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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소래담 오빠

  • 작성일 2013-09-01
  • 조회수 4,503

 


맨소래담 오빠

 

윤미현

 


 

 

 

맨소래담오빠-삽화

    맨소래담은 내 등짝을 때렸다. 오늘은 안 하면 안 돼? 나는 나오는 콧물을 들이마시며 맨소래담을 쳐다봤다. 살살 할게. 맨소래담은 내 배 밑으로 손을 집어넣고 몸을 뒤집었다. 오늘은 일을 많이 해서 힘든데. 나는 말끝을 흐렸다. 징징거릴 일이 따로 있지. 일하는 거 가지고 그러면 너 천벌 받는다. 맨소래담은 말을 하면서 자신의 고추에 콘돔을 끼웠다. 꼭 그렇게 정액을 빼내야 해? 그것도 주기적으로. 커피 자판기에서 프리마 버튼 눌러서 종이컵에 받듯이. 무슨 자판기도 아니고. 정액도 꼭 자판기에서 뽑아내듯이 뽑고. 나는 혓바닥을 내밀었다. 너 민족 중에 단 한 사람만 위하는 일이라도 하고 싶다며? 너는 국가고, 나는 너의 국민이라며. 나한테 복지국가가 되어 준다고 할 때는 언제고. 무상으로 나에게 뭐든 다 해줄 수 있다며? 맨소래담은 나를 쳐다봤다. 나 피곤할 때는 혼자서 하면 안 돼? 일하고 오면 힘들어서 그래. 나는 뒷목을 잡으며 말했다. 혼자 하면 그게 유희냐? 자위지. 맨소래담은 내 몸 위에서 내려오면서 대꾸했다. 맨소래담은 고추에서 콘돔을 빼낸 후, 정액이 들어 있는 콘돔의 매듭을 묶고 한참 동안 그것을 쳐다봤다.
    나는 입을 벌리고 맨소래담 왼쪽 얼굴을 봤다. 여섯 개의 점은 눈 밑에서 귀가 있는 곳까지 고르게 퍼져 있었다. 왜 그러고 있어? 맨소래담은 나를 보며 턱을 치켜들었다. 자리를 비켜 달라는 표시였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문 있는 쪽으로 움직였다. 눈을 비비고, 맨소래담 발밑에 누웠다. 오른쪽 손을 쭉 뻗으니 운동화 한 짝이 만져졌다. 이곳은 한때 한강에서 볼 수 있었던 간이매점이다. 2007년 서울시에서 한강 르네상스 사업을 한다고 철거할 당시, 간이매점 주인이 철거를 하지 않고 빼돌려 놓았다가 맨소래담에게 판 것이다. 밖에서든 안에서든 열 수 있는 문이 달려 있고, 벽에는 창문이 하나 나 있다. 두 명이서 나란히 누울 수도 있지만, 그러면 너무 비좁기 때문에 한 사람은 다른 사람 발밑에서 자야 한다. 내 발가락 끝에는 냉장고가 닿는다.
    잠을 자다 손에 뭔가가 낀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눈을 떴다. 오른쪽 손이 운동화 속에 들어가 있었다. 나는 손에서 운동화를 빼낸 후 문을 향해 집어던졌다. 운동화는 출입문에 부딪힌 후, 다시 내 얼굴 옆으로 떨어졌다. 몸을 희생해서 맨소래담을 부양한다는 건 생각만큼 쉽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그때 맨소래담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서 나를 쳐다보며, 비린내가 너무 난다면서 인상을 썼다. 나는 옷에다가 코를 갖다 댔다. 냄새가 나긴 했다. 맨소래담은 페브리즈를 사야겠다고 했다. 그러고 신발을 신고 나갔다. 조개구이 냄새가 구수하다고 할 때는 언제고. 맨소래담의 변덕이 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십 분 정도 지났을 때, 맨소래담이 페브리즈를 사가지고 들어왔다.
    일어나 앉아 봐. 맨소래담이 나를 보며 말했다. 피곤해. 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맨소래담은 누워 있는 나를 향해 페브리즈를 분사했다. 눈에는 뿌리지 마. 맨소래담을 쳐다보면서 말했다. 눈을 가려. 맨소래담이 말했다. 나는 손으로 눈을 가렸다. 맨소래담은 목, 어깨, 배, 허벅지에 페브리즈를 분사했다. 배꼽에도 뿌렸다. 손가락으로 내 팬티를 걷어 올리고 그 속에도 뿌렸다. 머리카락에는 더 많은 양의 페브리즈를 뿌렸다. 뒤돌아 누워 봐. 맨소래담이 말했다. 나는 뒤돌아 누웠다. 바닥에 얼굴을 대고 눈을 감았다. 맨소래담이 내 등에 페브리즈를 분사했다.
    맨소래담이 다시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냈다. 일어나 봐. 눈을 뜨니, 맨소래담은 우비를 쥐고 있었다. 일어나서 이거 입어. 맨소래담이 나를 보며 말했다. 어디서 난 우비야? 내가 물었다. 저번 주 수요일 비오는 날 초등학교 앞에서 주워왔어. 맨소래담이 말했다. 잠잘 건데 우비를 왜 입어? 내가 물었다. 페브리즈를 뿌려도 냄새가 나잖아. 이거 입고 자면 냄새가 덜 날지도 모르잖아. 너는 왜 그렇게 인간적이지 않니? 같이 자는 사람이 냄새가 나서 불편하대도. 맨소래담이 인상을 썼다. 나는 우비를 입고 맨소래담을 쳐다봤다. 뭐 그렇게 사람을 빠꼼히 쳐다봐? 맨소래담은 빨리 내 자리로 가라고 했다. 나는 다시 맨소래담 발밑으로 와서 누웠다. 맨소래담의 두 발이 내 얼굴에 닿았다. 이층침대가 있으면 좋겠다. 그럼 서로 편하게 잘 텐데. 나는 맨소래담 왼쪽 엄지발가락에 대고 말했다. 조용히 좀 해. 맨소래담이 왼쪽 발가락을 움직였다. 폭이 좁아서. 이층침대는 안 돼. 맨소래담이 왼쪽 발로 내 코를 눌렀다. 잠시 후, 맨소래담의 코 고는 소리가 들렸다.
    이제 냄새가 좀 가라앉았네. 맨소래담이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잠을 자다 눈을 떠보니 맨소래담이 내 배 위에 올라타 있었다. 피곤해. 내려와. 나는 목 뒤를 긁으며 말했다. 네가 에이즈에 걸렸다고 해도 지금은 하고 싶어. 맨소래담은 나를 보며 눈을 끔벅거렸다. 날마다 두세 번씩은 할 수 없잖아. 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너는 정말 비인간적이야. 내가 자다 말고 일어나서 그게 생각나서 하고 싶대도. 그래도 안 돼? 맨소래담은 나를 보며 화를 냈다. 아까 전에 했잖아. 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맨소래담은 자다 말고 일어난 자기 성의를 생각해서라도 그럴 수는 없는 거라고 하면서 쌍욕을 했다. 나는 다시 목 뒤를 긁으며 고개를 저었다. 모든 이들에게 복지를 나눠 줄 수는 없어도, 나에게만큼은 그렇게 할 수 있다고 한 지가 일 년도 지나지 않았어. 근데 그세 마음이 변했지? 썅. 이게 뭐야? 맨소래담은 내 운동화를 집어던졌다. 오른쪽 운동화 한 짝은 냉장고에 부딪힌 후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때 운동화에서 밑창이 떨어져 나왔다.
    착잡해. 내가 말했다. 맨소래담은 복지라는 건, 다 해주는 거야, 라고 하면서 한숨을 쉬었다. 나는 그 순간 차라리 에이즈에 걸려버리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맨소래담은 에이 씨, 라는 말을 한 뒤에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서 누웠다. 맨소래담은 내 머리가 있는 곳을 향해 발길질을 했다. 맨소래담의 고추에 비닐이라도 좀 씌워 놓고, 한 달간만이라도 어디다가 맡겨 두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땅 속에 김장독 묻듯이 몇 년 묵혀 놓고 싶었다. 맨소래담의 고추는 정말 해도 너무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맨소래담은 아직 화가 풀리지 않았는지, 집을 나가버려야겠다는 말을 여러 번 했다. 나는 맨소래담의 발바닥에 코를 갖다 댔다. 맨소래담 발바닥에서는 냄새가 났다.

 

    맨소래담이 나를 흔들어 깨웠다. 일 나갈 시간이야. 어서. 맨소래담은 나를 일으켜 세웠다. 오늘은 아파도 한의원에는 가지 마. 일 조금 하고 쑥뜸까지 뜨고 나면 남는 게 있냐? 아파도 참고 그래야지. 이제 집 벽에 써진 연날리기·아이스크림·음료수, 라는 말 좀 지워야 하지 않을까? 여기서 벌써 일 년 가까이 살았잖아. 엊그제도 어떤 사람이 급하다면서 건전지를 사러 오는 바람에 깜짝 놀랐어. 나는 선반 위에 놓인 가오리연을 쳐다보며 말했다. 하루 이틀도 아닌데 그냥 살아. 자연스러운 게 제일 좋은 거야. 이런 집 구하기도 쉽지 않고. 맨소래담이 말했다. 페인트라도 칠해야 하지 않을까? 내가 말했다. 뭐 하러 그렇게 해? 그래도 간이매점 주인이 깨끗하게 써서 안은 좋잖아. 맨소래담이 말하면서 나에게 점퍼를 입혀 주었다. 맨소래담은 감겨 있는 내 눈을 자신의 손으로 벌려 주었다. 그러고 나서 운동화까지 신겨 주었다. 오늘은 뭐 해? 나는 눈에 붙은 눈곱을 떼어내면서 물었다. 뭐 하긴. 나도 살림에 보탬이 되는 일 좀 해야지. 맨소래담은 한쪽 손은 자신의 팬티 속으로 집어넣고, 다른 한쪽 손으로는 나에게 빨리 나가라는 시늉을 했다.
    집을 나온 후, 집 주변을 살펴봤다. 작년 겨울에 누군가가 공터에 갖다 버린 군고구마 통이 있는 리어카가 많이 녹슬어 있었다. 맨소래담과 내가 사용하는 휴대용 변기가 놓인 곳의 문은 열려 있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그곳에서 지독한 냄새가 풍겨왔다. 나는 화장실 문을 닫기 위해 그쪽으로 걸어갔다. 어느새 변기통 밑에 똥이 많이 불어나 있었다. 맨소래담이 틈만 나면 똥을 싸서 그런 것 같았다. 나는 화장실 문을 닫았다. 그제까지만 해도 공터에 똥차가 주차되어 있었는데 보이지 않는 걸 보니 차를 뺀 것 같다. 가는 김에 휴대용 변기통 똥이라도 좀 수거해 가지, 하는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조개구이 집으로 가기 전에 버스정류장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라일락꽃이 흰 밥풀 뭉쳐져 있는 것처럼 봉우리 져 있었다.

 

    집에 들어오니 맨소래담은 없었다. 냉장고 위에는 못 보던 휴대용 물티슈가 일곱 개 있었다. 나는 방 한가운데에 누웠다. 오랜만에 두 발을 쭉 뻗으니 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맨소래담이 들어왔다. 맨소래담은 거친 호흡소리를 냈다. 맨소래담은 발로 내 옆구리를 건드렸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가 오늘 얼마나 노동을 많이 했는지 알아? 한강중학교 앞에서 아줌마들 세 명이 애들한테 미술학원 다니라고 물티슈 나눠주고 있었거든. 내가 그 아줌마들한테 물티슈 받으려고 이리 줄 서고 저리 줄 서고 그랬어. 저거 물티슈 값 하나에 천 원씩만 쳐도. 맨소래담은 냉장고 위에 놓여 있는 휴대용 물티슈를 집어 들면서 말했다. 또 저것 좀 봐라. 맨소래담은 손가락으로 문 앞을 가리켰다. 그 앞에는 1.5리터 생수병 세 개가 놓여 있었다. 동사무소에 있는 정수기에서 받아왔어. 우리나라 좋은 나라야. 빈 물통만 가지고 가면 얼마든지 물 받을 수 있는 곳이 널렸어. 저 물이면 우리 둘이서 이틀은 먹을 수 있잖아. 저것도 돈으로 치면 얼마야. 맨소래담은 하루 종일 걸어 다녀서 허벅지가 아프다고 했다. 자신의 주머니에서 맨소래담을 꺼내 허벅지에 골고루 발랐다. 나도 어깨에 좀 바르고 싶다고 했다. 맨소래담은 자신의 허벅지를 보고 있다가 나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참, 너도 너다. 이게 얼마나 들어 있다고 나눠 쓰냐? 맨소래담이 소리를 버럭 질렀다.

 

    조개구이 집에서 문을 닫고 나올 때였다. 벚꽃나무 밑에 쓰레기 봉지가 가득 쌓인 곳에서 소리가 났다. 큰 검은 비닐봉지가 꿈틀거렸다. 개새끼가 오줌을 싸고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나는 집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등 뒤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왔다. 뒤를 돌아봤다. 검은 비닐봉지를 망토처럼 뒤집어쓴 사람이 나를 따라오고 있었다. 나는 더 빠르게 걸었다. 내 걸음걸이가 빨라질수록 비닐봉지가 부스럭거리는 소리도 빨라졌다. 오늘 일해서 번 돈 이만 오천 원이 주머니에 있다. 나는 뒤돌아서 돈을 최대한 멀리 집어던지고 그걸 줍고 가라는 신호를 보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집게로 조개껍데기를 수십 번 열면서 번 건데. 나는 망설이다가 돈은 던지지 않기로 했다. 앞을 향해 뛰었다. 파출소로 뛰어갈까, 맨소래담이 있는 집으로 곧장 뛰어갈까 갈등이 생겼다. 뒤에서는 계속 비닐봉지가 바람에 펄럭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검은 비닐봉지가 아니라 투명 비닐봉지를 뒤집어썼으면 이렇게까지 무섭다는 생각은 들지 않을 텐데. 나는 평상시에 검은 봉지가 제일 무섭다고 생각했다. 고양이 시체. 화장실에서 막 낳아서 버린 갓난아기. 그런 것들은 꼭 검은 비닐봉지에 들어 있기 때문이다.
    나는 집에 도착해 문을 두드렸다. 맨소래담이 문을 열었다. 검은 비닐봉지 옷을 입은 사람이 자꾸 따라와. 맨소래담을 쳐다보며 말할 때였다. 그때 검은 비닐봉지를 뒤집어쓴 남자가 내 옆으로 왔다. 남자는 나에게 얼굴을 들이대며 허, 라는 말을 하며 자리를 떠났다. 저 남자가 조개구이 집에서 여기까지 쫓아온 거야. 나는 맨소래담을 보면서 숨을 몰아쉬었다. 손에 무언가를 만지작거리면서, 계속 헉헉 소리 내면서 나를 쫓아왔어. 쯧, 얼마나 외로웠으면 사람이 사람을 쫓아다녔을까. 맨소래담은 남자가 간 방향을 계속 바라보며 혼잣말을 했다. 맨소래담은 남자를 두둔했다. 나를 해치려고 여기까지 온 거라니깐, 손에 면도칼을 가지고 있었을지도 모르잖아. 나는 맨소래담을 쳐다보며 말했다. 너는 도대체 휴머니즘이라는 게 없어. 저 사람이 외로워서 늦은 밤 혼자 다니는 여자를 쫓아다녔을 거라는 생각은 안 하니? 맨소래담이 나를 야단쳤다. 물이라도 한잔 대접해서 보내 드릴 걸 그랬나. 맨소래담이 말했다.
    몸이 떨려 바닥에 주저앉았다. 나를 이십 분째 쫓아왔어. 나는 맨소래담의 왼쪽 손을 잡으며 말했다. 외로웠을 거야, 그러니깐 아무 여자나 그렇게 따라다니지. 맨소래담은 내가 잡은 손을 떼어냈다. 다음에는 저런 아저씨가 쫓아온다고 겁먹지 말고, 왜 그러느냐고 물어보고 난 후에 야쿠르트라도 하나 사드려. 맨소래담은 나를 보며 고개를 흔들었다. 나는 맨소래담을 쳐다보며, 그게 아니라니깐, 나를 위협하면서 쫓아왔다니깐, 이라고 말했다. 진짜, 너 구제불능이다. 저 아저씨가 외로웠을 거라니깐. 내 말을 개좆으로 듣는구나. 맨소래담은 그렇게 말하면서 냉장고 위에 놓여 있던 물티슈를 집어던졌다. 그러고 나서도 분이 풀리지 않는지 온갖 짐승의 성기가 들어간 욕을 했다. 그분도 나와 같은 국민이라고, 근데 너 언제까지 그렇게 그분 탓할 건데? 맨소래담이 나를 향해 말했다. 나는 눈물을 닦고 바닥에서 일어났다. 오늘 일한 돈은? 맨소래담이 물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까 그분한테 쫓겨오면서 어디다가 빠뜨렸나 봐. 내 말을 들은 맨소래담은 나를 째려봤다.
    나는 자리에 누워 눈을 감았다. 그리고 주머니에 들어 있는 돈을 만지작거렸다. 맨소래담이 잠을 자는 것을 확인한 후 문 밖으로 나왔다. 공터에 있는 군고구마 통을 열고 그곳에 돈을 집어넣었다.

 

    오랜만에 파고다 공원에 가자. 맨소래담이 잠이 덜 깬 나를 보며 말했다. 나는 오늘이 둘째 주 화요일이냐고 물었다. 어. 맨소래담이 대답했다. 조개구이 집 문 닫는 날이구나. 그냥 발 좀 쭉 뻗고 잠잤으면 좋겠는데. 나는 뻐근한 목을 만지면서 맨소래담을 바라봤다. 너, 구타유발이라는 말 알지? 지금 네가 딱 그거 생각나게 만들어. 맨소래담이 말을 하면서 인상을 썼다. 너, 쉬는 날이니깐 일부러 바람 쐬러 가자는 거잖아. 정신수양 좀 해야 하지 않겠어? 각오도 새롭게 다질 겸. 맨소래담이 나를 보고 일어나라고 했다. 오늘 황사 아닌가? 나는 코를 풀며 물었다. 밖에 나갈 때 물티슈 하나 가지고 가서 코 풀면 되잖아. 물티슈도 많은데. 도대체 뭐가 그렇게 불만이야? 맨소래담이 양말을 신으면서 말했다. 맨소래담은 구두주걱을 찾았다. 나는 잠이 덜 깬 채로 맨소래담을 따라 나섰다.
    버스 타고 가자. 맨소래담이 말했다. 그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보도블록 사이사이 낀 저 빨대 좀 봐라. 맨소래담이 길을 걷다가 혀를 찼다. 꼭 내 고추같이 보이네. 보도블록 사이에는 빨대가 낑겨 있었다. 밤마다 내 고추가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생각해 보니 열 받네. 맨소래담은 길가에 멈춰 서서 나를 보며 화를 냈다. 그리고 잠시 욕을 했다. 그중에서도 개의 성기가 들어간 욕을 여러 번 반복했다. 개좆. 맨소래담이 특히 좋아하는 욕이다.
    비둘기 한 마리가 날아와서 빨대를 쪼았다. 꺼져. 그 모습을 지켜보던 맨소래담이 소리쳤다. 맨소래담이 나를 보며 자기한테 잘해, 라고 말했다. 나는 여전히 빨대를 부리로 쪼는 비둘기를 쳐다봤다. 너, 왜 대답 안 해? 맨소래담이 다시 물었다. 비둘기 깃털 위에 껌이 붙어 있었다. 껌 상태로 봐서는 오래전에 달라붙은 것처럼 보였다. 사람들이 주로 많이 씹는 자일리톨 껌일 거라고 생각했다. 머리통만 검은색인 비둘기 한 마리가 날아왔다. 그 비둘기도 보도블록 사이에 낀 빨대를 부리로 쪼았다.
    버스 표지판 옆에 있는 라일락꽃은 활짝 피어 있었다. 시든 라일락꽃은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버스 한 대가 정류장에 멈추지 않고 그냥 지나쳤다. 예쁜 엄마. 예쁜 아기. 예쁜 가축이라는 광고 포스터가 붙은 버스였다. 산부인과 광고인데 버스가 빨리 지나가는 바람에 나는 마지막에 있는 가족을 가축이라고 읽었다.
    파고다 공원 가는 버스가 도착했다. 그때 엉덩이 한가운데에 망고가 그려진 미니스커트를 입은 여자가 뛰어왔다. 미니스커트를 입은 여자가 먼저 버스에 올라탔다. 그 뒤에 맨소래담이 올라탔고, 그 다음에는 내가 올라탔다. 버스에는 빈 좌석이 없었다. 나는 미니스커트를 입은 여자 옆에 섰다. 맨소래담이 내 옆에 섰다. 『안쓰러워. 왼쪽 허벅지 부분에 구멍 났어. 밤에 바람 많이 불 텐데. 터진 구멍으로 바람 들어가면 얼마나 추울까.』 맨소래담은 정말 안됐다는 표정으로 여자를 훑어보면서 내게 귓속말을 했다. 내 앞 좌석에 앉은 사람이 벨을 누른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가 자리에 앉으려 할 때였다. 맨소래담이 내 오른쪽 팔을 잡았다. 『미니스커트 입은 여자 높은 구두 신었잖아. 발이 얼마나 아프겠니?』 맨소래담이 귓속말로 소곤거렸다. 나는 입맛을 한 번 다시고, 미니스커트 입은 여자에게 자리를 양보했다. 『너는 제발 국민을 먼저 생각해 봐. 그렇게 이기적으로 살지 말고.』 맨소래담이 입을 다물고 있는 나에게 말했다.
    2인용 좌석에 앉은 여자와 남자가 싸웠다. 모래바닥에 눌린 것처럼 오른쪽 얼굴에 여드름 자국이 있는 남자와, 이마 속에 수십 개의 모래가 들어 있는 것처럼 여드름이 많은 여자였다. 남자가 휴대폰을 보고 있을 때 여자가 자신이 다 먹은 커피 빈 로고가 찍힌 일회용 컵을 보면서 쓰레기, 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들은 남자가 자신보고 쓰레기, 라고 했다면서 화를 냈다. 여자는 그게 아니라 일회용 컵이 쓰레기라고 설명했다. 남자는 변명 따위는 필요 없다면서 여자를 쏘아봤다. 일회용 컵이 여자의 무릎에서 남자의 무릎으로 여러 번 오갔다. 여자는 정말 그게 아니라고 하면서 자신의 이마를 손톱으로 긁었다. 여자가 만진 이마에 난 여드름은 곧 터질 것 같았다. 남자는 흠, 이라고 길게 소리를 낸 후 눈을 감아버렸다. 여자가 후, 하고 한숨을 쉬었다. 소통이 안 되는 여드름 애인들인 것 같았다. 이미 여드름이 나서 여드름 자국이 생긴 남자가, 여드름이 잔뜩 나서 곧 터질 것 같은 여자를 이해 못 하는 것 같았다. 결국, 커피 빈 일회용 컵은 바닥으로 굴러 떨어져서 버스가 흔들릴 때마다 굴러다녔다. 일회용 컵은 굴러다니다가 버스 맨 앞좌석에 앉은 아줌마 발밑에 가서 닿았다. 아줌마는 일회용 컵을 보면서 인상을 썼다. 그리고 일회용 컵을 발로 밟아버렸다. 여드름 자국이 많은 남자가 그 모습을 쳐다봤다. 그러고 나서 여드름이 많이 난 여자를 보면서, 다 너 때문이야, 라고 하면서 신경질을 냈다.
    파고다 공원이 있는 정류장을 지나쳐 버렸다. 맨소래담이 미니스커트 입은 여자의 허벅지를 쳐다보느라 그렇게 되었다. 맨소래담과 나는 그 다음 정류장에서 내렸다. 버스정류장 앞에는 농약, 씨앗, 비료라고 적힌 가게가 있었다. 가게가 있는 길에서 할머니들이 꽃과 나무를 팔고 있었다. 맨소래담은 여기서 파고다 공원까지 거리가 얼마 안 되니 걸어가자고 했다. 나는 맨소래담을 따라 걸었다. 길거리에서 식물을 파는 할머니들은 거의 비슷한 것들을 팔고 있었다. 팔고 있는 식물들의 종류가 같아서, 식물은 그대로 놓아두고 할머니들이 아무 곳에나 가서 자기 물건인 듯 팔아도 상관없을 것 같았다. 어떤 할머니 혼자만 선인장을 팔고 있었다. 할머니는 맨발로 땅바닥에 주저앉아 있었다. 왼쪽 귀에 해바라기 씨만 한 점이 있는 아줌마가 선인장을 구경하고 있었다. 아줌마는 사람 얼굴 크기만 한 선인장을 보며 가격을 물었다. 또 애벌레 수십 마리가 덕지덕지 붙어 있는 것같이 생긴 선인장을 보고 가격을 물었다.
    가. 안 사려면 가. 선인장을 파는 할머니가 소리를 질렀다. 선인장을 구경하던 아줌마는 그 소리를 듣자마자 바로 가버렸다. 처음부터 안 살 생각이었던 것 같다. 차라리 처음부터, 물건은 안 살 거예요, 라고 솔직히 말했으면 할머니가 저렇게까지 신경질은 내지 않았을 텐데. 나는 선인장을 파는 할머니를 쳐다봤다. 할머니의 성격이 화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할머니는 자신의 머리를 박박 긁었다. 그러더니 나를 올려다봤다. 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러고 나서 안 살 거예요, 라고 말했다. 할머니가 나를 노려봤다. 미리 안 살 거라고 말했는데도 선인장 할머니는 불쾌해했다. 그래서 다시 큰 소리로 또박또박 말했다. 안. 산. 다. 니. 깐. 요. 할머니 목에는 화강암처럼 점이 많았다. 할머니는 선인장이 아니라 흙에서 잡초나 풀을 뜯어서 팔아야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할머니의 얼굴은 촌스럽게 생겼다. 내 고추에도 저 길쭉한 선인장에 붙은 가시처럼 가시가 붙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럼 죽여줬을 텐데. 맨소래담이 히죽 웃으면서 말했다. 선인장 가시 가지고 되겠어? 고슴도치 새끼 가시 정도는 돼야지. 나는 맨소래담을 쳐다보며 말했다. 오랜만에 제대로 된 말 한다. 맨소래담이 나를 칭찬했다. 지나가는 개새끼가 니들 머리통에 올라앉아서 오줌이나 질질 흘렸으면 좋겠다. 쌍으로 미친것들아. 선인장을 파는 할머니는 내가 맨소래담에게도 들어 보지 못한 욕을 했다. 맨소래담도 어지간한 욕은 다 하는데. 역시, 선인장을 파는 할머니의 성격은 화끈했다.
    파고다 공원에 들어서자마자 맨소래담은 정자를 가리켰다. 저곳에서 했던 나의 다짐을 잊지 말라고 하면서 내 어깨를 다독거렸다. 나는 맨소래담을 쳐다보면서 어깨를 한번 으쓱했다. 정자에는 뚱뚱한 할머니 혼자서 휴대폰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너무 뚱뚱해서 일어설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포대자루에 물을 가득 부어서 얼굴만 붙여 놓은 게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파고다 공원에 있는 할아버지들은 정자에 앉아 있는 할머니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비둘기 한 마리가 내 앞으로 다가와서 뒤뚱거렸다. 가위로 두 다리를 톡 잘라내 버리고 싶었다. 그럼 그 자리에 바로 주저앉을 텐데. 요즘 비둘기들은 어느 곳을 막론하고 거의 비만이다. 오리처럼 다 뒤뚱거린다. 담벼락 근처에 서 있던 할머니가 소리 내며 웃고 있었다. 그 앞에는 두 명의 할아버지가 서 있었다. 두 명의 할아버지도 할머니를 보면서 입을 벌리고 웃었다. 할머니는 웃으면서 손사래를 쳤다. 저 할머니는 못생긴 게 확실한데. 할아버지들에게는 인기가 좋은 것 같았다. 나도 칠십이 넘으면 굉장히 인기가 많겠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 할머니 얼굴 정도로 두 명의 할아버지를 만날 수 있다면, 나는 아마 열여섯 명 정도의 할아버지는 일도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맨소래담과 나는 정자가 있는 곳으로 갔다. 맨소래담은 나에게 자신에게 했던 다짐을 다시 말해 보라고 했다.
    당신에게 복지국가가 되겠어요. 나는 여러 가지 상황을 요약해서 간단히 말했다. 일 년 전, 나는 맨소래담의 복지를 책임지겠다고 정자 안에서 맹세했다. 나는 어렸을 적부터 정의감에 불타는 사람이었다. 정의사회 구현을 위해서 단 한 사람이라도 구제해 주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안티푸라민 뚜껑에 그려진 언니처럼 다른 사람의 상처를 치료해 주는 사람이 되는 게 꿈이었다. 그때부터 나는 맨소래담의 국가가 되었고, 맨소래담은 나의 국민이 되었다. 그리고 국가를 위해 헌신한 열사를 존경하기로 했었다. 맨소래담은 나를 보면서 요즘은 정신이 많이 해이해진 게 아니냐고 했다. 맨소래담에게 복지국가가 되려면 나는 언제나 재정적자에 시달려야 한다는 말을 하려다 말았다. 맨소래담은 국보 제2호가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나도 그 뒤를 따라갔다. 그곳에는 남색 점퍼를 입은 할아버지가 서 있었다. 할아버지는 꼿꼿하게 선 채 가래를 뱉었다. 가래침은 바닥으로 떨어지지 않고 턱 밑으로 떨어진 후 점퍼 위에 묻었다. 고개를 숙이고 가래침을 뱉었으면 옷에는 묻지 않았을 텐데, 하는 생각을 했다.
    맨소래담은 똥을 싸러 화장실에 갔다. 나는 원각사지 십층 석탑 앞에 있는 표지판을 읽었다. 원각사지 십층 석탑 중간에는 삼장법사와 손오공, 저팔계, 사오정 일행이 불법을 구해오는 과정을 그렸다는 설명이 있었다. 이곳에 올 때마다 예전에 봤던 손오공, 저팔계, 사오정이 나오는 만화가 완전히 다 뻥은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어느 정도 일리가 있는 만화였던 것이다. 만화에서 본 저팔계의 뱃살이 생각나면서 맨소래담의 뱃살도 떠올랐다.
    맨소래담은 똥을 싸고 돌아왔다. 그러면서 이곳에서 나가자고 했다. 파고다 공원 담벼락 밑에는 개나리가 피어 있었다. 맨소래담은 자신이 제일 좋아하는 꽃이라고 했다. 작은 노란색 꽃 한가운데 있는 구멍이 귀엽다고 했다. 여자 치마가 활짝 뒤집어져 있는 것 같다고도 했다. 맨소래담은 개나리꽃이 예뻐서 그냥 지나칠 수 없으니 먹기라도 해야겠다면서 개나리를 뜯었다. 맨소래담은 개나리를 한 주먹 따서 입에 털어 넣었다. 설사한다고 약이나 안 먹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맨소래담은 작년에도 저렇게 개나리를 뜯어먹고 설사를 했다. 바닥에는 개나리꽃이 떨어져 있었다. 바닥에 떨어져 색깔이 변한 개나리꽃은 발가락 사이에 생긴 무좀 같아 보였다.
    맨소래담은 나에게 커피 한잔을 사주겠다면서 뼈해장국 식당 옆에 놓여 있는 자판기 앞으로 갔다. 자판기에는 모든 커피가 백 원이라고 적힌 종이가 붙어 있었다. 맨소래담이 커피 한 잔을 가지고 와서 나에게 주었다. 그러고 나서 자신은 프리마가 섞인 커피를 먹으면 설사를 한다면서 자판기가 있는 곳에서 삼십 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테이크아웃 커피 전문점으로 갔다. 그곳에서 에스프레소 더블 샷을 사가지고 와서 마셨다. 맨소래담 때문에 나는 앞으로 더 재정위기에 허덕일 것 같았다. 맨소래담에게 복지국가가 되어 준다는 게 실현 가능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맨소래담이 저렇게 재정을 갉아먹고 있으니 말이다.
    맨소래담은 닭발을 먹으러 가자고 했다. 닭발을 파는 식당에는 사람이 많았다. 맨소래담은 닭발 삼인분을 주문했다. 닭발이 석쇠에 올려졌다. 맨소래담은 맨손으로 닭발을 잡고 뒤집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닭발이 구워졌다. 맨소래담은 일회용 장갑을 끼고 구워진 닭발을 뜯어먹기 시작했다.
    처참해. 눈 뜨고 있을 때는 알 낳는 기계처럼 쓰이다가 죽어서는 이렇게 발이나 뜯기고. 단순노동이나 하는 나하고 비슷해. 내가 말했다. 원래 빈곤한 나라에서는 단순노동을 많이 해서 먹고 살 수밖에 없잖아. 네 자체가 빈곤해서 그런 걸 뭘 탓하니? 개발도상국은 노동집약적인 산업을 할 수밖에 없는 구조잖아. 근데 너는 개발도상국 수준이나 되냐? 그리고 네가 무슨. 알이라도 한 번 낳아 봤어? 맨소래담이 말했다. 그 말에 나는 대답하지 않고 숨만 쉬었다. 나는 맨소래담이 닭발만 안 먹어도 베개를 하나 더 살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생각을 했다. 맨소래담이 닭발을 뜯어먹었다. 닭발에 살이 붙어 있기나 해? 나는 맨소래담의 입을 보며 물었다. 그러니깐 더 먹어야 하는 거야. 맨소래담은 닭발을 통째로 씹어 먹으면서 대답했다. 닭 안됐어. 나는 닭발을 보며 말했다. 맨소래담은 나를 보며 쓸데없는 걱정을 한다면서 혀를 찼다.
    닭발 가게주인과 엿기름ㆍ고추 가게주인은 맨소래담과 내가 이곳에 들어올 때도 싸우고 있었는데 지금도 계속 싸우고 있다. 열린 출입문 사이로 엿기름·고추 가게주인이 닭발이 들어 있는 고무통에 침을 뱉는 게 보였다. 닭발 가게주인은 그걸 보자마자 가게 안으로 들어와서 주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식칼을 가지고 나왔다. 가게에서 닭발을 정신없이 구워먹던 손님들이 그 모습을 보고 가게를 빠져나갔다. 주인이 식칼을 가지고 나가면서 잠깐 휘둘렀을 뿐인데 그 여파가 컸던 것 같다. 혹시 자신들이 찔려 죽을까 봐 가버린 것 같았다. 그 와중에 맨소래담은 아줌마한테 닭발 일인분을 더 달라고 했다. 아줌마는 한숨을 쉬면서 닭발을 갖다 주었다. 문 밖에서는 닭발 가게주인이 엿기름?고추 가게주인을 죽여 버리겠다면서 식칼을 휘둘렀다. 나는 식칼을 저렇게 휘둘러서는 죽이지 못할 텐데, 하는 생각을 했다. 요즘 누가 칼 가지고 사람 죽이나. 그것도 옛날 방식인데. 좀 촌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손님 두 명도 가게를 빠져나갔다. 다시 닭발 가게주인이 식칼 하나를 들고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주인은 소주의 마개를 따서 마셨다. 그러더니 주방 안으로 들어가서 식칼 하나를 더 가지고 나갔다.
    칼의 개수가 문제가 아닐 텐데. 맨소래담이 여전히 닭발을 뜯어먹으며 말했다. 가게 안에는 맨소래담과 나만 남았다. 닭발 가게 아줌마가 밖에서 싸움을 말리다 말고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냉장고 문을 열고 소주 두 병을 냉면 그릇에 쏟아 부었다. 그러고 나서 그것을 마신 후 밖으로 나갔다. 닭발 가게주인과 아줌마가 번갈아가면서 소주를 마셨다. 왜 저렇게 번잡스럽게 드나드는지 모르겠다. 누가 누구 한 명을 죽이면 빠를 것을.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밖에서는 닭발 가게주인이 다 죽여 버리겠다고 소리쳤다. 경찰 두 명이 뒷짐을 지고 그 모습을 쳐다보고 있었다.
    가자. 내가 말했다. 나 아직 배 덜 찼는데. 맨소래담은 그렇게 말하면서 가게 안을 훑어봤다. 맨소래담은 옆 테이블 석쇠 위에 놓인 닭발을 가져다가 먹었다. 닭발 가게주인은 메리야스에 피를 묻힌 채 가게 안으로 또 들어왔다. 아직까지 아무도 죽이지 못한 것 같았다. 칼로 자신의 왼쪽 젖꼭지만 찔러서 피를 흘리게 한 게 전부였다. 가게주인은 파인애플 맛 오란씨를 한 병 들이켠 후 나갔다. 목마르나 보네. 맨소래담이 말했다. 아줌마가 들어와서 앞치마를 벗어던졌다. 이십 년째야. 아줌마가 고개를 흔들면서 말했다. 아줌마는 맨소래담과 나에게 오늘 장사는 안 한다고 하면서, 나가라고 했다. 쯧. 안됐다. 저러고 이십 년을 살았을 것 아냐. 얼마나 주인아저씨를 사랑했으면 칼을 휘두르는 사람하고 저렇게 살 수 있을까. 맨소래담은 닭발을 굽다 말고, 일회용 손 장갑을 벗었다. 그리고 아줌마를 쳐다보며 안쓰러운 표정을 지었다. 지금 나가자. 지금 가면 돈 안 내고 나가도 돼. 아까 사람들도 그냥 다 갔어. 내가 말했다. 그럼 사이다 한 병만 더 마시고 가자. 맨소래담이 트림을 하면서 대꾸했다.

 

    버스정류장 바닥에는 라일락꽃이 떨어져 있었다. 바닥에 떨어진 꽃은 말라붙은 밥풀 같아 보였다. 집 앞 아파트 단지를 지날 때였다. 나는 불 켜진 아파트의 베란다를 쳐다봤다. 저 집 베란다는 우리 간이매점보다는 넓겠지? 내가 말했다. 왜? 너도 외상으로 저 아파트에서 살고 싶냐? 맨소래담은 내가 생각지도 못했던 말을 했다. 외상은 무슨. 대출이겠지. 내가 말했다. 저기 사는 사람들 수치로 보면 절반은 외상으로 사는 거라잖아. 은행에 외상지고 사는 거지. 그리고 너는 외상을 대출이라고 말하면 고급스럽냐? 꼭 그렇게 말해야 직성이 풀리냐? 맨소래담이 말했다.
    집에 들어온 맨소래담은 나를 보고 자기 옆에 누우라고 했다. 맨소래담 이 사이사이에는 고춧가루가 껴 있었다. 좁아서 둘이 누우면 움직일 수가 없잖아. 내가 말했다. 맨소래담은 괜찮다고 했다. 맨소래담은 옷을 벗어던졌다. 나보고도 옷을 벗으라고 했다. 이따가. 나는 맨소래담의 배를 쳐다보며 말했다. 맨소래담의 고추는 천장을 향해 일어서기 시작했다. 고추는 아직 마개를 따지 않은 사이다 병처럼 보였다. 맨소래담이 내 입술에 뽀뽀를 하기 시작했다. 맨소래담 입에서는 비린내가 났다. 나는 입을 다문 채로 있었다. 맨소래담은 뽀뽀를 하다가 멈추고 나를 쳐다봤다. 그러더니 자리에 누웠다.
    나 어렸을 적에 말이야. 학교 끝나고 문방구에서 쥐포 하나 사가지고 나오는데 어디서 나타난 개 한 마리가 계속 쫓아오는 거야. 쥐포 안 뺏기려고 냅다 뛰었지. 그런데 개가 끊임없이 달려오는 거야. 마지막에는 그 개가 달려와서 내 허벅지 물어뜯고 쥐포 가져갔어. 그냥 진즉에 쥐포 하나 던져줬으면, 개한테 물어 뜯겨 기절해서 보건소에 가서 링거까지 맞을 일은 없었을 텐데. 그렇지? 어차피 해줄 거면 그냥 빨리 해주는 게 나아. 너 변태가 뭐라고 생각하냐? 맨소래담이 나를 빤히 쳐다보며 물었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바바리코트 입고 고추 덜렁거리며 다니는 사람이 변태인 줄 알지? 아니야. 변태는 옷 벗고 있으면서도 안 하는 게 그게 변태야. 별게 변태인 줄 아냐? 맨소래담이 내 손을 잡으며 말했다. 그래? 안 그래? 맨소래담은 내 사타구니에 손을 집어넣으며 신음소리를 냈다. 그놈의 개새끼는 나쁜 새끼네. 쥐포만 뺏어가지 왜 물어뜯기까지 했대? 나는 다리를 흔들면서 말했다. 맨소래담이 내 젖꼭지를 물어뜯기 시작했다.


 

    일을 마치고 집에 가는 길에 중국집에서 나오는 맨소래담과 마주쳤다. 맨소래담은 갈색 구두를 꺾어 신고 있었다. 선반에 있는 구두 중에서 사이즈가 맞지 않는 것을 신고 나온 것 같았다. 맨소래담도 나를 쳐다봤다. 내가 무슨 가축이냐. 매일 사료 먹듯이 밥만 먹게. 가끔 짬뽕도 먹고 그래야지.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맨소래담은 내 얼굴을 보자마자 말했다. 엊그제 닭발도 먹었는데. 내가 말했다. 그건 그거고. 맨소래담이 이쑤시개로 이를 쑤시며 말했다. 네 손에 든 게 뭐냐? 맨소래담이 물었다. 조개. 내가 대답했다. 그걸 내가 몰라서 묻니? 그니깐 그게 왜 있냐고? 맨소래담이 코를 벌름거렸다. 손님들이 먹다 남긴 거 사장이 집에 가져가서 먹으라고. 나는 입을 쩝쩝거렸다. 맨소래담은 나를 한심하다는 듯이 쳐다봤다. 나는 맨소래담의 얼굴을 보면서 어깨가 아프다고 했다. 고주파 치료를 받고 싶다고 했다. 너의 그 부르주아식 생각이 문제야. 얼마나 번다고 고주파 치료냐? 맨소래담이 바닥에 침을 뱉었다. 한심스럽다. 맨소래담은 나를 보면서 고개를 저었다.
    그때 검은 등에 흰 줄이 있는 고양이 한 마리가 전봇대 밑에 있는 음식물 쓰레기봉투를 입으로 찢고 있었다. 고양이는 나를 한참 동안 쳐다본 후 담벼락 위로 뛰어 올라갔다. 너 때문에 고양이가 눈치만 보다가 결국 먹지도 못하고 가네. 맨소래담은 고양이를 보면서 말했다. 그러고 나서 내 신발을 쳐다봤다. 집에 신발도 많은데 왜 밑창 떨어진 운동화만 계속 신고 다니냐? 저번에 재활용통에서 한 자루 주워 가지고 온 거 있잖아. 맨소래담이 고개를 저었다. 자루에는 구두밖에 없잖아. 힐을 신고 조개를 구울 수는 없어. 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것도 생각하기 나름이지. 힐 신고 조개 못 구우라는 법 있냐? 맨소래담은 하여튼지 간에, 라는 말을 여러 번 했다.
    그때, 눈앞에 4인용 식탁이 보였다. 거주자 우선 주차구역 안에 식탁이 놓여 있었다. 나는 그곳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식탁 위에는 『절대 주차금지』라고 써진 종이가 붙어 있었다. 저기. 식탁. 내가 말했다. 주자하지 말라고 식탁까지 갖다 놨네. 저 주차구역 안에 다른 사람이 무서워서 주차하겠냐. 식탁 갖다 놓은 사람, 열 더 받으면 자기 집 장롱까지 갖다 놓을 사람이야. 맨소래담이 뻐드렁니를 드러내 놓고 웃었다. 저거 가져가자. 내가 말했다. 우리 집 폭이 좁아서 안 된다더니 어디다 두려고? 맨소래담이 나를 봤다. 나는 맨소래담에게 제발이라는 말을 열 번 넘게 했다. 맨소래담은 특별히, 라는 말을 하면서 나를 쳐다봤다. 그러고 나서 식탁에 붙어 있는 종이를 떼어냈다. 맨소래담이 앞에서 식탁을 들었고, 나는 뒤에서 들었다.
    맨소래담과 나는 식탁을 간이매점 옆에 놓았다. 의자도 없는데, 서서 먹으려고? 맨소래담이 나를 보며 하여튼지 간에, 라는 말을 하며 집으로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온 맨소래담이 팬티를 벗어던졌다. 나 섰어. 맨소래담이 말했다. 조개 식을 텐데 먹고 하면 안 될까? 나는 맨소래담의 고추를 보며 말했다. 하여튼. 너는 분위기 망치는 데 뭐 있어. 허구한 날 보면서 그게 또 먹고 싶냐? 맨소래담이 말했다. 보기만 하지 먹지는 못해. 나는 천장을 쳐다보며 중얼거렸다.
    나는 조개를 먹기 시작했다. 내가 먹는 동안 맨소래담은 옷을 다 벗고 누워 있었다. 그리고 나에게 빨리 먹으라고 재촉했다. 내가 먹고 있을 때, 맨소래담은 고추를 덜렁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언제까지 먹을 거야? 맨소래담은 그렇게 말하면서 조개가 든 그릇을 창문을 열고 집어던졌다. 나는 맨소래담을 쳐다봤다. 지나다니는 고양이들도 좀 먹어야지. 너도 아까 봤잖아. 고양이가 먹을 게 없어서 음식물 쓰레기봉투나 뒤지고 다니는 거. 맨소래담은 나를 보고 빨리 누우라고 했다. 나는 누워서, 일 한 지 일 년이 넘었는데 사장이 시급 오백 원도 올려 주지 않는다는 말을 했다. 맨소래담은 고추를 내 몸속으로 밀어 넣다 말고 나를 쳐다봤다.
    너는 왜 그렇게 세상에 불만이 많냐. 사장이 너 일 시켜 주고 일당 주면 됐지 뭐가 그렇게 날마다 못마땅해서. 그래도 살 만하니깐 이 정도로 살고 있지. 대통령이 조금 못생겼다는 거 빼고는 뭐 문제될 게 없잖아. 맨소래담이 말했다. 나는 혀를 내밀었다. 너는 노동을 제대로 하냐? 나를 제대로 부양하냐? 지금도 조금 해보려고 하니깐 이탓저탓이나 하고. 맨소래담이 나를 보며 혀를 찼다. 내 불만은 대통령 눈이, 말린 고사리 끊어진 것처럼 작은 게 불만인데, 라고 말하려다 그만두었다. 대통령이 못생겼으면 세계 정상들이 그 모습을 보고 우리나라 국민들도 평균적으로 다 못생겼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잖아, 라는 말도 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비가 왔다. 사장은 깻잎이 다 떨어졌다면서 깻잎을 사러 나갔다. 사장이 나가면서 가게 문을 열어 두고 갔다. 비는 점점 더 세차게 내렸다. 유리창에 굵은 빗방울이 흘러내렸다. 빗방울은 유리에 튀자마자 흘러내렸다. 빗방울이 밑으로 흘러내리면서 꼬리 모양을 만들었다. 흘러내리는 빗방울은 정자 꼬리처럼 보였다. 유리창에 달라붙은 물방울은 제대로 된 모양 없이 순식간에 다 찌그러졌다. 모든 빗방울이 그랬다.
    비오는 날 맨소래담은 휴대용 변기통이 있는 화장실에 가서 오줌을 싸지 않고 밖에서 싼다. 비 오는 날 오줌을 쌀 때 빗방울이 고추에 떨어지면 스릴이 느껴진다고 했다. 나는 문 밖으로 나갔다. 비둘기 한 마리가 벚꽃나무 밑에 푹 주저앉아 있었다. 다리가 없는 비둘기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들여다보니 다리가 있었다. 비둘기 몸통이 너무 뚱뚱해서 다리가 잘 보이지 않았던 것 같다. 비바람에 벚꽃이 떨어졌다. 비둘기 몸통에 벚꽃이 달라붙었다. 사철나무 잎에도 벚꽃이 달라붙었다. 물웅덩이에도 벚꽃이 많이 떨어져 있었다. 그곳에 몰려 있는 벚꽃은 게보린이 퉁퉁 불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비가 그쳤다. 집이 있는 공터로 갔다. 개 세 마리가 식탁 다리에 묶여 있었다. 개 한 마리는 털이 다 빠져 있었고 다른 개는 귀 근처 털이 초록색으로 염색되어 있었다. 또 다른 개 한 마리는 질퍽거리는 흙 위에 엎드려서 잠을 자고 있었다. 자고 있던 개는 갑자기 눈을 뜨더니 나를 보고 미친 듯이 짖어댔다. 개 얼굴에는 흙이 잔뜩 붙어 있었다. 진흙 팩 마사지라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때 털이 다 빠진 개가 똥을 싸기 시작했다. 개는 설사를 했다. 무슨 개들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식탁 밑은 개집이 되어 있었다.
    문을 열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맨소래담은 옷을 다 벗고 잠을 자고 있었다. 맨소래담의 배는 내 금고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번 돈을 차곡차곡 저 속에 넣어 둔 거와 같다. 내가 만든 모래섬일지도 모른다. 내 돈을 맨소래담이 날마다 먹어치웠으니 말이다. 배 밑에 달린 성기는 수도꼭지처럼 보였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스스로 틀어서 정자를 쏟아낼 수 있는. 맨소래담이 코를 골다가 자신의 손으로 고추를 만졌다. 그러다가 벽 쪽으로 돌아누웠다. 맨소래담의 엉덩이가 보였다. 엉덩이는 배보다 홀쭉했다. 어쩌면 배가 너무 불러 있어서 상대적으로 엉덩이가 빈약해 보이는지도 모른다. 똥 나오는 항문 주변의 피부색은 바래 있었다. 맨소래담은 다른 사람들보다 유난히 똥을 많이 싼다. 그래서 항문 주변 피부색이 변했는지도 모른다. 나는 맨소래담의 성기를 만졌다. 맨소래담은 잠을 자면서 음, 음 소리를 냈다. 성기의 감촉은 어렸을 적에 개구리 해부하기 전에 만졌던 등껍질 같았다. 맨소래담은 내가 자신의 성기를 만지고 있는 동안 입을 쩝쩝거렸다. 해부용 칼이 있으면 맨소래담의 고추를 한번 쫘악 갈라 보고 싶었다.
    자고 있는데 시끄럽게. 맨소래담이 소리를 질렀다. 그때 바깥에서 오토바이가 지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개들이 한꺼번에 짖기 시작했다. 밖에 개들 있던데. 내가 말했다. 내가 데리고 왔어. 비 맞고 돌아다니고 있기에. 맨소래담이 하품을 하면서 말했다. 개 키우는 것도 일일 텐데. 사료 값도 들고. 나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하여튼지 간에, 너는. 네가 먹는 밥 조금 나눠 먹으면 되지. 맨소래담이 일어나서 내 이마를 툭 하고 때렸다. 나는 나눠 먹을 게 있어야 나눠 먹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쳤던 비가 다시 내리기 시작했다. 천장 위로 비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내 옆으로 와. 맨소래담이 부드럽게 말했다. 오늘은 비도 오고. 피곤해. 나는 깊은 한숨을 쉬었다. 하고 싶어. 맨소래담이 말했다. 내가 무슨 번개탄 구멍처럼 구멍이 많은 것도 아니고. 날마다는 힘에 부쳐. 나는 조금 단호하게 말했다. 그러고 나서 눈을 감았다. 만날 뭐가 그렇게 힘이 드니? 맨소래담이 조금 흥분하며 말했다. 맨소래담은 다시 말했다. 어서. 네가 나한테 말했던 신념을 한번 생각해 봐.
    맨소래담은 고추를 주물럭거렸다. 무슨 반죽 주무르듯이 만졌다. 내 위로 올라가. 맨소래담이 말했다. 나는 코가 막혀 조금 킁킁거렸다. 맨소래담은 약간의 신음소리를 냈다. 나는 맨소래담 배꼽을 긁었다. 그리고 맨소래담 배 위에 앉았다. 맨소래담은 식은땀을 흘렸다. 집 안이 다른 때보다 컴컴했다. 맨소래담은 여전히 식은땀을 흘리며 나를 쳐다봤다. 왼쪽 볼에 있는 점들도 식은땀에 젖어 있었다.

 

    새가 울었다. 손을 뻗어 창문을 열었다. 창문 하나 열기는 편한 집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새 한 마리가 새잎이 돋기 시작한 장미 가시 위에 올라앉아 있었다. 새 한 마리가 더 있었다. 그 새는 아카시아 가지 위에 있었다. 두 마리의 새는 서로를 보면서 날개를 푸드덕거렸다. 회색 털에 짙은 갈색 줄무늬가 있는 새는 답답해 보였다. 아카시아 위에 있던 새가 장미 가시 위에 있는 새의 깃털을 부리로 쪼았다. 공격을 당하던 새는 순식간에 날아가 버렸다. 나는 창문을 닫았다.
    너 일 안 나가? 맨소래담이 하품을 하며 물었다. 사장이 계모임에서 메콩 강 간다고 오일 쉰대. 나는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내 말에 맨소래담은 한참 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나는 다시 눈을 감고 잠을 잤다. 누군가가 나를 보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 눈을 떴다. 눈을 뜨니 맨소래담이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너는 어떻게 하면 일을 안 할까, 그 생각만 하지? 맨소래담이 혀를 찼다. 나는 코가 막혀 숨쉬기가 힘들었다. 나 같으면 집에 있는 연이라도 벼룩시장에 가서 내다팔고 오겠다. 맨소래담은 입을 다문 채 선반 위에 놓인 연이 담겨 있는 비닐봉지들을 쳐다봤다. 틈만 나면. 먹고. 놀고. 자고. 그러니 수준이 이 모양이지. 맨소래담은 말을 하면서 자기 가슴을 쳤다.
    나는 눈을 비빈 후 선반 위에 있는 비닐봉지를 하나하나 풀었다. 가오리연은 살이 부러져 있거나 종이가 찢어진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방패연은 전부 다 박살나 있었다. 어떤 비닐봉지에서는 죽은 파리와 마른 지렁이도 함께 나왔다. 제대로 된 연은 한 개도 없었다. 예전 간이매점 주인이 버리지 않고 그대로 놓아둔 것이었다. 멀쩡한 게 하나도 없어. 나는 맨소래담을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 거 봐라. 노동 안 하고 놀고먹었으니깐 이 매점 주인도 망한 거. 맨소래담은 나를 보며 농땡이 같은 건 부리지 말고 일을 해야 한다고 했다. 매점 주인은 망한 게 아니고, 한강 르네상스 한다고 간이매점 다 철거해서 그런 건데, 라고 말하려다 그만두었다. 말해 봤자일 것 같았다.


 

    며칠 동안 미친놈처럼 짖어대던 개들이 보이지 않았다. 맨소래담은 자신의 고추에 다진 오이를 올려놓고 있었다. 뭐 해? 내가 물었다. 마사지하잖아. 관리 좀 해야지. 이것도 경쟁력인데. 맨소래담이 말했다. 나는 맨소래담의 머리카락을 쳐다봤다. 맨소래담은 손가락으로 머리카락을 여러 번 만졌다. 파마했네? 왜 했어? 나는 누워 있는 맨소래담을 보며 말했다. 사생활이야. 맨소래담이 웃으며 대답했다. 개 없던데. 내가 물었다. 목줄 풀어 줬어. 맨소래담이 고추를 만지며 대꾸했다. 팬티 사줘. 맨소래담이 나를 올려다보며 눈을 커다랗게 떴다. 어차피 밤마다 벗어야 할 팬티라며? 벗을 팬티를 왜? 나는 맨소래담의 허벅지를 쳐다봤다. 어차피 벗을 팬티니깐 좀 사주라고. 맨소래담이 실실 웃기 시작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집은 더 어두워졌다. 가로등 불빛이 집 안으로 새어 들어오지 않았다. 팬티는 왜? 내가 다시 물었다. 자꾸 말 시키지 마. 오이 떨어지니깐. 맨소래담이 화를 냈다. 나는 자리에서 뒤척거렸다. 하루 종일 집게를 잡고 있었던 손이 저렸다. 어깨까지 쑤셨다.
    너 후진국이지? 맨소래담이 갑자기 물었다. 나는 그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맨소래담이 한숨을 쉬는 소리가 들렸다. 오늘은 왜 안 해? 내가 물었다. 넣었다 뺐다 하기 귀찮아. 맨소래담이 흠흠거렸다. 나는 별일, 이라고 생각했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너는 내게 국가도 아니야. 내가 무슨 난민도 아니고.
    맨소래담이 말했다.

 

    나는 집을 나와서 녹슨 군고구마 통에서 돈을 꺼냈다. 그리고 바로 조개구이 집으로 갔다. 사장은 메콩 강을 다녀온 후, 역시 한강이 최고야 라는 말을 날마다 중얼거렸다. 그러면서 단체주문이 들어왔는데 하필이면 이때 생리가 터졌다면서 나에게 생리대 심부름을 시켰다. 슈퍼 가는 길에 구제 옷가게에 있는 맨소래담을 봤다. 맨소래담은 구제 옷가게를 싫어하는데, 세상에서 가장 나쁜 가게가 중고 가게라고 했다. 남이 썼던 걸 되팔아 먹는다고. 구제 옷가게 아줌마는 맨소래담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었다. 맨소래담은 웃고 있었다. 가게 안에 있는 옷에 가려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맨소래담은 검은색 삼각팬티만 입고 있는 것 같았다.
    슈퍼 유리문에는 쌀·개 사료 팝니다, 라고 써진 종이가 붙어 있었다. 슈퍼에 들어가서 생리대를 사가지고 나왔다. 오는 길에 다시 옷가게 안을 들여다봤다. 주인 여자만 앉아서 건포도를 먹고 있었다. 조개구이 집으로 돌아오기 전에 맨소래담을 한 번 더 봤다. 맨소래담은 분식집에서 불어터진 어묵을 먹고 있었다. 어묵을 다 먹고 일어난 맨소래담은 주인에게 돈은 안 주고 허리를 앞으로 쭉 내밀었다. 주인 여자는 맨소래담 바지 위로 조금 돌출된 고추를 살짝 만지는 것 같았다. 그 순간이 너무 금방이어서 고추 부분을 만졌는지 안 만졌는지는 조금 헷갈렸다.
    나는 주머니 속에 항상 넣고 다니는 안티푸라민 연고를 꺼냈다. 안티푸라민 뚜껑에는 간호사 모자를 쓰고 빙그레 웃고 있는 여자가 있다. 그 웃고 있는 표정은 엉덩이에 종기가 나도 이 연고를 발라 줄 수 있어요, 하는 표정 같아 보였다. 연고를 다시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안티푸라민 뚜껑에 그려진 언니는 어렸을 적부터 나의 우상이었다. 맨소래담도 그 사실을 안다. 그래서 가끔 맨소래담은 나에게 안티푸라민 연고에 있는 언니처럼 온화하게 웃어 보라고 할 때가 있다. 그리고 안티푸라민 뚜껑을 배지처럼 옷에 달고 다니라고 권하기도 했었다. 나는 한숨이 새어 나왔다. 신념을 지키는 일은 얼마나 어려운가. 사실 맨소래담에게 복지국가가 되어 준다는 게 힘에 부쳤다.
    집에 돌아오니 맨소래담은 팬티만 입은 채, 무릎 위에 밥통을 통째로 올려놓고 밥을 퍼먹고 있었다. 입 주변에 밥풀이 묻어 있었다. 반찬으로는 육포가 놓여 있었다. 앉아서 밥을 먹고 있는 맨소래담 배에서는 배꼽이 보이지 않았다. 뱃살이 축 처져서 배꼽이 살 속에 파 묻혔다. 살면서 늘어나는 건 맨소래담 배 평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맨소래담은 나를 한 번 보고 다시 밥을 먹었다. 오늘 분식집에 있는 거 봤는데. 맨소래담의 움직이는 배를 보며 말했다. 맨소래담은 밥 위에 육포를 찢어서 올려 먹었다.
    집은 여전히 어두웠다. 수준이 그게 뭐냐? 나는 자리에서 뒤척이며 말했다. 어디로 들어왔는지 파리가 윙윙거렸다. 그러는 너 수준은? 선진국 정도는 되냐? 아프리카 복지 수준도 펼치지 못하면서. 맨소래담이 말했다. 파리가 계속 소리를 냈다. 국가 상태가 불안하니깐. 난민처럼 떠돌아다니는 거지. 너도 너 살 궁리만 하는데. 나는 어쩔 수 없는 생계형 불륜 같은 거지. 맨소래담이 혀를 찼다.
    그때 울면이 배달되어 왔다. 맨소래담은 그릇에서 랩을 벗긴 후에 울면을 먹기 시작했다. 맨소래담은 땀을 흘리면서 울면을 먹었다. 나는 울면을 발로 걷어찼다. 맨소래담은 나를 쳐다보더니, 개좆이라고 했다. 맨소래담은 바닥에 떨어진 면을 젓가락으로 집어 먹기 시작했다. 어떤 면은 젓가락으로 잘 집혔지만, 대부분의 면은 다 끊어졌다. 맨소래담은 소리 없이 그것을 먹었다. 나는 천장을 쳐다봤다.
    부탄 아이들은 바람 부는 것만 봐도 행복하다는데. 맨발 벗고 삼일을 굶어도. 나는 목을 이리저리 젖혔다. 걔들은 어려서 그래. 복지가 뭔지 알겠냐? 맨소래담이 혀를 찼다. 동네 아줌마들이나 상대하고. 수준 좀 높여. 나는 입이 찢어져라 하품을 했다. 가난한 국민 한 명 구제도 못 하는 주제에. 맨소래담이 나를 보며 말했다.
    고추 같은 것. 나는 가볍게 숨을 쉬며 말했다. 똥구멍 같은 것. 맨소래담이 크게 말했다. 내가 왜 이 시점에서 이런 생각이 드는지 모르겠는데. 너는 애가 틀려먹었어. 말 한마디 잘못해서 쫓겨 가는 귀양 가는 선비가 될지라도. 할 말은 하고 싶은데. 너는 나에게 최악의 복지야. 맨소래담이 다시 말했다. 그러고 나서 맨소래담이 창문을 열었다. 집은 완전히 어두워졌다. 목련 지고 라일락 피고 지고, 아카시아 향기 나네. 맨소래담이 중얼거렸다. 맨소래담은 미친놈처럼 노래를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눈을 뜨고 창문을 열었다. 집 벽에 쳐놓은 빨랫줄에 삼각팬티가 널려 있었다. 나는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맨소래담은 손에 걸레를 쥐고 있었다. 집 청소하려고? 내가 물었다. 맨소래담은 대답 없이 걸레로 집 벽을 닦았다. 먼지가 많이 꼈네. 맨소래담이 손에 쥔 걸레를 보며 말했다. 간이매점 전체를 다 닦은 후에 나를 쳐다봤다. 나는 맨소래담 입술을 쳐다봤다. 그러고 있지 말고 좀 엎드려 봐. 맨소래담은 나를 향해 손짓하며 말했다. 옥상도 닦아야 한다면서, 맨소래담은 내 등을 밟고 간이매점 위로 올라갔다. 맨소래담은 옥상에 올라가서도 걸레질을 했다. 한참 후에 맨소래담은 나를 보고 다시 엎드리라고 했다. 맨소래담은 나를 밟고 내려왔다. 얼마나 좋아. 집을, 차 세차하듯이 하고. 맨소래담은 간이매점을 보며 뿌듯해했다. 한 가지 흠이 있다면 화장실이 분리되어 있다는 거지. 맨소래담은 휴대용 변기통을 쳐다보며 중얼거렸다.

 

    공터에 돌아와 보니 집이 없었다. 간이매점이 있던 자리는 바닥이 푹 꺼져 있었다. 그 옆에는 식탁만 놓여 있었다. 국가가 싫으면 국민이 떠나는 게 맞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눈을 감고 있는데, 비만인 비둘기 그림자가 눈에 비치는 것 같았다. 비둘기가 지나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 아카시아 냄새가 진동을 했다. 아카시아 냄새는 개를 잡아서 태울 때 나는 냄새 같기도 했다. 오줌을 막 싸고 난 후에 나는 지린내 같기도 하고. 아카시아 냄새는 해년마다 역겹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맨소래담이 했던 말이 생각났다.
    자신이 싼 정자를 나무 위에 올려놓았으면 흰 아카시아 꽃보다는 더 소복했을 거라고.

 

 

 

    《문장웹진 9월호》

 

 

윤미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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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마음 없이

좋아하는 마음 없이 김지연 안지는 이른 결혼을 했는데 실패로 끝났다. 아니, 그걸 실패라고 할 수 있을까? 이혼을 한 건 사실이었지만 안지는 자신의 인생 여정에서 그때 이혼한 일을 실패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 뒤로 더 행복해졌다고 할 수는 없을지언정 조금 더 자기 자신에 가까운 삶을 살게 된 것은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혼이라는 단어를 떠올릴 때면 늘 그에 대해 변호하고 싶은 여러 말들이 떠오르곤 했기 때문에 처음부터 결혼 같은 건 하지 않는 편이 더 나았을 거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 때문에 이혼했다는 사실은 안지의 비밀은 아니었지만 먼저 나서서 밝히지도 않았다. 어릴 때 안지는 무척 전형적인 사람이 되고 싶었다. 구체적으로 그런 표현을 떠올리지는 않았다. 그저 자신이 속해야 하는 집단에서 튀지 않는 사람, 아주 평균적인 사람이고 싶었고 그런 사람이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을 했다. 찬반투표를 할 때면 눈치를 보다가 다수의 의견에 따라 슬그머니 손을 들었다. 친구가 좋아하는 가수를 따라서 좋아하고 친구의 것과 비슷한 브랜드의 신발을 사서 신었다. 친구들이 싫어하는 선생을 따라서 싫어했다. 사실 안지는 그 선생에게 남몰래 호감을 갖고 있었지만 친구들과 함께 떡볶이를 먹다가 술술 흘러나온 그 선생에 대한 욕을 듣고 재빨리 노선을 바꿔 함께 욕을 했다. 한동안 안지는 수학 시간마다 왜 애들은 저 선생을 싫어할까? 에 대한 답을 알고 싶어서 더 열심히 선생의 행동거지를 살폈다. 수학을 가르친다는 점만 빼면 딱히 나무랄 데 없는 사람이었다. 학생이 쉽게 답할 수 없는 내용을 골리듯 물어보지 않았고 무엇보다 학생들한테 사과를 할 줄 알았다. 뭔가 잘못 알고 섣불리 화를 냈을 때, 그러다 결국 진실을 알게 되었을 때, 다른 선생들은 그러게 헷갈릴 만한 짓을 왜 하고 다니느냐고 도리어 짜증을 부렸는데 그 선생은 재빨리 미안하다고 말했다. 미안하다. 내가 잘못 알았어. 미안해. 가끔 안지는 머릿속으로 그 목소리를 재생해 보곤 했다. 그 때문에 선생이 더 좋아졌지만 여전히 싫어하기 위해 애썼다. 누구나 다 그런 식으로 청소년기를 보내지 않나? 내가 아닌 사람이 되어 보려고 노력하면서? 안지는 대학에 갔고 연애를 했고 졸업을 했고 취직을 했다. 결혼도 했다. 아주 평균적인 삶이었다. 조금씩 빠르기도 했다. 조바심이 나 있었으므로. 자신도 남들처럼 지극히 평범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을 빨리 증명해 보이고 싶었으므로. 어느 정도 성공적인 것 같기도 했다. 남편이 바람이 나기 전까지는 그랬다. 식도 올리기 전 임신을 해 낳은 아이가 막 돌을 지난 참이었다. 임신이 아니었으면 결혼까지는 이어지지 않았을지도 몰랐다. 남편은 계속 후회하는 것 같았다. 그때 낙태를 밀어붙이지 않은 것을, 시간을 끌다가 영영 타이밍을 놓쳐버리고 만 것을, 어떤 결단력을 가지지 못한 자신을 자책했을지도 모른다. 그때 뼈저리게 깨달은 바가 있었는지 새로운 여자가 생겼을 때는 안지가 알아차리기도 전에 이혼을 해달라고 요구했다. 겨우 육 개월을 만났을 뿐

  • 관리자
  • 2024-07-01
소금 샹들리에

소금 샹들리에 정한아 호주에 사는 김이 오랜만에 귀국해서 친구들이 다 같이 모이기로 했다. 4명이 만나는 건 대략 7년여 만이었다. 방을 잡고 밤새 보자고 해서 오기 직전까지 망설였는데, 남편이 등을 밀었다. 정민이와 자신에게도 내가 없는 날이 필요하다고 큰소리를 치더니 정말 밤새 전화 한 통 없었다. 친구들과는 대학 동기였다. 전공은 문예 창작이었는데, 나는 2학년까지 다니고 학교를 그만뒀다. 그렇지만 정작 작가가 된 사람은 나뿐이라고 친구들이 투덜거렸다. 나는 작가가 아니라고 아무리 말해도 소용없었다. 그들은 십 수 년 전 내가 낸 단 한 권의 책을 기억하는 몇 안 되는 사람들이었다. 세 명 모두 미혼이었고, 아이를 가지지 않았다. 놀라울 정도로 예전 그대로인 친구들 사이에서 나만 철 지난 옷차림에 좀처럼 대화에도 섞이지 못했지만, 그런 것 때문에 마음이 상하지는 않았다. 오랜만의 서울 나들이에 술자리도 즐거웠다. 좋은 친구들이었다. 7년 전 정민이 자폐 스펙트럼 장애 판정을 받았을 때 그들은 자신의 일처럼 울어 줬고, 이후에도 종종 아이의 간식과 선물을 집으로 보내 줬다. 서서히 연락을 거둔 것은 내 쪽이었다. 애써 관계를 유지하는 일이 힘에 부쳤을 뿐, 그들에게 섭섭한 마음은 조금도 없었다. 지난 몇 년 동안 나는 집이 아닌 곳에서 밤을 보낸 적이 없었다. 다들 술에 취해서 침대로 간 뒤에도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아 휴대폰만 들여다보았다. cctv 속 거실은 엉망이었다. 엎어진 식판, 사방에 흩어진 블록 조각, 길게 늘어진 옷가지들. 남편은 불도 끄지 않고 아이를 재우러 방에 들어간 모양이었다. 나는 정지화면 같은 그 풍경을 한참 바라보다가 해 뜰 무렵에야 겨우 잠이 들었다. 다음날 우리는 점심을 먹고 헤어지기로 했다. 맛집마다 대기가 길어 종로의 좁은 골목을 돌고 또 돌았다. 앞장서 구글 맵을 보며 걷던 김이 갑자기 작은 서점 앞에서 멈춰 서더니 책을 사야겠다고 말했다. 지난 이사 때 내 책을 분실했다는 것이었다. 나는 집에 돌아가서 책을 다시 보내 주겠다고 김을 달랬다. 다섯 평도 안 되어 보이는 그 작은 서점에 내 책이 있을 리는 만무했기 때문이다. 김은 막무가내로 서점에 들어갔다. 할 수 없이 그녀를 따라 들어갔다가 전면 책장에 전시된 내 책을 발견했다. 죽은 친구를 만났다고 해도 그처럼 놀라지는 않았을 것이다. “미애 씨!” 그곳에서 누군가 나를 불렀다. 우아한 노부인이었다. 린넨 바지에 화이트 셔츠, 큼지막한 호른 목걸이를 한 여자는 환하게 웃으면서 나를 바라봤다. “반장님?” 나는 말끝을 흐리며 물었다. 여자는 성큼성큼 내 앞에 다가와서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나를 와락 끌어안았다. 누군가 나를 그렇게 안은 것이 너무 오랜만이라 온몸에 힘이 풀리는 것 같았다. 그녀는 오래전 나와 함께 공부했던 문우였다. H 백화점 문화센터 소설 창작 교실의 반장. 친구들이 책을 구경하는 사이 나는 그녀와 짧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ldqu

  • 관리자
  • 2024-07-01
그동안의 정의

그동안의 정의 최예솔 작정하고 사라진 사람은 작정하고 찾아야만 한다. 나는 윤정수를 작정하고 찾지 않았다. 보통의 남매 사이라는 게 정확히 어떤 건지는 모르겠지만 윤정수와 나를 그냥 보통 남매, 라고 하기에는 좀 어렵지 않을까. 윤정수는 나보다 4년 먼저 태어났다. 그리 적지도, 그리 많지도 않은 애매한 나이 차이 덕분에 윤정수와 나는 딱히 친해지지 못했다.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윤정수는 중학교에 갔고, 내가 중학생이 되었을 때 윤정수는 고등학교에 갔다. 물론 윤정수와 내가 영 친해지지 못한 건 우리의 나이 차이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윤정수는 내게 없는 사람에 가까웠다. 말수도 없고 센스도 없고 자존심도 없고 공부머리도 없고 돈도 없고······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나? 아무튼 남매 사이에 정이라도 있었다면 걱정이라도 했을 텐데 그럴 이유조차 없었다. 쥐뿔도 없는 윤정수니까. 특이사항이라곤 개그맨 윤정수와 동명이인이라는 것 정도밖에 없는. 그러니 윤정수가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집을 나갔다고 해도 이상할 것 하나 없었지. 뭐 내가 찾는다고 윤정수가 나타났을 거라는 보장도 없지만 나는 막연히, 어련히 때 되면 나타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했다. 하지만 윤정수는 죽을 때까지 나타나지 않았다. 물론 내가 죽은 것은 아니다. 윤정수가 죽었다. 내 나이가 이제 서른이니까, 윤정수는 서른넷에 죽었다. 이제 내게 남은 혈육은 없다······ 아닌가? 고모. 그렇게 부르지 마. 왜요. 낯설어. 저도 고모가 낯설어요. 윤현수는 맹랑하다. 윤정수와 장현아의 딸이라고 해서 윤현수. 그거 좀 유치하지 않니? 물었을 때 윤현수는 뭐 어때요 엄마아빠말곤 모르는데, 하고 대답했다. 이제 나도 아는데? 하니까 이젠 고모도 모르는 척해 달라고 했다. 참 나 어디서 이런 게 굴러왔는지. 현수야. 네. 네 엄마 입국 날이 언제라고 했지? 다음 주 토요일이요. 아직 한참 남았네. 고모도 고모 할일을 해요. 시간 금방 갈걸요. 알겠다 그래. 윤현수를 데리고 온 사람은 장현아다. 이제는 나흘쯤 됐으려나. 아침부터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하도 시끄러워서 나가 봤더니 장현아가 윤현수의 손을 붙잡고 서 있었다. 장현아는 다짜고짜 윤정수를 아느냐고 물었고 나는 오랜만에 듣는 윤정수의 이름에 잠깐 벙쪘다가 네, 저희 오빠네요, 하고 대답했다. 조카입니다. 그날 장현아의 대사를 나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그건 도저히 내가 아는 사람이 뱉을 만한 말이 아니어서 대사라고밖에는 표현할 수 없겠다. 아직도 문득 의심스러울 때가 있다. 윤현수가 정말 나의 조카가 맞고 장현아가 정말 나의 새언니가 맞을까. 가족관계라는 게 그렇게 단순하게 정리되는 거라면 이제까지 윤정수와 나는, 또 윤정수와 나와 우리의 부모는, 왜 이렇게 흩어지거나 죽거나 혼자 남을

  • 관리자
  • 2024-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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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2건

  • 익명

    너무 재미있게 잘 봤습니다. 다음에도 좋은 소설 기대합니다.

    • 2013-09-23 10:33:31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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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슴도치13

    재밌고 맘에 들어요. 또 읽고 싶어요.

    • 2014-11-10 03:37:13
    고슴도치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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