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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상 토끼

  • 작성일 2019-11-01
  • 조회수 3,099

[2019 청년예술가 생애 첫 지원/단편소설]



옥상 토끼



김멜라




나는 오랫동안 인정하지 않았다. 딸이 죽은 것을. 딸은 자기 몸에 휘발유를 붓고 불을 질렀다. 딸이 죽고 나는 딸의 일기장을 발견했다. 유서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경찰에게 보여주지 않았다. 아내는 물론 딸의 친구와 딸의 애인과 딸의 애인의 친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았다. 이제야 조금 후회된다.
딸은 죽으면서 자기가 그린 그림을 모두 태웠다. 그러나 일기장과 편지는 남겨 두었다. 딸에게 의미가 없던 것인지, 아니면 남기고 싶었던 것인지 모르겠다. 나는 그 일기를 밤새워 읽었다. 사실대로 말하면 일기로 쓰기에 좀 뭣한 내용들이었다.


딸이 죽자 아내는 나를 떠났다. 사이좋은 부부는 어려움이 닥칠 때 관계가 더 단단해진다는데 우리는 아니었다. 산산조각 났다. 특히 애 엄마는 딸이 죽은 이유를 알고 싶어 했다. 내가 알고 있을 거라 믿었다. 나는 알지 못했다. 딸의 일기나 유서를 봤지만 거기에 죽은 이유는 없었다. 아내는 내가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고 생각했다.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지만 나는 아내에게 정직하려 노력했다. 유서를 보여주지 않은 것은 그게 더 낫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아이에게 왜 태어났는지 묻는다면 아이가 대답해 줄 수 있겠어?"
나는 아내에게 물었다. 아내는 큰 소리로 울었다. 대체 그게 무슨 뚱딴지냐며 나를 몰아세웠다. 나는 아내에게 말했다.
"아이가 죽은 것도 마찬가지야. 우리가 아무리 묻는다 한들 대답해 줄 수 없는 질문일 뿐이니까."
아내는 큰 소리로 울었다. 아내가 우는 만큼 나도 울었다. 내가 더 울었는지 모른다. 헤어질 때쯤 되어서 아내는 거의 울지 않았으니까. 나는 많이 울었다. 말해 줄 수 없는 걸 말해 달라고 하는 아내가 불쌍했고 아이도 불쌍했다. 그러나 나 자신은 불쌍하지 않았다.


아내가 떠난 뒤 내 몸의 변화가 시작되었다. 누군가는 절망과 상실, 현실부정이 만들어낸 환상이라 했다. 나는 현실과 환상의 차이가 무엇인지 묻고 싶다. 같은 상상을 수백, 수천 번 하면 현실이 된다. 이제와 내 환상을 떠벌리고 싶은 마음은 없다. 그리움이 심해지면 병이 들고 그리움이 심해지면 병이 낫는다. 부끄럽지만 나는 젊을 때 혼자 하는 사랑에 몇 번 빠졌었다. 그리움이 커질수록 내 안의 무언가 부풀어 올랐다. 결혼 후에는 없었다. 결혼 후에는 아내와 딸을 보며 살았으니까. 나는 건강하고 성실했다. 나는 군인이었으니까. 나는 평생 군인으로 살다 퇴역했다. 나는 그리움 모르고 살았다. 그런 건 결혼 전에, 아버지가 되기 전에 해치우는 손장난 같은 것이니까. 나는 내 안에서 부풀고 부푸는 것들을 모른 척했다. 그것들이 나를 차지하고 나를 말살한다는 것을 몰랐다.


결국 나는 의사를 찾아갔다. 내 몸의 변화를 누군가에게 보여줘야 했다. 의사는 나를 보더니 마스크로 코와 입을 가렸다. 청진기를 귀에 꽂고 내 가슴에서 나는 소리를 들었다. 설압자를 꺼내 내 혀를 누르고 내 목구멍에 불빛을 비췄다. 근래 복용한 약물, 하루 수면 시간, 유년기 병력에 대해 물었다.
"이리 와 누워요."
의사는 나를 진료실 옆 침대로 데려갔다. 내 얼굴에 얇은 습자지 같은 것을 올려놓은 다음 내 상의를 올리더니 알코올 솜으로 가슴을 문질렀다. 찬 수액이 심장의 우심방으로 헤엄쳐 오는 것 같았다. 의사는 실리콘 장갑을 끼고 내 가슴 위에 손을 올렸다. 이미 멈춘 심장을 다시 뛰게 하려는 듯 그는 내 가슴을 짓눌렀다. 나는 입을 다물었다. 그는 한 번 더 짓눌렀다. 나는 참기 힘들었다. 의사는 힘이 셌고 아마도 일주일에 서너 번은 퇴근 후 옥상정원에 올라 달을 보며 아령을 드는지 팔과 손목 힘이 셌다. 결국 나는 항복했다. 내 가슴에서 고무뚜껑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땀을 닦더니 장갑을 벗어 내 이마에 올려 두었다. 아직은 움직이지 말라는 뜻이었다. 그러더니 핀셋을 들고 뚜껑 안을 살펴보았다. 내 안에는 여러 송이의 꽃들이 피어 있었다. 그는 힘을 줘 꽃들을 뽑았다. 심장에서 피가 솟구쳤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비린 샴푸 향 같은 향이 났다. 그건 내 안에 쌓인 수십 장의 종이들이 구겨지며 내는 소리였다. 의사는 종이들을 꺼내 모조리 찢었다. 종잇조각들이 눈처럼 흩날렸다.
"이제 돌아누워요."
의사가 말했다. 나는 돌아누웠다. 리놀륨 바닥에 내 꽃들이 버려져 있었다. 내 딸의 유서는 누구를 향한 편지였을까.


그 후로 한동안 나는 의사를 찾아가지 않았다. 나는 내 병을 받아들이고 이해했다. 그건 딸이 갑작스레 죽어버린 사건보다 몇 배는 더 이해하기 쉬운 일이었다. 나는 여자가 되어 가고 있었다. 쉽게 말해 내 거시기가 줄어들고 있었다. 줄어드는 동시에 내 안에 무언가 부풀어 올랐다. 피부에 붉은 반점이 나고 팔다리가 가려웠다. 온종일 가슴께를 문지르고 둔부에 얼음을 대고 앉아 있어야 했다. 할퀴고 짓무른 피부에 염증이 생겼다. 열린 창으로 들이치는 빗물에 녹아내린 벽의 회반죽처럼 내 몸은 하나의 벽이 되어 가고 있었다. 나는 여성이 되어 가는 가려움을 앓았다.
어쩔 수 없이 나는 또 의사를 찾아갔다. 의사에게 내 가슴을 열어 보여주었다. 그는 내 병이 대상포진이라 했다. 면역력 문제라 했다. 맞서 싸워야 한다고 했다. 나는 또다시 꽃과 종이들을 빼앗겼다. 내 탓이 아니었다. 딸에게, 병균에게, 남성에게 나는 말했다. 모든 것은 저 의사 탓이니 나를 원망하지 말아 줘. 나는 좀 더 편하게 여자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건 없었다. 나는 몇 번이나 돌아누웠다. 창밖으로 비가 내리고 있었다. 빗소리가 불타는 소리처럼 들렸다. 유리창을 두들기는 빗방울 소리가 유화로 그린 캔버스가 불타는 소리처럼 들렸다.


집으로 돌아와 나는 거울을 닦았다. 변해 가는 내 모습을 관찰하기 위해서였다. 거울 앞에 서서 벌거벗은 내 몸을 보았다. 변화는 느리지만 분명하게 진행되었다. 몸에 드러난 증상은 붉은 반점이었다. 목덜미와 가슴에 백일홍 꽃잎 같은 반점이 돋아났다. 나는 꽃잎에 뒤덮였다. 수건으로 겨드랑이를 문지르면 녹물 같은 것이 배어 나왔다. 나는 점점 더 붉어졌다. 불에 달궈진 쇠처럼 빨갰다. 나는 일기에 이렇게 썼다.
'여자가 되는 것은 빨개지는 것이다.'
나는 과학자가 된 기분이었다. 누구도 내 과학을 찢어버릴 수 없었다. 내가 그렇게 안 둘 테니까. 누구도 내 여자를 찢어 눈처럼 흩날려 버릴 수 없다. 내가 그렇게 안 둔다.


아침에 일어나면 나는 딸의 방으로 갔다. 처음엔 여자 옷을 입는 게 어색하고 쑥스러웠지만 내 사적 욕망이나 취향으로 여자 옷을 입는 게 아니기 때문에 책임을 완수하듯 옷을 입었다. 현역 시절 군복을 입는 일과 비슷하다 생각하면 부끄러운 마음이 가라앉았다. 딸애는 화장품이나 액세서리가 없었다. 나 역시 거추장스러운 옷과 화장으로 여자가 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여장하는 남자가 아니라 여자가 되어 가는 남자였기에 억지로 겉모습을 치장할 필요가 없었다.
석 달쯤 지나자 딸애의 옷이 맞을 정도로 살이 빠졌다. 구 개월쯤 지났을 땐 딸애가 즐겨하던 머리끈으로 머리를 묶을 수 있을 만큼 머리카락이 길었다. 조금씩 유방이 생기는 것 같았다. 누군가는 지금 내가 하는 말이 역겨운 거짓말이라 손가락질할지 모른다. 처음엔 나도 믿지 않았다. 나조차 믿을 수 없어 벌거벗은 내 몸을 사진으로 남겼다. 그때의 사진들이 안방 서랍장 왼쪽 세 번째 칸에 있다. 날짜도 써놓았다. 보고 확인하길 바란다. 단 그 사진을 인터넷에 올리진 말아 주길. 나에게도 최소한의 분노라는 게 있지 않겠는가.


여자가 되어 가면서 식성도 변했다. 변하고 싶었다. 나는 손잡이가 있는 것은 아무것도 먹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가까운 친족에게 찾아가 선언했다. 함께 선언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들은 나를 이해한다고 했지만 식성을 바꾸지 않았다. 내 선언을 이해한다고만 했다.
얼마 후 나는 물건에도 손잡이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물건과 이별하기 위해 물건을 짊어지고 한강에 갔다. 하지만 강에 버리는 것은 불법이라 발길을 돌려 고물상으로 갔다. 고물상 주인은 내게 지폐를 주었다. 집에 돌아와 지폐를 세어 보았다. 세면 셀수록 지폐가 커지는 것 같았다. 나는 지폐를 덮고 잠이 들었다. 잠들지는 못했다. 대신 숙부께 편지를 썼다. 열두 줄을 쓴 후 죄송하다고 썼다. 편지를 쓴 날은 못된 꿈을 꾸었다. 꿈속의 나는 커다란 촛대를 부둥켜안고 어쩔 줄 몰라 했다. 흘러내리는 촛대에 올라탄 내가 어쩔 줄 몰라 하다 줄줄 흘러내렸다. 어머니가 팔뚝을 꼬집어 깨웠다. 죽은 줄 알았던 어머니가 꿈속에서 나를 깨웠다. 나는 말없이 일어나 어머니가 만든 김밥을 씹었다. 단무지의 짠맛이 내 안의 무언가를 부풀게 했다. 다시 속죄하기 위해 숙부께 편지를 썼다.
'내 딸의 유서는 누구를 향한 편지였을까요.'
부치지 못한 편지가 쌓여 갔다. 그 편지들을 사각형으로 접어 삼켰다. 고무뚜껑을 닫고 꽃씨를 심었다. 내가 했던 말들이 고무뚜껑을 열고 빠져나오려 했다. 가령, 이런 말들.
"가서 산책이라도 좀 해라. 그 몹쓸 그림일랑 다 태워버리고!"


*


내 딸은 화가로 태어났다. 딸은 어릴 때부터 바닥에 토끼를 그리는 습관이 있었다. 푸른 잉크를 검지에 찍어 쫑긋한 귀와 네모난 앞니 두 개를 그린 다음 냄새를 맡았다. 아이 엄마는 아이에게 그만두라고 타일렀다. 아이는 엎드리는 것을 좋아했고 엎드려 잠이 드는 것을 좋아했고 잠이 안 와 토끼를 그린다고 했다. 아이는 안주머니에 넣은 잉크병을 조심스럽게 감싼 채 등교했다. 아무도 어깨를 두드리지 않아 온종일 엎드려 잔다고 했다. 더 이상 잠이 오지 않을 때 토끼를 그린다고 했다. 나는 아이를 앉혀 두고 말했다.
"토끼 말고 사냥꾼을 그려 보지 그러니."
아이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이는 내 앞에선 입을 다물었다. 자기 대신 토끼가 말할 거라며 손가락 두 개를 펼쳤다. 그건 쫑긋한 토끼 귀 모양을 흉내 낸 것이었다.
"아버지, 다 잊으셨어요? 날 이렇게 만든 사람이 누구인지?"
토끼가 말했다. 토끼는 나에게 먹을 것을 달라고 했다. 배가 고프다고 했다. 하지만 나에겐 토끼를 먹일 당근이 없었다.
"난 당근 대신 영혼을 먹어요."
토끼가 말했다. 나는 아이에게 토끼의 배고픔은 단지 너의 착각이라 말했다. 점점 말라 가는 토끼가 그 애의 흰 종이를 차지해도 가슴에 빨간 열매를 단 토끼가 어른이 된 그 애를 찾아와도 나는 그건 단지 너의 조바심과 죄책감이 만들어낸 동화일 뿐이라 말했다. 이제 나는 토끼를 이해한다. 나는 눈 떴으니까. 눈을 떠 나를 보라. 시시각각 줄어드는 내 고무뚜껑이 나의 정직이다. 정직 말고는 내게 남은 것이 없다. 하다못해 불알 두 쪽도 없다. 내가 무슨 이유로 거짓을 말하겠는가?


나는 토끼 귀 모양을 흉내 낸 손가락 두 개를 펼친다. 나 대신 손가락이 말한다.
'당신의 말이 사실이고 내 증상이 거짓이라면.'
당신의 말이 사실이고 내 증상이 거짓이라면. 그렇다면 내 뚜껑은 왜 자꾸 줄어드는 겁니까? 내 얼굴은 왜 물에 풀린 휴지처럼 녹아 사라지는 겁니까? 왜 나는 밤마다 눈이 감기고 아침이면 다시 눈 뜨는 겁니까? 왜 내 딸은 한밤중 산으로 올라간 겁니까? 누가 내 딸에게 모욕을 준 겁니까? 사람은 차마 풀 수 없는 억울한 일을 당하면 정신이 도는 법입니다. 어떻게 해도 잊을 수 없는 모욕을 당하면 죽고 싶은 법입니다. 그런 걸 영혼의 얼룩이라고 하지요. 딸애의 일기를 보니 그렇게 쓰여 있더군요. 영혼의 얼룩은 지워지지 않는다. 그림을 좋아하는 아이라 색으로 표현했더군요. 실패나 좌절이 아닙니다. 얼룩입니다. 딸은 이렇게 썼습니다.
'희고, 희고, 희고, 희고, 희고, 희다.'
나는 하얗게 밤을 지새워 본 사람이라 잘 압니다. 아니, 나는 모릅니다. 내가 좋아하는 색은 초록색과 붉은색이니까요. 초록은 전투할 때 위장 색으로 씁니다. 피는 승리의 상징이죠. 아시겠습니까? 나는 평생 총과 수류탄 소리만 듣고 살아온 사람입니다. 그런 내가 내 심장 뛰는 소리 때문에 잠을 잘 수 없다는데 혈압이 뭐 어쨌다고?


*


내 진실은 삼호가 증언해 줄 것이다. 삼호만이 내 여자를 이해한다.
삼호는 나보다 두 살 아래 동생이다. 황 씨 성의 매운 고추같이 턱이 뾰족한 삼호는 젊을 때 울산에 있는 선박회사에서 일하다 서울로 올라왔다고 한다. 묵직하고 대찬 성격 덕분에 삼호는 요직으로 승진했고 어쩌다 사장 일가가 공금을 횡령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얼마 후 고향에서 올라온 현장 사람들과 술을 마시다 그 얘길 했다. 술김에 입을 잘못 놀린 죄로 삼호는 남산에 끌려갔다. 사장의 사돈이 별 세 개 단 중장이었다고 한다.


내가 삼호를 좋아한 건 목적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삼호는 남산에서 얻어맞고 억울하게 옥살이를 한 대가로 국가로부터 보상금을 받았다. 하지만 한 푼이라도 더 받아내기 위해 미친 척 연기했다. 삼호 같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모임에도 들어갔다. 다른 사람들은 가족을 잃은 슬픔이나 그들의 신념을 활동의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삼호의 목적은 한 가지, 돈을 타내는 것이었다.
삼호는 군청색 양복에 회색 넥타이를 매고 출근했다. 월수금 오전은 절름발이 신문사로 오후는 귀먹은 민원실로 화요일과 목요일은 위원장 없는 위원회에 방문했고 그 일을 마치면 부끄럼 타는 노동조합 모서리 지부에 가서 점심 겸 저녁을 얻어먹었다.
나는 삼호를 따라다니며 많이 배웠다. 삼호는 내게 미친 척하는 요령을 알려주었다. 우선 여자들 앞에서는 연기하지 않는다. 여자들은 삼호를 때릴 위험이 없기 때문이다. 경찰이나 군인 앞에서도 연기하지 않는다. 해봤자 더 얻어터질 뿐 그들에게는 연기가 통하지 않는다. 삼호가 눈을 까뒤집고 실감나게 연기하는 건 남자 넥타이들 앞이었다. 경계도 명확했다. 5급수 이하의 서울경기 출신 넥타이. 지방에서 발령받은 넥타이들은 승진에 목을 매지 않고 밥통을 뺏길 염려도 없어서 아무리 민원인이라 해도 거칠게 굴면 가만있지 않는다. 또 2급수 이상의 고위직 앞에서도 미친 척하지 않는다. 언젠가 추모할 수 없는 추모 공원에 온 2급수 앞에서 미친 척 게거품을 물었더니 며칠 후 조직원이라는 사람이 집으로 찾아와 쑥대밭을 만들어 놨다는 것이다. 삼호는 미친 척에도 요령과 규율이 필요하다고 했다.


나도 삼호를 따라 몇 번 항의 방문을 갔다. 삼호는 내 복장을 마음에 안 들어 했지만 삼호가 양복을 차려 입는 것처럼 나도 내 제복을 입는 것이니 이해해 달라고 했다. 나는 파란색 민소매 원피스와 연두색 줄무늬 치마를 번갈아 입었다. 파란색 원피스는 내가 특별히 좋아하는 옷이었다. 머리는 방울이 달린 고무줄로 높게 묶었다. 흰 머리가 많아 멋이 안 난다며 삼호가 외출하기 전 염색을 해주었다. 시내에 있는 관공서를 다녀온 후에는 같이 쇼핑을 했다. 우리는 다정하게 서로를 챙겨 주었다. 삼호는 미친 척 연기하는 것 말고는 거짓이 없었다. 삼호는 정직하고 성실했다. 생각해 보라. 이십 년 넘게 미친 척하는 게 쉬운 일인가. 미친 척은 삼호의 직업이었다.
하지만 협회 총무는 우리가 오는 걸 싫어했다. 죽도록 슬프면 미칠 수도 있지만 삼호와 같은 취급을 받는 건 용납할 수 없다며 삼호와 나를 모임에 나오지 못하게 했다.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생기면 마음의 문제로 돌려버린다. 우리는 미치지 않았다. 삼호는 미친 척을 연기하는 것뿐이다. 나는 연기가 아니다. 그때쯤엔 내 고무뚜껑은 눈에 띄게 줄어들어 내 영혼의 반의반 만해졌다. 가슴은 돌처럼 딱딱했고 엉덩이는 꼬집으면 애들 장난감 같은 소리를 냈다. 어떨 땐 이런 내 자신이 혐오스러웠다. 남자도 여자도 아닌 괴물이 된 것 같았다. 삼호는 원래 늙으면 이도저도 아니게 된다며 나를 위로해 주었다. 내 머리를 묶어 주고 내 등 뒤에 서서 거울을 보며 만약 나에게 자궁이 생긴다면 어디에 생길 것인지 말해 주었다. 삼호는 내 눈썹과 눈썹 사이를 검지로 가리켰다. 나는 삼호의 말에 믿음이 갔다.


삼호가 돈을 원하는 건 안나를 키우기 위해서였다. 안나는 삼호의 하나뿐인 혈육으로 삼호와는 털끝 하나 닮지 않았지만 어디를 봐도 삼호의 혈육이라 생각할 수밖에 없는 성격의 아이였다.
안나를 처음 만난 건 삼호네 옥상이었다. 안나는 물탱크 뒤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자기 모습을 들킨 게 기분 나빴는지 안나는 나에게 미친 할배들은 지긋지긋하다며 당장 내려가라고 소리쳤다. 나는 등산을 온 것뿐이니 화내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여기 산이 어디 있다고 등산이에요?"
안나가 담배를 바닥에 비비며 말했다. 나는 믿음으로 보면 보인다고 말했다. 안나는 나에게 교회 다니는 사람이냐며 자신을 전도할 생각이라면 포기하는 게 좋을 거라 했다. 나는 조용히 화분에 있는 작은 돌을 주워 손바닥 위에 놓았다.
"여기, 돌이 있지?"
나는 안나에게 돌을 보여주며 말했다. 안나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나는 돌을 든 손을 오므린 다음 등 뒤로 숨겼다.
"자, 내가 이렇게 등 뒤로 감췄어. 그래도 내 손에 돌이 있지?"
안나는 나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담배를 꺼내 물었다.
"여기 내 손에 돌이 있잖아. 하지만 이렇게 뒤로 감추면? 돌이 안 보여. 그래도 여전히 내 손에 돌이 있지?"
안나가 코웃음을 쳤다.
"이게 바로 믿음이야."
내가 말하자 안나는 내 믿음을 모욕하듯 내 얼굴에 연기를 내뿜었다. 그러다 자신의 행동이 미안했는지 어색한 기침을 했다. 어색한 기침을 하고선 또 이렇게 물었다.
"근데 왜 나한테 반말해요?"
안나는 사전의 동의도 없이 자기한테 말을 놓는 사람은 신뢰할 수 없다고 했다. 나는 안나에게 말을 놓아도 되는지 동의를 구했다. 안나는 동의하지 않는다고 했다. 나는 동의를 구하기 위해 지갑을 꺼냈다. 그리고 안나에게 내 여자에 대해 말해 주었다. 안나가 다시 내 얼굴에 연기를 내뿜었다.


안나는 나를 보며 삼호를 이해하게 되었다고 했다. 나에 비하면 삼호는 정신이 멀쩡한 편이고 능력도 있다는 것이다. 나는 안나가 담배를 물면 자연스럽게 라이터를 들고 불을 붙여 주었다. 그러자 안나가 나를 좋게 보기 시작했다. 어느 날 안나는 비밀을 털어놓듯 내게 말했다.
"삼호는 몸에 털이 한 올도 없어. 우리 눈에 보이는 그 털은 다 가짜야. 삼호는 한 번도 내 머리를 쓰다듬어 준 적이 없거든. 아마 어떻게 털을 만져야 할지 몰랐을 거야. 차라리 난 원숭이 한 마리를 보내 달라고 기도한 적도 있어."
안나가 털 얘기를 계속했다. 그게 안나에게 중요한 모양이었다.
"난 매일 밤 무성한 털 속에서 잠드는 상상을 해. 그곳은 우거진 수풀처럼 캄캄하고 쓸쓸해. 그래서 날이 밝아도 아침이 왔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곤 하지."
안나는 작은 소리로 말했고 나는 더 작은 소리로 말했다.
"나 역시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을 종종 잊어버리곤 해."
안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서로의 비밀을 알았으니 원하는 걸 말해 보라 했다. 나는 같이 원피스를 사러 가자고 했다. 세상의 수많은 여자와 여자가 그러하듯 나는 친구와 쇼핑하고 싶었다. 안나는 동의하지 않았다. 나는 안나에게 동의를 구하기 위한 절차를 밟았다. 내 지갑은 텅 비어버렸다.


우리는 함께 옥상을 내려갔다. 계단을 내려갈 때 안나는 절름발이처럼 다리를 끌었다. 계단 하나를 내려오는 데 이십 년이 걸리는 것 같았다. 나는 안나에게 좀 더 빨리 걸을 수 없느냐고 했다. 걷는 게 힘들면 내가 업어 주겠다고 했다. 그러자 안나는 아예 계단에 주저앉았다.
"내 걸음이 뭐 어떻다고 그래?"
안나가 말했다. 그러고 보니 안나의 걸음은 문제가 없었다. 내 눈이, 시선이, 시간이 문제였다. 나도 안나를 따라 절름발이처럼 걸었다. 어떤 제약이 나에게, 안나에게, 무한한 시간에게 필요했다. 그것은 내가 안나를, 딸을, 여자를 이해하기 위한 노력이었다. 안나와 나의 딸이라고 불리는 몸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이었다. 안나와 나는 한쪽 눈으로만 세상을 보고 한쪽 팔로만 옷을 입고 한쪽 어금니로만 음식을 씹기로 했다. 왼손은 드러내고 오른손은 주머니에 넣기로 했다. 무심코 오른손을 꺼내지 않기 위해 오른손에 자기만의 비밀을 그려 넣기로 했다. 나는 사라진 내 남자를 그렸다. 안나는 남산에 사는 토끼를 그렸다. 우리는 쇼핑센터로 가서 토끼에게 씌워 줄 모자를 고르기로 했다. 내 원피스를 사는 일은 뒤로 미뤄졌다. 안나는 원피스를 살 바에야 모자 일곱 개를 사는 게 낫다고 했다.


모자 가게에 들어간 안나는 모자를 골랐다. 안나가 모자를 고르는 방법은 이러했다. 모자에 손을 넣고 오른쪽으로 두 바퀴, 왼쪽으로 두 바퀴 돌린다. 잘 돌아가면 좋은 모자고 잘 안 돌아가면 모자를 흉내 낸 원피스다. 안나의 손바닥 토끼가 그렇다고 했다. 안나의 토끼는 중절모를 원했다.
"어떤 중절모?"
내가 물었다.
"남자들이 쓰는 중절모. 과거엔 남자들이 썼지만 이제는 패션 잡지에나 나올 법한 남장하는 여자들이 쓰는 중절모."
안나가 말했다. 토끼가 중절모를 쓴다고 해서 남장을 하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남장을 한다면 오히려 중절모는 우스꽝스러운 소품일 뿐 남성성을 부각시키지는 못할 것이기에 중절모를 쓰는 것과 남장을 혼동하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다만 내 토끼는 남장에 대해 학습하고 싶을 뿐이야. 머리를 짧게 자른다거나 넥타이를 매는 건 겉모습에 지나지 않아. 가슴을 밋밋하게 만드는 것도 마찬가지야. 무엇이 남장일까. 언젠가 내 토끼는 여장 남자들의 행렬을 본 적 있어. 그들이 무엇을 여장이라고 생각하는지, 저토록 부자연스러운 차림새가 어째서 여장인지, 여장이야말로 여자들이 꺼리는 복장이고 아무도 그런 모습을 여성의 차림새라 생각하지 않겠지만 누가 봐도 여장임에 분명한, 두말할 필요 없는 여장이었기에 마찬가지로 가장 남장에 가까운 복장은 누가 봐도 남성의 복장이 아니며 다만 확연하게 눈에 띄는 부자연스러움일 거야. 내 토끼는 그제야 변장의 속성에 대한 궁금증이 풀렸는데 여장은 여장했음을 드러내는 것이고 남장 역시 남장했음을 감추지 않는 거야. 내 토끼는 무엇을 감추고 무엇을 드러낼 건지 결정해야 해. 내 토끼로서는 남장이 더욱 손쉽겠지만 따지고 보면 여장이 완전히 불가능한 건 아니야. 이 모자 어때?"
안나가 물었다. 안나의 손에는 머리가 한 올도 없는 노인들이 쓰는 가볍고 부드러운 소재의 여름 햇살 같은 모자가 들려 있었다.
"나는 여장하는 게 아니야. 나는 여자야. 다만 완성되는 데 시간이 좀 걸리는 여자지."
내가 말했다. 안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하지만 안나의 토끼는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오 그래? 여자가 되어 간다고? 오 그래?"
나는 토끼의 눈을 피했다. 모자를 고르는 척 등을 돌렸다. 토끼는 여름 햇살 모자를 머리에 썼다. 나는 토끼를 훔쳐보며 언젠가 토끼 머리 위의 모자를 살짝 들고 도망치는 장난을 쳐야겠다고 생각했다.


안나에겐 토끼 말고 다른 동물도 있었다. 그 동물은 개였다. 어느 날 나는 삼호네 옥상에 올라갔다 그 개를 만났다. 개는 더러운 먼지를 뒤집어쓴 채 안나의 팔에 안겨 있었다. 안나가 말하길 개는 언제 죽을지 모르는 강아지라 했다. 왜 죽는지 모르지만 강아지를 소개한 사람이 그렇게 말했고 자신도 그렇게 말하는 것이라 했다.
"그게 이름이야? 언제 죽을지 모르는 강아지?"
내가 물었다.
"그런 이름이 어디 있어? 사람이 왜 그렇게 잔인해?"
안나가 말했다. 그러면서 강아지에게 사과하라 했다. 미안, 미안, 미안. 나는 강아지를 향해 세 번 짖었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강아지는 내 손가락을 핥더니 꼬리를 흔들었다. 손가락을 핥고 꼬리를 흔드는 모습이 언제 죽을지 모르는 강아지 같았다. 그날 이후 나는 언제 죽을지 모르는 강아지의 엄마가 되었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강아지는 아무 곳에나 배설을 했다. 다행히 소변의 양은 적었고 대변은 딱딱하게 굳어 있어 치우기 어렵지 않았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강아지가 어서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건 자꾸 손가락을 핥으며 꼬리를 흔들어댔기 때문이다. 꼬리를 흔들면 계속 꼬리를 흔들어댈 수 있도록 목덜미나 가슴 부위를 손으로 쓸어 줘야 했는데 나는 손 하나 까닥하고 싶지 않음에도 단지 강아지의 엄마라는 이유로 강아지 비위를 맞춰 줘야 하는 상황에 화가 났다. 나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내가 떠맡은 것들에 대한 책임을 회피할 수 있는 방법을 떠올렸다. 나는 화를 내고 싶었다. 하지만 어떻게 화를 내야 할지 막막했다. 어쩌면 강아지로서는 나를 떠맡고 있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강아지는 언제 죽을지 모르는 나를 떠맡고 있었다. 그러자 강아지에 대한 동정심이 생겼다. 그렇지만 아직까지 화를 내고 싶은 마음이 남아 있었다. 이왕에 나를 떠맡은 것이라면 완전히 떠맡아 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테이블 밑에는 둥글고 한쪽 끝이 뾰족한 똥이 굳어 가고 있었다. 나는 안나에게 전화를 걸어 말했다.
"토끼 좀 바꿔 줘."
안나는 잠시 뜸을 들이더니'말해.'라고 했다.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을 잘 들어. 이 말은 어디에 쓰거나 쓴 다음 낭독하면 안 돼. 이 말은 토끼 네게만 하는 말이야. 토끼 너라서 하는 말이야. 내 말 듣고 있어?"
안나는 잠시 뜸을 들이더니 약간은 귀찮다는 목소리로'말하라니까.'라고 했다.
"그건 유서가 아니었어. 편지도 아니었지. 투명함에 대해 적혀 있었어. 수채화의 덧칠과 번짐, 바람 부는 밀밭, 물 위를 나는 새들의 그림자, 그런 것들. 하지만 분명 편지였지. 누군가에게 말하고 있었거든. 누군가에게 모욕을 당하기 전 먼저 모욕해야 한다고 했어. 내 딸이 그렇게 한 거야. 하지만 그 애는 밝은 애였어. 학교에 잉크병을 들고 가 온종일 책상에 엎드려 잠만 자는 그런 애가 아니었어. 삼호가 실은 털이 가득한 털보인 것처럼 말이야. 내 말 듣고 있지? 내 말 들어야 해. 강아지가 죽었어. 언제 죽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죽어버렸어. 난 강아지가 마지막으로 싸놓은 똥을 치우고 네게 전화하는 거야. 날 비난하지 말고 들어줘. 여장이니 남장이니 하지 말고 그저 마음의 울타리를 넘어 내 여자를 바라봐 줘. 내가 한 말과 행동은 실수일 뿐이야. 나는 다시 태어나고 싶어. 다시 태어나 내 딸을 낳고 싶어. 하지만 그러기엔 능력이 부족해. 난 언제 죽을지 모르는 강아지의 엄마 노릇도 제대로 못 했으니까. 그래도 나는 내 딸이 되고 싶어. 딸이 되어 다시 편지를 쓰고, 그림을 태우고, 캄캄한 산에 빛나는 도깨비불 같은 그 빛들을 바라본 다음 집으로 돌아오고 싶어. 밤이면 뜨거운 물통을 다리 사이에 끼우고 잠드는 그 애의 엄마 곁으로. 난 알아. 죽지 않는다면 그건 유서가 아닐 거야. 난 수많은 유서를 썼지만 죽지 않았기 때문에 유서가 못 됐어. 언제나 그랬어. 난 손으로 만져야 믿을 수 있는 회의주의자니까. 내 딸은 단지 감춰져 있을 뿐이야. 누군가의 손에 감싸여 등 뒤에 숨겨져 있을 뿐이야. 접힌 팔을 펼치고 손바닥을 펼치면 그 애는 다시 드러날 거야. 내 말 듣고 있어?"
내가 물었다. 안나의 토끼가 말했다.
"믿어. 난 다 믿어. 그러니까 계속 말해."




* 본 작품은 2019 청년예술가 생애 첫 지원사업에 선정된 작가의 작품입니다.















김멜라

작가소개 / 최진영

2014년 단편소설 「홍이」로 제6회 자음과모음 신인문학상 수상.


《문장웹진 2019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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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마음 없이 김지연 안지는 이른 결혼을 했는데 실패로 끝났다. 아니, 그걸 실패라고 할 수 있을까? 이혼을 한 건 사실이었지만 안지는 자신의 인생 여정에서 그때 이혼한 일을 실패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 뒤로 더 행복해졌다고 할 수는 없을지언정 조금 더 자기 자신에 가까운 삶을 살게 된 것은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혼이라는 단어를 떠올릴 때면 늘 그에 대해 변호하고 싶은 여러 말들이 떠오르곤 했기 때문에 처음부터 결혼 같은 건 하지 않는 편이 더 나았을 거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 때문에 이혼했다는 사실은 안지의 비밀은 아니었지만 먼저 나서서 밝히지도 않았다. 어릴 때 안지는 무척 전형적인 사람이 되고 싶었다. 구체적으로 그런 표현을 떠올리지는 않았다. 그저 자신이 속해야 하는 집단에서 튀지 않는 사람, 아주 평균적인 사람이고 싶었고 그런 사람이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을 했다. 찬반투표를 할 때면 눈치를 보다가 다수의 의견에 따라 슬그머니 손을 들었다. 친구가 좋아하는 가수를 따라서 좋아하고 친구의 것과 비슷한 브랜드의 신발을 사서 신었다. 친구들이 싫어하는 선생을 따라서 싫어했다. 사실 안지는 그 선생에게 남몰래 호감을 갖고 있었지만 친구들과 함께 떡볶이를 먹다가 술술 흘러나온 그 선생에 대한 욕을 듣고 재빨리 노선을 바꿔 함께 욕을 했다. 한동안 안지는 수학 시간마다 왜 애들은 저 선생을 싫어할까? 에 대한 답을 알고 싶어서 더 열심히 선생의 행동거지를 살폈다. 수학을 가르친다는 점만 빼면 딱히 나무랄 데 없는 사람이었다. 학생이 쉽게 답할 수 없는 내용을 골리듯 물어보지 않았고 무엇보다 학생들한테 사과를 할 줄 알았다. 뭔가 잘못 알고 섣불리 화를 냈을 때, 그러다 결국 진실을 알게 되었을 때, 다른 선생들은 그러게 헷갈릴 만한 짓을 왜 하고 다니느냐고 도리어 짜증을 부렸는데 그 선생은 재빨리 미안하다고 말했다. 미안하다. 내가 잘못 알았어. 미안해. 가끔 안지는 머릿속으로 그 목소리를 재생해 보곤 했다. 그 때문에 선생이 더 좋아졌지만 여전히 싫어하기 위해 애썼다. 누구나 다 그런 식으로 청소년기를 보내지 않나? 내가 아닌 사람이 되어 보려고 노력하면서? 안지는 대학에 갔고 연애를 했고 졸업을 했고 취직을 했다. 결혼도 했다. 아주 평균적인 삶이었다. 조금씩 빠르기도 했다. 조바심이 나 있었으므로. 자신도 남들처럼 지극히 평범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을 빨리 증명해 보이고 싶었으므로. 어느 정도 성공적인 것 같기도 했다. 남편이 바람이 나기 전까지는 그랬다. 식도 올리기 전 임신을 해 낳은 아이가 막 돌을 지난 참이었다. 임신이 아니었으면 결혼까지는 이어지지 않았을지도 몰랐다. 남편은 계속 후회하는 것 같았다. 그때 낙태를 밀어붙이지 않은 것을, 시간을 끌다가 영영 타이밍을 놓쳐버리고 만 것을, 어떤 결단력을 가지지 못한 자신을 자책했을지도 모른다. 그때 뼈저리게 깨달은 바가 있었는지 새로운 여자가 생겼을 때는 안지가 알아차리기도 전에 이혼을 해달라고 요구했다. 겨우 육 개월을 만났을 뿐

  • 관리자
  • 2024-07-01
소금 샹들리에

소금 샹들리에 정한아 호주에 사는 김이 오랜만에 귀국해서 친구들이 다 같이 모이기로 했다. 4명이 만나는 건 대략 7년여 만이었다. 방을 잡고 밤새 보자고 해서 오기 직전까지 망설였는데, 남편이 등을 밀었다. 정민이와 자신에게도 내가 없는 날이 필요하다고 큰소리를 치더니 정말 밤새 전화 한 통 없었다. 친구들과는 대학 동기였다. 전공은 문예 창작이었는데, 나는 2학년까지 다니고 학교를 그만뒀다. 그렇지만 정작 작가가 된 사람은 나뿐이라고 친구들이 투덜거렸다. 나는 작가가 아니라고 아무리 말해도 소용없었다. 그들은 십 수 년 전 내가 낸 단 한 권의 책을 기억하는 몇 안 되는 사람들이었다. 세 명 모두 미혼이었고, 아이를 가지지 않았다. 놀라울 정도로 예전 그대로인 친구들 사이에서 나만 철 지난 옷차림에 좀처럼 대화에도 섞이지 못했지만, 그런 것 때문에 마음이 상하지는 않았다. 오랜만의 서울 나들이에 술자리도 즐거웠다. 좋은 친구들이었다. 7년 전 정민이 자폐 스펙트럼 장애 판정을 받았을 때 그들은 자신의 일처럼 울어 줬고, 이후에도 종종 아이의 간식과 선물을 집으로 보내 줬다. 서서히 연락을 거둔 것은 내 쪽이었다. 애써 관계를 유지하는 일이 힘에 부쳤을 뿐, 그들에게 섭섭한 마음은 조금도 없었다. 지난 몇 년 동안 나는 집이 아닌 곳에서 밤을 보낸 적이 없었다. 다들 술에 취해서 침대로 간 뒤에도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아 휴대폰만 들여다보았다. cctv 속 거실은 엉망이었다. 엎어진 식판, 사방에 흩어진 블록 조각, 길게 늘어진 옷가지들. 남편은 불도 끄지 않고 아이를 재우러 방에 들어간 모양이었다. 나는 정지화면 같은 그 풍경을 한참 바라보다가 해 뜰 무렵에야 겨우 잠이 들었다. 다음날 우리는 점심을 먹고 헤어지기로 했다. 맛집마다 대기가 길어 종로의 좁은 골목을 돌고 또 돌았다. 앞장서 구글 맵을 보며 걷던 김이 갑자기 작은 서점 앞에서 멈춰 서더니 책을 사야겠다고 말했다. 지난 이사 때 내 책을 분실했다는 것이었다. 나는 집에 돌아가서 책을 다시 보내 주겠다고 김을 달랬다. 다섯 평도 안 되어 보이는 그 작은 서점에 내 책이 있을 리는 만무했기 때문이다. 김은 막무가내로 서점에 들어갔다. 할 수 없이 그녀를 따라 들어갔다가 전면 책장에 전시된 내 책을 발견했다. 죽은 친구를 만났다고 해도 그처럼 놀라지는 않았을 것이다. “미애 씨!” 그곳에서 누군가 나를 불렀다. 우아한 노부인이었다. 린넨 바지에 화이트 셔츠, 큼지막한 호른 목걸이를 한 여자는 환하게 웃으면서 나를 바라봤다. “반장님?” 나는 말끝을 흐리며 물었다. 여자는 성큼성큼 내 앞에 다가와서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나를 와락 끌어안았다. 누군가 나를 그렇게 안은 것이 너무 오랜만이라 온몸에 힘이 풀리는 것 같았다. 그녀는 오래전 나와 함께 공부했던 문우였다. H 백화점 문화센터 소설 창작 교실의 반장. 친구들이 책을 구경하는 사이 나는 그녀와 짧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ldqu

  • 관리자
  • 2024-07-01
그동안의 정의

그동안의 정의 최예솔 작정하고 사라진 사람은 작정하고 찾아야만 한다. 나는 윤정수를 작정하고 찾지 않았다. 보통의 남매 사이라는 게 정확히 어떤 건지는 모르겠지만 윤정수와 나를 그냥 보통 남매, 라고 하기에는 좀 어렵지 않을까. 윤정수는 나보다 4년 먼저 태어났다. 그리 적지도, 그리 많지도 않은 애매한 나이 차이 덕분에 윤정수와 나는 딱히 친해지지 못했다.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윤정수는 중학교에 갔고, 내가 중학생이 되었을 때 윤정수는 고등학교에 갔다. 물론 윤정수와 내가 영 친해지지 못한 건 우리의 나이 차이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윤정수는 내게 없는 사람에 가까웠다. 말수도 없고 센스도 없고 자존심도 없고 공부머리도 없고 돈도 없고······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나? 아무튼 남매 사이에 정이라도 있었다면 걱정이라도 했을 텐데 그럴 이유조차 없었다. 쥐뿔도 없는 윤정수니까. 특이사항이라곤 개그맨 윤정수와 동명이인이라는 것 정도밖에 없는. 그러니 윤정수가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집을 나갔다고 해도 이상할 것 하나 없었지. 뭐 내가 찾는다고 윤정수가 나타났을 거라는 보장도 없지만 나는 막연히, 어련히 때 되면 나타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했다. 하지만 윤정수는 죽을 때까지 나타나지 않았다. 물론 내가 죽은 것은 아니다. 윤정수가 죽었다. 내 나이가 이제 서른이니까, 윤정수는 서른넷에 죽었다. 이제 내게 남은 혈육은 없다······ 아닌가? 고모. 그렇게 부르지 마. 왜요. 낯설어. 저도 고모가 낯설어요. 윤현수는 맹랑하다. 윤정수와 장현아의 딸이라고 해서 윤현수. 그거 좀 유치하지 않니? 물었을 때 윤현수는 뭐 어때요 엄마아빠말곤 모르는데, 하고 대답했다. 이제 나도 아는데? 하니까 이젠 고모도 모르는 척해 달라고 했다. 참 나 어디서 이런 게 굴러왔는지. 현수야. 네. 네 엄마 입국 날이 언제라고 했지? 다음 주 토요일이요. 아직 한참 남았네. 고모도 고모 할일을 해요. 시간 금방 갈걸요. 알겠다 그래. 윤현수를 데리고 온 사람은 장현아다. 이제는 나흘쯤 됐으려나. 아침부터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하도 시끄러워서 나가 봤더니 장현아가 윤현수의 손을 붙잡고 서 있었다. 장현아는 다짜고짜 윤정수를 아느냐고 물었고 나는 오랜만에 듣는 윤정수의 이름에 잠깐 벙쪘다가 네, 저희 오빠네요, 하고 대답했다. 조카입니다. 그날 장현아의 대사를 나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그건 도저히 내가 아는 사람이 뱉을 만한 말이 아니어서 대사라고밖에는 표현할 수 없겠다. 아직도 문득 의심스러울 때가 있다. 윤현수가 정말 나의 조카가 맞고 장현아가 정말 나의 새언니가 맞을까. 가족관계라는 게 그렇게 단순하게 정리되는 거라면 이제까지 윤정수와 나는, 또 윤정수와 나와 우리의 부모는, 왜 이렇게 흩어지거나 죽거나 혼자 남을

  • 관리자
  • 2024-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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