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대한민국 태극기이 누리집은 대한민국 공식 전자정부 누리집입니다.

공식 누리집 주소 확인하기

go.kr 주소를 사용하는 누리집은 대한민국 정부기관이 관리하는 누리집입니다.
이 밖에 or.kr 또는 .kr등 다른 도메인 주소를 사용하고 있다면 아래 URL에서 도메인 주소를 확인해 보세요.
운영중인 공식 누리집보기

루나 이클립스

  • 작성일 2023-04-01
  • 조회수 2,600

루나 이클립스

백영


창밖은 밤이었다.

하늘에는 붉은 달이 떠 있었다. 해인지 달인지 정확히 분간되지 않았다. 붉은 환은 시간이 흐른 후에도 계속 같은 자리에서 비행기를 따라오고 있었다. 나는 B시에서 출발하기 전에 안나에게 10월 31일에 인천공항 제2터미널에 도착할 예정이라는 것과 리허설을 포함한 행사 일정을 미리 알려주었다.

좌석은 비상구 창문 쪽이었다. 이륙 직후부터 갓난아기가 칭얼대기 시작하고 젊은 부부가 아이를 번갈아 어르고 달래는 소리가 뒷자리에서 끊임없이 이어지고, 승무원들은 좌석 사이로 수레를 끌고 다녔다. 기류가 불안정하니 벨트를 매라는 세 번째 방송을 듣고 나서 나는 승무원에게 부탁해서 좌석을 옮겼다. 아이 울음소리가 조금 멀어졌다.

승무원이 다가와 나를 깨웠다. 가져온 기내식의 으깬 감자와 비프는 맛이 없고 모닝 빵은 딱딱했다. 방울토마토 두 개와 오렌지와 사과 반쪽이 담긴 샐러드는 먹는 둥 마는 둥 했다. 중간 간식으로 나온 주먹 크기의 샌드위치와 사이드 간식으로 제공된 프레첼마저 입맛을 돋우는 데는 실패였다. 어디선가 라면 냄새가 흘러왔다. 같은 걸 끓여 달라고 해서 그건 다 먹었다. 음료로 뭘 먹겠느냐고 승무원이 또 물었을 때 처음에는 제로콜라를 달라고 했지만, 두 번째는 와인을 청했다. 와인을 마신 후에는 조금씩 기분이 나아졌고 그때부터는 도착 후 할일을 아이패드에 메모하기 시작했다.

공항을 떠나온 후 열 시간째 되었을 때 클라우드에서 옮겨 놓은 사진들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화면을 밀고 또 밀자 뒤쪽에 숨은 안나와 안나 엄마를 처음 본 여름과 가을의 시간이 나타났다. 시 당국에서는 탈마스크를 허용했지만 열차나 지하철을 탈 때는 여전히 마스크를 꼭 쓰라는 방송이 들려오던 시점이었다. 암트랙 열차를 타고 해안가에 있는 소도시로 여행을 갔을 때였다. 주홍색 조각 호박 두 개가 양 귀퉁이에 그려진 플래카드가 내걸린 유령 축제 거리를 걷고 있는 안나, 기념품을 파는 가게 안에서 산 검은 마녀 모자를 쓰고 있는 안나가 나타났다.

*

B시도 2020년 상황에는 도시 전체가 한동안 유령 타운이었다. 그즈음 누군가 아파트 발코니에 서서 즉흥 연주를 하거나 노래를 부르는 유튜브 영상이 인터넷에 떠돌았다. 수영선수는 부엌 식탁에 엎드려 수영 연습을 하고 무용수는 거실 한가운데서 체조를 했다. 마라토너는 발코니에서 혼자 뛰기도 했다. 그 영상에는 높낮이가 다른 스텐 냄비를 잔뜩 늘어뜨려 놓고 그걸 드럼처럼 두드리며 연주하는 남자의 즉흥 공연이 담겨 있다. 그 남자가 나라는 것을 확인한 후 영상 잘 봤다고 지인들이 하나둘씩 연락을 해왔다. 내가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생존신고를 한 셈이었다.

그 후로도 햇수로 2년이 되어 가도록 나는 외부 활동을 전혀 하지 못하고 작업보다는 창밖을 바라보는 일이 더 많은 날을 보내고 있었다.

내가 사는 아파트의 주민들은 나처럼 저소득층을 위한 임대주택 지원 제도의 혜택을 받아 운 좋게 입주했거나 정년퇴직한 노인들, 남미나 아시아에서 취업비자를 받아 일하러 온 노동자들이다. 엘리베이터를 타면 드문드문 앳된 얼굴도 보이는데 그들은 월세가 인근 아파트에 비해 저렴하다는 조건에 이끌려온 유학생들이나 단기 체류자들이었다. 갑자기 바깥이 소란스러워지고 여러 개의 짐을 한꺼번에 담아서 운반할 수 있는 이동 카트 소리가 문밖에서 들려오면 잠시 살고 나갈 학생들이 이사해 오는 소리였다.

엘리베이터 옆에 있는 공용 세탁실 쪽으로 걸어가는 중이었다. 암적색 카펫이 깔린 칙칙하고 어두운 복도가 벽을 새로 칠하기라도 한 것처럼 문득 환했다. 비상구 쪽 방문 앞에서 처음 보는 여자의 얼굴이 나타났다. 넷플릭스에서 그즈음 상영 중인 한국 드라마 속 여배우처럼 등을 덮는 긴 머리의 계란형 얼굴에 눈매가 또렷한 미인이었다.

그날 안나는 B시에 막 도착했다. 트럼프 정권의 비미국인을 대상으로 한 방어적 조치들과 미국 대사관의 비자 발급 업무 중단으로 일정이 지연되었다가 바이든으로 정권이 바뀌고 나서 입국이 가능해졌다. 딸을 도와주기 위해 안나 엄마가 함께 들어왔다. 안나는 나를 발견하고 다가왔다. 익스큐즈미, 메이 아이 애스크…… 잠시 머뭇거리더니 물었다. 이 아파트는 원래 거실과 방에 등이 없나요? 전 세대 투룸 구조인 아파트는 현관 등과 부엌 등만 기본 옵션이고 나머지는 개별적으로 스탠드 등을 구입해서 사용해야 하는 구조였다. 안나는 자신이 맞닥뜨린 상황이 도통 이해가 안 된다는 듯이, 이제 곧 어두워지는데 당장 스탠드 등을 어디서 구해요? 체머리를 흔들었다. 이런 현지 사정은 도착하기 전까지는 파악할 수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나는 아파트에서 가장 가까운 리빙몰의 위치부터 알려주었다. 안나는 우버를 호출했다.

안나 엄마는 처음엔 나를 중국인으로 알고 거리를 두는 눈치였지만 내가 한국계 미국인이고 미주리주에서 양부모와 살았다는 사실을 알고는 반색을 했다. 아, 미주리에서 오셨어요? 우리도 미주리에서 잠깐 살았답니다.

나를 보는 눈빛이 180도 달라졌다. 그때부터 안나 엄마는 복도 반대편 끝에 사는 나를 찾아오기도 하고 때때로 식사에 초대하며 살갑게 굴었다. 내가 알려준 H마트에 가서 한국에 비해 몇 배가 비싼 식품 재료들을 사온 토요일 밤에는 꼭 나를 불러서 저녁을 함께 먹었다. 딜리셔스. 베리 딜리셔스. 식사 때마다 내 입술은 처음 대하는 음식을 흡입하듯이 순식간에 먹어치웠고 그 음식들의 맛은 끈끈함과 살가움으로 대뇌에 각인되었다. 양엄마는 나에게 늘 자상했지만 그 음식 속에서 끈끈함과 살가움을 느낀 적은 없었다. 안나 엄마는 나에게 한국 요리의 이름을 가르쳐 주려고도 애썼다. 생소한 이름들은 곧 잊혔지만 불린 당면에 당근 양파 버섯 채소가 들어가고 노랗고 하얀 계란 지단이 조화를 이룬 요리 이름이 잡채라는 것을 뒤에 안나 엄마가 물었을 때 정확히 기억해냈다. 소고기 스튜처럼 보이는 불고기전골 요리를 먹는 중에 지금 이 맛은 절대 잊을 수 없을 거라고, 이런 음식은 한 번 먹으면 앞으로 자꾸 먹고 싶어질 거라고 말해서 안나 엄마를 기쁘게 했다.

식사를 하면서 주로 들은 것은 안나 가족이 미국 중부의 시골 마을에서 잠시 살던 시절의 이야기다. 안나는 그때 C시의 저널리즘 스쿨에 연수를 온 아빠를 따라 왔고 공립초등학교의 ESL반에 들어갔다. 안나 엄마는 싸이월드 미니 홈피에 그 시절의 사진을 매일 올렸지만, 지금은 그 홈피가 폐쇄되어 사진을 볼 수가 없게 되었다고 아쉬워했다. 안나가 노란색 스쿨버스를 타고 내리는 모습, 마을 친구들과 볼스케어를 하고 아빠와 근린 호수에서 낚시를 하는 사진 등을 편집해서 동영상처럼 올려 두었는데 따로 저장해 두지 못했다는 것이다. 안나 아빠는 차에 가족들을 태우고 장거리 운전을 하며 여행을 다녔다. 그때 B시에도 왔는데 딱 하루 머물렀다. 언젠가 또 오자고 했지만 가족 모두가 함께 한 여행은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안나 모녀의 입에서 독립 기념일의 불꽃 축제, 사과 농장, 한밤중에 마차를 타고 묘지를 찾아가는 지역 풍속이 흘러나올 때였다. 다섯 살 이후 떠올려 보지 못한 한국의 일가들을 우연히 만난 감흥이 일었다. 양부모의 기대와 달리 다른 지역의 컨서바토리에 들어가 버리자 학비 지원이 끊어졌고 그 후에는 한 번도 양부모를 만난 적이 없다는 사실은 그들에게 말하지 않았다.

나는 안나 때문에 버텼어요. 그 말을 들은 것은 세 번째 식사 자리였다. 그날은 내가 틀어 놓은 플레이리스트에서 흘러나온 음악이 안나 엄마의 취향에 맞았다. 이탈리안들이 많은 동네로 가서 파스타를 먹고 돌아와 2차로 버드와이저와 라거를 주량을 넘겨 마신 밤이었다. 그때는 안나 아빠가 귀국 후 오랜 투병 끝에 이젠 고인이라는 사실을 아직 알지 못한 시점이었다. 안나는 아파트에서 걸어서 5분 거리 병원 부속 리서치 센터에서 9월부터 인턴 근무를 시작했다.

*

안나 엄마는 곧 귀국을 앞두고 있었다. 마침 핼로윈 시즌이었다. 안나는 엄마와 근교 여행을 가고 싶었고 나는 인터넷 사이트에서 열차 예매를 도왔다. 어떤 캐릭터의 옷을 입을지 한 달 전부터 고민하고 솜씨 좋은 엄마들은 아이에게 직접 옷을 만들어 입히고 미리 덩치 큰 호박을 사놓은 후, 핼로윈데이가 임박하면 조각을 시작하는 달의 마지막 날. 우리는 암트랙을 탄다. 해안선을 따라가며 달리는 노선이었다.

열차는 유령 축제가 열리는 해안가 소도시에 한 시간도 안 되어 도착했다. 해골이 그려진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 해적, 유령, 죄수와 공주와 기사로 분장한 사람들이 열차 안에서 쏟아져 나왔다. 안나 모녀와 나만 평소와 다를 것 없는 평범한 차림이었다.

주홍빛 조각 호박들이 양쪽에 그려진 플래카드들이 줄줄이 걸린 축제의 거리로 들어섰다. 엄마, 저길 봐. 안나가 엄마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안나 엄마가 고개를 돌리자 ‘오징어 게임’ 영화 캐릭터인 프런트맨과 똑같은 옷을 입은 두 남자가 슬렁슬렁 걸어오고 있었다. 프런트맨은 영화의 인기를 반영하듯 유행 코스튬이 되어 있었다. 프런트맨 뒤에서 홍학 인형복으로 복장을 통일한 노인 무리가 뒤뚱뒤뚱 오는 모습을 보자 안나는 얼른 휴대전화 동영상 녹화 버튼을 눌렀다. 회색 죄수복을 입고 얼굴을 하얗게 분칠한 사내가 문 앞에 서 있는 첫 번째 가게를 지나치고 두 번째 기념품 가게로 들어갔다. 비좁은 가게 안 계산대 앞에 사람들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입구에 초콜릿과 사탕을 산처럼 쌓아 놓은 매대를 지나 모조 밍크 벨벳 모자와 검은 마녀 모자들이 쌓인 곳으로 갔다. 안나는 거울 액자 앞에서 머리 부분이 지붕처럼 생기고 챙이 기다란 벨벳 모자를 썼다 벗었다 했다. 안나 엄마는 그 옆에서 언니와 친구에게 줄 선물을 고르기 시작했다. 포장된 은제 스푼을 만지작거렸다. 그게 맘에 드는 눈치였다. 좋은데요. 크지도 않고 부피도 안 나가니 가방에 담기에도 적당하고. 내 말을 듣고 나선 열 개나 집어 들어 계산대로 가져갔다.

영화배우처럼 분장을 한 사람들은 연예인 못잖은 인기를 끌었다. 사람들이 가까이 가고 앞 다투어 사진을 찍으려고 했다. 아기 공룡 인형옷을 입은 아이가 뒤뚱뒤뚱 앞으로 걸어갔다. 아이는 양엄마가 직접 만든 체크무늬가 많이 들어간 조끼와 무릎이 드러나는 반바지를 내게 입힌 후 마을 사람들에게 나를 바다를 건너온 어린 왕자라고 인사시켰던 언젠가를 기억나게 했다. 그때 나는 부끄러웠다. 내 또래 남자 아이들이 입은 옷은 군인이나 소방관이나 파일럿 옷이고 여자 아이들은 공주나 요정 옷을 입고 있었다. 다음 해에는 검은 망토를 두르고 마을의 다른 집 문 앞에 서서 문을 두드렸다. “Trick or treat” “Trick or treat” 수줍게 말했다. 사탕과 초콜릿을 받아냈다.

안나는 프랑켄슈타인 분장을 한 사내가 허그 자세를 취할 때 굳이 거부하지 않았다. 프랑켄슈타인이 안나 목에 팔을 두르고 목을 조르는 시늉을 할 때 ‘나 홀로 집에’ 영화 속 소년처럼 과장된 표정을 지었다. 안나 엄마가 옆에서 웃음을 터뜨렸다. 안나 어릴 때는 동네 영어 유치원에서나 하는 행사였어요. 애들이 뭔가 괴상해 보이는 복장을 하고 다니는 모습이 참 귀엽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더군요. 요즘은 흔해졌어요. 테마파크에서도 10월 한 달 내내 핼로윈 컨텐츠로 채우고 있거든요. 안나 엄마의 말을 들으며 나는 안나의 모습을 각도를 달리하여 여러 장 찍어 주었다.

마녀 박물관을 구경하고 나서 항구 근처에서 안나 엄마가 준비해 온 도시락을 먹고 주변의 유적지까지 구경하고 나자 어느덧 해가 기울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사람들은 더 많아졌다. 거리는 점점 코스튬 무도회장처럼 변해 갔다. 유령 축제의 밤에 참가하려는 여행자들이 몰려오고 있었다. 해가 저문 후에는 부모의 손을 잡은 아이들이 총총히 걸어 다녔다. 어린아이들이 어둑한 밤길을 자유로이 걷고 핼로윈 데코를 한 집을 찾아다니며 사탕과 초콜릿을 받아내는 모습을 안나 모녀는 따라다니며 구경했다. 우리는 열차 예약 시간에 맞춰 늦지 않게 돌아서야 했다. 역으로 돌아가는 길은 막 열차에서 내려 역에서 나오는 사람들과 돌아가는 사람들이 엉켜 혼잡스러웠다. 봉을 든 사람들이 인파를 통제하고 있었다. 우리는 천천히 이동했다.

며칠 후 안나 엄마는 한국으로 돌아갔다. 귀국 전날, 안나 엄마는 마지막 요리를 했다. 송별연을 겸한 식사 자리였다. 미카엘이 한국에 오는 날, 최고의 환영 만찬으로 대접할게요. 그때 안나 엄마에게 기대한다고 꼭 한국에서 보자고 한 것은 진심이었다. 적당한 취기를 느끼며 다들 한결 기분이 좋아졌을 때 안나 엄마는 진짜 하고 싶은 말을 덧붙였다. 미카엘, 안나를 부탁합니다.

안나 엄마는 나에게 왜 그런 말을 했을까. 부탁이란 단어에는 결코 가볍지 않은 울림이 느껴진다. 아무나 아무에게나 부탁하는 게 아니다. 우리는 겨우 두 달 반 전에 처음 만난 사람들이었다.

다시 생각해 보면 안나 엄마가 부탁한다고 했을 때는 내가 믿을 만한 사람이라는 의미였다. 응급상황이 생겼을 때 엄마 대신 가까이서 달려와 도와줄 한 사람. 안나 엄마가 나에게 바란 건 그 정도였을 것이다. 안나가 총기 사고가 여러 번 발생한 남쪽 지구에 가려 했을 때 나는 거긴 위험하니 안 가는 게 좋겠다고 말렸다. 안나에 대한 그런 감정은 책임감만은 아니었다.

안나 엄마가 떠난 후에 곧 겨울이 닥쳐왔다. B시의 겨울은 길고 춥기로 유명하다. 난방기가 가동되는 소리가 벽을 울리는 밤을 보내고, 아침이면 창밖에서 작업을 시작한 인부들이 내는 목소리와 트럭이 공사장으로 들어오는 소리에 눈을 뜨곤 했다. 안나가 이사 온 후에는 발코니에 무릎을 구부리고 앉은 채 뒷마당을 자주 내려다보았다. 새벽에 집을 나선 근교의 통근자들이 도시락 가방과 텀블러를 양손에 쥐고 등에는 백팩을 멘 차림으로 주립병원 쪽으로 줄지어 올라가는 것을 보면서 안나를 기다렸다.

드디어 안나가 길에 나타난다. 집을 나서서 이어폰을 꽂은 채 음악을 들으며 걸어간다. 안나가 좋아하는 음악밴드는 브로콜리라는 재밌는 이름이 들어가는 밴드였다. 걸어가다가 안나는 이따금 엄마에게 전화를 건다. 아마 페이스톡일 것이다. 안나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지켜보다가 돌아서곤 했다. 안나는 빨리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안나는 2022년 여름 내가 한국으로 오기 3개월 전에 한국으로 돌아갔다.

안나가 귀국할 즈음 한국의 문화재단 주최로 ‘코로나로 3년 만에 열린 K예술 콘서트’ 공연이 LA에서 열렸다. 며칠 후에 서울에서 열릴 예정인 공연은 LA보다 더 확대된 규모의 행사로 나는 내가 졸업한 컨서바토리 출신 재외 한인 그룹 밴드의 음악 편곡을 담당했다. 콜라보 공연에 보컬로도 참여할 예정이다. 나에게 한국행은 안나 모녀를 다시 만날 수 있는 기회였다.

*

담당자에게서 온 메일을 열어 보았다. 이틀 후에 예정된 공연 일정이 취소되었다는 안내였다. 나는 취소된 이유가 무엇인지 물었다. 국가 애도 기간이 선포되었다. 오픈 행사는 부득이하게 취소될 수밖에 없었다. 담당자는 양해를 구했다. 일정을 다시 알려주겠다고 한다.

이튿날 아침 늦은 조식을 먹고 창가에 섰다. 취소된 일정이 빛으로 변환되어 내 머리 위로 바늘처럼 우수수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아이패드에 적어 놓은 일정에 블록을 지정한 후 delete 버튼을 눌렀다. 서판을 교체한 듯이 텅 빈 화면이 대신 나타났다. 하얀 백지 상태로 명상하듯 햇빛을 느꼈다.

일단 주변 거리부터 돌아보기로 했다. 무엇을 할 것인가는 걸으면서 생각하기로 했다. 걸으면서 생각하기는 오랜 버릇이었다. 걷다 보면 엉킨 실마리가 하나씩 풀려 나가곤 했다. 때때로 길 위에 버려진 기분이 들 때도 있는데 그건 익숙한 기분이었고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나는 다시 온 모국에서 거리의 배회자가 되었다.

그 붉은 벽돌색 건물을 발견한 것은 걸어가다가 사거리에 이르렀을 때였다. 열여덟 개의 대형 광고판이 차로를 따라 가로등처럼 늘어서 있고 광고판에서 한국의 모델들과 배우들이 번갈아 나타나고 화려한 화면들이 번쩍거렸다. 성형외과 간판이 붙은 건물이 많이 보이고, 극장 건물이 있고, 어학원, 프랜차이즈와 캐릭터 브랜드숍과 음식점이 가득한 거리였다.

벽돌색 건물은 주변의 건물들과 다르게 타워형으로 지어진 고층 빌딩이었다. 입구 쪽 외벽에 가로 20미터 세로 10미터쯤 되는 대형 글판이 걸린 것이 눈에 들어왔다. 글판에는 짤막한 글귀가 적혀 있다. 무슨 글귀가 적혔는지 지나가다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뒤로 젖히고 한참 올려다보았다. 흐릿한 배경 그림 위에 띄엄띄엄 간격을 두고 배열된 검은 글자들을 읽었다. 우리가 절망의 아교로 밤하늘에 붙인 별. 그래, 아이들 얼굴 우수수 떨어졌다. 어머니의 심장에, 단 하나의 검은 섬에.

조금 더 걸어가서 건물 모퉁이를 돌아가자 지하층으로 이어지는 계단이 나타났다. 계단의 벽면은 물이 수직으로 흘러내리는 인공폭포였다. 폭포에 시선을 주다가 사람들이 계단을 오르내리는 것을 보고 따라 내려갔다. 중간 통로로 연결된 회전문 안으로 들어섰다. 책과 사람들로 가득한 거대한 매장이 시야에 펼쳐졌다. 서가 길이만 수십 킬로가 넘는다는, 말로만 들은 세계 최대의 문고. 언젠가 안나 엄마에게 들은 기억이 났다. 더 큰 서점이 시청 근처에 있는데 그것은 본점이고 안나 가족이 사는 집 근처에는 분점이 있다. 안나 가족은 주로 그 분점을 찾아간다고 했다.

책이 너무 많아서 책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통로를 따라 진열된 책들이 홀푸드 마켓 매대에 쌓인 과일과 야채처럼 보였다. 평소에 나는 책을 읽는 사람이 아니었다. 다만 베스트셀러 판매대에서 조금 전 건물 외벽 글판에서 본 시인의 이름이 보였을 때 그 시인의 시집을 집어 들고 계산대로 갔다. 시집을 구입한 후에는 허기를 느꼈다. 쉬지 않고 걷기만 했기 때문에 다리도 아팠다. 나는 시차 적응이 안 된 상태였다. B시에 있었다면 한밤중이었다. 눈꺼풀이 무거워지고 누군가 내 몸속에 쇠추를 달고 자꾸 바닥으로 끌어내렸다. 너른 지하 공간에는 책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통로의 끝에서 스타벅스가 보였다. 커피와 샌드위치를 주문한 후 나는 앉을 만한 자리를 찾아다녔다. 꽤 너른 홀 안에는 빈자리가 보이지 않았다. 벽을 따라 1인용 테이블이 놓인 자리 모퉁이에 한 사람이 끼어 앉을 만한 공간이 나타났을 때 그곳에 앉았다.

클래식 음악이 흐르는 아늑한 실내에 모인 사람들을 구경했다. 대부분 연인들이거나 노트북을 앞에 놓고 자신만의 작업에 열중하거나 자족적인 시간을 보내는, 평화로운 일상 풍경 속 젊은이들이었다. 그들 중 누구도 나를 신경 쓰는 사람은 없지만 B시의 거리 곳곳에서 눈에 띄는 홈리스들처럼 빗지 않은 장발에 헐렁바지를 입은 차림으로 우적우적 샌드위치를 먹는 내 몰골이 저들에게 어떻게 보일지 방해가 되지 않을지 신경이 쓰였다. 나는 곧 지하 서점을 나왔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맞은편에서 빠르게 걸어오는 중년 여자가 보였다. 휴대전화를 들고 누군가와 통화를 하며 걸어오고 있었다. 여자가 걸어오다가 갑자기 멈췄다. 선 채로 계속 말했다. 선배 언니가 만나자고 불러서 나갔는데…… 선배 언니는 빠져나왔다는데…… 여자는 다시 걷기 시작했다. 이제는 어딘가에 부딪혀서 충격을 받은 것처럼 절뚝거리며 걸었다. 갑자기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여자의 얼굴이 점점 가까워질수록 심장 뛰는 소리가 더 커졌다. 여자의 얼굴을 확인한 순간부터 눈을 다른 곳으로 돌릴 수가 없었다.

중년 여자는 나를 스쳐 지나갔다. 나는 여자를 뒤따라갔다. 물어 보고 싶었다. 확인이 필요했다. 여자는 빠른 걸음으로 뛰듯이 걸어가며 계속 전화기에 대고 말을 하고 있었다. 병원을…… 병원에…… 병원으로…… 여자는 갑자기 차도로 내려섰고 차로를 가로질러 길 건너편으로 뛰었다. 야, 이 미친년아, 소리가 들려왔고, 클랙슨 소리가 연달아 크게 들렸다. 나는 더 따라갈 수 없었다. 길을 건너간 여자가 시야에서 보이지 않을 때까지 길바닥에 두 발이 얼어붙은 사람처럼 움직일 수 없었다. 아무래도 잘못 본 것 같았다. 안나 엄마일 리는 없었다. 일 년 전에 본 얼굴과 조금 전에 본 여자의 얼굴은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안나 엄마와 조금 닮은 사람을 내가 착각한 것이라 여겼다. 아니면 헛것을 본 것이었다. 분명 내가 아는 안나 엄마는 아니었다.

안나에게서는 연락이 없었다.

방으로 돌아왔다. 텔레비전을 켰다. 채널을 이리저리 돌렸다. 뉴스 속보를 전하는 채널에 고정했다. 길 위에서 일어난 사고에 대한 뉴스를 전하고 있었다. 길 위에서 갑자기 사람들이 사라지는 일. 대도시에서 일어날 수 없는 일에 대해 앵커가 전하고 있었다.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 웅웅거리는 말들 속의 사건을 나는 파악하기 어려웠다. 무엇보다도 사건을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그 사건과 나는 아무 관련이 없으므로, 나는 외국에서 살아왔으므로, 사고 관련자 중에 내가 아는 사람이 있을 리 없었으므로 나는 더 관심을 두고 싶지 않았다. 내가 이 도시에서 아는 사람은 안나 모녀가 전부였다. 번개처럼 스치는 생각을 황급히 떨쳐버렸다.

안나에게서는 아직 연락이 없었다.

안나는 글 제목에 꼭 결심을 덧붙여 쓰는 습관이 있다. 안나의 계정은 결심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일주일에 3회는 꼭 운동할 결심. 건강해지겠다는 결심. 책을 100권 읽겠다는 결심. 계속 열심히 살아갈 결심. 안나 엄마는 안나와 자주 안부를 나누면서도 메신저는 깊은 생각을 나눌 공간은 못 되기에 글을 통해 딸의 마음을 읽는다고 말한 적이 있다. 엄마에게 안나는 늘 부지런하고 성실하고 적극적인 딸, 한 번도 실망시킨 적이 없는 딸, 기쁨만 주었던 딸. 안나는 1997년생. 누가 내 삶을 결정해 주었으면 좋겠다, 안나는 한국을 떠날 때 회의하고 있었다. B시에서 일을 마치고 한국으로 되돌아갈 때는, 이제 나의 시간과 내가 쌓아올린 것들이 내 삶을 결정해 줄 것이다, 스스로 선언했다. 그런 기록들이 이어졌다. 안나의 마지막 결심은 10월의 세 번째 주에 올라왔다. 그 글에서 시간이 멈춰 있었다.

타원의 궤도를 따라 도는 순환노선을 발견했다. 차를 타고 가다가 중간에 내려 주변을 돌아보고 다시 같은 역에 올라타고 돌아올 수 있으니까 시티투어버스와 다를 것이 없었다. 전차가 멈출 때마다 어느 역인지 살폈다. 내리고 싶은 역에 내리면 되었다. 어느 역에서 내려야 할지 고민했다. 그때 역명판이 눈에 들어왔다. CITY HALL.

지하도를 빠져나왔다. 광장으로 이어지는 출구로 나오자 연두색 조끼 차림의 제복을 입은 사람들이 출구 앞에서 대기 중이다. 그들 뒤로 창에 철망을 씌운 버스들이 차로에 세워져 있다. 내가 나온 입구 쪽에는 바로 앞에서 사람들이 길게 줄지어 서 있었다. 안내를 맡은 사람인 듯 누군가 이쪽으로 줄을 서세요, 두리번거리는 나에게 손짓했다. 사람들이 기다랗게 늘어선 줄의 끝에 가 섰다. 발끝으로 시린 기운이 밀려들었다. 고개를 들었을 때 회색 하늘이 눈에 들어왔다. 구름은 낮고 허공에서 누군가 공중에 잘게 찢은 종이를 흩뿌리는 듯했다. 휴지 조각들이 바람개비처럼 허공에서 날아다녔다. 눈이 오기에는 한참 이른 시점이었다. 줄은 천천히 줄어들었다.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가고 있을 때 누군가 흰 꽃을 내 손에 쥐어 주었다. 그 꽃을 들고 걸었다. 사람들을 따라 걸어가다가 멈추었다. 나는 제단 앞에 서 있었다. 작은 향로가 한가운데 놓인 제단이었다. 들고 간 흰 꽃을 향로 옆에 내려놓았다. 고개를 들어 앞을 바라보았다. 흰 꽃들이 보였다. 흰 꽃. 흰 꽃. 흰 꽃…… 온통 흰 꽃으로 채워진 제단. 흰 꽃들 너머로 검은 휘장을 기다랗게 늘어뜨린 커다란 벽이 보였다. 꽃의 가운데 자리에 조그마한 위패가 하나 놓여 있었다. 위패는 안이 텅 비어 있다. 저 위패는 무엇인지, 여기는 누구를 위한 제단인지, 그런 물음이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찰칵. 찰칵. 등 뒤에서 플래시가 터지는 소리가 났다. 뒤돌아섰다. 카메라들이 보였다. 나는 당황했다. 제단에서 얼른 벗어났다. 이내 카메라의 시선에서도 벗어났다. 나는 제단에서 멀어졌다. 제단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스무 명쯤 서 있는 무리가 보였다. 저마다 팻말을 들고 서 있다. 그들은 처음엔 고요했다. 이윽고 무리 중 한 사람이 침묵을 깨고 외치기 시작했다. 그 무리의 반대편에 또 다른 무리가 있었다. 반대쪽 무리 쪽에서도 외침이 들려왔다. 두 무리는 이윽고 서로를 향하여 외치기 시작했다.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이 교차했다. 무리들이 쏟아내는 말들은 계속 나를 뒤따라왔다.

숙소로 돌아왔을 때는 온몸에 기운이 하나도 없었다. 나는 지쳐 있었다. 팻말에서 본 낯선 말이 떠올랐다. 모르는 말이어서 사전에서 뜻을 찾아봐야 했다. 사전에는 뜻이 풀이되어 있었다. 마땅히 해야 할 것으로 기대되는 일정한 행위를 하지 않는 일. 나는 부작위, 그 낯설고 어려운 말이 광장에 설치된 제단과 무슨 연관성이 있는지 알 수 없었다.

*

혼자 왔다.

한 줄기의 길. 그리 넓지 않은 길. 열 사람이 나란히 걸어가면 가득 찰 보폭의 길. 길의 양쪽은 상가였다. 달빛 거리의 상점들은 문을 닫았다. 월광. 이 거리의 이름이다. 개기월식이 있는 날이었다. 안나는 서울의 명소 거리를 안내했다. 공연이 끝나고 귀국 후 첫 만남을 이곳에서 가지면 어떻겠는가, 제안했다. 특별한 밤이 될 거라고 했다. 그러나 안나에게서는 더 이상 연락이 오지 않는다.

인적이 끊긴 거리에 대신 쓰레기들이 뒹굴고 있다. 뒤집힌 채 이리저리 바람에 쓸려 다니는 빈 상자들. 넘어진 오토바이와 자전거. 담배꽁초들. 담뱃갑. 벗겨진 신발 한 짝. 페트병들. 음료수가 반쯤 들어 있는 유리병. 찢어진 종이 조각들. 로커를 그려 놓은 벽화에 흰 스프레이로 누군가 써놓았다. 영가이, 희망을 잃지 마. 그 옆에 누군가가 복사된 사진들을 붙여 놓았다. 뜯지 않은 과자 봉지들. 오 예스라고 쓰인 겉봉지. 벌꿀캔디갑. 검은 비닐봉지들과 함께 달빛이 아름다운 거리는 유령거리가 되었다.

아무도 없는 것이 아니었다. 그림이 그려진 층층 계단에 누군가 앉아 있었다. 언니, 부른다. 한 사람이 더 있다. 두 사람의 실루엣이 어른거린다. 앉은 여자와 서 있는 여자. 계단에 앉은 여자가 그 사람을 언니, 라고 부른다. 서 있는 여자가 계단에 앉은 여자를 사진으로 찍고 있다. 사진을 다 찍고 여자들은 걸어갔다. 길목 안쪽으로 걸어갔다.

나는 여자들을 뒤따라 일행처럼 걸어갔다. 이해의 폭이 넓은 사람을 만나야 해. 이해의 폭은 다양한 경험에서 얻어지거든. 고군분투할 때 우리는 여러 가지 해결책을 모색할 수 있지. 항상 성공할 수는 없어. 일부는 실패하고 일부는 좋은 결과로 이어져. 무수한 실패가 있을 수 있다는 깨달음, 그 와중에도 좋은 결과는 반드시 온다는 믿음, 실패를 겪을 때도 얻는 깨달음, 실패가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깨달음이 중요해. 또 실패를 극복한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서 너는 이해의 폭이 넓어질 수 있어. 키 큰 여자가 어린 여자에게 하는 말이 들린다. 맞아. 선배 말이 맞아. 두 여자는 고개를 들어 길가의 이층집을 보고 있다. 저기 좋아 보여. 저기 들어갈까. 불이 꺼져 있던 이층 디저트 카페 창문에 불이 들어와 있다. 오팔색 네온등이 희미하게 반짝였다. 혼술집에도 불이 켜졌다. 루나 이클립스 관람 환영. 창문에 덧붙여진 종이 위 글자들이 읽혔다. 저기도 좋겠다.

임시 개장이라도 한 듯 가게들이 환해졌다. 처음에는 세 사람이 걷고 있었다. 세 사람은 네 사람이 되고 다섯 사람이 되고 점점 사람들이 많아졌다. 무리 지어 걸어가는 사람들이었다. 점점 더 사람들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대부분 코스튬 분장을 하고 있었다. 해골이 그려진 검은 옷을 입은 사람, 만화영화 속 여우 분장을 한 외국인, 토끼 모자를 쓴 키 큰 남자, 백설 공주 옷을 입은 가녀린 여자, 마녀 모자를 쓴 여자. 다들 축제 거리에 어울리는 차림들을 하고 있다. 사방에서 타래가 풀리듯 사람들이 자꾸 흘러나왔다. 나를 향해 걸어온다. 나를 지나쳐서 걷는다. 발걸음 소리를 낸다. 거리의 사람들은 부옇게 보였다. 형체가 또렷하지 않다. 그림자인 듯 겹쳐 보이기도 한다. 허구인지 현실인지 분간되지 않는다. 하지만 분명히 이 길 위에서 모두들 고유한 목소리를 내고 개성적인 분장을 하고 걸어 다니고 있었다. 기념일을 맞아 축제 거리에 왔거나, 그 거리를 지나가던 사람들이었다.

거리에 있는 사람 중 누군가 외쳤다.

지금 6시입니다. 이제 곧 시작됩니다. 목소리는 계속 들려왔다.

월식은 7시 16분 12초부터 진행됩니다.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생기와 탄성이 살아 있는 앳된 목소리들이 와글와글거렸다. 점점 더 사람들이 많아졌다. 나는 걸어가려고 했다. 걸을 수 없었다.

사람들에 휩쓸렸다.

점점 나는 숨을 쉴 수 없었다. 가슴에 심한 압박감을 느꼈다. 인파. 말 그대로 사람 물결. 걷는 것이 불가능했다. 그때부터는 흘러가기 시작했다. 머리 위에서 끊이지 않고 사람들의 말소리가 흘러갔다. 머리 위로 흐르는 강물처럼 소리들은 흘러갔다. …… 이윽고 소리가 무적소리로 바뀌며 점점 아득해져 간다. 먼 곳으로, 우주로, 바다로, 하늘로, 까마득한 기억 속으로 데려가는 무적. 무적은 영영 흘러가 버린 줄 알았던 기억을 시간을 거슬러 되돌아오게 만드는 음향. 보이지 않는 곳까지 한껏 멀리 흘러간 후 잊힌 기억을 반짝 터뜨리며 시간의 테이프를 빠른 재생 속도로 되감는 신호. 기억의 강물은 물처럼 흘러갔다가 다시 휘감아 소용돌이친다. 나를 또다시 타원의 궤도 위를 반복해서 돌고 도는 순환 열차에 태운다. 달리는 열차 안에서 창밖을 바라보는 안나와 안나 엄마가 보였다. 덜컹. 덜커덩. 해안가의 소도시로 달려가는 열차 안이었다. 안나 엄마는 창밖을 보고 있다. 이따금 가느다란 한숨을 내쉰다. 미카엘. 우리 안나를 부탁해요. 안나 엄마의 시선을 따라 나도 창유리 밖을 보았다. 창밖은 어둠이었다. 어둠은 차갑게 느껴지는 검은 물질이었다. 모든 살아 있는 것을 멈추게 하고 순식간에 빨아들이는 흡반 같은 블랙홀의 세계였다. 찬 기운이 등골로 스며들었다. 그때 머리 위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러분, 여러분. 이제 곧 붉은 달을 볼 수 있습니다. 머리 위에서 아까 외치던 사람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태양, 지구, 달이 일직선상에 있을 때

달이 지구의 주 그림자에 들어가기 시작하면 달은 붉게 변한다.

지구의 그림자 속에서 오직 붉은빛만이 달에 도달한다.

누군가 주문처럼 외는 소리가 들려왔다.

지금 보는 저 달은 앞으로 200년 동안 볼 수 없는 희귀한 달입니다. 여러분. 달님에게 부탁해 보세요.

밀지 맙시다. 밀지 맙시다. 밀지 맙시다. 밀지 맙시다. 밀지 맙시다. 밀지 맙시다.

달님. 달님. 달님. 달님. 달님. 달님. 달님. 달님. 달님. 달님. 달님. 달님. 달님.

사람들이 외치기 시작했다.

달님은 단 하나의 부탁을 들어 주신다. 지금 이 순간 내가 간절히 원하는 것. 그게 무엇일까. 어두워졌던 눈앞이 별안간 반짝이고 환해지고 검은 하늘에 뜬 붉은 달이 또렷이 보였다. 그 순간. 내 입에서 터져 나오는 소리가 있었다. 동시에 들려오는 소리가 있었다. 어둠 속에서 흘러나오는 소리. 땅속에 스며들었다가 되살아오는 소리. 솟구쳐 올라오는 소리. 처음에는 작은 소리. 그리고 점점 합창처럼 커져가는 소리였다.

살려주세요. 살려줘. 살려주세요. 살려줘. 살려주세요. 살려줘.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살려줘.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살려줘. 살려주세요. 살려줘. 살려주세요. 살려줘.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살려줘.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살려줘. 살려주세요. 살려줘. 살려주세요. 살려줘.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살려줘.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살려줘. 살려주세요. 살려줘. 살려주세요. 살려줘.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살려줘.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살려줘. 살려주세요. 살려줘. 살려주세요. 살려줘. 살려주세요. 살려줘.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살려줘. 살려주세요. 살려줘. 살려주세요. 살려줘.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살려줘.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살려줘. 살려주세요. 살려줘. 살려주세요. 살려줘.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살려줘.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살려줘. 살려주세요. 살려줘. 살려주세요. 살려줘. 살려주세요. 살려줘. 살려주세요. 살려줘. 살려주세요. 살려줘. 살려주세요. 살려줘. 살려주세요. 살려줘. 살려주세요. 살려줘. 살려주세요. 살려줘. 살려주세요. 살려줘. 살려주세요. 살려줘. 살려주세요. 살려줘. 살려주세요. 살려줘. 살려주세요. 살려줘. 살려주세요. 살려줘. 살려주세요. 살려줘. 살려주세요. 살려줘. 살려주세요. 살려줘. 살려주세요. 살려줘. 살려주세요. 살려줘. 살려주세요. 살려줘. 살려주세요. 살려줘. 살려주세요. 살려줘. 살려주세요. 살려줘. 살려주세요. 살려줘. 살려주세요. 살려줘. 살려주세요. 살려줘. 살려주세요. 살려줘. 살려 주세요. 살려줘. 살려주세요. 살려줘. 살려주세요. 살려줘. 살려주세요. 살려줘. 살려주세요. 살려줘. 살려주세요. 살려줘.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살려줘. 살려주세요. 살려줘. 살려주세요. 살려줘. 살려주세요. 살려줘. 살려주세요. 살려줘. 살려주세요. 살려줘. 살려주세요. 살려줘. 살려주세요. 살려줘. 살려주세요. 살려줘. 살려주세요.

수백 명이 달을 향해 보내는 목소리였다. 소리는 점점 커졌다가 점점 잦아들었다.

국가 애도 기간이 지나고 나서 열흘 후에 랜선 공연이 열렸다. 그날 나는 예정된 곡을 취소하고 대신 다른 창작곡을 발표했다. 내가 발표한 곡은 단 두 마디로 이루어져 있으며 단조롭고 강렬한 비트로 6분간 연속된다. 제목은 ‘단 하나의 부탁’. 그 곡은 2022년 11월 8일 루나 이클립스 데이의 밤, 달빛 거리에서 탄생했다.

* 본문에 서술된 짧은 시구의 출전 : 진은영, 「그러니까 시는」,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 10쪽, 문학과지성사, 2022년.

추천 콘텐츠

좋아하는 마음 없이

좋아하는 마음 없이 김지연 안지는 이른 결혼을 했는데 실패로 끝났다. 아니, 그걸 실패라고 할 수 있을까? 이혼을 한 건 사실이었지만 안지는 자신의 인생 여정에서 그때 이혼한 일을 실패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 뒤로 더 행복해졌다고 할 수는 없을지언정 조금 더 자기 자신에 가까운 삶을 살게 된 것은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혼이라는 단어를 떠올릴 때면 늘 그에 대해 변호하고 싶은 여러 말들이 떠오르곤 했기 때문에 처음부터 결혼 같은 건 하지 않는 편이 더 나았을 거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 때문에 이혼했다는 사실은 안지의 비밀은 아니었지만 먼저 나서서 밝히지도 않았다. 어릴 때 안지는 무척 전형적인 사람이 되고 싶었다. 구체적으로 그런 표현을 떠올리지는 않았다. 그저 자신이 속해야 하는 집단에서 튀지 않는 사람, 아주 평균적인 사람이고 싶었고 그런 사람이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을 했다. 찬반투표를 할 때면 눈치를 보다가 다수의 의견에 따라 슬그머니 손을 들었다. 친구가 좋아하는 가수를 따라서 좋아하고 친구의 것과 비슷한 브랜드의 신발을 사서 신었다. 친구들이 싫어하는 선생을 따라서 싫어했다. 사실 안지는 그 선생에게 남몰래 호감을 갖고 있었지만 친구들과 함께 떡볶이를 먹다가 술술 흘러나온 그 선생에 대한 욕을 듣고 재빨리 노선을 바꿔 함께 욕을 했다. 한동안 안지는 수학 시간마다 왜 애들은 저 선생을 싫어할까? 에 대한 답을 알고 싶어서 더 열심히 선생의 행동거지를 살폈다. 수학을 가르친다는 점만 빼면 딱히 나무랄 데 없는 사람이었다. 학생이 쉽게 답할 수 없는 내용을 골리듯 물어보지 않았고 무엇보다 학생들한테 사과를 할 줄 알았다. 뭔가 잘못 알고 섣불리 화를 냈을 때, 그러다 결국 진실을 알게 되었을 때, 다른 선생들은 그러게 헷갈릴 만한 짓을 왜 하고 다니느냐고 도리어 짜증을 부렸는데 그 선생은 재빨리 미안하다고 말했다. 미안하다. 내가 잘못 알았어. 미안해. 가끔 안지는 머릿속으로 그 목소리를 재생해 보곤 했다. 그 때문에 선생이 더 좋아졌지만 여전히 싫어하기 위해 애썼다. 누구나 다 그런 식으로 청소년기를 보내지 않나? 내가 아닌 사람이 되어 보려고 노력하면서? 안지는 대학에 갔고 연애를 했고 졸업을 했고 취직을 했다. 결혼도 했다. 아주 평균적인 삶이었다. 조금씩 빠르기도 했다. 조바심이 나 있었으므로. 자신도 남들처럼 지극히 평범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을 빨리 증명해 보이고 싶었으므로. 어느 정도 성공적인 것 같기도 했다. 남편이 바람이 나기 전까지는 그랬다. 식도 올리기 전 임신을 해 낳은 아이가 막 돌을 지난 참이었다. 임신이 아니었으면 결혼까지는 이어지지 않았을지도 몰랐다. 남편은 계속 후회하는 것 같았다. 그때 낙태를 밀어붙이지 않은 것을, 시간을 끌다가 영영 타이밍을 놓쳐버리고 만 것을, 어떤 결단력을 가지지 못한 자신을 자책했을지도 모른다. 그때 뼈저리게 깨달은 바가 있었는지 새로운 여자가 생겼을 때는 안지가 알아차리기도 전에 이혼을 해달라고 요구했다. 겨우 육 개월을 만났을 뿐

  • 관리자
  • 2024-07-01
소금 샹들리에

소금 샹들리에 정한아 호주에 사는 김이 오랜만에 귀국해서 친구들이 다 같이 모이기로 했다. 4명이 만나는 건 대략 7년여 만이었다. 방을 잡고 밤새 보자고 해서 오기 직전까지 망설였는데, 남편이 등을 밀었다. 정민이와 자신에게도 내가 없는 날이 필요하다고 큰소리를 치더니 정말 밤새 전화 한 통 없었다. 친구들과는 대학 동기였다. 전공은 문예 창작이었는데, 나는 2학년까지 다니고 학교를 그만뒀다. 그렇지만 정작 작가가 된 사람은 나뿐이라고 친구들이 투덜거렸다. 나는 작가가 아니라고 아무리 말해도 소용없었다. 그들은 십 수 년 전 내가 낸 단 한 권의 책을 기억하는 몇 안 되는 사람들이었다. 세 명 모두 미혼이었고, 아이를 가지지 않았다. 놀라울 정도로 예전 그대로인 친구들 사이에서 나만 철 지난 옷차림에 좀처럼 대화에도 섞이지 못했지만, 그런 것 때문에 마음이 상하지는 않았다. 오랜만의 서울 나들이에 술자리도 즐거웠다. 좋은 친구들이었다. 7년 전 정민이 자폐 스펙트럼 장애 판정을 받았을 때 그들은 자신의 일처럼 울어 줬고, 이후에도 종종 아이의 간식과 선물을 집으로 보내 줬다. 서서히 연락을 거둔 것은 내 쪽이었다. 애써 관계를 유지하는 일이 힘에 부쳤을 뿐, 그들에게 섭섭한 마음은 조금도 없었다. 지난 몇 년 동안 나는 집이 아닌 곳에서 밤을 보낸 적이 없었다. 다들 술에 취해서 침대로 간 뒤에도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아 휴대폰만 들여다보았다. cctv 속 거실은 엉망이었다. 엎어진 식판, 사방에 흩어진 블록 조각, 길게 늘어진 옷가지들. 남편은 불도 끄지 않고 아이를 재우러 방에 들어간 모양이었다. 나는 정지화면 같은 그 풍경을 한참 바라보다가 해 뜰 무렵에야 겨우 잠이 들었다. 다음날 우리는 점심을 먹고 헤어지기로 했다. 맛집마다 대기가 길어 종로의 좁은 골목을 돌고 또 돌았다. 앞장서 구글 맵을 보며 걷던 김이 갑자기 작은 서점 앞에서 멈춰 서더니 책을 사야겠다고 말했다. 지난 이사 때 내 책을 분실했다는 것이었다. 나는 집에 돌아가서 책을 다시 보내 주겠다고 김을 달랬다. 다섯 평도 안 되어 보이는 그 작은 서점에 내 책이 있을 리는 만무했기 때문이다. 김은 막무가내로 서점에 들어갔다. 할 수 없이 그녀를 따라 들어갔다가 전면 책장에 전시된 내 책을 발견했다. 죽은 친구를 만났다고 해도 그처럼 놀라지는 않았을 것이다. “미애 씨!” 그곳에서 누군가 나를 불렀다. 우아한 노부인이었다. 린넨 바지에 화이트 셔츠, 큼지막한 호른 목걸이를 한 여자는 환하게 웃으면서 나를 바라봤다. “반장님?” 나는 말끝을 흐리며 물었다. 여자는 성큼성큼 내 앞에 다가와서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나를 와락 끌어안았다. 누군가 나를 그렇게 안은 것이 너무 오랜만이라 온몸에 힘이 풀리는 것 같았다. 그녀는 오래전 나와 함께 공부했던 문우였다. H 백화점 문화센터 소설 창작 교실의 반장. 친구들이 책을 구경하는 사이 나는 그녀와 짧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ldqu

  • 관리자
  • 2024-07-01
그동안의 정의

그동안의 정의 최예솔 작정하고 사라진 사람은 작정하고 찾아야만 한다. 나는 윤정수를 작정하고 찾지 않았다. 보통의 남매 사이라는 게 정확히 어떤 건지는 모르겠지만 윤정수와 나를 그냥 보통 남매, 라고 하기에는 좀 어렵지 않을까. 윤정수는 나보다 4년 먼저 태어났다. 그리 적지도, 그리 많지도 않은 애매한 나이 차이 덕분에 윤정수와 나는 딱히 친해지지 못했다.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윤정수는 중학교에 갔고, 내가 중학생이 되었을 때 윤정수는 고등학교에 갔다. 물론 윤정수와 내가 영 친해지지 못한 건 우리의 나이 차이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윤정수는 내게 없는 사람에 가까웠다. 말수도 없고 센스도 없고 자존심도 없고 공부머리도 없고 돈도 없고······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나? 아무튼 남매 사이에 정이라도 있었다면 걱정이라도 했을 텐데 그럴 이유조차 없었다. 쥐뿔도 없는 윤정수니까. 특이사항이라곤 개그맨 윤정수와 동명이인이라는 것 정도밖에 없는. 그러니 윤정수가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집을 나갔다고 해도 이상할 것 하나 없었지. 뭐 내가 찾는다고 윤정수가 나타났을 거라는 보장도 없지만 나는 막연히, 어련히 때 되면 나타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했다. 하지만 윤정수는 죽을 때까지 나타나지 않았다. 물론 내가 죽은 것은 아니다. 윤정수가 죽었다. 내 나이가 이제 서른이니까, 윤정수는 서른넷에 죽었다. 이제 내게 남은 혈육은 없다······ 아닌가? 고모. 그렇게 부르지 마. 왜요. 낯설어. 저도 고모가 낯설어요. 윤현수는 맹랑하다. 윤정수와 장현아의 딸이라고 해서 윤현수. 그거 좀 유치하지 않니? 물었을 때 윤현수는 뭐 어때요 엄마아빠말곤 모르는데, 하고 대답했다. 이제 나도 아는데? 하니까 이젠 고모도 모르는 척해 달라고 했다. 참 나 어디서 이런 게 굴러왔는지. 현수야. 네. 네 엄마 입국 날이 언제라고 했지? 다음 주 토요일이요. 아직 한참 남았네. 고모도 고모 할일을 해요. 시간 금방 갈걸요. 알겠다 그래. 윤현수를 데리고 온 사람은 장현아다. 이제는 나흘쯤 됐으려나. 아침부터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하도 시끄러워서 나가 봤더니 장현아가 윤현수의 손을 붙잡고 서 있었다. 장현아는 다짜고짜 윤정수를 아느냐고 물었고 나는 오랜만에 듣는 윤정수의 이름에 잠깐 벙쪘다가 네, 저희 오빠네요, 하고 대답했다. 조카입니다. 그날 장현아의 대사를 나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그건 도저히 내가 아는 사람이 뱉을 만한 말이 아니어서 대사라고밖에는 표현할 수 없겠다. 아직도 문득 의심스러울 때가 있다. 윤현수가 정말 나의 조카가 맞고 장현아가 정말 나의 새언니가 맞을까. 가족관계라는 게 그렇게 단순하게 정리되는 거라면 이제까지 윤정수와 나는, 또 윤정수와 나와 우리의 부모는, 왜 이렇게 흩어지거나 죽거나 혼자 남을

  • 관리자
  • 2024-07-01

댓글 남기기

로그인후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을 남겨 주세요!

댓글남기기 작성 가이드

  •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는 욕설, 비방 등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주제와 관련 없거나 부적절한 홍보 내용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기타 운영 정책에 어긋나는 내용이 포함될 경우, 사전 고지 없이 노출 제한될 수 있습니다.
0 / 1500

댓글0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