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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끼돼지

  • 작성일 2020-01-01
  • 조회수 8,408

[단편소설]



새끼돼지



장진영




나는 살면서 호아를 단 한 번 보았다. 그때 나는 고등학생이었고, 호아는 눈부시게 비참한 웨딩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마을회관에서 조촐히 치러진 결혼식이었다. 호아는 더운 나라에서 왔고 나와 같은 나이였다. 배 속에는 하엘이 있었다. 어른들이 나를 새 신부 앞으로 떠밀었을 때 호아는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예브다, 예브다, 하고 내 몸을 만지며 탄성을 터뜨렸다. 나는 교복 치마를 움켜쥔 채 입을 꾹 다물었다. 그때 나를 수치스럽게 한 게 호아의 피부색이었는지 어린 나이와 천진난만함이었는지 배 속의 아기였는지 타인에 스스럼없는 태도였는지 나는 여전히 알지 못한다.
순철 오빠는 형광에 가까울 정도로 피부가 하얬다. 비만한 체형이 피부색을 더욱 부각시켰다. 사진기사가 노출을 맞추느라 애를 먹었던 기억이 난다. 검은 턱시도를 입은 흰 남자와 흰 드레스를 입은 검은 여자. 둘은 잘 어울렸다. 순철 오빠의 발음이 아내인 호아만큼이나 어눌하다는 것도 하나의 증거처럼 느껴졌다. 나는 순철 오빠가 고모의 아들이라는 걸 그 결혼식에서 처음 알게 되었다. 순철 오빠가 고모와 함께 있는 모습을 전에는 본 적이 없었다. 내 기억 속 순철 오빠는 누구의 아들이 아니라 그냥 '순철 오빠'였다. 순철 오빠는 나이가 많기도 했지만 많아 보이기도 했다. 고모와 비슷한 연배로 보일 정도였다. 명절이나 집안 행사 자리에서 마주칠 때면 나는 존댓말을 쓰지 않기 위해 항상 말끝을 흐리곤 했었다. 턱과 목 사이에 자리 잡은, 인두에 덴 듯한 흉터를 보지 않으려 노력하면서.
나는 본가에 내려갈 때마다 하엘의 성장을 매번 놀라며 확인했다. 나는 첫 조카인 하엘에게 어떤 애틋함도 느끼지 못했다. 나와 무관한 생명체라고 느껴졌다. 피부색은 아빠, 이목구비는 엄마를 닮은 생김새가 이질적이어서였을까. 어쩌면 우리는 서로에게 쑥스러웠는지도 모른다. 부부는 언제나 각자의 이유로 부재중이었다. 호아는 여기저기 마실 다니느라 바빴고 순철 오빠는 전국의 축제와 행사장을 돌아다니며 싸구려 플라스틱 장난감이나 색소가 든 달아빠진 불량식품을 팔았다. 호아는 늘 누군가의 수화기 너머에서 쩌렁쩌렁 울리는 화사한 목소리로 자신의 존재를 알렸다. 순철 오빠는 유순하고 주눅 든 대형견 같은 모습으로 가끔씩 모습을 드러냈다.
호아가 내게 전화를 걸어왔을 때는 그 결혼식으로부터 십 년이 더 넘게 지난 시점이었다. 그때 우리 식구들은 이미 고모네 일가와 인연을 끊은 뒤였다. 호아는 남편과 아들을 데리고 베트남으로 떠날 계획을 세웠다고 말했다. 부자의 체류 문제를 알아보러 자기가 먼저 친정에 들를 예정이라고 했다. 호아는 내게 그간 겪은 고초를 토로했다. 우리가 고모네와 절연한 이유와 대부분 일치했다.
고모의 딸이자 순철 오빠의 여동생인 정아 언니는 목회자와 결혼했다. 사촌형부는 가슴이 단단하고 자신만만하고 능글거리고 목청 좋은 사기꾼 스타일의 남자였다. 사촌형부는 시 변두리 논두렁에 좀 뚱딴지같은 교회를 지었다. 정아 언니와 사촌형부는 내 할머니를 모시고 살았는데, 사실상 인질이나 다름없었다. 할머니의 연금 통장이 그들 수중에 있었던 건 차치하고, 그 교회의 독실한 신자가 되는 조건하에서만 우리는 할머니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대충 노래를 따라 부르고 기도하는 척하는 것만으로는 안 되었다. 다른 신자를 데려오는 것으로, 헌금과 십일조를 내는 것으로 독실함을 증명해야 했다. 고모는 오랜 세월 운영해 온 춘향주단을 접은 뒤 그 교회에서 집사라는 직함의 식모가 되었다. 목사님, 목사님, 하며 사위의 뒤치다꺼리를 하고 다녔다. 사촌형부가 할머니와 고모에게 세뇌한 바에 의하면 우리는 영이 맑지 않은 불한당이었다. 할머니가 연로한 뒤 병구완이 어려워지고 전도마저 요원해지자 사촌형부는 할머니를 미련 없이 내쫓았다. 할머니 장례식 때 내외는 물론 고모조차도 얼굴을 비치지 않았다. 딸기를 사흘 안에 교배시켜야 한다는 게 이유였다. 화분과 붓을 장례식장까지 싸 들고 올 수는 없었다.
순철 오빠와 호아는 사정상 하엘을 그 집에 맡길 때가 잦았으나 신앙에는 저항해 사촌형부의 심기를 거슬렀다. 사촌형부는 보복으로 순철 오빠의 장애인 신분을 박탈하는 수를 썼다. 순철 오빠 앞으로 더는 장애인연금이 나오지 못하게 되었다. 순철 오빠는 물러터진 사람이었고, 사촌형부는 순철 오빠가 다른 지방에 간 사이 그 사건에 저항하는 호아를 때렸다. 사촌형부는 정아 언니를 때리지 않았다. 사촌형부는 호아만 때렸다. 고모는 사위가 며느리에게 행하는 폭력을 수수방관했다. 나는 순철 오빠가 그 일을 알고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순철 오빠는 사촌형부로부터 아내를 지키지 못했다. 감히 대들지 못했다. 대들 수 있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호아가 문제 삼은 건 폭력이 아니라 돈이었다. 장애인연금은 부부의 거의 유일한 수입이었다. 호아는 더 이상 한국에 있을 이유가 없었다.
"잠시만 하엘이를 돌봐줘." 호아가 유창한 한국어로 말했다.


나는 남편과 상의해 보겠다고 한 다음 전화를 끊었다. 하엘을 맡을 생각은 당연히 없었다. 며칠 뒤 남편이 호아 얘기를 꺼낸 건 놀라운 일이었다. 그때까지 남편은 호아의 존재를 몰랐다. 어떤 경로로 남편에게까지 얘기가 흘러 들어갔는지는 모르겠다. 남편은 어쩐지 나를 비정한 여자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만약 호아가 한국 사람이었어도 그가 이렇게 사람 좋게 굴었을지 나는 확신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 남편이 호아를 지칭하는 방식이 내 기분을 상하게 했다. 호아가, 호아는.
우리는 하엘을 고속터미널에서 픽업했다. 마지막으로 보았을 때 하엘은 지금 내 딸과 비슷한 연령의 어린아이였다. 계산이 틀리지 않는다면 하엘은 이제 중학교 삼학년 나이였다. 그만큼 시간이 많이 흘렀다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하엘이 원통 모양의 스포츠백을 어깨에 둘러메고 버스에서 내렸을 때, 그 나이대 남자애의 모습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았음에도, 나는 하엘이 조로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그 불협화음 같은 외모가 아니었더라면 아마도 알아보지 못했을 것이다. 하엘은 무뚝뚝한 표정 아래에서 약간 어리둥절해했다.
하엘은 짐을 부린 뒤 제 엄마와 짧은 통화를 했다. 주로 호아가 말하고 하엘이 듣는 쪽이었다. 저편에 있는 호아의 목소리가 더 크게 들렸다. 하엘은 통화에 집중하지 못했다. 나는 하엘의 신경이 온통 우리에게 쏠려 있다는 걸 감지했다. 하엘은 사촌형부 내외의 자식들과 함께 자라며 오랜 세월 눈칫밥을 먹은 것 같았다. 누군가의 미움을 사지 않기 위해 아예 제 존재감을 지운다는 인상이었다. 하엘은 언제든 상대가 원하는 상에 자신을 맞출 태세가 되어 있었다. 하엘은 애쓰지 않았다. 그 성격은 하엘에게 체화되어 있었다.
남편과 하엘은 죽이 잘 맞았다. 남편이 줄곧 아들을 원해 왔다는 걸 나는 모르지 않았다. 하엘이 야구를 하고 있다는 사실도 둘의 관계를 돈독하게 했다. 그들은 두산베어스의 오랜 팬이었다. 둘의 대화를 엿들으면서 알게 된 바에 의하면 하엘은 프로 지명이 예비 된 전도유망한 좌완투수였다. 하엘의 인생에 유일한 근심거리는 제구력이 떨어진다는 것이었고, 남편은 그 문제에 대해 그럴듯한 조언을 해주었다. 내가 알기로 남편은 공 한 번 쥐어 본 적 없고 방망이 한 번 휘둘러 본 적 없는 안경잡이였다.
내 딸은 하엘이 왕자님이라는 착각을 했다. 동화 속에서 나온 것처럼 새하얀 피부와 이국적인 이목구비 때문이었다. 하엘이 자신에게 체화된 성격을 발휘해 왕자님이 되어 주자 수빈은 자지러지게 기뻐했다. 수빈은 애정의 증표로 엄마보다는 순위가 낮지만 아빠보다는 높은, 침으로 눅눅해진 파인애플 인형을 하엘에게 선물했다. 도로 빼앗아오긴 했지만. 아직 수빈은 하엘보다 파인애플을 더 사랑했다.
하엘이 오면서 수빈의 시터가 임금 인상을 요구했다. 돌볼 아이가 늘었다는 식의 단순한 계산은 아니었다. 나이 차가 크고 성별이 다르면 곱절로 힘에 부친다는 이유에서였다. 내 월급에 맞먹는 액수였지만 부당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나는 아이들이 잠들었을 때 남편과 소리 죽여 논의했다. 그제야 남편은 하엘의 문제를 현실로 받아들였다. 남편은 자신이 베풀었던 호의를 자존심 때문에라도 무효화시키지 못했다. 여름방학이 끝날 때까지 길어야 두 달이라는 식으로 스스로를 납득시켰다. 나는 시터가 유능하지만 그만큼 방만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동안 수빈에게 해왔던 업무를 하엘에게 일부 떠맡기리라는 것도 예상 가능했다. 그럼에도 나는, 남편과는 다른 이유로, 시터를 해고하고 싶지 않았다.
시터가 내 옷을 몰래 입어 보곤 한다는 사실을 나는 하엘을 통해 알게 되었다. 약속에 나가기 위해 차려입고 나왔을 때 하엘이 지나가듯 말했다.
"아줌마보다 고모한테 더 잘 어울려요."
고자질하는 투는 아니었다. 무심한 감상에 가까웠다. 나는 그 얘기에 반응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주말 낮, 남편이 수빈과 하엘을 데리고 외출했을 때 옷을 죄다 끄집어내 세탁했다.
나는 시터에게 사실 여부를 확인했다. 시터는 펄쩍 뛰며 억울해했다. 이 일을 해오며 단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으며 그러고 싶은 마음도 없다고 했다. 시터는 자신의 장성한 두 아들을 걸고 맹세까지 했다. 나는 후회했다. 죄 없는 사람을 추궁했다는 가책 때문이 아니라, 내가 없을 때 시터가 고발자를 괴롭힐까 두려워서였다. 시터가 혹시나 수빈을 고발자로 여기지는 않을까 두려웠다.


하엘은 그림자처럼 지냈다. 행동거지를 극도로 조심했다. 걸을 때는 발뒤꿈치를 들었다. 그나마 남편이 있을 때만 조금 목소리를 냈다. 자다가 침대가 빈 걸 확인하고 나가 보면 두 사람은 어둠 속에서 얼굴을 초록빛으로 물들이며 야구 경기를 보고 있었다. 볼륨을 0에 맞추어 놓고, 캔에 든 맥주와 콜라를 각자 앞에 둔 채로. 얼빠진 표정이 꼭 엄마 몰래 포르노비디오를 보는 사춘기 남자애들 같았다. 나는 그들의 우정을 방해하지 않았다. 수빈이 둘 사이에 끼어 앉아 졸음과 사투를 벌이고 있을 때만 간섭했다.
어느 날 남편이 고모네 일가 얘기를 물어 왔다. 그즈음 우리는 한밤중 식탁에 마주 앉는 일이 잦았다. 식구가 새로 왔으니 새로 정해야 할 룰도 많았다. 그와 결혼했을 당시 나는 이미 고모네와 절연한 후였으므로 인사를 시킨 적도, 어느 집안에나 있을 법한 그런 흔한 사연을 말한 적도 없었다. 엄마가 고모네 일을 발설하지 말 것을 강조한 점도 있었다. 먼저 나서서 책잡힐 것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나는 남편에게 최대한 명료하게 사실을 말했다. 판단하는 말을 배제했고, 호아가 사촌형부로부터 폭행당했다는 얘기 또한 물론 하지 않았다. 남편은 애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더니 신인 드래프트에 관한, 내가 잘 알아들을 수 없는 이런저런 정보를 주워섬겼다. 남편은 하엘이 베트남으로 떠나게 되면 혹시나 야구의 꿈이 좌절되지는 않을지 걱정했다. 나는 그 걱정이 하엘에게서 남편에게로 고스란히 전이된 것임을 알았다.
"그래서?" 나는 물었다.
남편은 멍청한 표정으로 내 얼굴을 보다가 입을 다물었다.
수빈은 사랑의 열병에 빠졌다. 아빠를 저와 하엘 사이를 훼방 놓는 장애물 취급했다. 남편은 남편대로 하엘을 배려한답시고 수빈에 대한 애정표현을 자제했다. 수빈은 이중의 고통을 겪어야 했다. 아빠는 전보다 자신에게 소원했고 오빠는 제 마음에 충분히 응답해 주지 않았다. 외로워진 수빈은 내 허벅지에 매달려 우는소리를 했다. 당장 하엘과 결혼시켜 달라고 애원했다. 가족끼리 결혼할 수 없다는 사실은 수빈에게 끔찍한 비극이었고 그 애의 연심에 풀무질을 했다. 하엘이 곧 베트남으로 떠나게 될 거라는 사실을 안 뒤로는 더했다.
나는 하엘 때문에 부녀 사이가 틀어지는 게 아닌가 걱정되었다. 둘만의 시간을 만들어주기 위해 노력했다. 남편은 내 제안을 군말 없이 받아들였다. 하엘 오빠와 함께가 아니면 가지 않겠다고 악을 써대는 수빈을 끌고 주말이면 밖으로 나갔다. 키즈카페에 다녀온 부녀는 다시 서로에게 다정해져 있었다. 남편은 수빈과 데이트를 하고 돌아올 때마다 물소가죽 글러브나 징스파이크 야구화 같은 값나가는 선물을 사왔다.
"호아가 고모 얘기를 많이 했어요." 어느 날 하엘이 말했다.
부녀가 의무적으로 외출했을 때였다. 엄마라고 하지 않고 호아라고 말하는 게 인상적이었다. 나는 남편 역시 그랬었다는 걸 기억해 냈다. 호아의 어떤 부분이 그녀를 이름으로만 불리게 하는가. 나도 호아를 새언니가 아니라 호아라고 불렀다. 한 번도 직접 불러 본 적은 없었으나 누군가에게 호아 얘기를 할 때면, 자주 있는 일은 아니었지만, 호아라고 칭하곤 했다.
"어떤 얘기?"
"고모가 너무 예뻤대요." 하엘이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환심을 사기 위해 하는 말은 아닌 것 같았다.
나는 예브다를 연발했던 호아의 음성을 기억했다. 나는 하엘의 말을 부정했고, 내가 무얼 부정하는지, 왜 부정해야 하는지 알 수 없어졌다.
"고모부 여자 친구보다 고모가 더 예뻐요."
나는 잠시 하엘의 말이 머릿속에 스미도록 기다렸다.
하엘은 고모부에게 여자 친구가 있어요, 라고 하지 않았다. 내게 고발한 게 아니었다. 다른 예시를 가져다가 호아의 말을 입증하려는 것에 가까웠다.
"그렇구나." 나는 그렇게만 대답했다.
내 마음을 사납게 한 건 남편의 외도가 아니었다. 물론 하엘의 말이 사실일 경우의 얘기지만. 나는 하엘이 배은망덕하다고 생각했다. 의도가 어찌 되었든 결과적으로 하엘은 저를 아들처럼 여기는 고모부를 배신한 것과 다름없었다. 그때 왜 시터의 옷 문제가 떠올랐는지는 모르겠다. 나는 두 일 사이에 어떤 공통점이 있다고 확신했다.


수빈을 두 남자 사이에서 끄집어내 억지로 침대에 눕혔던 날이었다. 수빈은 괴로움에 못 이겨 흐느꼈다. 수빈은 어두컴컴하고 무서운 자기 방보다 거실의 비밀스러운 초록빛을 더 좋아했다.
"아빠는 돼지새끼예요." 수빈이 가짜로 딸꾹질하다가 말했다.
나는 가슴팍을 도닥이던 손을 멈추었다. "뭐라고 했어?"
"돼지새끼."
나는 그때까지 수빈이 그런 말을 쓰는 걸 들어 본 적이 없었다.
"누가 그런 말을 알려줬어?"
"돼지새끼가요."
내가 그때 무슨 말을 해야 했을까. 아빠는 돼지도 아니고 새끼도 아니라는 것? 나는 진정하지 못하는 수빈을 어둠 속에 버려두고 초록빛을 지나 빈 침대로 기어들었다.
얼마 후 나는 그 험한 말의 출처를 알게 되었다. 약간의 수고비를 더한 봉투를 건넸을 때 시터가 만족스러워하며 하엘을 칭찬했다. 돼지새끼처럼 귀엽고 복스럽게 잘 먹는다고 했다. 예상외로 시터는 하엘에게 호감을 지니고 있었다. 수빈과는 달리 자신의 정성을 인정해 준다는 것이었다. 뭐든 잘 먹는 하엘의 모습은 그 늙은 여자로 하여금 오랜만에 보람과 자부심을 느끼게 했다. 식사 때면 한바탕 진을 빼놓는 수빈의 편식도 하엘 덕분에 저절로 고쳐졌다. 나는 시터에게 감사의 말을 전한 뒤 이제 오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남의 옷을 마음대로 입어 보지 말라는 얘기까지는 하지 않았다.
저녁 외식 때 남편과 나는 새 시터를 구하는 일로 작게 다투었다. 남편은 시터가 필요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하엘이 시터보다 더 능숙하게 수빈을 돌봐준다는 것이었다. 남편은 하엘을 향해 동의를 구하는 눈짓을 했다. 하엘은 눈과 귀가 먼 사람처럼 묵묵히 숟가락질했다. 그 여자가 말한 대로 음식을 정말이지 열심히 먹었다. 수빈도 하엘을 그대로 따라했다. 이제 한 술이라도 더 먹이기 위해 비행기놀이 같은 건 하지 않아도 되었다. 다 씹은 음식을 삼키지 않고 입안에 머금는 버릇도 사라졌다. 무엇보다 파인애플 인형을 품에서 떼어 놓아도 불안해하지 않는 게 큰 수확이었다. 여전히 시야에는 들어와 있어야 했지만. 파인애플은 식탁 위 접시들 사이에 얌전히 앉아 있었다. 수빈이 떠먹여 주는 투명한 밥을 받아먹으며. 수빈은 이제 파인애플 인형을 하엘과 자기가 낳은 자식이라고 믿었다.
남편은 시터 화제에서 벗어나 대뜸 하엘에게 베트남에 가고 싶으냐는 질문을 했다. 하엘이 접시에 처박고 있던 고개를 들어 남편을 바라봤다. 하엘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조금 시간을 두고 고개를 끄덕였다. 야구냐 엄마냐, 남편은 그런 유치한 시험을 하엘에게 내고 있었다. 남편은 조금 실망하는 눈치였다. 하엘을 뚫어지게 주시하던 수빈은 통곡에 가까운 울음을 터뜨렸다.
"제발……" 나는 눈두덩을 누르며 말했다. "남 일에 간섭하지 마."
그 말이 누구를 향한 것이었는지 이제 나는 안다. 나는 남편이 아니라 하엘에게 말했다. 네가 우리에게 있어 남이라는 걸 분명히 하고 싶었다. 나는 책임질 수 없는 온정과 긍휼로 괜히 하엘을 희망에 부풀게 하고 싶지 않았다. 하루라도 빨리 현실을 받아들이는 게 하엘을 위한 길이라고 생각했다. 하엘은 영특했다. 내가 의도한 바를 정확히 이해했다. 하엘은 베트남에 가고 싶다는 의사를 고갯짓이 아니라 똑바른 발음으로 밝혔다. 다만 떠나기 전에 꼭 해야 할 일이 있었다. 하엘은 자기 두 손을 잠시 들여다보더니 그 계획을 얘기했다. 하엘은 사촌형부를 패 죽인 다음 떠날 작정이었다.


외식 이후 남편은 나를 힐난하기 시작했다. 왜 그 일을 감추었으며 지금껏 못 본 척했느냐는 게 요점이었다. 남편은 호아를 이주여성의 상징으로 여겼다. 예의 호아가, 호아는. 내가 아무리 그 일이 가정사이며 개인사일 뿐이라는 걸 되풀이해 설명해도 납득하지 못했다. 남편은 당장 경찰에 신고해야겠다고 으르렁거렸다. 하엘을 그딴 집구석에 돌려보낼 수 없다고 했다. 나는 모욕감을 느꼈다. 내가 아무리 그 집 식구들과 절연했다 하더라도 남편은 우리 집안사람들을 그런 식으로 표현하면 안 되었다.
"하엘이를 믿지 마." 나는 말했다.
그 순간 왜 그런 얘기를 꺼냈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내가 뱉은 말에 내가 다쳤다는 것만은 분명했다. 나는 어쩐지 신부복을 입은 호아를 생각하고 있었다. 호아가 내 손을 이끌어 자기 배를 만지게 했던 일을. 그때 손바닥에 느껴졌던 감촉을. 그때 나는 태동을 느끼지 못했다. 신부복 원단이 소스라칠 정도로 부드러웠다는 것만이 기억에 오래 남았을 뿐이었다.
"믿지 말라니?"
"당신이나 잘해."
"무슨 소리야?"
"당신 일이나 잘하라는 소리야."
남편은 내 조언에 따라 자기 일에 전념했다. 하엘의 일을 자기 일처럼 여기기 시작했다. 자기 일처럼이 아니었다. 자기 일이었다. 나는 시아버지가 과거에 시어머니를 손찌검한 적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남편은 자신의 어린 날에 보상하듯 하엘에게 집착했다. 하엘을 통해 과거를 수정할 수 있다고 믿었다. 남편은 호아의 일에 호아 본인이나 하엘보다 더 분노했다. 느끼는 감정에 비해 벌이고 다니는 일은 귀엽기 짝이 없었다. 남편은 인권위원회, 신문사, 법률사무소, 다문화센터에 들락거렸다. 사촌형부를 패 죽이겠다는 하엘의 계획이 내게는 더 타당하게 여겨졌다.
나는 남편에게 여러 차례 상기시켰다. 호아는 사촌형부에게 맞은 걸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그저 연금을 받지 못하게 되어 화났을 따름이라고. 물론 그는 들은 척도 안 했다. 일련의 일들을 거쳐 나는 어쩌면 남편이 이 사태를 흥미로워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호아를 향한 남편의 태도는 양상만 다를 뿐 본질적으로 사촌형부와 같은 뿌리를 공유하고 있었다.
호아는 아들을 맡겨 놓고서는 연락 한 번 하지 않았다. 가끔 순철 오빠가 무기력하고 음울한 말투로 전화를 걸어왔을 뿐이었다. 순철 오빠는 안목 해변에서 슬러시를 팔고 있었다. 주황색 오렌지, 파란색 소다. 순철 오빠는 내게 하엘이 아니라 호아에 대해 물었다. 하엘을 맡겼을 당시 호아의 말투가 어땠는지. 호아는 본국으로 떠난 뒤였다. 나는 호아가 순철 오빠와 하엘을 버렸다는 걸 알았다.


한강공원으로 나들이 갔던 날, 하엘은 강을 바다로 착각해서 우리를 웃게 했다. 수빈은 남편이 하엘의 투구 폼을 교정해 주는 모습을 복잡한 심경으로 바라보았다. 시키는 대로 키즈카페에 갈 걸 하고 후회하는 것 같았는데, 애써 재밌어하는 척했다. 은박돗자리 바깥의 잔디를 쥐어뜯으면서. 나는 딸애가 가장 좋아하는 모양으로 머리를 땋아 주었다. 평소에는 시간이 없어서 잘 해주지 못하는 방식이었다. 수빈은 마음이 좀 풀렸는지 내게 고민거리를 털어놓았다. 자기는 왜 남자가 아닌지. 남자로 바꿔 주면 안 되는지. 수빈은 그 일이 불가능에 가깝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러니 눈치를 보며 어렵게 얘기를 꺼낸 것이리라. 나는 마음이 아팠다. 대답 대신 한쪽에 내팽개쳐진 파인애플을 주워다가 품에 안겨 주었다. 수빈은 충격에 빠졌다. 어둡고 사사로운 감정에 사로잡혀 저보다 귀한 파인애플의 존재를 잊고 말았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었다. 수빈은 속죄의 제스처로 인형을 꼭 끌어안았다. 한때 수빈의 장래 희망은 파인애플이었다. 그리고 파인애플의 성별은 여전히 여자였다.
"하엘 오빠는 돼지새끼예요." 수빈이 울먹거렸다.
나는 하엘은 돼지새끼가 아니며 누구에게도 그런 말을 쓰면 안 된다고 가르쳤다. 수빈은 왜 쓰면 안 되는 말이 세상에 존재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럼 진짜 돼지의 새끼는 무엇으로 불러야 하는지.
"새끼돼지." 나는 말했다
"새끼돼지." 수빈이 따라했다.
나는 아기돼지라는 다른 말도 알려주었다. 수빈은 아기돼지 삼형제 노래를 떠올리고는 나를 경이에 찬 눈빛으로 바라봤다. 아기돼지라는 말을 반복하며 그전에 배웠던 말을 몰아내려 애썼다.
"잘했어."
수빈은 기분이 좋아졌다. 파인애플에 뽀뽀를 퍼부었다. 그러면서도 엄마가 파인애플보다 더 좋다고 나를 안심시켰다. 나는 수빈과 함께 그 애 마음속 순위와 관련한 재밌는 문답을 주고받았다. 엄마, 파인애플, 아빠, 하엘 순이었다.
"수빈아."
수빈이 나를 순종적으로 올려다봤다.
"아빠 여자 친구가 좋아, 파인애플이 좋아?"
멀리서 남편의 환호성이 들렸다. 하엘이 글러브를 끼지 않은 손으로 머리칼을 흐트러뜨리며 웃고 있었다. 웃는 건 처음 보는 것 같았다. 웃으니 호아와 닮아 보였다. 나는 하엘이 남편과 호아 사이의 자식이 아닐까 하는 터무니없는 망상을 했다. 두 사람은 수빈과 나를 잊은 채 너무 즐거워했다.
수빈이 고개를 갸웃하더니 말했다. "파인애플."


나는 수빈으로부터 두 가지 사실을 알아냈다. 시터가 내 옷을 입어 본 적 없었다는 것과 남편이 키즈카페 직원과 친하게 지낸다는 것. 나는 하엘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혼란스러웠다. 수빈은 한강공원 나들이 이후로 아빠와 둘이서만 키즈카페에 가는 일을 순순히 받아들였다. 나는 남편이 딸과의 데이트를 진짜 귀찮아하는지 아니면 귀찮은 척할 뿐인지를 살폈다. 그러다 착잡해졌다. 한낱 어린아이에게 놀아나고 있는 꼴이 우스웠다. 의심은 그만두자고 다짐했다.
남편은 때때로 일의 진척상황을 알려왔다. 호아를 구제할 방법에 대해서. 나는 호아가 이미 스스로를 구제했음을 남편에게 말하지 않았다. 당신이 그간 해왔던 노력은 다 허튼짓이었다고도. 남편은 알아서 깨우쳐야만 했다. 구원은 능력이 아니라 자격의 문제라는 것을. 그 누구도 다른 누구를 대신 구원해 줄 수 없었다. 남의 오줌을 대신 싸줄 수 없는 것처럼. 하엘에게는 사실을 알려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복잡했다. 내게 그걸 결정할 권리가 있는지부터 알 수 없었다. 나는 하엘이 베트남으로 떠나지 못하는 처지를 안다 하더라도 사촌형부를 패 죽일 수 있을지 궁금했다. 하엘의 복수심은 얼마나 개인적일까.
그즈음 우리는 그럭저럭 생활의 균형을 잡아 가고 있었다. 아들이 하나 있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엘은 부녀가 외출했을 때 집안일을 도왔다. 스스로에게 잘 보이기 위한 행동 같아 굳이 말리지 않았다. 하엘은 기계를 다루는 데는 서툴렀으나 손끝은 야물었다. 섬세한 일을 투박하게 잘 해냈다. 바늘귀에다가 실을, 도무지 가능할 것 같지 않은 동작으로, 대번에 꿴다든지. 특히 빨랫감 분류에 일가견이 있어 많이 배웠다. 우리는 집안일을 하며 주로 수빈의 연심에 관한 농담을 주고받았다.
일요일에 하엘은 마른 수건으로 그릇을 닦다가 수빈의 마음을 받아 주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고백했다. 도리가 아니라 질투 때문이었다. 하엘은 수빈을 부러워했고, 그 감정에 부끄러워했다.
"수빈이는 너를 부러워하던데."
하엘은 놀라는 것 같았다.
나는 분위기가 부드러워진 틈을 타 조심스레 하엘의 심중을 떠보았다. 만약 베트남으로 가지 못한다 하더라도 사촌형부를 손봐 줄 것인지. 하엘의 의사는 확고했다. 사실 그 질문을 통해 내가 알고자 한 건 복수 여부가 아니었다. 하엘이 엄마로부터 버림받을 가능성에 대해서 생각하는지 아닌지였다. 아니었다.
키즈카페에서 돌아온 수빈이 막대사탕을 자랑했다. 나는 사탕 먹는 걸 허락했다. 단 저녁식사 후여야 한다는 조건을 걸었다. 수빈은 사탕을 먹지 않고 영원히 간직할 거라는 의아한 말을 했다. 키즈카페 언니가 준 소중한 선물이라는 것이었다.
"수빈이 좋겠네." 나는 미소 지었다.
남편은 피곤했는지 소파에 드러누우며 앓는 소리를 냈다. 수빈은 이제 실연의 아픔을 딛고 언니를 사랑하기로 마음먹은 것 같았다. 수빈은 그 아이디어에 흥분했다. 하엘은 좀 쓸쓸해했다.


어느 날부턴가 남편은 호아의 구제 문제에 심드렁해졌다. 이유를 물어도 그냥, 하고 입을 다물었다. 나는 집요하게 캐물었다. 호아가 도망한 걸 알아챘나 싶어서였다. 남편은 몇 번 버티다가 마지못해 실토했다. 시카고컵스와 세인트루이스의 경기 날 하엘을 깨우러 방문을 열었다가 그 사내자식이 바닥에 성기를 비비며 자위하는 광경을 보았다는 거였다.
남편이 맥주를 병째로 들이켰다. 냉장고가 웅웅거리며 돌아갔다. 남매는 각자의 방에 잠들어 있었다.
"그게 왜?"
"모르겠어……." 남편은 허탈해했다.
나는 남편이 하엘과의 레슬링에서 힘으로 번번이 지곤 했던 일을 떠올렸다. 연애 때의 일이, 어떤 맥락인지는 알 수 없으나, 뒤이어 기억났다. 당시 그는 지켜주겠다는 황당한 이유를 들며 나를 만지기만 했었다. 날카로운 손톱 때문에 질염에 걸려 산부인과에 들렀을 때 의사가 이죽거리며 물었다. 무엇으로부터 무엇을 지켜요?
"당신도 하잖아." 나는 말했다. "그 언니 생각하면서."
남편은 '언니'가 누구냐고 묻지 않았다. 다만 혐오스럽다는 듯 나를 쳐다봤다. 눈동자에 종이 끄트머리를 대면 불탈 것 같았다.
"닥쳐." 그가 말했다.
"그래."
나는 부엌 불을 끄고 안방으로 들어갔다. 다시 부엌으로 나와 어둠 속에서 그를 두들겨 팼다.
우리의 불화를 가장 먼저 눈치 챈 건 수빈이었다. 남편과 나는 수빈 앞에서 서로 사랑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어야 했다. 수빈은 속지 않았다. 이 모든 사단이 자기 때문이라고 믿었다. 파인애플을 쥔 손끝이 하얬다. 참담했다. 남편은 내게 얻어맞았다는 사실은 모조리 잊은 채 자신이 내뱉었던 두 음절에 심하게 자책했다.
우리는 수빈을 위해 화해하는 척하다가 진짜로 화해하게 되었다. 어느 날 그렇게 되어 있었다. 지긋지긋했다. 부녀는 키즈카페 가는 것을 자연스럽게 그만두었다. 나도 닦달하지 않았다. 수빈은 또 한 번의 실연을 겪었지만 전보다는 의젓하게 행동했다. 언니를 보러 가겠다고 보채지 않았다. 저와 언니의 사랑보다 엄마와 아빠의 사랑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나는 수빈이 그런 식으로 포기하는 방법을 배워 가는 게 슬펐다. 하엘은 남편의 달라진 태도에 당황했지만 곧 당연한 일인 것처럼 받아들였다. 처음부터 가질 수 없었던 걸 욕심내는 게 아니었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그 알량한 야구 연습은 한 남자의 변덕스러운 소꿉놀이에 불과했다. 남편은 하엘을 상처 입혔다.
우리는 적당한 상냥함과 무관심을 유지한 채 시간을 흘려보냈다. 평화로웠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사촌형부에게서 전화가 걸려오기 전까지는 그랬다.
"오랜만이네, 처제. 하엘이 거기 있다며?"
"네."
"하엘이 돌려줘." 사촌형부가 단도직입으로 말했다.
내가 하엘은 물건이 아니라고 하자 사촌형부는 예정과 자유의지에 대한 이상한 장광설을 늘어놓았다. 그러더니 어떻게 자기 몰래 결혼을 할 수 있느냐며 장난스럽게 나를 타박했다.
"할머니도 몰래 돌아가셨으니까요."
"내일 하엘이 내려보내."
나는 사촌형부가 자신의 앞날을 모른다는 게 웃겼다. 내가 미친 사람처럼 웃어재끼자 사촌형부는 침착한 태도를 잃고 온갖 저주의 말을 퍼부었다.
"와, 무섭다."
나는 대답을 듣지 않고 전화를 끊었다.


수빈은 하엘이 언제 집에 가느냐고 물었다. 하엘이 어서 가주기를, 이 임시적이고 피로한 연극이 끝나기를 바라는 듯했다. 수빈은 내가 때를 미는데도 울부짖지 않았다. 전에는 살갗이 벗겨지는 모습을 보는 걸 그렇게 끔찍해했으면서. 수빈은 파인애플 씻기는 놀이에 심취해 있었다. 거품이 회색으로 일었다.
"언제는 하엘 오빠가 좋다며?"
"이제는 싫어."
나는 현기증 때문에 약간 열어 두었던 욕실 문을 도로 닫았다. 텔레비전 소리가 잦아들었다. 나는 수빈이 제 아빠 딸이라는 걸 실감했다.
"하엘 오빠는 돼지……" 수빈이 나오려던 말을 억눌렀다. "아기돼지야."
"언제는 왕자님 같다며?"
수빈은 내 말을 곱씹는 표정이었다. 자신이 한때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게 믿기지 않는 것 같았다. "이제는 이상하게 생겼어."
"알겠어. 비누는 먹지 마."
수빈이 잇자국 난 비누의 모서리로 파인애플 밑동을 문질러댔다.
다음날 아침 나는 거실 소파에 한 시간가량 앉아 있었다. 남편이 언제나처럼 정신없이 출근하는 모습을 지켜본 다음 두 군데 전화를 걸었다. 회사에 오전 반차를 냈고, 시터에게 하루만 수빈을 봐달라고 부탁했다. 통화를 마치고서 나는 조용히 하엘의 짐을 챙겼다. 원통형 가방에 남편이 사준 글러브와 야구화를 넣었고, 옷도 잘 개켜 넣었다. 세탁기 안에 든 옷가지는 비닐봉지에 담아 넣었다. 하엘은 바지만 입은 채 엎드린 자세로 잠들어 있었다. 새벽까지 혼자서 중계를 본 뒤였다.
하엘은 너무 늦지 않게 일어났다. 일어나자마자 방 한쪽에 꾸려져 있는 짐을 발견했고, 별다른 이의 없이 상황을 받아들였다. 하엘은 씻고 나온 뒤 내가 빠뜨린 물건을 천천히 챙겼다. 수빈은 시터 품에 안겨서 우리가 나가는 걸 멀뚱히 지켜봤다.
우리는 차 안에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먼저 말하는 사람이 지는 게임을 하는 것처럼. 하엘은 고집스레 앞만 바라봤다. 고속터미널에 도착해 나는 우등 좌석의 버스표를 끊었다. 버스 안에서 마실 물과 간단하게 요기할 만한 간식을 사서 가방에 넣어주었다.
버스 시간이 다가오자 하엘은 수다스러워졌다. 그동안 참았던 말을 한꺼번에 쏟아내는 것 같았다. 하엘은 사촌형부를 손봐 줄 일과 베트남에 가게 될 일이 기대된다고 했다. 무엇보다 기대되는 건 순철 오빠와 호아와 함께 셋이 살게 될 일이라고 했다. 우리 집에서 지냈을 때처럼 살고 싶다고, 수빈 같은 여동생이 생기면 더 기쁠 것 같다고 했다. 하엘은 내게 고마워했다. 호아 말대로 내가 너무 예쁜 사람이라고 했다. 상상했던 것보다 더 예뻤다고. 그렇지만 호아가 더 예쁘다고 했다. 하엘은 호아를 떠올리며 수줍어했다.
버스가 미끄러져 들어왔다.
"너는 한국에서 훌륭한 투수가 될 거야."
하엘은 다 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가방을 한 번 추어올리고는 곧장 버스에 올라탔다.


















장진영

작가소개 / 장진영

2019년 《자음과모음》 등단.


《문장웹진 2020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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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마음 없이

좋아하는 마음 없이 김지연 안지는 이른 결혼을 했는데 실패로 끝났다. 아니, 그걸 실패라고 할 수 있을까? 이혼을 한 건 사실이었지만 안지는 자신의 인생 여정에서 그때 이혼한 일을 실패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 뒤로 더 행복해졌다고 할 수는 없을지언정 조금 더 자기 자신에 가까운 삶을 살게 된 것은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혼이라는 단어를 떠올릴 때면 늘 그에 대해 변호하고 싶은 여러 말들이 떠오르곤 했기 때문에 처음부터 결혼 같은 건 하지 않는 편이 더 나았을 거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 때문에 이혼했다는 사실은 안지의 비밀은 아니었지만 먼저 나서서 밝히지도 않았다. 어릴 때 안지는 무척 전형적인 사람이 되고 싶었다. 구체적으로 그런 표현을 떠올리지는 않았다. 그저 자신이 속해야 하는 집단에서 튀지 않는 사람, 아주 평균적인 사람이고 싶었고 그런 사람이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을 했다. 찬반투표를 할 때면 눈치를 보다가 다수의 의견에 따라 슬그머니 손을 들었다. 친구가 좋아하는 가수를 따라서 좋아하고 친구의 것과 비슷한 브랜드의 신발을 사서 신었다. 친구들이 싫어하는 선생을 따라서 싫어했다. 사실 안지는 그 선생에게 남몰래 호감을 갖고 있었지만 친구들과 함께 떡볶이를 먹다가 술술 흘러나온 그 선생에 대한 욕을 듣고 재빨리 노선을 바꿔 함께 욕을 했다. 한동안 안지는 수학 시간마다 왜 애들은 저 선생을 싫어할까? 에 대한 답을 알고 싶어서 더 열심히 선생의 행동거지를 살폈다. 수학을 가르친다는 점만 빼면 딱히 나무랄 데 없는 사람이었다. 학생이 쉽게 답할 수 없는 내용을 골리듯 물어보지 않았고 무엇보다 학생들한테 사과를 할 줄 알았다. 뭔가 잘못 알고 섣불리 화를 냈을 때, 그러다 결국 진실을 알게 되었을 때, 다른 선생들은 그러게 헷갈릴 만한 짓을 왜 하고 다니느냐고 도리어 짜증을 부렸는데 그 선생은 재빨리 미안하다고 말했다. 미안하다. 내가 잘못 알았어. 미안해. 가끔 안지는 머릿속으로 그 목소리를 재생해 보곤 했다. 그 때문에 선생이 더 좋아졌지만 여전히 싫어하기 위해 애썼다. 누구나 다 그런 식으로 청소년기를 보내지 않나? 내가 아닌 사람이 되어 보려고 노력하면서? 안지는 대학에 갔고 연애를 했고 졸업을 했고 취직을 했다. 결혼도 했다. 아주 평균적인 삶이었다. 조금씩 빠르기도 했다. 조바심이 나 있었으므로. 자신도 남들처럼 지극히 평범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을 빨리 증명해 보이고 싶었으므로. 어느 정도 성공적인 것 같기도 했다. 남편이 바람이 나기 전까지는 그랬다. 식도 올리기 전 임신을 해 낳은 아이가 막 돌을 지난 참이었다. 임신이 아니었으면 결혼까지는 이어지지 않았을지도 몰랐다. 남편은 계속 후회하는 것 같았다. 그때 낙태를 밀어붙이지 않은 것을, 시간을 끌다가 영영 타이밍을 놓쳐버리고 만 것을, 어떤 결단력을 가지지 못한 자신을 자책했을지도 모른다. 그때 뼈저리게 깨달은 바가 있었는지 새로운 여자가 생겼을 때는 안지가 알아차리기도 전에 이혼을 해달라고 요구했다. 겨우 육 개월을 만났을 뿐

  • 관리자
  • 2024-07-01
소금 샹들리에

소금 샹들리에 정한아 호주에 사는 김이 오랜만에 귀국해서 친구들이 다 같이 모이기로 했다. 4명이 만나는 건 대략 7년여 만이었다. 방을 잡고 밤새 보자고 해서 오기 직전까지 망설였는데, 남편이 등을 밀었다. 정민이와 자신에게도 내가 없는 날이 필요하다고 큰소리를 치더니 정말 밤새 전화 한 통 없었다. 친구들과는 대학 동기였다. 전공은 문예 창작이었는데, 나는 2학년까지 다니고 학교를 그만뒀다. 그렇지만 정작 작가가 된 사람은 나뿐이라고 친구들이 투덜거렸다. 나는 작가가 아니라고 아무리 말해도 소용없었다. 그들은 십 수 년 전 내가 낸 단 한 권의 책을 기억하는 몇 안 되는 사람들이었다. 세 명 모두 미혼이었고, 아이를 가지지 않았다. 놀라울 정도로 예전 그대로인 친구들 사이에서 나만 철 지난 옷차림에 좀처럼 대화에도 섞이지 못했지만, 그런 것 때문에 마음이 상하지는 않았다. 오랜만의 서울 나들이에 술자리도 즐거웠다. 좋은 친구들이었다. 7년 전 정민이 자폐 스펙트럼 장애 판정을 받았을 때 그들은 자신의 일처럼 울어 줬고, 이후에도 종종 아이의 간식과 선물을 집으로 보내 줬다. 서서히 연락을 거둔 것은 내 쪽이었다. 애써 관계를 유지하는 일이 힘에 부쳤을 뿐, 그들에게 섭섭한 마음은 조금도 없었다. 지난 몇 년 동안 나는 집이 아닌 곳에서 밤을 보낸 적이 없었다. 다들 술에 취해서 침대로 간 뒤에도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아 휴대폰만 들여다보았다. cctv 속 거실은 엉망이었다. 엎어진 식판, 사방에 흩어진 블록 조각, 길게 늘어진 옷가지들. 남편은 불도 끄지 않고 아이를 재우러 방에 들어간 모양이었다. 나는 정지화면 같은 그 풍경을 한참 바라보다가 해 뜰 무렵에야 겨우 잠이 들었다. 다음날 우리는 점심을 먹고 헤어지기로 했다. 맛집마다 대기가 길어 종로의 좁은 골목을 돌고 또 돌았다. 앞장서 구글 맵을 보며 걷던 김이 갑자기 작은 서점 앞에서 멈춰 서더니 책을 사야겠다고 말했다. 지난 이사 때 내 책을 분실했다는 것이었다. 나는 집에 돌아가서 책을 다시 보내 주겠다고 김을 달랬다. 다섯 평도 안 되어 보이는 그 작은 서점에 내 책이 있을 리는 만무했기 때문이다. 김은 막무가내로 서점에 들어갔다. 할 수 없이 그녀를 따라 들어갔다가 전면 책장에 전시된 내 책을 발견했다. 죽은 친구를 만났다고 해도 그처럼 놀라지는 않았을 것이다. “미애 씨!” 그곳에서 누군가 나를 불렀다. 우아한 노부인이었다. 린넨 바지에 화이트 셔츠, 큼지막한 호른 목걸이를 한 여자는 환하게 웃으면서 나를 바라봤다. “반장님?” 나는 말끝을 흐리며 물었다. 여자는 성큼성큼 내 앞에 다가와서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나를 와락 끌어안았다. 누군가 나를 그렇게 안은 것이 너무 오랜만이라 온몸에 힘이 풀리는 것 같았다. 그녀는 오래전 나와 함께 공부했던 문우였다. H 백화점 문화센터 소설 창작 교실의 반장. 친구들이 책을 구경하는 사이 나는 그녀와 짧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ldqu

  • 관리자
  • 2024-07-01
그동안의 정의

그동안의 정의 최예솔 작정하고 사라진 사람은 작정하고 찾아야만 한다. 나는 윤정수를 작정하고 찾지 않았다. 보통의 남매 사이라는 게 정확히 어떤 건지는 모르겠지만 윤정수와 나를 그냥 보통 남매, 라고 하기에는 좀 어렵지 않을까. 윤정수는 나보다 4년 먼저 태어났다. 그리 적지도, 그리 많지도 않은 애매한 나이 차이 덕분에 윤정수와 나는 딱히 친해지지 못했다.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윤정수는 중학교에 갔고, 내가 중학생이 되었을 때 윤정수는 고등학교에 갔다. 물론 윤정수와 내가 영 친해지지 못한 건 우리의 나이 차이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윤정수는 내게 없는 사람에 가까웠다. 말수도 없고 센스도 없고 자존심도 없고 공부머리도 없고 돈도 없고······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나? 아무튼 남매 사이에 정이라도 있었다면 걱정이라도 했을 텐데 그럴 이유조차 없었다. 쥐뿔도 없는 윤정수니까. 특이사항이라곤 개그맨 윤정수와 동명이인이라는 것 정도밖에 없는. 그러니 윤정수가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집을 나갔다고 해도 이상할 것 하나 없었지. 뭐 내가 찾는다고 윤정수가 나타났을 거라는 보장도 없지만 나는 막연히, 어련히 때 되면 나타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했다. 하지만 윤정수는 죽을 때까지 나타나지 않았다. 물론 내가 죽은 것은 아니다. 윤정수가 죽었다. 내 나이가 이제 서른이니까, 윤정수는 서른넷에 죽었다. 이제 내게 남은 혈육은 없다······ 아닌가? 고모. 그렇게 부르지 마. 왜요. 낯설어. 저도 고모가 낯설어요. 윤현수는 맹랑하다. 윤정수와 장현아의 딸이라고 해서 윤현수. 그거 좀 유치하지 않니? 물었을 때 윤현수는 뭐 어때요 엄마아빠말곤 모르는데, 하고 대답했다. 이제 나도 아는데? 하니까 이젠 고모도 모르는 척해 달라고 했다. 참 나 어디서 이런 게 굴러왔는지. 현수야. 네. 네 엄마 입국 날이 언제라고 했지? 다음 주 토요일이요. 아직 한참 남았네. 고모도 고모 할일을 해요. 시간 금방 갈걸요. 알겠다 그래. 윤현수를 데리고 온 사람은 장현아다. 이제는 나흘쯤 됐으려나. 아침부터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하도 시끄러워서 나가 봤더니 장현아가 윤현수의 손을 붙잡고 서 있었다. 장현아는 다짜고짜 윤정수를 아느냐고 물었고 나는 오랜만에 듣는 윤정수의 이름에 잠깐 벙쪘다가 네, 저희 오빠네요, 하고 대답했다. 조카입니다. 그날 장현아의 대사를 나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그건 도저히 내가 아는 사람이 뱉을 만한 말이 아니어서 대사라고밖에는 표현할 수 없겠다. 아직도 문득 의심스러울 때가 있다. 윤현수가 정말 나의 조카가 맞고 장현아가 정말 나의 새언니가 맞을까. 가족관계라는 게 그렇게 단순하게 정리되는 거라면 이제까지 윤정수와 나는, 또 윤정수와 나와 우리의 부모는, 왜 이렇게 흩어지거나 죽거나 혼자 남을

  • 관리자
  • 2024-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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