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림보

  • 작성일 2018-10-01
  • 조회수 4,028

[단편소설]



림보



김남숙




언젠가 그런 영화를 봤다. 해가 뜨기 전, 극장에 들어갔기에 반값으로 본 영화였다. 영화는 대략 그랬다. 이를테면 꿈속에서 또 꿈을 꾸는 일. 한없이 늘어지는 시간. 영원한 불변의 밤. 절대로 깨지 않는 꿈의 상태, 림보. 영화는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 일을 계속해서 보여줬다. 남자와 여자는 해변을 걷는다, 그리고 다음날도 해변을 걷는다. 남자와 여자는 꿈에서 계속해서 해변을 걷는다. 꿈속은 남자와 여자 둘뿐이고, 그 둘은 행복한 듯 웃는다. 그리고 나는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남녀가 해변을 걷는 모습을 보았다. 좀처럼 웃음이 나오지 않는 영화였다. 그러나 나는 그들이 부러웠다. 그들은 계속해서 잠을 자고 있으니까. 거듭되는 꿈속에서 해변을 걷고 있었으니까. 나는 그들이 꿈을 꿀 때마다, 해변을 걸을 때마다 혼자 극장이 떠나가라 웃었다. 나는 그들과 달리 좀처럼 잠을 잘 자지 못했다. 한없이 늘어지는 시간. 영원한 불면의 밤. 온통 까맣기만 한 나의 림보. 나는 스크린 속 그들이 조금은 불행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걷는다. 이미 버려진 창고를 지나서, 길고양이들이 새끼를 여덟 마리나 낳은 지붕을 지나서, 나는 같은 골목을 여러 번 돈다. 벌써 서른 바퀴. 언제부터 동네를 걷기 시작했는지는 모른다. 아마 세어 보지는 않았지만 꽤 오래되었을 것이다. 잠이 오지 않을 때부터 골목을 돌기 시작했으니까 꽤 오래되었겠지. 나는 매번 다리가 파르르 떨릴 때까지 걷는다. 몸이 지칠 때까지 나는 쉬지 않고 걷는다. 핏기 없이 노랗게 부어오른 발이 눈에 들어왔다. 예쁘다, 아니, 예쁘지 않다. 나는 여러 번 생각을 바꾼다. 언젠가 나와 같이 살았던 여자는 잠을 영 자지 못하는 나를 보며 불운을 타고난 애라고 말한 적도 있었다. 너는 불운을 타고난 애다, 너는 불운을 타고난 애다. 여자는 말하곤 했다.
나는 여자의 화가 난 살쾡이 같은 목소리를 아직도 기억한다. 물론 지금은 그 여자가 어떻게 되었는지 알 수 없다. 여자는 어느 순간 사라졌고, 정말로 동네 살쾡이나 길고양이처럼 어느 집 지붕 위에 올라가 나같이 불운을 타고난 새끼들을 여럿 낳았을 수도 있었다. 여자라면 왠지 그런 방식으로 삶을 유예할 것 같았다. 불운한 한 마리, 두 마리, 세 마리…….
살쾡이를 닮은 여자 때문인지 나에게는 아주 오래 전부터 비에 젖은 길고양이 냄새가 났다. 지금은 그 냄새가 점점 연해졌지만 비가 오는 날이면 나에게서는 좀 더 지독한 냄새가 나곤 했다. 늙은 고양이 냄새. 그리고 나는 그 냄새가 싫었다.
한때는 차라리 나에게서 잠이 완전히 떠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래서 그대로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만약 그때 잠이라는 것이 정말 나를 떠났다면 나는 눈을 뜬 채로 죽어 있었겠지. 그렇지만 나는 미친 듯 불면에 시달리다가도 어느 순간 기절하듯 잠에 들곤 했다. 불운을 타고난 애, 나는 그럴 때마다 그런 말을 떠올렸다. 차라리 그냥 죽어버렸으면 좋을 텐데. 나는 매일 밤 중얼거렸다.


창밖이 서서히 밝아지는 것이 보였다. 채 10평도 안 되는 방에 커다란 창문이라니. 나는 창문으로 들어오는 푸른 쪽빛을 보았다. 벽의 반절을 차지하는 창문. 나는 서서히 눈꺼풀이 밝아지는 것을 느꼈다. 곧 시끄러운 알람이 울렸다. 누운 지 얼마 되지 않은 시간이었다. 나는 꼬박 한 시간도 잠들지 못하고 옷을 갈아입고 밖으로 나왔다. 알 수 없는 피로에 몸이 파르르 떨리는 기분이 들었다. 매일 무언가 묵직한 피로가 온몸을 짓누르는 느낌, 나는 그 느낌을 매번 견딘다.
출근 버스에는 매번 똑같은 표정의 얼굴들이 눈을 끔뻑이고 있었다. 나는 버스를 둘러보았다. 맨 뒷좌석에 보이는 거뭇거뭇한 얼굴. 나는 그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 야, 야. 이쪽으로, 이쪽으로, 여기.
나는 버스 오른쪽 맨 뒷좌석에서 들리는 소리를 들었다. 거뭇거뭇한 얼굴. 버스 오른쪽 맨 뒷좌석에서 누군가 머리를 치켜세우고 손짓을 하고 있었다. 나는 그쪽으로 더듬더듬 걸음을 옮겼다. 얼굴이 확실히 보이지는 않았다. 버스는 사람이 다 앉기도 전에 제 속력에 맞춰 출발하고 있었다. 버스가 덜컹일 때마다 다리가 휘청거렸다. 핏기 없이 노란 발목. 버스 창문으로 햇빛이 들 때마다 다리에 든 멍이 눈에 잘 보였다. 나는 천천히 걸어 그대로 버스 오른쪽 맨 뒷좌석에서 두 번째 자리에 앉았다. 옆자리에는 얼굴에 돋아난 거뭇한 솜털이 잘 보이는 미주가 앉아 있었다.
― 미주구나.
나는 말했다.
― 그럼 나밖에 더 있냐. 저번 달까지만 해도 금방 알아보더니. 눈이 더 안 좋아졌나?
미주가 말했다.
― 그러게. 피곤해서 그래. 잠을 잘 못 자서.
나는 말했다. 나는 왼쪽 눈에서 자꾸만 새어 나오는 눈물을 손등으로 닦아냈다. 요즘 들어 주기적으로 이유 없이 축축한 눈물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미주는 나를 가까이에서 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 병원이라도 가봐. 눈 나쁜 것 티내지 말고. 괜히 누가 꼰지르기라도 하면……. 꼭 백내장 걸린 것 같다. 할머니 눈 같다.
미주가 말끝을 흐렸다. 나는 미주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거뭇거뭇 얼룩진 듯한 미주 얼굴. 정말로 미주의 얼굴이 전보다 흐릿하게 보였다. 여전히 미주의 얼굴에 돋아난 검은 솜털이 보이긴 했지만 전보다 시력이 두 배는 안 좋아진 것 같았다. 나는 축축한 눈꺼풀을 끔뻑이며 다시금 새어 나오는 눈물을 열심히 닦아냈다.
미주는 내가 아는 이 중에 가장 거구였다. 187센티미터에 130킬로그램. 미주는 이 공장에서 가장 오래 일한 여자애였다. 공장에서 하는 일은 아주 작은 부품들의 하자를 발견하는 일이었는데, 아무리 큰 돋보기 판으로 공정한다고 해도 눈이 나쁜 사람은 하지 못하는 일이었다. 우리는 여름에도 온몸을 감싸는 흰 방진복을 입고 부품을 골라냈다. 어떤 이들은 웬만하면 온몸을 감싸는 흰 방진복이라든가 공장 내 노동의 순환 문제라든가에 대해 너무 구식이라며 투덜거리는 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들이 미간을 구기며 말하는 모습이 좀 더 우스웠다. 무언가에 골똘한 바보들 같았다.
미주는 누구보다 하자 있는 부품을 잘 골라냈다. 그리고 나는 아니었다. 나는 갈수록 하자 있는 부품을 박스에 그냥 실었다. 미주는 나에게는 시력이 좋다기보다 눈썰미가 좋으면 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말하곤 했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내가 빠른 속도로 눈이 나빠지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아마 이 속도라면 나는 언젠가 곧 장님이 되어 있을 것이었다. 매일 매일이 까만 밤, 매일 매일이 무덤 같은. 무언가에 골똘하지 못한 바보의 머릿속처럼. 나는 점점 잠이 들지 못하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시야가 뿌옇게 변하고 있었다. 꼭 혼자만 비가 오는 곳에 서 있는 기분이었다.


교대 시간을 알리는 알람이 울리고 나는 공장으로 들어갔다. 버스 계단을 잘못 디뎌 그대로 고꾸라질 뻔하기도 했지만 괜찮았다. 어쨌든 완전히 넘어지지 않았으니까. 나는 살짝 삐끗한 발목을 털며, 나와 교대하는 이들을 바라보았다. 신문지 뭉치가 지나가는 것처럼 방진복을 입은 그들은 회백색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나는 공장으로 들어서자마자 여러 개의 라인 중 가장 귀퉁이에 있는 라인에 섰다. 내가 서 있는 라인은 속도가 가장 느린 라인이기에 미주가 특별히 자리를 배치해 준 일이었다. 사실 별 차이는 없지만 미주는 친절하니까, 나는 미주의 말에 잘 따랐다.
나는 멀리서 미주를 보기 위해 까치발을 들었다. 왠지 멀리서 미주가 나에게 웃어 보이는 것 같았다. 잘 보이지는 않지만 얼굴이 우겨져 있는 듯해 보이니까, 분명 미주는 웃고 있었을 것이다. 나는 컨베이어 벨트에 실려 나오는 부품들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동그란 호스 모양이나 나사 모양의 부품들이 지나갔다. 나는 커다란 돋보기 검수판에 남들보다 좀 더 가까이 붙어 부품들을 검수하기 시작했다. 전보다 부품들이 더 흐릿하게 보였다. 어떤 제품들은 너무 작아서 물방울처럼 보이는 제품들도 있었다. 게다가 눈에 보일 만한 큰 제품의 하자를 잡아내려고 손을 뻗으면 이미 내 라인을 벗어난 후였다. 나는 간간이 미주의 말이 떠올랐다. 꼭 백내장에 걸린 할머니 눈 같다. 그러곤 괜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옆 라인에 선 여자가 나를 흘깃 쳐다보았다.
― 제대로 좀 봐요. 두 번씩 하게 하지 말고.
여자가 말했다.
나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떤 말을 덧붙일까 했지만 그러지는 않았다. 백내장에 걸린 할머니. 푸르고 짓무른 할머니의 눈. 나는 라인에 서서 돋보기 앞에 손을 쭉 폈다. 당장이라도 푸르고 짓무른 눈을 커다란 볼록거울로 다가가 확인하고 싶었지만 그러지는 않았다. 확인하면 정말 금방이라도 장님이 되어버릴 것 같았다. 돋보기 앞 손끝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어깨를 짓누르는 듯한 피곤함, 나는 한 번 더 그런 기분을 느꼈다.
나는 잠깐 휴게 버튼을 누르고 휴게실로 들어왔다. 어쩐지 이 일을 오래 하지 못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정말로 머지않아 금방 장님이 되어버릴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너는 불운을 타고난 애다, 너는 불운을 타고난 애다, 나는 어디선가 그런 목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살쾡이가 우는 소리. 누군가 내 등을 할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살쾡이 같은 여자가 등에 매달려 하루 종일 목을 조르는 것 같았다. 나는 전보다 극심한 피로를 느꼈다. 손을 펴고 흐릿한 눈을 벅벅 긁었다. 긁으면 긁을수록 눈에 열이 오르면서 눈꺼풀이 부어오르는 기분이 들었다. 눈물이 차오른다기보다 무거운 기름이 차오르는 것 같았다. 나는 괜히 어제 보았던 기수를 떠올렸다. 뭐든 한 박자씩 느린 기수. 굼벵이 기수. 그러곤 아까의 내 행동과 기수를 번갈아 생각하며 조금 웃었다. 어쩐지 기수를 생각하면 뭐든 괜찮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지금쯤 창고로 몰려들고 있는 고기 트럭을 아주 느린 걸음으로 피하고 있을 기수였다.
기수는 내가 잠이 오지 않을 때부터 나를 알고 있는 유일한 친구였다. 그리고 기수는 잠이 오지 않는 나에게 왜 잠을 안 자는지에 대해서 물어보지 않는 유일한 친구였다. 그냥 그럴 수도 있으니까, 기수는 늘 그렇게 말하곤 했다. 기수는 그런 것에 대해 누구보다 나를 잘 이해했다. 기수도 그다지 나와 다를 바 없었으니까. 기수는 뭐든 한 발이 느렸고 나는 모든 일에 운이 없었다. 기수는 트럭이 거의 눈앞에 섰을 때에야 자리를 피하는 애였다. 그럴 때마다 기수는 자신도 나만큼이나 눈이 나쁘기 때문이라고 했지만 실은 눈이 나쁘지 않았어도 기수는 늘 한 발짝 느렸을지도 몰랐다. 기수는 늘 철지난 유행병에 걸리고 늘 철지난 옷을 입고 늘 철지난 과일들을 먹었다. 그리고 그건 기수의 잘못은 아니었다. 그냥 그럴 수도 있는 거니까. 나는 그렇게 매번 한 발 느린 기수가 좋았다. 기수도 나만큼이나 운이 없는 애 같았다.
기수는 자기의 팔을 자를 수도 있는 커다란 칼을 매번 쥐고 일했다. 기수는 창고형 대형 정육점에서 일하고 있었다. 자기가 자르고 조리한 고기가 제일 맛있다며 기수는 항상 말하곤 했다. 만날 비계만 주워 먹으면서. 기수는 항상 그런 말을 빼먹지 않았다.
냉동고기 혹은 생고기를 창고에 담고 기호에 알맞게 썰어 주는 일. 그게 기수의 일이었다. 기수는 손이 느리다며 항상 욕을 먹었지만 그래도 그 일이 천성에 맞는다고 말하곤 했다.
― 이게 적성에 안 맞았으면 벌써 손이 잘렸겠지.
어쩐지 눈이 제대로 보이지 않아 인상을 찌푸리며 말하는 기수가 나는 조금은 웃겼다.
― 그건 적성이랑은 상관없는 일이야, 아직은 운이 조금 남아 있는 거지.
나는 말했다.
기수에게서는 항상 쿰쿰한 피 냄새가 났다. 정육점에 들어온 이후로부터 그런 냄새가 나는 거라고 했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기수도 어느 순간부터 몸에서 그런 냄새를 키워 왔다는 것을 말이다. 나에게서 아무리 씻어도 빠지지 않는 길고양이 냄새가 나는 것처럼. 절대로 빠지지 않는 쿰쿰한 피 냄새. 오래되어 굳어버린 피딱지 냄새. 기수 냄새.
― 얼른 나와요, 자기만 쉬는 줄 아나. 종 쳤어.
휴게실에 고개를 빼꼼 내밀고 여자가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여자의 얼굴이 잘 보이지는 않지만 입술이 아주 새빨간 것만 눈에 잘 보였다. 나는 대답을 하려다가 곧바로 방한복을 머리까지 올려 입었다.


나는 점점 뿌예지는 시야로 천천히 걸어서 퇴근 버스에 탔다. 허리가 전보다 굽어지는 것 같았다. 앞이 잘 보이지 않아 허리를 빼고 걷다 보니 정말 꼭 할머니가 된 것만 같았다. 맨 뒷좌석에서 누군가 나에게 손짓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나는 맨 뒷좌석까지 가지 않았다. 움직이는 모든 것들이 피곤하게 느껴졌다. 차라리 완전히 눈이 멀어버렸으면 좋겠다고 잠깐 생각이 들었다. 뒤에서 웅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자꾸만 눈에서 눈물이 새어 나와서 한 손으로는 주기적으로 눈을 닦아내야 했다.
― 야, 야, 이쪽으로 오라니까.
갑자기 거뭇거뭇한 얼굴이 시야를 박차고 들어왔다. 미주였다.
― 못 봤어.
나는 눈물을 닦아내며 말했다. 실은 창밖의 나무가 흔들리는 것인지 누군가의 손이 흔들리는 것인지 잘 알 수 없었다. 미주가 거구가 아니었다면 미주를 못 알아봤겠지. 나는 내심 미주가 거구이기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거짓말, 너 진짜 안 보이는 거 아니야?
미주가 말했다.
― 아니, 다 보여. 잠을 못 자서 그래. 피곤해서.
나는 말했다. 미주는 버스 복도 쪽에 앉은 나를 창가 쪽으로 밀어내고 내 옆에 앉았다. 미주가 숨을 쉴 때마다 독한 들풀 냄새가 났다. 미주는 무언가 할 말이 있다는 듯 입술을 움직거리며 뜸을 들였다. 부끄러운 듯 간간이 엄지를 쥐어짜듯 만지기도 했다.
― 나중에 내가 진짜로 고백이라는 걸 할 수 있으면…….
미주가 옆 좌석에 앉아 말했다. 버스가 자꾸 덜컹거려서 미주의 목소리가 떨렸다. 나는 아무 말 없이 미주를 바라보았다. 아주 가까이에서 보니 미주의 얼굴은 예전 그대로였다. 거뭇거뭇 돋아난 부드러운 솜털들. 나는 솜털이 돋아난 미주의 얼굴을 쓸어내리려다가 말았다. 미주가 한참 뒤에야 말을 이었다.
― 나중에 내가 진짜로 고백이라는 걸 할 수 있으면……. 고백을 하고 난 다음에 제일 높은 고층 아파트에서 떨어질 거야. 앞 동네에 새로 짓고 있는 아파트 있잖아. 그 정도가 좋을 것 같아.
미주가 말했다. 미주는 부끄러운 듯 말했지만 나는 그다지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고층에서 온몸이 분해된 미주가 예쁘지 않을 것 같았다.
― 거긴 너무 비싼데, 좀 싼 데로 골라 봐. 미주야.
나는 일부러 그렇게 말했다. 그러곤 무언가 말을 덧붙이려다가 미주의 표정을 보고는 그만두었다. 미주는 미주가 늘 말하던 진짜 사랑이라는 것을 하는 것 같았다.
미주는 누군가를 좋아했다. 미주의 말을 빌리자면 그건 진짜 사랑이라고 했다. 우스꽝스러운 말이었지만 미주는 그를 정말 사랑하는 것 같았다. 미주에게 그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들었지만 기억이 잘 나지는 않았다. 워낙에 사소하고 일상적인 일이기에 나는 그가 같은 공장에 다닌다는 것, 미주보다 상사라는 것, 그리고 정수리가 거의 없는 대머리라는 것 외에는 그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다. 불쌍한 미주, 대머리와 사랑에 빠지다니.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 왜?
나는 한참을 뜸들이다 다시 말했다. 버스는 여전히 덜컹거리고 있었고, 알 수 없이 차오르는 눈물 때문에 미주의 주변에 희뿌연 것들이 떠다니는 것 같았다. 꼭 미주 혼자만 비를 맞고 있는 것 같았다.
― 그냥, 그렇게 하고 싶어. 모든 게 다 끝난 기분일 것 같아.
미주가 말했다.
― 고백을 하면 더 좋아져야지. 죽으면 좋아질 것도 없잖아. 연애도 하고, 사랑도 하고.
나는 말했다.
― 나는 곧 고백할 거야. 어떨 것 같아?
미주는 내가 하는 말에는 대답하지 않고 자기의 말을 계속 이었다. 꼭 더 좋아질 리 없다는 대답 같았다.
― 요즘에 그런 이유로 죽는 사람이 어디 있어.
나는 계속해서 눈을 비비적거리며 말했다. 이상한 말을 하는 미주가 조금 짜증이 났다. 미주가 살짝 웃어 보이고는 그저 창밖을 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고층 아파트에서 분해되어 고깃덩어리가 된 미주를 잠깐 상상하다가 생각을 돌렸다. 버스가 덜컹거릴 때마다 미주에게서 평소에는 나지 않던 독한 데이지꽃 향기가 났다. 꼭 여러 가지 로션과 향수를 마구 섞어 놓은 향기 같았다.


나는 집 근처로 돌아가 골목을 천천히 걸었다. 어디선가 쿰쿰한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몸을 고양이처럼 한껏 웅크린 채, 깨금발을 하고 슬금슬금 걸어오는 기수가 보였다. 기수의 파란 티셔츠에 붉은 핏자국 같은 게 군데군데 잘 보였다.
― 뭐야, 그런다고 하나도 안 놀라. 이건 뭐야?
나는 말했다.
― 어떤 거? 이거? 이거 작업복이야. 그냥 그대로 입고 왔어.
기수가 말했다. 기수는 초가을의 쌀쌀한 날씨에도 후줄근한 반팔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기수는 나를 한참을 바라본 뒤에 가까이 다가와 내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 눈이 완전히 맛이 갔네. 백내장에 걸린 사람 같다. 예전에 동네 백내장에 걸린 할머니 눈 같아.
기수가 말했다.
― 아니야.
나는 고개를 살짝 돌리며 말했다.
― 피곤해서 그래. 잠을 잘 못 자서.
나는 말을 덧붙였다.
― 그래도 이런 얼룩 같은 건 보이나 보네. 그리고 가슴 쪽이 아니라 배 있는 쪽, 여기에 얼룩이 묻은 건데.
기수가 말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기수가 투박한 손을 어깨 위에 올렸다. 쿰쿰한 냄새. 골목을 감도는 냄새. 우리는 나란히 붙어서 동네 골목을 좀 걸었다.
기수가 어깨에 손을 올리고 걷다가 천천히 티셔츠 안으로 손을 집어넣기 시작했다. 기수는 매번 손톱 밑에 피 때가 까맣게 굳은 손으로 간지럼을 태웠다. 다섯 살 어린아이처럼 기수는 항상 그런 장난을 쳤다. 기수의 손이 움직일 때마다 쿰쿰한 냄새가 코밑을 스쳤다.
― 간지러워.
나는 말했다. 기수가 실실 웃었다. 기수가 손을 더 깊숙이 집어넣고 간지러움을 태웠다.
― 하지 말라고.
나는 말했다.
― 하지 말라고.
기수가 내 말투를 흉내 내듯 말했다. 우리는 길 한복판에서 낄낄댔다. 바람이 불 때마다 기수에게서 나는 쿰쿰한 피 냄새가 잘 났다. 아마 기수한테서도 내 지독한 냄새가 났겠지. 운 없는 애들. 나는 기수와 한참을 거리를 걸으며 장난을 쳤다.
― 벌써 춥다, 가을인가 봐.
기수가 어깨동무를 한 채 걸으며 말했다.
― 가을이 된 지는 한참 됐어. 너만 아직도 반팔을 입고 있는 거야.
나는 말했다.
기수가 아무 말 없이 멋쩍게 웃었다. 우리는 한참을 걸었다. 벌써 서른 바퀴. 기수가 숨을 헉헉거리며 발을 맞춰 걷고 있었다. 나는 기수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살이 없는 얼굴과 돌기처럼 튀어나온 뼈대들. 가끔 기수와 이렇게 거리를 걸을 때면 가끔 이상한 기분이 들곤 했다. 조금은 행복한 기분. 행복해서 금방이라도 오줌이 나올 것 같은 기분. 나는 기수의 뼈대를 보며 잠깐 웃었다.
― 넌 아직도 이렇게 맨날 걸어 다니네. 힘들어 죽겠다.
기수가 내 쪽을 보며 말했다.
― 응. 안 걸으면 잠이 안 와.
내가 말했다. 기수가 간간이 입으로 피리 불듯 이상한 소리를 냈다. 나는 기수를 쳐다보았다. 기수는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괜히 입으로 피리소리를 낸다거나 철지난 유행가를 불렀다.
― 할 말 있으면 해.
나는 말했다. 한참을 우물거리다 그제야 운을 떼었다.
― 나 며칠 전에는 죽은 소가 아니라 진짜 살아 있는 소를 봤어.
입으로 내던 소리를 잠시 멈추고, 기수가 말했다. 말하는 기수의 이에 선지 같은 까만 조각이 끼어 있었다.
― 거래처 사장님이 직접 보여준다고 나랑 사장님이랑 몇 명 따라갔는데, 소가 진짜 많더라고. 그 사장님 진짜 부잔가 봐. 가끔 소를 훔쳐온다는 소문도 있는데, 그건 잘 모르겠어. 어쨌든 소가 살아 있었거든. 살아 있는 소는 처음이야. 살아 있으니까, 살아 있으니까, 신기하더라.
― 그래서?
나는 말했다. 기수가 진짜로 하고 싶은 말을 자꾸만 숨기는 것 같았다.
― 요즘 소 값이 똥값이잖아. 사장님이 술 좀 먹더니, 화가 난 건지, 머리가 돈 건지. 다 말라 가는 소를 데리고 와서 직접 한 마리만 잡아 보라고…… 한 마리를 끌고 나오더라고.
기수가 잠시 말에 뜸을 들였다.
― 다들 못 한다고 하더라고. 그러더니 화살이 나한테 온 거야. 다들 내가 바보라고 너무 무시하니까 술도 좀 마셨겠다, 제가 할 수 있어요, 하면서 내가 소의 대가리를 내리쳤어. 그냥 아무거나 보이는 대로 잡고 있는 힘껏 때렸는데, 소가 금방 쓰러지더라.
기수가 말했다. 기수의 손톱 밑에 까만 피 때가 눈에 들어왔다.
― 사람들이 박수를 치고 낄낄대는데, 기분이 나쁘지 않았어. 그 사람들, 죽는 소나 돼지는 만져 봤어도 살아 있는 소 대가리를 쳐본 건 내가 유일할 거야. 그치? 나는, 나는 죽여도 봤는데…….
기수가 일부러 기쁜 듯 말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기수가 속으로 벌벌 떨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겁쟁이. 멍청한 기수.
― 멍청한 짓을 했구나.
나는 말했다. 기수가 죄라도 지은 것처럼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숙였다.


걷는 내내 눈물이 자꾸 새어 나와서 닦지 않고 그냥 내버려두었다. 눈물을 닦아내는 게 귀찮았다. 잘 보이지는 않았어도 동네는 매번 똑같은 것 같았다. 삭아 가는 나무 의자, 버려진 창고의 고양이들. 골목 구석구석을 감싸 도는 악취들. 나는 고개 숙인 기수가 조용히 웅얼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 집을 사고 싶어. 내 집. 집도 사고 차도 사고 강아지도 키우고 그렇게 살고 싶다.
나는 기수를 쳐다보지 않았다. 멍청한 기수. 바보 기수.
피부에 무언가 물방울이 자꾸 떨어졌다. 기수가 말하기로는 오늘부터 비가 온다고 했다. 나는 눈을 비비적거렸다. 빗방울이 눈에 잡히지 않았다.


집에 들어오자마자 기수는 바로 잠에 들었다. 나는 겨드랑이가 계속해서 가려워 온몸을 벅벅 긁었다. 피부를 벅벅 긁을 때마다 부스럼 같은 게 떨어져 내렸다. 마치 작고 여린 털이 돋아나는 기분이었다.
나는 단잠에 빠진 기수를 그대로 두고 밖으로 나왔다. 나는 여전히 잠들지 못했다. 동네를 몇 바퀴 도니 금방이라도 해가 뜰 것 같았다. 안개처럼 비가 내리더니 빗방울이 점점 굵어졌다. 나는 점점 좁아지는 시야로 앞을 보며 계속해서 걸었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피로감, 나는 슬리퍼 사이로 퉁퉁 부은 노란 발을 쳐다보았다. 핏기 없는 발은 굳은살이 잔뜩 잡혀 있었다. 나는 딱딱한 발을 잠깐 어루만졌다. 그러곤 무어라 속으로 알아듣지 못할 말을 중얼거렸다. 누군가에 대한 저주의 말이었지만, 누군가가 확실히 떠오르지는 않았다. 그냥 다 죽어버려. 목구멍에 무언가 탁하니 걸리는 느낌이 들었다.
비 때문인지 아니면 전보다 시력이 더 나빠졌는지 앞이 불투명 유리를 덧대 놓은 것처럼 잘 보이지 않았다. 앞에 쓰레기 더미 같은 게 있어 피하기는 했지만 작은 장애물들은 피하기가 어려웠다. 나는 걷다가 누군가 쌓아 놓은 책 더미에 발이 걸려 넘어졌다. 그대로 얼굴부터 고꾸라진 모습이 우스꽝스러웠다. 나는 온몸에 힘이 풀려 그대로 가만히 누워 있었다. 잠들고 싶다, 잠들고 싶다. 목이 타들어가는 것처럼 뜨거웠다. 나는 길 한복판에 그대로 누워 잠깐 울었다. 억지로 잠깐 웃었던 것도 같고, 차라리 이대로 죽으면 좋을 텐데, 그런 말을 했던 것도 같았다. 기억이 바닥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바닥에 그대로 누워 매일 밤 살쾡이처럼 울부짖던 여자를 떠올렸다. 비가 등을 흥건히 적셨다.
여자도 나처럼 매일 밤 울부짖곤 했었다. 화가 난 살쾡이 같은 소리로, 찢어지는 소리로 여자는 매일 울었다. 나는 기억 뒤편에 숨어 있던 여자를 꺼내 보았다. 차라리 이대로 죽으면 좋을 텐데, 여자는 매일 밤 기도를 외우는 것처럼 그렇게 말하곤 했다. 여자는 염불을 외우는 듯 자주 알아듣지 못할 소리를 매일 중얼거렸다. 나는 매일 밤 잠들지 못했다. 잠이라는 것이 나를 영영 떠난 것처럼. 나는 여름에도 추위에 몸을 벌벌 떨었다. 살쾡이를 똑 닮은 여자, 나를 두고 간 집시 여자. 여자는 아침이 되어서야 자리에 누웠다. 여자의 따듯한 온기, 여자의 올곧은 등뼈가 느껴지면 나는 그제야 잠에 들곤 했었다. 나는 여자를 싫어했지만 여자가 떠날까 봐 무서웠다. 여자가 완전히 떠나버리면 정말로 혼자가 되어 버릴까 봐 무서웠다. 여자가 나를 할퀴고 발길질을 해도 나는 여자가 나를 떠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여자는 나를 때리기는커녕 만지는 것조차 하지 않았다. 더러운 세균이 득실거리는 사람으로 나를 취급했다. 나는 아무 온기 없는 방에서 혼자 몸을 웅크리고 오지 않는 잠을 기다렸다. 영원히 잠들지 못하는 춥고 외로운 불면의 밤. 나는 익숙해지지 않았다.
나는 한참을 길 위에 누워 있다가 몸을 일으켰다. 입안에서 피가 나는 것 같았다. 나는 일어나 다시 조금 더 걸었다. 눈에서 자꾸만 축축한 눈물이 새어 나왔다.


미주는 눈만 간신히 보이는 방진복을 입는데도 진한 화장을 했다.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미주에게서 전과는 다른 진한 화장품 냄새가 났다.
― 미주 예쁘다.
나는 말했다.
― 진짜? 진짜 예뻐?
미주가 말했다.
― 응, 예뻐.
나는 말했다.
― 근데 얼굴이 왜 그래?
미주가 말했다. 미주가 방진복에 흰 장갑을 낀 손으로 내 얼굴을 쓰다듬었다. 따듯하다,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 피곤해서 그래. 잠을 못 자서.
나는 말했다. 입안이 부르터 말을 할 때마다 돌멩이를 입안에 굴리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요즘 미주는 매일 매일 기분이 좋아 보였다. 마치 금방 하늘로 날아가기라도 할 사람 같았다. 미주가 말한 것처럼 어딘가에 떨어질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사람 같기도 했다. 우리는 일이 끝나고 자주 편의점에 앉아 있었다. 미주는 의자에 앉자마자 그에 대해서 쉬지 않고 떠들었다. 막걸리나 소주를 마셨을 때는 사람들이 보는 시선과 상관없이 춤을 추기도 했다. 미주는 바람이 부는 것처럼 춤을 췄다. 춤을 추고 있는 미주의 얼굴이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미주가 웃고 있는 것 같았다. 행복한 미주 얼굴. 사랑에 빠진 미주. 바람이 미주의 뺨을 부드럽게 어루만져 주었다.
― 미주, 너는 행복하구나.
나는 말했다. 미주는 아무 말 없이 웃으며 춤을 계속해서 췄다. 내 주변을 뱅그르르 한 바퀴를 돌거나 손을 쭉 뻗어 보이기도 했으며 흔들리는 풀처럼 몸을 움직이기도 했다. 나는 미주의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아 그저 미주가 있는 쪽으로 고개를 돌려 웃어 보였다.
― 난 곧 고백할 거야.
미주가 춤을 추며 말했다.
― 응.
나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말했다. 미주에게 죽지 말라거나 고백을 하지 말라는 말을 하지는 않았다. 나는 미주가 행복한 대로 두고 싶었다. 슬프지만 아름답게. 나는 고층에서 누구보다 환하게 웃으며 떨어지는 미주의 환한 얼굴을 떠올렸다. 예쁘다, 미주. 예쁜 미주. 나는 중얼거렸다.


나는 다시 걷기 시작했다. 이미 버려진 창고를 지나서, 길고양이들이 새끼를 여덟 마리나 낳은 지붕을 지나서. 나는 같은 골목을 여러 번 돌았다. 벌써 서른 바퀴. 이미 장님이 되어버린 것 같았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구겨진 사진처럼 보였다. 그저 하나의 덩어리 같은 풍경들. 냄새나는 풍경들. 나는 장애물에 걸리면 넘어지기도 하면서 계속해서 걸었다. 지나가다 보이는 쇼윈도에서는 여전히 살쾡이 같은 집시 여자가 등에 매달려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눈꺼풀이 조금 환해질 때에야 집으로 돌아왔다. 집 앞에 새끼고양이처럼 웅크리고 있는 무언가가 보였다. 나는 그쪽으로 천천히 다가갔다.
나는 마치 추위에 부들부들 떨고 있는 무언가에 손을 뻗어 보았다. 쿰쿰한 피 냄새가 훅 끼쳤다. 기수였다.
― 왜 이제야 온 거야?
기수는 겁에 질린 듯이 울먹이는 소리로 말했다. 기수에게서 죽은 송아지 냄새가 났다.
― 나, 자꾸 이상한 꿈을 꾼다. 자꾸 죽은 소가 나와서…… 죽은 소. 내가 때린 소 있잖아. 그 소가 나와서, 자꾸 나와서, 미쳐버리겠어.
기수가 말했다. 기수는 몸을 벌벌 떨며 울고 있었다.
― 다 그 새끼들 때문이잖아, 그러니까 나를 왜 무시하느냐고. 나를 왜 무시하느냐고. 내가 뭘 못 해. 나는 다 할 수 있는데. 꿈에 나올 거면 그 새끼들 꿈에 나와야지. 왜 나한테, 나한테 그래.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추운 듯 몸을 벌벌 떨고 있는 기수가 불쌍했다.
― 불쌍한 기수.
나는 말했다. 기수는 내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무어라 중얼거렸다. 나는 몸을 웅크리고 덜덜 떨고 있는 기수의 등 뒤로 갔다. 그러곤 마치 내가 늙은 집시 여자라도 된 듯이 마디마디가 뾰족한 기수의 등에 가만히 기대어 있었다. 기수의 씩씩거리는 거친 숨소리가 들렸다.
― 나만 존나게 운이 없는 거야, 운이 없는 게 나를 이렇게 존나게 힘들게 하는 거야. 나만 이렇게 좆같이 사는 거야.
기수가 말했다. 기수가 울 때마다 등에서 물방울 소리가 났다. 나는 기수의 등에 기대 그 소리를 가만히 들었다.


나는 공장으로 가는 버스에 올라탔다. 사람들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지만 나를 쳐다보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손에 잡히는 것은 무엇이든 잡으며 버스에 올라탔다. 버스가 전과 똑같이 흔들리며 제 속도에 맞춰 달렸다. 버스는 어느 때와 다르게 조용했다. 여러 정거장에 섰지만 공장에 도착할 때까지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없었다. 야, 야, 이쪽으로, 이쪽으로. 나는 일부러 그렇게 중얼거렸다.
나는 방진복을 입고 중앙 라인에 섰다. 부품들이 빠르게 지나가고 나는 부품들은커녕 라인 위의 자리를 제대로 찾지도 못했다. 나는 계속해서 새어 나오는 눈물을 그대로 두었다. 늘 내 옆에 서 타박을 주던 여자도 그 외에 공장 사람들도 나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내가 반 미쳤거나 돌아버렸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나는 가만히 있다가 소리를 질렀다. 내가 라인에 서서 기절하듯 소리를 질렀을 때 사람들은 그제야 나를 밖으로 끌어냈다. 나는 갈비뼈가 휑하니 벌어지는 기분을 느꼈다.
나는 공장에서 쫓겨나 집으로 가는 버스를 여러 대 보냈다. 다음 새벽 교대차가 와도 미주가 버스에 타지 않았다.


며칠 내내 비가 내렸다. 나는 공장에도 집 밖에도 나가지 않았다. 차라리 이대로 죽으면 좋을 텐데. 걷지 않으니, 근육이 다 녹아버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는 창문을 열고 손을 뻗었다. 거세게 내리는 비가 마치 하늘에서 떨어져 내리는 미주같이 느껴졌다. 나는 환하게 웃고 있는 미주의 얼굴을 떠올렸다. 개 같은 년, 혼자만 뒈져버리고. 나는 일부러 욕을 했다.
사방이 온통 검은 밤처럼 느껴졌다. 온통 까만 밤만이 한없이 이어지는 꿈을 꾸는 것 같았다. 빛이 시야에 잘 잡히지 않았다. 나는 문을 걸어 잠그고 매일 밤 기도했다. 정확히 무엇을 빌었는지는 잘 몰랐다. 가끔씩 기수가 찾아와 자꾸만 반복되는 악몽에 대해 이야기했지만 나는 기수에게 문을 열어 주지는 않았다. 바보 같은 기수, 멍청한 기수. 나는 기수가 나를 죽었다고 생각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매일이 까만 밤의 연속이었다. 입안에서는 시고 구린 냄새가 났다. 나는 손을 의지해서 밖으로 나왔다.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뺨을 어루만져 주었다. 눈에서는 더 이상 눈물이 흐르지 않았다. 눈꺼풀을 끔뻑거릴 때마다 그저 바짝 마른 돌멩이 같은 안구가 느껴질 뿐이었다.
나는 길 한복판에 서서 걷기 시작했다. 아주 예전에나 그랬던 일처럼. 나는 쉬지 않고 걷다가 뱅그르르 돌기도 하고 손을 쭉 뻗기도 하면서 춤을 추었다. 나는 미주가 그랬던 것처럼 한 번도 춰본 적 없는 춤을 길 위에서 계속해서 추었다. 춤을 추고 있다는 것이 마치 고층 아파트에서 추락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평소보다 세 배쯤 되는 중력이 바닥으로 끌어당기는 느낌. 몸이 서서히 분해되는 느낌. 주변에서 낄낄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렸다.
나는 낄낄거리는 소리에 맞춰 계속 춤을 추었다. 그러다 순간 눈앞에 거대한 무언가 가로 막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그대로 바닥에 고꾸라졌다. 비에 젖은 바닥에서는 쿰쿰한 피 냄새 그리고 쌉싸래한 들풀 냄새가 났다. 나는 바닥에 누워 기수와 미주를 떠올렸다. 그들의 냄새를 떠올렸다. 그리고 아주 예전에나 보았던 웃는 얼굴, 기쁜 목소리 같은 것들도 떠올렸다. 나는 소리 내어 엉엉 울기 시작했다. 꼭 어느 늙은 집시 여자가 낳은 불행한 아이처럼. 나는 누워서 어딘가에서 백발이 되어 있을 집시 여자를 떠올렸다. 그러곤 여자가 될 수 있으면 오래 살았으면 좋겠다고 잠깐 생각했다. 누구보다 오래.
나는 뻑뻑한 돌멩이 같은 눈꺼풀을 손으로 가렸다. 늙은 고양이 냄새. 주변의 소음이 천천히 멀어졌다. 검은 배경으로만 이어진 꿈을 꾸기라도 하는 것처럼 주변이 온통 까맸다.
















작가소개 / 김남숙

2015년도 문학동네 신인상으로 등단


《문장웹진 2018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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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겐 낮술이 필요한 것 같은데 전하영 R과 나는 바닷가의 한 도시로 가는 기차를 타고 있었다. 우리는 그 도시에 있는 어느 서점의 초청으로 북토크에 참석할 예정이었다. 처음에는 서점이라고 해서 작은 가게인 줄 알았는데 꽤 규모가 있었고 로컬에서는 인지도도 높은 곳이었다. 사례비가 두둑해서 나는 바쁜 R을 설득해 초청 인사로 함께 행사에 참석하기로 했다. 이럴 때는 그가 야근을 밥 먹듯 하고 시도 때도 없이 불려 다니는 일을 한다는 게 도움이 됐다. 주말에 집에 들어가지 못할 이유를 손쉽게 만들어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북토크는 공식적으로도 그의 일의 연장이었다. 북토크에서 이야기할 책은 내가 이십 년 전에 쓴 소설로 처음에 출간됐을 때만 해도 거의 팔리지 않았는데, 영화화되면서 다시 읽히기 시작했다. R은 그 영화의 제작자였다. 그가 우연히 들른 카페에서 책을 발견했고 영화화를 제의해 왔다. 안 될 게 뭐람? 그 책은 세상에서 잊힌 것이나 다름없었으므로 나는 반갑게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솔직히 말하자면 적지 않은 이차 저작권료에 더 관심이 많이 갔는데 알고 보니 그쪽에서는 내가 당연히 그보다 큰 금액을 부르리라 예상하고 미리 낮춰서 제시한 금액이라고 했다. 그런 사정을 파악하게 된 것은 R과의 관계가 좀 더 사적인 성격으로 진전된 이후의 일이었다. 그 후로 많은 것들이 변했다. 책이 영화화되자 죽은 사람이 돌아온 것처럼 책에 쓰인 시절도 내게 함께 돌아왔다. 이십 년 정도가 지나면 당시의 나를 더 이상 나라고 부를 수 없을 정도로 상황과 감정이 바뀐다. 인간의 몸은 7년마다 세포 전체를 모조리 갈아치운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책이 처음 출간된 이후 대략 세 번쯤은 완전히 다른 나로 거듭나 있는 셈이나 마찬가지였다. 가장 잘 아는 타인을 덕질하듯이 나는 과거의 나에게 향수를 느끼며 그때 그 시절의 장소를 방문하며 추억에 잠기곤 했고, 그때마다 함께하는 상대에게는 숨은 의도를 밝히지 않고 다른 볼일이 있는 것처럼 둘러댔다. 그것은 최근 들어 생긴 나만의 비밀이자 즐거움이었다. 북토크를 위해 우리가 방문하는 도시는 한때 유명한 관광지였지만 오랫동안 쇠락의 길을 걷다가 최근 들어 다시 각광 받기 시작한 지역이었다. 모든 것이 너무 비싸고 조밀한 서울에 진력이 난 젊은 사람들이 조금씩 모여들었고 사람들이 모이니 인터넷 매체들이 관심을 보였다. 이제 조만간 영화나 드라마의 촬영지로 물망에 오를 테고 그렇다면 이 도시도 많은 다른 곳들과 마찬가지로 프랜차이즈 카페와 플라스틱 상징물로 가득 찬 어느 평범한 한국의 소도시 중 하나로 거듭날 것이었다. 다름 아닌 영화제작자를 데려가는 셈이니 어쩌면 내가 그 도시를 망가뜨리는 하나의 중요한 계기를 마련하고 있는 건지도 몰랐다. 망상에 불과하겠지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온 세상이 나를 쳐다보고 있다는 느낌. 내가 하는 작은 행동이 불러일으키는 더 큰 효과에 대한 전망. 책이 영화화된 뒤로 줄곧 내가 느끼는 감정이었다. 기차가 출발하기를 기다리는 동안 R에게 그 도시에 가본 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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