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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퍼드

  • 작성일 2020-11-01
  • 조회수 2,259

[단편소설]



셰퍼드



김도연




긴 혓바닥을 입 밖으로 늘어뜨린 셰퍼드 두 마리는 헉헉거리며 침을 줄줄 흘렸다.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무더운 여름날 오후였다. 김(金)은 혓바닥 양쪽으로 솟아나 있는 셰퍼드의 날카로운 송곳니에 허벅지를 물리기라도 한 듯 인상을 찡그렸다. 셰퍼드는 거의 송아지만 했다. 두 마리가 한꺼번에 달려든다면 아무리 싸움을 잘하는 인간이라도 당해 낼 수 없을 것이다. 사나우면서 덩치마저 큰 개는 정말이지 싫었다.
“빚쟁이들 몰려오기 전에 빨리 끌고 가. 우리 클럽에서 가장 비싼 개야.”
“……얘들을 끌고 가라고?”
“새끼 낳으면 한 마리당 몇 백만 원씩 하는 명견이야.”
“……주인도 아닌데 물지 않을까?”
“교육 잘 시켜 놨기 때문에 안 물어. 빨리 끌고 가. 벌써 시끄러운 소리 들린다.”
친구는 붕붕거리는 차 소리가 시끄럽게 피어나는 계곡 아래로 시선을 돌렸다. 파산을 한 친구의 명견클럽으로 몰려오는 빚쟁이들이었다. 그나마 김은 친구가 가장 먼저 연락을 해줘 그들보다 한 발 먼저 달려올 수 있었다. 그런데 빌려준 돈 대신 셰퍼드 두 마리라니…… 이 사실을 구(丘)가 알면 뭐라고 할까. 생각도 해보기 전에 벌써 머리가 지끈거렸다.
“큰길로 가면 뺏길지도 모르니까 산길로 가는 게 나을 거야. 차는 나중에 찾으러 오고. 하여튼 미안하다.”
“산길로?”
“길 알잖아. 서둘러!”
김의 손에 셰퍼드 두 마리의 목사리에 연결된 리드 줄을 건네주며 친구는 등을 떠밀었다. 골짜기를 올라오는 여러 대의 차 소리에 명견클럽의 개들이 하나둘 짖기 시작하더니 이윽고 전체가 합창을 시작했다. 그 합창에 떠밀리고 앞에서 성큼성큼 달려가는 셰퍼드 두 마리에 끌려 김은 엉겁결에 산속으로 뚫린 길로 들어섰다. 친구가 소리쳤다.
“나중에 잠잠해지면 소주나 한 잔 마시자!”
“너랑은 죽어도 안 마셔, 새끼야!”
“미안해!”
“미안할 거면 망하지나 말았어야지!”
“할 말이 없다.”
“야, 이 개 진짜 안 무는 거 맞지?”
“안 물어!”
분통이 터질 지경이었다. 되돌아가 친구 놈을 실컷 패주고 싶었지만 막무가내로 김을 잡아끄는 셰퍼드 두 마리의 힘을 이길 수 없었다. 개들은 외출에 신이 난 듯 산길을 달리려 했고 김은 그 속도를 죽이려고 리드 줄을 꽉 움켜잡은 채 두 다리를 브레이크 삼았는데 마치 산속 오솔길에서 수상스키를 타는 자세와 비슷했다. 혹시라도 줄을 놓쳐 개를 잃어버리지 않으려 애를 쓰며 안간힘을 다해 버텼다.
“이 개새끼들아, 제발 천천히 좀 가자!”
산등성이의 무덤 근처에서 김은 간신히 셰퍼드들을 멈춰 세운 뒤 리드 줄을 재빨리 참나무 기둥에 감아 단단하게 묶었다. 개들은 그제야 긴 혀를 늘어뜨린 채 학학거리며 나무 옆에 엉덩이를 깔고 앉았다. 김도 개들과 조금 떨어진 무덤 옆에 주저앉아 호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 정말이지 숨이 꼴까닥 넘어가기 직전까지 갔다가 돌아온 느낌이었다. 한 마리도 아닌, 두 마리의 성견 셰퍼드가 발산하는 힘을 혼자서 감당하기엔 힘에 부쳤다. 서둘러 담배 한 대를 피운 김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손에 쥐기에 적당한 싸리나무 가지를 꺾어 회초리를 만들었다. 회초리 없이 덩치가 크고 사나운 셰퍼드 두 마리를 끌고 산을 넘어 집으로 가기엔 역부족이란 걸 비로소 알아차린 거였다. 말을 듣지 않으면 매로 다스려야만 했다. 일단 개들의 기를 꺾어 놓아야만 했다. 김은 손으로 무릎을 짚고 힘겹게 일어나 개들에게로 다가갔다. 근데…… 정말 사람을 물지 않을까. 명색이 군견이나 경찰견으로 쓰이는 셰퍼드인데…… 김이 가까이 다가가자 두 마리 셰퍼드는 엉덩이를 들고 일어났다. 침을 줄줄 흘리며 김을 바라보았다. 그는 개들 앞에 서서 싸리나무 회초리로 손바닥을 착착 두 번 가볍게 내려친 뒤 군대 조교의 목소리를 흉내 내 입을 열었다.
“오늘부터 느그들 주인은 나다. 내가 친구 새끼 잘못 만나 빌려준 돈 한 푼도 돌려받지 못하고 대신 느그들을 데려가게 되었다. 얼말 빌려줬냐고? 어휴, 말도 꺼내기 싫다. 집에 가면 와이프한테 한 일 년은 시달릴 게다. 개새끼! 그게 어떤 돈인데…….”
산 아래에서 개 짖는 소리가 시끄럽게 올라오고 있었다. 남자들의 고함소리도 뒤따라 올라왔다. 무엇인가가 깨지는 소리도 함께 올라왔다. 여자의 울음소리도……. 김은 눈을 감은 채 잠시 산 아래에서 올라오는 소리를 듣다가 다시 회초리로 손바닥을 내려쳤다. 덩치 크고 사나워 보이는 셰퍼드 두 마리는 회초리에 겁을 먹은 듯 눈을 내리깔았다. 그래도 친구 놈이 개들 교육만은 제대로 시킨 모양이었다. 김은 회초리를 치켜들었다가 개들의 머리를 재빨리 후려치는 시늉을 했다. 개들은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턱을 흙바닥에 붙인 채 납작 엎드렸다. 개들의 행동에 김은 다소 만족한 표정으로 명견클럽에서 가져온 개 사료를 배낭에서 한 움큼 꺼내 그 앞에 뿌려 주었다. 개들은 마른 나뭇잎과 풀을 뒤져 한 알의 사료도 남기지 않고 모두 먹어치웠다. 개들을 향해 회초리를 치켜든 김은 천천히 말을 이어 갔다.
“지금부터 내 얘기 똑바로 들어라. 이제부턴 내가 느그들 주인이다. 조금 있다가 다시 출발할 텐데 절대 뛰지 마라. 만약 아까처럼 경거망동하면 무조건 맞는다! 알아들었냐?”
회초리가 다시 머리로 다가가자 개들은 땅바닥에 엎드렸다. 김은 고개를 끄덕이며 회초리를 거두었다.
“내가 어쩌다 이런 기구한 처지에 빠지게 됐는지…… 이게 다 느그들 주인 놈 꾐에 넘어간 탓이야. 씨발, 그게 어떤 돈인데…….”
김은 이마에 맺힌 땀을 닦으며 다시 담배에 불을 붙였다. 한숨이 담배 연기와 함께 절로 풀풀 흘러나왔다. 개들에게 지금의 상황을 설명해야 하는 현실이 한심하기까지 했다. 아무것도 알아듣지 못할 개들에게. 피우던 담배꽁초를 신발로 비벼 아예 재로 만들어버리려고 할 때 바지주머니의 휴대폰에서 노래가 흘러나왔다. 구가 벨소리 대신 녹음해 놓은 노래였다. 김은 마침내 올 게 왔다는 표정을 지은 채 휴대폰을 묵묵히 바라보았다. 베트 미들러의 노래는 언제 들어도 아름다웠다. 바닥에 엎드려 김의 눈치를 살피는 셰퍼드 두 마리도 귀를 쫑긋 세운 채 노래를 감상하는 눈치였다. 애당초 구는 김이 친구에게 거금을 빌려주는 걸 반대했다. 하지만 김은 친구의 간절한 부탁을 외면할 수 없었다. 젊은 날 친구에게 신세진 것도 많았지만 무엇보다 명견클럽의 전망에 대한 친구의 열정적인 설명을 들으니 투자할 가치가 충분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다른 투자자들은 김보다 더 열성적으로 친구의 사업에 뛰어든 상태였고 또 적잖은 이득을 이미 취하고 있었기에 의심은 전혀 들지 않았다. 김은 끊어졌다가 다시 노랫소리가 피어나는 휴대폰을 귀 가까이 가져갔다.
“……어.”
“왜 전활 안 받아?”
“……어, 산속이라 전화가 잘 안 터져.”
“산속? 개 목장에 돈 받으러 간 사람이 왜 산속에 있어?”
“……어. 개 끌고 가는 중이야.”
“개? 웬 개?”
“그럴 일이 있어. 여기 전화 잘 안 통하니까 조금 있다가 내가 다시 할게.”
“무슨 일 생긴 거 아냐?”
김은 구가 걸어온 전화를 끊었다. 더 이상 대화를 이어 갈 수 없었다. 산속에서 개 두 마리를 데리고 자초지종을 모두 얘기해 봤자 머리만 아플 뿐이었다. 할 수 있는 한 뒤로 미뤄야만 했다. 그사이에 어떤 방법이 생길지도 모를 일이었다. 아니, 그사이에 그런 일이 꼭 생겨야만 한다고 주문하며 김은 나무에 묶어 놓은 리드 줄을 끌렀다. 두 마리 셰퍼드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구의 쟁쟁거리는 목소리가 바지주머니 속에서 기름이 끓듯 요동치는 것 같았다. 김은 회초리를 든 채 개 두 마리를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가급적 천천히 가자.”
아까와 달리 셰퍼드 두 마리를 뒤에 세운 김은 능선을 따라 이어진 좁은 산길을 터벅터벅 걸었다. 다행히 개들은 김의 손에 들린 회초리의 위력 때문에 앞으로 나오지 않고 뒤따라왔다. 성질을 이기지 못해 조금이라도 앞으로 나오려 하면 김은 사정없이 회초리를 휘둘러 미리 단속을 하며 걸었다. 산길로 가면 집까지는 대략 한 시간 정도 걸렸다. 빌려준 돈도 받지 못한 채 개에게 질질 끌려가다시피 해서 집에 도착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 모습을 구가 본다면 아마 개똥을 밟은 표정을 지을 게 틀림없었다. 김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한숨이 절로 나왔고 다리에 힘이 빠졌다. 집에 가지 말고 그냥 이대로 산속에서 살고 싶어졌다. 아무리 생각해도 도대체 구를 볼 면목이 서지 않았다. 이게 무슨 날벼락이란 말인가.
“아, 그게 어떤 돈인데…….”
친구에게 빌려준 돈은 김과 구가 월급 외에 어쩌다 생기는 가욋돈을 십여 년 가까이 푼푼이 모아 세계여행 한 번 제대로 하려고 모아 둔 돈이었다. 그동안 아무에게도 그 돈에 대해 발설하지 않고 있었는데 지난번 초등학교 동창회 자리에서 술에 취한 김이 친구들의 돈 자랑에 약이 올라 그만 입을 열고 말았다. 나이 오십이 되면 일 년 동안 세계여행을 할 준비를 거의 마쳤다고. 세계 각지의 박물관과 미술관, 콘서트홀, 그리고 각각의 종교 성지를 돌아보며 앞만 바라보며 바쁘게 살았던 인생을 천천히 되돌아보고 싶다고. 그러자 평소 분위기가 남달랐던 여자 동창들이 고개를 끄떡이며 김에게 구체적인 질문을 하며 관심을 보였다. 김은 차분하게 이야기를 이어 갔다. 여행의 마지막 한 달은 배낭을 짊어지고 스페인의 산티아고 길을 걸을 것이라고. 수도꼭지에서 나오는 포도주를 마시며. 그 길을 모두 걸은 뒤엔 크루즈를 타고 아주 천천히 한국으로 돌아올 거라고. 부동산 투기와 땅장사로 돈을 벌어 심심하면 동남아로 골프를 치러 간다는 동창 녀석은 김의 얘기가 못마땅한 듯 슬그머니 일어나더니 자리를 옮겨버렸다. 김은 여자 동창들에게 나이가 오십이 가까워지면서 인생의 의미가 과연 무엇인지 요즘 깊게 생각하고 있다고 나지막하게 이야기했다. 그 돈 얘기가 명견클럽의 친구 놈 귀에 들어간 거였다. 그날 동창회엔 다른 일 때문에 참석하지도 않았던 녀석이 어느 날 퇴근 무렵 김의 직장으로 찾아와 한잔 하자며 다짜고짜 자신의 개 사육장으로 끌고 간 것이다.
“오십 되려면 아직 이 년이나 남았잖아. 네가 가진 돈을 불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야.”
“……그 돈은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돈이 아냐.”
“와이프하고 잘 의논해 봐. 요즘 은행에 돈 넣어 놓고 있어 봤자 득 될 거 없어. 참새 눈물만큼도 안 되는 이자가 전부야. 돈은 굴려야만 늘어나. 내가 제안한 이자면 니 와이프도 관심을 가질 거야.”
“……얘기는 해볼게. 근데 개 사육이 그렇게 전망이 좋냐?”
“야! 그냥 개가 아니라 명견이야. 얘들은 사람들처럼 다 족보가 있어. 그리고 여기 있는 개들 값이 모두 얼만 줄이나 알아?”
친구 녀석은 김의 손을 끌고 이른바 명견 순례를 시켜 주었다. 개들의 품종과 특성, 그리고 헉 소리가 튀어나오게 만드는 가격에 대해 일일이 설명하며 사육장을 한 바퀴 돌았는데 자그마치 한 시간이나 걸릴 정도였다. 물론 그사이에 품종과 특성, 가격은 머릿속에서 깡그리 지워졌지만. 불도그, 달마티안, 셰퍼드, 포인터…… 그리고 또 뭐가 있었는지 감감할 뿐이었다. 주먹만 한 강아지에서부터 시작해 송아지만 한 개까지 다양하기 이를 데 없었다.
“어때?”
“개들 종류가 이렇게 많은 줄 처음 알았다.”
“요즘은 주식보다 개한테 투자하는 게 훨씬 낫지.”
“이렇게 비싼 개들을 대체 누가 사 가는 거야?”
“고독한 사람들. 그들에게 비숑 프리제는 자식이나 마찬가지지.”
친구가 하얀 눈 뭉치처럼 생긴 강아지를 가리켰다. 동그랗고 까만 두 눈과 코가 거기에 박혀 있었다.
“가진 게 많아 불안한 사람들. 집 마당에 케인코르소가 떡하니 버티고 있으면 도둑들이 감히 담 넘을 엄두를 못 내지.”
친구가 가리킨 철창 속의 검은 개는 마치 권투선수 타이슨을 연상시켰다. 인상만 봐도 기분이 더러워지는 듯했다.
“꼬마들에겐 장난기가 많은 저기 닥스훈트가 딱 좋아. 친구처럼 같이 놀아 주니까.”
귀가 얼굴을 가릴 정도로 크고 밤색 주둥이를 가진 까만 닥스훈트는 호기심이 가득한 눈빛으로 김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김의 집으로 데려가 달라는 듯. 김은 자기도 모르게 그 개에게 손을 내밀었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 있으면 당장 데려가고 싶을 정도였다.
“이제 개는 그냥 개가 아냐.”
“그럼 뭐야?”
“인생의 동반자인 거지. 앞으론 모든 집에서 개와 인간이 함께 살아가는 세상이 될 거야. 나는 인간들에게 더욱 적합한 개들을 공급할 거고.”
“왜 하필 개야?”
김은 하나마나한 질문을 건넸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래도 친구가 어떤 대답을 할지 궁금해서 맥주잔을 비우며 기다렸다. 저녁을 먹은 철망 속의 개들은 하나둘 잠들 준비를 하고 있었다.
“개가 사람보다 나으니까.”
회초리 때문인지는 몰라도 두 마리 셰퍼드는 뒤에서 긴 혀를 늘어뜨린 채 얌전하게 따라왔다. 서로 리드 줄이 엉키지도 않았고 김의 다리를 줄로 휘감지도 않았다. 휴식을 하기 전에 산비탈을 달렸던 그 개들이 맞는지 의심이 들 정도였다. 그날 김은 ‘개가 사람보다 낫다’는 친구 놈의 말에서부터 결국 마음이 흔들리고 말았다. 친구 놈은 뭐가 더 낫냐는 김의 질문에 백과사전을 펼쳐 넘기듯 사람보다 개가 나은 까닭을 한 시간 가까이 늘어놓았다. 그중 하나가 이거였다. 와이프와 같이 살면 늘 잔소리를 해대지만 개는 아무리 술을 마시고 늦게 들어가도 반갑다고 꼬리를 흔든다. 심지어 삭이지 못한 토사물을 말끔하게 먹어치우기까지 한다. 물론 김은 집에 돌아가 구에게 그 얘기를 하진 않았지만 마치 영업사원이라도 된 것처럼 친구 놈의 명견클럽에 대해 늘어놓았다. 돈을 빌려주었을 때 매달 통장으로 들어올 쏠쏠한 이자에 대해서도. 대학에 다니던 시절 김의 집이 파산하자 친구 놈이 공짜로 두 학기나 등록금을 내준 덕분에 무사히 졸업을 할 수 있었던 얘기까지 꺼내 놓았다.
“그 등록금 나중에 갚았어?”
“……갚으려 했는데 친한 친구 사이에 그럴 수 없다며 그냥 술 한 잔 사는 걸로.”
“……당신이 빠져나갈 방법이 없네.”
“믿을 만한 친구야.”
“돈 앞에선 믿을 만한 친구 없다는 게 내 지론이야. 우리 여행 갈 돈에서 당신 것만 빼서 빌려줘. 당신…… 설마?”
“……그렇게 됐어. 워낙 급하다고 해서.”
“아예 개 목장에 가서 그 친구랑 같이 살아!”
오솔길을 벗어난 김이 소나무 숲 사이로 뚫린 임도를 셰퍼드 두 마리와 접어들었을 때 다시 호주머니에서 노래가 흘러나왔다. 여자들은 정말 예감이 빨랐다. 김은 구가 걸어온 전화를 받을까 받지 말까 망설였다. 어차피 일은 벌어졌고 김은 개를 끌고 걸어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미리 말하는 게 나을지 아니면 집에 돌아가 얘기하는 게 나은 것인지 판단하기 힘들었다. 나이 오십이 가까워 오는데 먼저 맞는 매와 나중에 맞을 매의 강도를 놓고 갈등을 하는 게 한심하기 그지없었다. 김은 목사리와 연결된 리드 줄을 단단하게 잡은 채 장속곡이 흘러나오는 것만 같은 전화기를 꺼내들었다.
“어떻게 된 거야?”
“……친구 놈 사업이 망했어.”
“……돈은 얼마나 돌려받았어?”
김은 긴 혀를 늘어뜨린 채 서 있는 개들의 머리를 회초리로 툭툭 건드렸다. 개들은 이내 엉덩이를 깔고 앉았다. 구의 돈이라도 돌려받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비로소 들었다.
“……셰퍼드 두 마리. 이 개 엄청 비싼 개래. 새끼 한 마리가 몇 백만 원씩 하나 봐.”
“집에 들어올 생각 말고 그 똥개들이랑 세계여행이나 가!”
이번에는 구가 먼저 전화를 끊어버렸다. 김으로선 그나마 다행이었다.
당장은 다행이긴 한데…… 앞으로가 걱정이었다. 어쩌면 구의 말대로 셰퍼드 두 마리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것보다는 세계여행은 아니더라도 국내여행을 떠나는 게 더 현명한 선택인 것 같았다. 함께 살아오는 동안 구는 어떤 상황에서도 틀린 말을 한 적이 거의 없다는 것을 김은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었다. 셰퍼드 두 마리를 끌고 집으로 들어서는 순간부터 김은 고난의 가시밭길을 걷게 될 거였다. 오랫동안.
“크르르…….”
소나무 숲이 끝나고 울창한 잣나무 숲으로 접어들었을 때 오른쪽에 선 셰퍼드 한 마리가 걸음을 멈춘 채 비탈 아래를 내려다보며 날카로운 송곳니를 드러냈다. 왼쪽의 셰퍼드도 재빨리 그쪽으로 다가가 앞다리와 뒷다리에 잔뜩 힘을 주고서 언제라도 달려 나갈 수 있게 몸을 낮췄다. 잣나무 숲 너머 비탈 아래는 개울이 흐르는 잡목 숲이었다. 그 숲에 무엇인가가 숨어 있다는 걸 개들이 눈치 챈 거였다. 리드 줄을 꽉 움켜잡은 김도 자세를 낮춘 채 개들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고라니? 토끼? 산돼지? 숨어 있는 산짐승이 산돼지라면 사정이 달랐다. 산돼지의 가격이 만만찮았기 때문이었다. 김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과연 셰퍼드가 산돼지를 잡을 수 있을까. 산돼지를 잡으려고 줄을 풀어 주었다가 도리어 달아나는 건 아닐까. 만약에 산돼지가 아니라 자그마한 산토끼나 고기 맛도 없는 고라니라면…… 산돼지와 셰퍼드가 싸우다가 셰퍼드가 다치거나 죽어버린다면 그야말로 최악이었다. 그렇게 된다면 구의 말대로 개들과 세계여행을 하는 게 아니라 집에도 못 들어가고 혼자서 외롭게 국내여행을 해야 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믿어도 되겠냐?”
김은 두 마리 셰퍼드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물었다. 말을 못 하는 개들이다 보니 눈빛으로 생각을 읽어야만 했다. 그러자 놀랍게도 개들은 바닥에 납작 엎드리며 바로 의사표시를 보냈다. 저 아래 숲 속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김은 개들을 믿어 보기로 했다. 두 마리 셰퍼드의 머리를 쓰다듬어 준 뒤 목사리와 연결된 리드 줄의 고리를 풀고 엉덩이를 쳤다. 개들은 100미터 육상경기의 세계기록 보유자인 자메이카의 우사인 볼트보다 더 빠르게 출발선을 뛰쳐나갔다. 사납게 짖으며.
사실 어린 시절부터 김은 다른 누구보다 개를 좋아하고 개들도 잘 따랐다. 다른 무엇보다도 개들과 통하는 어떤 부분이 다른 사람보다 많은 건 확실했다. 이웃집 사나운 개들도 다른 아이들에게는 으르렁거렸지만 김이 다가가면 짖는 걸 멈추고 꼬리를 흔드는 걸 보면 그랬다. 물론 미친개는 예외였지만. 가장 멀리 있는 개는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의 삽사리였다. 그 삽사리는 김보다 나이가 많았는데 김의 어머니가 장을 보러 갈 때면 완행버스 타는 곳까지 따라가 배웅을 하고 저물 무렵 장에서 돌아올 시간이 되면 어김없이 정류장으로 나가 기다렸다가 같이 돌아오곤 했다. 발목에 시계를 차고 있는 것도 아닌데. 어린 김이 마당에 나가 똥을 눌 때 그 옆에 가만히 앉아 있다가 볼일을 모두 보면 혀로 밑을 말끔하게 닦아 주고 똥까지 먹었다고 어머니가 전해 줬지만 기억에는 없었다. 김이 선명하게 기억하는 건 그 삽사리가 죽는 장면이었다. 여름 초저녁 김은 마을 운동장에서 공을 차고 있었는데 형을 따라 큰집으로 가던 삽사리가 난폭운전을 하는 트럭에 치여 죽는 장면이었다. 운동장 옆은 개울이었고 그 옆이 신작로였는데 김은 갑자기 들려온 쾅, 하는 소리에 놀라 어둑어둑해지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거기에 검은 물체 하나가 허공으로 떠올랐다가 천천히 개울로 떨어지고 있었다. 김보다 나이가 많고 똑똑했던 삽사리는 어쩌면 트럭으로부터 형을 구하고 자신이 대신 희생한 것인지도 모른다고 가족들은 입을 모았다. 그 이후로도 김의 집에는 늘 개가 있었다. 한 마리나 두 마리, 새끼를 낳았을 때는 더 많은 개들이 마당에서 뛰어놀았다. 물론 그 개들은 집에서 가장 어린 김의 친구가 되어 주었다. 큰 개, 작은 개, 강아지 가리지 않고. 그 강아지들을 방으로 데려와 함께 먹고 놀고 자고 싶었지만 가족들의 반대로 단 몇 시간밖에 허용되지 않았다. 그들에겐 개는 개였고 사람은 사람이었다. 어느 해 뜨거운 여름날 그 구별이 잔인한 현실로 벌어지고 말았는데 내용인즉 대략 이러했다. 김이 친구 집에 놀러갔다가 돌아오는데 마을의 운동장 옆 미루나무 아래에 가족들과 친척들이 둘러앉아 음식을 먹고 술을 마시며 더위를 피하고 있었다. 한쪽에는 집에서 가져온 가마솥까지 걸어 놓고서. 가마솥에서는 김이 무럭무럭 피어나고 있었다. 김이 뭔가 이상한 느낌을 품고 다가가자 어머니는 집에서 기르던 누렁이를 팔아 염소를 샀고 오늘이 복날이어서 염소탕을 끓여 먹는 중이라고 알려줬다. 누렁이를 팔았다는 말에 김은 운동장에 주저앉아 한바탕 대성통곡을 했다. 통곡 뒤엔 당연히 배가 고팠다. 김은 코를 훌쩍거리며 어머니가 건네준 염소탕을 두 그릇이나 먹었다. 평소와 달리 뭔가 이상한 가족들의 표정에 의아해하며. 그때 술에 취한 친척 한 분이 빈 그릇을 들고 가마솥으로 다가가 나무 뚜껑을 열었는데 김은 가마솥 안에 들어 있는 개의 머리를 보고서야 알았다. 털이 모두 그슬었다고 해도 펄펄 끓는 가마솥 안에 있는 누렁이의 얼굴을 못 알아볼 리가 없었다. 김은 그 자리에서 까무러쳤다.
“……이게 뭐냐?”
“…….”
“지금 이게 산돼지라고 우기는 건 아니겠지?”
덩굴이 우거진 숲으로 한달음에 달려간 셰퍼드 두 마리는 전쟁이 난 듯 야단법석을 떨더니 고작 피를 뚝뚝 흘리는 산토끼 두 마리를 입에 물고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돌아왔다. 김은 회초리로 죽은 산토끼를 툭툭 두드리며 녀석들의 표정에서 자랑스러움을 몰아내 버렸다. 산돼지라도 잡았더라면 구에게 그나마 조금 생색을 낼 수 있겠지만 산토끼는 아무래도 많이 약했다. 김은 셰퍼드의 목사리에 리드 줄을 연결하고 나무에 묶었다. 개들에게 사료를 뿌려 준 뒤 담배 한 대를 피우며 휴대폰으로 산토끼를 찍었다. 숨을 헐떡거리며 사료를 먹는 셰퍼드 두 마리도 사진기에 담고 마지막으로 김과 셰퍼드, 산토끼가 모두 나오도록 휴대폰을 잡은 손을 한껏 내밀어 셔터를 눌렀다. 그리고 세 장의 사진을 구에게 전송했다. 문자와 함께.
셰퍼드가 잡은 산토끼야. 다음번엔 산돼지를 잡아 줄게.
담배 한 대를 다 피울 무렵 구에게서 답장이 왔다.
집에 들어오지 말고 그냥 산에서 살아!
김은 배낭에 죽은 산토끼 두 마리를 넣고서 회초리로 개들의 머리를 야무지게 톡톡 때렸다. 셰퍼드 두 마리는 끙끙거리며 다시 땅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김은 한숨을 쉬며 개들에게 구의 문자를 보여주었다.
“느그들이 산돼지를 잡았으면 이런 문자가 오겠냐?”
걷기 편한 임도라지만 한여름 오후에 송아지만 한 셰퍼드 두 마리를 끌고 산길을 걷는다는 건 녹록치 않았다. 산토끼를 잡은 이후부터 개들은 수시로 걸음을 멈추고 코를 흥흥거렸다. 힘이 만만치 않았기에 어지간하게 줄을 당기지 않으면 꿈쩍도 하지 않았다. 줄을 당기고 회초리를 휘두르는 데도 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땀 냄새를 맡고 눈과 귀 근처에서 앵앵거리는 초파리 떼 역시 귀찮기 그지없었다. 평지와 오르막, 내리막을 반복하며 산자락을 돌아가는 길에서 김은 더운 숨을 훅훅 쏟아냈다. 생각 같아선 개들을 풀어 놓고 싶었지만 필경 산짐승을 찾아 천지사방 날뛸 것이기에 그럴 수도 없었다. 운이 좋으면 산돼지 한 마리를 잡을 수도 있겠지만 그러다가 구의 말대로 정말 산에서 살아야 할지도 몰랐다. 길 밖으로 벗어나고 싶어 하는 셰퍼드에게 회초리를 휘두르는 김의 손에 점점 힘이 들어가고 입에선 욕설이 튀어나왔다. 온몸은 땀으로 범벅이고. 김은 아침까지만 해도 뜨거운 여름날 자신보다 덩치가 큰 셰퍼드 두 마리를 끌고 산길을 걸으리란 걸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어디로 가나.”
산길을 빠져나오자 골짜기 끝 비탈진 감자밭이 펼쳐져 있었다. 보라색 감자 꽃들이 바람에 흔들렸다. 김은 개울가 버드나무 그늘에 앉아 골짜기 아래 밭 사이에 드문드문 자리 잡고 있는 농가의 지붕들을 훑어보았다. 그 너머에는 고속도로가 있었고 고속도로 너머는 읍사무소가 있는 시내였다. 김의 집에 가려면 시내를 통과하는 게 가장 빨랐다. 사람들의 눈을 피해 시가지를 우회할 수도 있지만 무더운 여름날 셰퍼드 두 마리를 끌고 땡볕을 걷는다는 건 쓰러지기 딱 좋은 지름길이었다. 강아지도 아닌, 덩치 큰 개를 택시가 태워 줄 리도 없었다. 그렇다고 개 두 마리를 싣기 위해 화물트럭을 부르는 것도 마뜩치 않았다. 김은 태평하게 앉아 숨만 학학거리는 셰퍼드의 머리를 들고 있던 회초리로 내려쳤다. 그러자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 매를 맞아 억울하다는 듯 셰퍼드 한 마리가 침이 흐르는 어금니를 드러내며 가볍게 으르렁거렸다.
“어쭈, 지금 반항하는 거냐? 내가 느그들 땜에 산을 몇 개나 넘었는지 알아? 느그들 데리고 저길 통과할 생각만 해도 벌써부터 쪽팔려 죽겠는데, 응?”
김은 회초리를 높이 치켜들었다. 들었다가 잠시 뒤 한숨과 함께 힘을 풀고 회초리를 내렸다. 회초리를 따라 올라갔던 개들의 긴장한 눈동자가 회초리의 방향을 따라 스르르 풀어졌다.
“……하기야 느그들이 무슨 죄가 있겠냐. 느그들 주인이었던 놈이 죽일 놈이지.”
감자밭을 지나자 자그마한 콩밭이었다. 콩밭 건너편은 키가 큰 옥수수밭이 산자락에 붙어 있었다. 골짜기를 내려갈수록 밭은 점점 커졌다. 이천 평쯤 돼 보이는 밭엔 대파들이 줄을 맞춰 자라고 있었다. 대파가 흘려보내는 향이 코끝을 간질였다. 당근밭에선 당연히 당근 향이 떠다녔다. 사람 머리통만 한 배추의 허연 밑둥치는 꼭 쭈그려 앉아 볼일을 보는 구의 엉덩이를 연상시켰다. 그런 배추들이 오천여 평의 밭이랑에 엉덩이를 까고 앉아 일제히 볼일을 보는 것만 같았다. 자기도 모르게 실실 웃음을 흘리던 김은 곧 구의 화난 표정을 떠올리곤 웃음을 지웠다. 어떻게 하면 구의 화난 마음을 조금이나마 풀어 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배추밭이 끝나는 곳엔 담은 있지만 문은 달려 있지 않은 농가 한 채가 커다란 밤나무 아래에 한가로이 자리 잡고 있었는데 털이 부숭부숭한 발바리 한 마리가 어떤 기척을 느꼈는지 머리를 빠끔 내밀더니 곧바로 앙칼지게 짖기 시작했다. 김의 뒤에 서 있던 셰퍼드 한 마리가 뛰쳐나간 것도 거의 동시였다. 리드 줄을 잡고 있던 김은 길바닥에 그대로 엎어졌고 뒤이어 나머지 셰퍼드도 앞서 뛰쳐나간 개를 쫓아 달려갔다. 흙바닥에서 간신히 일어난 김은 오른발을 절뚝거리며 그 집을 향해 뛰어갔다.
놀란 닭들이 날개를 퍼덕거리며 꼬꼬댁 꼭! 비명을 지르고 발바리가 사력을 다해 짖는 소리가 피어나는 집으로. 김이 도착했을 땐 이미 상황이 종료된 상태였다.
“……정말 죄송합니다.”
“죽은 닭은 가져가. 산토끼 고기랑 바꾼 걸로 칠 테니.”
“아뇨. 어르신이 고아 드십시오. 그나저나 발바리가 괜찮은지 모르겠네요.”
발바리는 셰퍼드가 들어올 수 없는 낮은 마루 밑 깊은 곳으로 쫓겨 들어가 납작 엎드린 채 마당을 노려보고 있었다. 가끔 생각났다는 듯 으르렁거리며.
“괜찮아. 쟤가 덩치는 작아도 야무진 놈이야. 호랑일 만나도 지 앞가림은 해.”
대문 없는 집을 나오기 전 김은 회초리로 두 마리 셰퍼드의 머리를 다시 몇 차례 야무지게 후려쳤다. 개들은 끙끙거리며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그 모습을 본 마루 밑의 발바리가 조금 더 큰 소리로 짖었다. 자기 집에서 어서 꺼져 버리라는 듯이. 그 심사를 눈치 챈 셰퍼드 한 마리가 꿈틀하는 걸 본 김의 회초리가 다시 바람을 갈랐다.
리드 줄을 손목에 둘둘 감은 채 김은 마을길을 걸었다. 비슷한 상황이 언제 또 재발할지 몰랐다. 혹시라도 사람을 무는 사태가 벌어진다면 그야말로 큰일이었다. 마을을 통과하면 곧바로 시내 도로인데 지나가는 많은 사람들과 빵빵거리는 차량들을 보면 산골짜기에서만 살던 셰퍼드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알 수 없었다. 김이 입고 있는 셔츠는 땀에 젖어 쉰내를 풍겼다. 바지 속 젖은 팬티 역시 자꾸만 사타구니와 허벅지를 긁었다. 땀 냄새를 맡은 파리 한 마리가 끈질기게 눈과 귀 주변에서 앵앵거렸다. 조금이라도 틈이 생기면 눈과 귓속으로 들어올 것만 같아 날갯짓 소리가 들리면 회초리를 휘둘렀지만 파리를 영영 쫓아버리는 데는 효과가 없었다. 어디 시원한 물에 들어가 발가벗고 목욕을 하고 싶은 심정이 간절한데 셰퍼드 두 마리는 김의 다리 뒤에서 서로 먼저 가겠다고 몸싸움을 하며 장난질을 쳤다. 남의 집 닭을 잡고 얻어맞은 기억은 사라진 지 오래인 듯했다. 김은 뒤돌아서서 다시 회초리를 휘둘렀다.
“편의점이다!”
시내 초입의 편의점 앞 은행나무에 셰퍼드와 연결된 리드 줄을 단단하게 묶었다. 시원한 캔 맥주와 소시지, 그리고 땅콩이 들어간 과자를 산 김은 개들 근처에 있는 파라솔 아래에 자리를 잡고 서둘러 목을 축였다. 맥주는 달고 시원했으며 소시지는 허기를 채우기에 안성맞춤이었다. 끙끙거리는 개들에겐 가끔 과자를 던져 주었다. 맥주 한 캔은 금방 바닥을 드러냈기에 김은 편의점으로 들어가 두 캔을 더 가져왔다. 지나가던 사람들은 잠시 걸음을 멈춘 채 침이 뚝뚝 떨어지는 긴 혀를 늘어뜨린 채 과자를 던져 주기를 기다리는 셰퍼드 두 마리와 술을 마시고 소시지를 씹는 김을 쳐다보곤 했다. 다행히 개들은 행인을 향해 짖진 않았다. 김은 그때마다 과자를 던져 주곤 개들의 머리를 손으로 쓰다듬어 주었다.
멧돼지 잡는 사냥개죠?
옛날에 전방에서 근무할 때 봤는데 엄청 비싸다면서요?
개 한 마리 값이 아파트 한 채란 얘길 들었어.
설마! 아저씨, 정말 그렇게 비싸요?
김은 대답하지 않고 맥주만 꿀꺽꿀꺽 들이켰다. 행인들이 가던 길을 가자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들고 인터넷에 검색어를 띄웠다. 셰퍼드 가격, 이라고. 김이 첫 번째 창을 열기도 전에 구의 문자메시지가 화면에서 깜박거렸다.
대낮에 개들이랑 길바닥에서 술이나 처마시고 있다고? 나 지금 여행 떠나니까 개들이랑 잘살아! 그리고 연락하지 마.
갑자기 웬 여행?

여기서 맥주 마시는 걸 대체 어떻게 알았을까. 김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남은 맥주를 모두 비웠지만 구의 답장은 오지 않았다. 아무래도 구의 지인이 우연히 자동차를 타고 지나가다 김을 보곤 알려준 게 분명했다. 할 수 없이 김은 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구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김은 서둘러 문자를 보냈다.
개들이랑 산을 넘었더니 너무 더워서 목 축이는 거야. 이제 집으로 곧장 갈 거야.
여행하는 동안 휴대폰 전원도 꺼놓을 거야. 이게 마지막이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김은 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구의 휴대폰은 전원이 꺼져 있었다. 서둘러 자리를 정리한 김은 셰퍼드 두 마리를 끌고 다시 길을 나섰다.
김이 아는 구는 벌써 터미널에 도착해 버스를 기다리거나 아니면 잠시 후 떠날 버스에 타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김이 편의점 앞에서 개들을 데리고 술을 처마셔서 갑자기 여행을 떠나는 게 아니라 친구 놈에게 빌려준 돈을 못 받았다는 사실을 안 순간부터 이미 여행이 아니라 집을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음이 분명했다. 그동안 부대끼며 살아온 정이 있어 집을 떠나기 전 통보 문자를 그나마 보낸 거였다. 김은 무거운 가마니 같은 셰퍼드 두 마리를 끌고 터미널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구의 성격으로 볼 때 여행을 떠나는 걸 막을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배웅이라도 해야 될 것 같았기에. 터미널을 향해 얼마 뛰지도 않았는데 김의 온몸은 금세 땀으로 범벅이 되었다. 얼굴은 방금 전에 마신 맥주 덕분에 벌겋게 달아올랐고 이마에서 흘러내리는 땀이 눈으로 들어와 시야를 가려 자주 손등으로 닦아내야만 했다. 혓바닥을 한껏 늘어뜨린 채 뒤따라오는 셰퍼드 두 마리의 숨소리도 가히 무더위의 절정에서만 들을 수 있는 소리였다. 구는 이 무더위에 어디로 떠나려는 걸까…… 아무리 화가 났더라도 마주 앉아 얘기 정도는 하고 떠나야 하는 게 아닌가……. 김은 결국 뜀박질을 멈추고 뒤에서 따라오는 개들보다 더 헉헉거리며 터미널을 향해 터덜터덜 걸음을 옮겼다.
“미안해!”
터미널을 나와 도로로 접어든 시외버스의 차창을 향해 김은 한 손으로 배를 움켜잡은 채 소리쳤다. 두 마리 셰퍼드를 뒤에 세운 채. 그런 김의 모습을 차창 너머의 구는 동요 없이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했는데 버스는 이내 부릉거리며 사라졌다. 마치 막장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지글지글 타오르는 태양은 김과 셰퍼드의 머리 위에서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을 건너가고 있었고. 구가 탄 버스는 서울 가는 버스였다.
“개 팔러 나왔소?”
터미널 옆 슈퍼의 평상에 앉아 빙과를 핥고 있는 김에게 슬그머니 다가온 트럭의 운전석에 앉은 늙수그레한 사내가 물었다. 선글라스를 쓰고 있어 어떤 눈빛으로 보고 있는지 김은 알 수 없었다. 트럭의 짐칸에는 쇠로 만든 개집이 이층으로 여러 개 실려 있었고 그 안에는 몇 마리 개가 갇힌 채 힘없이 헉헉거리고 있었다. 평상 앞에 앉아 김이 부어 준 물을 할짝거리며 먹고 있던 셰퍼드들이 사내를 향해 송곳니를 드러낸 채 낮게 으르렁거렸다. 사람을 향해 으르렁거리는 건 처음이었다. 김은 평상의 다리에 묶어 놓은 리드 줄을 잡고서 회초리로 개들을 진정시켰다. 운전석의 사내는 별일 아니라는 듯 싱글싱글 웃었다. 김은 팥이 섞인 액이 뚝뚝 떨어지는 빙과를 한 번 빤 뒤 사내에게 물었다.
“얼마 줄 건데요?”
“보자…… 요즘 개 값이 똥값인데, 그래도 덩치가 송아지만 하니…… 마리당 삼십만 원이면 되겠네. 말복이 얼마 안 남아서 후하게 쳐주는 거야.”
김은 여전히 경계의 표정을 풀고 있지 않은 두 마리의 셰퍼드를 돌아보았다. 검은 털로 뒤덮인 입이 금방이라도 쩍 열리고 사내를 향해 튀어나갈 것만 같았다. 김은 개들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적당한 가격인가? 느그들 생각은 어때?”
수컷 셰퍼드가 기다렸다는 듯이 사내를 향해 사납게 짖었다. 암컷도 이어서 날카로운 송곳니 두 개를 드러냈다. 김은 개들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짖지 못하게 만들었다.
“얘들이 말도 안 된다며 흥분한 것 같은데요…… 제가 생각해도 그렇고.”
“야, 요놈들, 똥개 주제에 성깔 있네! 알았어, 십만 원 더 얹어 줄게. 합해서 칠십만 원!”
“똥개가 아니라 독일산 셰퍼듭니다.”
“쎄퍼트? 군대에서 기르는 개?”
사내는 선글라스를 벗고 김의 옆에 서 있는 개들을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개장수가 셰퍼드를 몰라본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김은 남은 빙과를 모두 먹고 나무막대를 쪽쪽 빨았다. 구가 어디쯤 가고 있을까를 생각하며. 김은 구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구의 휴대폰은 여전히 전원이 꺼져 있었다.
“……쎄퍼트 고기는 어떤 맛일까? 비싼 개니 당연히 입에서 살살 녹겠지.”
“저도 먹어 본 적이 없습니다.”
김은 리드 줄을 풀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또 어디론가 가야만 했다. 그곳이 어디인지 떠오르지 않았지만…….
“근데 이렇게 무더운 날 송아지만 한 개들은 왜 끌고 다니는 거요?”
“와이프가 집 나가서 찾아다니는 중입니다. 개가 냄새 하난 잘 맡잖아요.”
“……개고생 하시는구만.”
“집 나간 사람이 개고생이지요.”
건물의 그늘이 내려앉은 곳만 골라 김은 개들과 함께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버스에 몸을 실은 구는 이제 강원도의 경계를 벗어나 경기도로 접어들고 있을 시간이었다. 구의 여행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충분히 그럴 수 있었다. 그럼에도 김은 조금 섭섭했다. 구와 함께 사는 내내 김이 사납고 힘 센 셰퍼드를 끌고 다닌 건 아니었기 때문이다. 작정했거나 작정하진 않았지만 어찌할 수 없는 운명의 힘에 눌려 어느 날부터 줄곧 셰퍼드에 끌려 다닌 것 또한 아니었다. 어느 경우이건 이런 일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리고 이 일이 구와 김의 생활을 파탄에 이르게 할 정도의 강진도 아니었다. 함께 준비했던 여행이 무산되고 그 자리에 검은 주둥이를 가진 셰퍼드 두 마리가 들어와 앉은 것뿐이었다. 여행은 언제든지 다시 준비하면 되었다. 셰퍼드는 적당한 주인을 찾아서 제값에 넘기면 되는 일이었다. 그런데 집을 떠나다니. 사는 동안 이 정도 일은 누구에게나 벌어질 수 있었다. 물론 기분이 좋지는 않겠지만. 김 역시 기분이 좋은 게 아니었다. 동창회 자리에서 돈 자랑을 하는 동창 녀석에게 약이 올라 하지 않아도 될 여행 이야기를 주절주절 떠벌린 게 이번 일의 발단이었다. 그 결과 김은 무더운 여름날 셰퍼드 두 마리를 끌고 걸어서 집으로 돌아가는 신세가 되었다. 그것도 모자라 구까지 집을 떠나게 되고. 하지만 김은 여전히 구에게 섭섭한 마음을 지울 수 없었다. 이왕 벌어진 일, 한껏 쪼그라든 자신을 구가 너그럽게 받아 줬다면 아마 평생 고마운 마음으로 구를 대할 게 분명했다. 그런데 얼굴도 보지 않고 불쑥 집을 떠나다니……. 김은 슬슬 치밀어 오르는 뜨거운 화를 대신 풀 방법을 찾아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아무도 없는 집에 들어가기 싫었다.
“개장사하냐?”
“……오늘 개업했다.”
“개소리 그만 하고 들어와 술이나 마셔라.”
“대낮부터 웬 술이냐?”
“니가 뜬금없이 셰퍼드 두 마리 끌고 다니는 거랑 같은 이유다.”
“……넌 어떤 개를 받았냐?”
“그 개자식이 니한테만 개를 주고 아까 잡혀갔다.”
“……난 이 개 때문에 열 받은 와이프가 집 나갔다.”
“개판이구나. 나는 아직 말도 못 꺼냈다.”
번철에서 구워지는 두부를 안주로 김은 박(朴)과 마주 앉아 막걸리를 비웠다. 셰퍼드 두 마리는 두부구이집 처마 아래에 묶어 놓고서. 김과 박이 주고받는 얘기야 빤했다. 평소 자주 만나는 사이도 아니었기에 공통의 관심사는 부도를 낸 친구 놈과 개 사업에 대한 개소리가 거의 대부분이었다. 더위에 지쳐 있던 김의 몸과 마음은 막걸리에 빠르게 젖어들었다. 김은 가끔 휴대폰을 꺼내 구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전원은 여전히 꺼져 있었다. 집을 떠난 구가 어디로 갈지 턱을 손에 괴고 눈을 감은 채 이리저리 헤아려 보던 김은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어 눈을 떴다. 혼자서 세계여행을 떠나는 건 아니겠지…… 설마…… 아니, 구의 성격이라면 능히 그럴 수 있을 것 같았다. 김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건너편에 앉은 박은 탁자에 팔베개를 하고 얼굴을 파묻은 채 잠들어 있었다. 김은 계산을 하고 슬그머니 밖으로 나와 묶어 놓은 리드 줄을 푸느라 한참 진땀을 흘렸다. 셰퍼드들은 그런 김에게 다가와 혀를 늘어뜨린 채 헉헉거리고.
오후 네 시가 지났는데도 폭염의 열기는 시들지 않았다. 김은 개처럼 혀를 내민 채 장거리를 허적허적 걸었다. 뱃속으로 들어간 막걸리가 더위에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것만 같았다. 마치 사막을 걷고 있는 기분이었다. 김은 뜨끈 달아오른 머리를 식히려고 밀짚모자를 사서 썼다. 장거리를 빠져나와 좁은 골목으로 접어들었다. 골목을 빠져나오니 속칭 방석집들이 모여 있는 거리였다. 대부분 유리문이 닫혀 있었는데 한 집만 반쯤 문이 열려 있었다. 김은 거의 팬티나 다름없는 반바지를 입은 채 의자에 앉아 담배를 피우는 젊은 여자와 눈이 마주치자 걸음을 멈췄다. 여자는 김보다 김이 끌고 가는 셰퍼드에 눈길을 줬다. 셰퍼드도 여자를 힐끔 바라보았다. 갑자기 여자가 코와 입으로 담배 연기를 토해 내며 깔깔거렸다. 김은 여자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곳으로 시선을 옮겼다. 수컷 셰퍼드는 벌건 성기를 밖으로 내놓고 있었다. 김은 서둘러 개를 끌고 그 자리를 벗어났다. 방석집 거리와 이어지는 건 오수가 흐르는 개천이었다. 개천 옆으로 도로가 있고 반대편엔 자잘한 가게들과 낡은 민가들이 줄지어 자리하고 있었다. 미용실에 앉아 하품을 하던 미용사가 유리창에 얼굴을 바짝 붙인 채 김과 셰퍼드를 눈으로 훑었다. 그 옆 구멍가게의 아주머니도 마찬가지였다. 그러고 보니 손님도 없는 더운 여름날, 김이 지나쳐 온 가게의 주인들은 모두 비슷한 방식으로 김과 셰퍼드를 훔쳐보고 있었다는 걸 비로소 눈치 챘다. 김은 어쩔 수 없이 흐느적거리는 걸음을 바로잡고 개들을 다그쳤다. 어서 빨리 시내를 통과해야만 했다. 땀이 비 오듯 흘러내리고 술기운은 더더욱 몽롱하게 피어올라 마치 지상에서 한 뼘쯤 떠서 걷는 것만 같았다. 누군가 지금이 꿈속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살아오는 동안 김은 꽤 여러 번 개꿈을 꾸었다. 개를 선물 받는 꿈, 개에게 물리는 꿈, 사나운 개에게 쫓기는 꿈, 개를 잡아먹는 꿈, 개가 짖는 꿈, 한겨울날 물에 빠져 젖은 개가 떨고 있는 꿈…… 그중엔 지금처럼 개를 어딘가로 끌고 가는 꿈 또한 있었다. 차라리 이게 꿈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비로소 들었다. 시내를 벗어나자 뒤에서 따라오는 개들의 행동이 조금 산만해졌다. 그때마다 김은 리드 줄을 당겨야 했기 때문에 힘이 들었다. 한 마리는 오른쪽으로 가려 하고 다른 한 마리는 왼쪽으로 가려 했다. 김은 그 가운데에서 줄을 잡은 손에 힘을 준 채 회초리를 휘둘렀다. 회초리에 맞는 게 적응이 됐는지, 아니면 반항을 하는 것인지 개들은 점점 더 고집을 부렸다. 정말이지 염천에 아주 무거운 가마니 두 포대를 끙끙거리며 끌고 가는 듯했다. 어차피 구마저 집을 떠났는데 셰퍼드들을 저희들 가고 싶은 데로 가게 풀어 주고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하지만 그럴 수도 없었다. 풀어 놓은 셰퍼드 두 마리가 어떤 짓을 할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미 시내를 통과해서 볼 사람은 다 보았는데 내 개가 아니고 개 목장을 운영하다 부도난 친구 놈의 개라고 말한다면 믿어 줄까. 대체 이게 무슨 개고생이란 말인가. 빌려준 돈은 허공으로 날아가고, 구는 집을 나가고, 말도 잘 듣지 않는 개를 데리고 폭염 속을 걸어가고 있다니. 차라리 아까 만난 개장수에게 고기값만 받고 팔아버리는 게 나은 일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뒤늦게 했다. 김은 담배를 뻑뻑 빨며 말을 듣지 않는 개들을 향해 회초리를 휘둘렀다. 하지만 회초리의 효과는 그때뿐이었다. 몇 걸음 걷지 않아 다시 똑같은 짓을 반복했다. 이상하게 집으로 가는 길도 점점 더 험해졌다. 한쪽은 까마득한 벼랑이어서 다리가 후들거리고 돌멩이를 밟아 균형이 틀어지면 오줌이 찔끔찔끔 새어 나왔다. 그런데도 셰퍼드 두 마리는 그 좁은 벼랑 옆에서 저희들끼리 싸우느라 정신이 없었다. 김은 두 마리 셰퍼드를 서로 다른 나무에 묶어 놓고 그 사이에 주저앉아 중얼거렸다. 이 길이 정말 집으로 가는 길이야? 내가 뭘 잘못했기에 이런 고통을 겪어야 되는 거지? 하지만 그 벼랑길에서 김의 중얼거림에 대답을 해주는 이는 당연히 아무도 없었다. 김은 휴대폰을 꺼내 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원이 꺼져 있다는 구의 휴대폰으로 땀에 젖어 끈적거리는 구조 요청의 목소리를 몇 번이나 반복했다. 그러다 지쳐 나무에 기대 깜박 잠들었다.
“집이다!”
산 중턱의 바위에 올라간 김은 저 편 언덕 위 과일나무들에 둘러싸여 있는 집을 보고 소리쳤다. 비록 구가 없는 집이지만 어쨌든 집을 찾았다는 게 반가웠다. 어떻게 해서 집으로 가는 길을 잃고 다른 길로 접어들었는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산속을 헤매다 집을 찾았다는 게 중요했다. 김은 셰퍼드의 엉덩이를 두 손으로 밀며 험한 산길을 헤쳐 나갔다. 바위가 많은 산길이라 혼자 걷는 것도 힘든데 말도 잘 듣지 않는 셰퍼드 두 마리를 밀고 당기는 일은 고역 중의 고역이었다. 산을 올라가는 것만 힘든 줄 알았는데 내려가는 게 더 힘들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겁을 먹고 건너편 바위로 건너뛰지 않으려 하는 셰퍼드를 때리고 달래고 끌고 밀어서 겨우 건너가면 또 다른 바위가 그 아래에 자리 잡고 있었으니……. 김은 이해할 수 없었다. 어떻게 매일 드나드는 길을 잃어버리고 험한 산길로 접어들었는지 납득이 가지 않았다. 아무리 셰퍼드 두 마리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고는 해도. 김은 두 마리의 셰퍼드와 함께 바위 위에 앉아 저 아래 골짜기의 자그마한 언덕 위에 자리한 집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그토록 맹렬하게 타올랐던 해는 조금씩 산을 넘어가고 있었다. 김의 바지주머니에 있던 휴대폰이 베트 미들러의 노래 ‘더 로즈’를 흘려보내기 시작한 것은 그때였다.
“어디야?”
“집 근처.”
“개는?”
“옆에 있어.”
“용케 집 근처까지 갔네.”
“……좀 힘들었어. 아직 좀 더 가야 하고. 당신은 어디야?”
“응, 인천공항.”
“먼 데 가려는 모양이네.”
“응, 마침 티켓이 있어서. 이참에 바람 한번 쐬려고.”
“그래. 잘 다녀와.”
“개 사납지 않아? 말 잘 들어?”
“……뭐, 길들이고 있는 중이야.”
“시간 다 됐네. 이제 그만 끊어야겠다. 참, 당신 피우는 담배가 뭐지?”
“라크.”
“나크?”
“라크. 엘, 에이, 알, 케이. 종달새.”
“알았어. 나 없는 동안 개들이랑 잘 지내.”
“어디로 가는데?”
김이 물었지만 구의 전화는 이미 끊어진 뒤였다. 김은 셰퍼드 두 마리와 함께 바위 위에서 일어났다. 일요일 오후가 거의 다 지나가고 있었다. ■











김도연
작가소개 / 김도연

강원도 평창 출생.
《강원일보》, 《경인일보》 신춘문예 당선. 2000년 중앙신인문학상.
소설집 『콩 이야기』, 『이별전후사의 재인식』, 『십오야월』, 『0시의 부에노스아이레스』, 장편소설 『마지막 정육점』, 『소와 함께 여행하는 법』, 『삼십 년 뒤에 쓰는 반성문』, 『마가리 극장』, 산문집 『강릉 바다』 등이 있음.


《문장웹진 2020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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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마음 없이

좋아하는 마음 없이 김지연 안지는 이른 결혼을 했는데 실패로 끝났다. 아니, 그걸 실패라고 할 수 있을까? 이혼을 한 건 사실이었지만 안지는 자신의 인생 여정에서 그때 이혼한 일을 실패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 뒤로 더 행복해졌다고 할 수는 없을지언정 조금 더 자기 자신에 가까운 삶을 살게 된 것은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혼이라는 단어를 떠올릴 때면 늘 그에 대해 변호하고 싶은 여러 말들이 떠오르곤 했기 때문에 처음부터 결혼 같은 건 하지 않는 편이 더 나았을 거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 때문에 이혼했다는 사실은 안지의 비밀은 아니었지만 먼저 나서서 밝히지도 않았다. 어릴 때 안지는 무척 전형적인 사람이 되고 싶었다. 구체적으로 그런 표현을 떠올리지는 않았다. 그저 자신이 속해야 하는 집단에서 튀지 않는 사람, 아주 평균적인 사람이고 싶었고 그런 사람이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을 했다. 찬반투표를 할 때면 눈치를 보다가 다수의 의견에 따라 슬그머니 손을 들었다. 친구가 좋아하는 가수를 따라서 좋아하고 친구의 것과 비슷한 브랜드의 신발을 사서 신었다. 친구들이 싫어하는 선생을 따라서 싫어했다. 사실 안지는 그 선생에게 남몰래 호감을 갖고 있었지만 친구들과 함께 떡볶이를 먹다가 술술 흘러나온 그 선생에 대한 욕을 듣고 재빨리 노선을 바꿔 함께 욕을 했다. 한동안 안지는 수학 시간마다 왜 애들은 저 선생을 싫어할까? 에 대한 답을 알고 싶어서 더 열심히 선생의 행동거지를 살폈다. 수학을 가르친다는 점만 빼면 딱히 나무랄 데 없는 사람이었다. 학생이 쉽게 답할 수 없는 내용을 골리듯 물어보지 않았고 무엇보다 학생들한테 사과를 할 줄 알았다. 뭔가 잘못 알고 섣불리 화를 냈을 때, 그러다 결국 진실을 알게 되었을 때, 다른 선생들은 그러게 헷갈릴 만한 짓을 왜 하고 다니느냐고 도리어 짜증을 부렸는데 그 선생은 재빨리 미안하다고 말했다. 미안하다. 내가 잘못 알았어. 미안해. 가끔 안지는 머릿속으로 그 목소리를 재생해 보곤 했다. 그 때문에 선생이 더 좋아졌지만 여전히 싫어하기 위해 애썼다. 누구나 다 그런 식으로 청소년기를 보내지 않나? 내가 아닌 사람이 되어 보려고 노력하면서? 안지는 대학에 갔고 연애를 했고 졸업을 했고 취직을 했다. 결혼도 했다. 아주 평균적인 삶이었다. 조금씩 빠르기도 했다. 조바심이 나 있었으므로. 자신도 남들처럼 지극히 평범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을 빨리 증명해 보이고 싶었으므로. 어느 정도 성공적인 것 같기도 했다. 남편이 바람이 나기 전까지는 그랬다. 식도 올리기 전 임신을 해 낳은 아이가 막 돌을 지난 참이었다. 임신이 아니었으면 결혼까지는 이어지지 않았을지도 몰랐다. 남편은 계속 후회하는 것 같았다. 그때 낙태를 밀어붙이지 않은 것을, 시간을 끌다가 영영 타이밍을 놓쳐버리고 만 것을, 어떤 결단력을 가지지 못한 자신을 자책했을지도 모른다. 그때 뼈저리게 깨달은 바가 있었는지 새로운 여자가 생겼을 때는 안지가 알아차리기도 전에 이혼을 해달라고 요구했다. 겨우 육 개월을 만났을 뿐

  • 관리자
  • 2024-07-01
소금 샹들리에

소금 샹들리에 정한아 호주에 사는 김이 오랜만에 귀국해서 친구들이 다 같이 모이기로 했다. 4명이 만나는 건 대략 7년여 만이었다. 방을 잡고 밤새 보자고 해서 오기 직전까지 망설였는데, 남편이 등을 밀었다. 정민이와 자신에게도 내가 없는 날이 필요하다고 큰소리를 치더니 정말 밤새 전화 한 통 없었다. 친구들과는 대학 동기였다. 전공은 문예 창작이었는데, 나는 2학년까지 다니고 학교를 그만뒀다. 그렇지만 정작 작가가 된 사람은 나뿐이라고 친구들이 투덜거렸다. 나는 작가가 아니라고 아무리 말해도 소용없었다. 그들은 십 수 년 전 내가 낸 단 한 권의 책을 기억하는 몇 안 되는 사람들이었다. 세 명 모두 미혼이었고, 아이를 가지지 않았다. 놀라울 정도로 예전 그대로인 친구들 사이에서 나만 철 지난 옷차림에 좀처럼 대화에도 섞이지 못했지만, 그런 것 때문에 마음이 상하지는 않았다. 오랜만의 서울 나들이에 술자리도 즐거웠다. 좋은 친구들이었다. 7년 전 정민이 자폐 스펙트럼 장애 판정을 받았을 때 그들은 자신의 일처럼 울어 줬고, 이후에도 종종 아이의 간식과 선물을 집으로 보내 줬다. 서서히 연락을 거둔 것은 내 쪽이었다. 애써 관계를 유지하는 일이 힘에 부쳤을 뿐, 그들에게 섭섭한 마음은 조금도 없었다. 지난 몇 년 동안 나는 집이 아닌 곳에서 밤을 보낸 적이 없었다. 다들 술에 취해서 침대로 간 뒤에도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아 휴대폰만 들여다보았다. cctv 속 거실은 엉망이었다. 엎어진 식판, 사방에 흩어진 블록 조각, 길게 늘어진 옷가지들. 남편은 불도 끄지 않고 아이를 재우러 방에 들어간 모양이었다. 나는 정지화면 같은 그 풍경을 한참 바라보다가 해 뜰 무렵에야 겨우 잠이 들었다. 다음날 우리는 점심을 먹고 헤어지기로 했다. 맛집마다 대기가 길어 종로의 좁은 골목을 돌고 또 돌았다. 앞장서 구글 맵을 보며 걷던 김이 갑자기 작은 서점 앞에서 멈춰 서더니 책을 사야겠다고 말했다. 지난 이사 때 내 책을 분실했다는 것이었다. 나는 집에 돌아가서 책을 다시 보내 주겠다고 김을 달랬다. 다섯 평도 안 되어 보이는 그 작은 서점에 내 책이 있을 리는 만무했기 때문이다. 김은 막무가내로 서점에 들어갔다. 할 수 없이 그녀를 따라 들어갔다가 전면 책장에 전시된 내 책을 발견했다. 죽은 친구를 만났다고 해도 그처럼 놀라지는 않았을 것이다. “미애 씨!” 그곳에서 누군가 나를 불렀다. 우아한 노부인이었다. 린넨 바지에 화이트 셔츠, 큼지막한 호른 목걸이를 한 여자는 환하게 웃으면서 나를 바라봤다. “반장님?” 나는 말끝을 흐리며 물었다. 여자는 성큼성큼 내 앞에 다가와서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나를 와락 끌어안았다. 누군가 나를 그렇게 안은 것이 너무 오랜만이라 온몸에 힘이 풀리는 것 같았다. 그녀는 오래전 나와 함께 공부했던 문우였다. H 백화점 문화센터 소설 창작 교실의 반장. 친구들이 책을 구경하는 사이 나는 그녀와 짧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ldqu

  • 관리자
  • 2024-07-01
그동안의 정의

그동안의 정의 최예솔 작정하고 사라진 사람은 작정하고 찾아야만 한다. 나는 윤정수를 작정하고 찾지 않았다. 보통의 남매 사이라는 게 정확히 어떤 건지는 모르겠지만 윤정수와 나를 그냥 보통 남매, 라고 하기에는 좀 어렵지 않을까. 윤정수는 나보다 4년 먼저 태어났다. 그리 적지도, 그리 많지도 않은 애매한 나이 차이 덕분에 윤정수와 나는 딱히 친해지지 못했다.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윤정수는 중학교에 갔고, 내가 중학생이 되었을 때 윤정수는 고등학교에 갔다. 물론 윤정수와 내가 영 친해지지 못한 건 우리의 나이 차이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윤정수는 내게 없는 사람에 가까웠다. 말수도 없고 센스도 없고 자존심도 없고 공부머리도 없고 돈도 없고······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나? 아무튼 남매 사이에 정이라도 있었다면 걱정이라도 했을 텐데 그럴 이유조차 없었다. 쥐뿔도 없는 윤정수니까. 특이사항이라곤 개그맨 윤정수와 동명이인이라는 것 정도밖에 없는. 그러니 윤정수가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집을 나갔다고 해도 이상할 것 하나 없었지. 뭐 내가 찾는다고 윤정수가 나타났을 거라는 보장도 없지만 나는 막연히, 어련히 때 되면 나타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했다. 하지만 윤정수는 죽을 때까지 나타나지 않았다. 물론 내가 죽은 것은 아니다. 윤정수가 죽었다. 내 나이가 이제 서른이니까, 윤정수는 서른넷에 죽었다. 이제 내게 남은 혈육은 없다······ 아닌가? 고모. 그렇게 부르지 마. 왜요. 낯설어. 저도 고모가 낯설어요. 윤현수는 맹랑하다. 윤정수와 장현아의 딸이라고 해서 윤현수. 그거 좀 유치하지 않니? 물었을 때 윤현수는 뭐 어때요 엄마아빠말곤 모르는데, 하고 대답했다. 이제 나도 아는데? 하니까 이젠 고모도 모르는 척해 달라고 했다. 참 나 어디서 이런 게 굴러왔는지. 현수야. 네. 네 엄마 입국 날이 언제라고 했지? 다음 주 토요일이요. 아직 한참 남았네. 고모도 고모 할일을 해요. 시간 금방 갈걸요. 알겠다 그래. 윤현수를 데리고 온 사람은 장현아다. 이제는 나흘쯤 됐으려나. 아침부터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하도 시끄러워서 나가 봤더니 장현아가 윤현수의 손을 붙잡고 서 있었다. 장현아는 다짜고짜 윤정수를 아느냐고 물었고 나는 오랜만에 듣는 윤정수의 이름에 잠깐 벙쪘다가 네, 저희 오빠네요, 하고 대답했다. 조카입니다. 그날 장현아의 대사를 나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그건 도저히 내가 아는 사람이 뱉을 만한 말이 아니어서 대사라고밖에는 표현할 수 없겠다. 아직도 문득 의심스러울 때가 있다. 윤현수가 정말 나의 조카가 맞고 장현아가 정말 나의 새언니가 맞을까. 가족관계라는 게 그렇게 단순하게 정리되는 거라면 이제까지 윤정수와 나는, 또 윤정수와 나와 우리의 부모는, 왜 이렇게 흩어지거나 죽거나 혼자 남을

  • 관리자
  • 2024-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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