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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리

  • 작성일 2022-10-01
  • 조회수 4,286

[단편소설]



태리



도재경





십 년 정도는 더 젊어 보여요.
아흔을 넘겨도 할머니는 그 말을 가장 좋아했다. 이래저래 잘 관리한 이유도 있겠지만 할머니는 또래 노인들에 비해 귀와 눈이 밝았고, 허리도 꼿꼿했다. 몇 달 전 협심증으로 치료를 받기 전까지만 해도 걸핏하면 바람을 쐬겠다며 전철을 타고 영종도나 두물머리에 다녀오곤 했다. 큰삼촌이나 엄마는 그렇게 쏘다니다가 넘어지기라도 하면 어떡하냐며 지팡이라도 딛고 다니라고 했지만 할머니는 들은 척도 않았다. 또 목소리는 오죽 카랑카랑한지.
할머니는 틈만 나면 지난 이야기를 하곤 했는데 여느 노인들과 마찬가지로 주로 두 자식을 키워 온 이야기가 대부분이었다. 삼촌이 변소에 빠져 똥독이 올라 죽을 뻔한 이야기는 아마 수백 번도 더 들었을 것이다. 그로 인해 한 달 넘게 집에 파리가 꼬였다나 뭐라나. 달걀을 먹다가 목이 막힌 엄마가 이틀 동안 숨을 쉬지 않다가 되살아난 믿기 힘든 일화도 있었다. 그럴 때면 삼촌이나 엄마는 또 그 얘기냐며 슬그머니 자리를 피하곤 했는데.
파리야 그렇다 쳐도 사람이 어떻게 이틀 동안 숨을 쉬지 않을 수 있어요?
언젠가 나는 할머니에게 되물은 적이 있었다. 그러자 할머니는 곧바로 정색하더니 좀 더 살아 보렴,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알게 될 테니, 그러며 얼버무렸다.
할머니는 하루도 빼먹지 않고 화장을 했고, 검게 염색한 머리카락은 언제나 윤기가 흘렀다. 큼지막한 루비가 박힌 반지와 에메랄드빛 귀걸이, 그리고 진주목걸이도 빼먹지 않았다. 외출을 하지 않는 날에도 알록달록한 큐빅이 촘촘히 박혀 있는 블라우스나 큼지막한 브로치가 반짝이는 스웨터를 차려입은 채 소파에 앉아 꾸벅꾸벅 졸곤 했다. 그런 할머니 모습을 보면 마치 사랑을 듬뿍 받고 산 귀부인 같았다. 그뿐인가. 나는 할머니만큼 쇼핑을 좋아하는 노인을 여태 만나 본 적이 없다.
내 생일을 앞둔 어느 날 할머니는 전화를 걸어와 삼촌이 상품권을 줬다며 백화점에 함께 가자고 했다. 마침 눈여겨봐 둔 치마가 있던 터라 할머니를 성큼 따라나섰는데 웬걸, 자홍색 꽃무늬가 현란한 원피스를 골라 곧장 피팅 룸으로 들어갔다가 나오더니 전신 거울 앞에서 주춤주춤 제자리를 돌며 치맛자락을 펼치는 게 아닌가.
어떠냐? 십 년은 더 젊어 보이지 않니?
그런가? 나는 입술을 삐죽 내민 채 거울에 비친 할머니를 심드렁하게 바라보았다.
십 년이 뭐예요? 이십 년은 더 젊어 보여요.
어느새 할머니 곁으로 다가온 점원이 내 대답을 가로챘다. 큰언니뻘로 보이는 그 점원은 장사깨나 해본 사람이었던 게 틀림없다. 맙소사, 이십 년이라니! 할머니가 원피스를 사지 않을 이유가 없지. 할머니는 그런 점원이 마음에 들었는지 대뜸 나를 가리키며 우리 막내 손녀보다 훨씬 어려 보인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아이고. 우리 할머니 신나셨네.
할머니는 연신 방실거리며 거울 앞에서 립스틱을 바르고는 곧장 점원에게 상품권을 건넸다. 할머니는 자신을 단장하는 데에 아낌없이 투자했다. 그런 할머니가 내게 선물한 물건이 하나 있었는데 다름 아닌 손바닥만 한 휴대용 녹음기였다.
요즘은 스마트폰에 녹음 기능이 있어서 필요 없다고 아무리 손사래를 쳐도 소용없었다. 소설을 쓰려면 녹음기 하나쯤은 갖고 있어야 하지 않느냐며 낙원상가로 나를 이끌더니 기어이 그 투박한 물건을 내 손에 쥐여 주었다. 이야기를 잘하려면 무엇보다 이야기를 많이 들어야 한다는 건데, 사실 그건 내게 꼭 필요하기보단 할머니를 위한 물건처럼 보였다. 하긴 할머니 이야기를 듣다가도 걸핏하면 졸곤 했으니 그런 내가 못 미더웠던 건지도.
할머니는 그날 캐러멜 시럽이 잔뜩 들어간 커피까지 사주고는 집으로 돌아와 똥독과 달걀 이야기를 하며 녹음기 성능을 테스트했다.
똥독이나 달걀 말고 다른 얘기는 없어요?
할머니는 녹음된 내 목소리를 듣고선 신통방통하다며 깔깔거리더니 다시 녹음 버튼을 눌렀다.
내 이름은 김태리입니다. 나는 1932년 가회동에서 태어났습니다.
엉? 할머니 이름은 김복달이잖아.
할머니는 내 손등을 툭 치며 정지 버튼을 눌렀다.
그이는 날 태리라고 부르지 않았겠니.
나는 하마터면 마시던 커피를 뿜을 뻔했다. 근래 배우 김태리가 출연하는 무슨 영화나 드라마라도 보셨나? 그동안 할머니로부터 할아버지에 대해 수도 없이 듣긴 했지만 그 얘기는 처음이었다. 그러니까 그 이름은 할아버지가 할머니를 부르던 애칭이라는 건데, 하필 왜?
그 이름이 나랑 잘 어울린다고 하지 않던. 뭘 알았던 거지.
어디에도 확인할 방법이 없으니 그러려니 할 수밖에.
할머니는 쭈글쭈글한 손을 활짝 펴보며 긴 한숨을 내쉬더니 커피는 다 마셨느냐고 물었다. 그러더니 내게 대답할 틈도 주지 않고 매니큐어가 벗겨졌다며 또 한 번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우리 손녀가 매니큐어를 해주면 마음이 차분해지더라.
그럼 그렇지. 할머니가 커피를 그냥 사줄 리 있나.


할머니가 할아버지를 처음 만난 건 진달래가 한창 피던 1948년 어느 봄날이었다. 할머니는 그날 오후 명동의 한 의상실에서 옷을 사서 나오던 길이었다. 길을 건너려고 하는데 누군가 할머니의 팔을 잽싸게 낚아챘다. 그와 동시에 자동차 한 대가 할머니를 스치듯 지나갔고, 그 바람에 옷가지는 바닥에 널브러졌다.
태리, 또 죽을 뻔하지 않았소. 그래서 내가 이렇게 다시 왔소.
할머니 앞에 처음 나타난 할아버지는 어딘지 모르게 능청스러웠다.
그러더니 대뜸 그것보다 훨씬 곱고 빛나는 옷을 입을 수 있으니 나랑 얘기 좀 합시다, 그러는 게 아니겠니.
할머니가 엄청 마음에 드셨나 봐?
나는 내심 할아버지가 할머니의 마음을 꿰뚫어보고 있었구나, 라고 생각했다. 쇼핑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할머니가 아니던가.
그걸 말이라고 하니. 한데 자꾸만 나를 태리라고 부르길래 다른 이와 착각한 게 아닌가 싶었지.
왜 그렇게 부르셨던 거예요?
우리가 처음 만난 곳이 태리의상실 앞이었잖니.
잠시 회상에 잠긴 듯 할머니의 눈꼬리가 슬며시 내려갔다.
우린 항상 그 의상실 앞에서 다시 만났다고 하더구나. 그래서 내 진짜 이름을 알면서도 늘 그렇게 불렀다고 그러더라. 기분이 썩 나쁘진 않았지. 실은 그 의상실을 찾았던 것도 가게 이름이 마음에 들어서였거든. 그런데 그이가 하는 말이 우리가 처음 만났던 날 그 자동차에 치여 함께 죽었다고 하는 거야. 그것도 예순 번도 넘게 말이야. 끔찍하기도 하지. 그런데 다시 눈을 떠보면 어김없이 내가 의상실에서 옷가지를 사서 나오더라는 거야. 처음엔 어찌 된 일인가 싶었다더라. 근데 나는 대체 그게 무슨 얘긴가 싶었어.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근래 할머니가 SF 영화를 보셨나? 아니면 김태리가 타임 루프를 소재로 한 드라마를 찍었던가? 언뜻 그런 생각이 머리에 스쳤다. 그런데 할머니 얘기로는 할아버지가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도 훤히 알고 있더란 것이다. 일테면 잠시 후 옆 골목에서 두부 장수가 나타날 것이며, 이어서 전차가 지나가자마자 길모퉁이 국밥집에서는 술에 취한 사내 둘이 주먹다짐을 하게 되고, 또 한 대의 전차가 지나가기 전에 서른두 명의 구경꾼이 몰려들 거란 사실도.
처음엔 웬 점쟁이가 나타났나 했지. 그래서 어떻게 그리 잘 아느냐고 묻지 않았겠니. 그러자 의상실 앞에서 나를 만난 게 이미 26,273번째라는 거야. 그래서였을까 어쩐지 마치 오래전부터 잘 알고 있던 사람 같이 친근하더구나.
점점 엉뚱해지는 얘기. 그러나 할머니는 말도 안 되는 얘기를 철석같이 믿고 있는 듯했다.
내가 오죽 좋았으면 그랬겠니.
어떻게 해석하든 그건 할머니 마음이니까 뭐. 할머니의 두 눈은 백화점 매장을 둘러볼 때처럼 반짝거렸다. 물론 할머니의 허풍이 얼마나 센지 모르진 않았다.
할머니의 얘기를 듣다 보면 소나 돼지 같은 가축이 능청스럽게 말을 하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뿐만 아니라 삼촌이 걸음마를 시작할 무렵 옆집에서는 꼬리가 달린 아이가 태어났고, 이카로스처럼 날개를 달고 하늘을 날아다니는 이들이 심심찮게 등장하기도 했다. 그때마다 의심스러운 눈길을 보내면 할머니는 어김없이 새초롬한 얼굴을 하고선 내가 언제 거짓말하는 거 봤니? 그러면서 시치미를 뗐다. 어쩌면 그런 할머니의 유전자를 물려받아 내가 소설을 쓰게 된 건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할아버지에 대한 얘기는 장르가 너무 다르지 않나. 단언컨대 할머니는 책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설사 할아버지가 할머니를 만나기 위해 이만 번을 넘게 되살아났다고 치자. 그 정도 횟수면 신물이 날 법도 할 텐데. 할머니가 그토록 매력적이었나?
언젠가 할아버지의 손을 꼭 붙잡고선 입을 헤 벌린 채 웃고 있는 할머니의 사진을 본 적이 있었다. 비녀로 쪽을 누른 건 그렇다 쳐도 젖살이 오른 듯 포동포동한 할머니의 얼굴은 촌스럽기 그지없었다. 반면 포마드를 발라 빗어 넘긴 헤어스타일에 반듯한 정장을 차려입은 할아버지의 모습은 패션모델처럼 근사했다. 모서리가 해진 그 흑백 사진은 두 사람이 함께 찍은 유일한 것으로 결혼식 다음날 명동에서 찍었다고 했다.
할아버지가 할머니를 구하셨네.
그 반대지.
할머니는 알록달록한 꽃 모양이 그려진 손수건으로 사진을 닦으며 덧붙였다.
내가 없으면 사는 것도 의미가 없다고 말하지 않았겠니.
할아버지가 엄청 로맨티시스트셨나 보네.
뭐, 사람마다 보는 눈이 다를 순 있으니까. 이따금 할아버지가 할머니에게 열심히 대시한 데에 감사한 마음이 들곤 한다. 두 사람이 만나지 않았다면 이 세상에 나도 없었을 테니까 말이다. 그리고 또 하나, 사진 속 할머니를 보며 드는 생각이 있다면 사람은 정말 꾸미기 나름이구나, 라는 것. 물론 할아버지가 이 얘기를 듣게 된다면 달갑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조금 다른 얘기긴 한데 할머니는 정말 인기가 많긴 했다. 불과 십 년 전만 해도 할머니는 종로나 제기동 일대의 콜라텍에서 내로라하는 퀸카였다. 업주들은 할머니를 모시기 위해 앞 다투어 집 앞에 고급 세단을 보낼 정도였다. 콜라텍 입구에는 할머니를 만나려고 몰려든 할아버지들로 긴 줄이 늘어서기 일쑤였다. 얼마나 유명했으면 팔십 평생 지리산을 한 번도 벗어나 본 적 없는 약초꾼이나 거문도에서 일평생 물고기만 잡던 나이 든 어부도 할머니를 보기 위해 콜라텍 앞에 자리를 깔곤 했으니. 음. 그러나 할머니가 그런 인기에 연연했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내가 보기에 할머니에게 콜라텍은 백화점 같은 곳이었다. 콜라텍을 다녀온 날 할머니의 두 손에는 언제나 선물 꾸러미가 한가득 들려 있었다. 토종꿀을 비롯해 송이버섯이나 은갈치 등 종류도 다양했는데 심지어 백 년도 더 되었다는 산삼을 가져온 적도 있었다.
오늘은 어떠셨어요?
갈수록 물이 안 좋네.
어느 날 할머니는 포항에 산다는 노인네로부터 받은 돌문어와 마른미역을 내게 건네며 말했다.
왜요?
노인네들이 너무 어려.
그럼 안 가시면 되잖아요?
그래도 그만큼 노인네들이 모여 있는 곳도 드물잖니. 그이만큼은 아니지만 멋을 잔뜩 부린 이들도 곧잘 눈에 띄고.
할머니는 손으로 두 발을 꾹꾹 누르다 말고 뭔가 못마땅하다는 듯 내 앞에 두 다리를 쭉 뻗었다.
이 할미가 아니면 네가 언제 산삼 뿌리 맛이라도 볼 수 있었겠냐.
나는 하는 수 없이 할머니의 다리를 꾹꾹 주물렀다.
그런데 늙으면 다들 하나같이 비슷한 얼굴이 되는지 몰라? 이놈이 저놈 같고, 저놈은 그놈 같고, 그놈은 이놈 같단 말이야.
다른 할아버지들도 그렇게 생각했을걸요, 나는 그렇게 대꾸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할머니는 블라우스 단추를 풀며 덧붙였다.
그거 뭐냐. 미역은 네 엄마 갖다 줘라.
돌문어는요?
그건 내가 먹어야지.
할머닌 문어 안 좋아하잖아. 질겅거리는 게 싫다면서.
내가 언제 그랬냐?
이따 저녁 먹고 갈까요?
아이고, 그럼 미역국이나 끓여야겠다.
나는 할머니만큼 상대의 마음을 들었다 놨다 할 수 있는 사람을 여태 본 적이 없다.
그런데 그날 할머니와 함께 미역국을 먹었던가.
그리 오래된 일도 아닌데 어렴풋하다. 하물며 할머니는 무슨 수로 그보다 훨씬 오래전, 수십 년도 더 된 일을 그렇게 세세히 기억할 수 있는지. 할아버지에게 신묘한 예지력이 있다면 할머니는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같은 얘기를 반복하는 묘한 재주를 가지고 있는 건지도. 녹음기를 사오던 날도 그랬다.
할머니는 매니큐어를 바른 연분홍빛 손톱을 후후 불어서 말리며 신혼 때 이야기를 하염없이 늘어놓았다. 우리 할머니에게도 그런 어여쁜 시절이 있었구나, 그런 생각이 들지 않은 건 아니었다. 문제는 내가 그 이야기를 귀가 헐도록 들었다는 거였다. 과연 할머니에게 녹음기가 필요할까.
전에도 하셨던 얘기잖아요.
그러거나 말거나 할머니는 했던 이야기를 하고 또 했다. 일테면 어느 봄날의 싱그러운 하늘빛과 돌고래를 닮은 구름과 햇빛을 머금어 반짝거리는 개울과 꽃향기를 실어 나르는 따듯한 바람의 냄새가 어땠는지, 그리고 연둣빛 버드나무 가지가 하늘거리는 북적이는 거리와 팔랑팔랑 노란 나비가 날아다니던 정동길도. 그러니까 할아버지와 함께했던 그 모든 순간을.
할머니의 얘기를 듣다 보면 흑백 사진 같기만 한 그 시절 풍경에도 솜씨 좋은 화가가 채색한 것처럼 어느새 평화롭고 아름다운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적어도 두 사람이 만난 이듬해 삼촌을 낳고, 얼마 안 가 엄마를 가졌을 때까지는.


할머니는 서울 토박이였다. 심지어 그 사실을 자랑스러워하기까지 했는데 그랬던 할머니도 서울을 떠나 살 수밖에 없었던 적이 있었으니 다름 아닌 전쟁 때문이었다. 전쟁이 나기 전까지만 해도 한강 이남으로 가본 적 없던 할머니는 충청북도 단양에 있는 어느 외딴 마을로 피란해 그곳에서 오 년 가까이 지냈다고 했다.
전쟁이 끝나자마자 곧장 돌아오시지 않고요?
그이가 데리러 올 줄 알았거든.
서울을 떠나 지내야 했던 그 시절은 할머니에게 이루 말할 수 없이 긴긴 시간이었다. 할머니가 할아버지와 헤어진 곳은 소백산 기슭의 어느 숲속이었다.
그날따라 네 엄마가 어찌나 발길질을 해대든지.
엄마를 가진 지 7개월째였던 할머니는 연이은 강행군에 숨조차 쉴 수 없었다는데. 할아버지는 하루 쉬어갈 요량으로 짐을 풀고 나무뿌리 틈에 움막을 만들어 할머니를 앉혔다. 그러고는 할머니의 퉁퉁 부은 두 다리를 주무르는데 뒤따르던 피란민 일행의 불안은 이만저만 아니었다고.
놈들이 지척에 널려 있는데 여기서 쉬는 거요?
오늘밤엔 아무 일 없을 겁니다.
한 사내가 열 살쯤 된 코흘리개 아들의 손을 붙잡은 채 다가와 퉁명스레 묻자 할아버지는 그렇게 일러주었다고 한다. 그러고는 봇짐에서 감자를 꺼내어 아이에게 주었는데, 녀석은 고맙다는 인사도 없이 넙죽 받더니 호주머니에 집어넣더란 것이다.
할머니 얘기에 따르면 피란길에 할아버지의 활약은 꽤 대단했던 듯싶다. 마치 피란길을 수없이 밟아 본 사람처럼 길눈이 밝았는데 깜깜한 첩첩산중에서도 길 한 번 잃은 적이 없었으며 징검다리나 나루터가 어디에 있는지도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심지어 어느 산릉선에서 총알이 빗발칠지, 그리고 포탄이 떨어질 위치까지도 훤히 꿰뚫고 있던 탓에 소문을 듣고 하나둘씩 모여든 피란민들이 할아버지를 뒤따랐고 소백산 기슭에 다다를 무렵 그 규모가 수백여 명에 이른 상태였다. 그런데 일이 잘못되려고 그랬던지 그날따라 몇몇 사람들이 할아버지의 얘기를 도무지 믿으려 들지 않았다며. 도처에 적들이 깔려 있어 우회하기 위해 동북쪽으로 방향을 잡은 게 화근이었다. 개중에는 지리에 눈이 밝은 사람도 없지 않았던 모양으로 할아버지에게 딴죽을 거는 이들이 하나둘씩 나타났으니, 이유인즉 할아버지가 무리를 이끌고 온 방향이 남쪽이 아니어서 뭔가 수상하다는 거였다. 그때껏 잠자코 할아버지 뒤만 졸졸 따라오던 사람들도 동요하기 시작했다. 할아버지가 남쪽 방면으로는 이미 적들이 매복해 있다고 만류해도 소용없었다.
거참, 젊은이가 마치 이미 가본 사람처럼 이야기하네.
암, 가봤고말고. 진작에 수도 없이 가본 길이었더랬지.
할머니는 그날의 할아버지를 대신하듯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할아버지가 그러셨다고요?
그렇대도.
과연 할아버지의 얘기를 믿은 사람이 있기나 했을까. 그날 저녁 사람들은 전라도나 경상도로 갈 거라며 무작정 남쪽으로 발길을 되돌리더니 이내 뿔뿔이 흩어졌다. 코흘리개를 데려왔던 사내도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붙잡아도 소용없더라는 것이다. 사내는 더는 참견 마쇼, 그러고선 너덧 살쯤 되어 보이는 아이를 등에 업고 있는 아내와 코흘리개의 손을 잡아끌었다.
아버지, 가지 말라잖아요. 제발요. 우린 가지 마요.
코흘리개는 발을 질질 끌며 애원했지만. 사내는 도리어 쥐방울만 한 녀석이 뭘 아느냐며 머리를 쥐어박으며 여기 있다간 싹 다 죽는 거야, 그러고선 발걸음을 재촉했다. 막상 사람들이 떠나고 어둠이 몰려오자 할머니도 불안하긴 마찬가지였던 모양인데.
차라리 함께 움직이는 게 낫지 않느냐고 물었지. 그러자 걱정하지 말라며, 어둠에 가려진 능선을 하나씩 하나씩 가리키더니 이전에도 다 가본 곳이었다고 말하더구나.
우린 절대 저기로 가면 안 돼. 그럼 또 다시 시작해야 해.
아니나 다를까 그날 밤 이 산 저 산에서 포탄이 터지고 총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그때 배 속에 있던 네 엄마가 발길질을 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어떻게 되었으려나, 가끔 그런 생각이 들지 않겠니. 운명이란 게 신기하면서도 짓궂단 말이야.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면 그이의 말이 사실이었던 거지. 거기까지도 살아 봤던 거였어.
할아버지에 대한 거라면 아무리 사소한 거라도 의미를 부여하는 할머니였다. 그날 밤 할머니는 움막에 숨어 빽빽 울어대는 삼촌을 달래느라 애를 먹었다고 한다.
군홧발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는 것 같기도 하고, 달빛마저도 총부리의 섬광처럼 보여 자꾸만 부들부들 몸이 떨리지 않았겠니. 아무 일 없을 거라고, 그이가 내 손을 어루만지는데 그래도 어찌나 무서운지. 그러자 칭얼거리는 큰애를 사이에 두고 나를 꼭 끌어안더구나. 어두워서 아무것도 안 보였지만 그이가 나를 안심시키기 위해 미소 짓고 있다는 건 알 수 있었지. 잠깐 잠이 들었는지도 몰라. 동이 틀 무렵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깨어나 보니 그이가 움막을 나서고 있는 게 아니겠니. 먼저 떠난 사람들이 화를 입었다면 나뭇가지라도 꺾어다가 꽂아서 표식이라도 해둬야 하지 않겠느냐는 거야. 그래도 그렇지 어슴푸레한 숲속에 처자식을 두고 가는 법이 어딨냐고 붙잡았더랬지. 그러자 이전에도 별일 없었다며 도리어 나를 안심시키더구나.
그렇게 헤어지신 거예요?
그렇지 뭐. 수없이 가본 길이니 걱정하지 말라며, 금방 돌아오겠다고 하더구나. 그이가 내게 거짓말을 한 건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어.
어느 곳에 포탄이 떨어질지 알았던 할아버지도 그렇게 헤어질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던 걸까.
할아버지가 앞날을 아셨다면 차라리 일찌감치 전쟁을 피할 수도 있었잖아요.
왜 아니었겠니? 그런 이야기를 입이 닳도록 했었지.
할아버지는 전쟁이 터지기 하루 전까지도 서둘러 서울을 떠나야 한다고 수없이 할머니에게 얘기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할머니는 왜 할아버지 말을 듣지 않았던 걸까. 그 이유는 단순했다.
그런데 말이다. 너라면 믿었겠니?
할머니는 내 얼굴을 멀뚱히 쳐다봤다. 나는 얼결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나도 그랬지. 설마 그런 난리가 날 거라고 누가 알았겠어.
할머니 얘기를 정리해 보면 소백산까지의 여정은 이미 예정된 수순 같았다. 그런데 이상하지 않은가. 전쟁이 터질 걸 알고 있는 마당에 구태여 삼촌에 이어서 엄마까지 가져야 했을까. 그 험난한 피란길을 생각하면 차라리 나중에 아이를 가질 수도 있었을 텐데. 그 이유 역시 할머니의 대답은 단순했다.
너도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보렴. 그건 하느님이나 부처님도 어찌할 수 있는 게 아니란다.
그런가?
그렇다니까.
그럼 지금은 믿으세요?
뭘?
할아버지가 했던 얘기요.
믿다마다.
할머니는 푸석한 손을 쫙 펼쳐 보고선 어둑해진 창밖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덧붙였다.
얘야, 나는 그 얘기를 그날 이후로 지금껏 줄곧 생각해 왔단다. 자그마치 칠십 년을 말이야. 그이와 함께한 시간은 한순간도 빠짐없이 기억해. 여주에서 나룻배를 타고 강을 건널 때였지. 노을이 번들거리는 잔물결을 넋 놓고 바라보는데 그이가 대뜸 그러더구나. 만나는 거야 어렵지 않아. 헤어지는 게 어려워서 그렇지. 그러면서 우리가 나루터까지 오는 데에만 적어도 이만 번 가까이 죽고 다시 시작했다는 거야. 멀리서 터진 포탄 소리나 총소리에 놀라 내 심장이 멈춘 것만도 수천 번이었다나. 그뿐이었겠니.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다가 숨이 멎기도 하고, 주먹밥을 먹다가 느닷없이 기도가 막힌 적도 있다고 하더라. 그때마다 아무리 구하려고 노력해도 안 되더래. 하지만 이번만큼은 절대 먼저 떠나보내지 않을 거라고, 자신 있게 말하지 않겠니.
녹음기에 자신의 얘기가 담기고 있다는 사실을 의식한 탓이었을까. 할머니의 목소리는 여느 때와 달리 차분했다. 나는 할머니의 시선을 좇아 창문 너머로 아롱거리는 달빛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어째 색깔이 좀 탁한 것 같지 않니?
구름 때문일 거예요.
그게 아니라.
할머니는 손을 이리저리 돌려 보더니 아세톤과 함께 에메랄드색 매니큐어를 꺼냈다.
아무래도 이 색깔이 더 젊어 보이잖니?
나는 펄이 뒤섞여 반짝거리는 할머니의 연분홍빛 손톱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에메랄드색이 훨씬 탁하고 올드해 보이는데, 라고 말하려다 말고 화장 솜에 아세톤을 묻혀 할머니의 손톱을 쓱쓱 닦았다. 내가 뭐라고 해도 할머니는 에메랄드색이 더 괜찮다는 이유를 수백 가지는 더 나열할 게 뻔하겠지.


내가 할머니의 얘기를 곧이곧대로 믿는 건 아니다. 이야기란 게 때에 따라 부풀려지거나 작아지기도 하고 의도치 않게 이런저런 불순물이 덕지덕지 붙어 있기 마련이니까. 다만 한 가지 의아한 게 있다면 할아버지가 대체 왜 소백산 기슭에 자리한 외딴 마을로 가려고 했느냐는 것이다.
할머니는 언젠가 할아버지가 건넨 쪽지를 보물이라도 되는 듯 사진과 함께 고이 보관해 두고 있었는데, 손에 닿으면 바스러질 듯한 빛바랜 종이에는 희미한 글자와 함께 약도가 그려져 있었다.
난리가 나기 전부터 여기로 가야 한다고 수도 없이 들었더랬지.
사실 그 종이를 처음 봤을 때만 해도 나는 대수롭지 않게 보아 넘겼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니 할아버지가 택한 목적지는 어딘지 모르게 생뚱맞았다. 할아버지는 왜 수많은 피란민이 몰려든 부산이나 남쪽에 있는 도시로 가지 않았을까. 뿐만 아니라 그 마을은 친인척이나 지인이 살던 곳도 아니었다. 할머니가 그 마을에서 오 년 가까이 지낸 데에는 할아버지가 데리러 오지 않은 탓도 있지만 또 다른 이유도 있었다. 그곳은 전쟁의 참화를 피한 몇 안 되는 마을 중 하나로 그곳 사람들은 전쟁이 난 줄도 모르고 있었다. 그런 데가 다 있었나?
정말이래도 그러네.
심지어 그 마을에 머무르는 동안엔 휴전선이 그어진 것도 몰랐다며. 할아버지는 정말 뭘 알고 거기로 가려고 했던 걸까. 아니면 그저 단순한 우연일까. 그 마을에 대해서라면 삼촌도 한몫 거들었는데, 고작 갓 걸음마를 시작한 아기가 뭘 알까마는 학교 운동장에 탱크가 가득 들어선 풍경만큼은 선명히 기억난다고 했다. 그때마다 할머니는 단호하게 선을 긋곤 했는데.
아서라. 개구리라도 본 거였겠지. 넌 그때 엄마라는 말도 못 할 때였어.
유독 말이 느렸던 삼촌은 개구리 울음소리만 흉내 내다가 여덟 살이 되어서야 간신히 엄마라는 말을 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런 탓에 할머니는 삼촌이 커서 대체 뭐가 될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고. 삼촌에 대한 걱정이 비단 그뿐만이었을까마는.
나는 삼촌 같은 남자는 절대 만나지 않을 거라 다짐하곤 했다. 삼촌은 정말 효자였다. 나는 삼촌만큼 부모를 살뜰히 챙기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삼촌 덕분에 할머니의 지갑은 마를 날이 없었다. 아침저녁으로 할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묻는 건 물론이며 일주일에 한 번씩 할머니를 모시고 한정식이나 요릿집을 찾았다. 그뿐인가. 틈만 나면 할머니와 함께 근교로 나들이를 했고, 해외여행도 곧잘 다녀오곤 했다. 삼촌에게 할머니는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이었다. 그렇지만 할머니가 그런 삼촌을 한사코 못마땅하게 여긴 게 하나 있었으니.
삼촌은 우리 가족 중 어느 누구보다도 할아버지의 행방을 확신했다.
멀쩡히 살아 있는 사람에게 대체 왜 그런다니?
할머니가 아무리 말려도 소용없었다. 삼촌은 한 해도 빠짐없이 할아버지의 제사를 지극정성으로 챙겼다. 그 덕택인지 모르겠으나 삼촌의 사업은 줄곧 번창했고, 사촌언니와 사촌오빠들도 하나같이 이름만 대면 알 만한 번듯한 직장에 다니며 승진에 승진을 거듭했다.
사실 삼촌이 제사상을 차린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언젠가 엄마에게 전해 듣기론 삼촌은 전국을 다 들쑤셔도 할아버지의 행방이 나오지 않자 북에 계실지도 모를 거라 여겨 연변 쪽의 브로커를 통해 수소문해 봤다고 했다. 하지만 할머니가 충격 받을 걸 우려해 그런 사실을 일절 말하지 않은 것뿐이라고. 삼촌 같은 효자가 할머니의 마음을 모르진 않았을 터.
할머니도 그런 삼촌의 마음을 알았던 걸까. 다행히 지난 제삿날엔 잠잠한 듯싶었다. 그날 저녁 할머니는 에메랄드색 손톱이 마음에 드는 듯 방실거리더니 슬며시 내 앞에 하얀 발을 내미는 게 아닌가.
할머니 발이 너무 차다.
내 얘기를 듣는 둥 마는 둥, 어느새 할머니는 마치 할아버지가 듣고 있기라도 한 듯 녹음기에다가 삼촌의 만행을 미주알고주알 터놓기 시작했다. 내가 살아 있다는 게 당신이 살아 있다는 증거잖아요. 그걸 아무리 말해줘도 모르니. 그래도 자식이 저 할 도리를 하느라 그런 거니까 노여워하지 말고 너그러이 봐달라는 얘기도 잊지 않고. 할머니의 두 발에 페디큐어가 다 칠해졌을 무렵 어느새 이야기는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할머니는 언젠가 황해도 해주에서 왔다는 한 노인을 만난 모양이었다.
전쟁 때 헤어진 아내가 수원 어딘가에 살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던가 보더구나.
해주에서 그 소식을 접한 노인이 철책을 넘은 횟수만도 수천 번. 지뢰를 밟거나 어디에선가 날아온 총알에 맞은 것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때마다 다시 시작. 할머니의 얘기를 듣다 보니 그 역시 타임 루프에 빠진 게 틀림없고(할머니는 대체 무슨 영화를 본 걸까), 다행히 몇 번은 수원까지 무사히 도착한 적도 있었지만 신호등을 깜빡한 트럭에 치이거나 어이없게도 맨홀에 빠져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는데.
뭐? 거짓말 같다고? 그 뭐냐, 인터넷 같은 데에도 다 나오는 얘기잖니.
그래서 만나셨대요?
그렇긴 한데. 못 알아보지 않았겠니. 너무 폭삭 늙어버린 거지.
그럼 어떡해요?
…… 그래도 만났잖니.
할머니는 페디큐어가 흡족한 듯 발가락을 꼼지락거려 보며 씩 웃었다. 나는 멍하니 할머니의 두 발을 내려다보았다. 하얀 발등 위로 파란 핏줄이 유난히 도드라져 보였다.
내가 어디까지 얘기했니?
녹음된 할머니의 목소리는 거기까지였다. 곧이어 또 다른 이야기가 시작될 참이었지만 때마침 초인종이 울렸고, 녹음기는 꺼졌다. 제사를 마친 삼촌네를 비롯해 가족들이 하나둘씩 모였다. 그날 저녁 내내 할머니의 입가엔 미소가 가시질 않았다. 할머니 입에선 어김없이 똥독과 달걀 이야기가 오르내렸고, 아니나 다를까 삼촌과 엄마는 동시에 슬그머니 자리를 피했으며, 할머니는 기다렸다는 듯이 숙모에게는 가방이 낡은 것 같다며 지갑에서 지폐를 한 다발 꺼내어 건넸고, 아빠에게는 양복을 해 입으라며 내게는 주지도 않던 백화점 상품권을 호주머니에 꽂아 주었으며, 언니 오빠들에게도 이런저런 구실을 대며 용돈을 챙겨 주었다. 나는?
이미 줬잖니.
그러면서 할머니는 녹음기를 내 앞에 쓱 내미는 게 아닌가. 뭔가 손해 보는 느낌이 드는 건 왜일까. 그때까지만 해도 머지않아 우리 가족이 다시 모여 할머니를 추억하게 될 거라곤 아무도 몰랐다.


장례식장 입구까지 발 디딜 틈 없이 세워진 화환을 보며 길을 걷던 사람들은 대체 빈소의 주인이 누구냐며 두런거렸다. 콜라텍 사장을 비롯해 마을회장이나 어촌계장과 같은 직함이 적혀 있는 화환의 리본도 심심찮게 눈에 띄었다. 조문객은 말할 것도 없었다. 심지어 할머니를 한 번도 만나 본 적 없는 (젊은) 노인조차 소문을 듣고선 조문을 하러 왔던 터라 지난날 종로나 제기동 일대가 그랬던 것처럼 온종일 장례식장 입구에는 조문객 행렬이 길게 늘어섰다.
약간의 소란이 생긴 건 조문객의 발길이 조금 뜸해진 늦은 저녁이었다. 그때 나는 접객실에서 조문객에게 자리를 안내하고 있었는데 별안간 낯익은 이름이 귀에 꽂혔다. 나는 곧장 복도로 달려 나갔다. 엄마는 한 노신사가 아무래도 장례식장을 잘못 찾아온 것 같다며 안내 직원을 찾던 중이었다.
내가 아는 김태리가 맞대도 그러시네.
할머니를 찾아오신 분이에요?
혹시 막내 손녀신가?
어찌 된 영문인지 노신사는 나를 알고 있는 듯했다. 그렇다고 하자, 그는 제대로 찾아왔네, 얘기를 많이 들었네만 일단 조문부터, 그러고는 대뜸 분향실로 향했다. 어째서 그 이름을 아는 걸까. 설마 할아버지는 아니겠지? 그 순간 할머니가 했던 수많은 얘기가 머릿속에서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반듯한 정장 차림에 밤색 스카프를 두른 노신사는 중절모를 벗고선 영정 사진을 먹먹한 눈길로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언뜻 그의 눈가가 젖은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은연중에 기적 같은 이야기를 기대했는지도 모르겠다. 잠시 후 노신사는 삼촌과 엄마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며 분향실에서 나왔고, 나는 그를 접객실로 안내했다. 노신사는 식탁 앞에 앉자마자 빈 잔에 소주를 따라 마시고는 곧바로 잔을 채웠다. 그는 삼촌이나 엄마의 이름은 물론 할머니가 피란 생활을 했던 마을이 어디인지, 그리고 할머니가 할아버지와 어떻게 헤어졌는지 속속들이 알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삼촌이 매해 빠짐없이 할아버지의 제사를 챙겨 온 것과 내가 돌문어를 좋아한다는 사실까지도 알고 있었다. 이쯤에서 밝히자면 그는 할머니가 그토록 기다리던 사람이 아니었다. 노신사는 할머니를 누님이라고 불렀다.
포항에서 왔다는 노신사가 할머니를 만난 건 십여 년 전, 그러니까 제기동 콜라텍 부근의 곰탕을 파는 식당에서였다. 그제야 나는 그가 언젠가 할머니에게 돌문어와 미역을 선물한 사람이란 걸 알아차렸다.
우리 같은 사람들은 서로를 한눈에 알아보지요.
그때만 해도 그가 무슨 이야기를 하나 싶었다. 그는 또 한 잔을 삼키고선 덧붙였다.
척 보면 찌릿, 하고 울리는 게 있어요. 어디 보자.
노신사는 대뜸 접객실에 앉아 있는 조문객들을 둘러보았다. 구석 자리에 앉아 있던 벙거지를 쓴 노인은 노신사와 시선이 마주치자 손을 흔들며 가볍게 눈인사를 주고받았다. 노신사의 말에 따르면 그 노인은 일사후퇴 때 헤어진 어머니를 찾기 위해 얼마 전 서울에 도착했다고 한다. 한데 그게 2,391번째 방문이라며.
미심쩍거든 가서 한번 물어 보시오. 내 말이 참말인지 아닌지 금세 알 수 있을 테니.
도대체 다들 왜 그러실까. 그가 할머니와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 노신사가 주정뱅이로 전락하는 건 시간문제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웬걸, 그의 사연도 만만치 않았다.
노신사는 피란길에 부모를 여의었다. 부모를 붙잡고 아무리 떼를 쓰고 말려도 자꾸만 죽을 자리로 가더라는 것이다. 당시 고작 열 살이었던 어린 자식의 이야기를 들어 줄 리 만무했다. 그는 그 시간만 무려 3,000번 이상 반복했다는데.
거기로 가시면 안 돼요. 헛소리 말고 빨리 따라오거라. 쾅!
거긴 위험해요. 그게 무슨 소리냐. 쾅!
거긴 안 돼요. 어허, 이놈이. 쾅!
안 돼요. 뭐가? 쾅!
…….
뭐 그런 식이었지요. 그래서 하는 말인데 나는 조문을 온 거요. 그렇지 않소?
벌써 취기가 올라온 걸까. 노신사는 횡설수설하는 듯했다.
나는 얼결에 고개를 숙이며 감사합니다, 라고 대답했다.
그건 누님께 드려야 하는 얘기죠.
그러면서 노신사는 지갑 속에서 빛바랜 종이 한 장을 꺼내어 펼쳤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어! 하고 탄성이 터져 나왔다. 그건 언젠가 할머니가 내게 보여준 쪽지와 비슷했는데 낯익은 필체와 약도가 그려져 있었다.
형님이 내게 감자를 주지 않았겠소. 고개로 올라가면 절대 안 된다고 말하면서요. 그동안 형님만 따라다니면 무사했거늘 거기서부턴 일이 그렇게 흘러가지 않더이다. 그 고갯길은 지옥이나 다름없었지요. 그런데 더욱 고약한 게 뭔지 아시오. 매캐한 화약 냄새만 남은 잿더미 속에서 이제 죽는구나 싶어 눈을 감으면 어김없이 그 고갯길 아래에서 다시 눈을 뜨는 거라. 그럼 형님이 내게 또 감자를 주지 않겠소. 정말 환장할 노릇이지. 악몽도 그런 지독한 악몽이 없어요. 영영 그 구렁텅이에서 빠져나오지 못할 것 같았지요. 그러던 중 어느 새벽에 형님이 죽은 줄로만 알았던 내 동생을 안고 나타나 내 품에 넘겨주지 않았겠소. 시간 없다, 곧 놈들이 다시 들이닥칠 거라며 바위틈에 숨어 꼼짝하지 말라고 하십디다. 그러더니 너희 말고 무사한 사람들이 있느냐고 묻더군요. 여태껏 저만 살아 남았다고 말씀드렸죠. 그러자 고개를 갸웃거리시더군요. 하지만 긴 이야기를 나눌 시간은 주어지지 않았지요. 잠시 후 여기저기 포탄이 퍼붓는가 싶더니 군홧발 소리가 점점 커졌으니까요. 형님은 급히 수첩을 찢어 건네며 다음날 해가 지면 약도에 그려진 마을로 가라고 하더군요. 그러곤 왔던 길로 부리나케 되돌아가셨지요.
노신사가 기억하는 당시의 상황은 거기까지였다.
다시 정신이 들었을 때 코흘리개는 동생과 함께 바위틈에 웅크리고 있었다. 배고프다며 칭얼거리는 동생에게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감자를 꺼내어 먹이고는 해가 떨어지자마자 약도에 그려진 마을을 찾아 나섰다. 그런데 가는 길목마다 탱크가 가로막고 있던 탓에 결국 방향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뭐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뭔가 상황이 변한 거 같더이다. 어린 나이였지만 알 수 있었지요. 더 이상 고갯길 아래로 되돌아가지 않게 되었으니까요.
노신사는 소주를 또 한 잔 꺾고선 말을 이었다.
이런 얘기는 다른 사람 앞에선 입도 벙긋할 수 없어요. 그렇지 않아도 퇴물인데 자칫 잘못하면 이상한 노인네 취급 받기 십상이라오. 그런데 누님만큼은 너그러이 이해해 주시더군요.
그는 벽시계를 물끄러미 보더니 긴 한숨을 내쉬었다. 어느덧 자정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우리 동생은 지난해 봄에 편안하게 눈을 감았어요. 그때 누님이 찾아오셔서 동생의 명복을 빌어 주셨다오. 그러고는 내 두 손을 꼭 붙잡아 주시더군요. 그런데 왜였을까. 그제야 마음이 놓이더군요.
그가 또 한 잔을 따를 때였다. 접객실 입구에서 삼촌이 꺽꺽대는 목소리로 나를 부르며 손짓했다. 엄마가 많이 지친 것 같다며 휴게실에 자리 좀 봐달라고 했다. 엄마의 두 눈은 퉁퉁 부어 있었다.
괜찮아?
엄마는 휴게실 소파에 몸을 파묻고선 말없이 내 손을 꼭 붙잡고 흐느꼈다. 그런 엄마의 모습이 이상하게도 작은 아이처럼 보였다.
접객실로 돌아오자 노신사의 모습은 오간 데 없고, 그가 앉았던 자리엔 쪽지가 떨어져 있었다. 화장실에라도 가신 건가 싶어 기다렸지만 십여 분이 지나도록 그는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무심코 쪽지를 펼쳐 보았다. 낯익은 필체와 그림, 그런데 이상하네. 자세히 보니 이전에 보았던 약도와 뭔가 달랐다. 이런 데도 다 있었나?
정말이래도 그러네.
별안간 할머니의 목소리가 귓가에 아른거렸다. 나는 노신사가 남긴 소주를 잔에 따라 마시고는 호주머니에 들어 있던 녹음기를 꺼냈다. 어쩌면 할아버지가 수없이 되살아날 수 있었던 건 다름 아닌 할머니의 이야기 때문이지 아닐까. 만약 그게 아니라면, 퍽 난감한 일이긴 한데. 나는 녹음기에 담긴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또 들었다.
내가 어디까지 얘기했니?
그래도 만났잖니. 거기까지 얘기하셨잖아요.
나는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불현듯 할머니가 구태여 내게 녹음기를 선물한 이유를 어렴풋이 알 것도 같았다. 그리고 언젠가 이 이야기를 할아버지가 듣게 된다면 뭐라고 할지.
내가 많이 늦었구나.
어떻게 하시게요?
별수 있나. 다시 시작하는 수밖에.
만약 그렇다면, 부디 해피 엔딩이길. ▮











도재경
작가소개 / 도재경

경남 함양에서 태어났다. 2018년 《세계일보》 신춘문예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별 게 아니라고 말해줘요』 가 있다. 2020년 심훈문학상·2021년 허균문학작가상을 수상했다.

《문장웹진 2022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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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리자
  • 2024-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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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 샹들리에 정한아 호주에 사는 김이 오랜만에 귀국해서 친구들이 다 같이 모이기로 했다. 4명이 만나는 건 대략 7년여 만이었다. 방을 잡고 밤새 보자고 해서 오기 직전까지 망설였는데, 남편이 등을 밀었다. 정민이와 자신에게도 내가 없는 날이 필요하다고 큰소리를 치더니 정말 밤새 전화 한 통 없었다. 친구들과는 대학 동기였다. 전공은 문예 창작이었는데, 나는 2학년까지 다니고 학교를 그만뒀다. 그렇지만 정작 작가가 된 사람은 나뿐이라고 친구들이 투덜거렸다. 나는 작가가 아니라고 아무리 말해도 소용없었다. 그들은 십 수 년 전 내가 낸 단 한 권의 책을 기억하는 몇 안 되는 사람들이었다. 세 명 모두 미혼이었고, 아이를 가지지 않았다. 놀라울 정도로 예전 그대로인 친구들 사이에서 나만 철 지난 옷차림에 좀처럼 대화에도 섞이지 못했지만, 그런 것 때문에 마음이 상하지는 않았다. 오랜만의 서울 나들이에 술자리도 즐거웠다. 좋은 친구들이었다. 7년 전 정민이 자폐 스펙트럼 장애 판정을 받았을 때 그들은 자신의 일처럼 울어 줬고, 이후에도 종종 아이의 간식과 선물을 집으로 보내 줬다. 서서히 연락을 거둔 것은 내 쪽이었다. 애써 관계를 유지하는 일이 힘에 부쳤을 뿐, 그들에게 섭섭한 마음은 조금도 없었다. 지난 몇 년 동안 나는 집이 아닌 곳에서 밤을 보낸 적이 없었다. 다들 술에 취해서 침대로 간 뒤에도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아 휴대폰만 들여다보았다. cctv 속 거실은 엉망이었다. 엎어진 식판, 사방에 흩어진 블록 조각, 길게 늘어진 옷가지들. 남편은 불도 끄지 않고 아이를 재우러 방에 들어간 모양이었다. 나는 정지화면 같은 그 풍경을 한참 바라보다가 해 뜰 무렵에야 겨우 잠이 들었다. 다음날 우리는 점심을 먹고 헤어지기로 했다. 맛집마다 대기가 길어 종로의 좁은 골목을 돌고 또 돌았다. 앞장서 구글 맵을 보며 걷던 김이 갑자기 작은 서점 앞에서 멈춰 서더니 책을 사야겠다고 말했다. 지난 이사 때 내 책을 분실했다는 것이었다. 나는 집에 돌아가서 책을 다시 보내 주겠다고 김을 달랬다. 다섯 평도 안 되어 보이는 그 작은 서점에 내 책이 있을 리는 만무했기 때문이다. 김은 막무가내로 서점에 들어갔다. 할 수 없이 그녀를 따라 들어갔다가 전면 책장에 전시된 내 책을 발견했다. 죽은 친구를 만났다고 해도 그처럼 놀라지는 않았을 것이다. “미애 씨!” 그곳에서 누군가 나를 불렀다. 우아한 노부인이었다. 린넨 바지에 화이트 셔츠, 큼지막한 호른 목걸이를 한 여자는 환하게 웃으면서 나를 바라봤다. “반장님?” 나는 말끝을 흐리며 물었다. 여자는 성큼성큼 내 앞에 다가와서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나를 와락 끌어안았다. 누군가 나를 그렇게 안은 것이 너무 오랜만이라 온몸에 힘이 풀리는 것 같았다. 그녀는 오래전 나와 함께 공부했던 문우였다. H 백화점 문화센터 소설 창작 교실의 반장. 친구들이 책을 구경하는 사이 나는 그녀와 짧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ldqu

  • 관리자
  • 2024-07-01
그동안의 정의

그동안의 정의 최예솔 작정하고 사라진 사람은 작정하고 찾아야만 한다. 나는 윤정수를 작정하고 찾지 않았다. 보통의 남매 사이라는 게 정확히 어떤 건지는 모르겠지만 윤정수와 나를 그냥 보통 남매, 라고 하기에는 좀 어렵지 않을까. 윤정수는 나보다 4년 먼저 태어났다. 그리 적지도, 그리 많지도 않은 애매한 나이 차이 덕분에 윤정수와 나는 딱히 친해지지 못했다.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윤정수는 중학교에 갔고, 내가 중학생이 되었을 때 윤정수는 고등학교에 갔다. 물론 윤정수와 내가 영 친해지지 못한 건 우리의 나이 차이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윤정수는 내게 없는 사람에 가까웠다. 말수도 없고 센스도 없고 자존심도 없고 공부머리도 없고 돈도 없고······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나? 아무튼 남매 사이에 정이라도 있었다면 걱정이라도 했을 텐데 그럴 이유조차 없었다. 쥐뿔도 없는 윤정수니까. 특이사항이라곤 개그맨 윤정수와 동명이인이라는 것 정도밖에 없는. 그러니 윤정수가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집을 나갔다고 해도 이상할 것 하나 없었지. 뭐 내가 찾는다고 윤정수가 나타났을 거라는 보장도 없지만 나는 막연히, 어련히 때 되면 나타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했다. 하지만 윤정수는 죽을 때까지 나타나지 않았다. 물론 내가 죽은 것은 아니다. 윤정수가 죽었다. 내 나이가 이제 서른이니까, 윤정수는 서른넷에 죽었다. 이제 내게 남은 혈육은 없다······ 아닌가? 고모. 그렇게 부르지 마. 왜요. 낯설어. 저도 고모가 낯설어요. 윤현수는 맹랑하다. 윤정수와 장현아의 딸이라고 해서 윤현수. 그거 좀 유치하지 않니? 물었을 때 윤현수는 뭐 어때요 엄마아빠말곤 모르는데, 하고 대답했다. 이제 나도 아는데? 하니까 이젠 고모도 모르는 척해 달라고 했다. 참 나 어디서 이런 게 굴러왔는지. 현수야. 네. 네 엄마 입국 날이 언제라고 했지? 다음 주 토요일이요. 아직 한참 남았네. 고모도 고모 할일을 해요. 시간 금방 갈걸요. 알겠다 그래. 윤현수를 데리고 온 사람은 장현아다. 이제는 나흘쯤 됐으려나. 아침부터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하도 시끄러워서 나가 봤더니 장현아가 윤현수의 손을 붙잡고 서 있었다. 장현아는 다짜고짜 윤정수를 아느냐고 물었고 나는 오랜만에 듣는 윤정수의 이름에 잠깐 벙쪘다가 네, 저희 오빠네요, 하고 대답했다. 조카입니다. 그날 장현아의 대사를 나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그건 도저히 내가 아는 사람이 뱉을 만한 말이 아니어서 대사라고밖에는 표현할 수 없겠다. 아직도 문득 의심스러울 때가 있다. 윤현수가 정말 나의 조카가 맞고 장현아가 정말 나의 새언니가 맞을까. 가족관계라는 게 그렇게 단순하게 정리되는 거라면 이제까지 윤정수와 나는, 또 윤정수와 나와 우리의 부모는, 왜 이렇게 흩어지거나 죽거나 혼자 남을

  • 관리자
  • 2024-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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