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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은 돌고 돈다 外 1편

  • 작성일 2009-08-31
  • 조회수 2,030



  단편 「지하철은 돌고 돈다」 중에서

  단편 「수지가 삼킨 달」 중에서

 









 

지하철은 돌고 돈다

 

 

작가의 말

 

상갓집에서 밤을 지새우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밤새 운데다 술까지 마신 터라 몹시 지쳐 있었다. 지인을 땅속에 누이고 돌아서니 내 몸 누일 곳이 필요했다. 출근 시간의 지하철. 어느 한 곳이 구멍이 난 것처럼 휑해서 냉큼 그리로 달려가 빈 의자에 앉았다. 의자 한 줄을 몽땅 차지하고 옆자리에 누운 노숙자를 발견한 것은 그 후였다. 한 시간 동안 냄새와 싸우며 그 자리를 지켰다. 옆자리에 누운 사람이 무안할까 봐, 였다면 좋았겠지만, 오로지 앉을 자리가 필요했을 뿐이었다. 소설의 인물들은 조금씩 작가와 닮아있고, 어느 면에선 작가의 정반대에 있다. 소설이라는 거울 면을 사이에 두고 인물을 바라보며 이 인물의 따뜻함을 지니고 싶다고 주문처럼 중얼거린다.

 

 

“너, 말은 못 하지만 귀는 들리는구나?”

‘입술, 입술을 읽는 거예요. 그러니까 너무 빨리 말하지 마요.’

한 글자씩 나타나는 여자애의 말을 보고 있자니 꽤 재미있는 대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서로 다른 속도를 가진 전이된 소통. 나는 입으로 말하고 눈으로 들었다. 여자애는 눈으로 듣고 손으로 말했다. 나는 빨리 말할 수 있었지만 천천히 들어야 했고, 여자애는 천천히 말해야 했지만 빨리 들을 수 있었다. 노숙자 고려인을 곁눈으로 째려보며 입으로 쉬었다가 코로 쉬었다가 가쁘게 숨을 쉬어야 했지만, 이 특별한 대화를 조금 더 하고 싶었다.

“냄새 나는데, 왜 하필 여기 앉아있어?”

‘제가 앉고 나서 이 아저씨가 왔거든요.’

“자리 옮기기 귀찮아서 그냥 앉아 있는 거야?”

‘아니요. 자리 옮기면 이 아저씨가 무안해할 것 같아서요.’

듣고 보니 갑자기 무안해졌다. 어차피 들리지 않을 소린데, 고려인 들으라는 듯이, 한 음절 한 음절 또박또박 끊어서, 누가 기아바이 아니랄까 봐 역사가 쩌렁쩌렁 울리도록 말했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여자애에게선 따뜻한 기운이 느껴졌다.

눈이든 귀든 감각이 닫히면 답답하고 불편할 거라고만 생각했다. 지하철에서 수레를 끌고부터 사람들이 자의로 감각을 닫을 수도 있다는 걸 알았다. 감각을 닫는 순간 그 사람에게는 차갑고 단단한 보호막이 쳐졌다. 그런데, 이 여자애가 닫아버린 후각에는 그런 냉랭함이 없었다.

보고도 못 본 척, 들려도 못 들은 척하는 건 쉽다. 그건 대부분 자기애에 기인한 자기 방어이기 때문이다. 악취가 나도 못 맡은 척하는 것은 쉽지 않다. 내색하면 안 된다는 의지보다 인상을 찌푸리라는 뇌의 신호가 더 빠르다. 뉴런의 전기신호 시스템에는 타인을 위한 갈등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여자애가 풍기는 따뜻함이 엄청난 자기장으로 나를 끌어당겼다.

(「지하철은 돌고 돈다」 중에서, p62~63)

 

 

수지가 삼킨 달

 

 

작가의 말

 

스미다. 번지다. 퍼지다. 이런 말들이 나를 매혹한다. 골방에 스스로를 유폐한 나는 대인관계가 원활하지 못하다. 누구를 만나기로 하고 그 약속을 지키려면 다른 이들은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의 노력이 필요하다. 사람을 만나고 소통하고 이해하는 일은 나에게 거의 고통에 가깝다. 그러나 사람과 함께하는 것, 그에게서 무언가가 배어나와 나에게로 스미고 번지고 퍼지는 것은 무엇에서도 느낄 수 없는 행복감을 준다. 그래서 나는 늘 누군가와 만나기로 하고, 약속을 취소할 핑계를 찾느라 전전긍긍하다가, 그를 만나고 돌아와 혼자 가만히 웃는다.

 

 

달빛이 너무 밝고 고와서 하늘을 향해 손을 뻗었더니, 몸이 두리둥실 떠오르더라고 했다. 그렇게 하늘로 날아 올라가서 탐스러운 달덩이를 꿀떡 삼켰다는 것이다. 태몽은 구렁이·용·복숭아, 이런 것만 있는 줄 알았더니, 달덩이를 삼킨 것도 태몽이란다.

달을 삼키고 얻은 아이여서인가, 수지의 배가 달처럼 부풀고, 예정일에서 닷새나 지났는데도, 이 녀석이 좀체 나올 생각을 안 했다. 아마도 며칠 뒤 음력 보름이 되어야 나오려는 모양이다.

 

얼굴이라도 보자더니, 조지아 여사는 수지 얼굴은 안 보고 만삭의 배만 어루만졌다. 오래전 그날처럼 마당에는 꽃잎들이 어지럽게 흩날렸고, 거짓말처럼 새파란 하늘에는 흰 구름이 둥실 떠 있었다.

“달덩이를 삼켰나 봐. 어쩜 이렇게 탐스럽다니.”

할머니는 자꾸만 배를 이리 쓸고 저리 쓸었다. 달처럼 환한 빛이 나는 것 같아서 나도 모르게 수지의 배 위에 손을 올렸다. 녀석이 안에서 툭, 하고 내 손바닥을 찼다. 그 바람에 놀라서 뒤로 주춤 물러서다가 툇마루 끝에 걸려 허공에 손을 휘적거린 후 공중 2회전을 하고 마당에 나동그라진 나를 보고 수지가 웃었다. 할머니가 웃었다.

엉금엉금 기어 올라가 셔츠 자락을 걷어보니 살갗 위로 앙증맞은 발이 불쑥불쑥 솟구쳤다. 손바닥으로 그 발을 가만히 감쌌다. 발바닥과 손바닥 사이, 수지의 살갗과 내 살갗 사이에 따뜻하고 축축한 양수가 차오르는 느낌이었다. 가슴 밑바닥에서 오래도록 흐르지 못하고 고여 있던 눈물이 솟아올랐다.

아, 세상의 모든 것들을 다 용서하고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수지가 삼킨 달」 중에서 p255~257)







 

소설/낭독 : 우승미

출전 : 『날아라, 잡상인』, 민음사,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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