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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풍 아일랜드

  • 작성일 2023-01-01
  • 조회수 2,169

질풍 아일랜드

구효서


입을 딱 벌려 통밀식빵 조각을 구겨 넣었다. 입을 다물어 보았다.
윗니와 아랫니가 닿으면 다시 입을 벌려 빵을 더 욱여넣었다. 목젖까지. 양 볼이 미어지도록, 여지없이. 위아래 치열이 서로 닿지 않을 때까지. 턱뼈가 얼얼하고, 숨이 막혔다. 눈물이 핑 돌면 충분히 입안을 채운 거였다.
자기 입에 빵 재갈 물리는 고문을 아침마다 반복하는 이유는 그것이 오의 아침 식사이기 때문이었다.
윗니와 아랫니가 닿지 않을 만큼 잔뜩 빵을 밀어 넣어도, 윗입술과 아랫입술은 다물면 다물어지게 돼 있었다. 닫힌 입술과 벌어진 이 사이에 작은 틈이 생겼다. 커피가 들어갈 자리였다.
동전 두께만큼 벌린 입술 사이로 조심스럽게 커피를 흘려 넣었다. 커피가 입 속의 메마른 통밀빵을 적셨다. 한 모금 더 흘려 넣었다. 빵은 물에 젖는 모래성처럼 흐무러졌다.
한 모금 더 커피를 머금으면 통밀빵의 퍽퍽하고 깔깔했던 글루텐 분자구조가 와해되어 금세 질척해지며 목구멍으로 빨려들었다.


고문이 만끽으로 변하는 환희의 순간을 즐기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우악스런 섭취가 오의 평소 아침 식사 습관은 아니었다. 빵과 드립커피로 아침을 해결하는 방식은 오래되었으나 눈에 핏발이 서도록 꾸역꾸역 통밀빵을 구강 가득 밀어 넣고 커피로 녹여 삼키는 짓은 이 작은 섬 올도에 와서 생긴 버릇이었다.
평소에도 그는 통밀빵과 드립커피로 아침을 시작했다. 바삭하게 구운 통밀토스트에 리코타나 크림치즈를 펴 바르고 슬라이스 사과와 양파, 아보카도와 구운 베이컨 따위를 얹어 천천히 씹어 먹었다. 가끔은 생연어와 하몽을 곁들였다. 이곳 올도에서처럼 치즈만 발라 입안에 미친 듯이 처넣고 커피로 녹여 꿀꺽 삼키는 지저분한 방식이 아니었다. 물론 올도에 올 때 주재료인 통밀빵과 커피 이외의 재료까지 충분히 준비하지 못한 건 사실이었다. 가려 먹는 통밀빵과 치즈스프레드와 커피만 우선 두 달 치 챙기고 나머지 것들은 현지에서 구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어떤 것도 빵을 그런 식으로 밀어 넣어 삼키는 이유가 되지 못했다.
올도에 와서 생긴 버릇이라기보다는 저도 모르게 떠올린 8년 전의 기억에 지배당하고 있는 건지도 몰랐다. 마흔을 막 넘기던 해 그는 올도에 왔었고, 지금처럼 평소와는 다른 아침을 먹었다. 그러나 그때의 기억이 다시 그를 기이한 식사로 이끌었다고 할 수 없었다. 빵을 목젖까지 밀어 넣고 눈물을 질금거리고 나서야 8년 전의 기억이 문득 떠올랐으니까. 먹는 게 기억보다 먼저였다.
어쨌든 올도가 처음이 아닌 두 번째였고, 두 번 다 아침을 그 모양으로 먹게 되었으니 올도에 와서 생긴 버릇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었다.
다시 토스트 두 장을 한입에 연속해 밀어 넣으면서 그는 처음 이 섬에 왔던 이유가 뭐였던가 생각했다. 그러다가 금방 생각을 지우고 커피 잔을 집어 들었다.
이번에도 이유를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 섬에 오고는 싶었으나, 오고 싶다는 것밖에 다른 이유는 없었다. 첫 방문 때도 그랬겠거니 싶자 더는 궁금하지 않았다. 어째서 이 섬에 오고 싶었는지 모르고, 어째서 기억보다 먼저 꼴사나운 먹성이 튀어나왔는지도 모르지만, 이유가 아주 없지는 않을 것 같았다. 다만 그가 모를 뿐. 모르니 궁금해도 어쩔 수 없을 뿐. 오고 싶어서 왔으니 그뿐. 언제 어디로든 떠날 수 있는 홀몸이라는 게 이유의 전부일 수도 있었다.
구운 토스트를 마지막 한 장까지 다 삼키고 나서 그는 아침 창문을 열었다. 토스트는 다 먹었으나 아직 커피는 반나마 남아 있었다. 늘 그랬듯 나머지 커피는 창문 밖 풍경을 보며 천천히 마셨다.
아침에 한 번 창문을 열면 뿔하루살이가 날아드는 저녁까지 종일 열어 두었다. 매일 아침 여는 창문인데도 창문을 여는 아침마다 이 창문 때문에 올도에 오는 것은 아닐까 그는 생각했다. 창밖 풍경 때문이겠지 창문 때문일까? 그는 속으로 묻고 겉으로 도리질했다.
창살이 창유리를 육등분했다. 창살에는 흰 페인트칠이 되어 있었는데 칠 솜씨가 어설퍼서 유리에도 페인트가 묻어 있었다. 페인트 말고도 오래된 먼지 더께가 유리의 투명도를 떨어뜨렸다.
오가 머무는 건물도 제대로 지어진 가옥이 아니었다. 십 수 년 전 유행했던 TV드라마 촬영 세트를 개조한 시설이었다. 나무계단과 마루는 두 발짝만 디뎌도 그것이 가건물임을 알리는 소리를 토해 냈다. 스위스 라 호슈 지방의 전통가옥이 한국의 톳 내 나는 남해 바다 한가운데 세워져 있었다. 벽을 두드리면 악기가 공명하듯 건물 전체가 퉁퉁 울렸고 어떤 문을 열든 새소리가 났다. 오가 아침 토스트를 먹고 나머지 커피를 마시기 위해 창문을 열 때도 어김없이 뿔쇠오리 소리가 났다.
온전치 않은 건물의 빛바랜 도색, 그리고 틀어진 아귀에서 새어 나오는 온갖 소리들이 아니었다면 오는 라 호슈에 묵지 않았을 것이다. 어딘가 불균형하고 위태로워 보이는 공간의 묘한 긴장감이 그를 불러들였다. 첫 올도 방문 때 묵었던 곳에 다시 든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어긋난 것들이 스스로를 감추지 않고 드러내는 곳. 거기엔 불안한 유혹이 있었다. 그 때문에 올도에 오고 싶었던 걸까 생각해 보았지만, 불안을 자초하려는 까닭을 알 수 없었으므로, 올도에 오고 싶어 한 이유도 알 수 없었다.
어쨌든 그런 것. 아귀가 안 맞아 불안한 뿔쇠오리 소리를 내며 열리는 창문 같은 것. 이것도 올도에 오게 하는 알 수 없는 수많은 이유들 중 하나일 거라고 생각하며 오는 창문을 열었다.


올도를 말의 동체에 빗대자면 오가 머무는 ‘라 호슈’의 위치는 말 엉덩이였다. 교목에 속하는 나무가 없는 섬인 데다 이곳 사람들이 두영이라고 부르는 벼과의 다양한 억새들이 두 개의 야트막한 언덕산을 온통 뒤덮고 있어서, 아닌 게 아니라 언덕산과 언덕산을 잇는 작은 능선은 털 반지르르한 말 잔등 같았다.
이쪽 언덕산 중턱에 해당하는 ‘라 호슈’의 창문을 열면 ‘라’와 ‘호슈’ 사이에 아무래도 한 글자가 바람에 날아간 것 같은 낡은 간판이 달려 있고, 간판 너머로 말의 허리에 해당하는 우묵한 감곡이 내려다보였다. 수크령이 자라는 붉고 좁은 능선 흙길이 이쪽 언덕산인 말의 엉덩이에서 시작해 허리까지 내려갔다가 저쪽 맞은편 언덕산인 억새 갈기 나부끼는 말의 목덜미로 오르며 이어졌다.
중간 우묵한 허리에는 김하분 막걸리와 올도 달걀, 삼립 크림빵과 멜론 맛 우유를 파는 적막한 가게가 하나 있고, 섬을 남북으로 나누는 유일한 자동차 길이 가게 앞을 좌우로 지났다. 언덕산과 언덕산을 잇는 능선의 붉고 가는 흙길이 가게 앞 자동차 길과 만나며 균형감 없는 십자 모양을 이루었다. 자동차 길을 따라 오른쪽으로 내려가다 보면 해빈 식물에 가려진 좁고 가파른 오솔길이 나오는데, 내리막 오솔길의 끝은 큰똥여라고 불리는 해각 바위에 닿아 있었다.
오는 커피를 마시며 건너편 언덕산 중턱, 말갈기 위치에 놓인 가옥의 2층 창문을 바라보았다. 라 호슈의 창문을 열면 맨 먼저 보이고 가장 잘 보이는 것이 그것이었다. 오가 묵고 있는 집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외양이었으나 첫 번째 올도 방문 때와는 달리 그 집의 숙소 간판이 보이지 않았다. 한 가지 더 달라진 점이 있다면 2층 유리 창문에 피콕 그린의 나무 덧문을 달았다는 거였다.
좁고 붉은 흙길은 라 호슈에서 시작하여 능선을 따라 잘록한 김하분 막걸리로 내려갔다가 피콕 그린으로 올라가 멈추었다. 살짝 구불거리긴 했으나 붉은 길은 실질적으로 라 호슈에서 피콕 그린까지 이어지는 셈이었다. 오는 이따금 엉뚱한 상상을 했다. 김하분 막걸리 앞을 좌우로 지나는 자동차 길을 선분으로 삼아 대지를 반으로 뚝 접는 것. 그러면 이쪽 언덕산과 맞은편 언덕산이 만나고, 라 호슈의 창문과 피콕 그린의 창문이 딱 부딪혔다. 오가 아침 창문을 연다는 것은 그런 거였다. 눈으로 붉은 길을 천천히 따라 내려가다가 건너편 언덕산 중턱 피콕 그린에 이르러 오래 머무는 것.


올도에 온 지 일주일이 넘도록 피콕 그린 덧문은 열리지 않았다. 집 주변에서 어떤 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나 오는 그 안에 누군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바람을 피웠능갑대.”
김하분 막걸리의 김하분 씨가 말했다. 생수나 완숙토마토를 사러 갈 때마다 김하분 막걸리의 김하분 씨는 거스름돈과 함께 묻지도 않은 말을 꺼내곤 했다. 주어 같은 건 대체로 생략했다. 카드 결제가 안 되는 이유도 묻지 않았으나 그녀는 지폐를 받으며 “그라요, 그냥.”이라고 말했고, 그게 무슨 뜻인지 오는 대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8년 전이나 지금이나 그녀와의 대화는 그런 식이었다.
“봉께 그래.”
자신의 추측이 그렇다는 말이었지만 김하분 씨는 자신의 추측을 믿는 편이었다. “정치지도원 아무나 하간?” 이 말은 그녀가 농담 삼아 하는 말이지만 스물둘의 나이에 남부군 정치지도원이었던 건 사실이었다. 백아산에서 토벌군에 쫓겨 대오와 흩어진 뒤 올도에 홀로 숨어들 때까지의 사정을 그녀는 낱낱이 기억했고, 그것은 너무도 생생해 듣는 사람을 매번 얼어붙게 했다. 두갈래하루살이 흰부채하루살이 등 백아산에 살던 아홉 가지 하루살이의 이름이며 특징을 세세히 구별하고 올도의 바다와 하늘을 나는 새들의 이름과 울음소리를 일일이 흉내 낼 줄 아는 그녀를 의심할 수 없었다. 그녀의 사정을 아는 사람들은 김하분 막걸리를 빨치산 막걸리라며 별미란 듯 사다 먹었다. 4리터 물통 하나에 6천 원.
“근디 그이는 이런 거 안 먹더만.”
모처럼 주어로 등장한 그이란 피콕 그린에 머무는 사람을 이르는 말이었다. 김하분 씨의 말에 의하면 그이는 여자고 사십 전후며 매년 10월 중순이면 다른 계절과는 달리 남편 없이 왔다가 열흘 남짓 혼자 보내고 하순에 떠나는 세컨 하우스 피콕 그린의 주인이었다.
“와인이랑가 그딴 것만 빡스째로 먹는다 안 허요. 음, 쪼까 요상시러.”
그런데 아무래도 여자가 올도에 오는 것도 이번이 마지막일 거라는 게 정치지도원 출신 김하분 씨의 추측이었다. 바람을 피운 문제로 곧 부부가 헤어지게 될 것 같고, 그래서 아끼던 피콕 그린과도 이제는 영이별이지 않겠느냐고. 그러면서 김하분 씨는 올도에서는 죄다 흥글보름에 훌훌 벗겨져 그 무엇도 숨길 수 없다고 덧붙였다.
흥글보름은 올도 사람들이 흔들바람을 일컫는 말인데 사전에는 질풍이나 맹풍의 다른 이름이라고 적혀 있었다. 사전을 찾는 김에 오는 fresh breeze라는 영어 이름까지 찾게 되었고, 질병을 뜻하는 질과 사나움을 뜻하는 맹이 어떻게 fresh와 연결되는지는 알 수 없었다. 올도(扤島)가 흔들리는 섬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김하분 씨에게서 그런 말을 들은 지 사흘 뒤, 마침내 피콕 그린의 나무 덧문이 열렸다.
여느 아침처럼 통밀빵을 욱여넣고 커피로 녹여 삼킨 뒤 창문을 열었는데 창밖의 전체 풍경이 어딘가 달라져 있었다. 달라진 거라고는 피콕 그린 덧문이 열리고 한 여인이 창틀에 기대앉은 것뿐이었는데 마치 다른 섬에 와 있는 것처럼이나 낯설었다.
“아.”
오는 탄성을 흘렸고 자신의 탄성이 다소 엉뚱하다고 생각했다.
덧문이 열려서거나 풍경이 낯설어서가 아니었다. 말로만 듣던 여자가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도 아니었다. 오가 탄성을 지른 것은 피콕 그린의 창틀과 자신의 창틀이 같은 구조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었다.
멀어서 가늠할 수는 없었지만 여자가 앉은 모습만으로도 충분히 피콕 그린의 창틀을 짐작할 수 있었다. 여자는 창문의 한쪽 문설주에 등을 반듯이 기대고 두 다리를 곧게 뻗어 창문 문지방 위에 올려놓고 있었다. 자로 잰 듯한 ㄴ자. 문지방이 보통의 폭이라면 가능하지 않을 자세였다. 피콕 그린의 창문 문지방이 라 호슈의 그것처럼 확대된 형태의 구조가 아니라면 그런 식으로 몸을 가눌 수 없는 거라고 오는 생각했다.
라 호슈의 창은 맞은편 언덕산을 향해 나 있었다. 창문의 문지방이 보통 책상 상판 2/3 넓이의 바 형태였다. 작은 책상 하나를 창틀 밑변에 이어 붙여 놓은 모양이지만 실은 창틀 문지방과 분리되지 않은 한 덩이 원목이었다. 오가 라 호슈에 투숙하기로 맘먹는 데는 이 확대된 창틀의 특이한 구조도 한몫 했다. 오는 그곳에다 자신의 오래된 노트북컴퓨터와 커피밀, 그리고 무언가를 하염없이 물끄러미 바라볼 때 손안에 두고 꾹꾹 쥐는 검은 조약돌 하나를 놓아두었다.
피콕 그린 창문의 문지방에는 무엇이 놓여 있을까 생각하던 오는 실소를 머금었다. 여주인이 놓여 있었다.
오는 노트북과 커피밀과 조약돌을 치우고 창틀에 ㄴ자로 앉는 자신을 상상해 보았다. 그리고 여자에게 보여질 라 호슈의 창틀을 떠올렸다. 여자에겐 희롱이라고밖에는 해석되지 않을 장면이었다. 오는 한 발짝 방 안 그늘로 물러나 피콕 그린을 건너다보았다. 창문과 덧문은 열려 있었으나 어느새 여자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오는 시선을 거둬들여 자신의 노트북 컴퓨터를 바라보았다. 가을 햇살이 낡은 노트북 위에 떨어져 내렸다. 8년 전에는 그럭저럭 신형이었던 그것은 겉모습만으로도 어딘가 힘겨워 보였다. 이제 늙어 웅크린 회백색 견종의 암컷이 가만히 노산에 겨운 숨을 내뱉고 있는 것 같았다. 노트북 안에는 아닌 게 아니라 산달이 다 된 원고지 천 매 분량의 장편소설이 들어 있었다. 2년여에 걸쳐 완성한 소설을 과연 출간할 것인지, 그는 망설였다. 가뜩이나 노후한 노트북이었다. 해산의 진통을 감당하지 못해 생명을 품은 채 지레 죽어버릴 것 같은 불안이 특이한 구조의 창틀 주변을 맴돌았다.
8년 전 이곳 올도에 왔을 때도 노트북에는 장편이 들어 있었다. 그때도 오는 몇 날 며칠 출판을 망설였다. 작품이 발표될 경우에 닥칠, 안 봐도 빤할 사태가 그를 머뭇거리게 했다. 그러나 그때는 새 노트북만큼 젊었고 강단이 있었기 때문에 이번처럼 고민이 길지는 않았었다. 그때는 고민이 깊어 올도를 찾았던 것이 아니라 고민을 떨치려고 이 섬에 왔었던 건지도 모르니까.
몇 년에 걸친 작업의 성과를 제 손으로 없앨 수 없다는 생각은 그때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았다. 다만 지난 8년이 오에게는 너무도 힘든 시간이었다. 안 봐도 빤할 거라고 짐작했던 사태는 예상보다 훨씬 가혹했다. 허위사실 유포와 표절, 명예훼손 등의 혐의를 걸어 그를 검찰에 고발한 단체가 여섯 곳에 이르렀다. 답변과 변론, 입장문과 호소문을 쓰느라 2년 동안 한 줄의 작품도 쓰지 못했고 판매금지 가처분에 대응하느라 출판사도 휘청거렸다.
얼마간 각오했던 바이기는 했으나, 신라 화랑들이 울주 천전리 선사시대 암각화를 찾아갔던 이유를 다룬 역사소설이 그렇게까지 커다란 반향을 일으킬 줄은 몰랐다. 작가의 의도와 상관없이 작품이 정치적으로 해석되어 비판받을 수 있다는 점 모르지 않았지만 비판 아닌 비난으로, 해석 아닌 고발로 이어지는 것도 모자라 나중에는 종교계까지 깊이 관여하여 독자들을 극심한 혼란에 빠뜨렸다. 작가가 의도한 바가 아니라고 해서 작가에게 책임이 없는 것일까. 그에 관한 오의 입장은 분명했다. 의도한 바는 아니었으나 이와 같은 사태를 예상하지 못했던 것도 아니다, 책임 질 일이 있다면 피하지 않겠다.
원론적이지만 솔직한 대응이 더 큰 논란을 키워 그는 사회 일각으로부터 사악하고 뻔뻔한 작가라는 오명을 얻었다.
그러나 대법원 판결이 있기도 전에 언제 그랬냐는 듯 오의 사건은 잊혔다. 그동안의 분란이 오에게는 어쩐지 야속하게까지 느껴졌다. 어쨌든 그의 작품은 이제 대형서점 스테디셀러 코너의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으면서 출판사가 파산하지 않을 정도의 판매부수를 근근이 유지했다.
8년은 노트북이 수명을 다하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오 스스로 부쩍 늙었다고 여기기에도 충분한 시련의 시간이었다. 그래서 다 말라버렸다고 생각했던 창작욕이 한 방울 두 방울 샘물처럼 고이면서 소설적 상상을 다시 부추기기 시작했을 때 오는 적잖이 놀랐다. 이야기를 꾸며내는 일이 작가에게는 고질과도 같은 걸까. 혈관 속을 기어 다니는 문장을 끄집어내지 않으면 가려워 온몸에 공연한 손톱자국만 무성해질 것 같았다.
작품으로 큰 곤욕을 치러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졌지만 돌이킬 수 없을 만큼 고갈되지는 않아 며칠 전 마침내 한 권 분량의 새로운 소설을 완성했다. 작가로서든 생활인으로서든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으며, 완성도나 수준과 상관없이 개인적으로는 축복이라고까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도 출간을 앞두고 그는 올도를 찾았다. 처음 올도에 왔을 때는 안 봐도 빤할 반향을 걱정했었다. 하지만 그때는 어디까지나 짐작일 뿐이었다. 미래에 대한 우려였을 뿐이다. 이번의 고민은 달랐다. 안 봐도 빤할 사태가 아니라, 이미 본 사태의 끔찍한 재연을 감당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단순한 재연도 아니었다. 지난번에 오를 지지하고 응원했던 많은 독자들이 이번에는 배신과 변절의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 것 같았다. 그리고 자신을 고발했던 단체들이 웃는 낯으로 칼럼을 내고 오를 위해 강연회를 준비하는 등 소란을 떨 게 분명했다.
물론 오의 소설은 처음부터 특정 단체나 이념에 편중된 시각을 드러낸 적이 없었다. 드러낸 게 있다면 이념 자체가 갖는 언어적 폐쇄구조의 폭력성에 대한 조롱과 압박이었다. 오가 공격을 받아야 했다면 양쪽 모두로부터 받는 게 마땅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의 편의적 해석으로 오를 지지하거나 공격하며 대립했다. 이제는 같은 작가의 동일한 문제의식을 다룬 신작을 두고 진영이 정반대로 뒤바뀌어 싸울 판이었다.
어이없을 사태이긴 해도 오에게 전혀 책임이 없는 건 아니었다. 소란의 단초를 제공한 건 그렇다 치더라도, 그동안 자신의 문제의식을 풀어내는 데 그가 평등주의 그룹에 보다 유리할 듯한 역사적 사례들을 소설화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다가 이번에는 산 채로 어린아이를 우물에 묻었던 신라의 참혹한 우물제사를 다루면서 진보 편향이라고 오해 받을 만한 색채를 완전히 거두어냈다. 이념적 접근을 거부했을 뿐만 아니라 그러한 접근을 비웃는 관점을 분명히 했음에도 사태는 이전과 다르지 않게 진행될 게 거의 분명했다.
화상의 흉터가 아물지도 않았는데 큰불 앞의 공포를 자초하는 자신을 오는 이해할 수 없었다. 이제 더는 할 이야기가 없고 하고 싶지도 않다고 선언하는 순간 싹트기 시작하는 소설의 생리도 알 수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모르겠다, 마음 가는 대로 가자. 눈 꾹 감고 문장을 이어 나가다가도 포박된 자신의 책들이 배에 실려 서해의 탁한 물에 수장 당하던 기억이 떠오르면 숨이 막혔다. 세상에 나오자마자 살해당할 것을 뻔히 알면서 자식을 또 낳을 수 있는 걸까. 갈피를 잡지 못했다. 어떡할까. 언제까지고 낡은 노트북 안에 유폐하여 소설을 질식시킬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마음은 이랬다저랬다 했고, 몸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아침마다 까슬까슬한 통밀빵을, 눈물이 날 때까지 입안에 밀어 넣고 밀어 넣었다.
오는 창틀로 다가갔다. 수명을 거의 다한 노트북 뚜껑을 열었다. 거기에는 악마의 이빨 조각 같은 검은 치열의 여섯 줄 자판이 나란했다. 손끝이 자주 닿아 좀 더 반들반들한 ㄱ, ㅅ, ㅁ, ㄴ, ㅇ. 덜 반들반들한 ㅛ, ㅕ, ㅑ, ㅐ. 그렇게 몇 안 되는 자음과 모음의 조합으로 사람을 울리고 웃기며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다니. 환이 아니고 무얼까. 기껏해야 세상은 손톱만 한 플라스틱 딱지의 판때기란 말일까. 그게 뭐라고 잠 못 자며 이십 수년을 두드려 왔던 걸까.
오는 고개를 들어 피콕 그린의 창문을 건너다보았다. 여자가 사라진 창문은 깊은 구멍으로 열려 있었다. 벌리고 말 안 하는 입. 오는 문지방의 조약돌을 들어 오른손 안에 넣고 꾹꾹 쥐었다. 여자의 적막한 창을 건너다보며. 물끄러미 하염없이.


누군가 현관문을 두드리면 라 호슈가 통째로 퉁퉁 울렸다. 집 안 공기가 흔들리며 오의 살갗도 떨렸다.
“거게 있소?
아일랜드 좀느릅나무 할머니였다. 한 번만 들어도 기억하게 되는 목소리였다. 다시 문이 흔들렸다.
“안에 있소이?”
기력이 없어 목소리는 크지 않았으나 그녀는 언제나 자신이 낼 수 있는 최대치의 성량으로 말했다. 말할 때마다 귀 밑의 핏줄이 불거졌다. 그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이 “사람 살려!”로 들릴 만큼 언제나 절박한 고음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목소리는 작은 바람에도 묻혔다. 오가 문을 열었다.
“언니 보러 가는 길이제라. 가야 혀. 근디…….”
아일랜드 좀느릅나무 할머니는 늘 같은 말을 했다. 하루에 한 번씩 그녀가 이쪽 언덕산 꼭대기의 무덤에 다녀온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도 그녀는 만나는 사람에게 늘 같은 말을 했다.
이쪽 언덕산 꼭대기에는, 그녀의 말에서 결코 빠진 적이 없는 ‘언니’가 묻혀 있었다. 아버지가 죽고 엄마가 집을 나간 뒤 어린 아일랜드 좀느릅나무 할머니는 자신의 할머니와 살다가 할머니마저 죽고 난 뒤에는 혼자 살았다. 그때가 아홉 살이었다.
그녀가 섬에서 홀로 마흔두 살을 먹던 해 육지에서 마흔세 살의 언니라는 사람이 건너왔다. 재가한 엄마 남편의 딸이었다. 엄마가 낳은 딸이 아니라 남편의 전처소생이었다. 엄마가 집을 나간 뒤로 어린 아일랜드 좀느릅나무 할머니는 엄마를 보기는커녕 풍문으로도 소식을 접하지 못했다. 그간의 사정은 다 알 수 없었으나 올도에 ‘동생’을 찾아 왔노라는 낯선 여인의 말을 듣는 순간부터 아일랜드 좀느릅나무 할머니는 화엄신중을 연호하듯 언니라는 말을 입에 달았다. 언니라는 이의 아버지도 엄마도 다 고인이 되었다고 했다.
갑작스런 자매의 우애를 두고 섬사람들은 벨일일세, 라고 했다. 벨일이야. 지극했던 두 사람의 뒤늦은 행복은 그러나 오래가지 않았다. 병 든 언니가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따뜻한 바위에 누워 잠들듯 숨을 거두고 난 뒤 아일랜드 좀느릅나무 할머니는 무덤을 오가며 만나는 사람들에게 언니를 보러 간다고 말했다. 언니를 보러 간다고. 그녀의 언니는 그렇게 그녀의 말에 남아 살았다.
좁고 붉은 수크령 길을 오르는 그녀의 모습은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위태로웠다. 센 바람이라도 불면 억새밭으로 날아가 묻힐 것 같았다. 8년 전 그녀를 처음 봤을 때 오는 줄기와 가지가 오랜 해풍 때문에 한쪽으로 잔뜩 쏠린 나무를 떠올렸다. 바람이 없어도 복원되지 않는, 삐뚤어진 채 굳은 작은 나무들. 얼마 뒤에야 오는 그 나무가 모허 절벽으로 가는 아일랜드 들판에 서 있던 좀느릅나무라는 걸 생각해 냈다. 토스트를 탄 듯 바삭하게 구워야 맛있다는 사실을 아일랜드의 아침 식사를 떠올리면서 알게 되었던 것처럼.
“막걸리집에 먼가 와 있당갑소. 가져가라대. 전했소잉. 난 인자 언니헌티 가볼랑게.”
할머니는 라 호슈의 현관 앞 나무 계단을 비틀비틀 짚으며 흙길에 내려섰다. 올도에서 오의 택배 수령처는 김하분 막걸리였다. 라 호슈까지는 트럭도 자전거도 오르지 못했다. 피콕 그린도 마찬가지였다.
아일랜드 좀느릅나무 할머니의 몸이 점차 왼쪽으로 기울다가 저만치쯤에서 스르르 넘어졌다. 오금을 접으며 넘어가는 그녀의 몸은 아닌 게 아니라 오랜 세월의 기울기를 견디다가 마침내 둥치가 삭아 스러지는 좀느릅나무 같았다. 오는 달려가 그녀를 부축해 일으켰다.
“오늘은 내려가시지요, 그만.”
“개안해라. 하냥 이렁게.”
“자꾸 이렇게 넘어지시잖아요.”
“땅이 노상 흔들려서 글제. 섬이 기울었잖애.”
“그러게 불편하시잖아요.”
“불펜은 무슨. 기울고 흔들리지 않아부렀으면 정신 똑바라서 왜래 못 살았을 거구만.”
할머니는 무릎을 툭툭 털고 일어나 다시 걷기 시작했다. 기울어진 채 반은 옆걸음으로. 똑바로 걸으면 십 리도 못 간다는 듯이.


피콕 그린의 창틀 문지방에는 짐작대로 아무것도 놓여 있지 않았다. 문지방도 덧문과 같은 공작의 녹색―피콕 그린이었다. 그곳을 비워 두고 여자는 공작이 횃대에 오르듯 이따금 그곳에 오르는 모양이었다.
오가 공작을 떠올린 것은 창틀 문지방과 덧문에 칠해진 색상 때문만은 아니었다. 색상이 아니어도 여자에게는 공작의 느낌이 있었다. 긴 꼬리가 있을 리 없었고 목도 특별히 가늘거나 길지 않았다. 얼굴이 작은 편이었으나 공작의 모습으로 곧장 연결되지는 않았다. 공작의 느낌은 외모와의 연관성에서 오는 게 아니었다.
어쨌거나 피콕 그린 안쪽을 기웃거렸을 때 오가 처음 마주한 광경은 라면을 안주로 와인을 마시는, 아니면 라면 끼니에 와인 반주를 곁들이는 큰 공작새였다.
“조합이…… 예, 괜찮거든요. 이, 이렇게 마시는 거.”
여자의 말에서 그는 자신이 지나치게 라면과 와인 병을 번갈아 바라보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가슴에 안은 택배를 여자가 받아 내려놓을 때까지도 오는 자신이 무엇을 들고 있었는지 잠깐 까먹고 있었다.
“누구는 술에 취하면 요리하는 습관이 있다던데, 제 주사는요, 아…… 옷 만드는 거거든요.”
오가 가져온 박스를 풀며 여자가 말했다. 박스 안에는 와인이 아니라 FABRIC GLUE라고 적힌 섬유 접착제 용기와 원단으로 보이는 천이 가득 들어 있었다.
김하분 막걸리의 김하분 씨가 여자에게 온 택배를 오에게 온 것으로 착각하여 빚어진 일이었다.
피콕 그린에 전해 주겠다고 오가 말했고, 김하분 씨는 “내 정신머리가 참 요렇당게.”라며 정치지도원 출신답지 않게 멋쩍어했다.
피콕 그린 주소의 택배 상자를 들어 안을 때 혹시 와인이 아닐까 잠시 생각했던 것도 김하분 씨가 한 말 때문이었다. 그이는 막걸리 안 먹고 와인 같은 것만 박스째로 마신다는. 상자 안의 물건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전까지만 해도 와인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오는 완전히 떨치지 못했다.
“말짱한 정신으로는 잘 안 만들어져요. 한 잔 해야…… 디자인이 떠오르니까요. 뭘 좀 드시겠어요?”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한 잔 하시겠어요? 라고 들었다는 걸 금방 깨닫기는 했으나 어쩐 일인지 오의 어지럼증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라면, 와인, 공작, 섬유 접착제, 화려한 원단 따위의 단어를 속으로만 중얼거리던 오는 바람피운 남편과 헤어지려는 여자라는 문장이 불쑥 떠올라 아연해졌다.
오가 피콕 그린에 들어섰을 때 이미 거실에는 잘게 잘린 천 조각들이 바닥에 널려 있었다. 새로 도착할 원단 활용을 궁리하며 와인을 마신 모양이었다. 여자는 마름질한 천과 천을 바느질이 아닌 접착제로 붙여 나갔다. 오는 공작의 느낌이 어디서 비롯되는지를 알았다. 공작의 긴 꼬리에서 떨어져 흩어졌던 문양들이 그녀의 손을 거치면서 새로운 의상으로 거듭나고, 그것을 몸에 걸칠 여자는 작품 속의 공작이 되는 거였다.
“모던댄스요. 무대의상이거든요. 제가 직접 디자인해요.”
오는 뭔가 알아맞힌 것 같았다. 휘청, 섬이 기울며 흔들렸다. 여자는 춤추는 공작이었던 것이다. 자로 잰 듯한 ㄴ이었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녀의 흐느적거림도 와인 탓만은 아닌 것 같았다. 거기엔 결을 이루며 짜여 가는 몸동작의 미묘한 흐름이 있었다. 그걸 알아차려서 흔들린 걸까 흔들려서 알아차린 걸까. 모로 걷는 아일랜드 좀느릅나무 할머니는 어디를 지나고 있을까.


오는 김하분 막걸리의 작은 잡석 주차장에 서 있는 차콜색 승용차를 내려다보았다. 노을빛에 물드는 승용차는 며칠 전 보았던 검은색 승용차가 아니었다. 멀리서도 검정과 차콜의 구분은 확연했다. 조금 전 승용차에서 내려 피콕 그린으로 올라간 사내도 검은색 차의 남자가 아니었다.
검은색 차량의 남자가 도착했던 날은 바람이 많이 불었다. 이곳 사람들이 말하는 흥글보름. 해가 지고 꽤나 어둑해질 무렵이었는데도 차에서 내린 남자의 사납게 헝클어지는 머리카락이 보였다. 김하분 막걸리의 희미한 불빛은 피콕 그린으로 오르는 길의 중간까지밖에 비추지 못했다. 남자는 가을 트렌치코트 자락을 여미며 나머지 반의 어둠 속으로 빠르게 모습을 감추었다.
그날, 밤이 깊어도 바람은 그치지 않았다. 피콕 그린의 창에서는 어떤 빛도 새어 나오지 않았다. 이따금 덧문이 바람을 못 이겨 열리는 것 같았다. 경첩이 내는 마찰음과 덧문이 건물 외벽을 둔탁하게 때리는 소리가 들릴 때마다 오는 잠에서 깼다. 바람에 좌우로 흔들리는 피콕 그린의 나무 덧문은 누군가를 다급하게 부르는 손짓 같았다. 집 안에는 아무도 없거나, 있다면 다 죽어버린 게 아닐까 싶게 피콕 그린은 거친 바람 속에서 괴괴했다.
다음날 아침이 되자 언제 그랬냐는 듯 바람이 자고, 섬은 갓 떠오른 주황빛 햇살에 고요히 젖어 있었다. 김하분 막걸리 주차장의 검은 차량도 어느새 자취를 감추고 보이지 않았다.
이번에는 이슥한 시각이 아니라서, 오는 차콜색 차량의 사내가 차에서 내려 피콕 그린에 당도하는 모습을 끝까지 지켜볼 수 있었다. 사내가 집 안으로 들어서자 곧 창가에 불이 들어왔고 그 빛은 아직 하늘에 남아 있던 노을빛과 절묘한 대비를 이루었다.
오는 자신의 창틀 문지방에 놓여 있던 와인 병을 집어 들었다. 피콕 그린을 처음 방문한 날 여자가 준 것이었다. 와인에 대한 취향이 없는 데다 무똥 까데라는 이름도 생소해 여행지에서 산 기념품처럼 창가에 놓아둔 것인데 붉은 노을빛 때문이었을까, 오는 천천히 콜크스크류를 돌려 병을 땄다.
“맛은 나쁘지 않을 거예요. 매사에 지나치게 확실한 어떤 사람이 고른 거니까요.”
와인을 건네면서 여자가 덧붙였다. 불투명한 용기에 담긴 샴푸와 컨디셔너 세트가 한날한시에 똑 떨어지는 사람. 와인을 선택한 사람을 말하는 것 같았다. 말리지 않으면 뺨과 따귀의 차이를 끝도 없이 늘어놓는 사람. 장과 티푸스를 붙여 말하지 않고 장과 티푸스를 반드시 떼어 말하는 사람. 하나로 연결돼 있는 객석의자 때문에 옆 사람의 웃음이나 울음이 진동을 타고 전염될까 봐 극장 벽에 홀로 기대서서 영화를 보는 사람.
여자는 무똥 까데 병을 건네며 웃음을 섞어 말했지만 어딘지 독주를 마신 뒤의 표정이었다. 디자인을 위해서만 와인을 마시는 것 같지는 않았다. 아일랜드 좀느릅나무 할머니의 말마따나 정신 똑바라지고 싶지 않아서일지도 몰랐다. 오는 자신이 가늠할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주는 와인을 받으면 그만이었다.
허리를 구부려 잘 마시겠노라 말하고 고개를 들다가 여자의 불안한 눈과 가까이서 마주쳤다. 입 속의 붉은 와인이 비루관을 역류해 눈을 적시는 경우가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여자의 눈동자 여기저기가 피자두처럼 물들어 있었다. 자두라기보다는 번뇌의 생채기라 불린다는, 소금바람에 붉게 긁힌 튀르키예의 작은 복숭아라고 오는 휘갈기듯 단정했다.
이 와인을 고른 사람의 차량 색깔은 검정일까 차콜일까. 와인을 커피 머그잔에 따라 놓고도 오는 얼른 마시지 못했다. 맨입에 와인이 자신 없었다.
오는 주방의 컵보드에서 순한맛 진라면 한 개를 꺼내고 냄비를 찾았다. 무똥 까데, 머그잔의 와인, 진라면과 스테인리스 냄비. 이게 뭐람. 중얼거리다 말고 오는 갑작스런 예감에 사로잡혀 라 호슈 밖으로 튀어 나갔다.
예상대로 거기에는 스냅백을 눌러 쓴 남자가 어두워진 남쪽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직도입니까?”
오가 물었다. 아직도 이곳에 있는 거냐고 물은 것이었으나 남자는 아직도 보이지 않느냐는 질문으로 들은 것 같았다.
“아직입니다.”
남자 혼자였다. 그곳에는 남자 말고도 아내처럼 보이는 여자가 있었다. 오가 라 호슈 앞의 그들을 본 게 오후 4시경이었다. 그보다 더 오래 전부터 그들이 그곳에 있었다는 걸 오는 여자의 짜증으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이제 가자. 오늘 중으로 구름 걷히긴 글렀어.”
여자가 말했다.
“곧 걷힐 것 같잖아. 조금만 더 기다리면 걷힐 거야. 구름을 봐. 얼마 남지 않았다구.”
남자가 말했다.
오는 그들이 어째서 그곳에 서 있는지 알았다. 맑은 날 바다 건너 한라산 정상부가 보인다는 얘기 때문이었다. 구름이 없으면 실제로 보였다. 오도 두 차례나 보았다. 한라산이 가장 잘 보인다는 뷰포인트가 라 호슈 앞길이었다. 보이기는 해도 쉽게 볼 수 없다는 걸 알아서 사람들은 굳이 걸음을 멈추고 바라보려 하지 않았다.
그런데 스냅백 남자는 기다렸고, 해가 지고 깜깜해질 때까지 움직이지 않았다. 아내는 그를 두고 일찌감치 가버린 모양이었다. 이게 뭐람. 오는 와인 앞에서 했던 혼잣말을 다시 중얼거렸다. 스냅백이 오를 바라보았다. 불안과 번뇌의 생채기로 붉어진 눈은 아니었으나 오는 그의 어두운 눈이 슬프고 무서웠다.
오는 그에게 머그잔의 와인을 가져다주고 자신도 한 모금 마셨다. 라면이 있는데 먹겠느냐고 하자 남자는 망설이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남자는 오와 함께 라면을 먹고 떠났다.
와인 무똥 까데는 그렇게 쉽사리 비워졌다. 한라산도 한라산이지만 실은 하늘을 보고 있었던 거라고 남자는 말했다.
오는 남자에게 하늘을 보는 이유를 묻지 않았다. 올도에 오는 사람들 중 한나절 하늘을 보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바다에 와서 바다가 아닌 하늘을 보았다. 혼자일 때도 있었고 여럿일 때도 있었다. 라 호슈와 김하분 막걸리로 이어지는 길 중턱에서 그들은 거의 같은 각도로 턱을 빼고 하늘을 바라보았다. 해가 질 때까지 오래 한자리에 서 있곤 하던 그들의 실루엣은 입 벌린 장승같기도 했고, 달 돋는 나라로 날아간다는 따오기 솟대 같기도 했다.
라 호슈에서 나온 뒤 어둠 속으로 멀어지기 전 스냅백 남자가 말했다. 물끄러미 하늘을 올려다보는 사람들 중 대다수는 이 섬을 떠난 이 섬 출신들이라고. 그들은 어렸을 때 난파된 선박의 잔해는 물론 파도와 함께 해변으로 떠밀려온 퉁퉁 불은 익사체를 본 사람들이라고 했다. 건너편 언덕산 정상에 사마귀처럼 튀어나온 기암이 항법 장치의 경로 지시계를 교란해 섬 인근을 지나던 선박들을 표류하게 했다는 것인데, 그 때문인지 올도에 올 때마다 그는 구멍 난 지구 자기장 안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태양풍에 휩쓸리는 황홀한 상상을 한다고 했다.
태양풍이라면 지구 표면을 아무런 흔적 없이 쓸어버릴 텐데 황홀이라니. 이 또한 그에게 묻지 못했다. 납득할 만한 대답은커녕 궁금증만 커질 게 분명했다. 그런 사람과 그런 말들이 바람처럼 섞이는 올도였고, 오는 이제 자신이 그런 사람들과 섬 가운데 있다는 사실이 새삼스럽지 않았다. 10월 중순을 지나며 섬의 바람이 바뀌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불던 흥글보름과는 어딘지 다른 느낌의 바람이 이쪽 언덕산과 저쪽 언덕산을 오르내리며 불었다. 풀들은 실제로 바람보다 더 빨리 눕고 바람보다 더 빨리 울었는데, 김하분 씨에 의하면 눕고 쓸리며 우는 올도의 풀들은 전부 억새가 아니라 억새 삼촌에 해당하는 억새아재비라는 풀이었다. 그리고 달 돋는 아득히 먼 곳에서 영겁의 시간을 달려온 듯한, 어딘가 양상이 달라져 버린 바람을 김하분 씨는 손돌바람이라고 했다. 그 바람이 풀을 울고 눕게 하는 게 아니라 풀이 온몸으로 먼저 눕고 울면서 그 바람을 불러오는 거라는 이상한 말을 했다.
어느 날 밤 오는 언덕산 꼭대기 억새아재비 밭에 누워 코앞으로 쏟아져 내리는 별하늘을 본 적이 있었다.
“어떤 일이 있어도 가능하지 않다는 말을 하늘이 무너진다는 말로 대신하기도 하잖아요.”
두 번째 만난 날 낮에 피콕 그린 여자에게서 들은 말이었다. 여자는 말끝에 덧붙였다.
“가능하다는 걸 볼 수 있거든요. 하늘이 무너져요.”
오는 억새아재비 밭에 팔과 다리를 한껏 벌리고 누웠다. 그게 어떻게 가능한지 궁금해서였는데 밤하늘과 별무더기가 구별 없이 떡진, 그 가없는 우주 바윗덩이가 통째로 코앞에 무너져 닥치는 전율을 맛보았다. 머리통이 바스러지며 동전처럼 납작해질 것 같았다. 그렇더라도 왠지 꼼짝도 안 하고 산 채로 으깨지고 싶었다. 그런 변태적 욕망이 어디에 숨어 있다가 그토록 순간적으로 발호했던 건지 오는 알 수 없었다.
“손돌이 오기 전에요.”
여자가 말했었다. 그러고 보니 손돌은 그녀에게서 먼저 들은 말이었다. 그것이 바람의 이름이라는 걸 몰랐을 뿐.
어째서 그것이 오기 전에 불가능의 가능을 보라고 했는지, 그것이 오고 난 뒤에 오는 알았다. 바람이 풀을 눕게 하는 것이 아니라 풀이 먼저 누우며 바람을 불러온다는 김하분 씨의 말도 비로소 알 수 있었다.
섬을 온통 뒤덮은 억새아재비 풀이 일제히 몸을 뒤채며 손돌을 부르는 광경은 무시무시해서 볼 수 없을 지경이었다. 오는 방 안에 엎드린 채 섬의 하늘로 솟구쳐 오르는, 억새아재비 풀잎들의 칼 갈 듯 서걱거리는 긴 울음소리를 들었다.
아득한 곳의 큰 바람을 불러오려고 풀들은 갤리선의 노를 젓듯 억센 몸을 쉴 새 없이 눕히고 일으키며 괴력을 발했다. 그 바람 그 풀밭에서라면 별을 보기는커녕 눈도 뜨지 못한 채 거친 갈풀에 얼굴을 형편없이 난자당할 것만 같았다. 피콕 그린의 여자는 사나운 손돌의 시기를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그것을 피해 억새아재비 밭에 누워 불가능의 가능을 보라고 했던 거였다.


그랬으면서 그녀 자신은 어째서 손돌을 피하지 않았던 걸까. 바람이 점점 더 거세지면서 섬은 사력을 다해 웅크린 강아지처럼 한사코 고개조차 들지 않았다. 그렇게 꼼짝 않는 섬이었으나, 해변을 삼킬 듯 으르렁거리는 파도와 미친 듯 나부끼는 억새아재비 풀잎 때문에 올도 전체가 몸서리치는 것 같았다.
연 사흘 그리 계속되던 밤 피콕 그린의 여자가 집을 나섰다. 바람이 가장 센 날이었다. 바람이 언제 어떻게 와서 언제 가는지 잘 알고 있는 여자임에 틀림없었다. 피하지 않기는커녕 여자는 바람을 기다리고 있었던 건지도 몰랐다. 김하분 막걸리의 김하분 씨도 여자가 매년 이맘때 혼자 피콕 그린을 찾곤 했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손돌이 올 때였다.
짧고 아스라한 충격음이 오를 잠에서 깨웠다. 바람에 휘둘리는 피콕 그린의 나무 덧문이 건물 외벽에 부딪히며 들려온 소리라고 짐작했다. 그러나 어둠에 잠긴 피콕 그린 쪽에서는 아무런 기척이 없었다. 웬만한 기척 따위는 무서운 바람에 고스란히 묻히는 밤이었다.
방바닥에 떨어진 조약돌을 보고서야 오는 잠들기 전 손안의 그것을 만지작거렸다는 생각을 해냈다. 짧은 충격음은 잠결에 놓친 조약돌이 방바닥에 부딪히며 낸 거였다. 오는 창문에서 물러서려다 피콕 그린의 여자를 보았다.
처음엔 작은 나무인 줄 알았다. 그러나 수크령 길뿐만 아니라 올도에는 나무 자체가 없다는 걸 곧 깨달은 오는 그것이 김하분 막걸리 쪽으로 조금씩 움직인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피콕 그린의 여자였다.
어째서 나무로 착각했는지 오는 모르지 않았다. 어두워서였고, 바람이 불어서였다. 아일랜드 좀느릅나무 할머니라는 별명의 출처인 아일랜드 좀느릅나무가 다시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모진 바람에 줄기와 가지와 잎이 한쪽으로 잔뜩 쏠린 채 복원되지 않고 굳어버린 나무.
여자의 긴 머리카락이 세찬 바람에 찢길 듯 펄럭이는 검은 깃발 같았다. 그것은 중력 따위 아랑곳 않고 언덕산 사마귀 기암 쪽으로 무섭게 뻗혔다. 매서울 대로 매서워진 손돌바람이 머리끄덩이를 잡아채 흔들 때마다 여자는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비틀거렸다.
바람도 바람이려니와 그녀를 두세 번 봤을 때의 느낌과도 전혀 다른 움직임이었다. 술에 취했든 몽유의 시작이든, 여자가 김하분 막걸리를 지나 어둡고 텅 빈 차도로 방향을 바꾸는 것도 예사롭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 끈에 두 손이 묶여 끌려가는 것 같았다. 오는 급히 패딩을 찾아 걸치고 라 호슈를 뛰쳐나갔다.
수크령 길을 뛰어 내려가는 오를 바람이 막았다. 바람은 그를 오히려 뒤편 언덕산 위로 밀어 올리려 했다. 오르막보다 힘든 내리막길을 숨차게 달렸다.
김하분 막걸리의 탁한 유리문 안으로 김하분 씨와 김하분 씨가 아자씨라고 부르는 뇌졸중 전도사 남자의 모습이 비쳤다. 종종 마주치는 광경 그대로였다. 그들은 방금 가게 앞으로 무엇이 지나갔는지 모르는 것처럼 보였다.
여자가 사라진 자동차 도로는 어둡고 막막했다. 오는 차마 뛰어들지 못하고 몇 걸음 나아가다 되돌아와 대신 김하분 막걸리로 뛰어들었다.
“방금 저 윗집 여자 분이 여길 지나쳤는데 보셨는지요?”
“못 봤는디라.”
김하분 씨가 대답하며 뇌졸중 전도사를 바라보았고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 바람에 어딜 갔을까요?”
오가 다급하게 물었고 김하분 씨가 대답했다.
“큰똥여에 갔겄제라.”
이번에도 남자가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오는 오금에서 힘이 빠져나가는 걸 느꼈다. 김하분 씨의 대답이 지나치게 선선해서였을 것이다. 지나친 게 아닐지도 몰랐다. 망설임 없이 척 대답할 정도라면 이미 잘 알고 있었다는 뜻이었다.
서두르지 않기로 하자 다리에 긴장이 풀리며 조금 후들거리다 멈추었다. 그러나 놀란 가슴은 금방 가라앉지 않았다. 안도할 것도 아니었다. 사람을 날릴 만큼 바람이 셌고 어둠은 짙었다. 어딜 가든 여자 혼자 나설 시각도 날씨도 아니었다. 게다가 파도가 높은 큰똥여라지 않은가. 오는 조심스레 몸의 균형을 잡으며 바람과 어둠을 헤치고 그녀가 지나갔음직한 길을 더듬어 나아갔다.


만날 때마다 자신이 몇 살로 보이냐고 자신만만하게 묻는 남자가 있었다. 조금 전 김하분 씨와 함께 있던 뇌줄중 전도사였다. 이 땅의 모든 이들이 자신이 제조한 뇌졸중 예방약을 먹고 건강해지는 게 꿈이라는 사람이었다.
“내가 예순다섯이요. 믿겠소?”
그는 늘 자기가 묻고 자기가 대답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오에게는 그가 언제나 일흔다섯으로 보였다.
달걀, 머구, 정종, 매실로 만든 즙을 한 번만 마시면 평생 풍에 걸리지 않는다는 게 늘 그가 외는 경구였다. 지금껏 그의 예방약을 먹은 사람이 뭍까지 포함해 칠천육백 명에 달하는데 아직 풍에 걸렸다는 말을 한 번도 듣지 못했다고 했다.
달걀은 유정란으로 흰자만, 매실은 청매실만, 등등의 제조법이 적힌 종이를 오는 그에게서 받은 적이 있었다. 김하분 막걸리에 들렀다가 남자가 직접 손절구에 찧고 악력으로 짜서 건넨 예방약을 마신 뒤였다.
언제나 직접 찧고 짜서 권한다는 그의 예방약은 짙은 쑥빛의 걸쭉한, 소주잔 반잔 분량의 액즙이었다. 그걸 마시는 게 오에게는 고역이었다. 빛깔이나 맛보다도 온 힘을 다해 짜내던 남자의 혈관 툭툭 불거진 손이 말할 수 없이 지저분했다. 게다가 턱을 쳐들어 그것을 마실 때 김하분 막걸리 집 천장에 매달린 것이 오의 눈에 들어왔다. 오래되어 작동이 멈춘, 파리똥 뒤덮인 누런 선풍기였다.
“저 윗집도 마시면 평생 풍 맞지 않을 텐데. 올도에서 안 마신 사람은 그 여자 하나뿐이라니까.”
피콕 그린 여자를 두고 하는 말 같았다.
“폴쎄 그이는 바람 든 모양이덩만.”
김하분 씨가 말하고 켁켁 웃었다.
“벌써라니?”
김하분 씨는 대답하지 않았다. 멋쩍어진 남자가 오에게 말했다.
“이게 일본 황실에만 내려오던 건데 박정희 때 이후락이가 관방대신한테서 얻어온 비방이거든.”
한껏 소리를 낮춘 귓속말이었다.


큰똥여로 내려가는 오솔길을 오는 좀처럼 찾을 수 없었다. 워낙 작고 깊게 뚫린 구멍 같은 길이었다. 어둡더라도 그다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거라 여겼다. 자주는 아니지만 복숭앗빛 노을이 지면 큰똥여의 작은 해변에 내려가 묵묵히 걷다 돌아오곤 했으니까.
바람이 없거나 적은 날에는 풀숲 사이로 작으나마 길이 열려 있었다. 그러나 모든 풀들이 너나없이 산발을 하고 바람에 휘둘리며 구멍을 지워버렸다. 오는 손으로 싸리와 억새아재비와 해당화 이파리를 하나하나 더듬었다. 기억을 되살려 오솔길 입구에 무성하던 비수리 줄기를 찾아 나아갔다.
“하여간에 올도 사램덜이 풍 안 드는 것은 약 때문이 아닌 게라.”
김하분 씨의 말이 귀에 남아 있었다.
“아니면?”
오가 묻기 전에 전도사 남자가 눈을 크게 뜨고 물었다.
“사철 바램 부는 섬 아닌가배. 뻿속까지 노상 흔들린디 새로 바램 들 게 뭐 있당가요?”
김하분 씨의 웃음은 막연히 파충류의 울음을 떠올리게 했다. 섬이 흔들리다 배처럼 뒤집혀도 김하분 씨는 그러려니 할 사람 같았다. 바깥의 미친바람도 피콕 그린 여자의 야행도 그다지 새삼스러울 게 없다는 투였다. 숨 가쁜 오의 느닷없는 방문도.
“바램으로 사뭇 파고드는 뿔쇠오리도 있잖애. 굳이 불구뎅이에 들어가 사는 도마뱀도 있단디 말해 뭐 해.”
그 말을 할 때 김하분 씨는 웃지 않았다. 바람 같고 불같은 세파에 뛰어들었던 청춘 한때의 자신을 떠올리는 것인지, 바람을 부르고 바람을 기다려 밤 외출을 감행하는 피콕 그린의 여자를 말하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마침내 가늘고 길쭉길쭉한 비수리 줄기가 연속해 손끝에 잡혔고 오는 비탈진 오솔길을 더듬어 내려갔다. 바다와 거리가 가까워지자 바람과 더불어 해각에 부딪히는 커다란 파도소리가 오를 뒤로 떠밀었다. 오는 밀려나지 않으려고 비수리 줄기를 힘껏 움켜쥐었다.
어둠 속에 여자의 모습이 보였다. 큰똥여를 집어삼킬 듯 덮쳐오는 흰 파도가 아니라면 여자의 위치를 분간하기 어려웠다. 거대하게 부풀어 오르는 포말의 배경이 바위와 여자의 몸을 검게 드러내 주었다. 검은 실루엣은 파도가 꺼질 때 어둠에 섞여 사라졌다가 파도가 흰 고래처럼 일어서면 다시 드러나곤 했다. 오의 눈에는 그녀의 모습이 단속적으로 보일 수밖에 없었다. 동작과 동작 사이를 깊은 어둠이 끊었다. 이쯤에 있던 여자가 다시 파도가 닥칠 때는 신출귀몰 저쯤에 있었다. 이쯤과 저쯤 간의 거리와 파도의 주기를 셈해 보면 그녀가 얼마나 빠르게 움직이는지 알 수 있었다. 동작으로 보아 여자는 파도를 향해 무어라 외치는 것도 같았으나 바람과 파도에 묻혀 들리지 않았다.
오는 걸음을 멈춘 채 더는 접근하지 않았다. 여자가 파도에 휩쓸릴까 위태로워 보였으나 그녀의 동작이 아무래도 어떤 들림의 상태인 것만 같았다. 여자를 위험에서 구하려는 일이 오히려 그녀를 방해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오의 걸음을 멈추게 했다.
“그 여자 벌써 바람 들었다는 거 그거? 그러니까 그게 병이잖소. 병. 그러니 더욱 이걸 마시고 더는 그러지 말아야지.”
“벵은 벵이지만…….”
뇌졸중 전도사가 뒤늦게 김하분 씨의 말뜻을 이해한 것 같았다. 김하분 씨가 불륜의 바람을 뇌졸중의 풍증으로 비유한 것을 전도사가 알아차렸던 것이다.
가장 늦게 깨달은 건 오였다. 바람을 피운 게 남편이었으니 남편이 병든 거였다. 그런데 김하분 씨나 전도사는 여자가 바람이 들었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때 오의 머릿속에 두 대의 승용차가 빠르게 스쳤다. 검은색과 차콜색.
“병이 아니고서 어찌 그럴 수 있을까, 여자가. 한쪽으로 딱 정리를 못 하고 속 시끄럽게 두 남자 사이에서 시난고난 저러고 있다니.”
“양쪽 남자가 통 안 놔 주니께 글제. 마음 정리라는 것도 그게 말처럼 쉽다요?”
“그래도 병이니 고쳐야지.”
“아, 벵 가운데 있으야 쓰갔단디 아자씨가 참 뭔 챔견이랴.”
김하분 씨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어째서 그토록 큰 소리로 화를 낸 건지 오는 알 수 없었으나 김하분 씨의 말은 왠지 아득한 곳에서 시나브로 건너와 느닷없이 불어 닥친 손돌만큼이나 사나웠다.


병에 관해서는 모르겠으나 김하분 막걸리의 그들이나 큰똥여의 여자와 함께 자신이 바람 부는 섬에 머물고 있는 것만큼은 오로서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벵 웂이 신통해지는 게 하나라도 있간디?…… 김하분 씨의 말을 떠올리다 말고 오는 자리에서 튕겨 일어섰다.
여자가 허연 포말 속으로 자신의 검은 머리를 들이밀었기 때문이었다.
돌멩이에 발끝이 부딪혀 비틀거리면서도 오는 쏜살같이 파도를 향해 돌진했다. 파도가 꺼졌고 여자도 따라 어둠에 묻혔다. 오는 숨을 멈춘 채 기다렸다.
바람이 파도를 몰고 해변으로 몰려왔다. 오는 눈을 부릅떴다. 흰 포말이 부르르 일어서기 시작했다. 파도가 다시 꺼져 내리기 전에 여자를 포착해야 했다. 거센 일렁임이 큰똥여에 부딪히며 커다란 스크린으로 퍼질 때 오는 움직이는 작은 점을 향해 몸을 던졌다. 차가운 물벼락이 이마와 얼굴을 때렸다.


파도가 물러난 뒤 오는 자신이 아무것도 움켜쥐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여자가 오의 팔을 잡아 일으켰기 때문이었다. 여자가 오를 구한 모양새였다.
“위험해 보여서요.”
뒤따라와 뛰어든 이유가 설명되었길 바라며 오는 먼저 멋쩍게 중얼거렸다.
“그랬겠네요.”
여자가 말했다. 구하려 뛰어든 자가 오히려 위험에 처했던 사람으로부터 이해와 위로를 받는 이상한 사태를 오는 얼른 감당할 수 없었다.
“괜찮아요? 다치지 않았어요?”
오가 물었고
“보시다시피.”
여자는 자신이 오를 부축하고 있는 상황을 환기시켰다. 그리고 웃었던가. 오는 이 기이한 판국에 휘말리지 않으려고 이를 악물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어둠 속에 드러나는 여자의 득의에 찬 웃음을 놓치지 않았다. 젖은 얼굴에 박힌 두 푸른 각막의 번득임도. 불안과 유혹 사이에서 흔들리는 병적인 충동의 빛. 그 도저한 빛의 향배를 오로서는 도무지 가늠할 수 없었다.
“바다로 뛰어드는 것처럼 보였거든요. 그래서…….”
자신처럼 흠뻑 젖은 여자에게 오가 말했다. 둘은 바다를 등지고 걸었다.
“그랬을 것 같아요.” 유체이탈 화법이라고 하던가. 여자는 남의 말 하듯 했다. “그러셨다니…… 고마워요.”
그녀의 감사가 오는 탐탁지 않았다. 거슬린다는 느낌이 들기도 전에 그녀가 물었다.
“무똥 까데는 어땠나요?”
파도에 휩쓸려 죽을 뻔한 사람이 자신을 구하려 파도에 뛰어든 사람에게 묻는 말이라니. 피차 물에 빠진 생쥐인 주제에. 빈정상하려 했으나 그보다 먼저 늑막을 쑤욱 밀고 올라오는 낯선 감정에 오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급박한 상황에 지었던 수상한 미소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던지는 그녀의 말 사이사이로 기이한 서슬의 산뜻함이 끼쳐 왔기 때문이었다. 해변을 걷다가 누군가로부터 불식간에 이름 모를 꽃을 건네받은 느낌이랄까. 반감을 거스르는 이 가볍고 홀가분한 기운의 정체가 무엇인지 오는 평생 알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새로웠어요.”
대답하며 오는 진라면을 떠올렸다.


다음날은 감쪽같이 맑았다. 거짓말같이, 라는 말이 딱 어울렸다. 맑은 하늘은 높았고 바람 한 점 불지 않았다.
전날 밤의 바람은 꿈같았다. 어제를 잊으라는 강요인 듯 바람 잔 아침 바다의 윤슬이 눈부셨다.
왠지 속임수 같은 그 강요를 오는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바람 불고 흔들리는 올도를 잠시 쾌청한 가을 환상의 휘장으로 덮으려는 눈속임 같았다. 그게 아니라면, 명료하고 빤한 맑음이 오에게 던지는 솔직하고도 정다운 자백일지도 몰랐다. 눈부심을 믿지 말라는. 감쪽같은 아침의 웃음이 실은 기만이며 위장이라는. 꿈이라면 전날의 어둠이 아니라 아침의 이 맑음일 거라고.


그날 이후 오가 올도를 떠나는 날까지 더는 피콕 그린의 덧문이 열리지 않았다. 여자가 오 앞으로 남겼다는 다른 이름의 와인 한 병을 김하분 씨로부터 전해 받고 그녀가 떠났음을 알았다.
손돌이 지나는 계절에 맞추어 여자가 다시 피콕 그린에 모습을 나타낼지 오로서는 알 수 없었다.
오는 서울의 활동 공간으로 돌아왔고 새 소설의 출간을 결정했다. 다시 참혹해지더라도 논란의 와중을 피하지 않기로 했다.
집필실 그의 책장 한편에 피콕 그린 여자에게서 받은 와인 병을 놓아두었다. 옆에는 그가 잡생각 삼매에 빠질 때 손안에 넣고 꾹꾹 쥐는 검은 조약돌과 여자의 공연 초대장이 나란히 있었다. 꼬리 긴 새처럼 날아오르는 무용수의 검은 몸 위로 ‘육소은 모던댄스-질풍 아일랜드(Island of Fresh Breeze)’라고 적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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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마음 없이

좋아하는 마음 없이 김지연 안지는 이른 결혼을 했는데 실패로 끝났다. 아니, 그걸 실패라고 할 수 있을까? 이혼을 한 건 사실이었지만 안지는 자신의 인생 여정에서 그때 이혼한 일을 실패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 뒤로 더 행복해졌다고 할 수는 없을지언정 조금 더 자기 자신에 가까운 삶을 살게 된 것은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혼이라는 단어를 떠올릴 때면 늘 그에 대해 변호하고 싶은 여러 말들이 떠오르곤 했기 때문에 처음부터 결혼 같은 건 하지 않는 편이 더 나았을 거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 때문에 이혼했다는 사실은 안지의 비밀은 아니었지만 먼저 나서서 밝히지도 않았다. 어릴 때 안지는 무척 전형적인 사람이 되고 싶었다. 구체적으로 그런 표현을 떠올리지는 않았다. 그저 자신이 속해야 하는 집단에서 튀지 않는 사람, 아주 평균적인 사람이고 싶었고 그런 사람이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을 했다. 찬반투표를 할 때면 눈치를 보다가 다수의 의견에 따라 슬그머니 손을 들었다. 친구가 좋아하는 가수를 따라서 좋아하고 친구의 것과 비슷한 브랜드의 신발을 사서 신었다. 친구들이 싫어하는 선생을 따라서 싫어했다. 사실 안지는 그 선생에게 남몰래 호감을 갖고 있었지만 친구들과 함께 떡볶이를 먹다가 술술 흘러나온 그 선생에 대한 욕을 듣고 재빨리 노선을 바꿔 함께 욕을 했다. 한동안 안지는 수학 시간마다 왜 애들은 저 선생을 싫어할까? 에 대한 답을 알고 싶어서 더 열심히 선생의 행동거지를 살폈다. 수학을 가르친다는 점만 빼면 딱히 나무랄 데 없는 사람이었다. 학생이 쉽게 답할 수 없는 내용을 골리듯 물어보지 않았고 무엇보다 학생들한테 사과를 할 줄 알았다. 뭔가 잘못 알고 섣불리 화를 냈을 때, 그러다 결국 진실을 알게 되었을 때, 다른 선생들은 그러게 헷갈릴 만한 짓을 왜 하고 다니느냐고 도리어 짜증을 부렸는데 그 선생은 재빨리 미안하다고 말했다. 미안하다. 내가 잘못 알았어. 미안해. 가끔 안지는 머릿속으로 그 목소리를 재생해 보곤 했다. 그 때문에 선생이 더 좋아졌지만 여전히 싫어하기 위해 애썼다. 누구나 다 그런 식으로 청소년기를 보내지 않나? 내가 아닌 사람이 되어 보려고 노력하면서? 안지는 대학에 갔고 연애를 했고 졸업을 했고 취직을 했다. 결혼도 했다. 아주 평균적인 삶이었다. 조금씩 빠르기도 했다. 조바심이 나 있었으므로. 자신도 남들처럼 지극히 평범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을 빨리 증명해 보이고 싶었으므로. 어느 정도 성공적인 것 같기도 했다. 남편이 바람이 나기 전까지는 그랬다. 식도 올리기 전 임신을 해 낳은 아이가 막 돌을 지난 참이었다. 임신이 아니었으면 결혼까지는 이어지지 않았을지도 몰랐다. 남편은 계속 후회하는 것 같았다. 그때 낙태를 밀어붙이지 않은 것을, 시간을 끌다가 영영 타이밍을 놓쳐버리고 만 것을, 어떤 결단력을 가지지 못한 자신을 자책했을지도 모른다. 그때 뼈저리게 깨달은 바가 있었는지 새로운 여자가 생겼을 때는 안지가 알아차리기도 전에 이혼을 해달라고 요구했다. 겨우 육 개월을 만났을 뿐

  • 관리자
  • 2024-07-01
소금 샹들리에

소금 샹들리에 정한아 호주에 사는 김이 오랜만에 귀국해서 친구들이 다 같이 모이기로 했다. 4명이 만나는 건 대략 7년여 만이었다. 방을 잡고 밤새 보자고 해서 오기 직전까지 망설였는데, 남편이 등을 밀었다. 정민이와 자신에게도 내가 없는 날이 필요하다고 큰소리를 치더니 정말 밤새 전화 한 통 없었다. 친구들과는 대학 동기였다. 전공은 문예 창작이었는데, 나는 2학년까지 다니고 학교를 그만뒀다. 그렇지만 정작 작가가 된 사람은 나뿐이라고 친구들이 투덜거렸다. 나는 작가가 아니라고 아무리 말해도 소용없었다. 그들은 십 수 년 전 내가 낸 단 한 권의 책을 기억하는 몇 안 되는 사람들이었다. 세 명 모두 미혼이었고, 아이를 가지지 않았다. 놀라울 정도로 예전 그대로인 친구들 사이에서 나만 철 지난 옷차림에 좀처럼 대화에도 섞이지 못했지만, 그런 것 때문에 마음이 상하지는 않았다. 오랜만의 서울 나들이에 술자리도 즐거웠다. 좋은 친구들이었다. 7년 전 정민이 자폐 스펙트럼 장애 판정을 받았을 때 그들은 자신의 일처럼 울어 줬고, 이후에도 종종 아이의 간식과 선물을 집으로 보내 줬다. 서서히 연락을 거둔 것은 내 쪽이었다. 애써 관계를 유지하는 일이 힘에 부쳤을 뿐, 그들에게 섭섭한 마음은 조금도 없었다. 지난 몇 년 동안 나는 집이 아닌 곳에서 밤을 보낸 적이 없었다. 다들 술에 취해서 침대로 간 뒤에도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아 휴대폰만 들여다보았다. cctv 속 거실은 엉망이었다. 엎어진 식판, 사방에 흩어진 블록 조각, 길게 늘어진 옷가지들. 남편은 불도 끄지 않고 아이를 재우러 방에 들어간 모양이었다. 나는 정지화면 같은 그 풍경을 한참 바라보다가 해 뜰 무렵에야 겨우 잠이 들었다. 다음날 우리는 점심을 먹고 헤어지기로 했다. 맛집마다 대기가 길어 종로의 좁은 골목을 돌고 또 돌았다. 앞장서 구글 맵을 보며 걷던 김이 갑자기 작은 서점 앞에서 멈춰 서더니 책을 사야겠다고 말했다. 지난 이사 때 내 책을 분실했다는 것이었다. 나는 집에 돌아가서 책을 다시 보내 주겠다고 김을 달랬다. 다섯 평도 안 되어 보이는 그 작은 서점에 내 책이 있을 리는 만무했기 때문이다. 김은 막무가내로 서점에 들어갔다. 할 수 없이 그녀를 따라 들어갔다가 전면 책장에 전시된 내 책을 발견했다. 죽은 친구를 만났다고 해도 그처럼 놀라지는 않았을 것이다. “미애 씨!” 그곳에서 누군가 나를 불렀다. 우아한 노부인이었다. 린넨 바지에 화이트 셔츠, 큼지막한 호른 목걸이를 한 여자는 환하게 웃으면서 나를 바라봤다. “반장님?” 나는 말끝을 흐리며 물었다. 여자는 성큼성큼 내 앞에 다가와서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나를 와락 끌어안았다. 누군가 나를 그렇게 안은 것이 너무 오랜만이라 온몸에 힘이 풀리는 것 같았다. 그녀는 오래전 나와 함께 공부했던 문우였다. H 백화점 문화센터 소설 창작 교실의 반장. 친구들이 책을 구경하는 사이 나는 그녀와 짧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ldqu

  • 관리자
  • 2024-07-01
그동안의 정의

그동안의 정의 최예솔 작정하고 사라진 사람은 작정하고 찾아야만 한다. 나는 윤정수를 작정하고 찾지 않았다. 보통의 남매 사이라는 게 정확히 어떤 건지는 모르겠지만 윤정수와 나를 그냥 보통 남매, 라고 하기에는 좀 어렵지 않을까. 윤정수는 나보다 4년 먼저 태어났다. 그리 적지도, 그리 많지도 않은 애매한 나이 차이 덕분에 윤정수와 나는 딱히 친해지지 못했다.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윤정수는 중학교에 갔고, 내가 중학생이 되었을 때 윤정수는 고등학교에 갔다. 물론 윤정수와 내가 영 친해지지 못한 건 우리의 나이 차이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윤정수는 내게 없는 사람에 가까웠다. 말수도 없고 센스도 없고 자존심도 없고 공부머리도 없고 돈도 없고······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나? 아무튼 남매 사이에 정이라도 있었다면 걱정이라도 했을 텐데 그럴 이유조차 없었다. 쥐뿔도 없는 윤정수니까. 특이사항이라곤 개그맨 윤정수와 동명이인이라는 것 정도밖에 없는. 그러니 윤정수가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집을 나갔다고 해도 이상할 것 하나 없었지. 뭐 내가 찾는다고 윤정수가 나타났을 거라는 보장도 없지만 나는 막연히, 어련히 때 되면 나타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했다. 하지만 윤정수는 죽을 때까지 나타나지 않았다. 물론 내가 죽은 것은 아니다. 윤정수가 죽었다. 내 나이가 이제 서른이니까, 윤정수는 서른넷에 죽었다. 이제 내게 남은 혈육은 없다······ 아닌가? 고모. 그렇게 부르지 마. 왜요. 낯설어. 저도 고모가 낯설어요. 윤현수는 맹랑하다. 윤정수와 장현아의 딸이라고 해서 윤현수. 그거 좀 유치하지 않니? 물었을 때 윤현수는 뭐 어때요 엄마아빠말곤 모르는데, 하고 대답했다. 이제 나도 아는데? 하니까 이젠 고모도 모르는 척해 달라고 했다. 참 나 어디서 이런 게 굴러왔는지. 현수야. 네. 네 엄마 입국 날이 언제라고 했지? 다음 주 토요일이요. 아직 한참 남았네. 고모도 고모 할일을 해요. 시간 금방 갈걸요. 알겠다 그래. 윤현수를 데리고 온 사람은 장현아다. 이제는 나흘쯤 됐으려나. 아침부터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하도 시끄러워서 나가 봤더니 장현아가 윤현수의 손을 붙잡고 서 있었다. 장현아는 다짜고짜 윤정수를 아느냐고 물었고 나는 오랜만에 듣는 윤정수의 이름에 잠깐 벙쪘다가 네, 저희 오빠네요, 하고 대답했다. 조카입니다. 그날 장현아의 대사를 나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그건 도저히 내가 아는 사람이 뱉을 만한 말이 아니어서 대사라고밖에는 표현할 수 없겠다. 아직도 문득 의심스러울 때가 있다. 윤현수가 정말 나의 조카가 맞고 장현아가 정말 나의 새언니가 맞을까. 가족관계라는 게 그렇게 단순하게 정리되는 거라면 이제까지 윤정수와 나는, 또 윤정수와 나와 우리의 부모는, 왜 이렇게 흩어지거나 죽거나 혼자 남을

  • 관리자
  • 2024-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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