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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일 2019-10-01
  • 조회수 2,144

「2019 청년예술가 생애 첫 지원/단편소설」





박송아




왜 시비를 걸고 있어, 라는 말을 끝으로 중단되었던 대화를 다시 떠올렸다. 누구의 입에서 나온 말인지가 정확히 기억나지 않았다. 나는 나대로 막차를 놓치지 않기 위해 허둥댔고, 전석은 전석대로 몹시 취해 있어서 정황이 어지러웠던 탓이다. 그렇지만 우리가 대화를 이어 가는 중이었고, 왜 시비를 거냐는 말로 또 다른 시비를 걸었던 사실만은 분명했다. 문제는 누구였던가. 아니, 누구의 말이었던가. 나는 아무리 되물어도 좀처럼 잡히지 않는 대답에 지쳐 기차 창문에 머리를 기댔다. 창밖은 너무 어두웠고 볼 만한 풍경도 없었다.


*


기차에서 내리자마자 역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흡연구역을 찾아 들어가 담배를 피웠다. 지하철 운행시간은 이미 지나 있었으므로 서두를 필요가 없었다. 자정이 훌쩍 넘은 시각에도 주변은 생각보다 붐볐다. 택시를 기다리며 줄을 서 있거나 횡단보도를 건너기 위해 신호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면면에는 특이하다고 할 것 없는 피로가 가득했다.
기껏 배웅을 해준다며 따라붙었으면서 정작 눈길도 주지 않았던 전석의 창백한 얼굴도 그랬다. 전석은 한산한 승강장에 오도카니 서서 핸드폰만 들여다보다가 출발을 알리는 안내방송을 듣고 나서야 고개를 들었다. 그의 시선은 차창 너머의 내가 아니라 천천히 움직이는 기차를 쫓고 있었다.
돌이켜보니 그것이야말로 시비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한 대만."
갑자기 눈앞으로 들이밀어진 손에 놀라 뒤로 물러났다. 바로 정면에 낯선 남자가 왼손을 내밀며 서 있었다. 키가 작았고 쌀쌀한 밤 날씨에도 반팔 티셔츠 차림을 하고 있었다. 한 대, 하고 처음보다 더 짧아진 말을 내뱉으며 남자가 한 발짝 다가왔다. 나는 뒷걸음치는 대신에 피우고 있던 궐련형 전자담배를 조심스럽게 흔들어 보였다. 당신에게 줄 수 있는 담배가 없다, 라는 사실을 알아차리기를 바랐다. 그러나 남자는 손을 거두지 않고 계속 쳐다봤다. 역 앞 광장을 밝히는 가로등 빛에 남자의 얼굴이 비쳤다. 고집을 부리는 건지 위협을 하는 건지 아니면 그저 아무 생각 없이 서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알 수가 없어서, 긴장이 되었다. 도움을 요청하듯 두리번거렸지만 근처에서 담배를 피우던 커플은 무심히 자리를 떠나버렸다.
점점 곤란함을 감추지 못하는 나와 물러나지 않는 남자 사이에 정적이 길어지고 있던 무렵, 어디에선가 모자를 눌러쓴 노인이 불쑥 나타났다. 그리고 두 손으로 남자의 양 어깨를 잡으며 그러면 안 돼, 그렇게 하는 거 아니야, 하고 말했다. 웬일인지 그때부터 남자는 씩씩거리기 시작했는데 노인은 그를 달래면서 나에게는 여러 번 머리를 숙였다. 엉겁결에 나도 두어 번 고개를 끄덕였다.
더 이상 머무르면 안 될 것 같아서 재빨리 택시 타는 곳으로 갔다. 나와 멀지 않은 거리에서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 남자와 노인을 보지 않기 위해 애를 썼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뭔가를 저질러버린 기분이 들었다. 내가 탈 택시의 기사가 차창을 열고 어서 오세요! 하고 활달한 인사를 건넸다. 어쩐지 식당에 들어서는 느낌으로 뒷좌석 문고리를 잡는 순간, 문자가 왔다. 전석의 문자일 것이라고 기대했는데 아니었다.
2시~4시 사이에 배달 예정.
문자 내용을 확인하자마자 의도보다 세게 문을 닫고 말았다. 기사는 나를 힐끔 쳐다보더니 이내 별다른 말없이 택시를 출발시켰다. 여전히 열려 있는 차창 밖에서부터 누군가가 카악, 퉤! 하고 침을 뱉는 소리가 들렸다.


*


오늘 나는 전석에게 몇 가지의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전석에 대한 것도 아니었고, 나와 전석 사이의 것도 아니었다. 그저 나의 근황이었고 거기에서 비롯된 불안이었다. 그런데 그는 그것을 전부 불만으로 알아들었던 모양이었다.
2개월 만에 H시에 내려간 나는 전석을 만나 점심으로 육개장과 떡만둣국을 먹었고, 전석이 친구에게서 빌린 차를 타고 교외에 있는 카페로 나갔고, 저녁 즈음에 우리의 단골 술집에서 술을 마셨다. 그러는 동안 나의 이야기는 드문드문 진행되다가 안주로 시킨 누룽지탕이 식어 갈 즈음 끝이 났다. 전석은 이렇다 할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나와 눈을 똑바로 마주치고 있었으면서도 대꾸가 없었다. 차라리 건성으로 듣고 있다거나 다른 생각에 골몰해있었다면 더 나았을까. 결국 답답함을 견디지 못해 어떻게 생각해? 라고 내가 먼저 물었을 때, 전석은 국자로 누룽지탕을 휙휙 젓고 있었다. 그러더니 전혀 엉뚱한 대답을 내놓았다.
"작년이 좋았어."
작년까지 나는 H시에서 살았다. H시에 위치한 대학원의 디자인조형 석사 과정을 마치고 고향으로 내려가겠다고 결심한 나를 머물게 했던 사람은 전석이었다. 실패만 거듭하는 일에 매번 매달리는 생활을 정리하고 싶다는 말에, 세상의 다른 일들이라고 그와 다를 것 같으냐며 그렇다면 이제껏 노력해 왔던 일에 주력하는 것이 상대적으로 유리할 거라고 말해 줬던 사람도 그였다. 그 때문만은 아니었지만 나는 H시에 살면서 잠시 시간을 갖기로 했다. 지방 소도시라는 특성상 저렴한 가격으로 좋은 원룸에서 자취할 수 있었고, 일도 비교적 쉽게 구할 수 있었다. 살기에는 편했으니까. 그러다 보면 다음의 계획을 세울 수 있는 여유가 생길 거라고 믿었다.
나는 미술학원에서 초등학생들을 가르쳤다. H시의 다른 대학 분교에서 계약직 행정조교로 근무하고 있는 전석의 퇴근시간에 맞춰 학원 수업이 끝났다. 우리는 매일 만났다. 저녁을 먹거나 늦은 밤까지 술을 마시곤 했다. 손을 잡고 번화가 부근에 있는 천변도 자주 거닐었다. 깨끗하다고 할 수 없는 물이 느리게 흘러가는 천변은 관리가 되지 않아 악취가 진동했고 잡초와 벌레도 무성했다. 그래도 싫지 않았다. 하나밖에 없는 벤치를 차지하고 앉아 캔맥주를 나눠 마시며 천변 풍경을 구경하는 일이 좋았다. 한밤중에도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자와 마스크와 트레이닝으로 무장하고 경보를 하는 아주머니를 보며 전석이 말했다. 언젠가 너도 저렇게 다니는 순간이 올 거야. 그러면 나는 웃음이 났다. 깊이가 얕은 천변에 빠져 죽겠다며 고함을 치는 아저씨에게 그래, 개새끼야, 그대로 죽어버려라, 라고 떠미는 다른 아저씨를 말리는 또 다른 아저씨를 보며 나는 농담했다. 술을 좋아하면서도 약한 너는 첫 번째나 두 번째 아저씨가 될 것이지 절대로 말리는 아저씨는 못 될 거라고. 그러면 전석은 내 어깨를 장난스럽게 끌어안았다. 그의 체온은 낮았다. 나는 손바닥으로 전석의 한쪽 무릎을 감쌌다. 어쩌면 너는 이렇게 뜨거운 사람이니, 라고 다정히 말해 주는 전석과 함께였던 시간이 바로 작년이었다. 서로 떨어져 지내는 올해와는 다를 수밖에 없었다.
전석이 종업원을 불렀다. 육수를 더 넣어 줄 수 있겠냐고 묻자, 종업원은 대답 없이 주방 쪽으로 걸어갔다. 종업원의 뒷모습을 쳐다보던 전석이 말을 이어 갔다. 오해하지 말라고 했다. 지금이 싫다는 이야기가 아니며 단지 작년이 정말 좋았는데 그런 생각을 하는 쪽은 자신뿐이라는 외로움이 이따금 몰려온다고. 그래서 너가 쉽게 떠나버렸나 싶다고.
전석이 화장실을 다녀오겠다며 일어났다. 종업원이 다가와 건더기만 남은 누룽지탕에 김이 피어오르는 육수를 부어 줬다. 나는 버너를 켜며 오해하지 말라는 그가 오해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전석이 물기가 남아 있는 손을 털며 돌아왔을 때, 정확하게 정정해 주리라고 마음먹고 있었다. 그러나 그가 또 입을 열었다.
"재계약이 안 됐어. 10월 말이면 다 끝나."
마치 모든 것이 다 끝장나 버렸다는 투였다. 나는 국자를 들었다. 그리고 아직 제대로 끓여지지 않은 누룽지탕을 덜어 전석의 앞에 놓인 그릇에 담아 주었다.


*


작년 늦가을이었다. H시에 조만간 유명 프랜차이즈 미술학원이 들어설 거라는 소문이 자자했다. 그러자 내가 근무하는 미술학원의 원장이 느닷없이 전시회를 제안했다. 학원생들의 잠재성을 격려할 수 있는 기회이며 학부모들에게 꼭 참석해 줄 것을 요청하라고 했다. 그러나 미술학원의 규모는 작았고 학원생들의 수준 또한 좋지 않았다. 뻔히 알면서도 원장은 고집을 부렸다. 절박해 보이는 모습에 선생들도 어쩔 수 없이 절박해졌다.
교실을 비워 놓고 그나마 괜찮은 작품을 골라 배치하면 될 일이라고 여겼던 선생들은 전시회 준비로 늦게까지 학원에 남았다. 원장은 요구가 많았다. 사사건건 트집을 잡더니 학원생들의 작품에까지 손을 대기를 바랐다. 이런 걸 어떻게 보여줍니까? 라고 말하면서 밋밋한 색감의 수채화나 조잡한 종이공예를 못마땅하게 쳐다봤다. 선생들은 추가 수당 대신 원장이 시켜 준 피자를 먹으며 물감을 덧칠하거나 색종이를 잘라 붙였다. 모두가 한마음으로 이 번거로운 시간이 어서 지나가기를 바라고 있었고, 때문에 이래도 되냐는 물음은 불필요했다.
원장은 특히 용우의 그림을 싫어했다. 고작 이 정도냐고 담당 선생인 나에게 따졌다. 매일 축구화를 신고 나타나 스케치북에 도형만 그리다 도망가는 용우를 미술학원에 등록시킨 사람은 용우의 어머니였다. 너무 활동적이라 걱정이라는 용우의 어머니에게 미술을 통해 차분함을 배울 수 있다고 수업을 권유한 사람은 나였다. 그러나 용우는 조금도 나아지질 않았다. 그려 보라고 하면 질색했고 혼을 내면 째려보며 허공에 발길질을 했다. 하지만 원장은 해결책을 원했고, 용우의 어머니는 전시회에 꽃다발을 가져가도 되냐고 물었다.
전시회 전날, 나는 수십 개의 네모가 줄지어 그려진 용우의 그림을 노려봤다. 어떠한 수정 작업을 거쳐도 그럴듯해질 수 없을 것 같았다. 고민을 이어 갈 기운이 남아 있지 않아 나는 의자 위에 축 늘어져 앉았다. 그리고 왼편에 위치한 창문을 멍하니 응시했다. 활짝 열려 있는 창문으로 근처 야구 연습장의 조명 빛과 포장마차의 눅눅한 튀김 냄새와 누군가가 신발을 질질 끌며 어디론가 향하는 소리가 넘어왔다. 그때, 불현듯 머릿속에 작품 하나가 스쳐 지나갔다. 망설일 겨를이 없었다. 나는 빠르게 작은 네모 안에 어린아이라면 곧잘 그리는 꽃을, 별을, 사탕을, 물고기를 번갈아 채워 넣었다.
비어 있는 이젤 위에 완성된 그림을 올려놓고 한참을 서 있었다. 무언가 찜찜했는데 어떤 작품을 차용했다는 사실 때문이 아니라 미처 알아채지 못한 다른 이유가 있는 것 같아 시간이 갈수록 더욱 찜찜해졌다. 나는 학원을 나서면서 전석과 통화를 하다가 그 찜찜함의 정체를 깨달았다.
용우의 그림은 한때는 줄기차게 들여다봤던, 대학원 개강파티에서 처음 만난 전석과 몇 시간이고 토론하게 만들었던 작가의 작품과 유사했다. 왜 바로 알아보지 못했을까, 하고 내가 허탈해하자 전석이 살다 보면 벌어지는 자연스러운 일이야, 라고 말해 줬다. 그날 나는 기억하고 간직하고 싶은 것들을 무심코 잊어버리는 삶에 대해 오래도록 곱씹었다.
전시회에서 용우는 당당했다. 자신의 이름표가 붙여진 그림 앞에서 포즈도 취했다. 내 그림이 아니야, 라고 어리둥절해할까 봐 조마조마했던 마음이 무색할 정도였다. 용우의 어머니는 연신 카메라 버튼을 눌렀다. 용우의 것도 나만의 것도 아닌 그림을 손가락으로 짚으며 이런 걸 어떻게 떠올렸어? 라고 기특해하면 용우는 몰라, 그냥이야, 라고 대답했다. 용우는 잘 대응해 줬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상하게 기분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용우와 용우의 어머니는 꽤 오랫동안 전시회장에 머물렀다. 기념일과 어울리는 점심 메뉴란 피자인가 아니면 돼지갈비인가를 두고 가벼운 말다툼도 벌였다. 마침내 메뉴를 결정한 두 사람이 자리를 떠나려던 때였다. 용우가 그만 내 뒤꿈치를 세게 밟고 말았다. 아이가 신고 있던 축구화의 스터드로 인해 스타킹이 뜯어졌고 살갗이 벗겨졌다. 용우도 용우의 어머니도 그걸 봤다. 그러나 그대로 지나치려고 했다. 웃음을 띤 얼굴엔 변화가 없었다. 그 순간이었다. 나는 짜증을 참지 못했다.
"아이 씨."
용우의 어머니가 멈춰 섰다. 아이 씨? 지금 애한테 그런 말을 한 거예요? 실수였는데 그것도 애가 실수한 거를? 전시회장에 있는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원래 사과하려고 했었거든요, 그런데 보니까 안 되겠네요. 용우의 어머니는 나를 몰상식한 인간이라고 했다. 나는 어떤 말도 하지 못했다. 분명 내가 한 말이 맞았다. 그러나 내 마음은 그것만이 아니었다는 말은 어떤 식으로든 변명이었다. 나는 묵묵히 듣고만 있다가 용우를 봤다. 비웃고 있거나 쌤통이라는 표정을 짓고 있으리라, 용우 같은 아이라면 충분히 그럴 것이리라.
하지만 용우는 겁을 먹고 조용히 울고 있었다.


그날 이후 나는 학원을 그만뒀다. 누구도 나를 탓하지 않았지만, 그냥 그렇게 했다. 수도권에 위치한 미술학원 몇 곳에 이력서를 넣었고 다음 해 1월부터 출근하라는 연락을 받았다. 그깟 일에 더 번거로워질 선택을 하냐는 주변 사람들에게는 응수하지 않았다. 그러나 전석에게는 이야기했다. 사과할 마음도 없었으면서 그럴 마음이 사라져 버렸다고 거짓말한 건 누구야. 그게 몰상식이 아니면 대체 뭐야. 다 똑같아. H시가 싫어졌다고. 나에게는 무엇이든 시도할 권리가 있지 않느냐고 그렇다고 쉽게 결정하는 것은 아니라며 두서없이 말을 늘어놓았다.
그때 나를 이해한다고, 나의 선택을 지지한다고 했던 것은 누구였나. 거기에는 분명 어떠한 오해도 없었다.


*


택시가 거칠게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몸이 급작스럽게 기울어지면서 속이 울렁거렸다. 술을 마시기도 했지만, 핸드폰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탓이 더 컸다. 나는 고민하고 있었다. 새벽 2시에서 4시 사이에 내가 주문한 2L짜리 생수 12병이 배달된다는 통보와 다름없는 안내에 지금 집에 있지 않은 나는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문 앞에 두고 가주세요, 라고 답장하자니 로비 출입문의 비밀번호가 걸렸다. 올해 입주한 도시형 생활주택은 외부인의 출입이 철저히 관리되었다. 저녁 6시까지는 경비원이, 그 외의 시간에는 입주자가 직접 인터폰을 통해 출입을 승인하는 방식이었다. 건물 주인에게서 설명을 들었을 때, 좀 유난스럽다고 느꼈다. 택배 주문과 배달이 수시로 이루어지는 요즘과 같은 시대에 서로가 불편해지거나 어쩌면 불쾌해질 수도 있지 않을까 싶었다. 건물 주인은 그런 나의 기색을 읽었는지 갑자기 실내 곳곳에 전시되어 있는 미술작품과 설치물들을 보여줬다. 내가 전공했던 분야니까 더 잘 알지 않느냐고, 돈으로는 환산될 수 없는 가치가 있으니 매사 조심스러워야 한다고. 그러면서 절대 외부인에게 비밀번호를 알려주지 말라고 당부했었다.
그렇다고 직접 받겠다고 답장하려니 적어도 2시 전까지는 집에 도착해 있어야 하는데 그럴 수 있다는 보장이 없었다. 막 1시 30분을 지나고 있었다. 기사에게 얼마나 더 가야 하냐고 물으니 20분 정도라는 답변을 들었다. 시간이 애매했다. 하지만 어떤 대답도 하지 않으면 생수 12병은 로비 출입문 앞에 버려지다시피 놓일 것이었다. 그날의 경우가 그랬다.


그날, 한창 잠을 자고 있다가 전화를 받았다.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고 누구냐고 물었던 것은 본능이었다. 잠결 속에서 전석이겠거니 했다. 여느 때처럼 술에 취해 어눌해진 그의 목소리를 예상했는데, 그가 아니었다. 생수 시켰죠? 라고 묻는 목소리는 낮고 거칠었다.
누구지? 라는 의문보다는 이게 뭐지? 라는 의문이 앞섰다. 상대방이 택배기사라고 밝히면서 로비 출입문 비밀번호가 어떻게 되냐고 물었을 때에야 겨우 시간을 확인했다. 4시 20분. 오후가 아닌 새벽이라는 사실을 깨닫자, 갑자기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정신이 번쩍 들었다.
"비밀번호 알려달라고요."
"네?"
상대방은 내가 못 알아듣는다고 생각했는지 발음을 길게 늘이며 소리쳤다.
"로오비. 출이입무운. 비이미일버언호!"
나는 알아들었다. 그러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새벽 4시에 택배가 배달된다는 이야기는 들어 본 적도 겪어 본 적도 없었다. '일찍'이라는 말로 설명되기에는 너무 어중간한 시간이 아닌가. 설령 가능한 일이고 그 사실을 나만 몰랐다고 하더라도 이런 시간에 전화를 거는 택배기사나 택배 수령을 위해 전화를 받을 사람은 또 얼마나 될까. 아무리 앞뒤를 맞춰 봐도 어긋나는 상황에 나도 모르게 보이스 피싱인가, 라고 중얼거리게 되었다.
그때 상대방이 픽, 하고 웃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그대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문자를 받았다. 로비 앞에 놔뒀음. 당장이라도 확인해 보고 싶었지만 엄두가 나질 않았다. 픽, 하고 웃었던 상대방이 나를 기다리며 서 있을 것만 같았다.
나는 밤을 새웠다. 그리고 날이 밝자마자 로비로 내려갔다. 문자대로라면 바깥에 있어야 할 생수 12병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꿈이라고 하기에는 통화내역과 문자가 뚜렷하게 남아 있었다. 나는 낯선 장소를 헤매는 사람처럼 어수선하게 돌아다녔다. 생수 12병이 놓여 있던 위치는 로비 앞이 아니었다. 출입문 왼편에 설치된 재활용 쓰레기 분리수거함 앞이었다. 입주민들이 버려 놓은 페트병 주변에 내가 주문한 물건이 덩그러니 놓여 있는 광경은 묘했다.
나는 생수 묶음을 힘겹게 들고선 집으로 들어갔다. 화가 났고 황당했고 어이가 없으면서도 그 새벽에 배달을 하는 택배기사를 떠올리면 그렇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결국 설명할 수 없는 감정들 속에서도 그래도 이건 아니지, 라는 마음은 굳히게 되었다.


*


그날 택배기사에게 받은 문자는 지우지 않았다.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니 택배기사가 할당된 하루분의 물량을 제때 배달하기 위해서 이른 시각부터 업무를 진행하는 경우가 꽤 많았다. 어떤 면으로는 이해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다시 겪고 싶지 않은 일이기도 했다. 때문에 이번엔 그날의 택배업체를 피하려고 문의를 해가며 생수를 주문을 했었다.
그런데 그날과 같은 번호로 오늘 또 문자를 받았다.
끼이익! 하는 마찰음과 함께 택시가 급정거했다. 몸이 앞으로 쏠렸지만 부딪히지는 않았다. 옆 차선에 있던 다른 택시가 끼어든 모양이었다. 끼어든 택시기사가 운전석 쪽 차창을 내리고 삿대질을 하며 소리를 질렀다. 내가 탄 택시의 기사는 사람 좋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끼어든 택시가 난폭하게 속력을 내는 모습을 본 기사가 저 새끼 저거 매번 저래, 하고 나직하게 한 마디 했다.
나는 기사의 숱 없는 머리통을 바라보다가 문자에 답장을 했다. 직접 받겠습니다, 라고. 발송 직전까지도 확신이 없었고 마음이 편하지도 않았지만, 그렇게 보냈다.


*


"항의 전화라도 해보지 그랬어."
전석이 먹태를 찢으며 말했다. 나는 그가 먹기 좋게 손질한 먹태를 집어 들었다. 계약을 연장하지 못했다고 침울해하던 전석은 별안간 누룽지탕을 말끔하게 먹어치웠다. 그러더니 소주 1병과 먹태를 추가로 주문했다. 내가 예매해 둔 기차 승차시간이 다가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별수 없이 나는 예약내역을 변경했다. 그제야 전석은 아까는 묵묵부답이었던 나의 이야기에 관심을 보였다.
항의 전화라면 물론 해봤다. 내가 생수를 주문했던 사이트에 들어가 담당 택배업체를 알아내어 전화를 걸었다. 모든 상담원이 상담 중이라는 기계음이 15번쯤 반복되다가 연결이 되었다. 상담원은 퉁명스럽게 담당 기사에게 확인해 보고 연락을 준다고 했다. 그러면서 내 주소와 이름을 물었다. 나는 당황했다. 택배기사에게도 나름의 사정이 있었을 것이다, 내 말은 왜 그 시간에 배달을 하게 만드느냐, 고객에게도 기사에게도 불합리한 경우가 아니냐고 묻고 싶었던 거라고 더듬거리며 설명했다. 상담원은 그러니까 확인해 보고 답변 드릴게요, 라는 말만 했다. 그렇게 하는 것이 마땅한 절차라고 했지만 그게 싫었다. 나는 상담을 끝내버렸다. 어디 동 아무개 씨에게 새벽에 전화해 놓고 주문한 물건을 아무렇게나 버려뒀다는 불만이 접수가 되었어요, 라고 상담원이 전달하면 그 택배기사가 내게 연락할 것만 같았다. 비밀번호도 알려주지 않고 보이스 피싱이니 뭐니 하면서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은 건 누구였냐고 따지며 바람이 새는 듯한 소리로 웃으면 나는 할 말이 없었다.
그게 너의 문제라고 전석이 말했다. 나의 태도가 아니라 나의 생각이 문제라고.
로비 출입문 앞에 놔둔다고 해서, 너가 생수 묶음을 직접 들고 들어간다고 해서 대수로운 일은 아니잖아? 전석이 간장과 마요네즈를 섞은 소스에 먹태를 찍으며 물었다. 대수로운 일은 아니다, 라는 말에 나는 동의했다. 무거웠지만 들 수 있었고 그게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그렇게 생각해, 모든 건 생각하기 나름이고 이미 지나가 버린 일 역시 생각에 따라 다르게 남아. 다르게, 다르게. 전석이 먹태를 질긴 껌처럼 씹었다. 나에게 그런 식으로 말하는 전석이 낯설었다. 그러나 이런 말과 이런 얼굴을 어디에선가 몇 번이고 봤던 것처럼 낯설지가 않았다. 나는 묻고 싶어졌다. 혹시 줄곧 내게 하고 싶었던 말이었니? 그런데 전석이 낌새라도 알아차린 것처럼 선수를 쳤다.
"아버지가 자주 하는 말이야. 지겨워하는 나를 지겨워하면서."
너도 알지? 우리 아버지. 전석은 그렇게 말했지만 나는 전석네 아버지를 잘 몰랐다. 다만 전석의 이름을 지어 준 사람이 전석네 아버지라는 사실만은 잘 알고 있었다. 전석의 이름은 '석'이었고 한자로는 '클 석'자를 썼다. 하지만 이름의 의미와는 다르게 돌과 관련된 별명만 갖게 되었다. 전돌, 돌멩이, 돌머리, 아니면 그냥 돌. 전석은 자신의 별명을 부르는 사람들의 입을 다물게 하면서 자랐다고 했다. 그러나 정작 별명을 가장 많이 언급하는 사람은 전석네 아버지였다. 석, 생각을 바꿔, 그 돌머리를 굴려 봐, 데굴데굴 굴리란 말이야. 개명을 하려고도 했지만 전석네 부모가 반대했다. 호적에서 파버린다고 으름장을 놓는 아버지는 무시할 수 있었지만 부자 사이에서 늘 눈치만 보며 어쩔 줄 몰라 하는 어머니에게 부담 주기 싫었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언제나 성과 이름을 붙여 그를 불렀다. 주변 사람들이 가끔 이름만 부르곤 해도 나만은 매번 전석을 전석으로 불러 줬다. 그렇지만 전석네 아버지는 변하지 않았다.
전석이 소주잔을 한 번에 비웠다. 의미 따위 누가 신경을 써, 지어 준 본인도 잊어버리고선 돌, 돌, 돌 그러는데, 라고 신경질을 냈다. 나는 몰래 시간을 확인했다. 익히 아는 이야기가 지겨워서만은 아니었다. 이대로 있다가는 전석에게 어떤 상처를 줄 것 같은 기분이 어렴풋하게 들었다. 그러면 안 되었다.
"그런 사람이 있는 집으로 돌아가야 해."
전석이 아주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계약이 끝나면 갈 곳이 없어, 거기밖에는. 나는 나를 바라보고 있는 전석의 시선을 느끼면서도 폰 화면 속 기차 시간만 들여다봤다. 전석은 내내 저 말이 하고 싶었던 거였다. 이제까지 모두 저 말 때문이었던 거였다.


*


H시를 떠나기로 결심했을 때, 무엇보다 어디에서 살아야 할지가 막막했다. 수도권에 있는 원룸들은 보증금이며 월세가 터무니없이 비쌌다. 게다가 나는 자취생활 동안 한 번도 보증금을 제대로 돌려받은 적이 없었다. 아무리 깨끗하게 사용을 해도 집주인들은 어떻게든 구실을 찾아내 보증금을 과하게 깎아 돌려줬다. 그런 경험이라면 지긋지긋했다. 그러다 보니 당장 고시원밖에는 감당할 수 있는 곳이 없었다. 나는 괜찮았지만 아버지와 어머니가 괜히 미안해했다. 그래서 죄책감이 들었다.
고시원 입주를 결정하려던 찰나 이모부가 전화를 해왔다. H시에서 살았던 원룸의 월세를 묻더니 자기에게 그만큼의 돈을 매달 지불하면 이종사촌이 입주할 도시형 생활주택에 입주시켜 주겠다고 했다. 걱정하는 너의 어머니를 위해서, 라는 이유를 애초에 믿지는 않았다. 나중에 사업과 투자의 일환으로 내가 덤으로 얹어졌다는 내막을 알았을 때도, 원래 이종사촌이 입주했어야 할 원룸이 몇 가지 시설 문제가 있어서 내가 입주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전해 들었을 때도 놀라지 않았다. 내게 그런 것들은 중요하지 않았다. 보증금도 없이 신축 건물에 살 수 있다는 점이 중요했고, 안심과 고마움이 내가 느낀 전부였다.
건물 주인은 이모부의 친구였다. 그는 나와 마주치면 인심 좋은 이모부를 둬서 좋겠다, 라고 말을 걸었다. 편하게 지내라고 하면서도, 실내에서 담배를 피우지 말고 음식 쓰레기는 분리를 해줘야 한다는 기본적인 상식을 자꾸만 주지시켰다. 이종사촌의 원룸에는 침대와 의자가 비치되어 있었지만 내 쪽은 아니었다. 입주한 지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부엌 천장에서 물이 새고 곰팡이가 생겨났다. 입주민이었지만 나는 어쩐지 미안한 마음으로 건물 주인에게 불편사항을 전달했고, 불편했겠다고 말해 주던 건물 주인은 나중엔 그런 건 자신의 후배인 현장소장에게나 상담하라고 연락처를 알려줬다. 현장소장은 문제를 확인하러 올 때마다 이럴 리가 없는데, 하고 갸웃거리거나 왜 여기만 자꾸 문제가 생기지, 라고 투덜댔다.


그건 뭐랄까, 베개 같은 거야. 언젠가 나는 전석에게 말했다. 베개라니? 핸드폰 너머로 졸음이 가득한 목소리가 물었다. 있지, 평소엔 몰라. 누울 때마다 베개를 베야겠다고 의식하거나 어떻게 베면 더 편하더라는 생각 없이 그냥 베다가 잠들잖아. 그런데 어떤 날은 좀 그래. 눈치를 채고 의식을 해. 베개의 감촉이 귀찮게 느껴지고 부스럭거리는 베개소리는 너무 크고. 신경 쓰느라 잠들지 못하지만 치울 순 없어. 베개가 있어야만 잠을 잘 수 있는 습관에 길들여져 있으니까. 이도 저도 못하지만 거슬리고 또 거슬리고. 너, 듣고 있어?


*


역으로 가는 길은 고요했다. 안개가 꼈고 분위기가 으스스해졌다. 자정이 넘으면 H시는 유령도시가 된다고 누군가가 말했던 기억이 났다. 나는 사람보다는 귀신을 무서워했다. 전석이 이유를 묻자 잡을 수 없어서, 라고 대답했었다. 전석은 사람이 더 무섭다고 했다. 왜, 라고 물었을 때 그는 웃기만 했다. 가끔 내가 고향에 내려갔다가 늦은 시각에 귀가할 때면, 전석은 역으로 나를 데리러 왔다. H시가 유령도시가 되는 시간에 혼자 걸어갈 나를 위해서였다. 나는 전석에게 그런 일을 해준 적이 없었다. 사람이 무섭다는 전석을 위해 해줄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했다.
나는 전석의 팔목을 단단히 붙잡고 걸으며 오로지 시선은 막차가 다가오고 있을 역에 고정시켰다. 그것을 놓치면 집으로 갈 수 없었다. 너무 늦었어, 자고 가, 라고 전석이 말했지만 출근을 해야 했다. 전석의 손목이 차가웠다. 내가 지금 끌고 가는 이는 전석이 아니라 내가 전석임을 믿고 싶어 하는 다른 무언가는 아닐까라는 기괴한 마음이 들었다.
"그 집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어."
전석은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는 것을 꺼렸다. 전석네 아버지와 어머니와 전석네 동생 부부와 갓 태어난 조카가 별도의 공간을 갖지 못하고 모여 사는 집. 그 집으로는 돌아가기가 힘들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걸음이 늦어졌다. 나는 가야 하는데 전석은 도와주지 않았다. 빨리, 빨리, 라고 재촉하자 전석이 다시 말했다.
"계약이 끝났어. 연장할 수가 없었어."
내가 1순위라는 말은 거짓말이었어, 믿었는데 그냥 하는 말이었어, 자기도 어쩔 수 없다고 했지만 나는 알아, 애초에 순위라는 건 없었어, 라고 전석이 토로했다. 다른 일을 구해, 라고 나는 말하지 않았지만 전석은 내가 물어본 것처럼 대답을 했다.
"다른 일은 있지만 여기에 너는 없잖아."
어디에서든 같이 살자, 내가 따라갈게, 우리 같이 살자. 전석은 말을 멈추지 않았다. 그런 전석이 억지를 쓰고 있다고 나는 생각했다. 하지만 정말 그런 걸까 되물으며 또 생각했다. 안 될 건 뭐가 있을까. 내가 사는 집에 전석과 함께 살면 나쁠 게 뭐가 있을까. 아주 잠깐의 순간, 나는 수십 번의 물음을 거듭했다. 그리고 수십 개의 대답을 떠올렸지만 그중 어떤 것도 적당한 대답이 되지 못했다. 전석은 점점 뒤처졌다. 앞으로 나아가려는 힘이 전혀 없었다. 그럴 마음도 없는 것 같았다.
나는 뒤를 돌았다. 전석을 바라봤다. 전석의 손목은 붙잡은 채였다. 차가운 체온이 더욱 식어 가고 있었다. 나의 손은 차가워졌고 몸에도 한기가 돌았다. 이내 손목을 놓고 나는 입을 벌렸다. 축축한 공기가 한꺼번에 들어와 몸 안을 후벼 팠다. 나는 소리를 질렀다. 할 수 있을 만큼 외쳤지만, 귓가에 들리는 건 내 목소리라고 믿어지지 않을 만큼 건조한 한 마디였다.
"석아."


*


부질없이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지나가 버린 일에 선택의 옳고 그름을 뒤늦게 강요하는.
입주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이종사촌에게 밥을 사줬다. 이렇다 할 친분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이모부의 호의에 조금이라도 성의를 보이고 싶었다. 이종사촌은 공부를 잘했고 성격이 무던해서 일가친척에게 관심과 사랑을 받았다. 우리는 저녁식사로 누린내가 나는 쌀국수와 군데군데 구멍이 나 있는 라이스페이퍼로 만들어진 월남쌈을 먹었다. 맛이 정말 없었다. 식당과 메뉴를 선택한 쪽은 이종사촌이지만 나는 당혹스러웠고 서둘러 카페로 이동했다.
아메리카노와 딸기케이크를 먹으며 우리는 어색하게 대화를 나눴다. 나와 이종사촌은 6년이라는 나이 차이가 있었고, 관심사도 달랐다. 재학 중이면서도 공무원 시험을 동시에 준비한다던 이종사촌은 피곤해 보였다. 빨리 이 자리를 끝내 주는 것이 나을까 싶었던 차에 이종사촌이 말문을 열었다.
"아까 오후에 수고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어."
'수고'는 이모부네 부모가 키우던 개였다. 나이가 정말 많은데 얼마나 많은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이종사촌은 말했다. 이모부네 아버지가 집에 돌아오면 이모부네 어머니는 현관 쪽은 쳐다보지 않고 수고하셨어요, 라는 말만 건넸다고 한다. 그 모습을 보고 자란 개는 수고, 라는 단어만 들으면 현관으로 달려가 혀를 내밀며 헥헥댔고 그래서 수고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내가 귀엽다고 하자 이종사촌은 실제로는 정말 못생겼다고 웃었다.
이모부네 아버지와 어머니가 차례로 죽고 나자, 늙은 수고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의견이 분분했다. 이모부네 누나들은 너가 가장 많이 상속받았으니 쟤도 데리고 가라고 했다. 이모부는 개를 싫어했지만 어쩔 수 없이 수고를 데리고 고향으로 내려갔다. 이종사촌은 저번 여름방학 동안 수고를 돌봤다. 이모부네 집에서 수고는 쓰다듬어 주면 참을 수 없다는 듯이 짖어댔다. 처음엔 예전 주인을 그리워하고 새 주인을 낯설어하는 것 같아서 안쓰러웠고 잘해 주었는데, 종양이 자라 아파서 그런 거였다고 했다. 약을 먹으니 한결 밝아졌고 늙은 개답지 않게 사료와 간식을 왕성하게 먹어치웠다고 했다. 언니, 라고 이종사촌이 나를 부르더니 입을 다물었다. 이내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그게 되게 꼴 보기 싫은 거 있지. 이해해?"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고개를 끄덕여 줬다. 그 뒤로 이종사촌은 말이 없었다. 우리는 곧 헤어졌다. 이종사촌은 학교 도서관으로,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새집 특유의 페인트 냄새를 맡으며 나는 조금씩 기분이 나빠졌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나중에는 기분이 너무 나빠져 전석에게 전화를 걸어 울었다.


*


도시형 생활주택은 아스팔트로 포장된 둔덕 위에 위치해 있었다. 건물 뒤편에는 작은 절과 산이 있었고 때때로 종이 울리는 소리와 까마귀가 까악, 까아악, 하고 우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나는 그다지 감흥이 없었는데 딱 한 번 집에 놀러 왔던 전석은 좋아했다. 베란다로 나가 H시와 크게 다르지 않은 도시 한복판을 내려다보며 확실히 분위기가 다르다고 했다. 그러면서 담배를 꺼내들었고 나는 화를 냈다. 안 돼, 그러면 안 된다고 했다니까!
그럴 필요까지는 없는데 그렇게 해버렸던 순간을 떠올리면 쓸쓸하다.


둔덕 바로 아래에 도착했을 때는 1시 50분이었다. 다행히 2시까지는 10분 정도 남았다. 달리는 택시 안에서 끊임없이 남은 시간을 계산했던 나는 완전히 지쳐 있었다. 어서 집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오늘만큼은 가늠하는 것 없이 쉬고 싶었다.
그런데 둔덕 위, 건물 입구에 생수를 가득 실은 트럭이 주차되어 있었다.
나는 제자리에 서서 멍하니 둔덕 위를 올려다봤다. 움직일 수가 없었다. 분명 시간이 있었다. 먼저 집에 들어가 대기할 수 있는 시간이 내게 남아 있었다. 그러나 택배기사는 이미 와 있었다. 이쯤이면 뭔가 항의할 수 있지 않나? 라는 생각이 들자마자 곧장 부끄러웠다. 고작 10분이었다. 예정 시간보다 10분 정도는 일찍 올 수도 있었고, 그것이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하지만 누구에게도 잘못이 없는 상황에서 나는 왠지 억울했다.
운전석에 앉아 있던 택배기사가 차문을 열고 내렸다. 건물 주변을 에워싸듯 설치된 조명 덕분에 택배기사의 얼굴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그는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나이가 적어 보였다. 택배기사는 트럭 화물칸으로 걸어갔다. 나는 핸드폰을 무음으로 설정해 놓고 조심스럽게 둔덕을 오르기 시작했다. 그가 배달할 물건의 수령자가 나임을 알아차리지 않기를 바랐다.
택배기사는 아직 나를 보지 못했다. 구두 굽이 바닥에 닿는 소리가 울리지 않도록 내 숨마저도 죽였다. 택배기사가 생수 묶음을 화물칸에서 내렸다. 그리고 한 손으로는 어깨를 주무르며 한 손으로는 주머니에 있는 핸드폰을 꺼냈다. 나는 이제 그의 바로 옆에 서게 되었다.
택배기사가 어디론가 전화를 걸다가 나를 발견했다. 나는 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으려, 당신과는 관련이 없는 이 건물의 또 다른 입주자로 보이기 위해 노력했다. 그가 나를 빤히 보면서 통화 종료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로비 출입문의 인터폰으로 손을 뻗는 내게 말을 걸었다.
"여기 살아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비밀번호를 눌렀다. 출입문이 열렸다. 나는 얼른 로비 안으로 들어갔다. 로비 중앙에 있는 엘리베이터로 다가가는데, 뒤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열려 있는 출입문으로 택배기사가 들어온 모양이었다. 나는 뒤돌아보거나 확인하지 않고 곧장 엘리베이터 옆 비상구로 향했다. 그와 같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같은 층에 내려 같은 호수 앞에 서 있을 상황을 피하고 싶었다.
나는 2층에 살았다. 로비가 있는 층 다음에 1층이 시작되는 건물의 특성상 3층에 살고 있다고 봐야 했다. 계단을 이용하는 입주자는 거의 없었다. 말 그대로 비상시에만 사용되는 계단을 두세 개씩 밟고 올라갔다. 통로 안에 구두가 부딪치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탕탕탕탕탕! 하는 소리는 벽에 부딪쳐 메아리처럼 반복되었다. 이어지고 또 이어지는 저 소리들이 희미해지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추격해 오는 것 같아 두려웠다.
비밀번호를 자꾸 틀렸다. 뜨거워진 손바닥에서 땀이 났고 도어록을 누르다 손가락이 쉽게 미끄러졌다. 내가 막 문을 열었을 때, 2층입니다, 라고 도착을 알리는 엘리베이터의 기계음이 들렸다. 재빨리 안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나는 현관에 서서 신발도 벗지 않고 문을 쳐다보고 있었다. 허락하지 않는 누군가가 들어오는 것을 감시하는 것처럼.
문 밖은 지나치게 조용했다. 일부러 걸음소리를 죽이며 2층 복도를 걷고 있는 택배기사의 모습이 그려졌다. 그가 무거운 생수 12병을 들고 내 호수를 찾아 두리번거리는 모습은 그려지지 않았다. 나는 머뭇거리다가 문에 귀를 댔다.
쾅!
별안간 문에 뭔가가 세게 부딪쳤다.
아! 하는 소리가 튀어나오기 직전에 황급히 손으로 입을 막았다. 나는 그랬다고 생각했지만 내 비명은 분명 튀어나왔을 것이다. 문에 가해진 충격이 고스란히 전달된 귀와 뺨이 욱신거렸다. 귀는 그대로 문에 두고 있었다. 나는 엘리베이터가 내려갑니다, 라는 안내음을 알릴 때까지 그 자리에 서 있을 참이었다. 그러나 내려간다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대신에 픽, 하고 웃는 소리를 들은 것은 단순한 착각일 뿐이라고 나는 스스로를 설득했다. 그렇게 믿어야만 했다.**




* 본 작품은 2019 청년예술가 생애 첫 지원사업에 선정된 작가의 작품입니다.

* 작중 용우의 전시 그림은 1997년 뉴욕현대미술관(MoMA)에서 이불(Lee Bul)이 선보인 「화엄」에서 착안되었음을 밝혀 둔다.















박송아

작가소개 / 박송아

1988년 광주 출생. 2012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부문 당선.


《문장웹진 2019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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