요. 물론, 편의점이 알바 공간으로 설정되는 경우도 흔히 있죠. ‘전형’이라고 말하면 안 되겠지만, 어쨌거나 이런 삶의 세대적 공통성이 있고,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라고 읽었어요.  
 
# 문진영 – 솔직히 말씀드리면 그런 작품들을 별로 읽어 본 적이 없어요. 특정 세대만 갖는 그런 공간의 의미를 두고 쓴 것은 아니고, 지금 그렇게 살고 있는 이십대 어떤 층의 한 단면을 쓴 것일 뿐이라는 거죠. 분명히 공감할 수 없는 분들도 있으니까.

최진영 – 주인공의 집이 이태원이잖아요. 그것도 되게 상징적인 것 같아요. 
 
# 김기홍 – 비가 굉장히 많이 오잖아요. 
 
# 문진영 – 아마 그거 쓸 때가 장마철이어서……. 무더위가 딱 가시고 태풍이 몰려올 때쯤 썼거든요. 그래서 비가 많이 나오지 않았을까 싶기도 한데, 처음부터 끝까지 어느 정도 습기 찬 이미지를 가지고 가고 싶었던 것 같아요. 
 
# 고봉준 – 마지막에 사고가 나서 인물들이 죽게 되는데, 어쩌면 처음부터 그들은 그렇게 죽을 운명이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도 해 보았는데, 어떠세요? 그리고 문진영 선생님 소설에선 문체의 미학 같은 것이 느껴졌어요. 아주 짧은 문장인데도 굉장히 감각적이에요. 그 문체가 단순한 문체라기보다는 삶을 대면하는 특유의 태도로 이어진다는 게 이 소설의 미덕이 아닐까, 라고 생각해 보았어요. 예를 들면 장마가 끝난 다음에 등장하는 “산다는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말을 배우는 데 9할을 소진하고 나머지 1할로 그 말을 살아낸다” 같은 표현들이요. 이런 문장들을 쓸 때 글을 쓰는 속도는 어땠을까도 생각해 보았어요.
 
# 문진영 – 천천히 쓰는 스타일은 아닌 것 같아요. 그냥 나름대로 그런 생각들을 하고 있던 것들이 나오지 않았을까요? 마지막에 죽음은 많이들 갑작스럽다고 하시는데 제 경험이 많이 녹아 있으니까. 가까운 사람의 사고가 있었어요. 그 일을 계기로 이 이야기를 쓸 생각을 했기 때문에 그건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어요. 
 
# 김기홍 – 사고를 당하는 두 사람이 만난다는 얘기를 주인공한테 안하잖아요? 그 심리를 물론 짐작은 하지만, 혹시 여자들끼리만 느끼는 다른 어떤 게 있나 하는 생각도 해 봤거든요. 아니면 별다른 이유가 없는 건가요? 
 
# 문진영 – 거기 보면 모든 얘기를 다 하지 않는다는 얘기가 나오잖아요. 주인공은 물고기가 어떤 얘기든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는데, 제일 먼저 했어야 했던 얘기를 안했다는 것에서 결국 그런 관계는 없다는 것? 여자들의 무엇이 있어서는 아닌 것 같아요.


# 고봉준 – 여자들 내부의 문제라기보다는 인간관계, 사회적 커뮤니티 안에서 인간들이 관계 맺는 방식이 일정한 거리를 전제하고 만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진심’이라는 말을 쓰지 않거나, 그런 게 어떤 거냐, 라고 물어 본다는 것 등에서요. 사람과 사람이 끈적끈적하게 통할 수 있다는 믿음이 없는 채로 관계를 맺는 방식이 이 작품에 나오는 사람들의 모습이 아닐까요? 실제로 작가가 그런 생각들을 갖고 있는 건가요? 
 
# 문진영 – 저는 거기서 믿음이 보이지 않기를 바라지 않았구요. 끈적끈적하지 않더라도 그것으로 충분한 관계들을 얘기하고 싶었어요. 
 
# 고봉준 – 문진영 선생님의 소설은 배경들이 많이 지워져 있다는 느낌이에요. 편의점과 ‘물고기’의 자취방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것도 그렇구요, 특히 강남 한 가운데에 위치한 편의점은 인물들의 공간이 외부 세계와 단절되어 있는 떠 있다는 느낌을 주더군요. 지금 여기 주인공들의 삶이 그런 식으로 영위되고 있다고 가정하고 쓰신 건가요? 아니면 작품을 쓰면서 그런 식으로 자연스럽게 빠져나가게 된 건가요? 
 
# 문진영 – 그런 생각을 많이 해요. 사람이 섬이다, 라는 말을 하잖아요. 사람이 섬이고 관계라는 것이 있다면 배를 타고 건너다니는 거죠. 섬인 게 맞는 것 같구요.
 


# 김혜나 – 편의점이 계속 나오잖아요. 편의점에서 일을 하고 있는 동시에 편의점에서 먹거리를 사서 만찬을 즐기기도 하는 이 인물들은 편의점 노동자이면서 소비자이기도 한데요, 그와 비슷한 상황의 단편소설들이 떠오르더라고요. 김애란 작가님의 「나는 편의점에 간다」와 김경욱 작가님의 「맥도날드 사수 대작전」 같은 소설들이 대표적인데, 그 단편들은 편의점과 패스트푸드점이라는 공간에 대해서 작가가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어요. 한데 이 소설은 그런 작가의 시선이나 의도가 비춰지지 않잖아요. 결례가 안 된다면 편의점이라는 공간에 대해서 어떻게 인식하고 계신지, 왜 하필 편의점이었는지에 대해서 묻고 싶어요. 아니면 그런 의미를 부여하기보다는 감추어 놓고 싶었던 건지도 궁금하고요.
 
# 문진영 – 편의점이라는 장소가 익명의 사람들이 스쳐가는 현대의 상징으로 등장한 것은 전혀 아니구요. 그냥 주인공의 삶의 공간이잖아요. 삶의 공간으로서 나온 거지 그런 의미를 생각하고 쓰지는 않았어요. 아무래도 제 삶의 공간이기도 했으니까. 
 
# 김혜나 – 삶의 공간으로서의 그 편의점은 어떤 느낌이었나요? 
 
# 최진영 – 여기 나오잖아요. ‘모든 것이 다 있고, 언제나 시원하며…….’(웃음) 
 
# 김혜나 – 그 공간에 대해 약간 긍정적으로 기울어져 있는 편이신가요?
 
# 문진영 – 긍정적이다 부정적이다 생각해 보지 않은 것 같아요. 앞에는 그렇게 얘기했지만, 나중에 사장님이 얘기할 때는 ‘어느 정도 평화로웠고 웬만큼 모든 것이 다 있었고…….’ 딱 그 사이였던 것 같아요. 
 
# 최진영 – 편의점에서 알바 해 보셨어요? 
 
# 문진영 – 예. 
 
# 최진영 – 저는 싫었어요. 저는 사람들이 술 마시는 시간에 편의점 알바를 했는데요. 정말 담배 많이 팔고, 정산하는 순간이 너무 싫었어요. 한번은 저와 같이 일하던 친구가 미성년자한테 술과 담배를 팔아서 뒤집어진 적도 있었고. 소설 속 주인공이 앞으로 어떻게 살았으면 좋겠어요? 
 
# 문진영 – 아마 얘는 계속 이렇게 살겠지만, 글쎄요, 계속 이렇게 순간을 확실하게 인식하면서 살았으면 좋겠어요. 
 
# 최진영 – 저는 이 주인공이 사랑을 했으면 좋겠어요. 실질적인 연애 같은 것. 
 
# 고봉준 – 작품 안에서 주인공을 비롯한 모든 사람들이 ‘진심’, ‘깊이’ 같은 가치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으면서, 그렇다고 절망하지 않으면서, 회의하지도 않고, 낙관하지도 않는 약간 건조한 느낌이 많이 묻어나요. 
 
# 김혜나 – 약간 무위적인 느낌.
 
# 최진영 – 저는 좀 겁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 김기홍 - 저도 인물들의 그런 태도가 오히려 속으로는 진정한 관계를 바라기 때문이라고 느꼈어요. 사실 둘 다 진심으로 관계를 맺고 싶은 마음이 있는데, 깊이 갈구하기 때문에 반대로 아무렇지 않은 척 한다는…….
 
# 문진영 – 당당하게 쿨하기에는 아직 아무것도 모를 나이잖아요.(웃음) 
 
# 최진영 – 저는 오늘 작품들 중에서 이 책을 가장 천천히 읽었어요. 문장 하나하나 천천히 음미하면서 읽게 되더라구요. 그런데 그 느낌이 등장인물 서로가 서로에게 다가가지 못하고 훔쳐보기만 하는 그 속도감이랑 되게 맞았었어요. 서서히 진행되는 것들이.
 
# 김혜나 – 쓰는 데 실제로 얼마나 걸린 건가요? 
 
# 문진영 – 아까 그 장마 무렵부터 두 달.
 


# 고봉준 – 자, 이제 다음 책으로 넘어갈까요? 두 번째 책은 김기홍 선생님의 『피리 부는 사나이』입니다. 소설의 전반부에 두 남자 동기생이 등장하는데, 한 사람은 ‘문학’을 중심에 두고 있고, 또 한 사람은 ‘철학’을 중심에 두고 있어요. 이 대목에서 저는 작가의 전공이나 관심이 그대로 투영된 거라고 읽었어요. 그리고 나중에 프로필을 보니 국문학을 전공하셨더군요. 혹시 그 설정에 특별한 의미가 있는 건가요? 
 
# 김기홍 – 제 관심이 투영되었다고 볼 수도 있구요. 어떤 학문이든 나름대로 세계를 바라보는 하나의 틀이라고 생각해요. 문학도, 철학도, 과학도, 경제학도, 심지어 천문학도 그게 다 하나의 방식인데 그 방식들이 사람마다 다르잖아요. 물론 그렇게 학문으로 정의할 수 없는 틀도 많지만. 어쨌든 그런 다른 방식들이 첨예하게 부딪혔을 때 사람들이 그걸 어떻게 각자의 세계로 받아들이냐에 대한 관심이 있었어요. 소설 속에서 그들이 나누는 대화 내용이 제가 고민하던 문제들이기도 했구요. 
 
# 고봉준 – 저는 최진영 선생님의 작품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이 ‘진짜’와 ‘가짜’라는 문제였어요. 저는 그것을 ‘성장’으로 읽었구요. <안개 속의 풍경>이라는 영화가 있어요. 엄마가 아이들에게 아빠가 독일에 돈 벌러 갔다고 거짓말을 하는 바람에 아이들이 아버지를 찾아서 국경을 넘어가는 이야기예요. 물론 국경 너머의 독일에는 아무것도 없어요. 황량하기 그지없는 대로만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에요. 이 영화는 아버지가 없다는 사실을 부각시키지만, 아이들은 아버지가 있다고 믿고 여행을 하죠. 그 믿음이 아이들을 그리스에서 독일로 가게 만든 힘이겠지요. 그 과정에서 아이들은 ‘성장’을 해요. 그 성장의 하나가 ‘사랑’이구요.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게 어떤 것인지를 알게 되죠. 정신적으로 성장했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여기에는 ‘진짜’ 또는 ‘가짜’라는 질문이 개입되어 있어요. 김혜나 선생님의 소설은 처음부터 진짜는 없다, 라는 단정에서 시작하는 것 같아요. 위선적인 삶의 이면에 고귀한 무엇이 있을 거라는 믿음 같은 게 없는 세계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라고 할까요? 김기홍 선생님의 작품도 피리 부는 사나이에게로 다가가는 여정을 보여주면서 그 여정을 미로의 출구를 찾는 길이라고 말하는 듯하고, 미로를 빠져나가면 진정한 세계가 있을까 하는 질문들이 있는 것 같은데, 제가 바로 읽은 건가요? 그 질문에 대한 탐험이 이 소설의 문학적인 방향으로 설명될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 김기홍 – 작품을 읽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겠죠. 사실 제가 가장 고민하는 문제이기도 하고요. 가짜가 아닌 진짜, 세계의 부조리나 모순을 넘어선 뭔가가 과연 존재할까, 찾을 수 있을까를 누구나 고민하잖아요. 어쩌면 학문이나 예술, 종교 모두 그걸 찾기 위한 길인지도 모르고요. 그런데 저 자신은 그게 무엇인지 어떻게 찾아야 하는지 아직 잘 모르겠어요. 그걸 알지 못하기 때문에 이렇게 길게 소설을 쓴 게 아닐까 싶어요. 그리고 그걸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찾아가는 과정 또한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설사 끝내 원하는 것을 찾지 못해 좌절한다고 해도. 소설에서 주인공이 피리 부는 사나이를 만나지 못하는 것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찾으려고 하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가 아닐까 해요. 
 
# 고봉준 – 작가는 ‘있다’, ‘없다’ 그 어느 쪽에도 문학적 배팅을 하고 있지 않다는 말씀이죠? 그리고 그 질문 자체가 소설이라는 거죠? 
 
# 김기홍 – 네. 
 
# 최진영 – 저는 피리 부는 사나이가 내 삶을 알 수 없는 곳으로 이끄는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수연이 같은 경우는 그 도구라고 생각했어요. ‘내가 원하는 건 행복한 인생이야. 그것의 도구는 소설이야’ 이런 식으로 도식화시켰어요. 책을 다 읽은 다음에 나에게 피리 부는 사나이는 뭘까, 나에게 수연은 뭘까,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 생각이 들기 이전에 작가에게 피리 부는 사나이는 뭘까 궁금했고요. 인생에서 나를 이끄는 것과 그것으로 가게 하는 도구 같은 것. 만나면 여쭤 보고 싶었어요.  
 
# 김기홍 – 저는 저를 이끄는 뭔가라기보다는 제가 만나야 할 어떤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조금 전에 말씀드린 것처럼 아직 궁극적으로 제가 찾아야 하는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모든 일이 그걸 찾기 위한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소설이든 다른 어떤 것이든.
 
# 김혜나 – 저는 이 소설을 얘기하려면 구조나 방식의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고 봐요. 처음에도 말씀하셨지만 테러리스트를 찾아다니면서 독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하잖아요. 그것을 전달하는 방식이나 구조에 작가가 굉장히 예민하고, 또 신경을 많이 쓰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그러나 이야기가 주는 매력에 매료되어 있는 작가라는 생각이 뒤따라오기도 하더라구요. 구조 자체만 보면 셰익스피어의 희곡 구조 같은 것도 생각이 나고, 영화적 구성이라는 생각도 굉장히 많이 드는데요. 제 느낌에는 김기홍 작가님이 책을 읽을 때는 이야기가 주는 매력에 매료되어 있을 것 같고, 글을 쓸 때는 이야기를 풀어 나가는 ‘방식’에 더 강점을 둘 것 같아요. 본인 스스로 스토리와 플롯 중에서 어느 쪽에 비중을 두시는 편인가요?
 
# 박솔뫼 – 스토리랑 플롯이 뭐가 다른 건가요? 
 
# 고봉준 – 인과성과 시간 순서가 스토리와 플롯을 구분하는 기준이라고 E. M. 포스터가 말했죠.(웃음) 
 
# 박솔뫼 – 그럼 인과성을 중시하는 것이 플롯이군요.


# 고봉준 – E. M. 포스터의 『소설의 이해』에는 ‘왕이 죽고 왕비가 죽었다’는 스토리이고, ‘왕이 죽자 그 충격 때문에 왕비가 병을 앓다가 죽었다’는 플롯이라고 씌어 있어요. 
 
# 김기홍 – 어느 한쪽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고 말하긴 어려울 것 같구요. 스토리, 플롯이라고 나누어 말하지만 결국은 똑같다고 생각해요. 결국은 보여주는 방식이 전부니까. 스토리를 정리하는 건 이야기를 다 읽은 다음에 남는 거잖아요. 쓰는 사람은 어떻게 하면 좀 더 잘 보여줄 수 있을까 고민할 뿐이고……. 굳이 따로 구분할 필요는 없는 것 같아요.
 
# 고봉준 - 혹시 김연수 작가의 등단작 『가면을 가리키며 걷기』라는 작품을 읽어 본 적이 있으세요? 저는 그 작품이 자꾸 연상되던걸요. 그 작품의 배경이나 사건의 전개가 이 작품과 상당히 유사해요.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새로운 사조가 등장하고, 캠퍼스 스토리가 진행되다가 갑자기 포스트모더니즘이 새로운 종류의 통치와 관계되어 정보기관이 개입하고, 그 음모 앞에 젊은이들이 던져지는 얘기거든요. 암튼, 저는 그런 느낌을 받았어요. 그리고 저는 전반부와 후반부 사이의 단절감이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다만, 소설의 방점이 후반부에 있는 것 같고, 그렇다면 조금 더 일찍 ‘타로’가 등장해서 속도감을 높였어야 하는 건 아닐까 하고 생각해 보았는데요, 혹시 그런 얘기들을 들은 적 있으세요? 
 
# 김기홍 – 소설이 나오고 재밌었던 것 중에 하나는 사람마다 정말 재미를 느끼는 감성이 다르다는 걸 알게 된 거였어요. 아마 각자 쌓아 온 베이스가 다르기 때문일 텐데, 사람에 따라 좋아하는 부분이 다르고 바라는 점도 다르더라구요. 어떤 사람은 이렇게 했으면 좋겠지 않겠냐고 하고. 다른 사람은 또 저렇게 했으면 좋았을 거라고 하고. 처음에는 저 나름대로 동의하거나 동의하지 않거나 하는 기준이 있었는데, 나중에는 그런 것도 점점 사라지고 뭐가 뭔지 알 수 없게 되더라구요.
 


# 문진영 – 앞부분이 되게 좋았어요. 갑작스럽다는 것보다는 더 듣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야기의 재미 때문인지 좀 더 듣고 싶었어요. 뭔가 더 있을 것 같은. 
 
# 김기홍 – 전체적인 스토리와 관련되어 뺀 내용은 없어요. 결말도 처음 생각했던 대로고요. 가끔 친구들이 ‘그래서 피리 부는 사나이를 찾았다는 거야? 못 찾았다는 거야?’ 라고 물어보는데, 찾고 찾지 못하고가 중요한 것이 아니니까요. 
 
# 고봉준 – 어떤 평론가가 이 소설을 ‘매혹적인 성장소설’이라고 평가했더군요. 동의하십니까? 동의한다면 어떤 부분이 그렇다고 생각하세요? 
 
# 김기홍 – 아까 최진영 선생님도 그런 말씀을 하셨는데, 과연 성장이 무엇인지, 무엇을 성장이라고 부를 수 있는 건지 잘 모르겠어요. 그런 의식은 있었어요. 성장소설이라 불리는 작품 중에 젊은 날의 방황과 모험을 통해서 결국 기존의 세계에 편입되는 과정을 그린 작품들을 읽을 때면 그것을 과연 성장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어요. 그래서 사회 속에, 기존의 세계 속에 편입되는 인물이 아니라 그걸 거부하고 자신만의 뭔가를 추구해 가는 그런 인물을 그리고 싶었어요. 제도나 사회를 벗어나서 자기만의 것을 찾으려는…… 그것이 결국에는 세계와 무관하지 않고 통하는 것이겠지만……. 너무 거창한 것 같은데.(웃음) 
 
# 김혜나 – 저는 우리의 삶이, 무언가를 끊임없이 찾아가는 과정이 아닐까 생각했어요. 정확한 결론 그 자체보다는, 그것을 찾아가는 과정에 초점을 두었다는 점에서 아주 매혹적인 성장소설이라고 생각해요.
 
# 최진영 – 저는 이렇게 읽었어요. 주인공이 수연이를 도와 주려고 피리 부는 사나이를 찾다가 결국은 수연이와는 상관없이 피리 부는 사나이를 찾게 되었다고. 주인공이 만약 수연이를 만나면 피리 부는 사나이를 더 이상 찾지 않을까요? 아니면 같이 찾을까요? 
 
# 김기홍 –  계속 찾을 것 같아요. 
 
# 최진영 – 저는 이 소설을 읽고 타로 보러 갔었어요.(웃음) 제가 남자, 칼 이런 카드만 뽑는데요. 다혈질에 남성적 성격이라고.



 
# 고봉준 – 이제, 김혜나 선생님의 작품에 대해서 얘기를 해 보죠.
 
# 박솔뫼 - 제리는 받으면서 헌 시계인 줄 알겠죠? 
 
# 김혜나 – 아…… 그게, 이 인물들은 다 순간에 의지해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지금 당장에 맞닥뜨린 대상에 대해서 깊이 곱씹어 보거나 의심해 보지 않았던 것 같아요.
 
# 최진영 – 저는 그런 상상도 했어요. 주인공이 씻으러 들어간 사이에 제리가 강의 전화를 받았거나 강의 문자를 봤다 분명히. 그래서 강도 태도가 변했고 제리도 태도가 변한 게 아닌가. 그것은 작가가 숨겨 놓은 거다, 라고 상상했어요. 
 
# 김혜나 - 소설에 빈자리가 많아서 그런 것 같은데, 단점이긴 하지만 덕분에 다양하게 상상해 주셔서 더 좋은 것 같아요.
 
# 고봉준 – 이기호 작가의 어떤 소설에 보면 세상에 대한 주인공의 태도가 인상적으로 드러나는 대목이 있어요. 우리가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백 미터 세계 신기록을 깰 수 없다는, 내가 뭔가를 열심히 해도 세상은 달라지지 않고, 또 세상에서 뭔가를 할 수도 없다는 불가능성에 대한 자각이요. 제 식으로 바꿔서 해석하면 지금의 세계가 지나고 나면 좀 더 고상한 세계가 펼쳐질 것이라는 믿음이 없는 거죠. 저는 그런 믿음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지금 이 세계가 유일하게 진짜일 뿐이야, 산 너머에는 또 다른 산이 있을 뿐이라는 걸 깨닫는 순간 아이는 어른이 된다고 생각해요. 그런 면에서 김혜나 선생님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비교적 일찍 어른이 되어 버린 사람들인 것 같아요. 물론, 그 ‘어른’이 생물학적 ‘어른’을 뜻하는 것은 아니에요. 그래서 소설이 야하다기보다는 그런 여지를 두지 않기 때문에, 이 너머 뭔가 있을 것이라는 여지를 다 막아 버려서, 마치 우리가 가장 속악하다고 생각하는 현실만이 우리의 유일한 현실이라는 느낌이 들어서 읽는 내내 불편했어요. 소설의 인물들이 보는 세상의 모습이 정말 그러한가요? 
 
# 김혜나 – 그 인물들 자체에 그런 인식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그 애들은 그냥 처음부터 그런 환경 속에 있었고, 그렇게 살아가는 것 외에 다른 삶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겠죠. 작가로서의 제 의식은, 고봉준 선생님이 말씀하신 부분이 어느 정도 맞는 것 같아요. 무언가 다른 세상을 꿈꾸거나, 미래에는 뭔가 잘되리라는 기대 혹은 욕망을 가지지 않는 편이에요. 그렇다고 이 세계 안에서, 가만히 멈춰 있거나 죽어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더럽고 비좁은, 출구 없는 세계에 살고 있지만 그 안에서 끊임없이 숨 쉬고 움직이며 나아가는 금붕어처럼 삶 그 자체로서의 삶을 이어가야 하지 않나 싶어요. 외부의 물리적인 시각에서는 그것이 아무것도 하지 않고, 무언가 해 보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 한심한 모습으로 보일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런 외부의 시선을 의식하지 말고 나의 내부를 바라보며 끊임없이 앞으로, 혹은 안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의식이 있어요.
 
# 고봉준 – 두 분의 작품이 세상을 좀 다르게 바라보고 있다는 게 흥미로웠어요. 김기홍 선생님 소설에는 다르게 살고 싶은 욕망이 있는 것 같아요. 더불어 출구를 찾으려는 욕망도 있는 것 같구요. 그런데 김혜나 작가님의 작품에서는 출구에 대한 질문이 무의미해지는 것 같은 지점이 있어요.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삶의 방식도 다를 수밖에 없는 걸까요? 
 
# 김기홍 – 이 소설을 읽으면서 헷갈렸던 부분이 주인공과 친구들이 고민하는 문제에 대한 것이었어요. 정말로 내가 속한 세계가 이 모양이고, 내가 살아 온 방식이 이 모양이고, 꿈조차 없는 것이 이들이 고민하는 문제일까? 다른 인물들은 모르겠지만 특히 주인공의 경우, 물론 자기가 갖고 있는 사회적 위치 때문에 힘들어하는 부분이 없지는 않겠지만, 그보다 관계에 대해서, 정말 나를 이해해 줄 사람이 없어서 고민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주인공이 그런 애기를 하잖아요. ‘죽을 때까지 같이 술을 마셔 줄 사람이 필요하다’고. 그 관계에 대한 욕망은 사회적 위치와 관계없이 누구나 갖고 있는 고민이잖아요. 매체들은 소설 속 인물들의 사회적 위치에 주목하지만, 이 소설의 주인공은 그보다 외로움 그리고 관계에 대한 엄청난 열망 때문에 힘들어하는 게 아닌가 생각했어요.
 
# 김혜나 – 4년 전에 초고를 썼는데, 그 때가 소설 쓴 지 딱 3년쯤 됐을 때였어요. 그 당시 늘 고민하던 테마가 인간관계의 문제였죠. 왜 내 옆에 가족이 있고, 친구가 있고, 연인이 있는데, 그런데 나는 왜 이토록이나 혼자인 것 같고 외로울까, 라는 질문이 끊임없이 밀려들었거든요. 그러면서 소통의 문제에 대해 고민을 하게 됐고, 소설을 쓰기 시작한 거였어요. 너무나 많은 사람들과 같이 있고, 너무나 많은 사람들과 매일 시간을 보내지만 어느 누구도 내 곁에 진정으로 있는 것 같지 않고 심지어 나조차도 내 곁에 있는 것 같지 않은, 엄청난 허무함과 고독감을 메우기 위해 문학을 찾게 됐고 소설을 쓰게 된 거죠. 그 때 가졌던 사유나 의식들이 제 글쓰기를 많이 지배하지 않았나 해요.
 
# 최진영 – 저는 이 책이랑 『담배 한 개비의 시간』을 읽으면서 나도 어쩔 수 없이 어른이 되었구나,라고 느꼈어요. 주인공들에게 얘기를 해 주고 싶은 거예요. “너 지금은 그렇게 힘들어도 괜찮아. 빨리 연애를 하라고 빨리 사랑을 하라고.”(웃음) 문득 드는 생각이 나도 20대 초반에는 이런 자기 고민과 자기 비하와 열패의식에 휩싸여서 공허했고 외로웠는데. 그 때 내가 원했던 건 나보다 나이 많은 사람들의 충고가 아니라 누군가가 내 옆에 있어 주는 거였어요. 그 때 그 느낌이 딱 생각나는 거예요. 그 때 누군가가 내 옆에서 지금의 나처럼 충고를 했으면 아마 욕을 해 줬을 거예요. 그런 생각이 들면서 나도 어쩔 수 없이 어른이 됐구나. 나도 뭔가 얘기해 주고 싶은 나이가 됐구나. 그런 느낌이 들어서 서글펐어요.
 
# 문진영 – 저는 다르게 읽었어요. 출구가 없다는 식으로 많이들 얘기를 하시잖아요. 그 안에서만 더 나아가지 못하는. 그런데 인상적인 장면이 마지막에 ‘자기 안으로 들어간다’는, 결국에는 나 자신이 온 세상이라는 그런 느낌. 전 희망적으로 읽었는데요. 제 글에도 막다른 벽을 보고 돌아왔는데 알고 보니 입구가 출구였다는 내용이 있었는데, 그런 생각이 많이 드는 것 같아요. 
 
# 김혜나 – 『제리』 안에는 사실 뚜렷한 희망이나 메시지가 들어 있지 않은데, 작가의 의도가 있었다면 바로 그것이 아니었을까 싶어요. 독자가 소설책 안에서 출구를 찾기보다 소설의 바깥에서 자신의 출구를 찾아가기 바랐거든요. 따라서 소설 속에 뚜렷한 희망이나 결말, 출구와도 같은 것들을 넣을 수 없었다, 라는 것이 더 맞는 표현일지도 모르겠어요. 출구라는 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현실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내면에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내가 먼저 달라지거나 좋아지지 않으면 세상이 결코 달라지거나 좋아질 리 없고, 설사 세상이 먼저 변화하고 좋아진다 한들 내가 변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죠. 그러므로 나의 외부에서 출구를 찾으려고 하기보다 내 안으로 더 깊이 들어가 세계와 하나 되는 식의 사유를 하다 보면, 누구나 다 출구를 찾아갈 수 있다고 믿어요.
 
# 고봉준 – 그건 시적이지 않나요? 소설적이라기보다는. 
 
# 김혜나 - 그런가요?
 
# 박솔뫼 – 되게 어른이 쓴 것 같았어요. 화자의 나이가 명시되지 않았으면 다섯 살쯤 위로 생각했어요. 
 
# 김혜나 - 처음에 고봉준 선생님께서 말씀해 주신 것처럼, 너무 일찍, 출구 없는 현실의 암담함을 체감해 버려서 그런 것 아닐까요?

 
# 고봉준 – 다음으로, 박솔뫼 선생님의 소설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죠.
 
# 최진영 – 전 이 소설 소리내서 읽었어요. 낮은 목소리로 중얼중얼하면 확 달라붙는 것 같아요. 
 
# 김혜나 – 저는 정말 놀라움을 금치 못하면서 읽었어요. 
 
# 고봉준 – 저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작가가 생각하는 인간관계 혹은 소통이란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 궁금했는데, 들려주시겠어요? 
 
# 최진영 – 혹은 숫자 2와 3의 차이? 
 
# 박솔뫼 – 제가 늘 듣는 질문이 쓰면서 별로 생각하지 않는 거거든요. 뭐라고 얘기해야 될지 모르겠어요. 
 
# 최진영 – 뭔가 둘이 셋이 되면서 불화가 시작되는…….
 
# 박솔뫼 – 근데 뭔가 좀 편한 게 있죠. A와 B가 만나서 1부터 10까지의 관계가 있다면 그것을 쓸 수 있는 사람이 있는 것 같아요. 저는 그게 아닌 것 같아요. 그 중에서 한 시점을 빼서 쓴 것 같고 관계에서 어느 지점인지는 잘 모르겠고. 분명히 관계에서 기승전결 같은 것이 있는 데 제가 택한 것은 그 중에서 하나를 빼서 쓴 거예요. 뭔가 완전하다거나 그런 게 아닌 것 같아요. 
 
# 김혜나 – 한국인들은 3이라는 숫자에 안정감을 가지잖아요. 뭐든 세 번은 해야 뭔가 되는 것 같다고도 하고요. 그런데 이 소설에서는 3이라는 숫자에서 불안정성이 시작돼요. 그것이 바로 사고의 확장이고, 새로운 시각인 것 같아요.
 
# 박솔뫼 – 인터파크 웹진에 제 단편 하나가 나왔는데요, 거기에도 세 명이서 아름다운 삼각형을 이룬다는 것이 있어요. 그게 약간 비슷한 시기에 쓴 단편인데 1부터 10에서 하나를 빼서 쓴 거라서 처음부터 끝까지 쓸 수는 있겠지만 아직은 잘 모르겠다, 인 거죠. 
 
# 김혜나 – 저는 제일 궁금했던 것이 인터뷰 기사를 보면 인류의 멸망을 상상하면서 쓰게 된 소설이라고 하셨는데요. 정작 먼 미래의 종말 혹은 상상이라는 생각이 안 들었어요. 이것은 지금 당장 내가 직면한 현실이고 내가 속한 세계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너무나 많은 사람들 속에 있지만 늘 혼자 있는 것 같고, 너무나 많은 공간에 둘러싸여 있지만 정작 아무것도 없는 폐허에 있는 것 같은 바로 지금의 내 현실이요. 그렇기 때문에 이 소설이 보여주는 것은 지금 여기의 명제라고 생각했어요. 작가님께서는 이 소설 속 상황이나 배경이 먼 미래에 일어날 이야기 같은 건지 아니면 지금의 내 현실 같은지 궁금해요.
 
# 박솔뫼 – 아까 말씀하신 인류 멸망이라는 것은 분명히 SF적인 것이긴 하면서도 먼 미래라기보다는 조건을 제시하자면 사람들이 다 사라졌을 거라는 그 때 즈음에 미래라는 단어를 마음에 담기만해도 굉장히 마음이 너무 떨려 가지고 막연하게라도 많이 생각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생각할 때 시간적인 낙차를 고려한 것 같지는 않아요. 
 
# 김기홍 – 씨안은 소설에 등장하는 영화를 계속 보지만, 을은 그 영화를 보다가 나오잖아요. 그리고 씨안이 만드는 관계는 작품 속에서 계속 반복되는 다른 삼각형 관계들과는 다르구요. 그러니까 씨안도 민주와 을과 삼각형을 이루긴 하지만 애정에 얽혀들거나 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삼각형 관계를 만들면서 민주에게 갖고 있던 애정을 잃어버리게 되죠. 그게 나름의 의미가 있는 건가요? 씨안이 그 영화를 끝까지 본 사람이고, 관계에 대해서 많이 생각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런 건지? 
 
# 박솔뫼 – 걔가 영화를 많이 보는 이유는 씨안이 민주를 계속 좋아하면 안 된다고 하는 지점이 있었던 것 같아요. 감정 선으로서 그게 자연적인 것 같았어요. 어찌 보면 씨안이 그 중에서 가장 구체적인 인물이잖아요. 걔가 안정을 좋아해서…….
 
# 최진영 – 여기는 최소한 관심을 둬야 되는 인물이 세 명이 나와요. 민주, 을, 씨안. 그런데 왜 제목은 『을』일까요? 
 
# 박솔뫼 – 아까 횡설수설하면서 두 가지 기둥에 대해서 말했는데요. 제가 소설 인물들 이름 붙이는 걸 무척 좋아해요. 소설을 쓰기도 전에 이름을 짓고 그래요. 『을』을 쓰기도 전에 을의 이름을 지었어요. 그런데 쓰다 보니까 애정이 생긴 거죠. 별 의미는 없었던 것 같아요. 
 
# 최진영 – 저는 씨안이 되게 인상적이었는데, 제목이 『을』이니까 을에 초점을 맞춰야 할 것 같았어요. (웃음) 이건 굉장히 무식한 질문인데, 민주랑 을은 왜 헤어졌나요? 을과 가장 소통이 잘되는 존재가 민주였잖아요. 둘이 굉장히 쿵짝이 잘 맞았는데, 을은 말 많은 거 싫어하지만 막상 민주랑 있으면 말이 많아지는. 근데 왜 민주랑 헤어졌나요? 거기에 무슨 의도가 있었나요? 
 
# 박솔뫼 – 의도는 없었구요. 걔네가 왜 헤어졌냐면 쓰다 보니까 헤어지게 된 건데. 어떤 식의 그림을 그렸을 때 을은 어쨌든 마지막에 혼자가 되어야 하거든요. 그래서 이렇게 주욱 있다 보면 민주와 만나고 헤어지고 인생을 봤을 때 혼자가 되고 길을 걸어가서 관계가 절단되는. 대부분 혼자가 되어서 끝나야 한다는. 초고는 지금과 정말 다르거든요. 한번 혁명적으로 고쳤는데 완전 초고일 때는 셋이서 지내다가 끝나는 거였어요. 딱 거기서 끝나는 것이었는데 고친 게 결국은 얘를 혼자 내버려 두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 김혜나 - ‘작가의 말’을 보면, ‘그러니까 이 글도 나름대로 잘살 거라고 생각한다’라는 구절이 있어요. 저는 이 문장 또한 마치 소설의 연장선처럼 느껴져서 굉장히 좋았어요. 모두가 혼자가 되어 떠나가는 소설 속 인물들처럼, 이 소설 또한 작가와 이별하여 오로지 소설 그 자체로서만 존재하게 되리라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그 점이 굉장히 부럽게 느껴지기도 하고요.
 
# 김기홍 – 사소한 건데, 문장을 읽으면서 주격조사가 약간 특이하게 사용된다고 느꼈어요. 은, 는, 이, 가 중에서 일반적으로 이/가 를 쓰는 경우에 은/는 을 쓴다거나…….
 
# 박솔뫼 – 글 쓰는 걸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일기, 블로그, 미니홈피 등. 저는 그런 게 전혀 없었어요. 소설 쓰는 양이 지금까지 썼던 것의 꽤 많은 부분이 아닐까. 그래서 문장 호응이 안 되거나 비문이 엄청 많은 거예요. 문장을 짧게 쓸 수밖에 없는 것이 길게 쓰면 문장 호응이 안 맞는 거예요. 
 
# 최진영 – 근데 그게 이상하지 않았어요. 독특하게 느껴졌어요. 매력적인 문체다.



 
# 고봉준 – 약속했던 시간이 상당히 지났네요. 이제, 최진영 선생님 책을 끝으로 이 자리를 마무리 해야겠습니다. 제가 아까 물었던 게 ‘왜 소녀였을까?’였는데요, 이 소설은 성장담으로 읽을 수도 있고 또 다르게 읽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다시 한 번 <안개 속의 풍경>이라는 영화를 떠올려 볼게요. 아버지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사랑을 배운다는 설정이 최진영 선생님의 소설과 겹쳐지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특히 이 소설에서 ‘소녀’의 동선이 점차 서울에 가까워지는, 그러니까 주변에서 중심으로 올라오는 과정이 그렇게 읽히는 대목이에요. 소설의 초반부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대개 사투리를 쓰고 있는데 이것은 소녀가 버려진 곳이 주변적인 세계라는 걸 강조하기 위한 것 같았어요. 그리고 소녀의 서울 입성이 이 아이가 오리지널한 가짜와 대면하게 되는 것이구요. 이 공간의 배열이 다분히 의도된 것처럼 읽혔는데, 실제로 그런가요? 
 
# 최진영 – 소녀가 마지막에 서울로 가야 한다는 계획은 있었어요. 서울이라는 상징성이 있었기 때문에. 소설을 쓰기 전에 이미 구도는 잡아놨었죠. 서울에서 자기 또래의 비행 청소년을 만나야 했어요. 
 
# 박솔뫼 – 마지막 부분이 되게 좋았어요. 한편으로는 구성을 할 때 그럴 수밖에 없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지만 저는 다방여자 처음에 나오는 지점을 못 쓸 것 같아요. 무척 통속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요. 방에서 책을 보다가 다방여자가 나왔을 때 어느 순간부터 이렇게 하고 보았어요. 곧 다시 제대로 보기는 했지만 처음부터 그렇게 쓰기 어려울 수도 있을 거 같은데요.
 
# 최진영 – 저라고 쓰면서 왜 그런 생각이 없었겠어요. 이게 제 두 번째 장편이었으면 아마 경계하면서 안 썼을 거예요. 그런데 세 번째 되니까, 쓰고 싶은 대로 써야지, 뻔하든 통속적이든, 문장이 이게 뭐야 그러든 나라도 재미있게 쓰고 읽어야지. 그런 작정으로 아무 생각 없이 쓴 거예요. 그래서 가장 쓰고 싶은 이야기를 뽑아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 고봉준 – 그 설정이 아이가 엄마 뱃속에서 밖으로 나오는 것이 버려지는 것이라는, 나쁜 세계에 투기되는 과정처럼 읽혀요. 그러니까 그 다음부터는 아이가 진짜 엄마를 찾으러 가는 과정, 즉 엄마 뱃속으로 돌아가려는 노력이 되겠죠. 물론 이 노력이 완결될 가능성은 없지만, 소설이 타락한 세계에서 진정한 가치를 추구해 가지만 결국은 과정만 남고 도달하지 못한다는 루카치식의 이론에 잘 들어맞는다고 생각해요. 
 
# 최진영 – 저는 루카치를 잘 모릅니다.(웃음) 하지만 옛날부터 그런 생각을 했어요. 엄마 뱃속이 가장 평화롭고 편안한 때다. 
 
# 고봉준 – 왜 그랬을까요? 기억도 못하는데요?
 
# 최진영 – 기억을 못하니까. 엄마 뱃속은 아무도 모르는 세계고 내 맘대로 상상할 수 있으니까. 그 곳에서 나는 보호받는 존재면서 홀로 존재할 수도 있거든요. 소녀가 꿈꾸는 평화는 불가능한 것이지만 그것에 가까워지려고 노력하는 평화예요. 절대 도달할 수 없지만 가까이는 가겠다는 거죠. 
 
# 고봉준 – 그 때, 질문이 진짜와 가짜라고 하는 틀을 가졌다는 것은 전통적인 것처럼 느껴져요. 윤성희 작가의 「감기」라는 작품과 비교해보면 재밌을 거  같아요. 어느 날 갑자기 또 한 사람의 아빠가 등장해요. 남자의 등장으로 아이는 졸지에 두 사람의 아빠와 함께 지내게 되죠. 진짜 아버지와 작은 아버지, 그리고 아이, 이렇게 세 명의 남자가 한집에서 살아요. 두 명의 아버지가 기억하는 아이의 생일이 달라요. 이건 정체성이 두 개라는 의미겠지요. 이런 상황에 직면하면 대부분은 누가 진짜 내 아빠인가에 대해서 생각할 거예요. 그런데 아이는 이제부터 자신의 생일은 일 년에 두 번이라면서 그 혼란스러운 장면을 긍정해버려요. 자신의 오리지널한 정체성을 탐구하기보다는 그 상황을 다 자기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이죠. 이 아이에게는 진짜냐 가짜냐는 질문이 없어요. 그런데 선생님의 소설은 진짜냐 가짜냐는 질문을 계속 이어가요. 물론 그것 때문에 인상적인 장면도 있죠. 가령 분식집 할머니를 진짜 엄마라고 느끼다가 마지막에 할머니에 의해 버려지는 장면들 같은 것이요. 그리고 마지막에 서울에 도착해서 진짜 자기가 생각했던 엄마의 조건이 다 거짓말이라고 깨닫는 부분도 나름 뭉클했어요. 너무 찾기가 쉽기 때문에 자기가 못 찾았던 것이라는 대사는 굉장히 인상적이었어요. 아무튼 윤성희는 진짜와 가짜라는 질문을 무너뜨리면서 새로운 돌파구를 만들었지만, 선생님의 소설에서 소녀는 진짜와 가짜라는 질문을 간직하면서 여행하기 때문에 조금 전통적이라는 느낌을 받았어요.   
 
# 최진영 – 생각을 번역해서 쓰는 것이 아니라 생각한 것을 날것 그대로 썼거든요. 문장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는 것이 아니고 직접 대면하는 그런 게 있지 않았을까. 진짜와 가짜라는 질문은 소녀를 살게 하는 힘이었어요. 그러니까 그것을 놓을 수 없죠. 소녀가 마지막에 진짜 가짜 뭐 이런 것은 다 소용없다고 느끼는 것도요. 지방을 떠돌면서 나 같은 애는 나밖에 없을 줄 알았는데, 서울 가니까 나 같은 애가 너무 많은 거예요. 나 같은 애가 나밖에 없으면 내 문제일 수 있지만 나 같은 애가 너무 많으면 그건 분명히 뭔가 다른 문제가 있는 것이잖아요. 
 
# 고봉준 – 그것 때문에 그 소녀가 친구의 아버지를 칼로 찌르게 되는 건가요?
 
# 최진영 – 네. 그런데 소녀가 자기 아빠도…… 아빠가 죽은 것을 다들 아시나요. 모르시는 분들이 많아서.
 
# 고봉준 – 중간에 나오잖아요.
 
# 김기홍 – 엄마가 찌른 것이죠?
 
# 최진영 – 엄마가 찔렀는지 소녀가 찔렀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아빠가 죽어서 집을 나오는데. 소녀는 알면 행동하는 소녀. 내가 옳다고 생각하면 그대로 실천하는 소녀예요. 소녀가 나리의 새아빠를 죽인다고 해서 세상이 변할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죽이지 않을 수 없는 그 지점. 
 
# 김혜나 - 소설을 쓰면서 독자에게 무언가를 바라면 안 되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언가 바랄 수밖에 없는 게 늘 있죠. 소설 속 인물들에게 왜 그렇게 행동하는 거냐고 묻기 이전에, 그렇게밖에 행동할 수 없는 사람의 심정에 대하여 아주 조금만이라도 생각해 준다면 정말 좋을 것 같아요.
 
# 문진영 – 저는 아직 제가 못 본 것에 대해, 모르는 세상에 대해 쓰는 것이 겁나거든요. 그래서 진심으로 거짓말을 한다는 게 되게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작품을 읽으면서 감동되는 부분이 많았어요. 선생님이 정말 그 소녀가 아닌데 눈물이 핑 돌게 할 정도로 순간들의 진정성을 보여준다는 게 놀라웠고. 사람에 대한 애정이 참 많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학생들 가르치셨다는 얘기 들으니까, 더. 어떠신지. 
 
# 최진영 – 그런 질문 많이 들었어요. 정말 욕을 잘하냐고. 취재 어떻게 했냐고. 그런데 달리 취재한 것은 없고요, 나가면 들리는 게 욕이에요. 애들은 악의를 품고 욕을 하는 것이 아니고 감탄사나 접속사처럼 내질러요. 저는 열 살짜리한테도 욕을 들어 봤어요. 자기 분노를 억누르지 못하면 그 대상이 누구든지 욕을 해요. 처음에는 화나지만 익숙해지면 ‘얘가 지금 화가 났구나’ 정도로 받아들이게 되더라고요. 초등학교 1학년짜리가 자기들끼리 패를 짜서 왕따를 시킨다거나. 그런 것을 볼 때마다 인간의 본성은 뭘까. 악할까 선할까. 그냥 백지 상태일까. 애들이 이렇게 된 것이 학습된 것일까 본성일까. 그런 생각 많이 했어요. 애가 나에게 덤빌 때는 더 이상 열 살짜리 애가 아니에요. 정말 존재 대 존재로 싸워야 하는 거죠. 애들도 딱 보면 알아요. 저 선생은 내가 누를 수 있다. 저 선생은 안 된다. 이것을 순간에 파악해요. 아이들 가르치면서 인간 본성에 대해 생각 많이 했어요. 
 
# 고봉준 – 본인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 최진영 – 저는 학습의 영향이 크다고 생각해요. 요즘 애들은 어릴 때부터 학습된 게 너무 많아요.  
 
# 고봉준 – 마지막 장면이 죽음으로 마무리되는 건 아무래도 예고되었던 것이겠죠? 죽음의 순간에 평화로운 엄마 뱃속에 있는 느낌을 받는다는 거, 왜 그랬을까요? 
 
# 최진영 – 죽음의 순간이 어떤지도 사실 아무도 모르잖아요.
 
# 고봉준 – 왜 하필이면 죽음을 평화로운 상태라고 느끼게 되는 건지요? 이 소녀가 살아 왔던 시간이 너무 고통스러워서 그랬을까요? 
 
# 최진영 – 소녀가 죽는 것은 처음부터 결정했어요. 소녀를 죽이지 않고 어영부영 어설프게 끝내는 건 소녀에 대한 기만이라고 생각했어요. 소녀는 절대 그런 인물이 아니거든요. 소녀가 가장 원하는 것을 해 주고 싶었어요. 소녀는 굉장히 솔직한 인물이어서 행복할 땐 행복하다고 말할 줄 알고, 사랑할 땐 사랑한다고 말할 줄 아는 인물이에요. 소녀에게 “너는 삶이 고통스럽고 불행했느냐”고 묻는다면 소녀가 단호하게 “응”이라고만 대답하지는 않을 것 같아요. 소녀가 원하는 대로 끝내 주고 싶었어요. 소녀가 원하는 건 엄마 뱃속처럼 평화로운 세계였으니까.
 
# 김기홍 – 좀 어려운 질문일 수도 있는데, 소녀가 사람들을 만나면서 뒷부분에 그런 독백을 많이 하잖아요. 나를 알아봐 주는 사람은 당신들 같은 사람들뿐이다, 라고. 빈부와 선악이 분명하게 갈려 있는, 가난한 사람은 선하고 부유한 사람은 좀 악한. 소녀가 실제 만나 온 사람들을 생각하면 꼭 가난한 사람이라고 다 선하지만은 않았고, 여러 가지 경우가 있었는데도 불구하구요. 그럼에도 그렇게 생각하게 된 것은 단순히 소녀의 성격 때문인지, 아니면 작가의 평소 생각이 무의식적으로 들어간 것인지. 
 
# 최진영 –  선악은 나눌 수가 없을 것 같아요. 할머니는 선한 존재였지만 자기 자식을 위해서 소녀를 버릴 수 있는 존재였고. 그런 식으로 따지면 소설에도 나오지만, 내가 행복하려면 누군가는 불행해야 해요. 할머니 아들이 행복하려면 내가 불행해야 해요. 내가 행복하려면 할머니 아들이 불행해야 하겠죠. 여기서 나를 알아보는 사람은 왜 가난한 사람들일까, 라고 묻는 건, 일단 저는 그런 생각이 있었어요. 느닷없는 위험에 노출되는 것은 대부분 서민이에요. 그 위험 속에 소녀가 있었던 것이고요. 소녀가 부자들의 무리에 갔을 때 그들 중 누군가가 소녀를 보살펴 줬을까 묻는다면 저는 아니라고 답할 거예요. 그들은 소녀를 신경 쓰지도 않았겠죠. 소설 속 인물들은 불행한 존재지만 자신의 불행과 상처로 상대를 보듬을 줄 아는 사람들이죠. 자기와 비슷한 상처가 있는 사람을 끌어안을 수 있는 사람들이었어요. 자기의 불행을 타인에게 강요하지 않는 사람들. 그런 인물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 고봉준 – 아직 못 다한 이야기가 많이 남았지만 시간이 너무 지나버려서 일단 오늘 좌담은 여기에서 마무리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남은 이야기는 뒷풀이 자리에서 이어가도록 하지요. 좌담에 참석해주신 다섯 분 모두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여러분들에게 문운이 항상 함께하기를 바랄게요. 멀리까지 와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이것으로 좌담을 마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문장웹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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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육지에서 쓴 일기 최진영 20240528 4박 5일 동안 육지에서 여러 일정이 있어 오늘 제주에서 서울로 왔다. 앞으로 며칠간 약속과 약속 사이, 출발지와 도착지 사이 시간이 날 때마다 이 창을 열고 단상을 써보려고 한다. Are you checking in? pm04:45. 여긴 충무로의 호텔. 3년 전 제주로 이사 간 뒤 처음으로 서울에 일이 있어 올라왔을 때 숙박한 후 매번 이 호텔만 이용하고 있다. 경기, 인천 지역에서 저녁 행사를 해도 근방 호텔을 잡지 않고 여기로 온다. 새로운 호텔을 검색하고 선택하는 게 번거로워서. 합리적인 위치나 가격을 따지려다가 검색 지옥에 빠져서 몇 시간을 고민한 뒤 결국 이 호텔을 예약했던 경험으로 깨달은 바가 있다. 시간이 돈이다. 더 저렴한 호텔을 찾으려 애쓰지 말고 검색하고 고민하는 시간을 줄이자. 점심시간 무렵 충무로 일대 분위기는 조금 묘하다. 커다란 캐리어를 끌고 거리를 걷는 외국인들과 점심 먹으러 나온 직장인들이 뒤섞이는 거리. 라디오 주파수를 돌리듯 여러 나라의 언어가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서울역, 명동, 한옥마을, 남산, 종로가 가까운 곳이어서 외국인 관광객이 정말 많다. 올 때마다 느끼지만 호텔 투숙객 중 한국인은 나뿐인 것 같다. 한 달에 두어 번은 와서 2박 이상 하니까 나름 단골이랄 수도 있는데 프런트 직원들은 매번 나를 처음 본 손님처럼 대한다(호텔의 특성이겠지?). 체크인할 때도 내게 영어로 말을 건넨다. “give me your passport.” 그럼 나는 “제 이름은 최진영입니다”라고 한국어로 대답한다. 성공한 인생 오늘 아침 9시쯤 택배 문제 때문에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엄마는 전화를 받자마자 놀란 목소리로 “왜 이렇게 일찍 일어났느냐”고 물었다. 내 용건에 개의치 않고 엄마는 거듭 물었다. 전화를 끊고 뿌듯해서 신나게 웃었다. 내 나이 이제 마흔이 넘었는데 아침 9시에 엄마에게 “왜 이렇게 일찍 일어났느냐”는 말을 들을 수 있다니, 이번 생은 성공한 것 같아서. 그건 바로 내 투쟁의 결과다. 거의 20년을 프리랜서로 살면서 남들 다 출근하는 시간에도 ‘성인 평균 적정 수면시간’을 사수하며 꾸준히 늦게 일어나는 생활양식을 차곡차곡 쌓아 온 결과 마침내 엄마도 나의 생활 패턴을 받아들인 것이다. 그래서 아침 9시에 전화하면 깜짝 놀라는 것이다. 나는 이런 게 진정한 성공 같다. 긴장감 저녁에 북토크를 할 예정이다. 사람들 앞에서 말하거나 낭독할 때는 별로 긴장하지 않는 편이다. 내가 긴장하는 순간은 따로 있다. 예를 들면 비행기 탈 때. 기내 짐칸에 캐리어를 올리다가 무거워서 또는 실수로 떨어트려서 누군가를 다치게 할까 봐 매번 긴장한다. 일어날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걸 알지만 식은땀이 난다. 캐리어를 끌고 에스컬레이터 탈 때도 마찬가지다. 에스컬레이터에서 넘어지거나 캐리어를 놓치는 구체적 상상에 시

  • 관리자
  • 2024-07-01
거대한 존재들의 무한한 경탄

[에세이] 거대한 존재들의 무한한 경탄 제이크 레빈 소개 거의 12년 동안 나는 한국 대학교에서 강의를 했다. 지난해부터 강의하는 교사의 내면적 생활과 관련된 일기와 같은 글들을 쓰기 시작했다. 외국인 교수로서 처음 강의를 시작했을 때 모든 것이 낯설고 이방인 같은 느낌이었는데 이제는 한국 문화에 익숙해졌지만 여전히 교수의 삶은 익숙하지 않다고 믿는다. 학생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고 다른 교수의 마음도 이해하기 어렵다. 다른 강의실에 들어갈 때마다 새로운 학생들을 만날 때마다 이전에 만나지 못했던 민족을 만나는 것 같이 나는 죽을 때까지 방랑자처럼 매일 새로운 것을 경험한다. 학교에서는 현실에 경험한 것이 꿈꾸는 것 같고 꿈꾸는 것이 더 현실처럼 느껴지듯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가 가끔은 사라진다. 이 산문은 시나 소설이 아니고 현실의 기록도 아닌 교사로서의 삶의 내면적 반응이다. 교사는 인간이다. 가끔 사회가 인문대 교사의 인간중심주의를 억압한다고 생각한다. 신자유주의의 자본주의는 모든 것을 계산하지만 인문학과 시의 영향력은 계산될 수 없는 가치다. 인간중심주의 가치를 점점 찾기 힘든 사회의 학생들은 학교에서 문화를 배워야 한다. 이 모순적인 긴장의 환경에 존재해야 한다. 학교의 목적은 타인의 인간성을 인정하는 것에 있다. 이 산문은 한 인간의 존재하는 기록이다. 거대한 존재들의 무한한 경탄이라는 제목은 완전한 이해가 불가한 타인의 인간성을 발견하는 것에서 왔다. 이 기록은 내 개인적 경험과 전해 들은 동료 교사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작성하였으며 영어로 작성한 문장을 나의 소중한 학생 김혜인이 나와 함께 번역하였다. 지우개 머리 어떤 날 나는 대답하기 위해 여기 있고, 어떤 날 나는 오직 듣기 위해 여기 있다. “질문 있어?” 많은 학생들이 질문의 형태로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그다지 어려울 것 없는 예술을 배웠다. 그런 질문에 대답하는 유일한 방법은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이 질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질문자가 자신의 질문에 답변하는 동안 사용감 있는 지우개처럼 커피를 홀짝이며 머리에서 머리카락이 떨어지는 것을 느껴 보라. 학생들의 목소리는 배경소리가 되어 가다가, 불현듯 보이스 오버. 지우개는 부러지기 전까지 얼마나 많은 얼룩을 견딜 수 있을까? 숭고한 느낌 지난 몇 주간, 를 듣는 학생들은 책상 아래 숨어 있었다. “교수님, 저희는 불확실성에 머물고 있어요.” 그들은 말한다. 일정 기간 동안 불확실성에 머문 뒤, 한 학생이 책상 아래서 나타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저는 숭고한 느낌을 얻었어요.” 그들이 말한다. “저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아름다움에 압도당해 죽음이 무섭고 두려워요.” “이제 제 핸드폰 돌려주시겠어요?” 정적. 학생이 나를 응시한다. 정적. 나는 천천히 커피 한 모금을 마시고 학생을 응시한다. 흰 두루미 “주말 잘 보냈니?&r

  • 관리자
  • 2024-07-01
아, ‘장르 문학’ 하시는구나

[에세이] 아, ‘장르 문학’ 하시는구나 김용언 미스터리 장르를 좋아하고, 열심히 읽고, 그에 관한 잡지를 만들고, 또 가끔은 관련 공모전 심사를 보면서 언제나 느끼는 바가 있다. 한국에서 미스터리 장르에 대한 이해도는 여전히 심각하게 척박하다는 점이다. 가장 모순되는 감정을 느끼는 순간은 ‘장르 문학’이라는 단어를 들을 때다. ‘(그냥) 문학’1)의 카테고리에 속하지 않는 나머지 소설들은 굳이 ‘장르 문학’이라고 불린다. SF, 판타지, 미스터리/스릴러, 로맨스, 공포, 무협 등의 꼬리표가 붙고 낱낱이 분류되며 ‘문학은 문학이지만 그냥 문학이라고 부르기보단 그 안의 장르로 명명되어야 하는’ 존재가 된다. 의문이 생긴다. 그렇다면 장르 문학에 속하지 않는 작품은 그냥 문학이 아니라 ‘비장르 문학’이 되어야 하지 않는가? 아니면 순문학 역시 일종의 장르임을 인정하면서 모든 작품을 ‘장르 문학’이라고 불러야 하는 건 아닐까? 예전 한국 문단에서는 ‘순(純)’이라는 단어가 참여 문학/민중 문학 등의 대립항처럼 불렸다고 하는데, 지금에 와서는 참여 문학/민중 문학도 ‘그냥’ 문학에 포함된 것 같다. 아무튼 거칠게 말해서 ‘장르’를 사용하지 않고 인간과 현실 자체에 집중하는 소설을 ‘그냥’ 문학으로 호명한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장르’로 호명되는 특정한 이야기들에는 그 장르가 만들어지게 된 역사가 있고 또 그 안에서 통용되는 특정한 규칙이 존재한다. 그런 약속된 구조와 규칙을 이용해서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낸다고 해서, 그 결과물이 ‘그냥’ 문학으로 불릴 수 없고 장르 문학으로만 불려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오해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나는 장르 문학도 문학임을 인정하라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기 위해 이 글을 쓰는 게 아니다(그건 너무 당연한 사실이기 때문에 굳이 받아들여 달라고 애원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그 장르 문학 업계에서 일하는 사람으로서 불편해지는 순간들이 자꾸 찾아온다. 이를테면 한국 작가의 소설이 해외로 번역되었을 때 현지 리뷰들을 찾아보면, 스릴러/미스터리/공포 등의 명칭을 명확하게 부여하면서 소개한다. 한국에서는 기존 등단 작가들의 작품을 소개할 때 ‘추리적 기법을 활용한’ 또는 ‘경계를 넘어선 상상력을 발휘한’ 등의 애매모호한 문구로 시작할 때가 많은데, 해외에서는 자신들에게는 낯선 작가의 번역 작품의 특성을 단번에 설명하기 위해 ‘이것은 스릴러다’ 또는 ‘이것은 공포소설이다’라고 알려준 다음 그 작품의 특성이 어떤 점에서 새롭고 멋진지를 차근차근 설명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여전히 장르 문학과 장르 아닌 ‘그냥&r

  • 관리자
  • 2024-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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