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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뮤지컬 판에 서서 둘러보다

  • 작성일 2006-05-30
  • 조회수 2,019

 


우리의 뮤지컬 판에 서서 둘러보다



조광화




뮤지컬 시장이 성장하고 있다. 많은 라이센스 공연들 그리고 창작공연들이 연달아 오른다. 그 편수만 봤을 때 우리의 제반 여건으로는 소화하기 벅찬 양이다. 제작단체들은 극장 잡기도 어렵고 좋은 배우를 확보하기도 어려워지고 있다. 왜 뮤지컬에 대한 관심이 폭증했을까? 그런데 정작 흥행에 성공한 작품들은 왜 별로 없을까? 관객들이 정말 좋아하는 것은 무얼까? 창작뮤지컬은 무얼 해야 하나?

이 글은 구체적인 설문이나 과학적 통계 등에 근거한 학술적 서술은 아니다. 그저 현장에서 작업하면서 또 공연을 보면서 객석의 분위기에서 보고 들은 것들에 대한 단상이다. 어쩌면 단편적 경험으로 받은 인상을 무리하게 일반화하는 오류가 있을 수 있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기를 내어 글을 쓰는 것은, 현장에서 작업하는 사람들의 편협한 체험담이나 감회의 서술도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다. 결국 뮤지컬 창작자로서의 고충과 아쉬움, 기대 등에 대한 토로가 되지 않을까 싶다.


우리 관객들은 전반적으로 거대한 스케일의 작품이나 로맨틱코미디를 선호하는 것 같다. 그런 작품들의 흥행은 일정 부분 보장받고 있다. 우리의 관객들을 몇 가지로 분류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과학적 통계는 아니고 공연장의 객석에서 느껴지는 분위기다.

데이트 : 뮤지컬은 영화보다 품위 있어 보이고 함께 즐기기 좋다. 데이트족들은 로맨틱코미디를 즐겨 찾는다.

럭셔리 관객들 : 뮤지컬 관람을 고급 문화활동으로 여기는 부류다. 티켓 가격이 비싼 대형 라이센스 공연을 위주로 관람한다. 삼십대 이상으로 부부동반일 경우가 많다.

가족 : 때로 뮤지컬 관극은 온 가족이 동원되는 특별한 구경거리인 것이다. 지방이 특히 그렇다. 특별한 경험이라는 것은, 뮤지컬의 다른 대중매체와의 차별화라는 측면에서, 관객을 극장으로 불러내는 데 있어 상당한 흡인력을 발휘하는 것 같다.

여성 : 뮤지컬 공연장의 객석에 앉다 보면 자주 여성파워에 놀란다. 어떤 공연의 객석은 남자들이 너무 희소해 어색해지기까지 하다.

마니아 : 우리 뮤지컬의 힘이자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주는 관객층이다. 이들은 적극적으로 뮤지컬에 대한 정보를 나누고 공연 제작단체에 영향을 행사한다. 동영상 등의 자료를 수집하고 교환한다. 그들의 뮤지컬에 대한 정보력과 지식은 때로 전문가를 능가한다. 마니아들은 작품 중심, 배우 중심의 두 부류로 결집한다. 작품 중심에서는 특정 작품에 대한 팬클럽이 형성된다. 그들은 그 작품의 음악과 대본과 역대 출연배우들을 꿰고 있다. 바뀌는 연출마다 자신의 취향대로 논평하고 어필한다. 모든 관객들 중 가장 극성스럽게(?) 공연자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존재는 배우 팬클럽이다. 이미 뮤지컬 흥행의 반은 이들에 의해 좌지우지된다. ‘어느 배우의 팬클럽은 강성이야’라는 말들을 한다. 그 배우가 출연하는 작품에 관객몰이를 하고 그 배우의 뒷바라지를 하고 객석 분위기를 주도한다. 제작자들은 팬클럽을 많이 거느린 배우를 섭외하려 혈안이 된다. 

한편 마니아들은 모험적인 관객들이다. 일반관객은 비싼 티켓 가격에 모험을 하려 하지 않는다. 알려진 작품에 공연 완성도가 이미 증명된 작품을 따라 움직인다. 그러나 마니아들은 창작 초연에도 과감한 투자를 한다.


라이센스뮤지컬은 창작뮤지컬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기도 했다. 주로 영국 웨스트엔드와 미국 브로드웨이 작품들이 주를 이루었다. 세계적 공감을 얻는 명작들도 많지만 우리 정서에 맞지 않은 작품들이 무분별하게 들어오기도 했다.

영화의 경우 우리가 만든 우리의 이야기들이 얼마나 큰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지 이미 증명했다. 거대 자본의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보다 더 공감을 얻고 흥행도 그들을 앞선 작품이 쏟아져 나왔다. 나는 창작뮤지컬도 그 지점을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복잡한 자본의 논리야 알 수 없지만 우리를 진정으로 공감시킬 수 있는 건 결국 우리다.

라이센스뮤지컬은 외화 유출이라는 비난에도 불구하고 보장된 흥행성 때문에 여전히 중요하다. 그러나 이제 유명세로 흥행몰이를 할 작품이 거의 고갈되었다. 더구나 일본 뮤지컬 판을 평정한 극단 <사계>가 호시탐탐 한국 진출을 시도하고 있다. 그들이 대자본과 탄탄한 조직을 앞세워 한국에 들어오면 기존 라이센스뮤지컬을 하던 단체는 큰 타격을 받을 것이다. 때문에 라이센스를 주로 수입하던 기존 제작단체들은 창작 개발에 눈을 돌리고 있다. 점점 높아져 가는 저작권료와 새 작품에 대한 갈증은 창작에 투자할 동기를 부여하고 있다.

그러기에는 너무 오랫동안 브로드웨이식 쇼뮤지컬에 익숙해져버렸다. 뮤지컬을 공부하는 학생들은 그들의 작업방식을 주입식으로 암기하듯이 공부한다. 할리우드 영화 공식을 공부하듯이 뮤지컬 공식을 강요한다. 창작은 자유로워야 한다. 다행히 〈노트르담 드 파리〉〈벽을 뚫는 남자〉등의 프랑스 뮤지컬이 브로드웨이와 다른 스타일의 뮤지컬에 대한 가능성을 보여준다.


너도 나도 이제는 창작뮤지컬을 할 때라고 말한다. 때론 그저 노래 몇 곡만 들어갔는데 뮤지컬이란 타이틀로 포장될 정도로 창작뮤지컬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었다. 창작뮤지컬이 제 궤도에 오르기 위해선 뭐가 가장 시급할까?  안정된 뮤지컬 시장을 위해선 장기공연이 가능한 콘텐츠의 확보다.

CJ엔터테인먼트의 ‘뮤지컬 쇼케이스’는 이제 뮤지컬에 입문한 창작자들을 선발해 워크숍을 거쳐 작품을 개발한다. 그리고 그 결과물 중에 네댓 작품을 추려낸다. 그 작품으로 공연관계자들을 초청해 쇼케이스를 한다. 그 자리에서 즉석 계약이 맺어지기도 한다. 뮤지컬박람회인 셈이다.

김종헌의 ‘showtic’은 현역 창작뮤지컬의 교두보가 될 조짐이다. 뮤지컬 쇼케이스가 입문자들의 등용문이라고 한다면, ‘showtic’은 현재 활동하는 창작자들이 새 작품을 개발한다. 아이디어를 성장시키도록 인큐베이터 역할을 하고 만들어진 작품은 제작자들에게 중개한다. 일종의 작품 개발과 동시에 문화복덕방임을 자처한다.

두 경우 모두 작가와 작곡가 또는 음악감독 중심의 작업이다. 콘텐츠개발이 곧 창작뮤지컬의 미래임을 간파한 시의적절한 행보다.


콘텐츠개발의 핵심은 작가와 작곡가다. 한두 편의 주목할 만한 작품을 가진 창작자들은 몇 나왔다. 그러나 아직은 누구나 인정할 실력자가 나타나지 않았다. 과도기의 수업과정이다. 몇몇 제작자들은 주요 크리에이티브들을, 특히 작곡자를 외국에서 섭외한다. 아직은 우리 창작자들의 실력을 신뢰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이년 전부터 젊은 인재들의 다양한 시도가 있었다. 소극장을 중심으로 한 창작뮤지컬이 봇물처럼 쏟아졌고 그 중에 몇은 당당히 흥행에 성공하였고 작품에 대한 인정도 받았다. 장유정과 성재준은 그런 대열의 선두주자다. 둘 다 작품을 쓰고 연출까지 한다. 작곡에는 원미솔, 장소영, 김혜성, 한정림 등이 등장하였다. 해외뮤지컬 번역에서 감탄할 만한 개사력을 보여준 이지혜도 작곡가 대열에 합류했다.


뮤지컬의 중심은 음악이다. 무엇보다 위대한 작곡가가 나와야 한다. 뮤지컬의 가장 큰 과제는 콘텐츠개발이고 그 핵심은 작곡가 양성이다.

그러나 아직은 음악의 완성도나 분량에 있어 일정 수준을 넘었다고 할 작품이 거의 없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나 〈명성황후〉정도일까. 뮤지컬이면서도 음악에 그 방점이 찍히지 않는 작품이 대부분이다. 대부분 로맨틱코미디에 가요풍의 노래를 찍어냈고, 음악과 노래가 중심이라기보다는 액세서리 성격이 강하다. 대부분의 로맨틱코미디는 드라마와 코믹한 연기 중심에 노래가 살짝 곁들여졌다는 인상이 짙다. 창작뮤지컬이 일정 수준 이상의 성과를 얻으려면 음악의 힘으로 관객을 끌어당기는 작품이 일 년에 서넛 이상은 레퍼토리화되어 공연중이여야 하지 않을까…….

더욱 아쉬운 점은 작곡가별로 차별화가 부족하다는 점이다. 작가의 개성이 문체에서 드러난다면 작곡가에게도 그에 해당하는 풍이 있을 것이다. 그저 공식화된 패턴으로 성격이나 감정을 표현하는 곡이 아니라, 작곡자의 향취가 물씬 풍겨나는 개성 있는 곡들이 아쉽다.

그런 면에 우리가 강점을 가진 장르가 있다. 우리 뮤지컬에서 호소력 있게 공감대가 형성되는 장르는 락인 것 같다. 대중에게 친근하고 오래도록 연구되어진 장르는 그룹사운드가 유행하던 시절부터의 락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인지 창작뮤지컬에서 작곡자의 개성이 간혹 느껴지는 경우 대부분이 락이다. 이동준의 〈락 햄릿〉이 그렇고 얼마 전 쇼케이스에서 공개되어 공연준비 중인 〈컨추리 보이스캣〉도 그렇다. 클래식 장르에서 유일한 완성도를 보인 작품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다.


마지막으로 우리 뮤지컬이 성장하는 과도기에서 진통을 겪는 큰 문제가 캐스팅이다.

한번 받은 감동은 지속적으로 극장에 발길 향하도록 이끈다. 관객들은 그 감동의 강도를 유지하고 싶어하는 것이다. 그래서 관극에 실패하지 않을 자기 나름의 노하우를 만들어 간다. 자기 취향의 장르를 찾거나 특정배우를 따라 움직인다.

들여올 만한 라이센스뮤지컬은 거의 다 구경한 우리 관객의 입장에서 이제 선택의 기준은 배우에게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올라가는 작품은 많고 연기와 노래를 겸비한 실력 있는 주연급 배우는 한정되어 있다. 그러다 보니 제작사끼리 과도한 경쟁을 하고 배우들은 때 아닌 호황(?)에 겹치기 출연을 마다하지 않는다. 여기 가도 그 배우 저기 가도 그 배우가 출연한다.

특히 더블캐스팅이 악용되고 있다. 배우가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기 위한 체력 안배적 공연 일정이 아니다. 제작자 입장에선 한 공연 한 배역에 두 스타를 씀으로써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한마디로 이 배우의 이런 재미 저 배우의 저런 재미를 다 보고 싶도록 만들겠단 것이다. 한번 본 공연을 다른 배우는 어떻게 할까 궁금하게 만든다. 또 유명배우의 바쁜 스케줄을 한 작품에 묶어두기 힘드니 빈 일정을 대체할 다른 배우가 필요하기도 하다.

더블 캐스팅된 배우는 자신이 출연하지 않은 날은 다른 일정을 잡는다. 심지어 교대로 오늘은 이 공연장 다음날은 저 공연장에서 출연하기도 한다. 몇몇 배우에 출연 섭외가 쇄도하고 그들은 이런저런 이유로 혹사당하고 있다. 지나친 소모전에 아까운 배우들이 너무 일찍 조로해버릴까 걱정이다.

또한 뮤지컬배우들의 전반적 연령대가 너무 낮다. 우리 뮤지컬의 초반기 배우들은 이제 중견이 되었다. 그들은 옛날식 번역극 투의 상투적 스타일을 벗어나려 애쓰지만 급속도로 바뀌는 관객들의 취향과 연기스타일을 따라가기 벅차다. 새 스타배우들은 아직 충분히 무르익지 않았고 배역이 원하는 나이보다 훨씬 어린데도 무리하게 캐스팅된다. 그러다 보니 한두 명의 재능 있는 주연에 학생 수준의 앙상블로 채워진 공연이 비일비재하다.

한 배우가 일정 수준까지 성장하기까지는 많은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뮤지컬배우들은 쏟아져 나오지만 정작 쓸 만한 배우는 턱없이 부족하다. 그래서 또 스타를 꿈꾸는 배우에게는 기회의 시간이기도 하다. 실력만 있다면 언제든지 기회를 잡을 수 있다. 이 문제는 시간이 해결해줄지도 모르겠다. 어린 배우들이 성장하고 그들 중에 앙상블 전문배우도 나오고 해서, 내공이 쌓인 앙상블들이 포진한 내실 있는 공연을 볼 날이 어서 오기를 기대한다.


이곳저곳에서 장기공연에 들어갈 강한 레퍼토리를 꿈꾸며 창작뮤지컬을 개발하고 있다. 세상은 믿는 대로 보인다던가? 인재와 작품이 쏟아져 나오기를 믿어보자.《문장 웹진/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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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소설, 한국 시

일본 소설, 한국 시 한성례 한국에서 일본소설의 베스트셀러 현상 한류바람이 뜨겁게 일본 열도를 달구기 시작한 2000년 이후부터 한국에서 일본소설은 폭발적인 인기를 구가해왔다. 일본보다 한국에서 더 인기가 많은 작가가 나올 정도로 한국은 일본소설 홍수 시대이다. 이 같은 현상에 대해 일본인들은 물론이고 일본소설가들조차도 왜 일본소설이 한국에서 그렇게나 많이 팔리는지 몹시 궁금해 한다. 이에 대한 일본 신문의 인터뷰나 원고의뢰가 있을 적마다 나는 현재 한국에서의 한국시에 비유해서 설명을 한다. 이전에도 한국에서 일본소설은 종종 많이 팔렸다. 70년대 중반에 첫 출간된 무라카미 류(村上龍)의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는 해적판이 끊임없이 이어졌고 출판금지서임에도 안 읽은 사람이 없을 만큼, 문학이나 예술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의 필독서이고 바이블이었다. 1999년 정식으로 저작권 계약을 맺어 커버에 비닐을 씌워 19세 미만 구독불가로서 출간된 후에도 쇄를 거듭하며 읽히는 소설이다. 또한 1989년 원제인 『노르웨이의 숲』이 『상실의 시대』란 이름으로 출간된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의 소설은 당시 크게 각광을 받았고 지금도 계속해서 읽힌다. 당시 한국은 민주화 쟁취와 맞물려 자의식이 집단에서 개인으로 향하던 시기였다. 민주주의가 아직 성숙하지 못한 상태여서 사회, 정치적으로 안정되지 못했고, 급변하는 사회적 환경 속에서 개인이 느끼는 소외감, 고독, 상실감 등이 당시 한국 젊은이들이 처한 현실과 겹쳐지면서 이 소설에 크게 공감했다. 더욱이 하루키의 가독성 높은 문장은 금방 젊은이들을 사로잡았다. 한편으로 문학의 구도자 같은 마루야마 겐지(丸山健二)의 소설도 여러 편 번역 소개되었는데, 이는 주로 문학 창작자들이 마니아였다. 하지만 일본소설의 인기는 단편적일 뿐 전반적인 경향은 아니었다. 오히려 서구소설이 중심을 이뤘다.그러던 것이 에쿠니 가오리, 요시모토 바나나, 쓰지 히토나리, 히라노 게이치로, 요시다 슈이치 등 젊은 작가와 미야베 미유키, 스즈키 코지, 히가시노 게이고 등의 미스터리 소설과 나오키 상을 비롯한 여러 문학상 수상작이 2000년 이후에 대거 한국에 번역 소개되었고, 대형서점에는 코너가 별도로 마련될 만큼 일본소설은 인기를 끌고 있다. 왜 일본 소설을 좋아하는 것일까 무엇보다도 일본소설은 재미있다. 독자를 의식하고 소설을 썼다는 게 금방 느껴진다. 말하자면 자신의 상품을 사줄 소비자의 위치에서 창작을 한다는 것이다. 젊은이들은 일본소설을 읽으면서 비현실적인 주인공을 통해 현실에서 실제로 행동에 옮기지 못하는 자신의 일탈을 꿈꾸고, 대리만족을 느낀다. 일본소설의 주인공 젊은이들은 특별한 목표도 없고, 무기력하며 수동적이고, 나약하기 짝이 없다. 그들은 시대의 흐름과 기존 질서에 따르지도 않고, 세상을 약간은 냉소적이고 관조적인 눈으로 바라보면서, 보편적인 부와 명예, 사회적인 안정 등과는 거리가 멀다. 이에 독특한 상상력과 가독성 높은 문장도 한 몫 한다. 최근 일본과 한국에서 밀리언셀러 판매 기록을 갱신하는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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