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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문화와 음식시의 상호 연관성 연구

  • 작성일 2022-12-01
  • 조회수 1,246

[비평/2022년 문학비평활동지원사업 선정작]



전통 문화와 음식시의 상호 연관성 연구

- 송수권의 음식시를 중심으로



김수형




1. 들어가며


이 연구는 음식시의 구현 양상을 살펴보고 전통 문화에 깃든 사회학적 위의와 그 의의를 궁구하고자 한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전통 음식의 발효 미학과 가치를 송수권의 음식시를 통해 살펴보고, 그 상호연관성을 연구함으로써 자연과 인간이 조화롭게 상생하는 원리가 한국의 전통적인 음식 문화에 투영되어 있음을 규명하는 데 연구의 목적이 있다. 송수권의 음식시1)에 투영된 함의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고속 성장이 몰고 온 현대 문명의 문제점을 확인하고, 전통적인 음식 문화의 가치와 정체성을 조명하게 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송수권이 지향한 시 세계가 무엇인지를 조명하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백석의 음식시를 계승한 것으로 알려진 송수권의 음식시에 대한 연구는 미미한 실정이다. 그동안 송수권의 시세계에 대한 기존의 논고가 일정한 성과를 보여주었지만, 그가 여러 지면을 통해 강조했던 음식시와 관련된 연구는 거의 다루어지지 않았다.2) 그러므로 이 연구는 그동안 논의되지 않았던 송수권의 음식시에 나타난 이미지의 구현 양상을 면밀하게 분석하고, 그가 전통 음식 문화를 통해서 전달하고자 하였던 바를 고찰하고자 한다.
한국 현대 시인 중에서 송수권만큼 음식의 이미지에 천착한 시인은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의 음식시는 첫 시집에서부터 눈에 띄지만, 제 9시집 『수저통에 비치는 저녁노을』(1998년)에서부터 음식 이미지는 본격적으로 주요한 시의 소재가 된다. 이 시집에는 「수저통에 비치는 저녁노을」, 「황포묵」, 「남도의 밤 식탁」, 「곰소항」, 「깡통 식혜를 들며」, 「그늘」, 「황태나 굴비 사려」 등과 같이 음식과 관련된 시가 다수 실려 있다. 송수권은 이 시기를 전후하여 음식 에세이집 『남도의 맛과 멋』(1996), 『풍류 맛 기행』(2003)을 통해 남도의 음식 문화와 팔도 음식을 총체적으로 다루었다. 그 후 남도 음식에 관한 시 80여 편을 따로 모아서 본격적인 음식시집 『남도의 밤 식탁』(2012년)을 발간했다. 또한, 송수권은 그 연장선상에서 『퉁』(2013년)을 발간하였고 「남도의 맛과 멋-남도의 밤 식탁」을 계간 《오늘의 가사문학》에 1년간 연재할 만큼 남도의 전통적인 음식 문화에 천착했다.
따라서 본고의 연구 대상은 음식에 관한 소재적 관심이 촉발된 제9시집 『수저통에 비치는 저녁노을』(1998년)부터 작고하기까지의 후기 시로 하되, 음식시가 중심제재가 된 『남도의 밤 식탁』(2012년)과 『퉁』(2013년)을 주요한 분석 대상으로 할 것이다. 본격적인 논의에 앞서 여기에서 다룰 ‘음식시’는 음식이 단순한 소재를 넘어 주제에 관련된 작품 즉, 음식 이미지가 시의 핵심으로 초점화된 작품임을 밝혀둔다.
한국 현대시사에서 음식시의 대부는 백석이라고 할 수 있다. 백석은 다양한 음식 소재를 통해 서북 정서, 나아가 우리 민족의 기질이나 성품을 형상화하였다. 이런 성향은 송수권의 음식시에서도 확인할 수 있으며 송수권은 자신의 시가 백석의 영향을 받았음을 고백3) 한 바 있다.
그러므로 송수권의 음식시를 논의하기에 앞서 한국 음식시의 흐름과 함께 송수권 이전에 음식시의 새 지평을 열었다고 평가받는 백석의 음식시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한국 음식시의 연원과 전개 과정에 대한 이해가 전제될 때, 송수권의 음식시에 나타난 특질과 한국의 현대시사에서 송수권의 음식시가 차지하는 위상을 가늠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백석과의 직접적 비교를 통해서 두 시인의 음식시가 어떤 공통점과 변별점이 있는지를 살펴보는 일도 의미 있는 논의가 될 것이다.


1) ‘음식시’라는 명칭은 학계에서 이론으로 정립된 것은 아니나 선행연구에서 통용되고 있는 용어다.
2) 아직까지 송수권의 음식시에 대해 분석한 소논문이나 학위논문은 없으며, 최근에 다음의 박사학위 논문에서 다루었을 뿐이다. (김수형, 〈송수권 시 연구-문학적 지향성과 구현 양상을 중심으로〉, 목포대학교 박사학위 논문, 2021.)
3) 《오늘의 가사문학》 2014년 겨울호~2015년 겨울호까지 발표한 〈남도의 맛과 멋〉 연재 산문(자전적 시론과 대담), 시집 『남도의 밤 식탁』에 실린 자전적 시론, 시집 『퉁』에 실린 시인의 산문, 배한봉과의 대담(「거침없는 가락의 힘, 그 곡즉전(曲卽全)의 삶」), 최한선과의 대담(「맛과 멋의 시인, 풍류 시인 송수권을 찾아서」) 등 많은 자료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2. 한국 음식시의 흐름과 백석, 송수권의 음식시


한국 근대시사에서 음식이 최초로 출현하는 시는 《대한학회월보》(大韓學會月報) 제1호(1908년 2월 간행)에 발표한 최남선의 〈모르네 나는〉이라는 작품으로 보고 있다.4) 그러나 최남선의 시에서 음식은 자유를 말하기 위해 거론한 소품의 지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김소월의 「옷과 밥과 자유」5)는 ‘자유’를 말하기 위한 핵심 제재로 부각되지만, 그의 시에서 술이나 담배를 제외한다면 의미 있는 음식시를 찾아보기 힘들다. 이상화의 음식시에서 ‘엿’6) 은 중심 제재였지만 이는 ‘엿’ 이상의 것을 말하기 위해 동원된 비유에 불과했다. 김억, 김소월, 주요한, 정지용, 임학수 등의 음식시편들도 이러한 경향을 보여준다.
‘밥’에 대한 욕구는 경향시에서 현저하게 나타났다.7) 그러나 ‘쌀’ 혹은 ‘밥’(곡식)은 가난을 드러내는 기표로 기능했을 뿐, 그 이상의 어떤 의미로 형상화되지 못했다. 이런 면에서 정지용의 「조찬」(1941)8) 은 일제강점기에 쓴 ‘밥’에 관한 음식시 중에서 남다른 품격을 보여준다.
백석은 음식시에서 단연 독보적인 존재다. 고형진에 의하면 백석 시편에 나타나는 음식의 종류는 무려 150종에 이르고, 그의 작품 총 95편 중에서 음식이 나타나지 않는 작품은 불과 28편뿐이다.9)
백석의 작품 중 음식시로 분류될 수 있는 「여우난골족(族)」, 「초동일(初冬日)」, 「고야(古夜)」, 「고방」, 「하답(夏沓)」, 「개」, 「가즈랑집」 등에는 유년 화자나 유년 주체가 등장한다.10) 그의 시에서의 음식은 대부분 유년기에 고향 정주에서 먹었던 관서지방의 토속 음식이었다.11) 그가 성인이 된 후 남도 기행을 통해 접한 음식도 있지만, 대부분 유년기의 음식에 대한 향수가 가장 강하게 형상화되었다. 이는 백석에게 음식이 유년의 행복했던 기억을 떠올리게 만드는 매개체였음을 시사해준다. 「여우난 곬족」에서 아름답게 형상화된 유년기의 친족 공동체, 그들이 큰집에 함께 모여 음식을 장만하여 정겹게 나누어 먹는 행위가 이를 방증한다.
이처럼 백석에게 ‘음식’은 “고립과 단절을 벗어나 더 큰 공동체에 접속되고자 하는 것”으로 음식을 먹는 행위 자체가 “일종의 축제, 혹은 제의적 성격”12) 을 띠고 나타난다. 이를 종합해 보면, 백석에게 음식은 단순한 식욕의 해결이나 미각을 충족하기 위한 차원이 아니며 자신의 정체성 그 자체이며, 자기 존재에 대한 자각과 함께 고향 공간에 대한 향수를 충족시켜주는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점은 송수권의 음식시에서도 공통적으로 발견된다.
송수권의 음식시 역시 전통적인 남도의 음식 문화를 잘 보여준다. 송수권의 시에서는 유년기부터 먹어온 고향의 음식에 대한 향수가 자주 나타나는데 이는 공동체에 대한 연대의식을 보여준다. 따라서 그가 남도 음식을 즐겨 먹는 것은 조상들로부터 대대로 이어져 내려온 선천적 기질이며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인식이라고 볼 수 있다.
남도 음식의 특징은 발효와 삭힘에 있다. 음식의 기본 재료가 되는 젓갈이나 간장, 된장 등은 충분히 숙성될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슬로우푸드다. 그런데 산업화 시대의 현대인들은 직선과 속도를 선호한다. 느림의 미학을 강조한 피에르 쌍소에 의하면, 현대 문명의 중요한 특성 중 하나는 ‘속도’다.13) 누가 먼저, 더 빨리 목표를 성취하느냐가 생존의 관건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한 선은 직선이므로 현대인은 여유 없이 늘 쫓기면서 살아가고 햄버거나 토스트 등 패스트푸드에 길들어져 있다. 이에 대하여 송수권은 그 대안으로서 숙성과 발효의 시간성을 상징하는 음식 이미지를 자주 보여준다. 이는 그의 시세계를 상징하는 곡선의 부드러움이나 풍요로움, 그리고 슬로우푸드에 속하는 전통적인 남도 음식의 가치와도 연결된다. 이런 측면에서 송수권의 음식시는 차츰 사라져가는 전통적인 음식 문화를 복원함으로써 느림의 미학과 우리 민족의 고유한 문화가 황폐한 현대인들의 가슴을 치유해 줄 수 있음을 역설하는 것이다.


4) “밥만먹으면 배가부름을/ 모르네나는/ 물만마시면 목이튝음을/ 모르네나는”(최남선, 〈모르네 나는〉 부분) 김주언, 〈한국 음식시의 맥락과 가능성〉, 《우리어문연구》 58집. 우리어문학회, 2017, 40쪽.
5) “공중에 떠다니는/ 저기저새요/ 네몸에는 털잇고깃치 잇지// 밧테는 밧곡식/ 논에 물베/ 눌하게 닉어서 숙으러젓네!// 초산 지나 적유령/ 넘어선다/ 짐실은 저나귀는 너왜넘늬?‘ (김소월, 「서도여운(西道餘韻)-옷과 밥과 자유」 전문)
6) “네가 주는 것이 무엇인가?/ 어린애게도 늙은이게도 즘생보담은 신령하단 사람에게/ 단맛뵈는 엿만이 아니라/ 단맛 넘어 그 맛을 아는 맘/ 아모라도가 젓느니 잊지 말라고/ 큰 가새로 목닥치는 네가/ 주는 것이란 엇재 엿뿐이랴!”
7) 김석송의 「러시아 빵과 고무신」(1925)으로 시작되어 박아지의 「농군(農軍)행진곡 2」(1928), 정상규의 「보리타작한 날」(1930), 양우정의 「농부의 노래」(1930), 박영준의 「소작인의 」(1931), 방인희의 「추수」(1932) 등은 경향시 계열에서 쓴 음식시편(‘밥’, ‘쌀’이 주요 소재)이다.
8) “해ㅅ살 피여/ 이윽한 후,// 머흘 머흘/ 골을 옮기는 구름.// 길경(桔梗) 꽃봉오리/ 흔들려 씻기우고.// 차돌부터/ 촉 촉 죽순(竹筍) 돋듯.// 물소리에/ 이가 시리다./ 앉음새 갈히여/ 양지 쪽에 쪼그리고,// 서러운 새 되어/ 흰 밥알을 쫏다.” (정지용, 「조찬(朝餐)」 전문)
9) 고형진, 「백석시 연구」, 고형진 편, 백석, 새미, 1996, 23쪽.
10) 「흰 바람벽이 있어」, 「국수」, 「수박씨, 호박씨」, 「월림(月林)장-서행시초(西行詩抄)4」, 「노루-함주시초(咸州詩抄)」, 「구장로(球場路)-서행시초(西行詩抄)1」, 「자류(柘榴)」, 「청시(靑枾)」, 「탕약(湯藥)」, 「꼴두기-물닭의 소리」, 「북관(北關)-함주시초(咸州詩抄)」, 「선우사(膳友辭)-함주시초(咸州詩抄)」, 「북신(北新)-서행시초(西行詩抄)2」, 「멧새소리」, 「적경(寂境)」, 「추야일경(秋夜一景)」 등을 음식시로 규정할 수 있다.
11) 오성호, 〈백석 시에 나타난 음식과 그 의미〉, 《배달말》 제66호, 배달말학회, 2020, 290쪽.
12) “백석에게 음식 먹는 행위는 ‘지금 여기’서 그 음식을 나누는 공동체와 수평적으로 접속하는 행위인 동시에, 오랜 시간에 걸쳐 그것이 공동체 성원 모두의 음식이 되도록 만들어온 더 큰 역사적 공동체에 접속되는 행위이기도 했다. 그에게 음식을 먹는 행위가 일종의 축제, 혹은 제의적 성격을 띠고 나타나는 것은 이 때문이다.”(오성호, 위의 글, 288쪽).
13) “직선을 추구하는 현대인들은 (중략) 항상 뭔가 결핍된 듯한 갈등 속에서 휴식을 얻지 못하고 살아간다. 곡선을 상징하는 느림은 부드럽고 우아하고 배려 깊은 삶의 방식이다”(피에르 쌍소,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 김주경 역, 동문선, 2002, 10~12쪽 참조.)



3. 송수권 음식시의 구현 양상


음식은 그것을 먹는 사람의 성격, 심리는 물론 그가 살아가는 사회 및 문화까지도 알 수 있게 해준다.14)그래서 인류학자 코니한은 ‘음식은 삶이다’라고 말했다.15) 이는 ‘음식이 곧 사람[食性知人性]’이라는 송수권의 시론과도 일맥상통한다.
이처럼 음식을 먹는 체험은 기억과 연관되어 축적됨으로써 하나의 의식으로 생성된다. 인간의 감각기관에 들어온 정보는 뇌 속에 축적되어 기억과 연결됨으로써 인간의 행동을 결정한다.16) 이런 맥락에서 음식을 먹는 감각적 체험이 타자와의 동화나 자아성찰의 과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살펴보려 한다. 즉, 미각, 후각 등에 관한 감각적 비유가 형상화되는 방식을 살펴보고, 송수권 음식시의 특징을 파악할 것이다. 그의 음식시를 6가지의 유형별로 나누면 다음과 같다.17) 이는 송수권 음식시에 나타난 지배적 이미지를 위주로 분류하였으며 유형화하였음을 미리 밝혀둔다.


14) 로널드 르블랑, 『음식과 성: 도스토예프스키와 톨스토이』, 조주관 역, 그린비, 2015, 25쪽.
15) 소래섭, 〈백석 시에 나타난 음식의 의미 연구〉, 서울대학교 박사학위 논문, 2007, 20쪽.
16) 의식의 경계를 규정하는 다섯 가지 감각을 이야기한다. (다이앤 애커먼, 『감각의 박물학』, 백영미 역, 작가정신, 2004.)
17) 한 편의 시는 두세 가지 복합적 내용을 담고 있는 경우가 많으므로 이 유형은 서로 중복되거나 넘나들기도 한다.




1) 공동체 의식


인간이나 짐승이나 다른 대상에게 음식을 함께 먹자고 하는 것은 상대에게 친밀감을 표현하는 행위이다. 그리고 자신의 생존과 직결되는 음식을 함께 나눠 먹는 것은 타자에 대한 사회적 차원의 행위가 된다. 가령 ‘식구(食口)’라는 단어는 ‘함께 살면서 음식을 나눠 먹는 입’이라는 사회적 의미망이 함축되어 있다. 이런 의미를 되새겨 볼 때 음식을 통해 공동체적 삶을 추구하는 방식은 백석과 송수권의 음식시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징후이다.


이게, 얼마 만이냐
다리와 다리가 만나는 슬픈 가족사(家族史)의 밤
암으로 죽어가면서 암인 줄도 모르면서
마른 복국이 먹고 싶다는 아버지 부름 따라
옛집에 오니 밤 개는 컹컹 짖어
약속이나 한 듯이 흰 눈은 또 퍼부어
우리 부자 복국 끓여 먹고
통시 길에 나와보니
옛날의 국자 같은 북두칠성이 또렷했다
구주탄광, 아오모리 형무소, 휴전선이 떠오르고
도란도란 밤 깊어 무심히 아버지 다리에
내 다리 얹었다
70년 황야를 걸어온 다리
마른 삭정이 다된 다리
어금니 악물고 등 돌려 흐느꼈다.
-「별밤지기·1-복국」 전문


“암으로 죽어가면서 암인 줄도 모르”는 아버지에게 ‘옛집’은 아들과 함께했던 젊은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장소로 기능을 한다. 옛집에 돌아온 밤에 개는 또 컹컹 짖고 “약속이나 한 듯이 흰 눈은 또 퍼부어” 행복했던 그 시절처럼 복국을 맛있게 끓여 먹는다. 아버지와 함께 누워 “구주탄광, 아오모리 형무소, 휴전선” 이야기를 들으며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는 아들, 마른 삭정이 같은 아버지의 다리에 화자의 다리를 얹는 행위는 아버지와의 완전한 동질화를 보여준다.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가족 공동체로서의 유대감은 ‘마른 복국’이라는 음식을 함께 나눠 먹는 행위를 통해서 회복되고 강화되는 것이다. 송수권의 음식시에서 공동체 의식에 대한 추구는 많은 작품에서 확인할 수 있다.18)


18) 「황태나 굴비 사려」, 「그늘」, 「돌머리 물빛-안동 백비탕」, 「삼대 숯불구이」, 「남도의 밤 식탁」, 「봉평 장날-올챙이 묵」, 「어초장·2-밥때 알리는 꽃」, 「보리누름」, 「대구」, 「김치」, 「무젓」, 「궁발거사」, 「덧정」, 「떡살」, 「열무밭을 지나다가」, 「풍수자연(風水自然)」, 「멀미」, 「통박」, 「뽕」, 「흙에 뿌린 이 슬픔 이 기쁨」, 「고흥표 토종 갓물김치」, 「김치와 서정시」, 「묵밥」, 「고흥 서대」, 「진굴젓」, 「물김치」, 「유자청」, 「살구꽃이 돌아왔다」, 「안동 유과」, 「월포 매생이」, 「뎅이굴」, 「굴 파전」, 「내빌눈」, 「봄날, 영산포구에서·2」, 「봄날, 영산포구에서·3」, 「봄날, 영산포구에서·4」, 「서백당 대추란」, 「금소리 예천임씨 종택을 지나며」 등



쓸쓸한 종갓집에 첫눈이 내린다
마당귀 놓인 드므에도 눈이 쌓인다
기왓골 용마루 끝 도깨비탈을 쓴 두 치미가
물 젖은 드므 속을 놀란 듯 내려다보고 앉았다
(중략)


노종부가 차려준 아침 밥상엔 은수저 한 벌이 올라와 있다
우주의 중심을 떠받치는 정갈한 장중지와 비아통도 하나
아직도 변함없는 그 손맛에 한 숟갈 시레기 국물을 뜨기도 귄 없다.
-「금소리 예천 임씨 종택宗宅을 지나며」 부분


먼저 이 시의 공간적 배경에 주목해보자. 경북 안동시 임하면 금소리 예천 임씨 종택은 전통문화가 비교적 잘 보전된 곳이다. 고풍스러운 풍경을 보여주며 사라져가는 문화의 가치를 살리고자 하는 시인의 의지가 보인다. 또한 전통적인 음식 이미지를 통해서 사라져가는 우리말을 되살리고자 하는 의지도 엿볼 수 있다. 시인은 무쇠솥을 사용하지 않게 되면서 지금은 잘 쓰지 않게 된 ‘드므’, 사라져가는 전통적인 기와집의 도깨비 얼굴상을 한 ‘치미’ 같은 우리말에 일일이 각주를 붙여가며 설명하고 있다. 사전 속에서조차 사어가 된 토속어의 녹을 벗겨내고 빛나는 시어로 만들어서 독자들 앞에 선보이는 것이다. 송수권은 ‘장중지’와 ‘비아통’처럼 봉인된 말들을 꺼내어 “우주의 중심을 떠받치는 정갈”함에 빗대고, “아직도 변함없는 그 손맛”이 남아 있는 종갓집을 묘사함으로써 전통 지향의 정서를 극대화하였다.
이처럼 음식을 나눠 먹는 행위는 자아와 타자가 연대하며 동화되는 사회적이고 공동체적인 의미를 함축한다. 미각의 사회성에 대해 논의한 다이앤 애커먼19)도 이와 맥락을 함께한다. 따스하고 행복했던 기억을 재생하고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애정을 형상화함으로써 세대 간에 잠재된 갈등과 균열을 치유하여 공동체적 삶의 원형을 회복하고 있다.


19) 다른 감각들은 혼자서도 그 아름다움을 온전히 즐길 수 있지만, 미각은 지극히 사회적이다. 우리는 대개 가족들과 함께 식사하므로 ‘빵을 함께 나누는 것’은 외부인을 가족과 연결해주는 상징적 행위가 된다. (다이앤 애커먼, 『감각의 박물학』, 백영미 역, 작가정신, 2004, 450쪽.)




2) 재생과 원형적 이미지


전통적인 맛에 대한 애착은 자연스럽게 행복했던 과거를 호명하면서 현재와 과거를 아우르는 기억의 시·공간을 보여준다. 이는 때로 이승과 저승이라는 경계를 무너뜨리는 재생의 이미지로 나타나기도 한다.


앵두꽃이 피었다 일러라 살구꽃이 피었다 일러라
또 복사꽃도 피었다 일러라
할머니 마루 끝에 나앉아 무연히 앞산을 보신다
등이 간지러운지 자꾸만 등을 긁으신다
올해는 철이 일들었나 보다라고 말하는 사이
그 앞산에도 진달래꽃 분홍 불이 붙었다


앞대 개포가에선 또 나즉한 뱃고동이 운다
집집마다 부뚜막에선 왱병이 울고 야야, 주꾸미
배가 들었구나, 할머니 쩝쩝 입맛을 다신다
빙초산 맛이 입에 들척지근하고 새콤한 것이
달기가 햇뻐꾸기 소리 같다


아버지 주꾸미 한 뭇을 사오셨다 어머니 고추장
된장을 버무려 또 부뚜막의 왱병을 기울이신다
주꾸미 대가리를 씹을 때마다 톡톡 알이 터지면서
아삭아삭 씹히는 맛, 아버지 하신 말씀,
니 할매는 이 맛을 두고 어찌 갔을거나


환장한 환장한 봄날이었다
집집마다 부뚜막에선 왱병이 오도방정을 떨고
앞대 개포가에선
또 나즉한 뱃고동이 울었다.
-송수권, 「봄날, 영산포구에서-주꾸미회」20)전문.


20) 『남도의 밤 식탁』에서는 「봄날, 영산포구에서」라는 제목에 ‘주꾸미 회’라는 부제가 붙어 발표되었으나, 『퉁』에서는 제목만 바뀌어 「봄날, 영산포구에서. 1」로 게재됨. 『남도의 밤 식탁』에 실린 원본을 기준으로 한다.



1연에서 뱃고동이 울고 “집집마다 부뚜막에선 왱병이 울” 때 주꾸미 배가 들었다며 할머니는 입맛을 쩝쩝 다신다. 2연에서 아버지는 “니 할매는 이 맛을 두고 어찌 갔을거나”하는 안타까운 독백으로 할머니를 그리워한다. ‘주꾸미’라는 음식은 아버지에게 행복했던 과거와 어머니를 회상하게 하는 매개체이며, ‘왱병 소리’와 함께 차안과 피안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기능을 한다. 이런 측면에서 이 시는 자연의 섭리에 따른 재생과 소멸이라는 원형성이 잘 드러나 있다. 이 시의 공간인 영산포구는 이승과 저승을 연결하면서 삶→ 죽음→ 재생이라는 원형 구조를 보여준다. 돌아가신 모친을 그리워하는 아버지에게 주꾸미를 먹는 행위는 일종의 제의(祭儀)로까지 인식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송수권의 음식시에 나타난 원형성은 산 자와 죽은 자가 소통을 보여준다. 이 시는 다음의 백석 시와 여러 측면에서 유사하다.


이 흰 바람벽에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이렇게 시퍼러둥둥하니 추운 날인데 차디찬 물에 손을 담그고
무이며 배추를 씻고 있다
또 내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내 사랑하는 어여쁜 사람이
어느 먼 앞대 조용한 개포가의 나지막한 집에서
그의 지아비와 마주 앉어 대구국을 끓여놓고 저녁을 먹는다
벌써 어린것도 생겨서 옆에 끼고 저녁을 먹는다.
-백석, 「흰 바람벽이 있어」 부분


송수권의 시, 「봄날, 영산포구에서-주꾸미회」는 백석의 「흰 바람벽이 있어」와 공간적 배경이 동일하고, 3대에 걸친 등장인물 또한 유사하다. 백석의 위 작품에서 “앞대 개포가”는 위 인용시 2연의 “앞대 조용한 개포가”로 동일하게 나타난다. 또한, 두 시는 3대에 걸친 등장인물들이 나온다. 백석 시에서의 ‘늙은 어머니-나와 아내-어린 것’이 송수권의 시에서 ‘할머니-아버지-화자’로 변형되어 나타난다. 이는 송수권이 스스로 밝힌 바와 같이 백석 시를 의도적으로 변형했음임을 알 수 있다.
재생과 원형적 이미지는 「당신의 즐거운 디저트」 21), 「방아실 앞」22) , 「봄날, 영산포구에서.1」, 「젯날」, 「안성장터」, 「깡통 식혜를 들며」, 「저녁 연기」, 「하얀 목련」, 「자목련이 지는 날은」, 「도시락 뚜껑을 열다가」, 「얼간재비-간고등어」, 「봄날-주꾸미 회」, 「곰취」, 「어초장 詩 2」, 「새벽은 부엌에서 온다」, 「묵호항-오징어」, 「탕평채」, 「노랑부리저어새」 등에서도 나타난다.


21) “서귀포 오구대왕님/ 저의 육신은 너무 때 묻고/ 저의 혼은 너무 질겨서/ 대왕님 석쇠 위에서 이 질긴 고기/ 잘 익을 수 있을까요/ 어젯밤 잠 속에서도/ 검은 상복차림 저승차사 두 놈이/ 벌컥 문을 열고 들어와 육환장을 내리찍으면서/ 에쿠야 이 살덤버지 에쿠야 이 살덤버지/ 킁킁 코를 말더니/ 에취야 이 비린내 에취야 이 비린내/ 육환장은 고사하고 토악질까지 해대면서/ 문밖을 뛰쳐나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당신의 즐거운 디저트」 1연)
22) “삼룡이는 디딜방아 딛고, 흰순이는 떡살을 우기고/ 그런 날은 흰 눈을 맞으며/ 나는 팽이를 쳤다// 방아실 앞을 지나면/ 지금도 한 악사(樂師)가 울리는 거문고 소리에 이빠진 박달나무 절구가 마음 속에 비쳐오고/ 어디선가 흰 가래떡이 넘어진다” (「방아실 앞」 후반부)




3) 자아성찰과 자의식의 발현


송수권의 시에서 먹는 행위는 고립과 단절에서 벗어나 음식을 함께 나눠 먹는 타인과 수평적으로 접속하면서 대화하는 양상으로 전개된다. 이런 대화를 통해 화자는 타인과 소통하면서 자신을 성찰하는 과정으로 나아간다.


벌교 참꼬막 집에 갔어요
꼬막 정식을 시켰지요
꼬막회, 꼬막탕, 꼬막구이, 꼬막전
그리고 삶은 꼬막 한 접시가 올라왔어요
남도 시인 손톱으로 잘도 까먹는데
저는 젓가락으로 공깃돌 놀이하듯 굴리고만 있었지요
제삿날 밤 괴
꼬막 보듯 하는군! 퉁을 맞았지요
손톱이 없으면 밥 퍼먹는 숟가락 몽뎅이를
참꼬막 똥구멍으로 밀어 넣어 확 비틀래요.
그래서 저도 확 비틀었지요.
온 얼굴에 뻘물이 튀더라고요
그쪽 말로 그맛 한번 숭악하더라고요
그런데도 남도 시인-이 맛을 두고 그늘이
있다나 어쩐다나
그래서 그늘 있는 맛, 그늘 있는 소리, 그늘
있는 삶, 그늘이 있는 사람
그게 진짜 곰삭은 삶이래요
현대시란 책상물림으로 퍼즐게임하는 거 아니래요
그건 고양이가 제삿날 밤 참꼬막을 깔 줄 모르니
앞발로 어르며 공깃돌놀이 하는 거래요
시도 그늘 있는 시를 쓰라고 또 퉁을 맞았지요.
-「퉁」 전문.


생생한 이미지의 교차를 통한 감각적 표현이 잘 어우러진 인용시는 친근한 대화체로 고향 마을 음식인 꼬막을 통해 남도의 삶과 정서를 형상화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삶에 대한 반성적 성찰이 돋보인다. 음식 맛에는 숙성과 발효의 시간이 스며든 ‘그늘’이 있어야 한다는 ‘남도 시인’의 말은 현대인의 삶을 돌아보게 하는 총체적 은유이기 때문이다. 이런 면에서 이 작품은 메타시적 자기 반영성이 내재되어 있다. ‘남도 시인’은 자신의 체험을 육화되지 못하고 퍼즐 맞추듯 시를 쓰는 현대의 시인들에게 일침을 가하면서 ‘뻘물’을 통해 화자에게도 반성적 성찰을 요구한다. 생명이 잉태되고 소멸, 재생하는 근원적 공간인 ‘뻘’에서 생산된 꼬막을 통해 삶의 이면을 파악하라는 것이 남도 시인의 전언이다.
이런 자아성찰이나 자의식의 발현은 다음 시에서처럼 혼자만의 공간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혼자 먹는 밥은 쓸쓸하다


숟가락 하나
놋젓가락 둘
그 불빛 속
딸그락거리는 소리


그릇 씻어 엎다 보니
무덤과 밥그릇이 닮아있다


우리 생(生)에서 몇 번이나 이 빈 그릇
엎었다
되집을 수 있을까


창문으로 얼비쳐 드는 저 그믐달
방금 깨진 접시 하나
-「혼자 먹는 밥」 전문


「혼자 먹는 밥」에서는 가족들과 떨어져 시인이 혼자 살던 때의 경험이 드러나 있다.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먹는 밥, 그 밥그릇과 무덤의 모양이 닮아있음을 발견하고, 화자는 이를 역설적 인식으로 형상화한다. 어두운 밤 불빛 속에서 혼자 밥을 먹으며 ‘딸그락’거리는 소리는 실존적 고독을 환기한다. 창문에 비치는 그믐달을 방금 깨진 접시로 인식하고 묘사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우리 생(生)에서 몇 번이나 이 빈 그릇/ 엎었다/ 되집을 수 있을까”라고 자신을 돌아보는 화자의 반문은 현대인의 삶의 방식에 대한 반성적 사유이다.
송수권의 음식시에서 자아성찰이나 자의식의 발현은 「소금」23) , 「맥주병」, 「곰소항」, 「물염정 詩」, 「혀 밑에 감춘 사과씨」, 「말고기」, 「바지락을 캐며」, 「도가니탕」, 「숙주나물과 청령포」 등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23) “나는 소금이고 싶다/ 저 바닷물을 다 퍼올려서/ 오뉴월 땡볕에/ 땡땡 여물은 소금이고 싶다// 싱거운 것을 짜게 하고/ 싱거운 삶을 짜게 하고/ 우리들의 독 속에 갇힌 자유/ 우리들의 독 속에 갇힌 일분의 평화/ 썩히지 않기 위해서라도/ 나는 소금이고 싶다.”(「소금」 1, 2연)




4) 원초적 감각


전술한 바와 같이 남도 음식의 특징 중 하나는 발효와 삭힘이다. 음식의 기본 재료인 장류는 미생물의 화학적 변화에 필요한 시간을 거친 후에야 숙성된 맛으로 변환된다. 이런 의미에서 남도 음식은 “기다림의 성찬이 주는 강렬한 감각”24) ”이다. 예컨대 오래 삭혀둔 홍어 맛은 강렬한 미각이라는 원초적 감각을 지니고 있다.


24) 류지현, 「시인의 성찬, 꽃과 고요가 놓인」, 『송수권 詩 깊이 읽기』, 나남, 2005, 224~225쪽.



한겨울에는 나도 전어 밤젓이 먹고 싶다


선비골 안동에 가면 얼간재비가
밥도둑이라지만
남도에 오면 전어 밤젓이 밥도둑이다


햇반을 내어 고슬고슬 고봉밥 지어
전어 밤젓 한 숟갈 듬뿍 떠 얹으면
그것이 밥도둑인 거라
고솜하고 쌉쓰름한 그 맛
알싸하니 목이 잠겨 감질나는 거라


영혼이나 기질은 냄새로 오는 게 아니라
맛으로 길러지는 것


(레몬 향이 맡고 싶다고?)


한겨울에는 나도 전어 밤젓이 먹고 싶다
-「밤젓」 전문.


이 작품은 인간의 영혼이나 기질조차도 맛을 통해 길러진다는 인식을 보여주고 있다. 밤젓 이야기로 전개되는 이 시의 흐름에서 가장 이질적인 진술로 한눈에 띄는 행은 “(레몬 향이 맡고 싶다고?)”이다. 독자의 시선을 끌기 위해 괄호로 시각화한 이 행은, 시인 이상(李箱)이 임종 직전에 한 말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시에서는 전통 음식 문화의 정체성을 상실하고 서구의 맛에 경도된 현대인을 비판하고자 하는 발화 의도를 보여준다. ‘밤젓’이 한국 음식을 대표하는 자연 발효 음식이라면, ‘레몬향’은 주로 서양 음식에 뿌려 먹는 인공적 과일이기 때문이다.
송수권은 “고솜하고 쌉쓰름한 그 맛/ 알싸하니 목이 잠겨 감질나는” 맛이라고 독자에게 그 맛을 생생하게 감각적으로 형상화한다. 백석의 시를 비롯한 많은 음식시에서는 그 맛이나 감각에 대한 구체적인 묘사가 거의 없다.25) 그러나 송수권의 음식시는 “빙초산 맛이 입에 들척지근하고 새콤한 것이/ 달기가 햇뻐꾸기 소리 같다”든지, “주꾸미 대가리를 씹을 때마다 톡톡 알이 터지면서/ 아삭아삭 씹히는 맛”(「봄날, 영산포구에서」)과 같이 감각을 의도적으로 활용하여 대상의 맛을 재현해 내고, 독자의 원초적 감각을 직접 일깨우는 방식을 활용한다.
송수권에게 시각은 교육으로 길들어진 감각에 불과하며 미각, 후각, 청각은 시각 이전의 원형 감각이다.26) 그는 시각과 청각에 의존해 왔던 이미지들이 나이 들수록 미각과 후각, 즉 맛과 냄새에 민감해진 것 같다고 한다고 말한 바 있다. 다음 시에서 송수권은 시각에 선행되는 미각과 후각을 청각과 함께 형상화되면서 원형적인 삶을 갈망하고 있다.


25) 백석의 음식시에 나타나는 다음과 같은 묘사는 송수권의 구체적 형상화와 비교했을 때 덜 감각적이다. “인절미 송구떡 콩가루차떡의 내음새”, “무이징게국을 끓이는 맛있는 내음새”(「여우난골族」), 구수한 내음새 곰국(「고야」), “김냄새 나는 비”(「통영」), “시큼한 배척한 퀴퀴한 이 내음새”(「북관」), “미역냄새 나는 덧문”(「시기의 바다」), “콩기름 쪼리는 내음새”(「안동」), “얼근한 비릿한 구릿한 이 맛”(「북관」), “송이버섯의 내음새”(「머루밤」)
26) 이에 대한 사물의 감각화는 동물생태학자들의 설명과도 일치한다. 강아지는 막 태어나서는 일주일 동안 눈을 뜰 수 없으므로 어미의 소리, 냄새를 입력하고 어미를 인식한다고 한다. (송수권, 〈자전적 시론-백석과 송수권, 겹침의 시학〉, 《열린시학》 2015년 여름호, 고요아침, 68쪽.)



광주 사람이면 누구나 다 아는 꽃게장 집이 있다
백운동에서 충장로 입구로 가는 까치고개 넘어 있다


장구섬꽃게장집


내리 묵은 간장으로 꽃게장을 담근다는
그 집 앞을 지나면 장구 소리에 귀 먹먹하다
그 집 앞을 지나면 혓바닥이 장구채처럼 논다
-「장구섬꽃게장집』 전반부


‘장구섬꽃게장집’이라는 이름은 우리 민족의 전통 악기인 장구를 연상하게 한다. “그 집 앞을 지나면 장구 소리에 귀 먹먹하다”라고 실제로는 들리지 않는 소리를 상상 속에서 소환하면서 감각을 확산한다. “내리 묵은 간장으로 꽃게장을 담근다는” 꽃게장 집은 발효의 과정을 통해 완성되는 남도 전통 음식의 특성, 바로 그것이다. 맛있는 꽃게장을 먹어본 경험은 뇌에 축적됨으로써 꽃게장 집을 떠올리거나 지나가기만 해도 화자의 혀에 군침이 돌게 만든다. “그 집 앞을 지나면 혓바닥이 장구채처럼 논다”라는 표현은 해학의 진수를 보여준다.


「시골길 또는 술통」, 「장 달이는 날」, 「황포묵」, 「황복」, 「소반다듬이」, 「홍탁」, 「겨울 강구항 -대게를 먹으며」, 「깅이죽」, 「밤젓」, 「묵」, 「퉁」, 「전어회」, 「왱병」 등에서도 원초적 감각을 확인할 수 있다. 송수권이 천착하는 남도 음식은 젓갈이나 홍어와 같은 자연의 맛이다. 서구 음식 문화가 일상화되고 있는 현대 사회에서 송수권은 음식시를 통해 원초적 감각에 가까운 자연의 맛을 복원하고자 했음을 알 수 있다.



5) 현대 문명 비판


전통문화에 대한 애정은 자연스럽게 현대 문명에 대한 비판적 인식으로 귀결된다. 다음 작품에서는 서구적 입맛을 대변하는 윌슨과 전통적 입맛을 대변하는 화자의 대조를 통해서 현대인이 잃어가는 음식 문화의 정체성에 대한 비판적 시선을 보여준다.


아세요, 젓가락 장단으로 오는 거시기 맛, 소 혓바닥 이보구니 살을 긁어나가듯 포정(疱丁)이 갈빗대 살을 쳐나가듯 야금야금 쥐 소금 먹듯 맛으로만 쳐가는 맛, 에라, 모르겠다, 종당에는 숟가락째 퍼다가 썩썩 밥 비벼묵고 밥도둑이라 부르는 젓갈 맛, 내변산 외변산을 한바꾸 뺑 돌아나오다 출출한 배 거머쥐고 들르는 곰소항 나들머리, 뽀로 염전 위에 있는 삼거리 젓갈 백반집, 이 세상 모든 맛을 거시기 밥상에 모아두고 파는 갈무리 집, 그 집 아세요
(중략)
맛에도 초발심이 있고 향수와 U턴이 있다나 어쩐다나, 내외변산을 뺑 돌아 나오듯 박하지젓, 무젓, 멸젓, 고노리젓, 딘팽이젓, 곤쟁이젓, 엽삭젓, 모치젓, 새뱅이젓, 강다리젓, 홍애위젓, (거북이 뒷다리만 없군요) 그 쫄굿거리고 아삭거리며 느믈느믈 고리고리한 맛을 한바꾸 돌아 나오는데 윌슨은 노, 탱큐로 에그 프라이만 연발했고, 나는 젓가락 장단에 혀 말고 코를 처박았지요, 또 윌슨은 젓가락 끝에 겨우 물엿으로 과낸 콩자반 한 알을 지구처럼 들어 올리더니 망둥이처럼 좋아서 풀쩍거렸지요, 아서, 음석 가지고 장난치면 천벌 받지, 또 머퉁이 줬지요, 그때 갓동지 국물 한 방울이 창에 튀어 소금산 한 채가 발그족족, 까나리 액젓처럼 흘러내리고 있었어요
-「소금산」 1, 4연


‘아세요’라고 질문을 제기하면서 먼저 그 젓갈 맛을 구체적으로 형상화한 후에 곰소항 뽀로 염전 위에 있는 삼거리 젓갈 백반집을 제시한다. “소 혓바닥 이보구니 살을 긁어나가듯”이나 “포정(疱丁)이 갈빗대 살을 쳐나가듯”, “야금야금 쥐 소금 먹듯”처럼 실감 나는 비유는 현대인에게 다소 낯선 비유다. 전통적 농경사회의 경험이 축적된 비유를 사용함으로써 우리의 전통음식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고 있다.
4연에서 “맛에도 초발심이 있고 향수와 U턴이 있다”라는 진술로 우리의 옛 음식 맛에 대한 향수를 보여주면서 “쫄굿거리고 아삭거리며 느믈느믈 고리고리한” 맛의 젓갈 이름들을 하나하나 다정하게 부른다. 하지만 그 맛을 알 리 없는 윌슨은 “노, 탱큐로 에그 프라이만 연발”하고, 화자는 “젓가락 장단에 혀 말고 코를 처박”는 대조적 장면을 보여주고 있다. 결말 부분은 자연물에 화자의 감정이 투사된 표현으로 우리 전통음식이 화자에게 영혼의 허기까지 달래주는 요소가 되고 있음을 시사해준다.


(A)
등대 끝을 선회하며 원을 긋던 갈매기들은
눈이 충혈된 채
이따금 벌판 깊숙이 쳐들어와 새우장을 습격한다
그때마다 녹음된 여러 개의 스피커에서 지축을 흔드는 砲소리가 터져 나와
내소사 관음봉 일대의 산들이 주저앉을 듯이 흔들리고
갈매기들은 다시 먼 바다로 쫓겨난다
-「곰소의 갈매기」 초반부


(B)
벨기에산 돼지고기와 포도주, 코카콜라가
다이옥신 파동으로 전세계가 끓던 날
밤 두시 식탁에 앉아 감귤을 까면서
그 노란색에 경악한다
그것이 살포용이 아닌 제주산 감귤인데도
왜 오렌지 폭탄으로 보이는 걸까
-「감귤과 오렌지」 초반부


(A) 시는 내소사, 곰소염전과 젓갈, 수산물시장으로 유명한 전북 부안 곰소항의 갈매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예전에는 갈매기들의 영역이었던 바닷가에 현대 문명의 상징인 ‘새우장’이 설치되어 있다. 갈매기들은 “눈이 충혈된 채” 새우장을 선회하다가 습격해보지만, “그때마다 녹음된 여러 개의 스피커에서 지축을 흔드는 砲소리”에 놀라서 먼바다로 쫓겨간다. 이런 측면에서 음식시이기도 하지만 환경생태시의 면모도 엿볼 수 있다. (B) 시는 벨기에산 돼지고기, 포도주, 코카콜라가 다이옥신 파동을 일으키던 날을 시대적 배경으로 하고 있다. 두시 식탁에 앉아 감귤을 까면서 제주산 감귤을 보며 오렌지 폭탄으로 보이는 순간에 경악하고 있다. 현대 문명에 대한 비판적 시선은 「뻐꾹새 운다」, 「소금산-젓갈」 등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처럼 송수권의 음식시는 우리 민족의 정신적 뿌리와 근원적인 삶의 원형을 보여준다. 따라서 현대 도시의 삶과 동떨어진 정경이라고 해서 그의 음식시를 과거 지향이나 복고적인 것으로만 볼 수는 없다.27) 그의 음식시는 서구적인 문화에 경도되어 문화 정체성을 찾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이처럼 송수권은 음식시를 통해 오늘날 현대 문명이 직면한 문제점들에 대한 성찰의 시간을 부여하고 있다.


27) 김준오, 앞의 글, 31쪽.




6) 야성의 힘과 그로테스크한 이미지


송수권의 음식시가 다른 시인들의 그것과 극명한 차이를 보이는 부분은 야생의 식탁 연작시에서 확인할 수 있는 야성의 힘과 그로테스크한 이미지다.


차이 쮜센의 팔순잔치가 있는 날
지난 여름은 칭따오를 거쳐 광저우까지 내려갔었다
수박 한 통을 쪼갠 오랜 경험으로
한 녀석의 골통을 까부수기 위해서였다
회전무대의 주인은 북치는 원숭이 레서스가 적격이었다
조명이 켜지자 은은한 불빛 원형탁자 구멍 속으로 불쑥
머리를 내밀고 빨간 두 눈알을 번뜩이는 그놈
발목에는 차꼬를 차고 있었다
뜨겁게 불을 달군 쇠북을 깔고 앉은 그가 엉덩이를 놀려
북을 치기 시작했다
북소리는 둥 둥 둥, 밀림의 숲속을 가로질러 간다
또 몇 차례의 스콜이 퍼붓고 꼬리를 물고 뒤따라왔다
(중략)
원숭이 꼴통을 한 숟갈씩 떠먹는 이 맛,
골통이 텅 빈 채로 마지막까지 북을 치는 레서스
그 북소리 따라 광저우의 일급 숙수(熟手)가 결정되는 시각
한여름 밤의 꿈은 무르익고 턴테이블은 빙빙 돌고
차이 쮜센의 안내를 받아 밀림 속 우리에 갔을 때
습관적으로 구석(口席)으로만 물리던 원숭이 떼들
골통이 잘 익은 친구를 먼저 등 떠밀던 원숭이들,
나는 지난 여름 그 밀림 속 골 때리는 시(詩)
북치는 원숭이 레서스를 찾아
광저우에 갔었다.
-「북 치는 원숭이-야생의 식탁·3」


중국 광저우에서 살아 있는 “원숭이 꼴통을 한 숟갈씩 떠먹”던 체험을 형상화한 인용시는 야성적인 이미지와 힘을 보여준다. 발목에 차꼬를 차고 “뜨겁게 불을 달군 쇠북을 깔고 앉은” 원숭이가 “엉덩이를 놀려 북을 치‘고 있고, 인간들은 살아 있는 원숭이의 머리를 쪼개서 골을 떠먹는 풍경은 잔인하지만, 야생의 날것 그대로를 보여준다. 이 시는 점잖게 죽이고 예의 바르게 먹는 현대인들에게 전해주는 송수권의 메시지이다. 살아 있는 생명체를 죽이면서도 “수박 한 통을 쪼갠 오랜 경험”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하는 것은 이러한 연유 때문이다. 결국 현대시는, 아니 시인이라는 존재는 골통이 비어가면서도 죽는 순간까지 북을 치는 레서스원숭이와 같은 존재가 아니던가, 이렇게 반문하고 있는 것이다.


늑골이 갈라지고 두개골이 빠개지고
콩비지 같이 흘러나온 뇌수와 체액들이
아크 가죽 담요 위에서 밥통처럼 엎질러진다
산산이 조각난 뼈와 살점들과 내장들을
타르초 깃발이 나부끼는 언덕 위에 내어다 놓고
뼈피리를 불며 트웬펜은
다시 독수리떼들을 불러모은다
-「조장(鳥葬)·1」 후반부


티베트와 파키스탄에서는 아직도 조장(鳥葬), 혹은 천장(天葬)이라고 부르는 장례법이 행해지고 있다. 라마교가 성행하는 티베트에서는 시신을 산꼭대기로 옮기고 승려가 시체를 해체하고 사지를 잘라낸 후 내장을 꺼내 피를 뿌리는데, 피 냄새를 맡고 온 독수리들이 이 시체를 먹음으로써 장례가 끝난다. 이는 일견 야만적인 장례 풍습으로 보이지만, 죽은 사람의 혼이 새를 통해 하늘로 올라간다는 의식에 따른 것이다,
“늑골이 갈라지고 두개골이 빠개지고/ 콩비지 같이 흘러나온 뇌수와 체액들”이 쏟아지는 풍경은 문명 이전의 야성성과 그로테스크한 이미지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면모는 야생의 식탁 연작시 「불도장-야생의 식탁·4」, 「비파 열매-야생의 식탁·3」, 「숲속의 악기-야생의 식탁·4」와 「조장(鳥葬)·2」 등에서도 발견된다. 음식시에서 이런 야생성은 여느 시인들의 시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다만 백석의 음식시에서 발견할 수는 있다. 가령 “털도 안 뽑는 고기를 시껌언 맨모밀국수에 언저서 한입에 꿀꺽 삼키는 사람들을 바라보며”(「북신(北新)」)28) 와 같은 부분이 그것이다. 탕약처럼 새까만 메밀국수 위에 털도 안 뽑은 돼지고기를 얹어서 먹는 사람들의 모습은 거칠고 강인하며 원초적 야생성을 지닌 북방인을 상징한다. 그러나 그러한 시편이 한두 편에 불과하다는 것, 그리고 살아 있는 원숭이의 뇌를 먹는 정도의 날것, 혹은 그로테스크한 이미지는 아니라는 측면에서 송수권의 음식시는 다른 음식시와 큰 차이가 있다.


28) “어쩐지 향산 부처님이 가까웁다는 거린데/ 국수집에서는 농짝가튼 도야지를 잡아걸고/ 국수에 치는 도야지고기는 돗바늘 가튼 털이 드문드문 백엿다/ 나는 이 털도 안뽑은 도야지 고기를 물구럼이 바라보며/ 또 털도 안뽑는 고기를 시껌언 맨모밀국수에 언저서 한입에 꿀꺽 삼키는 사람들을 바라보며//나는 문득 가슴에 뜨끈한 것을 느끼며/ 소수림왕을 생각한다 광개토대왕을 생각한다”(백석, 「북신(北新)-서행시초(西行詩抄) 2」 전문)




4. 나가며


이상으로 한국 음식시의 흐름과 함께 송수권의 음식시 구현 양상을 살펴보았다. 송수권은 전통서정을 근간으로 한 음식 서사를 통해 자신이 지향하는 세계를 그려내고자 하였다. 또한, 음식의 맛을 재현하는 데에 다양한 감각을 동원했지만, 그것을 단순한 먹거리나 욕구의 대상으로 표현하지는 않았다. 그럼으로써 음식이 소재의 차원을 벗어나 주체의 내면을 드러내고 주제의식을 강화하는 기제의 기능을 하였다.
결론적으로 송수권의 음식시들은 다음과 같은 특성을 보여주고 있다.
첫째, 음식을 형상화할 때 송수권이 가장 주안점을 둔 것은 음식 서사가 함의하는 정신적 가치였다. 그의 시는 삶의 원형을 바탕으로 음식 이미지를 형상화하고 타자와의 연대를 통해 삶의 보편성을 획득하고 있다. 그의 음식 서사에서 유년의 따스한 기억을 통해 가족 공동체를 꿈꾸거나 삶과 죽음까지도 초월하는 재생의 이미지는 이러한 정신적 가치를 통해 구현되기 때문이다.
둘째, 송수권의 음식시는 우리 민족의 정신적 뿌리와 삶의 원형을 보여준다. 패스트푸드와 같은 서구 음식 문화가 일상화되면서 슬로우푸드에 속하는 전통 음식들, 젓갈이나 김치, 된장 등은 바쁜 도시인들에게 기피의 대상이 되고 있다. 송수권이 음식 서사를 통해 전통 음식의 맛과 풍미를 복원하고자 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의 음식시는 서구 문화에 경도되어 정체성을 찾지 못하는 현대인에게 경종을 울리면서 현대 문명이 직면한 위기를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지 그 열쇠를 제시해주고 있다. 이러한 인식은 자신에게도 반성적 성찰을 요구하면서 자아성찰로 나아가기도 한다.
셋째, 송수권 음식시의 소재나 주제는 다른 시인의 그것보다 훨씬 다양하다. 원시적인 자연소재와 문화화된 소재, 전통적인 것과 현대적인 소재를 동시에 아우르고 있기 때문이다. 공간적인 측면에서도 남도의 식탁에 함몰되지 않고 전국 음식을 포괄하고 있으며, 심지어는 중국 광저우에서의 원숭이 골 요리 체험까지 보여주고 있다. 이는 여느 시인들의 음식시에서 찾아보기 힘든 특성이다. 백석의 음식시 한두 편에서도 야생성은 발견되지만, 그로테스크한 이미지가 송수권의 시에서는 강렬하게 표출된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야생의 식탁 연작시처럼 원초적이고 그로테스크한 에너지는 송수권 음식시만의 특성이기 때문이다.
넷째, 송수권의 음식 서사는 음식의 맛을 매우 구체적이고 현장감 넘치게 재현하고 있다. 예컨대 정지용이나 밥을 소재로 쓴 경향시, 백석의 시에서는 그 음식의 맛이 어떤지에 대한 구체적인 묘사가 없다. 그러나 송수권의 음식시는 다양한 비유와 감각을 활용하여 음식의 맛을 재현해 냄으로써 독자의 원초적 감각을 직접 일깨우고 있다. 나아가 그는 음식과 관련된 토속어를 시에 적극적으로 활용함으로써 모국어의 범위를 한층 확장했다.
일찍이 김소월, 이상화, 정지용, 카프파의 음식시에서 소재 차원에 머물러 있던 음식을 백석은 작품의 주제나 중심적인 정서 차원으로 끌어올렸다. 백석의 음식 서사를 계승한 송수권의 음식시는 미각, 후각, 촉각 등 다양한 감각을 적극적으로 동원함으로써 음식의 맛, 그 냄새와 감촉 등을 더욱 실감 나게 보여주었다. 원초적 감각을 통해 우리의 전통적 음식 문화를 재현함으로써 이질적 서구 음식 문화에 대응하고, 현대인에게 삶의 의미를 되묻고자 한 송수권의 시는 우리 한국시단에서 음식시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고 할 수 있다.
고도로 문명화된 사회에서 여유와 기다림을 잃어버린 현대인들은 서구의 음식 문화에 경도되어 있다. 쉽고 빠르게 먹을 수 있는 피자, 햄버거, 샌드위치, 토스트 등 인스턴트 음식을 선호하며, 전통 식품인 장류와 젓갈, 식혜 같은 발효식품은 멀리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패스트푸드와 퓨전 음식은 우리의 몸과 정신을 풍요롭게 하는 것이 아니라 각종 성인병 등 병든 육신을 초래하게 하였다. 예로부터 한국의 전통 식탁은 좋은 재료로 음식을 정성껏 만든 후, 기다림의 시간을 거쳐야 맛볼 수 있는 슬로우푸드이자 건강식이었다. 이와 같은 발효와 삭힘의 미학이 비교적 잘 보존된 것이 남도의 식탁 문화다.
이렇게 볼 때 송수권의 음식시는 서구 문화에 경도된 작금의 음식 문화에 대한 비판뿐만 아니라 서구 문명이 야기한 병폐에 대한 하나의 대안으로 제시될 수 있다. 송수권은 41년의 창작 활동을 통해 상생과 느림의 미학을 주장하며, 진정한 삶의 가치가 무엇인지를 일깨우고자 하였다. 그의 시가 오늘날 현대인들에게 깊은 울림을 주는 것은 생태학적 의미 외에도 정신적 여유와 해방감을 불어 넣어 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음식시와 전통문화와의 상호관련성을 본격적으로 고찰한 이 연구는 송수권의 음식시와 전통문화의 상호 연관성, 혹은 문학과 문화·사회학적 연구라는 학제 간의 융복합적 연구를 통해 우리의 전통 음식 문화를 보존하면서 현대 사회의 폐해를 치유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지면의 한계 때문에 이 연구에서 하나의 문화코드로 자리매김한 슬로우푸드와 음식시의 상호연관성을 보다 면밀하게 의미를 궁구하지 못한 점은 향후, 지속적인 연구를 통해 보완하려 한다. 후속 연구에서는 남도의 음식 문화 연구 및 현재까지 학계에서 하나의 이론으로 정립되지 못한 음식시라는, 연구의 기본 틀 제시를 과제로 삼게 될 것이다.



<참고문헌>

1. 기본자료


1) 기본서
송수권, 『수저통에 비치는 저녁노을』, 시와시학사, 1998.
_____, 『남도의 밤식탁』, 작가, 2012.
_____, 『퉁』, 서정시학, 2013.
_____, 『사구시의 노래』, 고요아침, 2013.
_____, 『허공에 거적을 펴다』, 지혜, 2014.


2) 단행본
고형진, 『백석 시 연구』, 새미, 1996.
_____, 『백석 시를 읽는다는 것』, 문학동네, 2013.
송수권, 『남도의 맛과 멋』, 창공사, 1996.
_____, 『송수권의 풍류 맛 기행』, 고요아침, 2003.
주영하, 『음식 인문학』, 휴머니스트, 2011.
다이앤 애커먼, 『감각의 박물학』, 백영미 역, 작가정신, 2004.
로널드 르블랑, 『음식과 성: 도스토예프스키와 톨스토이』, 조주관 역, 그린비, 2015.



2. 학위논문 및 기타 논고


1) 학위논문
강선례, 〈송수권 시의 서정성 연구〉, 인천교육대학교 석사학위 논문, 2008.
김교은, 〈송수권 시의 토속적 서정성 연구〉, 동신대학교 박사학위 논문, 2020.
김수영, 〈송수권 시의 전통성 연구-김소월과 대비〉, 한국교원대학교 석사학위 논문, 2008.
김수형, 〈송수권 시 연구-문학적 지향성과 구현 양상을 중심으로〉, 목포대학교 박사학위 논문, 2021.
김종덕, 〈송수권 시 창작방법 연구〉, 한남대학교 석사학위 논문, 2008.
문채열, 〈송수권 시 연구〉, 한국교원대학교 석사학위 논문, 2007.
소영란, 〈송수권 시 연구〉, 순천대학교 석사학위 논문, 2007.
유은희, 〈송수권 시 연구〉, 원광대학교 석사학위 논문, 2007.
이진영, 〈송수권 시의 창작방법론 연구〉, 중앙대학교, 석사학위 논문, 2009.


2) 학술지 논문 및 평론
김주언, 〈한국 음식시의 맥락과 가능성〉, 《우리어문연구》 58집. 우리어문학회, 2017.
류지현, 〈시인의 성찬, 꽃과 고요가 놓인〉, 《송수권 詩 깊이 읽기》, 나남, 2005.
송수권, 〈남도의 식탁과 풍류정신〉, 《시인수첩》 2010년 여름호.
_____, 〈남도의 맛과 멋〉, 《오늘의 가사문학》, 고요아침, 2015년 봄호~2015년 겨울호.
_____, 〈자전적 시론-백석과 송수권, 겹침의 시학〉, 《열린시학》 2015년 여름호
송수권/맹문재, 〈대담-개미가 쏠쏠한 시〉, 《서정시학》 2013년 겨울호.
정유화, 〈음식 기호의 매개적 기능과 의미작용〉, 《우리어문연구》 제35권, 2007.



* 이 글은 2022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학비평활동지원을 받아 집필하였습니다.














김수형
작가소개 / 김수형

전남 목포 출생. 2019년 《중앙일보》 중앙신인문학상 수상, 목포문학상 본상 등을 수상하였으며, 평론집 『존재의 푸른빛』을 출간했다. 2021년 아르코문학 창작기금과 2022년 아르코 비평활동기금을 수혜하였다. 중앙대학교 대학원에서 문예창작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목포대학교 호남문화연구소 공동연구원으로 문학교재 발간과 문학 강의를 하고 있다.


《문장웹진 2022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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