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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흐흐

  • 작성일 2021-02-01
  • 조회수 2,955

[단편소설]



흐흐흐



김남숙




가려웠다. 일 초마다. 증상은 여름보다 겨울이 심했고, 겨울보다는 가을이 심했다. 피부가 건조해지는 때, 계절에서 계절로 넘어가는 때에 나는 더 가려웠다. 머리에 붉은 원들이 자리를 잡아 갈수록 검은 머리칼이 숭덩숭덩 떨어져 나갔다. 나는 그때마다 가르마를 요리조리 바꾸었지만 큰 소용은 없었다. 균일하게 빠져 가는 머리칼에 눈속임이 통하지는 않았다. 아무도 없는 사무실 책상 옆, 가스난로가 파박거리는 소리를 냈다. 겨울이다, 겨울. 나는 한 손에 스테로이드를 들고 주먹을 꽉 쥐었다. 더 이상 연고에도 의존할 수 없었다. 연고는 너무 독했고, 알 수 없이 잠이 쏟아졌고, 종국에는 별로 남아 있지 않은 내 머리까지 민둥산으로 만들 수 있는 주범이었다. 일 초가 아니라 일 분마다 가려웠던 시절이 그리워지기까지 했다. 눈에 눈물이 왈칵 고였다. 눈물이 떨어지자, 두피에 열이 한 번 더 후끈 올랐다. 나는 손바닥을 펼쳐 머리통을 팍팍 때렸다. 머리가 가려울수록 가슴이 휑했다.
언제부터였을까. 상황이 안 좋아지기 시작한 건, 올해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시기였다. 언제나 계절에서 계절로 넘어가기 전 극성을 부렸기 때문에 올해도 그런 줄 알았지만 아니었다. 가려움은 전과 다르게 극에 달했고, 방송사 외주 사무실 특성상 밤샘을 이겨내기 버거웠다. 여러 가지 수를 쓰고 집에서 밤을 새서 업무를 처리하기도 했지만 다가오는 개편과 새 코너에 대한 압박에 더는 이 사무실을 벗어나기 힘들었다. 개편을 하고 안정되기까지 딱 3개월이라는 시간을 버텨야 했다. 매번 통하던 복통도 이제는 먹히지 않았다. 버티기식으로 일부러 화장실에서 진을 치고 있기도 했었는데, 이제는 소용이 없었다. 탁상달력에는 나만 알 수 있는 날들이 표시되어 있었다. 얼핏 보면 처리해야 하는 일들의 마감시간을 정해 놓은 것 같겠지만, 정확히는 내가 연고를 바른 시간이었다. 어떤 날은 열 번도 더 덧바른 날이 있었지만 어떤 날은 세 번으로 간신히 끝나는 날도 있었다.
나는 탁상달력을 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손에 들린 스테로이드 연고, 후끈한 정수리. 나는 정수기 쪽으로 걷다가 발을 헛디뎠다. 넘어지지는 않았지만 잠깐 멍해 있었다. 가슴이 휑하다는 것이 멀쩡하게 걷고 있는데도 나를 자주 넘어트렸다.


의사가 그랬다. 나의 원인은 열 때문이라고. 두피 건조증이나 지루성 두피염이라는 병명을 대기는 했지만, 나의 원인은 열 때문이었다. 머리로 화르륵 오르는 체열. 체열이 오르기 시작하면 호르몬 분비가 활성화되고 호르몬 분비가 활성화되면 피지 분비가 심해져서 두피가 바싹 마를 정도로 건조해지거나 물러져서 가렵고, 가려워서 긁기 시작하면 무른 복숭아를 손톱으로 누르는 것처럼 두피의 껍질이 점점 까지기 시작한다고 했다. “우리가 쉽게 생각하는 살비듬이나 피부 각질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두피예요. 너무 세게 긁으시면 두피가 얇아지면서 머리가 더 빠질 수가 있어요.” 내가 각질인 줄 알았던 것들이 내 두피라는 것을 알았을 때 나는 당황했다. 나는 의사에게 무엇이라도 질문하고 싶었지만 매번 자리를 피하고 싶어 하는 사람처럼 일단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나를 계속해서 비추고 있는 투명한 유리 거울, 백열전구 밑에서 나의 형체를 낱낱이 들여다볼 수 있는 거울이 나는 너무 싫었다.
그날도 의사는 간호사에게 나를 데려가라고 말했다. 친절하지도 불친절하지도 않은 간호사가 두피에 전체적으로 진정이 되는 약을 도포해 준 뒤, 진료가 끝났다. 나는 내 머리통을 만지는 간호사의 표정을 보지 못했지만, 손끝에서 간호사의 표정을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절대 알 수 없고 알려고 하지 않은 슬픔과 수치를 나는 한 번 더 느꼈다. 말하자면 병원도 소용이 없었다. 진정 효과가 있는 약을 덕지덕지 발랐지만, 가려움은 몇 시간 뒤에 다시 시작되었다. 그래도 나는 주기적으로 병원에 들르기는 했다. 의사의 입에서 조금은 차도가 있다는 말을 기대했으나 번번이 무너져 내렸다. 고작 20대의 끝자락에 서서, 나는 약국을 다시금 찾을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부작용이 있다는 것을 약국의 약사에게 연고를 구매하면서 주의 받은 사항이지만, 당장의 가려움을 조금 더 오래 진정시켜 주는 것은 나에게 스테로이드뿐이었다.


30대 남자에게 대머리는 더 이상 개그의 소재가 되지 않는다는 선배의 말이 떠올랐다. 특히나 이렇게 건조한 날이면 더 그랬다. 사무실 창가에 미관상 가져다 놓은 관엽식물의 잎이 누렇게 떠 있었다.
나는 마포구의 작은 방송사 외주 사무실에서 선배를 처음 만났다. 그 당시에도 선배는 이미 파마로 머리를 부풀린 상태였다. 바람이 불 때마다 속내가 탄로 날 때가 있기는 했지만, 그런 대로 실내에서는 전혀 탈모의 조짐을 알아볼 수 없었다. 그때 선배는 사무실에서 두 번째로 나이가 많은 피디였고 나는 막내 작가였다. 선배는 나에게 유일하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하는 사람이었다. 아주 사소하고 일과는 전혀 관련 없는 말들이었다. 부모나 형제에 대해, 내가 다녔던 학교나 과에 대해, 저금은 좀 하니? 같은 상투적인 말들. 나는 그 사소한 말들을 선배 외에는 들어 본 적이 없었다. 한 달에 한 번 꼴로 바뀌는 내 자리에 정을 줄 사람도 정을 주고 싶어 하는 사람도 없었다. 저금, 알 수 없지만 선배의 입에서 나오는 그 말이 나를 조금은 슬프게 했다. 저금, 저금은 좀 하니.
선배는 내게 자신의 여자친구에 대해서도 자주 말했다. 별로 궁금하지 않았지만 나는 선배의 말을 듣는 것이 좋았다. 아직도 건물 옥상에서 줄담배를 피우는 선배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 선배에 대해 내가 아는 것은 간짜장과 수제맥주를 좋아했으며 곧 결혼할 고학력의 여자친구가 있다는 것이었다. 성악과 미술을 전공한 여자라고 했다. 성악과 미술에 어떤 연관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어쨌거나 그랬다. 선배의 말에 따르면 그 여자는 귀여운 살집이 있고 복코이며 웃는 게 누구보다 예쁜 여자였다. 서른 중반을 훌쩍 넘긴 그 여자가 아직도 학교에 다니면서 공부를 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어쩐지 속이 뒤틀리는 기분이 들었다. 아직도요? 내가 선배에게 물었을 때, 선배는 예술 하는 사람들은 다 그래, 라고 답했다. 그때 나는 웃겼다. 웃겼지만 정말로 웃긴 사람처럼 와하하 웃은 것은 아니고 그냥 흐흐흐 웃었다. 그날 백반집으로 달려가는 사무실 식구들을 뒤로 하고 커피로 점심을 때우며 나는 검색창에 무언가를 여러 번 썼다, 지웠다. 예술, 성악 혹은 미술. 취미 미술, 취미 미술 성인반, 같은 것들. 그날 가슴 속에서 간신히 졸업한 전문대 졸업장이 펄럭이는 소리를 냈다. 저금, 졸업장, 누군가에게 그런 것들이 어떤 무서움과 조바심을 줄 수 없다고 생각하면 슬프면서도 화가 났다.
30대 남자에게 더 이상 대머리는 개그의 소재가 되지 않는다, 는 말을 그저 누군가에게는 더 이상 대머리가 개그의 소재가 되지 않는다는 말로 바꾸어 말하고 싶었을 때쯤 선배는 이곳을 떠났다. 선배는 밖으로 나간다고 말했다. 더 이상 건조한 사무실이 아닌, 밖으로 간다고. 선배는 이번에도 지금의 사무실과는 한 정거장 차이인, 작은 외주 방송사의 자연 다큐 팀으로 들어간다고 했다. 선배가 말한 토레스 델 파이네, 라는 이름이 귓가에 맴돌았다. 토레스 델 파이네, 나는 그 이름을 선배에게서 처음 들어 보았다. 망원역, 상수역, 합정역과는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그곳. 선배가 첫 번째로 가게 될 토레스 델 파이네, 거기는 어떤 곳일까. 아무도 머리를 긁지 않는 곳일까. 나는 아주 찬 얼음 결정들이 선배의 가느다란 머리에 매달려 있는 모습과 그 딱딱하고 차가운 얼음 결정체들이 짓고 있는 표정들을 상상했다. 그런 상상 할 때면, 선배는 다시 돌아올 옆 사무실의 외주 직원이 아니라, 나에게 완전히 다른 존재가 되어 있었다.


사무실은 천장에서 쏘아대는 히터도 모자라 옛날식 기름 난로를 피우기까지 했다. 두피가 가렵다 못해 바스라질 것처럼 따가웠다. 당장이라도 두 손으로 머리를 벅벅 긁고는 자리를 떠나고 싶었지만 나는 할일이 남아 있었다. 이번 회차 방송분에 관한 일이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생방송을 진행하는 데일리 프로그램에서 일을 미루는 것은 곧 사고였다. 나는 빼곡한 스케줄들을 다시금 떠올렸다. 조금 더 버텨야 했다. 나는 다음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말하자면, 오늘은 동두천 고인돌 얼음 축제에 관해 써야 했다. 탈것이 얼마나 있는지, 볼것이 얼마나 있는지, 먹을 것이 얼마나 있는지에 대한 자세한 조사였다. 이 사무실에 들어와 직접 코너를 맡게 된 것은 두 번째였다. 잘하면 계속해서 내가 맡을 코너가 될 수도 있었다. 짧은 5분짜리 코너일지라도 이것을 버텨내면 그다음이 있었다. 다음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 나를 자꾸 버티게 했다. 다들 나에게 간신히 맡게 된 새 코너라며 잘하라고 말했다. 서너 달 전이라면 조금은 기뻤을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지금은 말하자면 너무 가려웠고, 이 상태라면 미리 최후를 생각하고 체념을 하는 편이 빠를지도 몰랐다. 차라리 잔심부름을 하면서 내 시간이 확보되었던 때가 나은 것도 같았다. 사무실 안에서 대박, 맛집, 청춘을 입에 달고 사는 이들과 달리 지금의 나는 연고와 탈모, 두피, 피부염에 관한 말을 달고 있었다. 화장실 진열장 여러 칸을 메우고 있는, 해외에서 공구한 탈모 샴푸와 진정제, 염증제가 떠올랐다. 머리를 흔들 때마다 시큼하고 독한 냄새들이 코밑에 어룽거리는 것 같았다. 나는 그들이 알 수 없고 알려고도 하지 않는, 시큼하고 독한, 셀리니움과 항염증 세계의 어느 구석에 서 있었다.
나는 가로로 긴 작은 사무실에서 입구 쪽과 이곳저곳을 둘러보았다. 11시. 지방에서 촬영한 국수팀과 수상한 가족팀이 곧 올라올 시간이었다. 나는 손에 쥔 스테로이드를 가방 안 속 지퍼 칸에 넣고 겉 지퍼까지 꼼꼼하게 닫았다.


오늘 새벽에 눈 온대요, 나는 그 말을 속으로 연습했다. 그러곤 한 손으로는 마우스를 클릭해서 화면 가득, 동두천 고인돌 얼음 축제 지도를 켰다. 놀이동산의 지도라도 되는 듯 아기자기한 그림체로 그려진 지도가 한눈에 들어왔다. 편집실에서 돌아온 남자들이 신경질적으로 마우스와 키보드를 눌러댔다. 모자를 눌러 쓰고 신경질적으로 마우스와 키보드를 누르는 편집실의 남자들 사이에서 나는 그를 쉽게 골라냈다. 매일 같은 옷을 입고 키가 작은 사람. 선배는 더 이상 없지만 그는 거기에 있었다. 그는 올해 초, 설날이 지나고 사무실에 처음 들어온 피디였다. 그전에는 무엇을 했는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똑같은 데일리 프로그램에, 연예 뉴스 쪽을 맡았다고 했다. 지금 그가 맡은 코너는 국수 코너였다. 국수를 어떻게 만들고, 육수를 어떻게 우리며, 그게 육수인지 채수인지 정확히 가려내고, 어떤 고명이 올라가고, 그렇게 완성된 국수는 어떤 맛인지, 그 외에 국수를 빨아들이는 후루룩 소리를 담아내는 것이 그의 일이었다. 우리가 맡은 저녁 데일리 프로그램의 코너 중 그의 코너가 단연 일등이었다. 그가 화면으로 찍은 국수는 따듯했고, 맛있어 보였고, 금방이라도 먹고 싶었다.
나는 벌써 미지근해진 물을 마시면서 편집실을 바라보았다. 그는 열심히 컴퓨터 화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새벽에 눈, 아니, 오늘 새벽에 눈 온대요, 새벽에 눈 와요. 나는 같은 말을 다시금 여러 번 연습했다. 오늘은 말할 수 있을까. 그저 흐흐흐 웃는 것 말고 오늘은 그에게 먼저 그 말을 하고 싶었다. 선배가 사라지고 난 자리, 그는 나에게 사소하게 말을 걸어 주는 사람이었다. “조금만 추웠으면 눈이 오는 건데, 비가 오네요. 우산 있어요?” “날씨가 좋네요.” “날씨가 흐려서 오후인데도 새벽 같아요.” 같은, 대부분 날씨에 관한 말이었지만 나는 그 말이 좋았다. 선배가 나에게 해주었던 저금은 하냐는 말처럼, 나는 그 말들이 어쩐지 나의 다음을 생각해 주는 말들 같았다. 나는 그런 말 때문에라도 날씨가 매일 변덕을 부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갑자기 비가 오다가도 눈이 온다거나 눈이 오다가도 여름처럼 쨍한 날씨가 된다거나 하는 일들이 매일 벌어져도 좋을 것 같았다.
나는 그를 바라보다가 주먹을 쥐고 가슴팍을 두 번 팍팍 쳤다. 무언가 걸린 것처럼 속에서 트림이 올라왔다. 오늘 점심에 우겨 넣었던, 굵은 후추가 잔뜩 박힌, 계란 샌드위치 냄새가 났다. 나는 주먹으로 가슴을 여러 번 쓸어내렸다. 그때마다 목 안에서 어떤 말들이 콱 고이는 것 같았다. “버티지 마세요.” 나는 그를 다시금 바라보았다. 잊고 싶지만 잊을 수 없는 한 마디. 나는 가슴을 눌러 내렸다. 그는 내가 이 사무실에서 감당해야 할 보복에 유일하게 동참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보복. 나는 그 말을 들었던 몇 해 전을 떠올렸다. 군대에서 휴가 나온 친구가 하는 이야기에서였다. 요즘 군대에서는 감시하는 눈이 많아서 함부로 손을 댈 수 없다고 했다. 그렇기에 때릴 수는 없으니, 대신 음식을 산처럼 쌓아서 다 먹을 때까지 붙잡아 두는 것이라고 했다. 그가 말해 준 건 정확히 음식 고문이었다. 하지만 그는 보복이라는 말을 했다. “밉보였으니까, 보복당하는 거지. 견뎌야 돼, 꼰질러도 어차피 소용없더라. 견디는 게 나아, 견디다 보면 재미없어서 그만두니까.” 그가 말했다. 보복은 가볍게는 햄버거 다섯 개, 과자 열 봉지로 시작한다고 했다. “그게 무슨 보복이냐, 좋네. 먹을 것도 주고.” 나는 말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그런 행위들이 딱히 보복이나 고문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그해 자주 등장했던 군대 내 식고문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봤을 때도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 하지만 나는 그게 얼마나 나를 괴롭게 할 것인지, 시간이 지나고 난 다음 알게 되었다. 내 처지도 그때의 누군가와 다를 바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보복의 시작은 분식이었다. 떡볶이 삼인분과 김밥 다섯 줄. 메인 작가와 여러 연차가 쌓인 작가들은 매일이 체내 지방과의 싸움이었다. 그리고 이제는 나의 싸움이었다. 손가락을 넣고 억지로 구토를 하면 그전에 삼켰던 음식들과 칼로리 커팅제의 알약이 녹지 않은 채, 그대로 딸려 나왔다. 계속 떨어지는 시청률과 재미없는 코너 아이템들, 경쟁사 외주와의 엎치락뒤치락하는 순위 쟁탈전, 이 모든 상황을 한 번에 풀 수 있는 열쇠는 없었다. 이 작은 사무실 안에서 작지만 확실하게 스트레스를 풀 수 있으며 동시에 대리만족 할 수 있는 것들이 필요했다. 메인 작가가 일부러 시킨 그 많은 양을 처음부터 먹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나는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결국엔 이렇게 되어버린 일이었다. 처음에는 내 몫이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결국엔 내 몫이 되어버린 일들. 나는 어쨌거나 그때에도 다음을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남은 김밥들의 은박지를 까기 시작했을 때, 메인 작가는 머리를 넘기며 웃었다. 회사 내 단톡방에 김밥을 먹기 시작하는 내 사진이 커다랗게 올라왔다. “대박, 우리 막내, 알고 보니 대식가.” 나는 그때도 많은 양의 음식 앞에 어설프게 웃고 있는 나의 얼굴보다 휑한 정수리가 더 눈에 들어왔다.


동두천 고인돌 얼음 축제는 가족을 위한 축제였다. 어린 영유아들부터 초등학생, 중학교 저학년까지. 조악한 얼음 기둥과 얼음 조각들 밑에 가족사진을 위한 포토존이 마련되어 있었다. 탈것으로는 빠른 스노 보트와 눈썰매가 있었고, 먹을 것으로는 선사시대 체험이라는 이름으로 커다란 고기를 꼬치에 꿴 바비큐와 직접 잡아서 튀겨 먹는 빙어 튀김, 어울리지 않는 옛놀이 체험이라는 이름을 달고 활쏘기나 제기차기 같은 소놀이들이 있었다. 타깃은 연인보다는 가족이었고, 스노 보트와 커다란 바비큐가 주요 눈요깃거리였다. 간단하게는 이 정도의 갈래가 전부인 작은 지역 축제였지만 나는 쓸데없는 살을 붙여서 촬영 구성안을 작성했다. 옆자리에 앉은 메인 작가가 내 컴퓨터 화면을 힐끔힐끔 훔쳐보았다. 나는 괜히 마른침을 삼키며 머리를 만지려던 손을 책상 아래로 내려놓았다. 가방에 꽁꽁 숨겨 둔 스테로이드가 간절해지는 순간이었다. 가만한 털 슬리퍼를 신은 발에서 땀이 고였다. 나는 탁상달력을 확인하고는 다시 화면을 바라보았다. 오늘은 더 이상 무리일 것 같았다. 옆자리에 앉은 그녀가 어떤 표정을 짓는지 느껴졌다. 그녀의 불독처럼 늘어진 심부볼이 움찔거렸다. 그녀는 나의 상태를 알고 있었다. 검은 의자에 붙어 있는 살비듬이 아닌 내 두피들을 누구보다 먼저 확인한 사람은 그녀였다. 그녀가 그것들에 대해서 묻지 않았지만, 묻는다고 해서 달라질 일은 없었다. “할 만하니?” 그녀가 가끔가다 건네는 말은 그게 다였다.
구성안에 잘라내야 될 말들을 억지로 채워 넣고 있었을 때, 지방 촬영을 마친 노 피디가 내 자리로 다가왔다. 그는 이번에 고로쇠를 채취하는 노부부를 촬영하러 정선에 갔었다. 백년해로라는 타이틀을 건, 노부부는 사실 25년 전 재혼을 한 부부였지만 상관은 없었다. 그는 이 사무실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피디였다. 그가 깎지 않은 수염을 검지와 엄지로 비비적거렸다. 나는 저런 식으로 자신의 몸을 매만지며 궁금해 하는 노 피디가 징그러웠다. 완전히 늙은 노인이 되었거나 영유아로 돌아간 듯해 보였다.
“여기, 렌트비랑 식비, 방값. 아, 이것도 진행비에 올려 줘요. 사비로 먼저 진행한 거니까, 오늘 처리해 주고.”
그가 꾸깃꾸깃한 영수증 뭉치를 책상 위에 올려 두었다. 그가 말할 때마다 쓴 위액 냄새가 났다. “작가님, 여기서 얼마나 일했지? 융통성 있게 일해야 돼. 융통성 있게.” 그는 나에게 매번 같은 충고를 하고는 자리를 떴다. 흐흐흐, 나는 그의 말에 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로 웃었다. 그의 말은 매번 웃겼다. 그의 말이야말로, 흐흐흐 웃는 것이 아니라 와하하 웃고 싶었는데, 그러면 진짜로 웃겼을 텐데, 나는 그런 적이 없었다. 그가 찍어 오는 가족과 부부들은 전부 다 거짓말 같았다. 과장되어 있었고 억지스러웠고 마지막엔 늘 볼이나 입술을 부비는 식으로 마무리되었다. 노 피디가 찍은 불쾌하고 음울하지만 애써 웃는 얼굴들은 어설프게 사랑해, 라는 말을 뱉고는 곧 죽을 사람들처럼 화면에서 사라져 갔다.
나는 그가 쓴 영수증 뭉치를 한데 정리했다. 탠저린 노래바, 나는 그 글자가 적혀진 영수증 하나를 확인하고는 노트북 밑으로 넣었다. 그가 말하는 융통성이었다. 그가 진행비로 업소나 술집을 들른다는 것은 진행비 영수증을 처리하는 팀장과 나만 알고 있었다. 팀장은 그가 한두 번씩 그런 영수증을 올린다는 사실을 아무렇지 않게 대했다. 작은 외주 사무실에서 일을 해주는 조건 같은 것이었다. 그 외에도 진행비로 다른 것들을 하는 피디들은 사무실에 많았다. 그런 식으로 영수증을 처리하는 것은 팀장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그런 피디들 사이에 억지로 껴 있는 그를 떠올렸다. 그들의 등쌀에 못 이겨 술집에서 자리를 차지한 채, 어설프게 앉아 있는 그를 떠올리면 참을 수 없는 기분이 들었다. 개 같은 새끼들, 쓰레기들.
그는 나에게 한 번도 그런 영수증을 준 적이 없었다. 지방 촬영을 다녀온 날도 매번 잠만 해결할 수 있는 싼값의 여관, 편의점에서 사먹은 빵과 우유, 컵라면, 사이 간간이 담배가 껴 있는 게 전부였다. 나는 그의 영수증을 볼 때면, 그가 차갑고 습하고 좁은 여관에서 같은 옷을 입고 같은 자세로 자는 모습을 상상했다. 옆으로 누워 커다란 트렁크 팬티에 손을 넣은 채, 툭 불거진 골반뼈를 훤히 드러내고 있는 모습. 베개도 베지 않은 채, 곤히 잠에 빠진 모습.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면 머리가 아니라 바지 속이 간질간질한 기분이 들었다.
탠저린 노래바, 나는 영수증 하단에 찍힌 그의 사인과 금액을 확인하고 따로 만든 엑셀 파일을 켰다. 가려움이 스멀스멀 몰려오는 기분이 들었다. 히터가 쉬지 않고 연신 건조한 바람을 뿜어내고 있었다. 나는 진행비를 기입하다 말고 잠깐 인터넷 검색창을 켰다. 노 피디가 간 곳이 정확히 어디인지 궁금했다. 강원도 노래방, 탠저린 노래바, 정선 탠저린 노래바. 같은 상호를 달고 있는 여러 개의 가게가 줄지어 나왔다. 검색창 가운데, 이미지 파일로 올라온, 누군가의 명함 사진이 보였다. 나는 사진을 클릭했다. 탠저린 노래바 실장, 김명훈. 러시아, 필리핀 도우미 아가씨들 항시 대기. 나는 검색창을 껐다. 히터와 전기난로가 굉음을 내며 돌아갔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털 실내화 속 발이 꼼지락거렸다. 가려움을 참기 위해 힘을 준 손가락 마디도 터질 듯이 붉어져 있었다. 사무실은 쥐죽은듯 조용했다. 왜. 나는 중얼거렸다. 코가 막히면서 눈물이 핑 고였다. 눈물이 고이자 갑자기 억울함이 밀려왔다. 나는 편집실을 바라보았다. 노 피디의 말에 편집실의 피디들이 고개를 끄덕이거나 움직이는 게 보였다.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가려움을 참는 건, 내가 아니라 그들이어야 했다. 그들은 대개 모자를 쓰고 있었고 모자를 쓰고 있기에 그들의 머리와 두피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알 수 없었지만, 나는 생각했다. 그들의 화장실 진열장을 가득 수놓은 탈모 샴푸와 진정제와 염증제, 그리고 그들의 주머니 속을 차지하고 있는 독한 스테로이드 연고를. 눈이 부실 정도로 환한 백열전구 밑에서 낱낱이 드러나는 새빨간 두피와 당장이라도 거울을 깨부수고 싶지만 그러지 못한 순간들을 그들도 겪어야 했다. 다음, 그리고 또 다음, 그들도 그런 생각을 할까. 속에서 트림이 올라왔다. 나는 어느 정선의 탠저린 노래바에서 일하는 김명훈 실장의 목이라도 조르고 싶었다. 니가 말해. 니가 대신 잘못했다고 말해. 하지만 그들은 누구보다 멀쩡해 보였고 모자란 진행비로 업소에 들르거나 술을 마시는 것은 전부 비밀로 부쳐졌다. 그들은 뜨겁고 건조한 난로를 책상 밑에 가져다 댄 채 코를 골면서 잠을 잤고, 의자에 앉아 가려움을 참는 것은 나였다.


동두천 고인돌 얼음 축제 촬영 구성안은 일부러 덧붙인 말들을 다시 잘라내고 난 뒤에야 끝났다. 내일이 촬영이었고, 이틀 뒤가 방송날이었다. 길고 얇은 담배 끝에서 단맛이 났다. 해가 뜨기에는 아직 어두운 시간, 축축하고 습한 냄새가 났다. 정말로 곧 눈이 올 것 같았다. 모두가 돌아간 사무실에는 그와 나만이 남아 있었다. 나는 옆자리와 앞자리의 작가들이 모두 돌아가자마자 화장실에 가서 연고를 짰다.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나는 반틈 남은 연고를 주머니에 넣었다.
그는 시간도 잊은 채, 편집실에 앉아서 멍하니 그릇에 담겨 있는 조개 칼국수를 바라보았다. 조개 칼국수, 굵고 탱탱한 면발의 조개 칼국수, 김이 펄펄 나는 대접에 한가득 담겨 나오는 조개 칼국수, 가족들이나 같이 먹을 법한 조개 칼국수를 그가 바라보고 있었다.
“오늘 새벽에 눈 온대요.”
나는 그의 뒤에서 간신히 그 말을 뱉었다. 그가 잠결이었는지 조금 몸을 일으켰다.
“네?.”
“잠깐 주무셨나 봐요. 아, 안 가세요?”
그가 의자를 뒤로 잠깐 젖힌 채 나를 쳐다보았다. 그가 매일 입는 남색 후드 집업에 살비듬이 떨어져 있었다.
“인터뷰까지만 붙이고 가려고요. 어차피 벌써 새벽이고.”
“아…….”
“왜 안 가세요?”
“이제 가려고요. 다 끝났어요.”
나는 흐흐흐 웃었다. 그가 찍은 조개 국수가 맛있겠다든지, 배가 고프다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얘기 들었어요. 이번에 새로 코너 맡게 되었다던데. 잘 된 건가.”
그의 빨간 눈이 나의 머리와 몸통 전체를 훑었다. 그가 말할 때마다, 입에서 포슬포슬하고 슴슴한 밀가루 냄새가 났다.
“여기 계속 있을 거죠?”
“네?”
“여기 얼마나 있을 거예요? 코너도 맡았으니까, 좀 더 할 생각이겠죠?”
그가 말했다. 나는 그가 말한 의미를 잘 알 수 없었다. 몇 초간의 정적이 흘렀다. 정적이 흐를 때도 화면 속 국수가 소리 없이 보글보글 잘 끓었다.
“다른 사무실들도 많아요. 본사에서 새로 뽑는다는 얘기도 있고.”
그가 입을 뗐다.
“아…… 네.”
나는 짧게 말했다. 순식간에 머리 위로 체열이 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이번에는 그가 하고 싶은 말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있었다. 나는 아무 말도 나오지 않는 입을 오물거렸다. 그가 내가 이곳에 있는 이유를, 나의 다음을 위한 사정을 묻지 않았어도 알았으면 했다.
“여기 더 있을 건가 봐요.”
그가 말하면서 나의 얼굴을 뚫어져라 보았다. 그가 나를 바라볼 때마다 머릿속에서 여러 가지 생각들이 엉켰다. 아주 옛날 일부터 최근의 사소한 일들까지. 내 잘못이 아니지만 늘 내 잘못처럼 되어버린 일들. 그때 내가 내 잘못이 아니라고 생각했다면 지금이 조금은 달랐을까. 이제 와서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는 내가 웃겼다. 그가 나의 다음을 궁금해 할까. 아니, 나를 조금은 궁금해 할까. 한참 동안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일부러 조개 칼국수나 멸치 국수 혹은 산처럼 쌓인 부추 국수 같은 걸 먹고 싶다고 했다면 어땠을까 생각해 보지만, 아무래도 그런 말은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저, 저금해야 돼요.”
나는 한참을 뜸들이다가 그렇게 말했다. 그의 눈동자에 내 얼굴이 비쳤다. 잘 닦은 유리구슬 같은 눈동자. 그가 나를 보고 웃었다. 웃겨서 와하하 웃는 것은 아니고 나처럼 흐흐흐 웃었다. 어딘가 할 말이 없을 때, 무기처럼 지니고 있던 내 웃음을 그가 나에게 보였다.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화장실에 들어가 머리부터 감았다. 두피에 덕지덕지 바른 진득한 연고들이 벌써 바싹 말라 있었다. 약을 빠른 속도로 흡수하는 두피를 볼 때면, 꼭 굶주린 짐승에게 고깃덩이를 던져 주는 기분이 들었다. 독한 두피 샴푸를 벅벅 문지를 때마다 상처가 벌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입으로 쓰읍쓰읍 소리를 내며 머리를 감았다. 머리를 다 감고 나서 나체로 거울 앞에 섰을 때, 전보다는 현저히 불어난 내 몸이 보였다. 등과 배를 감싸고 있는 셀룰라이트가 한눈에 들어왔다. 거뭇한 가슴도 불어난 채, 힘없이 늘어져 있었다. 내 몸은 점점 싸움이 되어 가고 있었다. 나는 대충 젖은 물기를 수건으로 닦고 속옷은 입지 않은 채, 커다란 옷을 걸치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젖은 머리에서 물이 뚝뚝 흘렀지만 그대로 두었다. 머리가 가려운 이래로 두피에 억지로 뜨거운 바람을 쏘이거나 헤어드라이어를 쓰는 일은 없었다. 나는 마치 해야 할 일이었다는 듯이, 빠르게 인터넷 뱅킹에 접속했다. 아직 만기가 되지 않은 적금통장 계좌가 보였다. 화면에 매달 꼬박꼬박 입금한 내역과 소량의 잔고 금액이 눈에 들어왔다. 매달 넣는 적금은 한 달에 십만 원을 웃도는 정도였다. 나는 적금의 잔액보다 더 많은 양의 학자금 대출금과 생활을 위해 빌린 소액 대출 건들을 떠올렸다. 앞으로 10개월은 더 잔금을 치러야 끝나는 건들이었다. “저금해야 돼요.” 나는 그 말을 생각하면서 흐흐흐 웃었다. 우스운 꼴의 내 모습이 그의 눈동자에 비쳐 보였던 순간들이 머릿속을 지나갔다. 흐흐흐, 흐흐흐. 머리카락의 물기가 바닥으로 뚝뚝 떨어졌다.
화면이 꺼지자, 축축하고 음습한 얼굴이 화면에 비쳤다. 화면 속의 내가 화면 밖의 나를 노려보는 것 같았다. 아무도 나를 사랑할 수 없다는 생각이 스쳤다. 나 같은 걸 아무도 사랑할 수 없다는 것을 나는 아주 옛날부터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갑자기 그가 사무치게 보고 싶었다. 매일 같은 옷을 입고 같은 표정을 짓는 사람. 따듯하고 맛있는, 가족들이 먹을 법한 국수를 아는 사람. 그래도 그는 나를 이해해 주지 않을까, 나는 잠깐 생각했다. 어쩌면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에 꼬리를 물수록 정말로 어쩌면 그건 너무 큰 바람 같은 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와 내가 한 가족이 되어서 언젠가 동두천 고인돌 얼음 축제의 조악한 얼음 기둥 밑에서 찍을 사진과 바닷가 옆에서 얼굴을 박고 먹는 조개 칼국수 따위를 생각했다. 따뜻하고 행복하고 단란한 그림들, 볼과 입술을 억지로 부비지 않아도 되는 그런 그림들. 외롭거나 슬프거나 가렵지 않은 그런……. 나는 앉아서 머리가 건조해질 때까지 그런 생각을 했다. 그런데 그런 생각이 들다가도 그가 나를 이해해 준다는 생각이 들면 참을 수 없이 내가 싫어졌다.


그날 꿈에 그가 나왔다. 나는 그와 작은 여관에 누워 있었다. 그의 꿈을 꾼 것은 처음이었다. 그는 여전히 싼값의 여관방에 있었다. 늘 입던 옷을 옷걸이에 걸어 놓고 커다란 파란색 줄무늬가 있는 트렁크 팬티를 입고 옆으로 누워 있었다. 나는 일어나서 여전히 베개를 베고 있지 않은 그에게 베개를 가져다주었다. 그가 고개를 살짝 들어 납작한 베개를 베고 누웠다. 바닥은 얼음장처럼 차갑고 밖에서는 새소리인지 아이들의 비명소리인지 모를 것들이 섞여 들어왔다. 나는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채, 다리를 배배 꼬았다. 그와 누워 있으니, 머리가 아니라 다른 곳이 가려웠다. 누군가는 이런 것도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나는 그의 몸에 바짝 붙었다. 그의 미약한 온기가 느껴졌다. 그가 뒤를 돌아 나의 머리를 잠시 보더니 다시 앞으로 고개를 돌렸다. “차도가 있을 거라고 병원에서 그랬어요, 잘 먹고, 잘 자면 된다고.” 나는 거짓말을 했다. 그의 잘 닦은 유리알 같은 눈동자가 다시금 허공을 응시했다. 나는 그게 너무 쓸쓸해 보였다. 눈 속에 고요한 식물 하나를 키우고 있는 듯한 눈동자였다. 그를 오랫동안 바라보다가, 그의 앙상한 발가락뼈와 골반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그의 커다란 트렁크 팬티에 손을 천천히 넣었다. 차가운 감촉이 손끝에서 느껴졌다. 그가 잠시 몸을 부르르 떨었다. 나는 그의 몸에 좀 더 바짝 붙었다. 외롭거나 슬프거나 가렵지 않은 그런 생각들이 오갔다. 그러다 한참을 누워 있던 그가 나를 돌아보았다. 뒤돌아 누운 그의 표정이 점점 무섭게 변했다. 그가 나를 노려보았다. “가려워.” 그가 말했다. “가렵다니까.” 그의 눈동자 가득 내 얼굴이 비쳤다. “너 때문에 가려워 죽겠다니까.” 그가 소리쳤다.
언제 긁었는지 모르지만 두피에서 진물이 나오고 있었다. 나는 화장실로 달려가 손을 씻고 두피를 찬물로 살살 닦아냈다. 벌써 반틈이나 사라진 스테로이드 연고를 손가락 위에 짰다. 무향무취의 연고가 나를 조금씩 갉아먹고 있었다. 방에서는 아침을 알리는 휴대폰 알람 소리가 들렸다. 다음, 다음에. 나는 잠깐 울고 싶었지만 울지 않았다.


동두천 고인돌 얼음 축제는 무사히 촬영을 마쳤다. 구성안대로 촬영을 진행했으며, 그보다 더 재밌는 요소나 더 재미없는 요소도 없었다. 가족들은 얼음 기둥과 조각 밑에서 사진을 찍었고, 아이들은 입가에 바비큐 소스를 묻혀 가며 꼬치를 먹었다. 메인 작가는 나의 원고를 보고 고개를 몇 번 까딱거렸다. 아리송하기는 했지만, 어쩌면 정말로 나에게도 다음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 들었다.
촬영을 거의 다 끝마칠 쯤에는 눈이 아니라 비가 왔지만 다행이었다. 날이 조금 흐리긴 했어도 비가 뚝뚝 떨어지는 얼음 축제의 현장은 피할 수 있었다. 모든 게 순조로웠고 그대로였지만 딱 하나, 그는 달랐다. 그는 나에게 웃음을 보인 이후로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았다. 매번 같은 옷을 입었지만 같은 표정은 아니었다. 그는 꿈에서 본 것 같은 공허한 눈동자를 끔뻑였다. 그의 눈에는 이미 마른 고사리나 양치류의 어떤 식물이 번식 중이었다.
그는 우산도 없이 비에 쫄딱 젖은 채로 사무실에 들어왔다. 외부 촬영이 있는 날인데도 그는 우산 없이 사무실 밖에서 담배를 피우거나 편의점을 오갔다. 비가 온다는 것을 그는 누구보다 더 잘 알았을 것이다. 그는 나에게 비가 계속 온다거나 이번 주 수요일쯤 비가 눈으로 바뀐다거나 하는 말들을 하지 않았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비에 젖은 머리와 옷을 대충 털고는 이번에 찍어야 할, 김이 펄펄 나는 국수가 보이는 화면을 뚫어져라 응시했다. 나는 그런 그의 표정을 볼 때마다, 꿈에서처럼 다른 곳을 긁고 싶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가자마자 자리에 앉았다. 나는 저명하다는 여러 소문이 나 있는 병원들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이제는 치료만이 목적이 아니었다. 그의 눈동자가 아른거렸고 어쩐지 그의 눈동자를 떠올리면 시간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장이라도 조금의 차도가 보인다면 무슨 수를 쓰든 그러고 싶었다. 가진 돈의 전부를 사용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두피열과 지루성 두피염을 한 번에 잡아 준다는 병원, 치료보다 재발에 힘쓰는 병원, 1. 진행을 멈추고 2. 치료하고 3. 발모하고 4 유지해야 한다는 병원, 단지 모발 이식에만 중점을 둔 병원 등등, 여러 가지 병원들이 리스트에 올랐다. 나는 병원에 차례대로 전화를 걸어 예약을 걸어 두었다. 두피열과 지루성 두피염, 치료보다 재발에 힘쓰는 병원, 진행을 멈추고 치료하고 발모하고 유지하는 병원, 모발 이식에만 중점을 둔 병원 순으로. 그러나 나는 예약을 걸어 둔 병원 외에도 다른 병원들을 계속 검색했다. 그리고 그때마다 알 수 없었다. 나의 정확한 원인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일순간 나를 지나쳐 온 의사들의 말이 다 거짓말처럼 느껴졌다. 두피열도, 두피열 때문에 생기는 탈모와 각질도, 나의 진짜 문제가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검색을 하면 할수록 빠져나갈 수 없는 늪에 빠진 기분이 들었다. 어떤 것이 앞선 원인이고 어떤 것이 그 뒤를 따라오는지, 나는 점점 그것들이 그저 고칠 수 없는 하나의 큰 덩어리처럼 느껴졌다. 가렵다니까, 나는 꿈속에서 나를 노려보며 했던 그 말이 생각날 때마다 자주 멈춰 있었다.


사무실로 엄청난 양의 떡이 배달되어 왔다. 다음 주, 시장 3대 떡집을 소개하는 촬영을 위해 떡집에서 미리 선물 겸 맛 소개 겸 보내온 떡들이었다. 꿀떡부터 시작해서 가래떡, 무지개떡, 쑥개떡까지 종류도 다양했다. 나는 여러 상자에 담겨온 떡들을 하나씩 꺼냈다. 사무실 사람들이 3주는 먹을 수 있을 정도의 양이었다. 나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이번 떡집 소개 코너를 맡을 사람은 나뿐이었다. 그렇기에 별 문제가 없다면 자연스럽게 나의 차례가 될 것이었다. 그런데, 하필 떡이라니. 나는 떡들이 빽빽하게 들어 있는 상자를 쳐다보았다. 할 수 없을 것 같았지만, 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떡을 하나씩 펼쳐 놓자 사무실 작가들과 피디들이 그 주위로 모여들었다. “이번에 촬영하는 떡집에서 보냈나 보네. 근데 뭘 이렇게 많이 보냈대. 누가 다 먹는다고.”
노 피디가 쑥개떡을 먹으면서 말했다. 노 피디가 말할 때마다 침이 쩍쩍 늘어났다.
메인 작가와 작가들은 테이블 위에 쌓여 가는 떡과 나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목에 무엇이라도 걸린 것처럼 가슴이 답답했다. 할 수 있다, 없다. 머리가 복잡해지니, 머리가 또다시 가려웠다. 나는 재발 방지를 중점으로 둔 병원을 다시금 떠올렸다.
메인 작가가 떡 무더기 속에서 무지개떡을 집어 들었다.
“저번에도 했으니까, 이번에도 한번 해봐야지. 계속 해야 늘지.”
메인 작가가 무지개떡의 모서리를 씹으며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노 피디와 아래 피디들 그리고 작가들이 가져가고 남은 떡들을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투명한 랩으로 포장된 떡들이 커다란 돌멩이처럼 느껴졌다. “딱히 주력 메뉴는 없네, 한번 먹어 보고 어떻게 할 건지 정하자.” 그녀가 옆에서 말했다. 나는 반짝이는 랩의 포장지를 천천히 뜯었다.
차갑게 식은 떡들은 맛이랄 것이 없었다. 아무 맛도 향도 없는, 쌀가루를 씹고 있는 느낌이었다. 꿀떡, 가래떡, 무지개떡, 쑥개떡들이 천천히 위장을 뒤틀고 있었다. 할 수 있다, 없다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나는 떡을 먹으면서 알았다. 작가들과 사무실 피디들은 간간이 떡을 꾸역꾸역 먹는 나를 보며 웃었다. 나는 정수리로 화끈화끈 올라오는 열을 느꼈다. 어쩌면 이 모든 진짜 원인은 이것이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아무도 알지 못하는 수치, 그걸 참는 기분. 나는 정수리에 열이 화르륵 오를 때마다 일부러 떡을 목 끝까지 밀어 넣었다. 사무실은 여전히 조용했고 간간이 타자기 소리와 마우스 소리, 그리고 웃음소리가 전부였다. 나는 눈물이 가득 고인 채로 편집실을 쳐다보았다. 그가 여전히 꿈속에서처럼 공허한 눈동자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일부러 그에게 흐흐흐 웃고 싶었다. 수치심이 들거나 알 수 없는 기분이 들 때 무기처럼 사용하는 그 웃음을 나도 그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너는 왜 나를, 너는 왜 나를 몰라. 너는 나를 알고 있잖아. 나는 누구에게 하는지도 모를 그런 말을 속으로 곱씹었다.
모두가 집으로 돌아간 뒤에 화장실에 가서 여러 번 게워냈다. 처음 모습과 별반 다를 것 없는 떡들이 위장에서 쏟아져 나왔다. 나는 화장실에 앉아서 머리를 박박 긁어냈다. 두피가 떨어져 나가면서 피가 고였다. 화장실 거울 속의 내가, 흐린 방수등 밑에서 선명하게 보였다. 붉은 두피와 황망한 정수리, 체내지방과 싸움을 하고 있는 내가 거울 속에서 울고 있었다.


다음날, 사무실에 남아 있는 떡이 없는 것을 확인하자, 시장 떡집 코너는 내 차지가 되었다. 할머니 세대부터 손주까지 이어지던 3대 떡집. 한쪽 팔을 잃은 할머니의 떡집을 가족들이 이어 오는, 시시콜콜한 떡집. 안주거리도 되지 않는 그 떡집 이야기를 나는 여러 가지 살을 덧붙여서 썼다. 사무실 사람들은 이번에도 잘하라고 말했다. 그러나 나는 하나도 기쁘지 않았다. 그는 나에게 인사를 하는 것 외에는 아무 말도 걸지 않았다. 꿈에서라도 나온다면 좋을 텐데, 그는 그 이후로 꿈에도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처음이자 마지막 꿈에서 꿨던 그때 그 모습처럼 그는 공허하게 남아 있었다. 나만 알아볼 수 있는 그의 눈동자 속, 양치류들이 바람에 흔들렸다. 물론 그가 찍는 국수는 여전했다. 맛있어 보였고, 따듯해 보였고, 당장이라도 먹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이제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았다. 나는 그런 국수를 먹지 못할 것이다. 그 국수가 어떤 맛인지, 얼마나 뜨거운지, 어디에 가면 먹을 수 있는지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그리고 그것들에 대해 그에게 물어보지 못했다. 나는 종국에 펼쳐질 다음에 대해서 생각했다. 다음의 다음, 그리고 또 다음의 다음. 차가운 여관방이 관짝이라도 되는 것처럼 혼자 쓸쓸하게 누워 있을 나의 모습이 떠올랐다. 온몸이 가렵지만 긁지 못하고 손과 다리를 배배 꼰 채로, 베개도 없이 누워 있을 모습들. 누군가 사랑이라고 말하는 것과는 절대로 가까워질 수 없는 나의 모습이 떠올랐다. 나는 앉아서, 차라리 모든 일들이 한꺼번에 일어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루 만에 모든 게 일어나서, 잠을 자고 일어나면 모든 게 다 끝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추웠고 슬펐고 가려웠다.


1월 11일, 1월 13일, 1월 15일, 16일, 1월 21일. 대대적인 한파와 폭설이 계속되었다. 기상에 따라 시청률의 변화가 있을 것이었다. 폭설 때문에 밖으로 나가는 이가 거의 없었다. 눈, 모든 상황을 쉽게 바꾼 것은 눈이었다. 그 주, 우리 사무실은 외주들 사이에서 높은 시청률을 달성했다. 계속 내리는 눈과 따듯한 국수와 노부부들의 입술이 사무실을 살린 것 같았다. 그와는 반대로 내 상황은 좋아지지 않았다. 얼핏 지나가는 자동차의 창문에 비친 나의 모습은 재앙이었다. 나는 되도록 땅을 보고 걸었다. 나는 사무실에서 대놓고 머리를 벅벅 긁었다. 메인 작가와 내 앞에 앉아 있는 작가들이 인상을 찌푸렸지만 나는 신경 쓰지 않았다. 나는 시간을 앞당기고 싶었다. 차라리 빨리 나에게 다음이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나는 자리에 앉아 있었다.
올해의 마지막 날, 나는 코너를 맡는 대신 진행비 보고서를 정리했다. 새 코너들이 자리를 잡아 갔지만, 나는 그대로였다. 나는 더 이상 먹을 수 없었다. 나는 텅 빈 사무실을 바라보았다. 인기척 없는 사무실에서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히터가 돌아갔다. 나는 올해 진행비를 정리했던 파일 옆에, 따로 정리해 두었던 엑셀 파일을 바라보았다. 수많은 노래바의 간판들과 실장들의 구식 명함이 떠올랐다. 나는 멍하니 기다렸다. 누군가 나를 툭, 쳐주기를. 그러나 사무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나를 말릴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사무실 밖으로 나왔을 때도 여전히 눈이 왔다. 밀가루처럼 포슬포슬하고 슴슴한 냄새가 나는 눈. 정수리에 하얀 눈이 쌓일 때마다, 연고를 바른 것처럼 머리통이 시렸다. 나는 발걸음을 옮겨 집으로 걸어갔다. 거리에는 술에 취한 사람들이 덩어리째 뭉쳐져 있었다. 나는 그쪽을 바라보았다. 검정 비닐 같은 사람들이 흩어졌다가 모이기를 반복했다. 무엇이 그렇게 즐거울까, 알 수 없었다. 나는 그쪽을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그래도 저들 중 한 명은 나와 비슷하지 않을까, 주머니 속의 연고로 가까스로 시간을 벌고 있지는 않을까, 나는 생각했다. 만약 그런 것이라면 조금은 나을 것 같았다. 그런 사람들 사이, 저 멀리 누군가 보였다. 매일 같은 옷을 입는 작은 사람. 나는 많은 사람들 속에서 그를 쉽게 가려냈다. 그는 술에 취한 사람들에게 등 떠밀리며 어딘가로 걸어가고 있었다. 오늘 치 방송도 무사히 마친 것 같았다. 그는 정수리가 가려운지 길을 걷다가도 정수리를 몇 번 긁고는 주변을 돌아보았다. 아무도 없는데도 그는 그렇게 했다. 나는 그가 거리 끝에서 사라질 때까지 그쪽을 바라보았다. 늘 그랬던 것처럼, 나는 그를 보고 있었지만 그는 나를 보고 있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뜨거운 물로 머리를 감고 헤어드라이어로 머리를 말렸다. 두피가 벗겨질 것처럼 아파서 나는 울었다. 건조한 머리를 아무렇게나 풀어헤치고 마지막 회계 파일을 다시금 열었다. 마지막. 나는 몸을 동그랗게 말고 잠이 오길 기도했다. 하지만 아무리 뒤척여도 잠이 잘 오지 않았다.


나는 병원 의자에 앉아서 순번을 기다렸다. 환한 백열전구에 눈이 시렸다. 환한 백열전구를 보니, 이 병원도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13번째 순서였다. 내 주변에는 30대가 넘어 보이는 남자들이 줄지어서 앉아 있었다. 남자들은 다 혼자였다. 나는 언젠가의 꿈을 떠올렸다. 방에 혼자 누워서 아랫도리를 박박 긁는 꿈. 아이들 웃는 소리와 새소리가 귓가를 울리는 꿈. 몸속에서 무언가 질질 새는 기분이 들었다. 흐흐흐. 멀리서 꿈속에서와는 다른, 야구공이 배트에 맞아 튕기는 소리가 났다. 홈런, 홈런이다. 비명에 가까운 소리가 그 뒤를 울렸다.
주머니에 넣은 전화가 쉬지 않고 울렸다. 나는 전화를 무시한 채, 인터넷 검색창을 열어 새로운 검색어를 썼다. 곧이어, 저렴한 가격의 어설픈 가발들이 페이지를 메웠다. 맞춤전문 가발, 접착제가 없는 무약품 가발, 25년 깊은 노하우와 경험의 가발, 스타일 좋은 인모 가발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어설픈 가발들을 보고 와하하 웃고 싶었지만 웃지 않았다. 그저 간헐적으로 나를 찾는 휴대폰 진동소리에 맞춰서 나는 일부러 흐흐흐 웃었다. 흐흐흐, 흐흐흐. 그 무기 같은 웃음이 새어 나올 때마다 알 수 없이 가슴이 자꾸만 따가웠다.











김남숙
작가소개 / 김남숙

2015년 문학동네 소설 등단, 소설집으로는 『아이젠』이 있다.


《문장웹진 2021년 0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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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리자
  • 2024-10-01
이것은 사랑 없이는 깰 수 없는 유일한 꿈이었다.

이것은 사랑 없이는 깰 수 없는 유일한 꿈이었다. - 춤추는 무당 당골 이심과 춤추지 않는 무당 오키나와 영매 유타의 사진에 대하여 한정현 기생 아니고 무녀예요. 무당이라고요, 아저씨. 이 여자한테 그랬다간 저주받는다고요. 어쩌려고요? 팔아먹게? 그런 말을 했던 이는 곧 어흥, 하는 표정을 짓는다. 얼굴을 잔뜩 구기면서 말하는데도 생생한 눈빛이 빛난다. 사내는 입을 반쯤 벌리고 그이의 얼굴을 바라보다 퍼뜩 정신이 들었는지 되레 큰소리다. 내, 내가 억지로 잡아끌었나! 누가 이 얼굴에 돈을 내겠어! 그 말을 하면서도 사내는 손목이 잡힌 이심이 아니라 그이의 얼굴을 힐끗거린다. 나도 그냥 기생은 아니죠. 아저씨 그렇게 내 얼굴 빤히 보면 돈 내야 돼. 알죠? 아닌 게 아니라 그이가 입고 있던 소맷자락이 그것을 알려준다. 잘 다린 소맷자락에 수가 놓여 있다. 초량권번. 사내는 돈이라는 이야기가 나오자 아까보다도 낮은 자세로 어느새 이심의 손목을 놓고 슬그머니 물러선다. 사내가 놓아 준 이심의 손목은 줄이 그어진 듯 붉다. 공창제도는 한참 전에 없어졌지만, 부산이든 서울이든 이젠 사창제도가 판을 쳐요. 미군들에게 매매 놓아 주는 곳도 많고요. 몰랐나요? 어느 누가 꿀이라도 한가득 따라 놓은 걸까. 남북이 서로 총을 겨누며 싸운 지 1년이 넘고 보니 거리마다 향기는커녕 악취가 진동했다. 그런데도 이 사람은 향을 품고 있구나. 이심은 공창이 뭔지도 사창이 뭔지도 몰랐다. 이 부산이라는 곳에 오기 전까지. 다만 저건 알았다. 그이가 들고 있는 소매 끝에 달린 초량권번이라는 이름. 이 사람은 북쪽이 밀고 내려올 때 군예대로 온 최승희의 제자일까, 아니면 호남 제일 이매방의 제자일까. 이심은 문득 건너의 그이가 자신과 비슷한 또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심은 아마 저이가 권번에 들어갈 무렵 시집을 갔을 거다. 세습무라는 것은 보면 희한했다. 부모가 전라도 세습무인 당골이라 한들 그 자식이 당골이 될 수는 없었다. 신과 인간을 잇는 것이 그들의 업, 인간사 그 모든 번뇌 속에서 자신의 삶은 없는 한 맺힌 자리라 그런 것일까. 기이하게도 당골은 시어머니에게서 며느리로 이어지는 거였다. 그렇다면 이심은? 남원 가재골 3대 당골 이심은 어떠한가. 이심은 제 발로 그 집에 들어갔다. 이심은 신이 아닌 한 인간에게 모든 걸 걸고자 했다. 한여름 빨래터에서 땡볕을 지고 일하는 이심에게 다가와 부채로 가만히 빛을 막아 주던 그 소년에게 모든 것을 걸고자. 사라진 것이 네가 아니라서 다행이야······. 처음 해변에서 홀로 하얀 천을 두르고 기녀들이나 추던 입춤을 휘날리듯 추던 그 누군가. 어느 집 기녀가 저리 고울까. 종일 마른 볕에 앉아 빨래를 하던 이심에게는 꿈같은 광경이었다. 어지러움에 잠시 이심이 감았던 눈을 뜨고 보니 어느새 그 꿈이, 아니 그가 웃으며 부채로 빛을 가려 주고 있었다. 뜻하지 않게 빛나던 그것은, 윤슬이 아니었다. 그의 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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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10-01
우리에겐 낮술이 필요한 것 같은데

우리에겐 낮술이 필요한 것 같은데 전하영 R과 나는 바닷가의 한 도시로 가는 기차를 타고 있었다. 우리는 그 도시에 있는 어느 서점의 초청으로 북토크에 참석할 예정이었다. 처음에는 서점이라고 해서 작은 가게인 줄 알았는데 꽤 규모가 있었고 로컬에서는 인지도도 높은 곳이었다. 사례비가 두둑해서 나는 바쁜 R을 설득해 초청 인사로 함께 행사에 참석하기로 했다. 이럴 때는 그가 야근을 밥 먹듯 하고 시도 때도 없이 불려 다니는 일을 한다는 게 도움이 됐다. 주말에 집에 들어가지 못할 이유를 손쉽게 만들어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북토크는 공식적으로도 그의 일의 연장이었다. 북토크에서 이야기할 책은 내가 이십 년 전에 쓴 소설로 처음에 출간됐을 때만 해도 거의 팔리지 않았는데, 영화화되면서 다시 읽히기 시작했다. R은 그 영화의 제작자였다. 그가 우연히 들른 카페에서 책을 발견했고 영화화를 제의해 왔다. 안 될 게 뭐람? 그 책은 세상에서 잊힌 것이나 다름없었으므로 나는 반갑게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솔직히 말하자면 적지 않은 이차 저작권료에 더 관심이 많이 갔는데 알고 보니 그쪽에서는 내가 당연히 그보다 큰 금액을 부르리라 예상하고 미리 낮춰서 제시한 금액이라고 했다. 그런 사정을 파악하게 된 것은 R과의 관계가 좀 더 사적인 성격으로 진전된 이후의 일이었다. 그 후로 많은 것들이 변했다. 책이 영화화되자 죽은 사람이 돌아온 것처럼 책에 쓰인 시절도 내게 함께 돌아왔다. 이십 년 정도가 지나면 당시의 나를 더 이상 나라고 부를 수 없을 정도로 상황과 감정이 바뀐다. 인간의 몸은 7년마다 세포 전체를 모조리 갈아치운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책이 처음 출간된 이후 대략 세 번쯤은 완전히 다른 나로 거듭나 있는 셈이나 마찬가지였다. 가장 잘 아는 타인을 덕질하듯이 나는 과거의 나에게 향수를 느끼며 그때 그 시절의 장소를 방문하며 추억에 잠기곤 했고, 그때마다 함께하는 상대에게는 숨은 의도를 밝히지 않고 다른 볼일이 있는 것처럼 둘러댔다. 그것은 최근 들어 생긴 나만의 비밀이자 즐거움이었다. 북토크를 위해 우리가 방문하는 도시는 한때 유명한 관광지였지만 오랫동안 쇠락의 길을 걷다가 최근 들어 다시 각광 받기 시작한 지역이었다. 모든 것이 너무 비싸고 조밀한 서울에 진력이 난 젊은 사람들이 조금씩 모여들었고 사람들이 모이니 인터넷 매체들이 관심을 보였다. 이제 조만간 영화나 드라마의 촬영지로 물망에 오를 테고 그렇다면 이 도시도 많은 다른 곳들과 마찬가지로 프랜차이즈 카페와 플라스틱 상징물로 가득 찬 어느 평범한 한국의 소도시 중 하나로 거듭날 것이었다. 다름 아닌 영화제작자를 데려가는 셈이니 어쩌면 내가 그 도시를 망가뜨리는 하나의 중요한 계기를 마련하고 있는 건지도 몰랐다. 망상에 불과하겠지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온 세상이 나를 쳐다보고 있다는 느낌. 내가 하는 작은 행동이 불러일으키는 더 큰 효과에 대한 전망. 책이 영화화된 뒤로 줄곧 내가 느끼는 감정이었다. 기차가 출발하기를 기다리는 동안 R에게 그 도시에 가본 적이

  • 관리자
  • 2024-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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