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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가 열렸던 시간들을 위해

  • 작성일 2023-01-01
  • 조회수 1,144

[비평연재]

2023년 비평연재는 두 명의 평론가가 3회씩 연재하며, ‘시대와 작품을 가로지르는 비평가의 눈’이라는 주제로 보다 확장된 문제의식을 펼쳐 보인다.





미래가 열렸던 시간들을 위해




양재훈




시작하기 전에


이 글은 현재의 한국 사회를 바라보며 느낀 개인적인 견해를 담고 있으며, 그중에는 논란이 될 만한 내용이 많다. 일부는 옳을 것이고 어떤 것은 심각하게 틀리기도 할 것이다. 논란과 오류의 가능성이 큰 견해를 내어놓는 것은 요즘 내가 ‘오류를 두려워하는 것은 그 자체로 오류’라는 헤겔의 금언에 점점 더 깊이 공감하고 있는 탓이다. 나는 어려서부터 들어 온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디모데후서 3장 14절)는 가르침에 지나치게 붙들려 있었고, 오류를 너무 두려워한 나머지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날들을 오래 지냈다. 스스로도 그런 줄을 알아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말을 오랫동안 품고 살았지만, 오류에 대한 두려움 탓에 무언가를 시도하고 지속하기가 어려웠다. 한 문장을 쓰고 또 한 문장을 이어 쓰는 일이 너무나도 힘겨웠는데, 그것이 내 생각을 정확히 담은 문장인지, 내 생각 자체는 정확한지, 그것이 읽힐 때 정확한 것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지, 과연 읽히기는 할 것인지, 모든 것이 정확하다고 해도 사회적 의미를 획득할 수 있을 것인지 등등 너무나도 많은 두려움이 모든 문장들의 진행을 붙잡았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마감시한을 넘겨서야 글을 시작하는 일이 비일비재했고, 결국 처음의 몇 문장에 들인 힘겨움에 비해 한없이 허술한 형태로 글을 발표하곤 했다. 매번 오류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존재 자체가 오류인 원고를 생산했다고 자평하는 일이 반복됐다.
이제 내가 틀려먹은 인간이라는 것을 인정한 상태에서 글을 써보려 한다. 잘 될지는 모르겠지만. 너무 많이 틀렸다면 누군가 그것을 반박하고 교정해 줄 것을 기대해 보려 한다. 그리고 그것들을 겸허히 받아들이고자 한다. 이 역시 잘 될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말하고 듣고 생각하는 과정에서 오류들은 점차 교정되고 옳은 의견은 점점 더 단단해질 것이라 믿는다. 내 아집이 그것을 막을지도 모르지만, 결국 나는 못 하더라도 ‘우리’는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지금보다 더 바보가 될지라도 우리는 현명할 것이라 믿는다.
이것은 하나의 올바르고 완결된 글을 써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말이기도 하다. 성기고 완성되지 않은 생각이라도 세상에 내어놓을 때 누군가는 부족한 것을 덧붙이고 누군가는 틀린 것을 수정할 것이며 누군가는 옳은 논리를 강화하고 넓혀 갈 것이다. 내가 아니라 ‘우리’가 완성해 가는 글쓰기에 참여해 보고 싶다. 누가 반응해 줄지는 모르겠지만. 이 글이 실리는 매체가 웹진이라서 더욱 그렇다.
이 글이 완성과 거리가 멀어지는 데는 연재라는 형식도 한몫한다. 나는 보통 서론에 해당하는 부분을 장황하게 쓴 뒤 고치는 편이다. 일부러 그러는 것이 아니라 더 정확히 쓰려다 보니 적당히 넘겨도 되는 말들을 구태여 덧붙이게 되기 때문이다. 실은 논란 가운데 서고 싶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읽어 줄 사람이 없을 것을 두려워하면서 누가 읽을까 봐 염려하는 꼴이다. 글쓰기를 힘들게 하는 가장 중대한 이유다. 웬만큼 글이 꼴을 갖추게 된 뒤 지나치게 길어져 있는 서두의 일부를 결론 부분으로 옮기고 본론에도 적당히 섞어 놓는 식으로 정리하곤 한다. 때로는 장황한 서두의 대부분을 버리고 다시 쓰기도 한다. 하나의 주제를 3개월 동안 연재하는 지면에서는 이런 식의 마무리가 어려울 것 같다. 지루한 글이 될 가능성이 높다. 죄송하다. 물론 정리를 잘하면 흥미로울 거라고는 말하지 않겠다. 글의 완성도도 충분히 갖추어지지 않을 것이다. 3개월간의 연재분을 미리 정리해 두고 시작할 만한 역량을 갖추어 두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동안 학위 논문에 치중하느라 최근 작품들을 읽고 쓰기를 게을리했기 때문에 비평 역량이 매우 떨어져 있다. 솔직히 말하면, 짧지 않은 기간 동안 내가 비평가로서는 이미 사망한 것과 다를 바 없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을 품고 있다가 청탁 연락을 받고는 앞뒤 생각 없이 덥석 물었다. 쓰다 보면, 또 쓰기 위해 읽다 보면 역량은 다시 회복될 터다.
서론도 되지 못한 말들을 길게 늘어놓았는데, 부러 줄이지 않았다. 변명에 불과한 이 말들에 담겨 있는 내용이 연재의 주제와 통하기 때문이다. 과감히 실패하고 실패한 행위 속에서 소중히 간직해야 할 것들을 식별해 내며 실패를 반복하자는 것. 우리는 지금 좌절할 만한 상황에 놓여 있고, 이러한 상황은 우리의 역사 속에서 여러 차례 반복되어 온 일이기도 하다. 여러 차례 반복되어 온 해방적 행위들과 실패들, 그러한 행위들의 의미를 축소하고 부정하던 강력한 ‘백래시’들과 그들이 권력을 회복하는 사태로의 회귀. 동학과 3·1운동과 4월 혁명과 6월 민주항쟁과 이번의 촛불혁명에 이르기까지 우리 사회는 그러한 일들을 여러 차례 겪어 왔다. 지금 우리는 또다시 반복된 역사에 절망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때그때마다 좌절된 행위들은 마냥 좌절된 것이 아니었다. 그것들은 어김없이 일상의 삶을 대하는 새로운 태도들을 생산해 냈으며, 그럼으로써 다음 시도들을 위한 자산을 남겼다.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이후의 전망과 행위의 가능성을 마련하는 씨앗들이 언제나 잉태되어 왔다. 그러니, 지금 우리도 그러할 것이다.


지나간 축제


몇 년 전 우리는 긴 축제를 경험했다. 물론 2016년 말의 광장에서 2017년 탄핵과 봄의 대선까지를 이르는 말이다. 그때 우리는 오랜만에 우리 자신이 이 나라의 주권자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몇 년에 한 번씩 돌아오는 선거일의 투표장에서만 존재하던 주권이 실로 우리에게 있음이 드러나는 소중하고도 드문 시간이었다. 그야말로 시적인 날들이었다. 언젠가 다른 지면에서도 말한 적 있는데, 시는 언어에 대한 폭력이라 할 수 있다. 일상 언어의 질서를 교란함으로써 그것은 자신의 존재 조건인 문법의 속박을 벗고 자유로워지고자 한다. 일상의 질서에 적응한 언어는 우리의 (무)의식을 자동화된 흐름 가운데 둠으로써 사유를 중단시키기 때문이다. 시는 일상 언어의 문법을 중지시킴으로써 언어를 통한 사유의 가능성을 개방한다. 요컨대 시는 일상의 문법에 내주었던 언어의 주권을 회복하려는 시도다. 그러므로 일상의 삶에서 (무)의식적으로 따르는 권력에 저항할 때, 우리는 우리의 행위를 통해 시를 쓰는 것이다.
시는 언어를 파괴하는 동시에 창조한다. 파괴는 맹목적으로 행해지지 않는다. 시가 언어를 파괴할 때, 그것은 우리의 사유와 언어 사용의 자유를 보장하는 순정한 언어를 회복하고자 한다. 물론 그런 언어가 애초부터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언제나 이미 순정하지 않은 ‘타락한’ 문법 아래 있으며, 이는 언어 자체의 한계에 해당한다. 그러나 이 한계에 기대어 일상의 문법에 오염되지 않은 순정한 언어라는 이념형을 사고하는 것은 가능하다. 그것은 매우 짧은 순간에만 실현되며, 그 순간이 지나면 진리와 의미로 충만한 고유의 의미를 잃어버리게 된다. 때문에 시는 시간의 흐름에 저항하며 순간을 보존하려 한다. 시가 시간의 흐름을 정지시키는 순간의 언어 예술이라는 고전적인 규정이 가리키는 바가 그것이다. 시적 발화는 일순간 진리의 언어가 될 수 있다. 시는 그 진리성을 흐트러뜨리는 시간에 저항한다.
시의 진리가 시간을 견디지 못하는 것은 그것이 시적 발화가 행해지는 맥락에 의해서만 규정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진리는 발화된 내용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발화 행위가 이루어지는 위치에 의해 생산된다. 이 말은 두 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 첫째, 진리는 실체가 아니라 주체다. 어떤 말이 지니는 진리 효과를 결정하는 것 중 하나는 그것을 말하는 주체가 어떤 위치에서 말하는가다. 둘째, 진리는 애초에 존재하는 내용이 아니라 맥락 속에서 생산되는 효과다. 시적 발화는 일순간 진리의 언어가 될 수 있지만, 그 내용이 맥락을 떠나 반복될 때는 이미 진리성을 잃어버리게 된다. 시가 어느 순간에 도달할 수 있는 진리성은 고유의 내용을 갖지 않는다.
시가 언어를 무분별하게 파괴하지 않는 것처럼, 일상의 권력을 해체하려는 정치적 행위도 맹목적이지 않다. 그것은 분명한 목적을 갖는다. 그러나 동시에 그것이 발하는 표면적 요구에 제한되지도 않는다. 시가 진리에 도달할 때 진리가 발화의 내용에 있지 않고 그것이 발화되는 맥락에 의해 규정되듯, 일상의 권력을 해체하려는 정치적 행위의 진리도 그것이 목적하는 바에 있지 않다. 요컨대 정치적 행위는 목적(aim)에 의해 해소될 수 없는 목표(goal)를 내장한다.
2016년의 광장에서 우리는 소위 ‘국정농단’의 책임을 물으며 광장에 나섰지만, 그때 우리가 원한 것은 이른바 국정농단의 중단과 그 이전으로의 복귀가 아니었다. 그때의 광장에서 우리는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이른바 ‘정상화’를 목표하지 않았다. 광장의 목소리는 분명 더 많은 것을 원했다. 광장에서 쏟아지던 요구들은 정치 영역에 국한되지 않고 우리의 일상 전체를 대상으로 했다. 그때껏 들리지 않던 목소리들이 터져 나왔고, 더 이상 들리지 않을 것 같던 요구들이 부활해 있었다. 그곳에서 울리던 목소리들은 여성의 것이었고 성소수자들의 것이었고 미성년의 것이었으며, 노동자 실업자 비정규직자들의 것이었다. 2016년 광장의 해방성은 그때의 집회가 당면하고 있던 ‘정치적 대의’를 실현하기 위해 소수자의 현실 인식과 그들의 요구를 억제하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재벌개혁과 경제적 변화의 요구가 불가능하거나 불필요한 것으로 가로막히고 조소되지 않았다는 것에서 나왔다. 그곳에서 우리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반의 변화에 대한 요구를 내놓았다. 행사를 주관하는 사람들은 있으되 모인 사람들 사이에 위계는 없는 공간에서 차별과 혐오, 억압과 착취에 반대하는 누구의 어떤 목소리라도 낼 수 있었고, 그것을 듣고 공감하는 것이 너무도 당연하게 여겨졌다.
그때의 광장에서 우리가 본 것은 그동안 숨죽이고 있던 모든 목소리들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는 장면이었다. 그곳은 노동과 여성, 미성년, 성소수자 등 한국 사회의 기저를 이루는 문화에서 배제되었던 존재들이 스스로를 현시할 수 있는 무대였다. 그 시간에 우리가 경험한 것은 비가역적인 역사적 변화의 감각이었다. 오직 자본의 자유만 의미하던 ‘자유’민주주의의 시간 속에서 고통 받던 사회 구성원 각각의 자유, 민주주의 국가에 걸맞은 국민주권의 온당한 실현 등은 확실해 보였다. 그리고 그것은 곧장 근대적 인권 담론이 간과하고 배제했던 수많은 사람들의 존재 방식이 현시되고 긍정될 토대가 될 것처럼 보였다.


촛불이 꺼지고


그로부터 불과 몇 년이 지난 지금, 저 독특하고도 소중한 축제의 에너지는 상당 부분 소멸한 것처럼 보인다. 그것은 초유의 탄핵과 선거를 통해 ‘개혁 정권’을 창출했지만, 그와 동시에 사그라져 버렸다. 어쩌면 이것은 대의 민주주의 자체의 한계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후 몇몇 그룹과 담론들이 그때의 해방적 에너지를 매우 축소한 채 나눠 가져 버린 듯하다. 이른바 ‘문빠’로 불리는 맹목적인 팬덤 정치와 ‘공정’의 요구가 그것들이다. 양쪽 모두 너무 깊은 뿌리 때문에 제도적 민주화 이후로도 제거되지 않고 우리의 일상 전반을 지배하고 있던 부조리를 타파하고자 하는 요구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 사회에 대한 긍정적 변화의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맥락을 떠난 시적 발화가 진리성을 잃어버리듯, 팬덤과 공정 역시 이내 사회 변화에 대한 요구에 명확한 한계를 지우는 기능을 수행했다.
팬덤 정치는 촛불로 일궈낸 정권을 무한 긍정하는 태도에서 나왔을 것이다. 그것은 촛불의 성과에 대한 자부심과 매우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촛불 정부’는 자신의 정치적 선택이 좌절되는 경험을 계속해야 했던 사람들이 아주 오랜만에, 혹은 처음으로 맛본 승리의 결과였다. 문제는 촛불로 수립된 정권에 대한 긍정이 그에 대한 과잉 동일시로 귀결되었다는 점이다. 나는 이 팬덤에 정서적으로는 어느 정도 공감할 수 있었으나 논리적으로는 동의하기 어려웠는데, ‘촛불 정부’가 촛불을 대표할 수 없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들은 가장 늦게 광장에 나왔고 광장의 요구들을 논란을 피할 수 있는 수준에서만 대변했다. 정권을 창출하기 위한 현실적 선택이었다는 점에서 마냥 나쁘게만 볼 행태는 아니었으나 그런 점에서 한계 역시 명확했다. 문제는 그러한 태도가 정권 내내 이어졌다는 데 있다. 그들은 결코 모험을 하지 않았고, 안전한 자리에만 머물렀다. 따지고 보면 이들이 승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단지 ‘범진보’ 정치 세력 중 가장 큰 세력이었기 때문이 아닌가? 그러나 팬덤 정치는 이들을 촛불과 동일시했다. 촛불혁명을 과소대표 하는 정치세력에 대한 과잉 동일시는 정권의 안착을 목표로 광장에서 개시된 해방적 가능성을 ‘현실적’인 정치권력에 의한 재현 가능성의 범위 안으로 축소하려 했다. 선거 국면에 즈음하여 시작된 팬덤 정치는 이미 시작부터 ‘과반’의 득표를 위해 다른 후보에게 투표하는 행위를 적대시했고, 이는 이후 대통령과 여당에 대한 비판을 봉쇄하려는 태도로 이어졌다.
현재 한국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공정’ 담론은 더욱 심각하다. 한국 사회가 회복해야 할 것이 ‘평등’이 아니라 공정으로 표상되었다는 점은 무한경쟁체제에 대한 긍정을 전제한다는 점에서 문제적이다. 말하자면 그것은 목표지점의 성적으로 모든 것을 평가하며, 서로 다른 출발선에서 시작하고 서로 다른 장애물을 통과해야 한다는 점을 무시한다. 때문에 공정 담론은 여성 및 성소수자 혐오 등의 정서와 쉽게 결합한다. 광장의 시간 이후 죽어버린 것처럼 보였던 수구 정치세력이 공정 담론을 통해 부활할 수 있었던 이유다.
결국 광장에서 생산된 정치적 에너지는 현실정치의 수준에서 심각하게 축소되었다. 우스꽝스러운 수구의 이데올로기가 망령에 불과하다고 느꼈던 것은 거대한 착각이었다. 한국 사회는 오히려 아직도 그들의 권위주의적 사고와 그 실질적 영향력이 끈질기게 살아 있는 곳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새삼스럽게 생각이 닿는 지점은 이른바 ‘분단체제’가 한국 사회를 얼마나 강력하게 규정하고 있는가다. 그것은 거대 양당 체제의 존속을 떠받치며 새로운 정치세력의 등장과 성장을 심각하게 제한하고 있다.
지난해 치른 대선에서 가장 이상했던 점은 자유주의 정권에 대한 실망이 수구 정권의 회복을 위한 표가 되었다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그동안 계속해서 반복되어 온 일이지만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왜 더 개혁적인 정치세력의 등장과 성장을 기대하고 지지하지 않는 것일까? 나는 이것이 내부의 적대를 제압하고 학살하며 수구세력의 정권이 다져졌던 역사의 경험을 통해 우리에게 학습되어 온 일종의 생존 기술에 해당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갖고 있다. 다른 것을 인정하지 않고 적대시하며, 그것을 ‘빨갱이’로 몰아 죽일 수 있었던 정권 아래 형성되어 아직도 버려지지 않은 심리적 습관 같은 것이 아닐까? 결코 지는 편에 서서는 안 된다는 강박, 정치적 소수자의 입장에 서는 것은 생존을 위협당하는 것과 같다는 일종의 정치적 (무)의식이 작용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분단체제에 기인하는 이상한 심리기제는 권력에 의한 대중 동원을 너무나도 용이하게 했고, ‘범진보’라 불리는 그룹에서조차 좀 더 급진적인 정치세력의 성장을 억제하는 방향으로 그들의 행동을 조직/구조화했다. 이것이 실상 매우 오른쪽에 치우쳐져 있는 한국의 정치 상황에서 전혀 왼쪽에 있지 않은 두 거대 정당들이 마치 양극 분열된 것처럼 보이는 이상한 현상의 한 이유가 되지는 않았을까? 이처럼 왜곡된 심상구조 역시 2016년의 촛불혁명을 통해 열렸던 전망을 닫아버린 요인 중 하나가 아닐까? 당시 우리가 목도했던 해방의 가능성, 우리 사회가 전면적 해방을 향해 나아가는 역사의 흐름 위에 서 있으며, 그러한 역사의 진행은 비가역적일 것이라는 전망은 이제 불투명해 보인다.


지겨운 물음을 다시 한 번


2016년 이후 활짝 열렸던 미래는 빈틈없이 닫혀버린 것처럼 보인다. 보이지 않는 사회적 전망 앞에서 좌절하든 새로운 답을 찾아 나서든 간에 우리가 피할 수 없는 질문은 이것이다. 어떻게 이미 열렸던 전망을 다시 열어젖힐 수 있을까? 생각하면 막막한 일이지만 또 생각하면 새롭지도 않은 일이다. 바로 2016년의 광장 이전에 우리가 처한 상황 자체가 그랬기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언제나 그래 왔던 일이다. 우리는 이미 3・1운동과 4월 혁명과 6・10 민주항쟁 등을 겪었고, 그것들이 어떻게 현실정치의 맥락 속에서 왜곡되고 좌절되는지 경험해 왔다. 현실정치는 저 사건들 속에서 개방된 전망들을 단 한 번도 제대로 재현해 내지 못했다. 그러나 그것들이 현실정치를 통해 재현되지 못했다고 해서 그대로 사라진 것은 아니다. 재현되지 못한 전망들은 문학을 비롯한 우리의 문화 속에 남아 새로운 문화적 자산들이 창조되는 데 가장 중요한 기반이 되어 왔다.
이는 문화 자체가 우리 스스로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의 일상에 개입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 해방적 전망을 개방했던 일련의 사건들은 현실정치의 맥락 속에서 좌절되는 운명을 피하지 못했다. 그러나 거기에서 개시된 전망은 문화 속에 남아 지속됨으로써 우리의 삶 자체를 바꾸어내는 일을 서서히 진행해 왔다. 이 말이 진실이라면, 우리는 2016년의 광장에서 열린 해방적 가능성들 역시 현실정치의 맥락 속에서 좌절한 지금의 상황에서도 우리의 일상을 변화시키는 일을 조용히 진행시키고 있으리라는 낙관적 전망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연재를 통해 이를 점검해 보고자 한다.
가장 먼저 살펴볼 대상은 해방 직후 임화가 내세운 민족문학론을 구성하는 논리의 일부다. 현실정치와 별개로 문화를 통해 반복됨으로써 삶 자체를 바꾸는 사건과 전망이라는 아이디어 자체가 거기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에서는 바로 그 아이디어의 출처를 언급하는 정도로 그치겠다.
해방 직후 문학가동맹의 실질적 지도자이자 가장 중요한 이론가였던 임화는 문화와 정치의 관계에 대해 정치의 우위성과 문화의 독자성을 함께 주장하는 다소 모순되는 주장을 내어놓은 바 있다. 잘 알려져 있듯 문학가동맹은 박헌영을 중심으로 한 남로당 계열 정치세력과 연결된 조직이었고, 그들의 활동은 주로 남로당 계열이 주도한 통일전선운동의 문화적 판본에 해당하는 ‘문화통일전선운동’을 위한 것이었다. 그런 점에서 이들의 활동은 정치적 목적에 붙들려 있었다. 임화 역시 마찬가지였다. 임화는 정치의 우위성이라는 명제를 벗어날 수 없었고, 실제로 정치적 목적에 문화적 활동을 종속시키는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 그럼에도 임화가 문화의 독자성을 주장할 때, 그것은 그 자신의 활동으로 환원되지 않는 무언가를 생산해 내고 있다.
임화는 남로당 계열 정치세력이 내세운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의 원리와 방향에 공감하고 있었으며, 그의 문화/문학론 역시 그러한 정치 혁명에 대응하는 것으로서 주장되고 있다. 그러나 그는 문화/문학의 독자성을 주장하며 문화적 실천이 정치와 별개로 이루어지는 것임을 분명히 한다. 그는 문화운동은 “정치운동의 직접의 일환으로 의무를 지는 것”이 아니라 “문화의 기능과 그 기능에 적응한 형태로 독자의 임무수행에 종사”1) 함으로써 전체 문제해결에 기여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는 그가 정치적 실천과 문화적 실천이 적용되는 영역을 구분해 사고했다는 점을 전제로 해석되어야 한다.
임화는 정치와 문화 모두가 현실에 개입하여 현실의 변화를 이끄는 것이라 여기면서도 양자가 현실의 서로 다른 영역에 개입하는 것이라 여겼다. 당겨 말하면 임화에게 문화운동의 중요성은 정치운동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인 ‘무의식상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라는 점에 있었다. 임화는 당대 문화운동의 실천 과제로 당대 조선문화가 지니고 있는 세 가지 문제인 일제 지배의 잔재, 봉건문화의 잔재, 퇴폐기 시민문화의 영향 등의 청산을 든다. 임화에 따르면 이것들은 “정치적・민족적 색채가 분명하여 판별이 용이하리라고”2) 여겨지기 쉬운 외관에도 불구하고 정치운동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다. 그러한 영향의 잔재들은 “무의식적인 세계에 남아 있”3) 기 때문이다. 임화에 따르면 제국주의 문화 지배의 영향 아래 형성된 그러한 문화 잔재들은 “언어, 사고, 신앙, 풍속, 취미 등의 광범한 영역에 보이지 않게 숨어”4) 있으며, “제국주의적 문화지배의 산물이라 여겨지지 않는 영역에까지 미쳐 있”5) 는 것이었다. 해방 직후 임화가 문학가동맹의 민족문학론을 통해 실현하고자 했던 문화운동의 이념은 바로 그러한 무의식의 혁명이었다.
임화는 해방 직후 갑자기 모든 것이 가능해져 버린 듯한 상황에서 정치와 문화의 전망을 동시에 사고했다. 그러면서도 그가 그것들을 별개의 영역에 연결해 두고 있다는 점은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그는 “정치상의 해방이 실현된 뒤라도 문화적 해방투쟁은 장구한 동안 계속된다”6) 고 말하는데, 이는 문화의 해방이 정치상의 변혁에 비해 매우 긴 호흡을 지닌다는 뜻을 담고 있다. 임화는 정치의 해방이 있은 후 문화의 해방이 오랜 동안 뒤따라 일어난다고 말하고 있지만 그 순서를 바꿔 읽는다면 어떨까? 긴 호흡을 통해 문화가 어떤 전망 아래 가능한 행위의 형식들을 실험하고, 그것들이 누적되어 우리의 일상을 조금씩 바꾸는 일에 참여하게 된다면, 이는 더욱 진전되고 근본적인 형태로 정치적 해방이 일어날 수 있는 조건을 형성하는 데도 참여하게 될 것이다. 세상은 한 차례 타올랐던 촛불로 변할 만큼 말랑말랑하지 않았지만, 그 촛불은 우리의 문화와 일상을 대하는 태도에 흔적을 남겨 두고 있다.


1) 임화, 「현하의 정세와 문화운동의 당면임무」, 『임화문학전집 5』, 소명출판, 2009, 361쪽.
2) 같은 글, 363쪽.
3) 같은 글, 363쪽.
4) 같은 글, 363쪽.
5) 같은 글, 363쪽.
6) 같은 글, 356쪽.















작가소개 / 양재훈

2014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평론 당선, 대표평론 「새해가 오게 하려면」, 「반박귀진의 하수들과 철없는 바틀비들」 등.


《문장웹진 2023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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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 이후를 살아간다는 것

혁명 이후를 살아간다는 것 ―386세대와 패배하지 못한 혁명들의 시차 임세화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퇴근 후에 넥타이를 존나 풀고 찾아와 옛 추억에 잠겨 노래 한 곡 워어어어 케케묵은 노래들을 불러대며 울어대네 아름다운 젊음이여 흘러간 내 청춘이여 너희들이 정녕 민주화를 아느냐 이 손으로 일군 민주주의 대한민국 요즘 어린 것들은 몰라도 한참 몰라 서러움 모두 버리고 나 이제 가노라 투쟁도 혁명도 이제는 모두 봄날의 꿈 그리웠던 혁명동지 돈을 꾸러 찾아왔네 골프채로 쫓아내니 마음속이 허전해 내일은 미스 김의 보지 냄새 맡아야지 밤섬해적단, 〈386 Sucks〉, 《서울불바다》, 2010. 1. 중단된 혁명 이제는 진부한 제재처럼 감각되는 ‘후일담’의 환멸과 자조 이후 한국 문학에서의 386세대 재현은 익숙하지만 낯선 ‘진정성’의 풍광들을 펼쳐 보인다. 이른바 ‘포스트-진정성 체제’1)에서의 속물들의 세계상은 기실 그 문제적 주체로 호명되었던 386세대뿐만 아니라, 386세대에 의해 다시 지목당한 ‘20대 개새끼론’의 대상이었던 ‘88만원 세대’에게도 벗어내기 힘든 혐의였다. IMF 이후 가속화된 신자유주의의 흐름 속에서 20대 빈곤의 원인이 세대 간 착취에 있다는 통찰 가운데 던져진 “토플책을 덮고 바리게이트를 치고 짱돌을 들어라”2)라는 조언을 (귓등으로) ‘학습’했던 새 세대의 시대정신은 무엇이었고, 어디로 향하였는가. 타 세대에 의한 명명 대신 “나는 씨발 존나 멋진 이십대 청춘”3)이라며 타락한 386의 ‘흘러간 청춘’을 조소하던 20대는 어느덧 MZ세대의 선봉으로 싸잡아 묶여진 채 40대의 문턱을 넘고 있다. ‘민주화’라는 ‘명분’ 위에서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모두 쟁취한 것처럼 조롱되는 386세대에 대한 냉소는 오늘날 “운동권 특권 정치를 청산하라는 강력한 시대정신”4)을 따르겠다는 한동훈 전 국민의 힘 비대위원장의 취임사로 구현되며 동세대 정치인들의 반발과 분노를 유발하기도 했다.5) 그러나 기억을 더듬어 본다면 386세대가 이룩한 ‘민주화/민주주의’라는 개념이 오염되고 폄훼의 대상이 된 것은 이미 오래전 일이다. ‘민주화 시키다’라는 표현은 386세대에 대한 비판이 본격화되었던 2010년을 전후한 시기부터 ‘강제로 억압하다’는 조소의 뜻을 지닌 채 활용되었다. 입으로는 ‘케케묵은’ 투쟁의 추억을 타령하며 실제 삶에서는 동지를 배신하고 돈과 섹스의 욕망을 좇는 운동권 세대를 저격한 〈386 Sucks〉의 면면은 새로울 것도 없는 386의 전형(stereotype)을 노래한다. 그런데 이 오래된 냉소의 역학 속에서 눈

  • 관리자
  • 2024-07-01
오염, 오류, 오독

오염, 오류, 오독 - 소설이 수행하는 ‘다시’ 황유지 마들렌을 먹으며 과자 부스러기와 차 한 모금이 어우러진 달콤한 환기 속에서 잃어버린 과거를 되찾는 일은 마르셀에게 행복을 준다. 그러나 발벡의 호텔방에서 신발을 벗으려다 문득, 할머니가 신을 벗겨 주었던 일을 떠올리는 것은 그에게 행복감을 주지 않는다. 죽은 할머니를 떠올리는 일, 그것은 “고통스러운 소멸”을 확인시킬 뿐이다.1)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등장하는 이 일화는 과거를 부르는 일이 각기 다른 정서를 환기함에 대한 예시로 내밀어지며 ‘기억’에 착종되는 다양한 감정이 주체를 어떻게 흔들 수 있는지 넌지시 묻는다. 소멸의 확인도 그렇지만 미완, 불완전, 불만족인 채로 내버려둔 사건에 대한 기억의 소환 역시 난감하기는 매한가지인데, 그건 엄연히 그 일을 ‘다시’ 경험하는 것이라 모종의 감정적 자원을 요청하기 때문이다. 대중문화에서 이런 ‘다시’는 레트로로 나타난다. Retrospect, ‘추억’에 뿌리를 둔 이 말은 패션, 음악, 영상부터 먹거리, 금융상품에 이르기까지 그 반경을 확대하며 과거로 우리의 기억을 끌고 간다. 과거의 소환은 이 사회에 대한 일종의 환각제이자 자본주의라는 무한한 기계적 힘에 대한 제동, 그 중단의 본능적 발현이다. 이런 레트로는 과거에 대한 향수, 노스탤지어의 맥락으로 파악할 수 있는데, 고대인들에게 노스탤지어란 ‘되돌아가는 일(nostos)’을 하지 못하는 데서 생기는 ‘아픔(algos)’으로 이해된다. 그러니까 레트로는 돌아갈 수 없는(가본 적도 없는) 시절을 향한 자본주의적 환각제이다. 프루스트의 위대한 주제가 사물들을 처음 경험할 때의 무능력이라 파악하는 프레드릭 제임슨은 진정한 경험이 우리가 의식적으로 다른 것을 의도하는 동안, ‘눈가’를 통해 온다면서 그 가능성을 글쓰기에서 찾는다. 기어이 돈을 주고라도 사겠다는 환각성 추억과는 달리 기억을 통한 글쓰기는 상실한 것을 복원하려는 고도의 정신 작업이랄 수 있다. At the corner of eye, 거기가 바로 진정한 경험이 되돌아오는 자리로 가장 의도적인 두 번째 경험, 글쓰기는 그 형식이 된다. 2) 글쓰기는 행해짐과 동시에 복수의 행위자를 탄생시킨다. 쓰는 자와 읽는 자,3) 이는 시차(時差)와 함께 탄생하며 텍스트가 현실과 맞닿은(혹은 결별한) 그 부위에 필연적으로 틈을 만든다. 대체로 모든 문제는 이 ‘틈’에서 태어나는 것처럼도 보인다. 틈은 이미 분리, 분절된 것으로 존재하면서 거기에 무엇을 메우든 결코 원본의 형태를 완벽히 구현할 수 없다. 원본처럼 복원한 것조차 복사본일 따름이라 틈은 그 자체 오류가 되는 것이다(가령 원본이 틀린 것이라 할 때도 제대로 수정된 본은 오류가 된다. 틀린 원본에 대해 기어이 맞추어진 진실

  • 관리자
  • 2024-07-01
어른들의 벤다이어그램

어른들의 벤다이어그램 이소 1. 스무 살을 훌쩍 넘어 성인이 되어도 자신을 어른으로 여기지 못하는 사람들은 얼마든지 있다. 내가 그런 사람이었다. 뉴스를 보면 언제나 피해자의 억울함에 몰입하고, 많은 경우 나를 포함하지 않은 채 ‘어른들’에게 분노를 터트리는 사람. 2014년 4월 16일, 이 날 나는 처음으로 어른의 자리에서 사건을 경험했다. 아이의 자리가 아닌 해운회사의 직원이나 공무원이나 인솔 교사의 자리에 서 있었다. 항해사나 해경보다 교사인 나를 떠올리기가 더 쉬웠다. 누구나 교사라는 직업에 대해서는 동원할 수 있는 충분한 양의 기억이 있으니까. 나는 전문가를 깊이 신뢰하는 사람이었으므로, 내가 그 배에 탔다면 안내 방송을 충실히 따르며 어른들과 시스템을 믿으라고 아이들을 다독였으리라는 걸 알았다. 누가 보아도 나는 완벽히 어른이었다. 굳이 괴로웠다는 말을 덧붙일 필요도 없이 그때는 모두가 괴로웠다. 공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고, 다음해 문학을 전공하러 대학원에 들어갔다. 누군가 공부라는 게 어떤 실천이 될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 아무런 답변도 떠올릴 수 없다. 나부터가 그런 희망 같은 건 없었다. 그저 전처럼 살 수 없을 뿐이었다. 나는 어른이었고, 내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수습될 수 있는 사고가 아니라 소화할 수 없는 사건이었으며, 내게는 더 정확한 언어가 필요했다. 딱 거기까지 생각할 수 있었다. 2. 지금도 교사인 나를 상상해 본다. 항해사나 해경에 대해 잘 알지 못해서가 아니라, 교사라는 직업과 위치가 내게 어른이란 무엇인지 사고실험을 하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다른 직업과 달리 미성년인 학생들을 상대하는 교사는 흔히 이중적인 이미지로 재현된다. 전교조와 교총을 교대로 인터뷰하는 기사의 관례처럼, 전통을 수호하는 보수적인 교사와 변화를 추동하는 진보적인 교사가 대립하는 양상으로 그려지는 건 흔한 일이다. 제도가 부여한 의무와 규범을 학생들에게 어디까지 얼마만큼 요구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한 명의 교사를 그리는 경우도 드물지 않지만, 이 경우에도 그의 심리적 갈등은 그의 교육방식에 딴지를 걸 더 완고한 교사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라는 점을 떠올려 보면 전자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할 수 있다. 결코 전위적인 존재에 도달할 순 없지만, 마땅히 후위의 역할은 초과해야 하는 사람. 그러나 생각해 보면 교사만 그럴 리는 없다. 모든 직업은 사회가 요구하는 허용범위 안에서 가까스로 변주를 시도하고, 모든 부모는 자녀를 양육하며 유사한 딜레마에 빠진다. 교사는 자신의 의무를 익히 아는 어른의 상징이고, 불행인지 다행인지 나는 점점 학생보다 교사에게 더 쉽게 이입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니 문제는 오래되고 흔한 방식의 재현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재현이 더는 설득력을 갖지 못하는 데 있을 것이다. 어차피 시대가 변한 줄 모르는 늙은 교사들은 두려운 존재가 될 수 없다. 보수적인 교사와 진보적인 교사의 대립은 기성세대와 새로운 세대가 갈등을 통해 사회를 혁신하는 재생산 메커니즘

  • 관리자
  • 2024-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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