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대한민국 태극기이 누리집은 대한민국 공식 전자정부 누리집입니다.

공식 누리집 주소 확인하기

go.kr 주소를 사용하는 누리집은 대한민국 정부기관이 관리하는 누리집입니다.
이 밖에 or.kr 또는 .kr등 다른 도메인 주소를 사용하고 있다면 아래 URL에서 도메인 주소를 확인해 보세요.
운영중인 공식 누리집보기

발포정

  • 작성일 2016-11-01
  • 조회수 3,224


[단편소설]



발포정



김성중



그녀에게는 두 명의 남자 친구가 있다. J와 JJ. 어린 시절의 동무들로 스무 살이 될 때까지 한 번도 떨어져 지낸 적 없다. 그녀는 예쁘고 변덕스럽지만 J와 JJ에게만은 한결같이 마음을 털어놓고 있다. 시골 마을의 여왕 같은 그녀. 연인은 자주 바뀐다. 그래도 어른이 되면 막연히 J와 JJ 중 하나와 연애를 하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스무 살이 됐을 때 사랑은 어떤 군인에게 향했고, 끝이 좋지 않았다. 그녀는 두 남자의 어깨에 번갈아 기대어 울었다. J와 JJ는 다정한 말로 위로해 주었다. “기운 내.” “우리는 언제나 너와 함께할 거야.”
스물세 살에는 마침내 도시로 나간다. 그녀는 자신의 미모가 시골에서나 특출한 것임을 깨닫고 기가 죽는다. 모델로서의 경력은 초라하게 시작된다. 부단히 애를 썼지만 무대와 카메라는 자꾸 멀어진다. 절망에 빠진 어느 날 J와 JJ에게 편지를 쓴다. 편지를 부친 지 일주일이 지났을 때 두 친구들은 그녀를 위로해 주기 위해 기차를 타고 달려왔다. “기운 내.” “우리는 언제나 너와 함께할 거야.” 손수건을 흠뻑 적시면서도 그녀는 여전히 두 개의 카드가 남아 있음에 안도했다. 이 어깨와 저 어깨. 둘 중 한 명은 나와 결혼하겠지. 아직까지 둘 다 친구로 누리고 싶다. 누구 하나에게 고정되고 싶지 않았다.
그 이유에 대해 그녀는 이렇게 변명했다. ‘우리 셋은 어릴 때부터 친구였는데, 둘 중 하나와 결혼을 하면 남겨진 사람은 얼마나 고통스러워지겠어?’ 그러나 여자는 하나, 남자는 두 명이니 언젠가 일어날 일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가진 운을 다 탕진하고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에는 그녀는 서른하나였다. 애인이 없던 적이 없었지만 이때만은 혼자였다. 마지막 애인은 오래전에 일했던 에이전시의 사장이다. 유부남이다. 운 나쁘게 임신이 되었다. 성인이 된 이후 주로 실패의 역사를 써왔는데, 그중에서도 최악이다.
사장은 그녀를 버렸다. 아이도 뱃속에서 떠났다. 비밀로 보호받아야 마땅했으나 속 좁고 질투심 많은 누군가의 입술을 통해 작은 지방을 강타한 스캔들이 되었다. 가족은 등을 돌렸고 지인들은 비난한다. 비난하지 않는 사람이라고는 J와 JJ뿐.
두 사람은 일찌감치 고향에 자리를 잡아 작은 가게를 함께 운영하고 있다. 테이블 일곱 개짜리 카페테리아의 문이 오늘은 평소보다 일찍 닫힌다. 작지만 잘 꾸려진 가게에서 그들은 술을 내주고 음식을 만들어준다. 그리고 나란히 앞에 앉아 언제나 달콤했던 그 말을 들려준다. 기운 내라고, 우리는 언제나 너와 함께할 거라고.
그녀는 술잔을 기울이며 마음 깊숙이 감춰 놓은 유서 깊은 저울을 꺼낸다. 한쪽에는 J를, 다른 한쪽에는 JJ를 올려놓고 주의 깊게 관찰한다. J는 다정하나 유약하고, JJ는 냉정한 편이지만 책임감이 강하다. 놀이터의 소년들은 이제 누구의 아버지가 되어도 나무랄 데 없는 어른이 되었다. 이제야말로 다른 여자가 이 괜찮은 남자들을 채가기 전에 선택해야 할 때이다. 둘 중의 누구와?
이미 유혹의 기술을 체득한 그녀는 이 술자리에서 둘 중 하나에게 완전히 기댈 생각이다. 최종적인 선택은 결국 충동이 대신할 것이다. 늘 그래 왔으니까. 그녀는 충동적인 자신이 한심했지만 거기에는 J와 JJ의 탓도 있다고 생각한다. 무슨 짓을 하든 받아 주고 위로해 주는 친구들이 있었기에 마음 놓고 청춘과 실패를 누릴 수 있었다.
와인을 비우며 그녀는 달콤한 죄책감을 음미한다. J와 JJ의 우정은 곧 끝이 날 것이다. 그녀가 오늘 종지부를 찍기로 마음먹었으니까. 그녀는 슬픔을 느꼈지만 동시에 우월감이 들기도 했다.
복잡한 마음이 부산한 행동을 만들어 와인 잔의 높은 목을 건드렸다. 술이 쏟아지자 그녀는 반사적으로 허리를 숙였다. 붉은 술이 스커트의 가장자리를 물들인 순간,
맞잡은 두 손이 보인다.
J와 JJ의 손. 그들은 언제부터 테이블 아래에서 손을 잡고 있었던 것일까.
거꾸로 돌아가는 시계가 움직이며 모든 퍼즐이 단번에 풀린다. “기운 내” 이것은 틀림없이 진심이다. “우리는 너와 함께할 거야” 이것도 그들의 진심이며, 진실이다. 그런데 진실의 한가운데 그녀를 기망하는 치명적인 조각이 들어 있다. ‘우리는’. 이 단어를 그들은 십오 년 전부터 써왔다. 사춘기가 시작되는 열두 살부터 스물일곱까지 J와 JJ는 항상 이렇게 말했다. 그들이 오래 전부터 ‘우리’였던 것이다. 원은 진작부터 만들어져 있었고 셋 중에 외롭게 남을 한 사람은 다름 아닌 자신이었다.
그녀는 캄캄히 얼어붙는다.


까지 봤는데, 갑자기 불이 꺼졌다.
나는 욕조에서 고개를 들었다. 눈을 감으나 뜨나 똑같은 어둠이 펼쳐졌다. 이곳이 지하라서 그런지 창문 불빛 하나 비쳐들지 않는다.
“정전이에요.”
컴컴해서 그런지 더 크게 들리는 목소리. 가게 주인이 황급히 촛불을 켜두고 곧 조치하겠다며 나갔다.
이 가게는 폐업한 목욕탕을 개조한 곳이다. 일부러 그런 것인지 돈이 없어 그런 것인지 알 수 없으나 여하튼 주인은 목욕탕 인테리어를 크게 바꾸지 않았다. 나는 소파가 놓인 곳보다 탕 안쪽 방석과 쿠션이 놓인 자리를 선호했는데 목욕탕 안에 들어앉아 만화책을 넘기는 기분이 야릇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렇게 정전이 되고 보니 텅 빈 욕조에 물이 가득 들어찬 것처럼 갑갑하다.
결국 주인이 올 때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벽을 더듬어 가게 밖으로 나왔다. 지하 계단을 올라와 보니 길 건너 건물들은 멀쩡하게 환했다. 이 낡은 상가 건물만 전기가 나간 모양이었다.
나는 어정쩡한 자세로 담배를 피워 물었다. 손에는 보다 만 만화책이 들려 있지만 몰입은 깨진 상태였다. 본의 아니게 만화책을 한 권 훔친 셈인 걸까, 라고 생각하는데 누군가 위에서 내려왔다. 내 또래의 남자가 비가 오는데 우산이 없는 사람처럼 하늘을 우두커니 바라보더니 불 좀 빌려달라고 청했다.
“장수탕에서 올라온 건가요?”
그는 첫 모금을 내뱉은 후 자연스러운 태도로 내게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눈이 마주친 순간 그의 얼굴이 환해졌다. 정전이 됐다가 불이 들어온 건물처럼.
“너, 진영이 아니냐? 김진영. 나 노낙경이야. 반포성당 노낙경.”


중학교 이후 나는 더 이상 성당을 나가지 않는다. 대학에 가서는 아주 냉담자가 되었고 몇 권의 철학책을 통과한 이후로는 무신론자가 되었다. 그런 내가 부모의 성화에 못 이겨 3년간 성당에 열심히 다닌 적이 있었다. 엄마의 바람대로 나는 미사 시간에 신부님의 전례를 돕는 복사가 되었다.
노낙경은 복사단 단장이었다. 같은 학년이지만 내가 한 해 빨리 들어갔기 때문에 나이는 그가 한 살 더 많았다. 집안 좋고 공부 잘하고 인물도 나쁘지 않은, 한마디로 잘난 녀석이었는데 자기가 잘난 것을 너무 잘 알고 있는 말투 때문에 친구가 별로 없었다. 나는 그에게 잘 휘둘렸다. 집에 놀러오라고 하면 놀러가고, 농구화를 사러 가자고 하면 따라가고, 몰래 술을 마시자고 하면 같이 마셨다. 나를 동생같이 대하는 그가 묘하게 편했던 것 같다. 그러다 낙경이 입시에 매달리면서 더 이상 ‘성당 친구’인 나에게 연락하지 않았다. 나중에 의대에 갔다는 소식을 들은 것 같다.
그런데 어린 시절의 얼굴이 그대로 남아 있는 서른하나의 그가 느닷없이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
과거를 아는 사람을 만나면 이상하게 ‘들켰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익숙한 것들에는 염증을, 새로운 것들에는 적의를, 나 자신에게는 혐오를 느끼며 많은 시간을 보내 왔다. 감정의 삼위일체 끝에 결국 불행한 현재를 자각하게 되는데 ‘현재’라는 단어야말로 가장 끔찍했다. 현재의 나는…… 퇴사한 날 만들었던 빵처럼 전혀 팔리지 않고 있으니까.
정신을 차려 보니 노낙경과 근처 술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거부감에도 불구하고 낙경의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말과 태도 때문에 얼떨결에 발걸음을 뗀 것이다. 낙경은 반갑다고 벙글거리며 메뉴판을 들여다보는데 나는 낭패감 때문에 웃을 수 없다. 항상 이런 식이지. 모든 것에 반감을 가진 주제에 싫다는 표현을 못 해 상황에 휘둘리고 말아. 그러다 저 노낙경 같은 강력한 인간들이 나를 채가서 주물럭거리게 놔두는 거야.
다행히도 낙경은 크게 거슬리지 않는 화제로 말을 이어 갔다. 그는 몇 마디만으로 내 상황을 파악했는지 불편한 안부 묻기 따위는 하지 않았다. 그러고는 직장생활의 고충을 늘어놓았다. 병원 부설 연구소에 다니는데 업무는 많고 급여는 적다는 전형적인 푸념이었다. 기이한 것은 순간순간 동의를 구하고 눈치를 살피는 태도가 느껴진다는 것이다. 내 비위를 맞춰 주는 듯한, 영업사원의 비굴한 매끄러움 같은 것이 전해진다고 할까.
두어 시간 어울리고 그가 계산을 하더니 헤어지기 전에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겠냐고 물었다.
“간단한 설문지 작성하고 삼십 분 정도 수면 마취 상태에서 검사받는 일이야. 이십만 원 준대. 일당으로 나쁘지 않지?”
그의 연구소에서는 실험자를 구하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그런데 무슨 실험이냐고 물었을 때 “수면 장애에 관한 건데……”라고 얼버무리며 답을 길게 하지 않았다. 대부분 부적합 판정이 나와 당일치기 알바로 끝난다는 것이다.
“통과가 되면 그때 말해 줄게.”
마취를 한다는 대목이 마음에 걸렸지만 나는 제안에 응했다. 돈이 궁했기 때문이다.
다음날 명함에 적혀 있는 대로 역삼역 근처의 ‘리젠트 인지과학 기술연구소’를 찾아갔다. 예상보다 허름한 건물에 있었고 낙경이 기다렸다 나를 맞아 주었다.
설문 문항은 고혈압과 심장질환을 앓은 적이 있는가, 최근 한 달간 복용한 약이 있는가, 수면 시간은 대략 몇 시에서 몇 시인가 등등이었고, 검사는 거짓말탐지기 비슷한 기계에 머리와 팔에 전선을 연결해 뇌파를 측정하는 것이었다. “우리 소장님이 뇌 과학 권위자시거든.” 낙경은 벽에 걸린 의료진의 사진을 가리키며 말했다. 수면 마취 후에 무슨 스캐닝을 한다고 했다.
검사실에 들어가니 간호사가 와서 채혈을 했다. 피를 뽑는다는 말은 듣지 못해 당황했지만 소량이었기 때문에 가만히 있었다. 침대에 누워 검사기기와 내 몸이 연결되는 것을 다소 겁을 먹은 채 지켜보다가 간호사가 넷까지 세는 소리를 들으며 그대로 마취에 빠져들었다.
깨어나 보니 몸 위에 담요가 덮여 있고 낙경은 보이지 않았다. 채혈한 간호사가 다가와 흰 봉투를 건네주었다. 빳빳한 신권 스무 장이 들어 있었다.


보름 후 장수탕을 찾았을 때 노낙경은 소파에 앉아 만화책을 보는 중이었다. 눈이 마주치자 책 너머로 눈을 찡긋하며 알은체를 했다. 다 끝난 일인 줄 알았는데 그를 내 영역이라고 생각되는 곳에서 마주치니 거북한 생각이 들었다. 나는 만화책을 고르는 척하면서 그냥 밖으로 나왔다. 그러나 계단을 채 오르기 전에 뒤에서 낙경이 불러댔다.
“결과가 나왔어. 네가 핸드폰이 없어서 이 몸이 친히 왔다. 말이 길어질 것 같으니 뭐 좀 마실까.”
우리는 장수탕 이층 카페로 올라갔다. 커피가 나오자 그는 몇 모금 마시더니 적합 판정이야, 라고 운을 뗐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피험자가 되어 주었으면 좋겠다며 전에 얼버무렸던 실험에 대한 설명을 시작했다.
그런데 그 실험이라는 게 너무도 허무맹랑했다. 만약 우리가 대화하는 풍경을 만화로 그린다면 나는 눈알이 튀어나오고 컷 바깥으로 뛰쳐나가는 모습으로 그려졌을 것이다. 말하는 사람조차 민망한지 낙경은 연신 머리를 긁적거렸다.
“……엠씨스퀘어 같은 거라고 이해하면 되려나. 엠씨스퀘어 알아? 기억력과 집중력을 올려 준다고 한때 히트하던 물건인데 이어폰을 끼고 특정 주파수를 듣는 거지. 실제로 우리 P24-rtus(기기 이름이야)들도 비슷하게 생겼어. 구성품도 비슷하고.”
“그러니까 그걸 끼고 매일 자기만 하면 된다는 거야? 매일 어떤 꿈을 꾸는지 일기를 쓰다 나중에 반납하고?”
“일기만 반납하면 돼. 기기는 계속 가지고 있고 네가 올 필요도 없어. 내가 충전지도 교체하고 체크도 할 겸 이따금 방문할 거니까.”
“몸에 이상이 없는 건 확실해?”
“확실해. 솔직히 말하자면 나조차도 말이 안 되는 프로젝트라 생각해. 소장이 워낙 강력하게 밀어붙여서 무조건 대상자를 섭외해 오라니까 하는 거지. 이게 두 명씩 짝을 지어 하는 실험이거든. 네가 나와 수면 자기장이 맞는대(그래, 실토하자면 나도 피험자야). 어쨌거나 연구비도 나왔고 네가 오케이만 하면 첫 달 치는 당장 계좌로 쏴줄 수 있어. 물론 실험 중에 꺼림칙하면 그만둘 수도 있고.”
듣고 보니 정말 다 말이 안 되는 소리였다. 사례비도 허무맹랑할 만큼 적지 않았다. 머리에 의료기기를 착용하고 잠을 자기만 하면 한 달에 250만 원을 준다니.
문제는 그 의료기기였다. 대리 운전, 대리 하객, 온갖 대리 알바를 들어 보았지만 ‘대리 수면’이라니. 잠을 대신 자준다는 것은 똥을 대신 싸준다는 말만큼이나 허황된 발상 아닌가.
“정확히 말하자면 수면이 아니라 꿈이야. 겉잠을 없애고 꿈을 모으는 거야. 여기서부터가 진짜 이상한데…… 넌 내 몫까지 꿈을 꾸는 거야. 그동안 난 전혀 꿈을 꾸지 않는 거고. 소장의 가설대로라면 수면 시간도 약간 늘어나지.”
“꿈을 모은다는 것도 말이 안 되고 그걸 누구에게 대신 줄 수 있다는 것도 말이 안 돼. 게다가 대체 왜 그런 짓을 하지? 너 의대 나온 건 맞아?”
이 대목에서 낙경의 얼굴이 확연히 붉어졌다. 말없이 맥주를 비우고 낙경이 털어놓기를, 의대에서 적응에 실패해 2년 버티다 자퇴했다고 했다. 그 충격으로 몇 년을 허송한 끝에 지방대 생물학과를 졸업하고 어찌어찌 취업한 곳이…….
“……미친 과학자가 소장으로 있는 연구소란 말이지?”
나는 힘겹게 웅얼거리는 그의 말을 마무리했다.
그 후 낙경의 부탁은 노골적인 통사정으로 변했고 보험판매원이 특약을 읊어대듯 전문 용어가 섞인 말들을 줄줄이 늘어놓기 시작했다.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 요지는 ‘하나마나 실패일 것이다’와 ‘실패해도 돈은 돌려주지 않아도 된다’ 이 두 개뿐이었다. 30분이 지나자 어서 헤어지고 싶은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나는 항복하는 사람처럼 “할래, 그거.”라고 대답해 주었다. 아무리 봐도 사기 같지만 그래 봐야 돈이 떼이는 것도 아니고 시간을 많이 뺏기는 것도 아니었다. 게다가 내 처지에서 월 250이라는 숫자는 일단 한 달만 해보고 결정해도 되리라는 선택을 하기에 충분했다.
대답이 떨어지자 낙경은 재빨리 <피험자 동의서>라는 서류를 꺼내 세 군데에 사인을 받아냈다.
“고맙다! 실적을 내지 않으면 안 될 상황이었거든. 이제 P24-rtus를 어떻게 사용하는지 보여줄게.”
낙경은 탁자 밑에서 쇼핑백을 꺼냈다. 흰 박스를 열어 주의 깊게 부속물을 하나하나 꺼내 탁자에 늘어놓았다.
문제의 의료기기는 아주 단순해 보였다. 안대가 달린 검은 헤드셋처럼 생긴 것 하나, 연두부 크기만 한 정사각형 박스 하나, 그 둘을 연결하는 케이블, 목 베개와 잠을 잘 오게 만들어준다는 ‘드림 오일’ 한 병, 그리고 자기 전에 매일 한 알씩 먹어야 하는 알약과 팔에 붙이는 패치가 일주일 치 들어 있었다. 기기에는 눈이 가지 않는데 오히려 오일, 알약, 패치 같은 것들이 더 수상쩍어 보였다.
P24-rtus를 자기 머리에 써 보이며 시범을 보이는 낙경이 얼마나 바보 같아 보이던지 함께 있는 것이 부끄러울 지경이었다. ‘의료기기’라는 사물은 병원 아닌 곳에 놓이면 이렇게 조잡해 보이는 것일까? 그가 내 머리에 이 이상한 물건을 씌우고 길이나 조임새를 조정해 줄 때에는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패치는 뭐야?”
“자는 동안 네 심박수며 호르몬 분비 같은 것을 측정할 수 있는 칩이 들어 있어. 말하자면 네 생체 데이터 기록 장치라고 해두지.”
“돈은 돌려주지 않아도 되는 거 확실해?”
나는 미심쩍게 탁자 위에 늘어놓은 것들을 바라보며 재차 확인했다. 현재의 나에게 뭔 일이 일어나도 상관없다는 생각 때문에 응했지만 부작용이 생긴다면 멈출 것이고 그럴 때에 대비해야 했다.
우리는 일주일 후에 장수탕에서 다시 만나기로 했다.
“외근 핑계로 반나절 땡땡이 칠 수 있어서 좋다야.”
낙경은 실없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1일


이 기계는 고장 난 것이거나 효과가 없는 게 확실하다. 알약을 먹고 패치를 붙인 후 시키는 대로 했지만 평소처럼 잠이 오지 않아 고생했고, 평소처럼 해가 뜰 무렵에야 잠이 들어서 평소처럼 기억도 나지 않는 꿈을 꾸다가 일어났다. 충전지의 불빛이 붉은색에서 연두색으로 바뀌어 있었다. 충전이 완료되었다는 표시였다. 대체 무엇을 모았다는 것일까? 달라진 것이라고는 P24-rtus를 끼느라 똑바로 자야 하는 불편함뿐.


3일


기계는 멍청이 같아 보여도 오일의 효과는 확실하다. 지난 이틀간 깜박 잊고 오일은 쓰지 않고 잤다는 생각이 뒤늦게 들었다. 오일은 스포이트가 달린 25ml짜리 갈색 병에 담겨 있다. 몇 번 흔든 후 티슈에 두어 방울 떨어뜨렸다. 순간 무슨 향인지는 알 수 없으나 달콤하면서도 복잡한 향이 확 퍼져 나갔다. 허공에 구멍을 내놓고, 그 구멍으로 전혀 다른 세계의 공기가 들어오는 것 같은 향기였다.
나는 오일을 떨군 티슈를 베개에 넣어 두고 잠을 청했다. 그러자 고조되던 음악이 부드러워지며 희미해지는 것처럼 뾰족한 향기가 차차 약해지더니 둥글게 변해 천장에 감돌았다. 그런데 몇 달째 아침에서야 겨우 눈을 붙이던 내가 언제인지도 모르게 금방 곯아떨어진 것이다.
이 웃기는 기기는 차치하고 오일만 따로 팔면 대박날 거라고 말해 줘야겠다. 꿈 없는 깊은 숙면이라 적을 것이 없다.


4일


어젯밤 꿈이 인상적이라 적어 본다. 나는 피레네 산맥을 넘고 있었다. 산맥이라고는 하나 두꺼운 도화지를 반으로 접어 만들어진 것으로 크기는 거대했지만 입체감이 전혀 없다. 나는 두 손을 위로 뻗어 종이 산맥을 짚고 옆으로 걸었다. “피아노 치듯 옆으로 걸어가면 돼요.” 가이드가 말했다. 내 앞뒤로 투어 일행이 보였다.
산 정상에 오르니 전망대가 있었다. 사람들 사이에 끼어 발코니처럼 생긴 전망대의 난간을 잡고 멀리 보이는 마을을 내려다보았다. 동화 일러스트처럼 예쁜 이탈리아 마을이다(피레네 산맥을 넘었는데 프랑스나 스페인이 나오지 않고 이탈리아다). 어느새 다 같이 그 마을에 들어섰고(꿈이라 중간 과정 없이 바로 이어진다) 나는 마을에 발을 들여놓았다. 무릎 절반까지 물이 찼는데 자세히 보니 마을 전체가 무릎 절반까지 오는 물속에 잠겨 있었다. 그러니까 도시가 그려진 종이를 깔고 물을 부어 놓은 식이었던 것이다. “인형을 만드는 것으로 유명한 중세 마을입니다.” 뒤에서 가이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렇게 이차원적인 꿈은 처음이라고 중얼거렸다. 꿈속에서도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것을 인지했던 모양이다.


5일


오늘은 연거푸 세 개의 꿈을 꾸었는데 다 찜찜하게 끝났다. 우선 첫 번째 꿈은 수업 종이 울렸는데도 가야 할 교실을 못 찾는 상황이다. 나는 중학생인지 고등학생인지 알 수 없으나 2학년이다. 학교 복도를 서성이다 수업 종이 울리는 소리를 듣고 발걸음을 옮기는 중이었다. 그런데 내가 몇 반인지 죽어도 기억이 나지 않는 것이다. 위층과 아래층을 오가며 ㅁ자형 복도를 마구 헤집고 다녔다. 그사이 학생들은 하나 둘 교실로 들어가고 복도에는 나 혼자만 남았다. 계속 교실을 기웃거리며 초조하게 빙빙 돈다. 선생에게 들키기 전에 들어가야 한다는 생각뿐이다.
두 번째 꿈에서는 모든 것을 반대로 말하는 여자가 나왔다. 자꾸만 말을 거는데 나는 그 여자의 속마음이 훤히 보였다. 나는 친구가 많아요(한 명도 없어요) 요즘은 요리하는 게 재미있어요(하기 싫어 죽을 것 같아요) 남자들이 너무 따라다녀요(누구도 나를 유혹하지 않아요) 당신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당신이 싫어요).
문제는 그 여자가 신물 나는 험담가라는 것, 그리고 꼼짝도 못한 채 거짓말을 계속 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세 번째는 백화점이었다. 꿈이 시작되자마자 이 백화점에 전에도 여러 번 왔다는 것부터 깨달았다. 잠에서 깨고 나서야 이렇게 깨달은 주체가 노낙경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에는 백화점이 나오는 꿈을 꾼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신전처럼 생긴 백화점 출입구를 보자마자 ‘여기 또 왔구나.’라고 중얼거렸다.
백화점은 터무니없이 커서 코엑스몰 크기를 위로 일곱 층 가량 올린 규모이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3층 청과물 코너로 올라갔다. 거기에서부터 재래시장처럼 노천 가게들이 즐비했는데 행인들 사이로 누군가 나를 쫓기 시작했다. 위협이 느껴져 슬쩍 엘리베이터로 빠져 7층을 눌렀다. 7층은 통째로 비어 있다. 점포마다 포장천이 덮여 있고 불이 꺼진 채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잠시 후 어둠 속에서 추격자들의 고함과 어지러운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옥상으로 도망쳐 옥외 철 계단을 통해 정신없이 아래로 내려왔다. “항상 백화점에만 오면 이 모양이라니까.”라고 중얼거리며 하염없이 공중 계단을 내려오다 잠에서 깨어났다.
눈을 뜨자 단번에 마개가 뽑혀 물이 빠져나가는 것처럼 현실이 밀어닥쳤다. 고개를 돌리니 충전이 다 됐음을 알리는 연두색 불이 깜박거렸다. 마지막 꿈이 워낙 생생한 탓인지 뭔가 현실을 봐도 현실감이 없다. 시계를 봤더니 평소보다 두 시간가량 더 잔 것 같다.


6일


어젯밤 자던 중에 깨어나 곧장 일기를 쓰고 다시 잠들었다. 그런데 아침에 읽어 보니 너무 이상해서 내가 쓴 것 같지가 않다. 필체는 내 것이지만 이 꿈, 이 환상, 그리고 이 문장은 누구의 것인가?
글에는 ‘아크로폴리스’라는 제목이 붙어 있었다(제목이 있는 것부터가 이상하다).


밤의 노예시장에 다녀왔다. 검은 매춘부들의 흰 이빨이 달빛에 반짝거리고 미지근한 흥분이 고이는 그곳. 신전은 거대한 환풍구처럼 타락의 바람을 실어 나르고 사람들은 언제든 욕망에 감전할 수 있다. 축축한 여름 공기가 귓가에 훅 끼치면 비단 거미줄이 얼굴에 달라붙는 식이다. 아르테미스의 과녁은 점점 멀어지고 어디선가 류트의 느린 선율이 흘러나온다.
선명한 육즙이 그립다. 첫 이빨을 대었을 때 가볍게 배어 나오는 핏물처럼 싱싱한 그 무엇이 내게는 결여돼 있다. 너무 오랫동안 도서관을 서성였다. 마침내 회당을 나왔을 때 더 이상 햇빛은 내게 위로가 아니었다. 나는 내 노예가 필요하다. 내 육체를 닦아 주고 내 시간을 갉아먹어 줄 나만의 노예가.
신전 기둥에는 수많은 노예들이 주검처럼 걸려 있었다. 가진 재산이 많지 않으므로 노예는 셋밖에 살 수 없었다. 거짓우울, 게으름, 분노라 불리는 그들은 셋 다 튼튼하지 못했고 마지못한 표정으로 끌려왔다.
나는 많은 노예를 거느리지 못했기 때문에 이들을 혹독하게 다룬다. 그들은 온종일 내 시중을 들고, 마음에도 없는 슬픈 곡조의 노래를 불러 하루를 채워 준다. 마침내 내가 침상에 들 때까지 그들은 쉴 틈이 없다. 나는 튼튼하지도 매력적이지도 않은 노예들이 못마땅하지만, 그들이라도 없었으면 도대체 어떻게 시간과 감정을 여의어야 할지 난감했을 것이다. 결국 마음속 깊이 그들에게 의지하는 셈이다.
고통에 차서 하루를 끝낸 내가 침대에 누웠을 때, 우울과 분노가 다가와 나를 덮었다. 격렬한 욕지기가 밀려왔다. 그러나 다음 순간 비참하게도 그들이 주는 반복성에 굴복해 버렸다. 매일 밤 나는 그들의 포옹에 둘러싸여 악몽을 청하기 위한 침대로의 여행에 나선다…….


이 글을 몇 번이나 읽었지만 너무나 생소해서 기분이 이상하다. 꿈 자체는 나쁜 느낌이 아니었다. 횃불이 타오르는 신전은 신비롭고 관능적이었다. 꿈의 끝자락에 검은 피부의 여인이 나왔던 것 같은데 확실치 않다. 내일이 낙경과 만나는 날이라는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7일


낮에 낙경과 만나 일기를 건네주었다. 낙경은 만화책을 여덟 권이나 내리 읽은 상태이라 만화에서 약간 빠져나오지 못한 것처럼 말이 건성이었다. ‘잠은 금방 드는가?’ ‘매일 꿈을 꿨는가?’ ‘수면 시간이 길어졌는가?’ ‘몸무게에 변화가 있는가?’ 등등의 문항이 열다섯 개쯤 나열되어 있는 문진표를 작성하더니 심박수를 쟀다. 할 만하냐고 묻기에 대답 대신 질문을 던졌다.
“너는? 정말 꿈을 하나도 안 꿨어?”
“초반에는 꿨던 것 같은데 기억은 안 나. 꿈이 스쳤는데 기억나지 않는 느낌이라고 할까. 사실 이번 주에는 너무 바빠서 눕자마자 곯아떨어지기 일쑤였어.”
“전에 물어보려다 잊은 게 있어. 꿈이 어떻게 연결된다는 거야? 우리가 같이 누워서 뇌파를 교환하는 것도 아니고.”
“블루투스.”
“야! 그걸 믿으라고?”
“나도 안 믿는다니까. 보자…….”
낙경은 그 자리에서 내가 쓴 꿈 일기를 읽기 시작했다.
“저번에 너 소설 쓴다고 하지 않았냐? 여기에 소설 같은 걸 지어내는 건 아니지? 괜히 돈 값 하려고 그럴싸하게 만든다거나 과장할 필요는 없어. 마지막 일기는 대학생 습작품 같은걸, 말투도 변하고 말이야.”
“나도 그날이 가장 이상해. 잠깐 깼을 때 적은 건데 그렇게 씌어 있더라고. 꿈이 고여 있다가 빠져나간 자국을 그대로 기록만 한 거지 부러 뭘 지어낸 건 아냐. 사실 꿈을 글로 옮긴다는 것 자체가 한계가 있는 발상이잖아.”
“자식, 말하는 것만 보면 벌써 등단한 것 같네.”
낙경은 가방을 열어 내 일기를 넣으며 핀잔을 줬다.
“계속할 거지?”
“그래, 한 달은 채워 봐야지.”
속내는 다른 것이었다. 이렇듯 꿈이 밀려오는 나날이 나에게는 나쁘지 않았다. 만화를 따로 빌리지 않아도 될 만큼. 괴로운 현실을 잊게 해주는 데 황당한 꿈들이 분명 역할을 하고 있던 것이다.


그날 밤에 첫 악몽을 꿨다.
장수탕에서 만화를 보고 있던 중이다. 노낙경은 내 맞은편에 앉아 <배가본드> 17권을 읽고 있다 전화를 받고 나갔다. 내가 본 만화가 무엇인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한참 보고 있던 중에 소리가 들려 고개를 들어 보니, 전에는 보지 못했던 수도꼭지와 샤워기에서 물이 나오고 있었다. 만화책으로 빼곡한 서가는 뿌옇게 차오르는 수증기로 보일락 말락 했다. 어어어, 하는 사이에 물은 순식간에 차올랐다. 나는 엉거주춤 욕조 위로 올라갔다. 사방에서 만화책이 떠다녔고 물에서는 염소 냄새가 강하게 났다. 물은 계속 불어나고 찢어진 만화책 한 장이 내 얼굴에 붙어 하마터면 질식할 뻔했다 — 고 생각한 순간, 물이 머리 위까지 완전히 차올랐다.
나는 물속에서 눈을 뜬 채로 허우적거렸다. 손에 잡히는 것이 있어 마구 당겼더니 어떤 여자의 머리채였다. 머리카락을 잡힌 여자가 고개를 드는데, 이토 준지의 공포 만화에 나오는 ‘토미에’였다. 사모하는 남자들에게 마흔두 조각으로 도륙된 후 끊임없이 되살아나는 토미에의 머리통이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퓨즈가 끊어지듯 갑자기 깨어나(갑자기 깨어나지 않았다면 어떻게 꿈의 다음 순간을 버텨낼 수 있을까?) 상반신을 일으킨 채 숨을 헐떡거렸다. 물속에서 마주친 토미에의 눈동자가 너무 도 섬찟해서 꿈이 식을 때까지 한참 동안 누워 있어야 했다.


12일


꿈꾸는 게 일과이다 보니 점점 게을러진다. ‘나중에’라는 말이 요즘 내 상태를 한마디로 요약한 것이다. 청소도 설거지도 샤워조차도 나중으로 미루고 있다. 오늘은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았고 밥도 한 끼밖에 먹지 않았다.
밤이 깊자 드림 오일의 향기 속에서 꿈이 내려왔다. 바람이 한쪽 방향으로만 부는 초원에 동물 모양을 한 거대한 꽃들이 피어 있다. 그 사이로 세 명의 검은 피부의 여자들이 나타났다. 아주 젊은데 웃옷을 입지 않고 가슴을 다 내놓았다. 여자들은 색깔과 형태가 제각각인 머릿수건을 깊이 눌러쓰고 있었다.
첫 번째 여자의 머릿수건은 염소의 뿔처럼 짧고 뾰족한 매듭이 세 개 달려 있었다.
두 번째 여자의 머릿수건은 광주리만큼이나 크고 넓적했으며 그 위에 잘린 유방이 얹혀 있다.
세 번째 여자의 머릿수건은 새의 깃털과 뼈가 뒤엉켜 있다. 머릿수건이 눈 밑까지 내려와 눈동자는 보이지 않는데 셋 다 웃고 있는 것만 선연하다.
비명을 지르며 깨어났다. 자신의 잘린 유방을 머릿수건 위에 얹고 있던 두 번째 여자의 잔상이 끔찍해서 다시 잠드는 게 무서웠다. 결국 밤을 꼬박 새우고 말았다.


13일


악몽이 또 이어졌다. 끔찍하다! 누군가 어둠 속에서 내 목을 조르고 있었다. 꿈에서도 악의가 선명했다. 가위에 눌리는 것이 이런 느낌일까. 나는 몸부림치고 싶었지만 온 힘을 다해도 겨우 눈을 뜨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내 몸을 타고 앉아 목을 조르는 사람, 그건 바로 나였다!


15일


어제부터 밤을 새웠다가 더는 버틸 수 없을 지경이 되었다. 머릿속에서는 오로지 자고 싶다는 생각과 꿈꾸는 게 무섭다는 생각만 남아 있다.
역으로 나도 실험을 해보려 한다. 즉, 약도 먹지 않고 패치도 붙이지 않고 오일도 뿌리지 않고 P24-rtus도 착용하지 않은 채 ‘순수하게’ 잠들기로 결심했다. 연거푸 악몽을 꾼 후 나는 전처럼 자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잠에서조차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이 이상한 상실감을 주었고 매사 기운이 없다.
그렇게 잤다. 노낙경도 잊고 실험도 잊고. 그러자 ‘내 꿈’이 나왔다. 이걸 내 꿈이라고 확신하는 이유는, 낙경이 모르는 어린 시절의 내 친구가 꿈에 나왔기 때문이다. 정운이라는 이름의 키 작은 친구인데 매일 등하교를 같이하던 사이였다. 전학 오기 전까지는 그랬으나 이후 두 번 다시 보지 못했다. 꿈속에서 마주쳐서야 ‘아, 이런 친구도 있었지?’ 하고 상기할 만큼 나는 그를 완전히 잊고 지냈다.
정운은 초등학교 3학년의 모습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눈을 깜박일 때마다 기묘하게 위화감이 들었다. 왜 그런지 나중에서야 깨달을 수 있었다. 눈을 깜박거릴 때 감은 눈 위에 흐릿한 영상이 어른거리는 것이다.
다음 순간 꿈이라서 가능한 일이 벌어졌다. 내가 정운의 눈동자가 되었다. 정운의 눈동자가 되고 보니 눈 깜박임 사이에 무슨 일이 있는지 알 수 있다. 한 번 깜박거릴 때마다 눈꺼풀 안쪽으로 광고 화면이 지나가고 있던 것이다.
“이걸로 용돈을 벌고 있어. 좀 피곤하지만.”
정운이 천진하게 말하면서 틱 장애를 가진 사람처럼 눈을 마구 감았다 떴다.
무수한 깜박임, 무수히 지나가는 상품 광고들. 나는 진저리를 치며 정운의 눈에서 빠져나왔다. 그러자 눈동자도 눈꺼풀도 사라진 정운의 ‘눈구멍’으로 광고가 연속적으로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탁탁탁, 소리가 날 때마다 세제, 화장품, 이동전화, 자동차 광고가 지나갔다. 내 꿈이지만 끔찍하긴 마찬가지이다. 일어나자마자 목이 말라 병에 담긴 물 한 통을 전부 들이켰다.


16일


문득 이 기계는 전부 속임수이고 핵심은 오로지 알약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그러니까 이 약은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것이다. ‘수면 유도제’와 비슷한 ‘악몽 유도제’ 같은 것이 아닐까. 사실 수면제에도 여러 부작용이 있기 마련이고, 수면제 부작용으로 일가족을 살해한 사건도 보도되지 않던가. 나는 여러 개소리로 위장한 신약 개발에 마루타가 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런 의심을 하면서도 공포 영화에 중독된 사람처럼 오늘 밤도 실험에 응한다(잠을 청한다).
꿈속의 나는 낯선 도시에서 사진을 찍는 사진가이다. 유럽의 오래된 골목 어귀였다. 백야의 도시는 가져간 카메라로 잘 찍을 수 없었다. 흰색은 파랗게, 파란색은 누리끼리하게, 특히 심각한 것은 붉은색이었는데 매번 다른 식으로 색이 교란되는 것이다. 그래서 카메라를 이리저리 만져 비슷한 색감이 나오도록 새로 세팅했다.
호텔을 나오는데 비가 내렸다. 저녁이 시작되기에는 이른 오후였다. 나는 우산을 쓴 채로 서서 셔터를 누르기 시작했다. 골목 바닥에 깔린 돌들이 자동차 불빛에 반사되어 달궈진 것처럼 노랗게 물들었다. 거리에는 저녁이 당겨진 것처럼 어둠이 내려와 있었다. 그렇게 희미한 빛을 찍고 있으니 마음에 기쁨이 고이기 시작했다. “항상 이런 시간을 좋아했어. 어둠이 시작되거나 새벽이 끝나 가는 시간의 빛들을 말이야.” 꿈속의 사진가가 중얼거렸다. 자동차가 지나갈 때마다 돌들이 황금처럼 달궈지다 다시 식기를 반복했다. 나는 지치지 않고 찍고 또 찍었다.
깨어나니 골목은 사라지고 자취방 천장이 눈에 들어왔다. 아름다운 이미지 한복판에서 밀려 나온 것이 서운할 만큼 나는 도취돼 있었다.


20일


낙경과 만났다. 활기찬 그의 움직임을 바라보면서 술 좀 사달라고 했다. 낙경은 실험 기간 동안 알코올 섭취는 금물인 걸 잊었냐고 대신 무알코올 칵테일이나 마시자고 했다.
맹숭맹숭한 칵테일을 한 잔씩 놓고 나부터 안부를 물었다.
“그동안은 어땠어?”
“플라시보 효과인지는 모르겠지만.”
낙경은 남은 잔을 단숨에 쭉 비웠다. 그러고는 마른 김에 간장을 듬뿍 찍어 우물거렸다.
“꿈을 꾸지 않는 것 같아. 자고 나면 개운하고. 너는?”
말에 앞서서 한숨부터 길게 나왔다.
“대부분 악몽이야. 만약 이 실험이 약간이라도 효과가 있는 거라면 평소에 넌 악몽을 무지 많이 꾸는 사람이어야 해. 그래?”
“스트레스야 많이 받지만 보통인 거 같은데. 하긴 꿈꾸기에 ‘보통 수준’이라는 게 있는지 모르겠지만.”
알코올의 한방이 없는 탓인지 무력한 대화가 오고 갔다. 그럼에도 취하는 기분이다. 이것도 플라시보 효과인가? 나는 주문에 잘 걸리는 사람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인지도 모른다.
“팔레트에서 빨간 물감과 파란 물감을 섞으면 보라색이 되겠지. 그런데 꿈 팔레트는 다른 것 같아. 섞으면 그 즉시 검은색이 되어버려. 네가 어떤 사람이고 어떤 꿈을 꾸는지가 문제가 아니라 그냥 꿈이 섞인 것만으로도 격하고 어두워진다고 할까. 어쩌면 내 성향 때문인지 모르지. 너는 노랑에 가까운 사람인데 노랑에 자극받은 내 무의식이 더 진한 검정으로 만드는 것인지도. 분신이 내 목을 조르는 꿈은 태어나서 꾼 최악의 악몽이었어.”
낙경의 얼굴에 긴장감이 비쳤다. 그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말했지만 언제든 실험은 중단할 수 있어. 힘들면 그만두면 돼.”
“물론 그렇지. 헌데 난 이 상태가 마냥 고통스럽기만 한 건 아냐……. 전에 털어놓았다시피 난 글을 쓰고 싶어 하고(빵 만드는 일은 완전히 집어치웠어) 그럼에도 마땅한 내 세계가 없어. 소심하고 잘 위축되는 것만으로는 아무 개성도 아니지. 나는 사회생활에 실패했지만 지하생활에도 실패한 것 같아. 그래서 이 실험을, 꿈들을, 두려워하면서도 진지하게 기회라고 여기고 있어. 써보지 못한 글이 나올 것 같은 예감이 들어. 어쨌거나 꿈은 깨어나기 마련이고 악몽은 현실이 아니니까.”
“겨우 보름 남짓한 경험을 가지고 너무 속단 아냐?”
“이 꿈들을 통과한다는 건…… 내가 체감하는 시간은 훨씬 더 길어. 몇 달은 된 것 같다고.”
“네가 솔직히 나오니까 나도 털어놓자면.”
노낙경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나는 정직원이 아냐. 일이 생기면 단발로 일하고 수당을 타먹는 알바생이지. 나, 문제가 좀 있었어. 의대를 그만둔 건 적응을 못 해서가 아니라 사고를 쳐서야. 어쩌다 인터넷 도박에 빠졌는데 억 조금 넘게 빚을 졌어. 아버지는 행여 내가 나쁜 마음을 먹을까 연금을 깨서 막아 주셨지. 자퇴하고 우울증이 심했어. 몇 년 전 일이고 사람구실을 한 지는 얼마 안 돼.
문제가 있다면 아마 나일 거야. 검은 물감은 바로 나라고. 내 목을 조르는 나와 마주치는 악몽은 사실 내가 자주 꾸던 꿈이야. 아까 네가 말했을 때 정말 놀랐어. 도저히 양심상 계속하라고 할 수가 없어. 환자일 때 나는…….”
“나쁜 꿈만 있던 건 아냐.”
나는 변명처럼 급히 덧붙였다. 다음에는 나조차도 자각하지 못했던 진심이 흘러나왔다.
“일기에 쓴 건 극히 일부야. 꿈의 주변에 더 많은 꿈이 겹겹이 있어. 다음 꿈으로 나가는 동안 잊혀진 꿈들은 몇 배로 많고. 내가 동의한 일이니까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전혀 없어.”
어쩐지 달래 주는 듯한 말이 되었다. 그래도 낙경은 완강했다.
“나부터 그만둘 거야. 당장 오늘밤부터 약도 안 먹고 P24-rtus도 안 쓸 거야. 환상은 이 장수탕에서 보는 만화책으로 충분해. 그게 현실을 사는 인간에게 맞는 거야. 우울증 심했을 때 망상장애도 같이 왔어. 너 그게 얼마나 위험한 줄 알아?”
물론 내가 알 리가 없다. 별 볼일 없이 살아온 나는 불행이나 추락에도 별 볼일이 없었으니까.


그날 밤 낙경은 내 꿈에서 나갔다.


내 꿈도 나를 찾지 않았다. 실험 초기를 제외하고 몇 주 만에 처음으로 꿈 없는 잠을 잤다. 그랬더니 잠든 지 6시간 30분 만에 저절로 눈이 떠졌다.
몸이 개운해져서 산더미 같은 설거지도 하고 세탁기도 돌렸다. 방 안을 청소하고 나니 악몽으로 얼룩졌던 내 마음을 닦아내는 것 같아 개운했다. “돈은 돌려주지 않아도 되니까 뭐.” 나는 이렇게 중얼거리며 생산적인 일을 해보려고 책상에 앉았다. 그러나 몇 주 동안 몸에 배어 있는 나태와 느슨한 생각들, 비현실적인 연상들이 몰려와 주의가 산만하게 흩어졌다.
나는 꿈꾸기에도 중독되어 있었지만 한편으로 꿈 일기를 쓰는 데도 빠져 지낸 것 같다. 꿈 일기는 일종의 트랜스 상태에서 마구 글을 적어 나갔고 그렇게 한 뼘, 또 한 뼘 분량의 길이로 이어지는 글들이 해방감을 주었던 것이다. 그러던 것을 꿈 없이 제정신으로 쓰려 하자 손이 무디고 뻣뻣했다.
결국 장수탕에 가서 만화책을 열다섯 권 내리 봤다. 내가 원하는 것은 머릿속을 만화로 꽉 채운 채 적정한 피로감을 얻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마저도 잘 되지 않았다. 눈으로는 만화를 훑으면서도 머릿속에서는 온갖 생각이 출몰했기 때문이다. 집으로 돌아와 한참 동안 공들여 몸을 씻고 거울을 보던 나는 망설임 끝에 D24-rtus를 꺼내고 말았다.


22일


꿈에서 거인이 됐다. 해변에 서 있을 때에는 분명 보통 키였는데 파도 안으로 걸어갈수록 몸이 커지더니 바다 한복판에 이르렀을 때에는 허리까지밖에 물이 차지 않았다.
나는 고개를 숙이고 바닷물에 손가락을 담갔다. 그리고 허공에 글씨를 썼다. ‘산’이라고 쓴 자리에 산이 솟았고 ‘구름’이라고 쓴 자리에 구름이 피어났다. ‘새’라고 쓴 다음 새의 울음이 들려오자 비로소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요컨대 조물주가 된 것이다!
그러자 우습게도 기도를 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졌다. 신이 되니까 기도를 하고 싶다니 참으로 이상하다. 누구에게 기도를 한단 말인가?
그다음에 땅속에서 깨어났다. 거꾸로 자라는 나무들의 숲 가운데 모든 나무를 합친 것보다 더 거대한 나무가 눈에 들어왔다. 저것이 책에서만 보던 세계수, 세계를 떠받친다는 신화 속의 나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다가가 보니 복잡하게 뻗어 나간 뿌리에 반라의 노인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꿈속에서만 가능한 신비한 지력으로, 나는 이 나무가 ‘지혜의 나무’이며 달려 있는 노인들이 전부 철학자라는 것을 깨달았다.
모빌처럼 걸려 있는 노인들을 툭툭 치고 지나갔다. 플라톤과 데카르트와 칸트와 니체가 건드려질 때마다 잠에서 깬 것처럼 웅얼웅얼 거렸다. ‘지혜의 나무에서 노인들이 자라난다’라고 꿈 일기에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어느 순간부터 문장의 형태로 꿈을 꾸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건 전부 이미지화된 개념에 불과해. 나는 꿈속의 과대망상이 우스워졌다.
걷다 보니 땅 속 밖으로 나왔다. 캄캄한 우주에 별들이 수도 없이 박혀 있다. 검은 옷을 입은 작고 마른 여자가 내게 다가오더니 다정하게 내 손을 잡았다. 그녀의 손을 잡으니 하늘을 저절로 날 수 있었다. 우리는 몇 개의 은하를 지나쳤고, 한 별에 이르러 마침내 그녀가 내 손을 놔주었다.
여자는 <은하철도 999>에 나오는 메텔이었다. 소년들의 영혼을 파괴하는 메텔, 애도의 의미로 검은 옷과 모자를 쓴다는 그녀는 이제 나를 버릴 참이었다. 말 한마디 없었지만 이별의 순간이라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메텔의 우수에 찬 기나긴 속눈썹, 그 속눈썹 끝이 조금씩 젖어드는 것이 보였다. 긴 속눈썹이 깜박, 닫혔다가 열리자 온 우주가 눈물에 가득 찼다.
나는 눈물을 흘린 채로 꿈에서 깨어났다. 우주 미아가 된 고립감이 가시지 않아 잠시 더 그대로 누워 있었다. 시계를 보니 열네 시간, 하루의 절반 이상이 지나 있었다.


23일


꿈들의 복도는 점점 길어지고 그에 따라 수면과 비수면의 경계도 흐릿해진다. 어제도 몇 번이나 깨었다가 다시 잠들었다. 수면 시간이 길어지니 항상 꿈의 끝자락이 화장실을 찾아 헤매거나, 심한 요의를 느끼면서 안절부절못하는 것으로 끝이 난다. 깨어나 변기로 달려가 세차게 오줌을 싸면 밤새 꾸었던 꿈들이 산산조각이 나는 것을 허망하게 느낄 수 있다. 갈증이 심해 벌컥벌컥 물을 들이켜고 나면 피로가 몰려와 비스듬히 누워 있게 된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잠들기 일쑤이다.
난삽한 이미지가 넘쳐나는데, 손에 쥔 기억 없이 맥없이 깨고 마니 초조해진다. 벽이 무너져 돌조각으로 변하는 것처럼 꿈이 무너지면서 오로지 파편적인 이미지만 넘쳐나고 있는데 그마저도 화장실에서 다 유실되어 버리니 말이다. 이렇게 몇 벌의 꿈을 여의고 나면 머리가 박살난 것처럼 몹시 아프다.
어떤 꿈 뭉치가 몰려오면서 — 이런 표현은 이상하지만, 구름이 뭉친 것을 ‘기단’이라고 표기하듯 꿈들이 뭉쳐서 일정한 상태를 이루는 순간이 있다 — 공포감을 동반할 때가 있다. 그러면 꿈에 앞서 예감이 먼저 오고 턱이 떨리며 손과 혀끝이 저릿저릿해진다. 그러나 점차 꿈에 눌러앉으면서 이상한 배짱이 생겨날 때가 있다. 나는 꿈을 향해 ‘저리 가’라고 손을 휘젓기도 하고 ‘성가셔’라고 말하기도 한다. 오줌이 마려우면 ‘귀찮아’라며 깨어날 때도 있다. 낙경이 실험을 중단한다고 선언한 이후에 꾼 꿈들은 상황도 줄거리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조잡한 것으로, 붐비기만 할 뿐 강렬하지 않다. 꿈이 지리멸렬해지는 증거 중의 하나는 내가 점점 자각몽을 꾸고 있다는 것이다. 꿈에서 꿈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상황을 내 의도대로 바꿀 수가 있는데, 이렇게 작위적인 꿈은 진부한 소설과 다를 바 없어 이내 다른 꿈 부스러기로 대체되고 만다. 나는 지겨워하면서도 깨어나지 않은 채 어떻게든 가공하려고 애를 쓰고 있다.
자는 시간은 점점 길어져서 하루의 절반 이상을 잠으로 보내는 것 같다.


27일


낙경에게 메일이 한 통 와 있다. 광고 메일이 아닌, 나를 수신자로 호출한 메일을 받아 보기는 오랜만이다. “박사는 미쳤고, 너는 위험하다.” 이것이 요지였다. 답 메일을 쓰려다가 귀찮아져서 노트북을 닫아버렸다. 오직 꿈꾸기만을 바랄 뿐. 더 위독하고 해로운 꿈이 몰려와 내 글의 제대로 된 땔감이 되어 주기를 바랄 뿐이다. 지극히 수동적인 상태가 되어버렸으니 이것이 낙경이 말하는 위험일까.
멍한 상태에서 드림 오일 병을 엎지르는 실수를 저질렀다. 두어 방울일 때에는 향기로웠던 향이 코를 찌르는 날카로운 냄새로 바뀌어 머리가 아팠다. 창문을 열기 위해 몸을 일으키려다 기절하듯 잠에 빠져들었다.


31일


계속해서 꿈을 꾸는 꿈을 꿨다. 꿈 밖으로 나갈 수가 없다. 나는 책상에 앉아 일기를 쓰고 있는데, 이것이 꿈 안쪽 일인지 바깥쪽 일인지 구분할 수가 없다. 강박적이기는 하나 꽤 괜찮은 문장이 줄줄이 이어지고 있었다. 채집한 이미지를 다시 쓰는 꿈, 그러다가 꿈속으로 들어가는 꿈을 반복하고 있는데 누군가 나를 세차게 흔들었다.
“일어나!”
몽롱한 가운데 목소리의 형상이 조금씩 윤곽을 잡았다. 낙경이었다. 왜 내 방에 와 들어와 있지? 꿈이 가시지 않은 상태여서 눈을 두어 번 깜박여 보았다.
“다행이군. 정말 다행이야. 네가 어떻게 되는 줄 알았어.”
몹시 흥분한 그는 무슨 말인가를 계속 퍼부어댄다. 나도 입술을 움직여 보았다. 내 목소리가 맞는 걸까?
“……무슨 일이야?”
“죽은 줄 알았잖아, 이 자식아, 방 안에 이 냄새! 오일을 대체 얼마나 쓴 거야? 몇 시간이나 누워 있던 거지?”
낙경은 암막 커튼을 젖히고 창문을 활짝 열었다. 햇볕이 사정없이 쏟아져 저절로 눈이 찌푸려졌다. 상반신을 일으켜 세우려는데 빈혈 때문에 눈앞이 캄캄했다. 어둠 속에서 낙경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박사에게 위험을 말하고 실험을 중단해야 한다고 했어. 그랬더니 뭐란 줄 알아? 너만 성공했대. 다 실패하고 너만 성공 케이스라 놓칠 수 없다는 거야. 개소리 말라고 했지. 내가 관둔 다음에 박사가 실험을 이어 갔나 봐. 그간 네가 꾼 꿈들은 박사뿐 아니라 여러 사람의 꿈들이 합쳐진 거야.”
“어쩐지 잘 되지 않았어. 좀 더 선명하게 만들고 싶어서 오일 방울도 늘려 보고 그랬는데.”
“해로운 꿈들에 중독된 거야. 해녀들이 잠수병에 걸리듯 실험을 너무 오래 하면 꿈 중독증에 걸리고 말아.”
낙경은 내 머리맡에 있던 P24-rtus를 집어 들더니 반으로 분질러버렸다. 플라스틱 이음 부분이 깨지면서 기기의 검은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다.
“박사는 과대망상이야. 대단한 물건을 발명했다고 믿고 싶은 거지. 이건 아무짝에 쓸모없는 허접쓰레기고 네가 먹은 약들은 각성제와 수면제가 뒤섞인 위험한 약물이었어. 연구소는 폐쇄되었고…….”
그의 말이 멀리서 들려오는 것처럼 점점 더 작아졌기 때문에 나는 신경을 곤두세워야 했다. 이상하게 웃음이 나왔다. 철학자가 열리는 지혜의 나무, 메텔이 우주에 나를 버리고 가던 순간, 눈동자에 광고가 지나가던 정운이나 피레네 산맥을 오르던 지난날이 방금 전 일처럼 생생했다.
“이 모든 것이 꿈이 아니라는 증거 있어?”
나는 거의 수줍다는 듯이, 작게 속삭였다. 이미 흐릿해지기 시작한 노낙경은 “미친놈, 무슨 소리야?”라고 되물었다.
“네가 꿈 일기의 등장인물이라면? 넌 내가 쓰고 있는 소설에 나오는 사람이잖아. 응모용으로 쓰고 있는 내 소설 주인공 이름이라고. 복사단 단장은…….”
낙경은 자기가 폭로된 순간부터 힘을 잃어 가고 있었다. 어린 시절의 두 남자 친구가 게이 커플이 된 것을 깨달은 만화 속의 그녀처럼. 거품 속에서 사라질 존재들이 그렇듯 그는 진실이 도래하는 순간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진실은 환상을 기만하기 때문이다.
“김진영이야. 바로 나. 너는 다만 망쳐버린 무대의 연극배우에 불과해.”
물이 닿은 발포정처럼 노낙경이 녹기 시작했다. 지난 한 달간 내 꿈과 종이의 주어였던 그가 기포가 되는 것을 점차 명료해지는 의식 속에서 배웅했다.
눈을 뜨자 열린 창문 사이로 깨끗한 하늘이 보였다.
손닿는 곳에 놓여 있는 담배가 고마웠다. 방 안에 고여 있던 공기들, 종이에 도착하지 못한 소설적 환상들이 꿈 가루에 섞여 천천히 방 안을 빠져나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이런 이별이 벌써 몇 번째인가. 도화지로 된 피레네 산맥처럼 책상 위에는 쓰다 만 뻣뻣한 문장이 놓여 있을 것이다. 나는 누운 채로 담배를 피우며 지금까지 쓴 것을 모두 지우고 정전이 된 만화가게 장면부터 다시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소설가 김성중
작가소개 / 김성중

- 2008년 중앙신인문학상으로 등단. 창작집 <개그맨> <국경시장>을 펴냈다.


《문장웹진 2016년 11월호》


추천 콘텐츠

튤립이 있는 식탁보

튤립이 있는 식탁보 강태식 존슨 카운티 외곽에는 중산층들이 모여 사는, 거의 모든 면에서 깨끗한 주택가가 형성되어 있었고, 완전히 똑같이 생긴 집들이 - 지붕과 창문과 현관 손잡이와 마당을 두른 나무울타리의 모양까지 똑같은 집들이 - 거리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죽 늘어서 있었다. 진입로에는 작고 예쁜 우체통이 서 있고 - 어느 집이나 다 - 우유 배달 업체의 상표가 찍힌 낡은 주머니나 고양이에게 먹이를 주지 말라는 팻말이 울타리 한쪽에 걸려 있으며 마당 잔디가 빗질 자국이 남아 있는 머리처럼 잘 정돈되어 있었다. 화단에 심은 꽃들도 거의 비슷하거나 완전히 똑같아 보였다. 차를 몰고 천천히 지나면서 보면 그랬다. 어디선가 가끔 피아노 치는 소리가 들리기도 했는데 모든 음이 기계가 치는 것처럼 정확했지만 음이 정확하다는 것말고는 전혀 특별할 것이 없는 연주였다. 얼마 전에 하나뿐인 아들 톰을 다른 주에 있는 대학에 보낸 벤 하우저와 로지 하우저도 그 거리에 있는 많은 집들 중 한 곳에서 살았다. 그들은 아직도 아들의 방문 앞에 멍하니 서서 그 안에 아들이 쓰던 물건들만 - 사인볼과 다 버리고 딱 두 개 남은 레고 모듈러 시리즈와 절대로 버리지 말라고 고집을 부려서 버리지 못한 낡은 청바지와 픽업트럭을 끌고 이케아 매장에 가서 사온, 벤이 꼬박 이틀 동안 조립해서 겨우 완성한 오래된 이층 침대와 디딤판에 노란색 번개 마크가 크게 프린팅된 스케이트보드 같은 것들만 – 남아 있다는 것을, 자기들이 그런 물건들과 함께 - 한때 아들이 필요로 했던 물건들과 함께 - 그 집에 남겨졌다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결정하지 못한 상태였다. 하지만 벤과 로지는 아들이 자기들 품을 영영 떠났다는 것을 어렴풋이 짐작했고 - 날마다 그런 짐작이 확고한 사실로 굳어 가는 것을 지켜보았고 - 자기들이 톰의 방문을 바라보며 아주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되리라는 것을 예감했다. 벤은 불을 켜지 않은 거실에 앉아 - 창 너머로 어둠이 차오르고 있었지만 벤은 희미한 빛이 감도는 그맘때의 거실을 둘러보며 오래 쓴 소파에 가만히 앉아 있는 것을 좋아했다. - 로지가 외출 준비를 완전히 마치고 이제 정말 다 끝났다고 말해 주기를 - 립스틱만 바르면 된다거나 스카프만 고르고 금방 나가겠다는 말말고 진짜 이제 정말 다 끝났다고 말해 주기를 - 기다리고 있었다. 벤은 탁자 위에 놓인 리모컨을 한동안 바라보다가 리모컨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문득 생각이 난 것처럼 손을 뻗어 TV를 켰고, 채널을 이리저리 돌린 뒤에 다시 TV를 껐다. “뭐 해, 벤?” 로지의 목소리가 한 블록 떨어진 곳에서 망치질을 하는 것처럼 안방 문 너머로 들려왔다. 화장대 앞에 앉아서 눈썹을 그리거나 파운데이션을 더 꼼꼼하게 바르면서 몸을 뒤로 틀어 소리 지르는 로지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 옷에 붙은 머리카락을 손가락 끝으로 집어 떼어내거나 잠자리에 들기 전에 침대보를 잡아 펴는 것처럼 오랜 세월 동안 숱하게 보아 온 모습들. “아

  • 관리자
  • 2024-10-01
이것은 사랑 없이는 깰 수 없는 유일한 꿈이었다.

이것은 사랑 없이는 깰 수 없는 유일한 꿈이었다. - 춤추는 무당 당골 이심과 춤추지 않는 무당 오키나와 영매 유타의 사진에 대하여 한정현 기생 아니고 무녀예요. 무당이라고요, 아저씨. 이 여자한테 그랬다간 저주받는다고요. 어쩌려고요? 팔아먹게? 그런 말을 했던 이는 곧 어흥, 하는 표정을 짓는다. 얼굴을 잔뜩 구기면서 말하는데도 생생한 눈빛이 빛난다. 사내는 입을 반쯤 벌리고 그이의 얼굴을 바라보다 퍼뜩 정신이 들었는지 되레 큰소리다. 내, 내가 억지로 잡아끌었나! 누가 이 얼굴에 돈을 내겠어! 그 말을 하면서도 사내는 손목이 잡힌 이심이 아니라 그이의 얼굴을 힐끗거린다. 나도 그냥 기생은 아니죠. 아저씨 그렇게 내 얼굴 빤히 보면 돈 내야 돼. 알죠? 아닌 게 아니라 그이가 입고 있던 소맷자락이 그것을 알려준다. 잘 다린 소맷자락에 수가 놓여 있다. 초량권번. 사내는 돈이라는 이야기가 나오자 아까보다도 낮은 자세로 어느새 이심의 손목을 놓고 슬그머니 물러선다. 사내가 놓아 준 이심의 손목은 줄이 그어진 듯 붉다. 공창제도는 한참 전에 없어졌지만, 부산이든 서울이든 이젠 사창제도가 판을 쳐요. 미군들에게 매매 놓아 주는 곳도 많고요. 몰랐나요? 어느 누가 꿀이라도 한가득 따라 놓은 걸까. 남북이 서로 총을 겨누며 싸운 지 1년이 넘고 보니 거리마다 향기는커녕 악취가 진동했다. 그런데도 이 사람은 향을 품고 있구나. 이심은 공창이 뭔지도 사창이 뭔지도 몰랐다. 이 부산이라는 곳에 오기 전까지. 다만 저건 알았다. 그이가 들고 있는 소매 끝에 달린 초량권번이라는 이름. 이 사람은 북쪽이 밀고 내려올 때 군예대로 온 최승희의 제자일까, 아니면 호남 제일 이매방의 제자일까. 이심은 문득 건너의 그이가 자신과 비슷한 또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심은 아마 저이가 권번에 들어갈 무렵 시집을 갔을 거다. 세습무라는 것은 보면 희한했다. 부모가 전라도 세습무인 당골이라 한들 그 자식이 당골이 될 수는 없었다. 신과 인간을 잇는 것이 그들의 업, 인간사 그 모든 번뇌 속에서 자신의 삶은 없는 한 맺힌 자리라 그런 것일까. 기이하게도 당골은 시어머니에게서 며느리로 이어지는 거였다. 그렇다면 이심은? 남원 가재골 3대 당골 이심은 어떠한가. 이심은 제 발로 그 집에 들어갔다. 이심은 신이 아닌 한 인간에게 모든 걸 걸고자 했다. 한여름 빨래터에서 땡볕을 지고 일하는 이심에게 다가와 부채로 가만히 빛을 막아 주던 그 소년에게 모든 것을 걸고자. 사라진 것이 네가 아니라서 다행이야······. 처음 해변에서 홀로 하얀 천을 두르고 기녀들이나 추던 입춤을 휘날리듯 추던 그 누군가. 어느 집 기녀가 저리 고울까. 종일 마른 볕에 앉아 빨래를 하던 이심에게는 꿈같은 광경이었다. 어지러움에 잠시 이심이 감았던 눈을 뜨고 보니 어느새 그 꿈이, 아니 그가 웃으며 부채로 빛을 가려 주고 있었다. 뜻하지 않게 빛나던 그것은, 윤슬이 아니었다. 그의 춤이

  • 관리자
  • 2024-10-01
우리에겐 낮술이 필요한 것 같은데

우리에겐 낮술이 필요한 것 같은데 전하영 R과 나는 바닷가의 한 도시로 가는 기차를 타고 있었다. 우리는 그 도시에 있는 어느 서점의 초청으로 북토크에 참석할 예정이었다. 처음에는 서점이라고 해서 작은 가게인 줄 알았는데 꽤 규모가 있었고 로컬에서는 인지도도 높은 곳이었다. 사례비가 두둑해서 나는 바쁜 R을 설득해 초청 인사로 함께 행사에 참석하기로 했다. 이럴 때는 그가 야근을 밥 먹듯 하고 시도 때도 없이 불려 다니는 일을 한다는 게 도움이 됐다. 주말에 집에 들어가지 못할 이유를 손쉽게 만들어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북토크는 공식적으로도 그의 일의 연장이었다. 북토크에서 이야기할 책은 내가 이십 년 전에 쓴 소설로 처음에 출간됐을 때만 해도 거의 팔리지 않았는데, 영화화되면서 다시 읽히기 시작했다. R은 그 영화의 제작자였다. 그가 우연히 들른 카페에서 책을 발견했고 영화화를 제의해 왔다. 안 될 게 뭐람? 그 책은 세상에서 잊힌 것이나 다름없었으므로 나는 반갑게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솔직히 말하자면 적지 않은 이차 저작권료에 더 관심이 많이 갔는데 알고 보니 그쪽에서는 내가 당연히 그보다 큰 금액을 부르리라 예상하고 미리 낮춰서 제시한 금액이라고 했다. 그런 사정을 파악하게 된 것은 R과의 관계가 좀 더 사적인 성격으로 진전된 이후의 일이었다. 그 후로 많은 것들이 변했다. 책이 영화화되자 죽은 사람이 돌아온 것처럼 책에 쓰인 시절도 내게 함께 돌아왔다. 이십 년 정도가 지나면 당시의 나를 더 이상 나라고 부를 수 없을 정도로 상황과 감정이 바뀐다. 인간의 몸은 7년마다 세포 전체를 모조리 갈아치운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책이 처음 출간된 이후 대략 세 번쯤은 완전히 다른 나로 거듭나 있는 셈이나 마찬가지였다. 가장 잘 아는 타인을 덕질하듯이 나는 과거의 나에게 향수를 느끼며 그때 그 시절의 장소를 방문하며 추억에 잠기곤 했고, 그때마다 함께하는 상대에게는 숨은 의도를 밝히지 않고 다른 볼일이 있는 것처럼 둘러댔다. 그것은 최근 들어 생긴 나만의 비밀이자 즐거움이었다. 북토크를 위해 우리가 방문하는 도시는 한때 유명한 관광지였지만 오랫동안 쇠락의 길을 걷다가 최근 들어 다시 각광 받기 시작한 지역이었다. 모든 것이 너무 비싸고 조밀한 서울에 진력이 난 젊은 사람들이 조금씩 모여들었고 사람들이 모이니 인터넷 매체들이 관심을 보였다. 이제 조만간 영화나 드라마의 촬영지로 물망에 오를 테고 그렇다면 이 도시도 많은 다른 곳들과 마찬가지로 프랜차이즈 카페와 플라스틱 상징물로 가득 찬 어느 평범한 한국의 소도시 중 하나로 거듭날 것이었다. 다름 아닌 영화제작자를 데려가는 셈이니 어쩌면 내가 그 도시를 망가뜨리는 하나의 중요한 계기를 마련하고 있는 건지도 몰랐다. 망상에 불과하겠지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온 세상이 나를 쳐다보고 있다는 느낌. 내가 하는 작은 행동이 불러일으키는 더 큰 효과에 대한 전망. 책이 영화화된 뒤로 줄곧 내가 느끼는 감정이었다. 기차가 출발하기를 기다리는 동안 R에게 그 도시에 가본 적이

  • 관리자
  • 2024-10-01

댓글 남기기

로그인후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을 남겨 주세요!

댓글남기기 작성 가이드

  •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는 욕설, 비방 등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주제와 관련 없거나 부적절한 홍보 내용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기타 운영 정책에 어긋나는 내용이 포함될 경우, 사전 고지 없이 노출 제한될 수 있습니다.
0 / 1500

댓글1건

  • 신창용

    A급 소설, B급 평론 #2. 괴상한 그림 플라톤 : 왜 우리가 이 그림(http://naver.me/F01P5r71)을 보고 있지? 아리스토텔레스 : 우리야 뭐... 이 글을 쓰는 인간의 이미지 아니겠습니까? 이 녀석이 하자는 대로 하는 거죠? 플 : 어쨌든 그 유명한 달리의 '기억의 지속'이잖아. 아 : 시계가 흘러내리는 모습이 발포정과 비슷하네요. 플 : 이 글은 너무 헷갈리네. 주인공이 꿈을 꾼거야? 아니면 작가가 꿈을 꾼거야? 작가가 그냥 막 지르는 글인가? 아 : 실체와 이미지의 경계는 없는 것 같아요. 정전되기 전은 현실? 이후는 가상? 꿈을 깨니 현실... 아니 소설자체가 가상이니... 플 : 그만하게... 무슨 소리인지... 이 작품은 정신건강에 도움되는 글은 아니군. 그러니깐, 작가가 갖고 있는 무의식과 거기에 상상력을 끼워넣었다? 이런거 아닌가? 아 : 꿈을 정확하게 기억하는 건 어렵습니다. 그리고, 왜곡되기 마련이죠. 프로이트에 의하면... 플 : 어쨌든 소설에 나를 등장시킨건 긍정적이야. 으흠... 나 보다 떨어지는 녀석하고 같이 있는 건 그렇지만... 아마도 작가는 이데아 참 모습을 꿈 속에서 보고 왔는지 몰라?! 아 : 그건 선생님 생각 같은데요. 플 : 듣기싫네!!! 이 작가가 혹시 내가 나오는 꿈을 꿨다면, 구체적으로 행동을 해야 할 걸세. 아 : 그게 무슨...? 플 : 로또 복권을 사는 거야. 으흠...

    • 2016-11-19 17:22:12
    신창용
    0 / 1500
    • 0 / 1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